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대구강의 10] - [피 96] - 피냐? 거울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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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구득영(IP:203.223.97.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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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6,03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오늘은 교재 286페이지부터 살펴보자.
** 하나님이 예정하신 그 중심점을 보여주지 않는 것은 일체 가치로 인정하지 않으신다. 그런데 인간의 성향이란 예수님에게로 쏠리는 것이 아니라, 항상 '자신의 것'으로 귀환해버린다.
◈ '예정'이 서로 달라요 !!
여기에 '예정' 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어려운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가 생각하는 예정과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예정이 서로 맞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즉 예정이 이렇게 있다고 하면, 인간 쪽에서는 나오는 예정이 있고, 또한 예수님에게서 나오는 예정이 따로 있다는 말이다.
인간들이 말하는 예정은 무엇인고 하니, "그냥 지내다가보면 일이 되겠지" 라고 하는 것인데, 그런데 왜 이게 잘못인고 하니, 인간들이 자기 나름대로의 약속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개나 소와 같은 짐승들은 언어를 만들어내지 않는데, 즉 신을 만들어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신을 자꾸만 만들기에 문제가 된다는 말이다.
바로 그런 인간이 만든 신으로 인해서 진짜 하나님이 피해를 본 것이 곧 십자가 사건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예정을 만들어낸다는 말은 무엇인고 하니, 인간이 언어를 가지고 나름대로의 약속을 만들어낸다고 보면 된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교재를 보자.
* 죄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언도 하시지 않고', '말씀도 하시지 않은 것'을 축으로 삼고 버티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무슨 의미인고 하니, 우리 인간들은, 인간 쪽에서 약속하고 예언한 것을 따로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죄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제가 질문을 하나 하겠는데, 이렇게 인간 쪽에서 약속과 예언과 예정을 만들어내는 것과, 하나님께서 계시를 만들어내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인간 쪽에서는 우리 인간이 예상한 것을 가지고 만들어낸다면, 하나님 쪽에서는 인간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을 가지고 만들어내신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로 하는 것보다 성경을 보는 것이 더 좋지 싶은데, 신명기 6장 16절을 보면, "너희가 맛사에서 시험한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고" 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여기 '맛사' 사건은 출애굽기 17장에 보면 나온다는 것이다.
(신 6:16) 너희가 맛사에서 시험한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고
(출 17: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출 17:2)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가로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출 17:3) 거기서 백성이 물에 갈하매 그들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생축으로 목말라 죽게 하느냐
(출 17:4)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얼마 아니면 내게 돌질 하겠나이다
(출 17: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하수를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출 17:6) 내가 거기서 호렙 산 반석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출 17:7) 그가 그곳 이름을 맛사라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 하였음이더라
◈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신다 ??
모세가 지팡이를 가지고 반석을 치니 물이 나온 사건인데, 그래서 그곳 이름을, 맛사, 혹은 므리바라 불렀다는 것이다. 그러면 애초부터 물이 있었다고 하면 인간들이 하나님을 향해서 이러한 실험들을 했겠는가? 물이 없기 때문에 이런 사건이 발생했는데, 즉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신다" 라고 하는데, 그런데 막상 실제로는 마실 물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사이를 어떻게 연결해야할지, 그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그림으로 그려보면, 인간이 이렇게 있는데 그 조건이 무엇인고 하니까, 먼저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 라는 것이고, 그리고 그 다음에는 "물이 없었다" 라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여러 가지로 예를 들어볼 수 있는데, 즉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데, 시아버지는 92살로 그만 치매에 걸렸다" 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면 이 둘 사이를 무엇으로 매울 수 있는가?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것과, 현재 물이 없어서 목이 말라서 죽게 된 것을 연결시킬 수 있는 인간의 아이디어가 있겠는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 있다" 라는 것은, 항상 우리에게 물을 제공하는 하나님이 함께 있다는 것이지, 물을 주지 않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은 인간들이 사전에 미리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라는 말이다.
◈ 30년 동안 치매에 걸린 시어른을 모셨으면 !!
30년 동안 치매에 걸린 시어른을 정성껏 모셨는데, 그런데 그 시아버지가 회복되지 못하고 망가져서 그대로 죽었다고 하면, 그럴 때 자기와 함께 있다고 하는 그 하나님 속에는, 그런 하나님은 들어있지 않다는 것이다. 공양하는 며느리의 입장에서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 며느리의 입장에서의 하나님은 무엇인고 하니, 아무리 치매에 걸려도 하나님의 능력과 자비로, 며느리의 그 시어른을 향한 효심에 탄복해서 병에서 낫게 해주는, 그런 하나님이 바로 자기와 함께 있는 하나님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하나님은 엉터리 하나님이라는 말이다.
이것을 쉽게 이야기를 해보면,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생각할 때는 그냥 하나님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우리 인간이 원하는 소망을 충족시켜주는 하나님으로 함께 있다는 것으로 여기고, 거기에서 계시와 약속을 끄집어내는데, 그렇게 인간들의 계시와 약속이 미리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해주시면, 하나님을 섬기겠습니다" 라는 것은, 껍데기만 하나님이고 그 알맹이는 자기 자신의 여망과 소망과 희망으로 가득 채우고 있다는 것이다.
◈ 교회당을 짓자, 교회당을 짓자 !!
요즘 소위 명품 아파트들이 마구 올라가고 있는데, 그러면 목회자들의 생각은 무엇인고 하니, "아파트 어디에 교회당을 지으면 부흥이 되겠는가?" 라고 한다는 것이다. 교인들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데, 물론 장로가 되면 좀 다르겠지만 말이다. 20년이 되어도 교인 하나 늘지 않으면, "저 바보 같은 목사 때문에 교회도 부흥되지 않는데, 내가 빚이라도 내서 새로 젊은 목사를 하나 데리고 저기에 교회를 지어볼까?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어디 멀리 가겠는가? 그냥 가까운 곳으로 나오겠지" 라고 말이다.
물론 그런 경우에 임대한 상가건물은 안 되고, 고딕식으로 된 단독건물이어야 하는데, 바로 그렇게 가까이 건물을 지어놓으면, 먼저 나이가 많은 노인네가 멀리 가지 못하고 새벽기도에 나오기 시작하면 가족들도 다 따라서 나오고, 그리고 아이들을 꼬드겨서 주일학교에 데려놓으면 부모도 결국 따라서 나온다고, 그런 식으로 통밥을 굴리게 된다는 것이다. 바로 그렇게 해주시는 하나님, 그런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빚을 내서 교회당을 지었는데, 사람들이 전부 자기가 다니던 교회로 다 나가고 아무도 오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하겠는가? 자기들이 생각한 하나님의 약속과 계시가 틀리다고 하면서 불평을 늘어놓는데, 바로 그것을 두고 '시험했다', 혹은 '다투었다' 라고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 하나님은 우리와 다투어가면서 계시를 !!
조금 전에 한 질문을 다시 하겠는데, 하나님은 계시를 어떻게 만드는고 하니, 우리 생각에는 하나님이 계시를 주면 그것이 계시라고 여기는데, 하지만 하나님은 철딱서니가 없는 우리들을 데리고 다투어가면서, 시험을 옴팍 다 당하시면서 그 자체를 무엇으로 만드시는고 하니, 하나님의 계시로 만들어버린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그러니 우리는 마음껏 죄를 지어야 하는데, 그래야 그 죄가 계시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다 받아내면서, 그것이 얼마나 엉터리이면 철이 없는가를, 그리고 그것이 결국 메시야마저도 살해할 수밖에 없는 동기를 제공할 수밖에 없는데, 그런 우리 마음속에 있는 더러운 죄라는 것을 까발리는데, 그런 까발려진 것을 모두 담아서 하나님의 '예정된 계시'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냥 계시도 아니고 말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예정에 의하면 우리는 죄인이 되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당연히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예정에 의하면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곧 계시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예정에 의하면 마귀가 설쳐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설쳐야 한다는 것이다.
◈ 하나님의 예정과 주권 !!
이런 하나님의 예정의 반대말이 무엇인고 하니, 그게 곧 하나님의 주권인데 말이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이네요" 라고 하는 자들이 있는데, 열 명이 가운데 거의 아홉 명이 그런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어디에서 들은 풍월은 있어서, 칼빈의 예정론이 어떻고 하면서 말이다. 사실 칼빈주의에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하나님의 주권은 이슬람교인데,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주권에 속해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은 위대하다" 라고 외치면서 영국 군인을 길가에서 목을 베어서 죽였다는 것이다. 흑인 군인인데, 신의 이름으로 테러를 자행했다는 것이다.
◈ 주권에는 죄가 드러나지 않아 !!
그러니 이런 신의 주권이 하나님의 예정과는 뭔가 틀리다는 것이 감이 오지 싶은데, 구체적으로 표현하기를 곤란해도 말이다. 신의 주권인 경우에는 인간의 죄가 드러나지 않는데, 반면에 하나님의 예정에서는 인간은 전부가 다 죄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차이가 나는데, 시어머니를 아무리 잘 모셔도 그게 다 죄라는 말이다. 시아버지가 죽지 않는 것도, 그것도 본인의 죄이고 말이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난 다음에 모든 것은 다 죄가 되는데, 죄가 된다는 것은 흔히 들었던 말이니, 조금 낯설게 달리 표현하면 어떻게 되는고 하니,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은 죽음 직전에 일어날 일들을 하고 있다" 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언제 죽을지 모르니 말이다. 그래서 죽기 직전에 시어른을 공양하고, 죽기 직전에 "사랑은 위대하다" 라고 하면서 외치고 죽고 말이다.
그러니 인간은 그 어떤 말을 내뱉어도, 그 어떤 약속과 예언을 내뱉어도 결국은 자기 죄 값으로 죽어야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라고 한다고 해서 죽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역시 사랑 뿐이야" 라고 해도 죽고 말이다. 공양을 해도 죽고 안 해도 죽고, 아무튼 그렇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그러니까 죄가 없다" 라고 하면 하나님의 주권이 되지만, "그러므로 모든 것이 죄다" 라고 하면 하나님의 예정이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죄로 드러나야, 인간은 자기가 죄인인 것을 증거할 필요가 없고, 자기 자신이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 복음에 섞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복음이 오직 예수님께서 하신 것으로만 맺어지려고 하면, 우리는 주권을 이야기하면 안 되고 죄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권을 이야기하게 되면, 그 주권이 이야기한 것이 의로운 것이 되고 마는데, 즉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알고 있습니다. 착하지요?" 라고 말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예정이 포함이 될 수도 없는 것들인데 포함이 되려고 애를 쓰는 것밖에 되지 않는데, 즉 "나도 하나님의 예정을 안단 말이야" 라고 하는 것은, 그런 멘트는 하나님의 계시에 포함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게 죄라고 고백이 되지 않기에 말이다. "나는 하나님의 예정을 압니다" 라는 것이 계시가 되려고 하면 그 조건은 하나밖에 없는데, 그것마저도 죄가 될 때 하나님의 계시에 포함이 된다는 것이다.
◈ 우리가 다툰 것도 하나님의 계시가 아닌가 ??
이야기를 하다가보니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시험했는데, 그런데 방금 제가 이야기하기를 "그런 시험한 것들을 모두 모아서 하나님의 계시로 만들었다" 라고 하니, 듣는 사람들이 오해하해서 뭐라고 하는고 하니까, "그러니 그들이 시험한 것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 해야할 것을 한 것이니, 그게 무슨 문제인가?"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믿음이 있던 없던 간에 하나님을 시험하고 다투었다는 것이 하나님에 의해서 좋은 결과를 낳았다고 하면, 비록 우리가 다투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좋게 보면 되지 않는가?" 라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되어버리면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먹은 것도 잘한 짓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아래에서 말이다.
그런데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의 예정된 계시는 우리가 어떤 짓을 하더라도 그것이 죄로 드러남으로서, 우리는 복음의 내용에서 빠져야 한다" 라는 것이다. 우리가 믿었다는 것, 우리가 잘났다는 것은 빠져야 한다는 말이다.
◈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예정된 핵심 !!
여기서 "목사님, 방금 들어간다고 해놓고 왜 빠져야 한다고 합니까?" 라고 한다면, 우리는 죄로 들어가고, 그 다음으로 복음의 핵심은 무엇인고 하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예정된 핵심이고 우리는 전혀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골로새서 1장에 보면 뭐라고 하는가?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라고 한다는 것이다. 즉 모든 것이 주님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말이다.
(골 1:16)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골 1: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내가 행동하는 것도 하나님의 계시다. 그러니 나를 알아다오" 라고 한다면, 그것은 서로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행동하는 것도 하나님의 계시다" 라는 것을 풀이하자면, 예수님의 하심만이 계시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해서 이런 행동을 했다는 조건하에서만 계시에 편입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계시다" 라고 우리가 우긴다고 계시가 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예수님께서 하신 것에 의해서만 편입이 된다는 말이다. 그렇게 우리가 주님께서 하신 일에 의해서 편입될 때는, 그것마저도 죄라는 것이 들추어지면서 그렇게 편입이 된다는 것이다.
◈ 인간은 계시를 몰라요 !!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고 하니,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인간은 계시를 모른다" 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기가 하는 모든 행위를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최종적으로 정렬하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계시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상태인데, 그런데 그런 모르는 인간을 통해서 하나님은 계시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누에고치가 비단으로 만든 한복을 알겠는가? 모르는데, 그냥 자기는 내뱉었는데, 그것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결국은 고운 한복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도 역시 마찬가지인데, 우리는 멋도 모르고 불평을 하고 불만을 터트렸을 뿐이란 말이다.
그런데 그것이 마치 비단을 짜는 실처럼, 그렇게 계시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만드는 것은 전적으로 주님의 솜씨이기 때문이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이 하셨습니다" 라고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고, 그것이 바로 계시의 핵심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인정하기 위해서 주권을 이야기하게 되는데, 그렇게 주권을 이야기하면 자기는 가치가 있는 존재로서 유지되기 때문에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 중심의 예정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주권을 이야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 참 어려운 '예수 안에서' !!
다시 정리를 해보면, 하나님의 계시라는 것은 인간에게서 나오는 개 아니라 예수님이 마중을 나가시는데, 그러니 인간의 모든 것은 예수님을 경유해야 하나님의 예정된 계시가 된다는 것이다. 바로 그것을 에베소서 1장 4절에서는 '예수 안에서' 라고 하는데, 그러니 이 말이 참으로 어렵다는 말이다.
(엡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엡 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에베소서 6장에 보면, "자식들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부모는 자식을 노엽게 하지 말라" 라고 하는데, 거기에는 조건이 있다는 것이다. '예수 안'에서 그렇게 하라는 것인데, 왜냐하면 계시가 되어야하니 말이다. "니가 얼마나 믿음이 좋은가?" 라는 것을 칭찬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계시로 다듬어지고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하나도 버릴 게 없다는 말이다.
(엡 6:1)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
(엡 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 계시의 완전무결함 !!
방금 이야기한 것을 달리 표현하면 '완전무결' 이라고 할 수 있는데, 즉 "계시는 완전무결해야 한다" 라는 것이다. 이렇게 완전무결하다는 것은, 시간이 지나도 변경될 문제가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완전무결함이 점점 더 드러나게 되는데, 사실은 처음 시작도 완전무결하고 끝도 완전무결하다는 말이다. 즉 알파와 오메가라는 것인데, 그렇게 계시는 완전무결하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 인간은 완전무결함과는 전혀 거리가 먼데, 우리 인간은 하는 짓마다 모두 죄라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주님의 완전무결함을 믿어야 하는 것이지, 변하는 자기 자신의 결정이나 느낌과 감정 등에 목을 매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간증집회가 참으로 위험한데, 왜냐하면 달라질 것을 가지고 자꾸만 증거하기에 말이다. 완전무결한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밖에 없는데, 이렇게 해도 완전무결하고 저렇게 해도 완전무결하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든지 간에 말이다.
한가지 예를 들면, 도마가 처음에는 예수님을 몰라봤다가 창자국과 못자국을 보고 믿었는데, 그러면 우리가 도마라고 하면, 과연 우리가 후회를 했겠느냐는 것이다. "조금만 더 빨리 눈치를 챌 걸. 이런 바보야, 그것도 모르고 뭐했노?"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뭔가 자기 과거에 대해서 후회를 한다면, 도마는 완전무결함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자기 자신에 대해서 미련을 가지고 있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 어머니가 냄비에 무엇을 올려놓으면 그만 잊어버려서 종종 태우곤 하는데, 그러면 제가 뭐라고 하는고 하니, "어머니, 그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가스에 음식을 올려놓고 다른 곳에 가시면 안 됩니다" 라고 하는데, 그러면 어머니는 "야야, 내가 그만 잊어버렸다" 라고 하시는데, 그런데 가만히 보면 냄비와 음식을 태운 것조차도 잊어버리신다는 것이다. "내가 언제?" 라고 하는 식인데, 그야말로 완전무결한데 말이다(ㅋㅋ).
◈ 자기 인생에 대해서 후회를 한다는 것은?
인생은 사라지는 것인데, 그렇게 우리가 그 사라지는 것에 대해서 후회를 한다는 것은, 마치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긴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은 옳지 않다는 말이다. 그러니 인간이 자기 선행을 자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자기 과거의 악행에 대해서, 그런 죄에 대해서 너무나 심도 있게 몰두한다는 의미인데, 하지만 자기 자신이 완전무결한 것처럼 행동한다는 것은, 그러한 것 자체가 하나님 앞에서 그야말로 못되처먹은 것이란 말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의 완전무결함이 아니라, 주님 자신의 완전무결함을 보여주기 위해서 어떻게 하시는가? 우리와 끊임없이 다투고 시험하고 하시는데, 바로 그러한 여정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서 만들어 가신다는 것이다.
신명기 5장에 보면 참 어려운 대목이 나오는데, 1절에서 3절을 제가 읽겠습니다.
(신 5:1) 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아 오늘 내가 너희 귀에 말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그것을 배우며 지켜 행하라
(신 5:2)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호렙 산에서 우리와 언약을 세우셨나니
(신 5:3) 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열조와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날 여기 살아 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
◈ 주님께서는 계시를 만들어내는 작업에 쉬지 않는다 !!
여기 2절에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호렙 산에서 우리와 언약을 세우셨나니" 라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데, 그런데 3절에서 "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열조와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날 여기 살아 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 라고 하시는데, 이게 어렵다는 것이다.
이게 왜 어려운고 하니, 하나님께서 언약을 세우실 때 "내가 옛날에 약속을 했잖아. 그러니 똑바로 지켜라" 라고 하면 쉽겠는데,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 "지금 너에게, 그것도 이렇게 살아있는 너를 보고 세운 언약이다" 라고 하시는데, 그런데 그게 조상과 세운 언약과 그 내용이 똑같다는 것이다.
그것을 십자가 사건에 적용시켜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그 주위에 신자는 별로 없었는데, 모두들 도망가고 불신자들에게 둘러 쌓여있었다는 것이다. 강도나 사도요한이 멀리서 보았을 뿐이고, 베드로도 줄행랑을 놓고 없었다는 것이다. 그 현장에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해서 몇 명이나 있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 언약은,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아 !!
그런데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에서 십자가가 눈앞에 보인다고 하는데, 그러니 언약은 무엇인가? 우리는 시간에 구애를 받지만, 언약은 구애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른에 내가 십자가를 믿었으니, 지금 그 십자가를 믿겠다" 라고 하면 말이 안 되는데, 서른 살 때의 언약은 이미 지난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지금, 즉 "바로 이 순간에 너와 언약을 세우겠다" 라고 하시는 것은, 그것은 우리를 보고 지키라고 하는 게 아니라, "주님께서는 계시를 만들어내는 작업에 쉬지 않는다" 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갈 3: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 이렇게 어설프니 완전무결하다 !!
이것은 제가 처음부터 제가 강의시간에 강조한 것인데, 계시를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는 우리가 어떤 짓을 하든지, 그것을 또 모아서 하나님의 계시의 완전무결함을 보여주고자 하는 취지에 부합이 되도록, 그렇게 모으고 또 모으고 하신다는 것이다. 즉 "이렇게 어설프니 완전무결하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다.
말을 하고 보니 참 이상한데, 하지만 그렇게 어설프다는 것이다. 즉 우리는 눈만 뜨면 하나님과 다투고 시험한다는 것이다. 그 시험하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있는가? 없는가?" 라고, 그렇게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한 짓을 똑같이 지금도 우리가 하면서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고급 아파트 단지인 이시아 폴리스에 교회를 세워서 교인들이 많이 모이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이고, 반면에 은행에 대출도 제대로 못 받아서 교인들의 집을 저당 잡혀서 끙끙거리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런 식으로 늘 측정하고 시험하고 하는데, 물론 우리교회는 참 다행인데, 그런 시험조차도 하지 않으니 말이다.
◈ 나는 안 믿는다 !!
지금 이시아 폴리스 근처에 있는 교회들의 경우에는, 말씀을 증거하는 것보다도 어떻게 하면 여기에 이사를 온 사람들을 붙잡을 것인지, 거기에 관심을 집중하게 되는데, 아마 교인들이 애를 많이 먹지 싶다는 것이다. 이삿짐 차만 보이면 달라붙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신도시가 세워지면 치킨 집들이 경쟁을 하듯이, 세탁소가 경쟁을 하듯이 말이다. 그렇게 길목 좋은데 예배당을 지어서 어떻게 좀 뽑아보려고 하는, 그리고 얼마를 더 보태면 더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다고 하면서 말이다.
바로 그 밑바닥에는 무엇이 있는고 하니,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있는지 없는지, 그것을 우리 쪽에서 측정해보겠습니다" 라는 사고방식이 깔려있다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가 그렇게 측정하지 않아도 완전무결한데 말이다. 그것은 바로 주님의 완전무결함을 자기는 결코 믿지를 못하겠다는 것인데, 조금만 줄이면 "나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겠다" 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 줄이면 "나는 안 믿는다" 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결국 하나님을 안 믿고 살아가는 것인데, 그렇게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살아가는 우리를, 주님께서는 늘 상 우리가 믿게 하도록 무엇이 동원되는고 하니까, 과거에 우리가 성경을 백 독이나 하면서 하나님을 믿는 것 말고, "바로 지금 너와 언약을 세우겠다"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바로 지금 이 순간에 날마다 십자가인데, 지금 십자가가 눈앞에 보인다는 것이다. 한 달 전에 보이는 게 아니고 말이다. 오늘도 역시 십자가가 눈앞에 보이고, 내일이 되면 내일 또 보이고, 모레도 또 보이고 말이다. 숨에 넘어가는 순간에도 또 보인다는 것이다. 이게 완전무결함인데, 완벽하게 모든 것이 종결이 되고 끝나버렸다는 것이다. 우리가 염려하거나 걱정할 사항은 전혀 없는데,
신명기 7장 2절을 보면 역시 난해한 말씀이 나오는데, 1절과 2절을 보겠습니다.
(신 7: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사 네가 가서 얻을 땅으로 들이시고 네 앞에서 여러 민족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곧 너보다 많고 힘이 있는 일곱 족속을 쫓아내실 때에
(신 7: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붙여 너로 치게 하시리니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그들과 무슨 언약도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 언약을 모르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지 말라 !!
여기 2절 마지막에 보면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라고 물으니까, 그들을 다른 언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다른 신을 믿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이미 그들을 신이 다른데, 이스라엘은 언약을 앞장 세워서 나오는 반면에, 그들은 언약도 없이 자기들끼리, 그렇게 인간들끼리 만든 언약으로, 자기들의 희망과 기대로 뭉쳐서 그 가운데 신을 섬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나님의 살아있는 언약에 의해서 나온 현상은 무엇인고 하니, 그 뒤에 무엇이라고 하는가? 그 언약이 주어진 경우에 "너는 이 가운데서 진짜 언약을 아는가?" 라고 해서, 만약에 언약을 안다고 하면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언약을 모르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지 말라" 라고 하는 것이다.
제가 이 대목을 왜 어렵다고 했는고 하니, 사람이 남을 불쌍히 여기지 않는 게 사실 어렵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기가 자랑할 것이 무엇인고 하니, 자기에게도 양심이 있다는 것인데, 그래서 조폭들도 의리를 주장한다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무엇인고 하니, 끝까지 "나도 일말의 희망은 있다. 착할 수 있다" 라는 것이다.
◈ 북한은, 유교적 사회주의 !!
제가 언젠가 북한의 헌법을 본 적이 있었는데, 앞에 김일성이 어쩌고 하는 것이 다 빼고, 북한에서는 도둑놈들이나 사기꾼들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그것을 유심히 살펴보았다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에는 그들을 다 사형을 시킬 것 같은데, 그것이 아니라 거기에는 경종의 차이가 있다는 말이다. 도둑질을 한 것, 사기를 친 것, 그리고 노인을 공경하지 않은 것 등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북한을 두고서 '유교적 사회주의' 라고 하는데 말이다. '유교적 사회주의' 라고, 그렇게 유교라고 하면 우리의 정서에도 부합이 된다는 것이다. 즉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를 공경하는, 그런 것들이 바로 유교에서 나온 것이라는 말이다.
이 유교의 모든 정신은 "인간에게는 '성(性)'이 있다" 라는 것인데, 즉 인간은 신의 아름다운 품성을 닮으려고 하는 본성이 있다는 말이다. 이건 인간의 존재를 긍정하는 것인데, 즉 "인간은 착하다" 라는 것이다. 그것을 이치(理致)에 따라서 보여준다고 해서 '성리학(性理學)'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우리 인간이 각자 가지고 있는 착함을 다 끄집어내자는 것인데, 그러한 착함을 끄집어내어서 제대로 정리하게 되면, 그게 곧 이상적인 유교국가가 된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조선의 건국이념인데, 물론 그들은 불교는 배척을 했지만, 그래도 불교에서 괜찮은 것은 그대로 수용했다는 말이다.
그들의 근본정신은 무엇인고 하니, 인간은 그 어떤 경우라도 '측은지심' 등을 주장하면서, 즉 상대방을 불쌍히 여길 줄 알고, 또한 예의를 갖출 줄 알고 하는, 그렇게 우리 인간에게는 동물에게는 찾을 수가 없는 착함과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자기와 상관이 없는 것은 "죽여라, 죽여라!" 라고 하지만, 하지만 막상 자기와 관련이 있는 일과, 그리고 자기의 선택여부에 따라서 어떤 인간이 죽고 사는 게 결정된다고 하면, 그런 순간에는 이상하게도 자비를 베풀려고 하는 본성이 작동하게 되어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신명기 7장 2절은 무엇이라고 하는가? 언약을 모르는 자들은 불쌍히 여기지 말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그게 우리 인간에게 가능한가? 우리는 상식적으로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라는 것만 불가능하다고 여겼는데, 그런데 방금 공부를 해보니 신명기 7장 2절에 나오는 "불쌍히 여기지 말라" 라는 것도 역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전혀 지킬 수가 없는데, 우리 인간의 본성은, 마지막 순간에는 기어이 불쌍히 여기려고 애를 쓴다는 것이다.
◈ 니 자식도 죽여라 !!
그리고 출애굽기 21장 15절에 보면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라고 하는데, 자식을 둔 부모라면 읽어볼 만하다는 것이다. 이게 법인데, 그러면 누가 죽이는가? 얻어맞은 부모가 죽이는가? 그게 아니고 주위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 부모의 심정은 어떠하겠는가? 차라리 자기가 대신 나서서 죽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출 21:15)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아무리 자식이 패륜아라고 해도, 즉 부모도 모르고 술을 처먹고 마구 패고 해도 남이 자기 자식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험담이라고 하면 어떻게 하는가? 부모는 참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부모가 무슨 출애굽기 21장 15절의 말씀을 지킬 수 있다는 말인가? 도대체 인간이라는 육이, 즉 인간이라는 존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능력이 있다는 말인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언약을 모르는 자는 불쌍히 여기지 말라" 라고 하시는 것은, 결국 무엇인고 하니, "너는 너 자신을 불쌍히 여기지 말라" 라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즉 "너는 너 자신이 최고 중요할지 몰라도, 하나님은 언약이 최고 중요하다. 언약을 위해 니가 만들어진 것이지, 너를 살리려고 하나님의 약속과 복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이다. 바로 이것을 하나님을 말씀하시고 계시는데, 그러니 인간은 하나님과 다투고 싸우고 한다는 것이다.
◈ 왜 언약을 덧대어야만 하는가?
언제도 그런 이야기를 했지만, "하나님은 바느질을 할 때 언약을 덧대서 바느질을 한다" 라는 것은, 왜 언약을 덧대어야만 하는고 하니, 우리는 그냥 가만히 두면 하나님 자체에 대한 반발세력이 우리 속에 있다는 것이다. 악마가 말이다. 육신은 연약해서 마귀에게 지니 말이다.
우리보다 강한 마귀가 다른 것은 노리지 않는데, "언약은 무시해. 하나님의 언약은 너무 부담스러우니 지키지 않아도 돼" 라고 하면서, 계속해서 언약에 대해서 반발하는 어두운 세력으로 작용하니, 주님은 우리를 닥달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 배후에서 작용하고 있는 비언약적이고 비복음적인 것을 겨냥해서 쏘아대신다는 것이다. 언약을 가지고 말이다.
그러니 이렇게 보면 되는데, "하나님을 언약을 쏘시는 분이고, 이스라엘은 그 언약에 실려서 하나님의 적을 향하여 날아가는 화살이다" 라고 말이다. 그렇게 '피웅, 피웅' 하고 날아간다는 것이다. 언약에 묻혀서 그렇게 날아간다는 말이다.
◈ 갈렙과 여호수아의 경우에 !!
갈렙과 여호수아가 이것을 알았는데, 그들은 약속에 땅에 가보았다는 것이다. "안 가본 사람은 말을 하지 말라" 라고 하는데, 하지만 그들은 실제 가보았다는 말이다. 가서 보니 정말로 그들은 장대이고 거기에 비해서 자기들은 메뚜기였는데, 그러면 우리 같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나머지 10명도 마찬가지인데 말이다.
그들이 덩치가 커서 게임이 되지 않으니, 당연히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옳다는 결론을 내려야 하는데, 갈렙과 여호수아도 다른 10명과 같이 그렇게 정탐을 가서 두 눈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12명의 정탐꾼의 노정을 보게되면, 저기 북쪽 끝까지 정탐을 다 한 것으로 나오는데, 그렇게 다 보고 난 뒤에 갈렙과 여호수아가 하는 말이 "이제 들어갑시다!"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사람의 눈은 모두 똑같은 눈이고 같은 장면을 보았는데 말이다. "들어가면 작살이 납니다" 라고 하는 자들이 머리가 나빠서 그런 소리를 했는가? 12명이 똑같이 보았는데, 10명은 "이건 게임이 안 됩니다. 우리가 들어가면 죽습니다" 라는 일치된 의견을 내어놓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갈렙과 여호수아는 왜 엉뚱한 답변을 하느냐는 것이다. 과연 어느 게 정상이냐는 말이다. 여기서 다수결이 문제가 되는데, 성경에서는 다수결이 진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10명이 하는 말이, 사실 상식적으로 봐도 그들의 말이 맞는데, 하지만 왜 갈렙과 여호수아는 엉뚱한 소리를 하느냐는 것이다.
(민 13:25) 사십 일 동안에 땅을 탐지하기를 마치고 돌아와
(민 13:26) 바란 광야 가데스에 이르러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나아와 그들에게 회보하고 그 땅 실과를 보이고
(민 13:27) 모세에게 보고하여 가로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젓과 꿀이 그 땅에 흐르고 이것은 그 땅의 실과니이다
(민 13:28) 그러나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민 13:29)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하더이다
(민 13:30)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돈시켜 가로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민 13:31)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가로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민 13:32)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민 13:33)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 믿음은, 또라이들이 하는 소리 !!
그런데 히브리서 4장에서는 이것을 두 글자로 무엇이라고 하는고 하니, 그래서 성경말씀이 참 어려운데 말이다. 그것을 '믿음(순종?)'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믿음은 다른 말로 하면 "또라이들이 하는 소리이다" 라는 것인데, 전혀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믿음이 없이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라는 것은 아는데, 하지만 천국에 들어가는 믿음은 전혀 정상적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히 4:6) 그러면 거기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치 아니함을 인하여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히 4:7)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날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말라 하였나니
(히 4:8) 만일 여호수아가 저희에게 안식을 주었더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예를 들어서, 90세가 넘도록 실컷 시아버지를 봉양해놓고, "내가 한 것은 죄입니다" 라고 하면, 그것은 완전히 또라리들이 하는 소리가 아니냐는 말이다. 하지만 그게 믿음이고, 90세가 넘도록 시아버지를 봉양해놓고 "역시 사랑으로 안 되는 것이 없어" 라고 한다면, 그건 성도의 모습이 아니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머리를 쓰는 것이 갈렙과 여호수아와 같은 방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느냐는 것이다. "마지막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말이다. 만약에 갈렙과 여호수아가 보지 않았다고 하면 말을 하지 말라고 할지 몰라도, 갈렙과 여호수아도 분명히 정탐을 가서 보았다는 것이다. 그들이 덩치가 얼마나 큰지를 말이다.
◈ 하나님은 왜 적들을 보여주시는가?
하지만 갈렙과 여호수아는 그쪽만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왜 적들을 보여주시는가? 그것을 곧 적을 보고 벌벌 떨고 있는 '나'의 모습, 바로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적들을 보여주셨다는 말이다.
갈렙과 여호수아는 생각하기를, 분명히 적들을 보기 전에는 그래도 싸울만하다고 여겼지 싶은데, 하지만 막상 적들을 보고 나이 얼마나 겁이 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미 게임 끝이라는 것이다. 적들이 이기에 되어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겁을 내고 조마조마해하면서 떨고 있는 '나'의 모습,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함께 해야될 이유가 된다는 것이다.
벌벌 떨면서 겁을 내고, 또한 연약해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그야말로 전혀 쓸모가 없는 그 모습, 그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기에, 그래서 주님의 능력이 100프로 발휘되는 현장을 그런 식으로 일구어나가신다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렇게 하신다는 말이다.
그게 바로 계시가 되는데, 그러니 계시는 무엇인가? 우리를 철저하게 죄인으로 만들어서, 우리가 구원을 받는지 우리는 그 어떤 보탬도 한 적이 없다고 하는 것을, 그것을 보여주면서, 그것을 믿음이라고 규정하시면서, 그 믿음으로 우리를 천국에 들어가게 해주신다는 것이다.
◈ 만약, 자기들 힘으로 약속의 땅을 차지했다면?
여기서 약간 더 어렵게 이야기하면 다음과 같은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서 덩치가 큰 원주민들이 발달된 문명을 가지고 살고 있음을 보면서 그만 낙담을 했을 때, 그때 주님께서는 분류작업을 해내신다는 것이다. 분류작업을 말이다.
만약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의 힘으로 약속의 땅을 차지했다고 하면, 그들은 신명기 7장 2절의 말씀을 지킬 수가 없다는 것이다. 즉 "그들과 무슨 언약도 말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라" 라는 말씀을 전혀 성취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의 힘으로 원주민들을 이겼기 때문에, 자기들에게는 그들을 잡을 힘도 있고 놓아줄 힘도 있다고, 그렇게 착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기본 양심이 있어서 "너는 저주를 받아야 돼" 라고 하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좀 봐줘라" 라고 하면서, 자기가 다 알아서 봐주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 신명기 7장에서 "불쌍히 여기지도 말라" 라고 함으로서,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아, 너희들도 역시 불쌍히 여김을 받지 않아도 될 인간들인데,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 너희들은 불쌍히 여김을 받아야 돼" 라고 하는, 그 언약에 담긴 취지를 펼치기 위해서 이스라엘만큼은 구원을 받아야만 되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천국은 우리가 살기 좋아라고 가야될 곳이 아니라,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분의 공로와 사랑을 증거하기 위해서, 우리는 가기 싫어도 천국을 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즉 천국에 가야되는 자들로서 호명을 당했다는 말이다. 그렇게 부름을 받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믿음이 좋아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 아, 어렵도다 !!
물론 말로서는 이렇게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이야기냐는 말이다. '어렵다' 라는 것 외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데, 사실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불가능한 것인데, 그런 불가능한 말을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입을 통해서 내뱉게 하신다는 말이다. 달리 납득시킬 재주가 없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은 사람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데,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고 개돼지로 여기는 것을 그대로 순하게 받아들이면 되는데, "그래도 양심이 있는 게 사람이다" 라고 나온다면, 복음은 물 건너갔다고 보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 자들은 도저히 복음을 이해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하나님에 의해서 사람으로 취급받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이냐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가 사람이라고 우기기 때문에 얼마나 힘든 인생을 살아가는지 모르는데, 거기에서 해방을 시켜준다는 것이다. 즉 "사람도 아닌 게 사람 행세를 하지 마라!" 라고 하면, "정말 감사합니다!" 라고 하면 된다는 것이다.
◈ 주님은, 지금 우리와 더불어 언약을 !!
여기서 신명기 5장 3절 이야기를 좀 더 해보겠는데, 여러분이 안다고 치고 복습하는 의미에서 말이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와 언약을 세우심으로 말미암아 여기에 있는 우리와 더불어 계시를 만드시는데, 즉 언약이 펼쳐지는 장을 만드신다는 것이다.
(신 5:3) 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열조와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날 여기 살아 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
그러니 돌판에 가두어진 게 언약의 전부가 아니라, 돌판에 가두어진 그 말씀이 바깥으로 튀어나와서 실제로 자기 사람들을 붙들고 어떤 변화를 일으키게 되는데, 그 변화의 모든 것을 싸잡아서 하나님의 계시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런 작업을 하실 때, 그것을 제가 처음에 "다투었다. 시험했다" 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그것을 그림으로 그려보면, 언약이 이렇게 있으면, 물론 나중에는 이게 새언약이 되고 그 안에는 예수님이 계신다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일단 언약, 즉 말씀이라고 하자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언약의 말씀을 문자로만이 아니라 영으로 활동을 하시는데, 그러면 인간들이 여기서 마중을 나간다는 것이다. 인간들에게 이 언약이 문자, 즉 언어로 되어있으니, 인간들은 나름대로 이 문자와 언어를 담아서 자기 계시, 자기 예정론, 자기 약속을 스스로 스스럼없이 만들어낸다는 말이다. 물론 가짜인데, 그렇기 때문에 매사에 하나님의 약속성취와 다투게 된다는 것이다.
◈ 다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있다' !!
지금 네 번째로 이야기하는데,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있다고 하면, 물과 양식은 기본적으로 있어야 한다" 라는 것은 어느 쪽에서 만든 잘못된 인식인가? 인간 쪽에서 만든 잘못된 인식인데,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있다고 하면, 생필품을 줘야 당연하지 않습니까?" 라고 인간들은 일방적으로 생각하는데,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있다" 라고 해놓고, 마실 물조차도 없다고 하면, 그러면 하나님이 함께 있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모르겠습니다" 라고 하면 되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라 누가 잘못했다는 것인가? "우리는 잘못이 없는데, 하나님 쪽에서 일 처리를 잘못하고 있다" 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 이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라는 식이란 말이다. 참으로 기가 막히는데, 그만큼 우리는 강력하게 우리 나름대로 하나님의 약속을 우리 마음대로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자체적인 공장에서 말이다.
◈ 성경을 파고들면, 열심 있는 자기 얼굴이 !!
특히 신학자들이 그런 짓을 많이 하는데, 그렇게 하나님의 언약을, 즉 성경책을 인간들이 자꾸만 분석하다가보니, 여기에서 무엇이 보이는고 하니, 인간의 얼굴이 보인다는 것이다. 즉 열심히 성경을 파고 분석하고 있는 자기 얼굴이 보인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서, 금광이 은광을 파고 있는데, 그런데 그 광산의 마지막 막장이 전부가 다 거울로 되어있다고 보자는 것이다. 지금 얼굴이 시커멓게 되어서 "갈 때까지 가보는 거야. 마지막에 뭔가가 있겠지" 라고 하면서 가보니 마지막에 거울이 나오는데, 그 거울에 비추어져서 나오는 모습이 무엇이겠는가? 열심히 땀을 흘리고 노력해가면서 성경말씀을 파헤치고 원어를 파헤치는 누구 모습이 보이는가? 자기 모습이 보인다는 것이다.
◈ 또 하나의 거울교회 !!
김성수 목사가 마지막 순간에는 설교를 하면서 원어를 파헤치고 했다는데, 심지어 아람어도 등장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결국 보이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그것은 바로 원어를 열심히 파헤치고 있는 자기 얼굴이라는 것이다. 사실 원어라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말이다.
물론 그 교회에 다니고 있는 교인들도 마찬가지인데, 열심히 자기 교회를 섬기고 있는 자기 모습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교회는 거울만 가득한데, 즉 '거울교회' 라는 말이다. "기존 교회를 버리고 이 교회에 왔다" 라고 하는 장한 자기 모습이 반사되어서 나오는 거울들이 가득하다는 말이다.
이소룡이 죽기 직전에 만든 유명한 영화가 있는데, '용쟁호투' 라고 말이다. 마지막 장면이 뭔고 하니, 거울 앞에서 결투를 벌린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소룡이 우리나라 사람인 줄 아는데, 홍콩배우인데 말이다. 이소룡이 참 싸움을 잘하는데, 인간들도 이렇게 싸움을 잘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인간의 마지막 모습은 미지의 적들과 싸우는, 즉 '미지의 X'와 싸우면서 분투 노력하는 고귀한 자신의 성경 탐구열, 그것도 함께 노력하는 그 모습, 그것을 제가 어제 뭐라고 했는고 하니까, 오지 않는 기차를 기다리는 대합실에 모여있는 자들과 똑같다고 했는데 말이다. 기차는 오지 않는데, 그냥 기다릴 뿐이라는 것이다.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라는 유명한 연극처럼 말이다. 노벨상까지 받았는데 말이다.
인간은 그렇게 자기 소망을 믿을 뿐인데, 즉 "구름을 타고 오시겠지"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하면서도 거울로 장식된 곳에서 폼을 잡는데, 물론 그냥 거울을 보면 미안하니, 찬양대를 만들어서 찬양까지 한다는 것이다. 파이프 오르간을 연주하고, 천주교에서는 향을 뿌려가면서 말이다.
◈ 거울인가? 피인가?
하지만 정답은 무엇인고 하니까, 진짜 언약을 만나게 되면 거울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반사된 자기 얼굴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피'가 보인다는 것이다. 온 천지에 피만 가득한데,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피' 라는 말이다. 표지자체가 벌겋다는 것이다.
그렇게 피가 보여야 하는데, 개혁주의를 열심히 공부하는 자기가 보이면 안 된다는 말이다. 성화론을 추종하는 자기 모습이 보이면 안 된다는 것이다. "기존교회는 썩었고 우리교회는 참되다" 라고 하면서 모였던 자기 자신의 장한 결단과 결심이 보이고, 또 시아버지를 봉양했던 자기 모습이 보인다고 하면, 그게 과연 피가 맞느냐는 것이다.
◈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
히브리서 9장 22절의 "피 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다" 라는 것이 그야말로 결정적인 말씀인데, 무슨 의미인가? "피 앞에서 니가 그 무슨 짓을 해도 죄인이다" 라는 것인데, 어떤 짓거리를 해도 말이다. 진짜 피를 받은 사람은 날마다 자기 거울을 깨는데, 거울을 보고는 깨고, 그 깨어진 거울을 맞추어서 보고 또 깨고 말이다. 그렇게 거울을 보고 깨고 보고 깨는, 그런 깨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히 9:22)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카라' 라는 양반이 오늘아침에 또 질문을 해놓았는데, "목사님은 주의 능력을 받지 않았습니까?" 라고 말이다. 그래서 제가 뭐라고 답변했는고 하니, "주의 능력은 저에게 온다고 해서 저의 것으로 전환이 되지 않습니다" 라고 말이다. 구원의 능력이 오게 되면, 그것은 여전히 주님의 능력이지, 자기 소유의 능력이 전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 바느질인가? 보관인가?
그것을 염두에 두고 제가 어제 오전시간에 '보관' 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바느질을 해야지 보관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 육신이 약하니까 그런 자기 자신을 살리기 위해서 보관을 하는데, 그것을 두 글자로 '자본' 이라고 하고, 그런 사상을 '자본주의' 라고 한다는 것이다. 모든 자본주의는 보관인데, 즉 남아도는 물자를 보관하는데서 금융자본주의가 시작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성도는 값을 주고 샀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것이 전혀 아닌데, 그런데 따로 자기를 살려서 보관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말은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께서 언약을 주셔도 인간들은 자기를 자식으로 지켜보겠다고 하는 일념 때문에, 성경에 나오는 모든 말씀을 보관용으로 자꾸 오해를 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버리는데 말이다. 그런 작용이 무엇인고 하니까, 자기가 땀을 흘리고 애쓰는, 그런 고상하기 짝이 없고 품위가 있는 자기 얼굴을, 우리 인간은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 율법의 마침이 되시는 그리스도 !!
로마서 10장에 보면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즉 그리스도는 모든 율법을 끝냈다는 것이다. 그러니 율법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율법을 그렇게 알지 못하면 그리스도를 알 수 없다는 것인데, 율법을 충분히 알아야 그리스도가 이런 많은 율법을 끝낸 분이라는 것을 믿을 수가 있다는 말이다.
(롬 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그렇지 않으면, 율법도 체험하고 거기에다가 덩달아 예수님도 믿는, 그렇게 예수님을 믿는 율법도 지키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온 천지에 율법밖에 남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즉 예수님 믿기, 성령 믿기, 삼위일체 공부하기 등등, 그런 것이 다 포함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것들을 열심히 끌어 모으는 자기 자신의 얼굴만 보이게 된다는 말이다.
◈ 기드온과 300 !!
사사기 6장과 7장을 보면 '기드온' 이라는 사람이 등장하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님도 참 그러한데, 즉 인간을 얼마나 못살게 구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기드온이 일상적으로 살아가는데 천사가 와서는 "기드온아, 니가 미디안 사람들의 손에서 백성들을 구원해야 하겠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자 기드온이 염소새끼를 잡고 무교전병을 만들고 해서 제사를 드렸는데, 그러니 천사가 먹지는 않고 지팡이를 대니까 불이 나와서 음식이 다 타고 말았는데, 그게 먹는 모습인지는 몰라도 말이다. 그렇게 재로 만들어놓고는 떠나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슬퍼하는 기드온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시고, 기드온은 제단을 쌓았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 라는 표시로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무엇을 요구하는고 하니, 바알을 제단을 부수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은 우리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것을 부수만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욕을 얻어먹는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말이다.
마치 일제시대와 같은데, 온 천지에 일본천왕을 섬기기 위해서 신사를 만들어놓고 난리인데, 그런데 그 제단을 부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말이다. 우리의 바램은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께 제단도 세우고, 또한 있는 바알 제단도 그대로 두고, 우리는 그렇게 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드온이 낮에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밤에 몰래 부수는데, 그렇게 하다가 그만 걸리고 말았다는 것이다(ㅋㅋ). 그러자 기드온의 아버지가 요아스인데, 그가 뭐라고 하는고 하니, "바알이 진짜 신이라고 하면 신이 알아서 죽일 것인데, 당신들이 왜 죽이려고 하는가?" 라고 하면서,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논리를 가지고 아들을 살려낸다는 것이다.
제가 지금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께서 일을 시킬 때 조금 여유가 있도록 일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민망하게 만드는데, 즉 일을 하라는 것인지 그만두라는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몰아 부치고 힘들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드온이 하나님으로부터 다짐을 받는다고 하면서 양털을 접고 다시 펴고 하는데, 하나님을 믿지 못해서 말이다. 실험을 하려고 하면 제대로 된 것을 하든지 않고 영 시시한 것을 했는데 말이다. 아무튼 하나님께서 그런 기드온의 다 들어주셨는데, 그래서 기드온이 나서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36,000명이 모였는데, 하지만 나중에는 우리가 알다시피 몇 명이 남았는가? 300명이 남았다는 말이다. 영화 '300' 인가? 왜 36,000명이 왔다가 결국 300명이 남게 되었는고 하니, 거기에는 이유가 다 있다는 것이다. 혹시 자기들의 힘으로 승리를 했다고 할까 싶어서 돌려보내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여기서 의문점이 드는 게 무엇인고 하니, 기드온에 사람을 모으라고 해서 36,000명이 왔다고 하면, 우리 생각에는 그 36,000명도 주께서 보내신 자들이라고 여기고 감사히 받지 않겠는가? 기드온이 하는 일에 도움을 주라고 말이다. 그렇지 않은가?
◈ 애들아, 가지마 !!
그리고 아예 처음부터 모인 자들이 300명이라고 하면, 36,000명은 맛보지 말고 말이다. 그런데 36,000명이나 모아놓고 나중에 300명만 남게 되니, 즉 도중에 22,000명이 집으로 돌아갈 때 기드온의 마음이 어떠했겠느냐는 것이다. "아휴, 아까워라" 라고 하면서 그야말로 찢어진다는 것이다. 붙들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고 말이다.
그래서 나중에 만 명이 남았는데,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만 명도 많다는 것이다. 그들이 이기면, 자기들의 힘으로 이겼다고 우길 수 있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전쟁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미디안과 전쟁을 하는가? 아니면 기드온 본인과 전쟁을 하고 있는가? 기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