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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유튜브(38강, 39강) 생명, 스승 130620강의요한계시록

유튜브(38강, 39강) 생명, 스승 130620

이름 : 이근호(IP:119.18.69.144)

38강

39강

카리스(IP:39.♡.169.74)

13-06-22 10:50

지난 수요예배말씀중 다음대목에 대해 질문드립니다.
"그렇다면 간음이란 것, 창녀 짓을 한다는 것으로 우상숭배를 단적으로 말씀하는 증거가 41절에 나옵니다. “불로 너의 집들을 사르고 여러 여인의 목전에서 너를 벌할찌라 내가 너로 곧 음행을 그치게 하리니 네가 다시는 값을 주지 아니하리라.” 네가, 그러니까 상대방을 말하지요. 지금 창녀짓을 하는 것이 유다민족이고 하나님의 백성인데 창녀 짓을 할 때 “너와 관계한 그 남정네가 너에게 화대를 주지 아니한다.”는겁니다. 그렇다면 유다나 이스라엘이 그동안 우상을 섬긴 것은 어디에 적합한 비유가 되느냐, 돈 벌기 위해서, 자기 먹고 살기 위해서 다른 것은 일체 없고 자기 몸 하나 굴려서 생계비를 얻고자 하는 창녀가 현재 유다의 행태에 딱 적합하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에서
겔16:34-35에 의하면 <네가>는 상대방인 남정네가 아니라 창녀짓한 유다나 이스라엘이 아닌가요?

유일자(IP:116.♡.234.248)

13-06-23 21:05

38강-YouTube강의(생명)1306020-이 근호 목사

38강 제목은 생명입니다. 교회 온 사람이 목사님 설교에서 영생이란 말을 들을 때 얼마나 기쁨니까? 이 땅에 참 고생하고 힘든 인생을 살면서도 낙이 있다면 이 세상 끝났을 때에, 요한계시록 22장에 나오는 생명나무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이 이 바쁜 시대에도 교회 나오고, 하나님을 섬기는 어떤 보람 같은 것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명을 얻는다 할 때, 이러한 인간들의 생각에 대해서 하나님이 동의해 주시면 좋겠는데, 하나님은 동의를 해주지 않습니다. 현재에 있는 지금 이 땅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데, 이 생명이 끝나면 하늘나라 생명이 주어진다, 그러한 것은 인간들 생각이고,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참뜻은, 현재 우리의 목숨에다가 나중에 끝나면, 생명이 이어지는 그런 식으로 생명을 주께서는 허락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교회들이 생명, 영생, 천국 이런 것을 거론하는 것은, 성경의 뜻도 아니고, 하나님의 뜻도 아니고 인간들 자기의 뜻입니다. 자기의 희망이고, 기대고, 자기의 포부고... 성경에서는 생명을 이야기 할 때는 우리가 생명을 이야기할 때는 얻을 수 있다는 그런 뜻에서의 생명을 주신 것이 아니고, 생명이 직접 이 땅에 투입해서 어떤 일을 하셔요.

그 일에 대한 결과, 일에 대한 효과로서만 나타나는 그 자리에 생명이 비춰지게 되어 있습니다. 레위기 17장 11절에 보면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다”라고 되어 있으니까, 우리 인간들 생각 같으면, 그 피를 마셔라 이러면 “아, 생명은 피에 담겨 있으니까, 그 피를 마신다는 것은 거기에 담겨있는, 포함되어 있는 생명을 내가 마신다, 먹는다, 그러면 나는 생명을 먹은 것이 되고 얻은 것이 된다.“ 이렇게 쉽게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건 우리 생각이고 성령 뜻은 뭐냐 하면, 오히려 피를 먹지 말라고 해요.

왜 그러냐하면, 제물대로 동물의 피를 내어서 그 피를 뿌려야 되는데, 왜냐하면 “생명이 피 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12절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너희 중에 아무도 피를 먹지 말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너희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이라도 피를 먹지 말라.“ 생명이 피에 있다고 했으면 피를 먹으라 하는 것이 생명을 얻으라고 여겨지는데, 얻을 수 있는 전례의 찬스처럼, 기회처럼 도리어 성경은 생명을 그 피를 먹지 말라는 거예요.

이 의미가 무슨 의미겠습니까? 지금 내가 목숨을 갖고 있는데, 이 목숨에다가 피속에 담겨 있는 생명을 추가해서 먹게 되면 이 목숨이 영원히 생명으로 이어지고 넘어간다, 전달된다, 이동한다. 그런 식으로 생각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인간들의 생각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먹지 말라 했으니까 이 말은 뭐냐 하면, 현재 니가 생명이다, 니가 목숨이다, 니가 숨 쉬고 있다, 심장 뛰고 있다 하는 그것은, 바로 우리가 살아 있다는 자체가 하나님의 생명이 보기에는 그건 생명도 아니고, 그건 죄 덩어리이기에 그렇습니다.

죄에다가 생명을 얹져 버리면 죄가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계속 죄의 저주를 받게 되어 있어요. 우리는 이 사태도 감안하지 못하고, 지금 나라는 이 생명이, 이 목숨이 그저 계속 이어지기만 하면 그것이 우리가 기대하는 영생 그것이라고 자꾸 우리의 본성 쪽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목숨을 잃는다든지, 우리의 영혼을 불멸하게 만든다든지, 우리의 생명을 계속 이어가는 그런 것을 거부하시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따로 외부에 준비한 생명이 따로 있고요, 그 따로 있는 생명이 진짜 참 생명인지, 아닌지는 그 생명이 이 땅에 와서 어떤 효력을 발휘할 때 그 효력에 휩싸이게 되면, 그것이 곧 생명에 휩싸이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외부에 하나님이 친히 약속으로 준비된 그 피, 생명이란 그 피는 이 땅에서 어떤 식으로 기능하고 작용하게 되면 생명이 될까요? 그건 바로 죄를 속한다, 죄를 용서하는 기능의 현장에 우리가 거기 놓여 있으면, 우리는 생명을 얻는 겁니다.

그 말은 뭐냐 하면, 우리는 기대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면 좀 더 오래 살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우선인데, 주님께서는 애초부터 우리의 생각을 거부하고, 속죄하는 피, 제물의 피가 우리에게 주어졌을 때, 우리는 죄인으로 우리가 살고자 하는 그 자체도 죄인이고, 우리가 영생 얻고자 하는 것도 죄고, 천국 가고자 하는 것도 죄의 다른 양태고, 죄의 연장이고, 죄의 확산이고 확대입니다.

그 사실을 제물의 피 앞에서 비로소 발각당할 때, 우리는 비로소 생명의 효과 속에 놓여 있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방금 설명한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 약속에 대해서 신약에 오면 예수님께서는 피라는 것, 속죄 제물, 속죄하는 그 효과 범위 내에서만 생명이 나타난다는 그 원리 원칙을 성취하시기 위해서 신약에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육체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요한복음 17장에 예수님의 기도 가운데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 이로소이다.” 3절에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이래 되어 있어요. 여기 이 말씀은 뭐냐 하면, 영생은 어디 있느냐 하면, 참하나님과 참하나님은 인간이 모르죠. 인간은 죄졌기 때문에 하나님을 모릅니다. 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 사이에 관계가 있어요. 그 관계에 대해서 알면 그게 영생입니다.

그러면 참하나님 아버지와, 아들되신 예수님의 관계가 이 땅에 나타날 때는, 어떤 식으로 나타냈는가. 요한일서 5장 6절~7절에 보면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물과 피로 임했다. 특히 피라는데 유념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같으면 내가 생명이다. 날 믿으라 하면 “예 인정 합니다. 믿습니다.” 이렇게 하면 영생 얻는 걸로 마감되면 좋겠는데,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하시지 않고, 뭐라고 했느냐하면 예수님은 ”물과 피로 임한 자다.“ 특히 피라는 것에 유념해 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피로 임했다는 겁니다.

그러면 영생은 어디 있느냐! 예수님의 피로 임했다 하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거거든요. 이 땅에서 영생으로 나타날 때 “아나! 이것이 영생이다.” 날 믿으라가 아니라 죽음으로 나타나는 거예요. 죽음!

우리가 영생 얻고자 할 때는 우리가 뭐를 도망치려고 하느냐하면, 제발 안 죽기를 죽음에서 도망치듯이 영생 쪽으로 나아가면 영생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막상 우리에게 영생 주시고자 하는 주님은 우리를 어디에서 기다리느냐하면, 내가 이 땅에 너희들이 현재 포함되어 있는 이 세상에 나도 동일하게 왔는데, 나는 그 세상에서 죽음의 자리에 임하기 위해서 나는 이 땅에 왔다는 겁니다.

이 사실을 아는 자만이 생명을 아는 자고 그것이 곧 영생이라는 겁니다. 6절에 보면 “이는 물과 피로 임한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그냥 안다 할 때, 그것이 곧 영생이라 할 때, 예수님에 대해서 뭘 안다 하는 겁니까? 옛날에 2000년 전에 한 갈릴리에 나타났다. 그걸 안다고 하는 말입니까? 예수님의 아버지가 목수고 뭐 그런 걸 안다는 뜻입니까? 사도 바울은 그전까지는 예수를 육으로 안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영으로 안다. 영으로 안다는게 뭐냐 하면, 예수님이 실질적으로 어떤 기능을 했다는 것이고, 그 기능은 영생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고, 그 영생은 피로서 나타난다는 거예요.

피로써 나타난다는 말은 우리가 평소에 영생을 얻겠다. 천국을 얻겠다. 생명을 가지겠다. 하는 그 자체가 죄고, 그 죄를 용서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말로만이 아니라, 피로써 이 땅에 죽음으로서 왔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죽으심 앞에서 우리의 생각하는 모든 것이 죄인 것을 안다면, 우리는 비로소 그 사람은 용서하는 범주 안에 포함되어 있는, 하나님의 속죄하는 하나님의 기능 안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곧 그것이 영생입니다.

유일자(IP:116.♡.234.248)

13-06-23 21:06

39강-YouTube강의(스승)1306020-이 근호 목사

39강 “스승” 이라는 제목입니다. 이 세상에 사람들이 혼자 살면 외로워서 못삽니다. 혼자 밥을 먹어도 참 서글프고 자칮하면 우울증까지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아무리 욕을 하고, 세상을 비난해도 그저 자기가 들어붙을 수 있는 어떤 구심점, 중심점을 찾게 마련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많은 철학자들은 그걸 이렇게 이야기 했죠. 아리스토텔레스, 라는 사람은 정치적 동물이다, 다른 말로 말하면 사회적 동물이다, 라고 얘기했고 또 다른 사람은 사람이라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 누군지를 찾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찾아, 그것을 대상화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통해, 자기하고 일치감을 느껴서, 내가 저런 사람 부류에 속한다. 이렇게 확정 짖고 싶은 그런 식의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쨌든 사람들은 혼자서는 사는게 힘들죠. 힘들기 때문에 자기가 존경할만한 사람을 찾는데 그걸 멘토라고도 하고, 스승이라 하는 겁니다. 사람은 이 땅에 살면서 뭔가 불안하고 쫓기게 마련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희망을 얻기 위해서 자기보다 더 잘난 사람, 더 훌륭한 사람, 자기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스승이란 이름으로 매달리게 되어 있습니다.

특히 천국 간다는 것, 죽어서 좋은 나라 가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목사라는 이름의, 또는 성직이라는 이름의 영적인 지도자를 찾게 마련인데, 이러한 경향은 오늘날 뿐 만 아니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에도, 그 유대 나라에도 바로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같이 영적 지도자들이 많은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남들에게 모범을 보인다는 경건한 존재로서 살아야 그것이 자기의 존재 의미라고 생각해서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기도해도 남들 보란 듯이 기도했고, 금식하고, 구제해도 남들한테 시범 보이듯이 했습니다. 일종의 자신이 견본인냥, 쉽게 말해서 하나님 믿을려면 나처럼 믿으라. 그런 표준적인 모델로서 행세를 한 겁니다.

그들의 하는 모습들을 분명히 예수님도 보았습니다. 보고 좋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한마디로 위선자라, 거짖된자라, 속과 겉을 달리하는 사람들이다. 더 심하게 말해서 독사의 새끼들이다, 너희 아비는 마귀다 아주 과격한 말씀도 서슴치 않고 했습니다.

그리고 세례요한도 똑같습니다. 자기 자신이 선지자인가를 평가 받기 위해서 온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독사의 자식들아 임박한 진노에 대해서 너희들이 아느냐.“ 그렇게 언급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세례요한과, 예수님도 그 당시 시대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고 예수님의 영을 받은 사람들, 열두 사도들도 거의 모두다 순교자들이었고, 오늘날 성령이 임한 모든 사람들도 이 시대의 영적 스승이라고 하는 사람들한테, 밉상 받는 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누가 잘난 척 하는 사람보고 시기 질투해 가지고,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사람보고 자기는 인기 없으니까, 질투심 발휘해 가지고 흥~ 이단들! 이렇게 함부로 내막도 모르고 평하는 것, 일종의 그것도 다른 사람에 대한 우리의 편견이고 오류죠. 뭔가 근거가 있어야 되죠. 저 스승은 문제가 있다, 저 스승은 잘못됐다 할 때도 그냥 막무가내로 할게 아니고, 내가 아니기 때문에 남들은 전부다 나보다 악한 사람이라고, 폄허하고 낮춰 볼 수는 없는거 아닙니까?

그렇다면 사람들이 원하는 스승과, 진짜 하나님이 이 땅에 보내신 스승과의 차이점이 뭐냐, 그걸 말씀드리고자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보낸 스승의 특징은 뭐냐 하면, 이 세상의 사태에 대해서 심각함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신명기 13장에 보면, 모세가 자기 백성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시대의 모세는, 그야말로 하나님이 지정해준 스승의 표본입니다. 신명기 13장 12절에 보면, 모세가 백성들에게 이와 같이 이야기 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거하게 하시는 한 성읍에 대하여 네게 소문이 들리기를 너희 중 어떤 잡류가 일어나서 그 성읍 거민을 유혹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가서 섬기자 한다 하거든 너는 자세히 묻고 살펴보아서 이런 가증한 일이 참사실로 너희 중에 있으면 너는 마땅히 그 성읍 거민을 칼날로 죽이고 그 성읍과 그 중에 거하는 모든 것과 그 생축을 칼날로 진멸하고 또 그 속에서 빼앗아 얻은 물건을 다 거리에 모아 놓고 그 성읍과 그 탈취물 전부를 불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찌니 그 성읍은 영영히 무더기가 되어 다시는 건축됨이 없을 것이니라.” 라고 이야기 합니다.

여러분 너무 과격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 생각은 남들이 어떻게 살아가느냐 그게 관심이 있는게 아니고, 내가 어떻게 죽어서 천국 가느냐, 이것만 챙기면 우리는 내얻을건 얻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따라서 우리가 원하는 스승을 과격하게 죽이라, 이런식으로 너무 터무니없는, 우리가 납득이 안되는, 이 세상에서 너무 부정적인 사람을 원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이런 이런식으로 행동하게 되면 구원받습니다. 라는 방법을 알려주는 사람을 스승으로 원하고 싶은 겁니다.

예를 들어서 현금 출납하는 기계 앞에서 현금을 빼낼때, 기계 앞에서 절하고 그러지 안잖아요. 기계가 알려주는 대로 그 사용법을 따라가게 되면 기계에서 저절로 돈이 나오잖아요. 우리는 그런 스승을 원합니다. 우리한테 이렇게 이렇게 요령과 뭔가 지시를 하게 되면 자동적으로 영생이 나오고 자동적으로 구원을 얻는 그런 스승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명기 13장에 나오는 모세의 말은 너무 과격합니다. 동의 할 수가 없어요. 이 말을 듣게 되면 마치 우리한테 뭘 요구하느냐하면, 모세가 하나님 섬기지 않고 다른 신을 섬기는 것에 대해서 아주 과격한 생각을 갖고 있을 때, 나와 그런 과격한 생각을 똑같은 과격한 생각을 갖을때만 너는 내 한편이고, 같은 영생 얻는 사람이라고 간주하겠다. 라는 멘트를 모세가 백성들에게 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 생각은 나만 구원 받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데, 막상 모세가 우리에게 신명기를 통해서 이야기 하는 것은, 내가 세상을 보는 관점과 그런 동일한 아주 과격한 관점을 갖을때만, 너는 나를 스승이라고 인정하는 걸로 내가 간주하겠다. 이래 나오는 거예요. 상당히 사태가 심각합니다. 그냥 기능적으로 챙길건 챙긴다는 식으로 쉽게 쉽게 영생을 얻을 그런 분위기가 아니예요.

따라서 이런 멘트를 날렸다고 합시다. 그 사람이 모세인줄 모르고, 하나님이 보낸 사람인줄 모르고 그냥 말만 들었다고 합시다. 여기에 대해서 누가 두둔하고 누가 변호에 나셨냐하면 바로 우리 자신이 그런 소리를 들을 때 상당히 기분이 상합니다. 세상을 너무 부정적으로 보니까 우리한테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모세라는 것도 모르고 이렇게 대듭니다. “소위 스승이라는 자야, 하나님 말씀을 빙자해서 너무 과격하게 나오지 마세요. 사람들이 다른 신을 믿는다고 해서 칼날로 죽인다고 하고, 성읍을 불사른다고 나오는데 사람이라 하는 것은, 당신이나 나나 전부다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살다보면, 다른 신을 섬기고 살다보면 완전하지도 않고, 자식 놓고 밥 먹고 살라고 애쓰다 보면, 하나님 생각 안 할 때도 있고, 예수 안 믿을 때도 있고, 그리고 살다보면, 나쁜 짖 지을 수도 있고 사람인고로 그렇게 한다면, 정말 정말로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우선이지 그걸 칼로 진멸하고, 진노하고 어떻게 그것이 우선일 수 있습니까.

그러니까 당신이 이야기 하는 것은, 내가 아는 사랑의 하나님하고는 너무나 거리가 먼~ 내가 믿고 싶은 하나님 하고는 전혀 딴판의 하나님이라고 하기 때문에, 나는 도저히 당신을 영적 스승이라고 간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당신의 말을 듣지 않겠습니다.“ 라고 백이면 백 다 그래 나옵니다. 그러니까 모세는 그 당시 사람들에게 핍박 받습니다.

그런데 모세보다 더 과격한 분이 누구냐. 예수님이었고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었고, 그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은 취지와 그 의미를 오늘날 성령께서 앞장 세워서 우리에게 제시합니다. 니가 스승을 원해? 누구 좋으라고 스승을 원해? 영적 스승? 누구 좋으라고?

결국은 이 세상의 사태를 있는 그대로 이야기 하지 아니하면 소위 교회 스승이라고 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입니다. 사람들의 구미에 맞는 사람들, 두둔하는 목적으로 자기의 패거리 만드는 식의 스승, 이제는 십자가 앞에서 그것이 바로 영적 사기꾼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놓쳐서는 안 되는 겁니다.

이근호(IP:119.♡.69.144)

13-06-24 08:17

카리스라는 분에 대한 답변 , 제 설교 요약에 이런 문장으로 거기에 대해 보충해있습니다. "41절에 보면 그 증거가 나옵니다. “네가 다시는 값을 주지 아니하리라” 즉 화대를 받기 위한 몸을 내놓기 전에 먼저 고객이 되는 남정네들에게 선물을 주는 식으로 유인하는데 이제 그 짓이 멈추게 된다는 겁니다. 그만큼 유대 백성들은 의식이나 사고 방식은 이방민족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는 말입니다."

카리스(IP:39.♡.169.74)

13-06-25 06:39

제 질문의 초점은 <네가>는 남정네가 아니라, 다른 여인과 달리 값(화대)을 받지 아니하고 도리어 주는 유다와 이스라엘(겔16:34)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근호(IP:36.♡.232.232)

13-06-25 17:51

'값을 주지 아니한다'는 전에는 값을 주었다는 전제로 해야겠지요. 따라서 '선물 값'을 준 적이 있다는 것이 합리적인 것 같습니다. 그 이후에는 더이상 몸파는 짓은 못하게 되었다를 그런식으로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카리스(IP:39.♡.170.66)

13-06-26 06:22

결론적으로 <네가>는 남정네가 아니죠???

이근호(IP:36.♡.188.128)

13-06-26 07:55

결론적으로 말해서 전부터 이스라엘이 주변나라로부터 화대를 기대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실제로서는 강대국들이 화대를 이스라엘에게 준 것이 아니라 도리어 강탈해 간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사실인식을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통해서 '음부'라고 일관되게 표현한 겁니다. 그것은 유다나 이스라엘이 자신들이 결코 음부가 아님을 분명히 하는 가운데 선지자가 이 '음부'라는 표현을 써고 거기에 따라 음부다운 행위들을 나열하는 겁니다. 귀하식대로 '이스라엘이 화대를 주었다'고 말한다면 전부터 주변 나라로부터 화대를 기대한 이스라엘의 본질이 드러나지 않게 되고 더구나, 본인들이 결코 창녀짓을 하지 않았다고 하는 잘못된 자부심이 표면회되지를 않게 되어 있습니다.

카리스(IP:39.♡.170.66)

13-06-27 06:41

제 견해로는 해당구절에서 <네가>는 유다와 이스라엘이 분명한것 같고요,
다른 여인들과 달리 값을 주면서까지 창녀짓을 하는 이스라엘의 본질을 드러내려고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통해서 '음부'라고 일관되게 표현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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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