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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유튜브(36강, 37강) 천국 입성, 심판 130613강의마태복음

유튜브(36강, 37강) 천국 입성, 심판 130613

이름 : 이근호(IP:119.18.69.144)

36강

37강

유일자(IP:116.♡.234.248)

13-06-17 20:56

36강-YouTube강의(천국 입성)1306013-이 근호 목사

36강으로 “천국 입성”이란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람들이 천국을 들어가는 방식이 어떤 방식이냐 하면, 보통 일반 세상에서 어디를 들어간다 하면, 그쪽에 대해서 일단 알고, 그쪽에 대해서 알게 되면, 그 세계에 합류할 수 있다. 이런 방식을 우리가 기존에 있는 세상에서는 입성할 때, 들어갈 때, 차지할 때 그런 식으로 합니다.

천국도 천국에 대해서 입성한다, 들어간다. 방법은 어떤 방법을 사용하느냐하면, 일단 천국에 대해서 알고 그 다음에 그 안 것에 대해서 내가 나의 것으로 접수하는 식으로 천국과 일치가 되고 하나가 되는 방식으로 천국을 접수 할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천국에 대해서 안다고 하는 그것, 이러한 식으로 천국에 입성하는 그 방식이 성경에 나와 있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천국의 입성 방법과 과연 통하는가, 그걸 한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마태복음 11장 1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천국을 언급하면서 아주 색다르게, 아주 낯설게 표현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세례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천국이 공격을 당한다고 얘기하고 있고, 그리고 천국을 공격함으로 말미암아 그걸 빼앗는 식으로 천국으로 피한다는 거죠.

그렇다면 우리가 천국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계산이 서있고, 생각이 있고 천국을 내가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과 일치 시켜서 내 것으로 접수하는 식으로 하게 되면, 천국은 이렇게 침략한다든지, 또한 침노를 당한다든지, 또 빼앗는다든지 이런 과격한 용어가 구태여 동원될 필요가 없습니다.

천국이 아~ 이런 거구나! 그럼 난 저 천국에 들어가야지! 이러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예수님께서 소개하는 천국은 침노 당한다고 되어 있고, 빼앗긴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그러냐 하면, 천국에 들어가 보자 하는 우리 자신에게 실제론 천국의 성질과 안 맞는 성질로 이 땅에 태어났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내 생각에 맞는 것 같으면 내 것으로 접수를 시킵니다. 내 것으로 만들어서 같이 일치를 시키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소개하는 천국은 우리 인간들이 생각하기에 내 것과 맞다는 그런 식으로의 천국은 아닙니다. 내 생각과 맞다고 생각하는 천국은 애초부터 그것은 조작된 것이고 그것은 가짜입니다.

그래서 천국과 우리 인간의 만남은 다투고, 배척하고, 싫어 버린바 되고, 부서지고, 깨지는 그러한 접촉 방법으로 천국은 이 땅에 등장하게 되는 겁니다. 아주 간편하게 얘기하면, 이렇습니다. 인간이 이 땅에 태어날 때, 자기는 곱게 태어났다고 생각하는데, 실은 곱게 태어난 것이 아니고, 천국이 나타나면 우리 속성상 천국은 짓밟을 수밖에 없는 그러한 성격을 가지고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난 겁니다.

이것은 내가 보기에 귀중하다고 여기는 것에 대해서만 사람들은 그것이 언뜻 손이가고, 관심이가고, 마음이가는 법이예요. 그런데 자기 보기에 전혀 귀중하지도 않고, 전혀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거는 당연히 배척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입장을 먼저 전제로 해야 되는데, 오늘 본문 마태복음 11장 12절에 보면“세례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한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례 요한이 와서 소개한 그 하나님 나라가 기존의 사람들이 염두 해두고 있었던 그런 하나님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성격상 전혀 일치점이 없는 그런 천국을 세례 요한이 우리에게 전달해 오는 거예요.

그렇다면 인간들이 알고 있는 천국과는 너무 질이 다르고, 모든 게 다르니까 거기서 인간들은 그 천국에 대해서 공격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이처럼 인간이라 하는 것은 천국을 공격하고 미워하는 속성을 지니고 이 땅에 태어난 겁니다.

그러면 천국은 하늘 저편에서 오느냐? 주님은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천국은 저 바다 밑에서 올라오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천국은 위치가 어디 있느냐! 바로 사람들이 싫어하고 사람들이 버렸던 고런 버린 마주침과 접촉을 통해서 천국은 이 땅에서 스물 스물 구성되어서 우리에게 등장하는 겁니다.

그러면 그 천국에 들어간 사람이 있지 않느냐. 엘리야나, 모세나, 아브라함 이런 사람들은 어떻게 들어갔느냐. 이 사람들은 천국을 납득을 해서 들어간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들로 하여금 자기들이 얼마나 진짜 천국을 싫어하는지를 완전히 폭로시키는 방식으로 그들의 심성에다가 천국을 호소하고 다가선 거예요. 이 천국이 다가왔을 때 그들은 회계하고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는 방식으로 그들은 천국 백성에 입성하게 된 겁니다.

예를 들면, 창세기 32장 야곱 같은 경우에 그 야곱은 하나님의 복에 대해서 아주 집착 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복 받은 존재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막상 야곱이 하늘나라를 접촉 했을 때는 도리어 하늘나라에 계신 천사와 아주 막가자는 식의 싸움의 전쟁을 한 거예요. 투쟁을 한 거예요. 그러니까 야곱은 자기 자신의 뜻과 기존의 자기 방식을 사수하기 위해서 자기의 뜻과 다르게 본 그 괴물에 대해서 사정없이 공격한 겁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자기가 공격한 대상이 자기는 마귀인줄 알았는데, 도리어 마귀라고 여겼던 자기를 공격한다고 여겼던 그것이 오히려 자기에게 축복을 주시고자 하신 하나님 당사자라는 것을 야곱은 나중에 알게 됩니다.

이러한 사태는 야곱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 예요. 인간적인 본성을 야곱은 그냥 본성적으로 내가 알고 있는 내꺼 지키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발휘한 것 뿐 인데, 오히려 그것으로 인하여 배척받고, 상처받고, 거부당한 그 쪽이 바로 천국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야곱은 알게 됩니다.

그래서 야곱은 이런 고백을 합니다. 내가 정작 하늘나라를 추구하지만, 정작 하늘나라 앞에서는 나는 들어가지 못할 죽어 마땅할 지옥 갈 사람인 것을 나는 깨달았다. 그렇게 깨닫게 하는 방식으로 된 사람만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바로 이러한 야곱적인 방식 외에는 천국에 들어가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마음껏 깨지고, 마음껏 자기 자신이 얼마나 내 이익과 내 사랑, 자기 집착밖에 모르는 존재인 것을 하나님에 의해서 까발림 당한 그 당사자들이 나중에 천국에 입성하게 되는데요,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고백은 오직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천국 들어가게 된 것은, 다 하나님의 용서와 불쌍히 여겨주신 그 능력 뿐 입니다. 바로 그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피로써 이러한 사랑을 우리에게 표상으로 다 보여준 것입니다.

유일자(IP:116.♡.234.248)

13-06-17 20:57

37강-YouTube강의(심판)1306013-이 근호 목사

37강, 제목은 “심판”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무지무지하게 요란스럽습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8장 1절에 보면, 고요한 대목도 나옵니다. 8장 1절에 보면, “일곱인 떼실 때에 하늘이 반시 동안쯤 고요하더니” 라고 되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고요한 부분이 나오는데, 이 부분은 어떤 사태, 무슨 일을 앞두고 고요하냐 하면, 마지막 심판을 앞두고 일곱 나팔 불 때 마지막 심판인데요, 잠시 고요해지는 겁니다. 아주 무서운 고요함이죠. 아주 엄숙한 고요함입니다.

심판이라 하는 것은, 간단하게 말해서 이겁니다. 세상을 없애버리겠다는 겁니다. 세상을 없애 버리면, 우리가 어떤 점에서 당황스럽냐하면, 평소에 우리가 웃고 울었던, ‘난 이것 때문에 웃을 수 있어. 이런 일만 벌어지면 난 늘 웃어. 또는, 평소에 이런 일만 일어나면, 난 울고 싶어. 난 이런 일 일어나면, 자살하고 싶어. 난 정말 이런 일 일어나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어.’ 라고 애착을 갖고 했던 그 모든 것, 그 모든 것에 대해서 하나님은 심판해 버립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한다는 것은 평소에 우리가 동거, 동락을 같이 했던 그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선 심판하시는 거죠. 여러분들은 여러분 곁에 누가 있어야 가장 행복한 순간을 맞이하십니까? 누가 있을 때... 북한에 김정은이 있을 때 행복하십니까? 아니면 여러분들을 괴롭히는 폭력배가 옆에 있을 때 행복하십니까? 아니면 여러분들을 부축이고, 도와주고, 보호하고, 모자라는건 채워주고, 이쁘다하고, 여러분들을 자랑스러워하고, 여러분들을 부러워하고, 아껴주는 사람이 있을 때나 행복합니까.

결국은 사람이라 하는 것은, 자기가 울던지, 웃던지 간에 내 곁에는 이런, 이런 것과,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 할 때, 그것은 자기 곁에 있는 그러한 경우와 사람을 자기가 선택한다는 것이 이것이 근본적으로 대단히 문제가 큽니다. 잘못된 겁니다.

성경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니 곁에는 너를 심판하시는 분과 함께 있으라.“ 하~ 이거 정말 어처구니없는 엄청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신명기에 28장부터 끝부분에 가보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야기 하십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말씀이 너의 곁에 있다.“ 언뜻 들어보면 말씀이 곁에 있으니까 ‘야~ 이제 말씀 지키면 우리는 복이 있다는 이야기이니까, 결국은 축복이 우리와 함께 있다는 그런 뜻이구나.’ 하고 쉽게 생각할 수 있겠죠. 그런데 신명기 28장 끝에 또 보면, 그게 아니고 반대입니다. ”하나님의 저주가 너희들과 함께 있겠다.” 그렇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는 것이 어떻게 하나님의 저주가 우리를 떠나지 않고, 함께 있다는 것이 될까요? 그것은 신명기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을 주면서 전제를 같이 깔아서 줍니다. 그게 뭐냐 하면, 너희들은 결국은 너희들만 사랑하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는 존재란 것입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 아무리 연구하고, 공부하고, 탐구해도 본인이 누군지를 몰라요. 본인이 어느 정도 되는 인간인지 몰라요. 뭐 그이유야 간단하죠. 인간이 지하고 똑같은 육체, 똑같은 인간들만 쳐다보고 하루 종일 사니까, 지가 잘난 존재라고 착각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예를 들어 부부를 생각합시다. 부부가 방에 같이 잠을 잘 때, 또는 자식과 같이 가족을 이룰 때, 가장된 입장에서 아내와 자식을 보면서 뭘 느끼겠습니까? ‘그래 내가 이렇게 고생한 보람이 있어. 내 덕에 아내는 곤히 잠을 자고 내 덕분에 애들은 씩씩하고 토실토실하게 밥 잘 먹고 살아주는구나. 역시 나는 가장으로서의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낙제점은 안 받겠지.’ 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사람은 주변의 사람들의 어떤 실적을 통해서 자기가 이 땅에서 잘나서 계속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찾는 방식으로 항상 자기 평가를 내리게 마련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육체를 가질 때, 이 육체에서 그런 본성들이 나와요. 그런데 이런 육체가 옛날 이스라엘 사람과 우리가 똑같은 육체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같은 아담의 자손이기 때문에 변하지 않는 진리예요. 그러니까 옛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기 주제 파악이 안 된다는 겁니다. 주변에 있는 똑같은 인간들과 항상 쳐다보면서 ‘그래 너도 잘났지만 너보다도 이런 점에서 내가 장점을 가졌어. 항상 자기를 긍정하는 쪽으로서 세상에서 자기를 파악하거든요.

그런데 거기에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줘버린 겁니다. 말씀을 주니까, 자기 원래 육체의 본성이 뭐냐. 지 잘난 맛에 살아가는 것이 육체의 본성입니다. 그런데 육체의 본성에다가 말씀을 주니까 말씀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면, ‘하나님 이런 말씀을 내가 지켜보니까 역시 하나님 보시기도 내가 잘난 사람 맞죠? 하는 식으로 자기 긍정적으로 해석을 해온 겁니다.

바로 이러한 인간적인 자기 무지 자기 주제 파악 안 되는 것을 까발리면서 그 다음에 하나님은 고집대로 원래 말씀이 의도하는 대로 꾸준히 말씀이 떠나지 않는 겁니다. 마치 이래 봅니다. 아주 진드기 같아요. 귀신이 떨어지다가 안 떨어지고, 계속 붙어 다니는 거와 똑같은 겁니다. 계속해서 잔소리를 해대는 겁니다.

이 말씀을 지켜라, 저 말씀 지켜라, 십계명 지켜라, 어떻게 지켜라. 신명기에 나오는 율법 보면 정말 지킬 수가 없을 정도로 완벽한 것을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몸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정성을 다하여, 목숨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과연 이것이 인간에게 성사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렇게 변명합니다. ‘하나님이여, 최소의 노력을 다해서 지키려고 노력하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가 완전치 않다는 것을 하나님도 익히 아시는 바잖아요. 그러니까 얼추 지키려고 애를 쓰고, 최선의 노력을 다할 그럴 마음만 가져도 곧 지킨 것으로 해서 우리에게 계속 복을 주시기 바랍니다.’ 라는 식으로 우리는 해석해 버립니다.

그러나 신명기 끝에 보면 하나님은 양보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어기면, 너는 저주 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의 가장 큰 잘못은 나를 저주 하시는 분과 동행하지 않고, 바로 나를 칭찬해주는 가짜 메시야, 가짜 그리스도를 마치 동행하는 자로 우리가 채택 했다는거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겁니다.

그리고 난 뒤에는 지금 이 세상은 우리가 보기에 고요함이다. 아무 문제없습니다. 모든게 정상으로 돌아갑니다. 심판! 언제 심판 받았어. 저주! 난 저주 안 받았어. 요한계시록 8장 1절에 보니까, 마지막 최후의 심판, 우리가 울고불고 하는거 내가 예찰하는 모든 것을 다 부셔 버리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고요의 시간을 허락했습니다. 잠시 고요한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 하나님 하지만, 우리는 그 때 뿐이고, 다시 돌아서면 내가 좋아하는 세상으로 섞여서 다시 환원돼 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자신이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거짓말이 되고, 우리 자신도 심판 받아야 될 세상 속에 섞여서 어쩌면 그것이 가장 우리다운, 가장 세속다운 그 세속으로 항상 우리는 그 자리로 되돌아오는 속성을 마음껏 표현하면서 이 땅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심판은 이미 결정 난 상황입니다. 우리가 착하게 살아도 심판받고 악하게 살아도 심판 받습니다.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요한계시록을 주신 거예요. 우리의 어떤 생각과 상관없이 이미 하나님의 심판은 결정되었고, 세상이 불바다 되는 것은 이거는 당연한 마감 절차에 해당 된다고 봅니다.

그러면 끝으로 우리가 이 성경을 볼 때에 새삼스럽게 어떤 기쁨과 어떤 행복을 느끼느냐하면 그동안 쓸데없는 곳에 마음을 너무 빼앗겼다는 거예요. 그것이 우리의 스트레스를 낳게 했고, 우리를 정신적으로 피곤하게 만들었어요. 우리를 땜질할 필요 없는 실적과 업적에 너무 마음 빼앗겼습니다. 그 성공 실패 여부에 우리의 혼이 다 나가버렸어요. 정신을, 시간을 다 소모시킨 거예요. 우리의 기를 다 빼앗아 갔습니다.

이제는 그 업무를 주님 소관으로, 주님한테 넘겨주세요. 넘겨주시고 우리를 심판 한다는 이야기가 기쁜 소식으로 들을 때 이것이 바로 주의 말씀과 함께 있는 구원받는 성도가 되는 겁니다. 성도는 내 계획에 스스로 피곤해 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의 계획 속에 나를 넘김으로 말미암아 주께서 시키는 대로 살아가면서 과연 주님의 심판이 정당함을 우리가 외부의 생활을 통해서 증거 하는 자가 바로 곧 성도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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