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출 13:11-16 (표 시)
표시2004년 6월 13일 본문 말씀 :출애굽기 13:11-16
출 13:11 여호와께서 너와 네 조상에게 맹세하신대로 너를 가나안 사람의 땅에 인도하시고 그 땅을 네게 주시거든출 13:12 너는 무릇 초태생과 네게 있는 생축의 초태생을 다 구별하여 여호와께 돌리라 수컷은 여호와의 것이니라출 13:13 나귀의 첫새끼는 다 어린 양으로 대속할 것이요 그렇게 아니하려면 그 목을 꺾을 것이며 너의 아들중 모든 장자 된 자는 다 대속 할찌니라출 13:14 장래에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 이것이 어찜이냐 하거든 너는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곧 종이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실쌔출 13:15 그 때에 바로가 강퍅하여 우리를 보내지 아니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낳은 것을 사람의 장자로부터 생축의 처음 낳은 것까지 다 죽이신고로 초태생의 수컷은 다 여호와께 희생으로 드리고 우리 장자는 다 대속하나니출 13:16 이것으로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를 삼으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라 할찌니라
하나님께서 일을 하실 때는 비정하고 냉정하고 확실하게 일하십니다. 거기에 비해 인간들의 움직임은 늘 감정과 기분에 좌우됩니다. 어떤 때는 마치 곧 천국이라도 올라 갈 자신이 충만한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얼마간 가서 기분이 다운되어 당장 지옥에 빠질 것 같은 위기 심을 갖기도 합니다.
이런 요동치는 감정을 잡기 위해 인간들은 부지런히 신의 마음을 달래기 바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을 처음부터 그런 인간들의 감정에 영향 받지 않으십니다.
창세기 3:23-24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 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애걸복걸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자기 조치를 철회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인간들이 자기 기분 상 괜히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케 했다고 자만하고 일방적으로 곡해하기 일쑤입니다.
사람을 에덴동산에서 추방하실 때도 냉정하고 단호한 조치를 내리셨듯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는 대도 인간의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단호한 조치를 내리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모든 장자는 내게 돌려라. 대속 해야 한다"라고 엄중하고 확실한 기준을 내리십니다.
그런데 인간들이란, 어떤 하나님의 지시가 주어지면, 먼저 자신에게 얼마나 큰 힘이 제공 될 가를 생각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 제가 이 지시를 준수 할 테니 저를 지탱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해주세요"라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자기에게 힘이 겸하여 모아지는 그런 지시처럼 이해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잘 섬긴 대가로서 막대한 힘이 자기에게 상으로 얻어질 것이라고 은근히 기대한다는 말입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애초에 인간들이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를 몰라서 나온 발상입니다.
인간들은 '거룩'이 없어 추방된 것입니다. 결코 힘이 모자라서 추방된 것이 아닙니다. 거룩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추호도 양보가 없습니다. 오죽했으면 두루 도는 화염 검으로 에덴의 동쪽을 지키겠습니까.
따라서 하나님의 구원방식은 이스라엘에게 힘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거룩이 있느냐를 물으시는 구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주신 말씀과 지시는 거룩을 생산케 하는 체제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이 어떤 식으로 생산하게 됩니까?
여기서 우리는 '거룩'에 대해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윤리와 도덕을 거룩이라고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것은 새로운 형태의 힘 축적의 방도가 될 뿐입니다.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거룩이란, 이 세상과의 분리요 단절입니다.
즉 거룩 된 자는 이 세상에서 분리되어야 하고 쓸쓸해야 되고 외로워야 한다는 겁니다. 거룩은 어린양에게서 나온다는 것은 유월절의 핵심분야입니다. 즉 거룩이 없는 애굽 나라를 거룩이 있는 이스라엘이 이겼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거룩이 어린양에서 어떤 근거에 의해서 도출되는 겁니까? 어린양이 들어가게 되는 곳은 바로 제사하는 사건 속입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가족과 가축들은 전부 그 첫 소산물은 다 어린 양으로 교체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어린 양으로 도배되지 아니하면 하나님과의 연결고리가 깨어진다는 겁니다. 즉 거룩하지 않는 가축이나 무리는 이 죽음을 일으키는 거룩의 세계 안에서는 존속할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정말 무시무시한 이야기이지요.
구원이고 천국이고 간에 그 어느 인간도 이 무시무시한 심판을 통과치 못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차단'입니다. 그리고 '거부'입니다. 인간이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거부하십니다. 그것도 철저하게 적극적으로 거부합니다.
이 거부가 전제되지 않는 구원이란 모두 사이비입니다. 인간들이 에덴동산에서 나올 때부터 인간에게는 조금도 거룩이 남아 있지 않고 그 대신 더러움만 충만한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개인적인 성의나 감정으로 어물쩍 그냥 넘어갈 사항이 아닙니다.
더러움은 분명 더러움이요 하나님의 거룩은 냉정하게 거룩입니다. 이 둘 사이에는 타협이나 혼합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방신 속에는 이런 단절이나 차단이나 금지가 없습니다. 이방민족의 신은 인간의 존재성을 긍정하고 용납하는 속성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즉 인간은 신과 사귐에 들어가므로 서 비로소 신으로부터 축복을 받을 자격이 마련된다는 겁니다. 이러한 사상은 전제가 결코 인간은 신으로부터 거부당하거나 배척 당할 이유가 없다는 확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창세기 3장에 나오는 에덴 동산에서의 추방은 하나님이 잘못 내린 처방이 되고 맙니다. 추방하지 말아야 될 자를 추방한 셈이 됩니다. 하나님이 하신 모든 일이 다 실수한 것이 됩니다. 인간이 실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쪽에서 실수한 셈이 됩니다.
이렇게 건전하고 훌륭하고 괜찮은 인간을 괴롭게 한 신이라면 그것은 옳은 신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할 것이 뻔합니다. 신은 인간을 단절시킬 권한이나 자격이 없는 것이 됩니다. 신은 인간을 보다 잘 배려해야 마땅하다고 보는 겁니다.
이 모든 사상이 이방민족 신속에 다 함유되어 있습니다. 인간을 위한다는 신입니다. 하나님은 어린양의 희생을 가지고 이런 이방 신과의 싸움에 돌입하셨습니다. 즉 인간 세계에서는 결코 '거룩'이 나올 수 없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서 난 맏이는 '다 내게 돌려라'라고 지시하십니다. 즉 전에는 더러움 속에 있는 자를 어린양의 죽음에 합류 시켜야지 만 그 안에서 죄 씻음이 성사되어 거룩 된 장자로서 시작된다는 겁니다.
흠 없는 어린 양, 즉 하나님 쪽에서 제공된 '거룩'은 이스라엘 내에 하나님의 거룩을 생산하기 위해서 대신 죽으심으로 죄를 씻는 작업에 나서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이 통로 외에는 결코 거룩이 주어질 수 없습니다.
거룩이란 윤리나 도덕이나 인간의 감정이나 지식으로 획득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거룩한 분의 희생의 효과가 주어질 때만 거룩이 생겨나는 법입니다. 이사야 6:1-4에 보면,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이 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개인적인 기분이나 감정과 전혀 별개와 완전히 단절된 채, 하나님의 거룩은 그대로 거룩 되게 현실적으로 상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엄청나게 무서운 거룩으로 이 세상 징벌이 나섭니다.
누구든지 어린 양 안에서 죄 씻음을 얻지 못하고 그래서 거룩한 상태가 되어 있지 않으면 다 저주받는다는 겁니다. 울어도 소용없는 짓입니다. 마치 인간의 조상이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후 그 길목에서 운다고 해서 그 화염 검이 철거되는 것이 아니듯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이 어린양의 거룩이 이 지상에서 펼쳐지는 겁니까? 그것은 철저한 단절과 분리로서 비쳐지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도 이 세상에서 거룩한 백성이 얼마나 소수인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적은 무리여 두려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 하시니니라"고 말입니다. 누가복음 12:32의 말씀입니다. 이 세상이 삶은 거룩에서 힘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집단에서 힘이 나온다고 믿고 집단 결속의 힘의 대단한 기대감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이 한 가운데 하나님의 지시가 떨어져서 하시는 말씀이, "내게 돌려라"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되면 세상에서 거룩한 하나님께 돌려진 자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 사람은 어린양의 피와 합세하여 그 피 속에서, 그 피로 말미암아 죄 씻음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결코 감정이 여리거나 예민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저 십자가 안에서 거룩을 만나고 거룩을 입은 분들입니다. 결코 거룩을 윤리나 도덕으로 만들어내는 분들이 아닙니다. 이로서 이들만큼은 속된 더러운 세계에서 거룩한 세계로 옮겨졌습니다.
이 때부터 이들은 그동안 세상 친구들이 도저히 이해하거나 납득할 수 없는 영역에 해당되기에 외롭고 쓸쓸한 인생 길을 가야합니다. 마치 예수님이 가신 그 길처럼 말입니다. 이로서 거룩과 비 거룩의 전쟁은 이들을 통해서 지금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십자가로 인한 거룩인가 아니면 우리 인간이 거룩을 만들어서 그 만들어진 거룩으로 구원받는가의 싸움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날마다 우리는 주님께로 돌리게 하옵소서. 비록 세상에서 미움받는 일이 있더라도 그렇게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