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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대전20130528b-마13장36절(비유)40강- 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마태복음

대전20130528b-마13장36절(비유)40강- 이 근호 목사

이름 : 공은주(IP:218.147.193.250)

대전20130528b-마13장36절(비유)40강- 이 근호 목사

마태복음13장36절부터 하는데요. 35절 난해합니다. “이는 선지자로 말씀하신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감추인 것을 드러내면 비밀일까요? 드러나도 비밀이 아닐까요? 여전히 비밀이죠. 드러났다고 해서 비밀이 아닌 게 아니고 드러남으로서 비밀이 있다, 라는 것이 새롭게 부각이 되는 겁니다. “너희들 비밀이 없다고 생각했지?” “있지롱, 비밀이 있는 거야.” 비밀이 깨지고 해소되는 게 아니라 비밀이 흐지부지돼서 비밀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고 비밀이 등장하는 거예요.

하나 쉬운 예인데요, 제가 사마귀가 전에 났었어요. 피부가 있는데 안에 사마귀 핵이 들어있어요. 피부가 딱딱해도 너무 딱딱해요. 약을 바르니까 딱딱한 피부가 벗겨지면서 녹아지고 핵만 표면으로 나오지요. 이게 복음의 비밀이에요. 처음에는 이렇게 있으니까 이 세상에 비밀이라는 그 자체가 있는지, 없는지 안 되잖아요. 그런데 이게 드러나니까 이게 비밀로 두드러지는 거예요. 비밀로.

그러면 이것은 뭐냐 하면, 이것은 비밀이라서 뭐가 안 되느냐 하면, 비유로만 이야기할 수밖에 없어요. 선풍기로 설명하자면, 선풍기하고 ‘선풍기’ 일치되잖아요. 이건 칠판인데 선풍기 아니잖아요. 그런데 선풍기라고 하면 되는데 ‘조용한 바람’이러면 이것은 불분명하잖아요. 이것만 조용한 게 아니고 다른 것도 조용한 바람 있잖아요. 계곡에 부는 바람 조용한 바람 있잖아요. 바다에서 부는 조용한 바람, 이건 선풍기는 아니잖아요. “에이~ 조용한 바람은 바닷가에 있지, 선풍기하고 바로 이야기해.” 이리 되잖아요. 그러니 비유로 이야기할 때는, 일치되지 않을 때 비유로 이야기하는 거예요.

지금 이 비밀이 나타났을 때, 주님은 비밀로 했다 말이지요. 주님 눈에는 비밀이지만, 다른 사람 눈에는 비밀입니까? 아닙니까? 다른 사람들은 이 덮여있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비밀로 안 보이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비유로 이야기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들 보기에는 “에이~ 천국 다 압니다. 천국 이런 거지.”라고 두리 뭉실 넘어가겠지만, 그것은 너희들이 내가 비유로 이야기했다는 것을 감안해 보면, 우리가 보는 세계관으로서는 도저히 천국은 이해가 안 된다는 이야기를 비유로 이야기한 겁니다.

하나의 예로 들어보면, 44절 봅시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되어 있지요. 이게 비유인데요. 천국은 비밀인데, 비밀에 대한 비유를 이렇게 했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비밀로 보지 않고, 비유로 보지 않고, 이렇게 해석하는 거예요. 제가 하는 해석을 들어보세요.

천국은 밭에 보이는 보화와 같으니, 아하, 천국은 보화 같으니, 같으니 빼버리고 ‘천국은 보물이다’ 그런데 보물이 땅에 감추어져 있다. 그런데 이걸 발견한 사람이 농부라 합시다. 그러면 농부가 이걸 발견했다. 그러니까 내가 곧 뭐가 된다? 내가 곧 농부다. 농부인데 교회 가니까 누가 목사님이 복음을 이야기하더라, ‘아, 천국을 발견했다.’ 그래서 전에는 절에 다녔는데 집에 가서 ‘야아~ 이제부터는 절에 안 가고 그 교회가야지.’ 하고 그 교회가가지고 복음을 들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천국은 보화와 같으니”이것은 바로 내가 지금 방금 복음을 알고 천국을 가게 된 요 상황에 대해서 해석한 것이다. 라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맞는 해석입니까? 틀린 해석입니까? 틀린 해석이에요. 보고 기뻐했다는데 내가 지금 천국알고 기뻐했으니까 “딱! 나네. 딱! 내 경우네.”라고 한다면 이 해석은 엉터리해석입니다. 그래서 이게 어려운 거예요.

6월6일 날 현충일 날, 우리교회에서는 요한계시록 해석해주는 날이에요. 12시부터 특강이 있는 날이에요. 요한계시록 해석도 마찬가지에요. 이 해석이 왜 잘못되었는가 하면, 이 모든 예수님의 말씀은 주체 자가 누구냐 하면, 예수님에게 주체 자로 돌아가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로채요. 예수님에게 돌아갈 해석이 중간에 나라는 주체가 허락도 없이 끼어든 거예요. 끼어들어서 이 농부의 기쁨은 곧 나의 기쁨이다, 라고 해석을 해버리는 겁니다. 만약에 이런 해석해가지고 나중에 집에 불이 나거나 사업에 부도나면 이 기쁨 다 없어져버려요.

그러니까 아! 그때 기뻤는데...,했지만 막상 어떤 자기의 우환이 있거나 어려움이 생겨버리면 로마서8장에 나오는 말씀처럼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나 7가지 들이닥치면 어떻게 됩니까? 이건 죽으란 이야기잖아요. 그런데 그 뒤에 뭐냐, 어떤 경우라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아니한다, 되어 있거든요.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일부러 7가지를 내 환경에 유발시켰다, 이렇게 되잖아요. 이렇게 못된, 악한 하나님이 어디 있어요? 곱게 주지, 이왕 천당 가는 거 이쁘다고 주면 되는데 핍박, 곤고 왜 주시는 거예요? 그것은 우리를 일부러 괴롭히려고 하는 게 아니고 모든 영역에 있어서 세상을 볼 때, 내 주체를 집어넣고 해석하는 그와 같은 육적인 버릇이 있음을 발각시키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모든 해석을 자기 위주로 해석하는 겁니다.

교회 같으면, “여러분들은 잘 오셨습니다. 우리 교회는 밭에 숨겨놓은 보물 같은 교회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잘 오셨어요. 저 쪽 가면 큰일 날 뻔 했습니다. 우리 교회에 잘 오셨습니다. 여러분은 행운입니다.”라고 해석하는 게 엉터리해석이라는 겁니다. 모든 해석에 자기를 집어넣는 거예요. 아까 국가가 왜 있느냐 질문했지요. 그 이야기를 해야 되는데, 로마의 핍박에 의해서 유대인들이 나왔잖아요. 그런데 로마라는 그 국가에 유대인들이 왜 살았어요? 그냥 나오면 되지, 왜 사냐 말이지요. 이것은 나는 나를 위해 살기위해서 국가가 보호해 주기를 원하는 거예요. 내가 혼자서 못 사니까. 예를 들어서 머리를 깎는다. 그러면 이발사가 있어야 돼요. 양복을 입니다. 양복쟁이가 있어야 돼요. 또 빵을 먹는다, 빵 만드는 전문가가 있어야 돼요. 그런 것들이 모여서 국가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 사람은 주변에 나의 필요한 것들을 모으는데 그 모으는 가치가 전부 다 숫자로 표시하면, 둘이 아니고 하나가 되는 거예요. 왜냐 하면, 나를 위해서. 2002년 월드컵 할 때, 서울광장에 모였지요. 그 때 만약에 우리가 4강에 못 올라갔으면 다들 실망했겠지요. 그런데 월드컵이 밥 먹여줍니까? 아니거든요. 국가라 하는 것은 뭐냐 하면, 나의 환상이고 나의 대체물이 되는 거예요. 그 환상이 바로 로마인데, 로마가 유대인들이 폭동을 일으키니까 사실은 유대인들끼리 싸웠어요. 나라에서 유대인들 다 나가라 해서 나온 거예요. 그렇다면 국가는 우리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국가입장에서는 너 같은 것들은 하나의 병균, 바이러스처럼 나쁜 세균처럼 역할을 할 때는 나가라고 할 때, 그동안 우리가 뭘 믿었어요? 결국 우리는 나의 이상 대행 체를 믿다가 발등 찍힌 게 되지요.

그러면 유대인들이 쫓겨 온 것은 결국은 아굴라, 브리스길라 입장에서는 이 세상의 국가라는 것도 사실은 내가 원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나를 실망시키는 허무한 것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지요. 국가라는 게. 그래서 특히 성경의 대학 강사들이 이런 게 있어요. 우리는 뭐냐 할 때, 두 왕국으로 설명해요. 우리는 하늘나라의 백성이며, 동시에 이 나라에 시민으로 산다, 이게 말이 안돼요. 왜냐 하면, 한 쪽을 사랑하면 반드시 한 쪽을 미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두 나라를 섬길 수 없어요. 가이사 것은 가이사에게 주라는 말은 세금 내라는 말이 아니고 잊어라, 이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내가 지금 너희들에게 당하지만, 지금이라도 하늘나라 천사가 와서 나를 건져낼 수 있다, 다만 너희들로 하여금 허락한 거지 나를 체포하라고.

그러니까 성도라 하는 것은, 성도의 국가라 하는 것은, 일부러 떠날 필요는 없어요. 주께서 살려주기 위해서 허락하셔서 이발사도 있고, 콩나물 키우는 사람도 있고 그래서 모든 주변에 대해서 감사해야 됩니다. 취직 잘했습니다. 나가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거예요. 그래서 감사할 뿐이지, 그 사람을 위해서 충성, 봉사할 필요는 없어요. 간, 쓸개 다 내놓을 필요는 없어요. 남편하고 결혼한다고 남편과 남편시집한테 충성, 봉사하지 마세요. 괜히 하다가 사랑과 전쟁 납니다. 4주 기간 조정 받을 수가 있어요. 괜히 자꾸 기대한다는 자체가 나쁜데, 왜 기대대로 부응 안 해주냐고 상대방에게 욕하지 마세요. 그저 술 안 먹으면 고마운 줄 아세요. 모든 일에 그저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고 감사하면 그게 하늘나라 속한 사람이에요. 하늘나라만 속하면 되지, 세상나라 속할 필요 없어요. 우리는 하늘나라 속하면 되지, 시집갔다고 시집사람 될 필요는 없어요. 감사하면 되니까. 지금 아주 잘 가르치고 있는 겁니다.

하나의 주체라는 이 문제가 개인을 이야기한 거 같지만, 개인을 둘러싼 같이 있는 환경 있잖아요. 국가라는 환경, 같이 돌아가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가 만든 천국과 돌아가는데 이것을 피하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비유로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럼 이걸 대체하는 것이 뭐냐, 하나님의 나라지요. 제가 이리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퉁 해가지고 “아니, 지금 우리가 하늘나라 속했잖아요. 그러니까 하늘나라가 내 나라인데, 어떻게 당신은 내 나라 따로 있고 하늘나라 따로 있다고 이야기합니까? 그러면 우리가 섭섭하지요.” 이렇게 분명히 이야기할 거예요. “우리가 성령 받아 하늘나라 백성 같으면 내 나라가 하늘나라고 하늘나라가 내 나라인데 어떻게 당신은 둘로 분리합니까?” 이렇게 이야기할 거예요.

자, 보세요. 내 나라가 내가 여기 있고,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은 주체고, 주체는 둘이서 하나의 실체가 돼요. 내 나라 천국도 실체가 됩니다. 실체가 되어버리면, 하늘나라는 이 땅에서 실체가 아니고 뭐가 되느냐 하면, 사건이 되지요. 우리는 내가 낳은 실체에다가 사건을 집어넣어보면 이게 하늘나라가 사건이 아니고 이 안에서 하나의 어떤 고정된 자리를 마련하는 겁니다. 한 자리가 배정을 받게 돼요.

제가 20대 때에 유명한 전도하는 방법에 4영리가 있어요. 그림으로 한 번 그려보겠습니다. 가운데에 의자가 있고 사람이 의자에 앉아 있다면, 우리는 여기서 많은 배정을 받게 됩니다. 요거는 교회시간, 요거는 학교 갈 시간, 요거는 직장 갈 시간, 가정에 있는 시간, 잠자는 시간 이렇게 배정을 하게 되지요. 여기에 만약 천국이 있다면, 하나님의 나라, 내가 창안한 나라, 내가 여기 중앙에 있고 하나의 배정이 돼버리지요. 그러면 직장에 열중할 때는 자연적으로 하나님 나라는 소홀히 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정에 있을 때는 교회에 소홀히 할 수밖에 없고, 교회 갈 때는 학교를 또 잊을 수밖에 없고, 그러니 우리 예배시간에 보면 휴대폰 막 울려요. 그럴 때 설교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연주해봤잖아요, 연주할 때 삐리리 삐리하면 교양 없고 짜증나지요. 설교할 때도 마찬가지에요. 설교할 때 상대방 보고 하는데 상대방이 도망을 쳐버리는 거예요. 순간적으로 멘붕 상태에요. 교회 왔는데 집에서 전화 와버리면 갑자기 집에 간다, 말이지요. 이렇게 되지요.

그래서 4영리에서는 의자를 뭐로 바꾸는가 하면, 의자에 예수님으로 바꾸라고 하지요. 문제가 있어요. 뭐냐 하면, 예수님으로 바꾸었을 때, 나를 가정에 있는 시간으로 넣읍시다. 이걸 쳐다보는 내 자리가 진짜 내 자리는 바깥에 앉아있는 거예요. 이걸 머리속으로 그리면서 바깥에 있는 거예요. 수시로 있으면서 바깥에 있는 내가 “바꿔, 바꿔, 자리 예수님 드려야지, 왜 니가 앉아있어?” 이 안쪽을 바깥의 내가 조종해요.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합니까? 이 영원한 딜레마를. 이런 난점이 있어요. 그래서 이걸 바꾸기 위해서 바깥쪽에서 뭐하느냐 하면, 기도를 하네, 회개를 하고 “주여, 자리를 바꿔서 미안합니다.” 하고 또 반성하고, 이것은 끄덕도 없어요. 숨어있는 바깥의 나는 끄덕도 없어요.

그래서 차라리 이렇게 하지 말고 나를 아예 중간에 집어넣어버리세요. 나를 의자에 앉혀버려요. 앉아버리면 우리는 아까 한 거처럼, 육에 속한 사람처럼 순 내 중심으로 생각하잖아요. 이것을 누가 지켜본다? 예수님이 지켜보는 이것이 정답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뭐가됩니까? 우리는 죄인이고, 예수님은 의인이고, 요 관계 때문에 우리는 죄인이 뭐되고? 의인되고. 이 안에서, 요 틈새에서 예수님의 피에 공로만 드러나고. 이게 정답이에요. 주님이 지켜보고 있다. 항상. 왜? 우리는 항상 나만 사랑하기 때문에. 예수고 뭐고 항상 나만 사랑한다.

그런데 그것을 주께서는 지금도 용서하고 있다는 사실, 이 사실을 아니까 육에 속한 사람은 여기에 갇혀있지만, 영에 속한 사람은 주님과 내통돼 있기 때문에 여기서 솔솔 뭐가 빠져나오는가 하면, 감사와 찬양과 기쁨을 드리게 되어있습니다. 성경에 주 안에서 찬미하라, 에베소서5장에 있습니다.

이걸 만약에 이렇게 안하고 내 안에서 찬송을 해버리면, 찬송을 잘하는지 감시하는 내가 있어버리면 바깥에 세워 놓으면 안 되잖아요. 주님은 의자 안에 앉아 계시고 나는 여기서 찬송하고 바깥에 있는 내가 "찬송 똑바로 해! 찬송하면서 어딜 농담해!" 특히 찬송하면서 제일 고민이 뭐냐 하면, 이미 4절 좀 하게 되면 지쳐요. 아이고, 노래가 길기도 길어라, 아이구, 5절까지 있네 이거. 아~~ 짜증나 씨~ 찬송가 누가 정했어? 아우~ 찬송하면서 짜증내는 사람 있어요. 사도신경하고 주기도문할 때 어떤 때는 은혜 되는데, 어떤 때는 길고, 후다닥 해쳐버리고.

자, 비유이야기 해봅시다. 비유란 안에 들어있는 점선의 비밀을 이야기하는데 그냥 비밀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고 바깥의 실선으로 되어있는 실체를 뚫고 비밀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비유가 따로 있다고 하면, "저, 말이지요? 나, 말이지요?" 하고 눈에 보이는 실체, 자기가 경험한 이걸 가지고 이 비유에 대해서 온전한 해석이라고 착각하는 현상을 유발합니다.

그러면 이 점선은 어디 있느냐, 점선은 착각을 유발하게 되면 주님께서 "아니다. 그거 아니거든." 할 때, 우리는 "그러면 뭡니까?" “그것은 니가 알바가 아니고 내가 너희에게 집어넣어주는 거야.” 그렇다면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우리는 우리만 사랑하잖아요. 우리만 사랑하는데다가 주님께서 드릴을 가지고 구멍을 뚫어요. 구멍을 뚫어서 구멍이 모이면 거기에다가 주님께서 친히 뚫어준 구멍에다가 친히 주께서 성령을 담습니다.

구멍을 뚫으면 우리는 남의 집에 와서 왜 공사를 하느냐고 우리는 주님이 하는 일을 마귀가 하는 일로 착각해서 "내 인생 이렇게 꼬이면 저는 주님 안 믿을 수가 있어요. 주님을 사랑 안할 수가 있습니다. 주님 조심하세요." 우리 나름대로의 극단적인 저항을 모든 힘을 다하여 원상회복시키기 위해서 내 인생 안 꼬이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하여 전력을 다하여 우리는 막습니다. 주님보고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주께서 내 고상한 인생, 이러한 낭패주시면 안됩니다. 이러면 주님 믿는데 힘듭니다. 남들에게 이렇게 잘됐다는 소리를 해야 남들에게 전도를 하는데 이렇게 나오시면 전도가 막힙니다. 내 인생 이렇게 꼬이면 남들 보기에 얼마나 놀리겠습니까? 이러시면 안 됩니다." 라고 자꾸 거부하지요.

그 예가 뭐냐 하면, 예수님이 "내가 죽는다." 하니까 베드로가 예수님보고 "이러시면 안됩니다. 죽으면 안됩니다. 우리가 있는데 왜 죽어요? 주님 죽으시면 우리 모두 3년 동안 따라다닌 것이 모든 게 날아갑니다. 하나님 이리 하시는 거 아닙니다." 이렇게 하니까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뭐라 합니까? "사단아, 물러가라. 니가 나를 넘어지게 하는구나!" 서 있는 자를 넘어지게 하니 그 자리에 없는 거죠. 넘어져버리니까 안 보이죠. 니가 나의 모든 하는 일을 넘어지게 한다. 그런데 그 주체는 누가 한다? 사단이 하는 거죠.

악마라 하는 것은 뿔 달린 존재가 악마가 아닙니다. 피 줄줄 흘리고 말을 하고 십자가 든 게 악마가 아니라 악마라 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니고 내 의사를 존중해 주는 게 악마에요. 내 기도대로 이루어지는 게 악마라니까요. 내 기도한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를 믿고 내 기도를 믿게 돼요. 기도를 전에는 몇 분 동안 했더라? 그 때 소나무를 뽑았는가? 안 뽑았는가? 기도원에 그 반반한 자리 내 자리인데, 누가 차지하면 안 되는데 이런 거. 은혜의 자리인데 내가 먼저 차지해야 되는데. 앞자리에 이런 식으로.

내가 해왔던 것을 반복하고 싶어요. 왜? 똑같은 은혜가 나의 반복으로 인하여 똑같은 행함으로 해서 똑같은 결과가 나온 그 자체를 우리는 믿고 싶어 하는 거예요. 내가 원인이 되어서 내가 원인이 생겼던 그 결과마저 그걸 통합해서 그걸 나는 믿을 때, 비로소 나는 믿는 사람 맞다하는 확신이 들거든요.

도마가 뭐라 했습니까? 나는 보고서 믿는다는 거. 아까 정답을 말했지요. 의자에 누가 앉아있다? 내가 앉아있지요. 이게 도마가 얼마나 정확하게 보여줬습니까? 나는 내가 보고서 믿는다, 이 말은 지금까지 내가 내 것이라고 여겼던 모든 것은 내가 보고 내가 체험했던 것들만 내 안의 영역으로 이미 다 배정배치 할당되어 있다. 너는 이 자리에, 너는 저 자리에. 저 것은 언제 적 은혜고, 언제 응답받은 거고, 감사해서 헌금했더니만 복 주신 거고, 전부 다 내가 해서 이루었던 그 영역 속에 예수 당신도 들어오려면 내가 보고서 내가 선택해서 나의 간택 받아서 나의 채택 받아서 나한테 오라 이 말이지요.

그래서 제가 글을 썼잖아요. 요새도 주님은 오디션 받는다고. 오디션 봐서 하는 거예요. “제 점수는요?” 해서 제 점수는 98점해서 좋은 점수 받아야 내 좋아하는 예수가 내 안에 내 영역에 들어오는 거예요. 이걸 누가 이야기했습니까? 도마가 이야기했잖아요. 이 도마를 누가 구원합니까? 이미 예수님이 구원했잖아요. 그리니 제발 우리가 주님 믿는 체 하지 말고 어느 자리에 가면 됩니까? 죄인의 자리에 가면 됩니다. 참 쉽지요. 신앙생활 참 쉽지요. 요 자리를 인정하면 돼요. 현재 이렇게 살아왔다고. 나 밖에 모르는.

요렇게 하도록 딱 규정해야 그 다음부터는 나의 구원에 관한 모든 공로와 은혜는 내가 나 된 것은 내가 거기에 끼어들면 됩니까? 안 됩니까? 안 끼어들어야 됩니다. 많이 용서 받은 자가 많이 사랑받는 겁니다. 그야말로 100% 주님만 사랑하도록 하기 위해서 주께서는 요것으로 집어넣는데 이게 편한 것이 뭐냐, 비유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개뿔도 모르는 게 아는 척하면서 다 기어들어오는 거예요. 그래서 이것은 아니다, 라고 이야기 해주시는 그 고마움, 주님은 바로 그런 식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겁니다.

사람이 피곤한 게 자기가 안다고 하니까 그게 피곤한 거예요. 제가 몇 년 전에 로마의 폼페이 유적지 거기에 갔었어요. 폼페이 유적지의 가이드해가지고 1시간 반 만에 다 돌았어요. 들은 설명을 다 잊어버렸어요. 폼페이는 갔다 왔어요. 다 잊어버렸어요. 예수님은 믿는데 예수는 누구인지 몰라요. 그런데 얼마 전에 폼페이 유적에 대해서 설명해주는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야, 놓친 게 한두 가지가 아니구나!" 그러니 우리는 평생을 살면서 이미 구원은 받아 놓고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우리가 체험을 하기 위해서 주께서는 늘 상 되풀이 하면서 바로 우리 죄를 계속해서 일구어내시면서 너풀너풀 자꾸 죄가 나오면서 죄마저 용서해 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매일같이 우리에게 주시는 거예요. 이미 구원 받았기 때문에 그런 혜택을 받아요. 새삼스럽게 구원받아라, 하는 게 아니고 구원받았기 때문에 "아, 참 이것은 의인 줄 알았는데 이것도 죄이구나!" 늘 깨닫는 그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비유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비유가 나올 때, 이 비유는 내가 압니다. 5년 전에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하더라도 지금해석 해보면 "아, 이런 면이 있었네." "아, 이걸 내가 체험도 못해놓고 안다고 우겼으니 참 부끄럽구나!" 부끄럽긴 뭐가 부끄러워, 원래 인간이 그런데. 부끄러울 필요도 없어요. "주여, 원래 이 인간이 이것밖에 안 됩니다." 고백하면 돼요.

자, 그러면 비유를 해봅시다. 36절 봅시다. "이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사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밭의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 했지요. 가라지 비유가 뭐냐 하면, 24절에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천국은 ~하는 사람 같으니, 이게 성립이 안돼요. 왜 성립이 안 되느냐 하면, 천국은 어떤 공간 같으니, 이해됩니다. 천국은 어떤 나라 같으니, 이해돼요. 천국은 어떤 사람 같으니, 이해 안돼요. 사람은 갈비대 몇 개고 코가 하나고, 귀가 둘이고, 눈이 두 개, 이게 사람이잖아요. 사람이 천국 안에 사는 건 이해되는데 천국은 사람 같다는 말은 이해가 할 수 없어요. 이것은 건너갈 다리는 끊어졌어요. 천국은 사람 같으니, 이 자체가 성립이 안돼요.

천국은 고정돼 있는데, 사람은 움직이잖아요. 그러면 천국은 사람 같으니 하면 천국은 움직인다, 되잖아요. 그럼 천국은 어디 있는데? 천국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가 아니라 천국은 너희 안에 있다는 말도 어려워지잖아요. 그래서 예수님 말씀은 다 어려워요. 그 다음에 사람인데, 뭘 한다? 씨 뿌리는 사람 같으니, 사람도 어렵지만, 거기다가 추가가 되니까 더 어렵습니다.

천국은 뭐냐? 천국은 씨 뿌리는 사람 같으니. 이게 무슨 천국입니까? 이슬람교의 천국은 ~ 사람 같으니, 가 아닙니다. 액션, 행동이 아닙니다. 동적이 아니고 정적이에요. 천국에 가면 분수가 있어요. 그리고 예쁜 여자들이 있어요. 그리고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있어요. 여호와증인이 나눠주는 파수대의 깨워라, 표지 같아요. 거기 천국 보면 아름다운 것이 있어요. 천국은 공간이기 때문에 뭔가 그냥 있을 뿐이에요. 행함이 아니고 그 자리에 있어요.

그런데 여기서는 천국은 뭡니까? 씨 뿌리는 사람 같으니, 지금 공간이 아니고 액션입니다. 또 이해가 안 되는 게 있어요. 뭐냐 하면, 원수가 등장해요. 원수. 그러면 천국을 설명하기 위해서 사람이 있으면 안 되고 씨 뿌리는 거 있어야 되고, 또 뭐가 있어야 되고? 원수가 있어야 돼요. 원수, 씨 뿌리는 행위, 그 행위를 하는 사람, 이런 것들이 모였을 때 천국이 설명되지요.

정확히는 설명이 안 되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서 예를 들자면, 5일장 장터에 가면 야바위 꾼이 오거든요. 컵 세 개를 딱 놔요. 자, 돈이면 돈 먹기,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닙니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니니까 우발 사건이지요. 자, 여기 옵니다. 누가 한 번 태워 보세요. 바람잡이가 여기! 아이고, 오늘도 손해 봤네. 아이고, 내 참 실력이 없어서. 앴다 돈 만원주고. 또 다른 분! 또 너무 하지 마소! 요번에는 또 아주머니가. 나도 해볼게요. 한 번 해 보세요. 오! 맞췄네. 오늘도 십만원 나가네. 둘 다 바람잡이에요. 그래서 딱 노리는 게 있어요. 순진한 학생들, 할머니들, 소 판 할아버지. 컵 안에 주사위 있습니까? 없어요. 없는 거예요. 자, 여기 있습니다. 보세요! 보세요! 손놀림으로 빼버려요. 없다니까요. 아이고, 아저씨! 여기 있는 걸 가지고, 이럴 땐 있다니까요. 천 명이 와도 안 돼요. 그 야바위 중에 야바위가 예수님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려해도 없어요. "에이~ 없네." "여기 있지롱~" 그걸 주께서는 말씀대로 되는 거예요.

인간이 알아서 맞추면 십자가 죽을 이유가 없어요. 십자가라 하는 것은 죄를 씻기 위해서 십자가 지셨거든요. 그것도 대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그럼 세상은 뭐냐, 어린양이 필요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어야 돼요. 왜? 모두 죄인이어야 돼요. 몽땅 죄인이기 때문에 세상 많은 사람들이 뽑아서는 스스로 자기 죄 문제를 해결할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게 기정사실화 되어야 돼요. 그리고 어린양은 따로 와야 돼요. 야바위꾼. 따로 와야 되고, 사람들은 자기가 죄인인 것을 압니까? 모릅니까? 모르지요. 자기가 죄는 짓지만, 전적으로 죄를 지을 수 있다는 죄인은 아무도 인정하지 않아요. 심지어 이렇습니다. 내가 죄인인 것을 알아챈 것만큼은 의롭다고 하나님이여 좀 알아주세요. 라고 되어 버려요.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전적인 죄인이 아니고, 내가 죄인인 것을 알아챈 것은 죄가 아니고 의가 돼 버려요. 십자가 옆의 강도가 나는 강도입니다. 할 때 주님이여 저를 생각해 주세요. 할 때 "니가 오늘 밤에 낙원에 있으리라." 했잖아요. 그런데 사람을 보고 예수님께서 무조건 구원한 건 생각안하고 강도는 전적으로 나쁜 게 아니라는 거예요. 전적으로 죄인이 아니고 뭐는 하나 의롭다? 옆에 달린 예수님을 자기를 구원할 자로 믿은 고 행위는 의로운 거라고, 이렇게 생각하고 싶어 하는 인간, 그러니까 인간은 천국 못가는 거예요.

그것이 의가 아닌데, 그것마저 따로 뽑아내서, 뭐 하나 드리더라도 있어야 처음에 시작점이라도 있어야 이것마저 빼버리면 시작할 때도 없으면 아예 구원이 안 되잖아. 이리 하잖아요. 그게 인간의 종교의 마지막 한계에요. 그것마저 뺄 수 있는 위인이 없어요. 그러니 제가 말하는 게 답답한 거예요. 그것마저 빼버리면, 그러면 뭔가 하나 있어야 뭑가 그 사이를 접촉점이 있어야 되는데 그것마저 빼버리면 어떻게 구원받습니까? 그냥 말씀이 역사해서 하지요. 말씀이 역사해도 역사 할 만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로마서에서는 그리하지요. 니가 원하는 것도 아니요, 니가 달음박질 하는 것도 아니고, 오직 긍휼케 하시는 분으로 인하여 구원받는다. 로마서9장에 분명히 나와 있는 말씀입니다.

여기 원수, 사람, 씨 뿌리는 것 나왔다. 그러면 계속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이 원수가 어디 있다가 기어 나온 거예요? 주님께서 밭이 세상이라 했잖아요. 그럼 원수는 어디서 나왔습니까? 27절에 나오지요.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어디서 생겨나왔지요? 이제 오늘 강의 제일 어려운 대목입니다.

어디서 생겨 나왔느냐를 그렇게 질문을 한다는 자체가 인간은 예수님 말을 못 알아먹고 있는 바탕 속에 잡혀있는 거예요. 제 말이 어려운 거예요. "원수가 어디서 나왔지요?" 라는 말하는 자체가 인간은 지가 누군지를 모른다는 거예요. 부모가 자기 자식이 사고 쳐서 유치장에 가니까 부모가 아들에게 하는 말이 "이놈의 자식 어디서 나왔노?" 하잖아요. 평소에 자기 아들이 그렇게 나쁜 놈인 줄을 미처 몰라서 놀래서 이야기하잖아요. 몰랐던 거예요.

인간은 원수와 함께 기거하고 있으면서도 예수님이 등장할 때만 천국이 등장할 때만 원수가 튀어나오니까 "아이구, 이 원수가 어디서 튀어나왔지?" 나오긴 뭘 나와. 같이 살고 있었지. 어디서 나왔냐고 묻는 자체가 그 전에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냥 천국만 그저 지 죽어서 좋은 데만 살고자 하는 구원론에만 집착해 있었고 거기에 또 맞추어서 목사들이 또 "이리하면 구원받습니다." 하고 둘 다 짝짜쿵 해서 잘 먹고 잘사는 거예요.

실제로 주님에게는 관심 없고 지 구원받는 데만 관심 둬서 뭘 이용하면 뭘 믿으면 구원받습니까? 여기에 그만 성질이 급해가지고 거기에 덜렁 속아 넘어가는 거예요. 실제로 우리는 예수님이 중요한데 예수님보다 지 구원을 더 중요시 여겼다 이 말이죠. 마치 의자 안에 누가 들어있다? 내가 들어있으니까 죽으면 천당 간다. 이것을 자기중심으로 생각했다 이 말입니다. 주님께서는 이걸 천국의 능력으로 바꿔주면서 솔솔 이 말씀이 체험 화 시키는 겁니다. 그 가라지가 누구냐 하면, 바로 "제가 가라지입니다." 그럼 알곡은 뭐냐, "제가 바로 가라지라고 아는 이것이 바로 알곡입니다."하는 거예요.

주님의 말씀의 해석이 이리돼요. 알곡 그리고 시커먼 죽정이, 가라지, 따로, 따로에요. 예수님의 비유가운데는 따로, 따로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우리 자신도 누구인 줄 모르면서 우리는 아예 가라지 속에 속했기 때문에. 우리 안에 주님께서는 따로, 따로를 성취시키되 우리를 경유해서 요것 따로 나오면 우리는 하나의 영화를 보이는 필름이에요. 필름이라서 우리를 가지고 필름을 돌려버리니까 알곡이 나오고 가라지 나오니까 주님께서는 우리를 하나의 필름 통으로 활용하신 거예요.

죄인인데 뭐 됐다? 의인 됐다. 누구 덕분이냐? 예수님 오신 덕분이다. 예수님을 증거 하는데 어서 우리는 이 말씀을 다 경유하도록 그렇게 조치를 해주신 겁니다. 이게 주님의 말씀에 대한 해석이에요. 우리는 고정돼 있다고 생각하고 “주여, 천국이야기해 보세요. 제가 천국 말 잘 들으니까.” 이 고정된 주체가지고 주님의 말씀 들으니까 고정된 주체가 어떻게 될까를 생각하는 거예요. 자기가 사건으로 분해가 안 된 상태에서 그냥 고정된 상태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지키라면 지키겠다고 가는 겁니다.

그러니 말씀이 와가지고 완전히 난도질해서 다 쪼개버리니까 성경에서 바리새인 나오니까 내가 바리새인 짓하고 있고 성경에 사두개인 나오니까 내가 사두개인 짓하고 있고 세리나 창기 나오면 내가 세리와 창기 짓하고 있고 성경에 나오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기도하고 있고 십일조하고 나는 의인이다, 그런 이야기하니까 그게 바로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짓이고, 12제자가 예수님을 배반하니까 배신자가 바로 나고, 목회하면서 배신자가 나고, 성경말씀 자체가 완전히 우리 필름 통 안에 다 같이 들어있었어요. 잠복되어 있어요. 잠재성이 되어 있는데 주의 은혜로 하나, 하나씩 풀려나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경말씀은 지키는 것이 아니고 말씀이 우리를 가지고 스스로 말씀이 말씀을 성취시키는 그 과정에 우리가 동원예비군에 우리가 채용된 거예요. 종으로서. 마태복음25장에 기름준비하지요. 우리는 지혜로운 여자를 좋아하지요. 신랑 올 때 딱 준비하고 있다가 기름 얼른 준비하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바로 어리석은 여자인 것을 알려줘요. 그래서 기름준비하고 싶어도 다른데 보면 기름 생각도 안나요. 말씀이 들어오게 되면 말씀자체가 이미 기름 화됐기 때문에 우리는 기름에 녹아져버립니다. 우리가 기름 준비하는 것이 아니고 말씀이 우리를 기름 화시켜 버려요.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말씀이 오게 되면 깨어있을 필요 없어요. 말씀 왔다는 그 자체가 우리는 깨어져서 “주여, 내가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라는 고백이 내 고백이 아니고 주님의 역사하는 고백으로 튀어나오도록 그렇게 조치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움직이는 말씀이에요. 성경을 외우는 것이 아니고 아예 말씀을 가지고 노니까 우리가 움직이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평소에 그걸 느끼지 못하고 자꾸 말씀을 지키려고 하니까, 지키는 게 아니고 말씀이 아예 지키던 관계없이 우리가 말씀대로 지금 활용당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이해하는 것이 바로 성령을 받을 때는 모든 은혜의 주인공은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주께서는 자기 말씀을 빼먹지 않고 그대로 이루어지는 겁니다.

그런데 마태복음18장에 보면 부자청년 나오잖아요. 부자청년은 어떻게 했습니까? 주님을 주체로 봤고, 자기도 주체로 봤지요. 어릴 때부터 십계명 다 지켰습니다. 우리는 거기에 대해서 아주 호감이 가요. 왜? 평소에 우리는 주님 앞에서 그런 소리하니까 “주여, 제가 십일조 했습니다. 어떻습니까?” 꼭 자기를 비춰보는 것처럼. 주님께서는 들어보시고 못하는 걸해요. “모든 걸 다 팔고 나를 따라오너라.” 갑자기 그 사람 얼굴에 근심이 이는 거예요. 예를 들면, 이종분집사님 같은 경우 돈도 없고 없으니까 그런 이야기 안 해요. 다 팔고 하면, 벌써 다 팔렸습니다, 하니까 안돼요. “그 애 둘을 잊어버리고 나를 따라 오너라.” “그건 곤란합니다. 주여. 제발 그것만큼은 참아 그것만큼은 안 됩니다. 그 애 없이는 못 삽니다. 주여, 그럴 수가 있습니까?” 하고 근심해서 돌아가는 식으로 해요. 항상 주님은 자기 의가 있는 자를 뻥 뚫어야 주의 의가 담기는데, 우리는 같이 있기를 원해요. 주님의 의가 오게 되면 자기 의를 건드려서 와요. 라이벌 이거든요.

그래서 천국이라 하는 것은 우리가 고정된 주체가지고 하기 때문에 천국은 고정됐다고 하는 것이 편해요. 우리는 그렇게 이해하고 싶어요. 왜? 그 자리에 고정된 내가 집어넣을 수 있기 때문에. 천국을 그려 놓고 내 그림을 그리듯이, 내 얼굴을 거기다가 집어넣듯이 그걸 집어넣으면 되니까. 주님께서는 액션! 행위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틈새 속에서 다 삐져나와요. 이런 행동, 저런 행동 가운데서 스물 스물 삐져나오지요.

사랑을 하면 안 되고 사랑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에요. 사랑은 스며들어야 돼요. 스폰지에 사랑이 스며들어서 뽑아낼 게 없어야 돼요. 스폰지 짜면 곤란하고. 물이 들어야 돼요. 물이 들면 염색이 돼가지고, 내가 어떤 남자를 사랑한다. 이것은 내 코가 내 코가 아니고 전부다 그 남자 코 같아요. 눈, 모든 내 신체가 그 남자에게로 다 스며들었어요. 그런데 그 사랑은 내가 애쓰는 그런 사랑이 아니고 그냥 밀려와야 되고 위에서 쫘~악 부어지는 거예요. 부어지게 되면 내가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휩쓸려버려요. 여자는 그렇게 돼요. 왜냐 하면, 자식이 그래요. 이건 호적파라 해도 헛말이에요. 마지막 최후는 엄마가 사랑하게 돼 있어요. 엄마는 곧 죽어도 애는 살려요. 비행기 사고 일어나면 애들은 사는 이유가 마지막 엄마가 순간적으로 애를 감싸기 때문에 어른은 죽어도 애는 살아납니다. 그 정도로 혈육적인 사랑은 강렬합니다.

주님의 사랑은 바로 우리가 “사랑합니다.” 하면 그 말 안 믿습니다. “여기서 그러시면 안 됩니다.” 못하게 합니다. 우리가 밥을 먹던, 화장실에 가던, 춤을 추든, 이미 그 안에 주님의 사랑이 다 스며들고 녹아져 있어 가지고 우리가 지 자랑질하고 까불 때 마다 불쑥 불쑥 죄가 나올 때 마다 하나님의 사랑도 같이 나오는 방법, 그런 식으로 천국은 이미 너와 함께 있으니라, 라는 말씀을 성취시키고 있습니다.

뭐 할 것도 없어요. 그냥 사시면 됩니다. 사도바울 그냥 살았어요. 사도바울이 계시 받았다 해서 아이고 조금 있다가 계시 올 텐데 해서 시계 안 팠습니다. 그냥 찾아온 거예요. 계시만 계시가 아니고 푹 자고 감사하면 그게 계시에요. 범사에 감사하라는 그 계시는 유난 떨 필요 없어요. 지금 살아가는 것이 내 노력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건강 안 해도 그냥 주신 것이고 다 지금 혜택입고 있는 겁니다. 알곡으로 살라고.

우리가 알곡 어떻게 압니까? 마지막 이 말씀으로 끝마치겠습니다. 바로 가라지가, 하나님의 원수가, 누구인지를 간파하는, 예수 그리스도 없이 사는 사람들, 십자가의 은혜에 무조건 은혜를 모르고 자기 행함을 믿으며 살아가는 사람, 그게 가라지인 줄 파악되시거든 여러분들은 알곡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그냥 살면 되는데 왜 그리 우리는 어떤 일을 하려고 설치는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이미 주님의 것으로 영광 돌리며 살고 있다는 것을 믿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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