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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13 대구강의 9] - [피 95] - 존재의 근원강의[피]

[13 대구강의 9] - [피 95] - 존재의 근원

이름 : 구득영(IP:203.223.97.152)

[13 대구강의 9] - [피 95] - 존재의 근원

13,05,20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오늘은 교재 284페이지부터 살펴보자.

** 곧 '너 자신을 부인하라'는 조치로서 주어져야만 비로소 기쁨이 동반된 십자가 복음을 증거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이야기는 '자기 부정'을 동반된다. 자기 부정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떠드는 십자가 피 이야기는 전부 거짓이다.

◈ 왜 자기 자신을 부인(否認)해야 하는가?

여기에 보면 "너 자신을 부인하라" 라고 하는데, 그런데 주님께서는 우리를 천국에 그냥 넣어주시면 안 되는가? 굳이 그런 것을 요구하지 말고 말이다. 그러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던 사고방식을 그대로 가지고 천국에 가서도 그것을 그대로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고 하니, 이 땅에 살 때는 힘들게 살았는데, 그렇게 고생해서 쌓아온 것을 천국에 가서 다시 수정하려고 하니 힘들다는 말이다. 그러니 이런 상태로 그대로 갔으면 좋겠다고 한다는 것이다. 다시 고치고 하지 말고 말이다.

하지만 예수님의 생각은 그것이 아닌데, "너 자신을 부인하고, 나를 따라오지 않으면 안 된다"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부자청년의 경우에는, 예수님을 따라갈 마음이 있었지만,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따라오라고 하니, 어쩔 수 없이 돌아가고 말았다는 것이다. 가고 싶어도 따라갈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천국이 있다. 혹은 없다" 라고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아예 천국에 갈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기를 부인할 의사가 전혀 없으니 말이다. 아니 미쳤다고 자기를 부인한다는 말인가? 우리 인간은 살아도 당사자인 본인이 사는 것이 최우선인데 말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 "자기를 부인하고 나를 따를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있을 것이다" 라고 하는 예수님의 말씀은 전혀 우리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는 것이다. 즉 우리 인간은 자기를 부인하면서까지 천국에 갈 수 없다는 말이다. 그렇게 없는데,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말씀대로 자기를 부인하게 만들어내어서 천국에 기어이 집어넣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천국에 간다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너무 염려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그건 전혀 우리의 소관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곳은 천국이 아닌데, 전혀 엉뚱한 곳이란 말이다. 그런 것은 가짜이고, 진짜 주님은 어떻게 하시는고 하니, 우리를 야무지게 붙잡아서, 말씀대로 자기를 부인하게 만드는 조치가 병행되면서 우리를 그 나라에 들어가게 해주신다는 것이다.

◈ 존재의 근원은 무엇인가?

그렇다고 하면, 천국에 가는 사람들이 알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고 하니, 그 원천이 도대체 어디기에 자기 부인을 해야하느냐는 것이다. 그 원천이 말이다. 계속해서 강의를 해보지만, 이 대목이 어려워도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사람이 이렇게 있다고 하면, 이것을 어려운 말로 존재라고 하는데, 그렇게 사람을 있게 하는 존재의 근원이 무엇이냐는 말이다. 존재가 여기 이 근원에서 나오기 때문에, 그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은 그것을 모르는데, 왜냐하면 과학은 있음에서 있음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있기 이전의 없음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그것을 의사에게 한번 물어보라는 것이다. "의사 선생님, 당신이 없을 때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라고 말이다. 물론 답변이 안 되는데, 그래서 "아니, 병을 고치려 와서 그런 것을 왜 묻습니까?"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의사에게 "물론 병을 고치는 것은 선생님에게 물어야 하는데, 그런데 선생님이 저를 천국에 넣어줄 수 있어요?" 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하겠는가? 본인도 천국에 못 가는 입장에서 어떻게 남을 넣어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이게 천국에 가는 문제이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제 몸이 아픕니다. 낫게 해주세요" 라고 하는 식으로 하면 안 되고, 그건 병원에 가야할 문제이고, 천국에 가려고 하면 하나님에게 무엇을 물어야 하는고 하니까, "제가 여기에 있기 전에 어디에 있었습니까?" 라는 것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곧 존재의 근원의 문제인데, 즉 뿌리에 관한 문제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을 산다는 것은 뿌리가 아니라 그 위의 문제인데, 즉 "일단 내가 있는데, 그 있는 내가 어떻게 버티는가?" 라고 하는 말이다. 신문이나 TV방송 등등, 그 모든 것들이 다 여기 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 '꽈당', 무너지지 아니하면 !!

근원의 문제는 오직 성경말씀만이 이야기하는데, 복음만이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근원의 문제에 접근하게 될 때는 위의 것이 무너지게 되는데, 왜냐하면 위의 것은 우상이니 말이다. 그렇게 자기가 '꽈당' 하고 무너지게 되는데, 물론 그 무너지는 시기도 치매에 걸리지 전에 무너져야 한다는 것이다. 치매에 걸리면 무너져도 효과가 없다는 말이다(ㅋㅋ).

그러니 "내가 왜 이렇지? 아니, 내가 왜 이렇게 살지?" 라고 하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질문을 하는 것은 아직 정신이 제대로 남아있을 때 이야기라는 것이다. 치매에 걸리게 되면 무너지고 있으면서도, 정작 존재의 근원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아직 치매에 걸리기 이전이지만, 아닌가요? 언제나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른다고 여기고, 항상 이 근원에 대해서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 병을 낫게 해주세요" 라고 하는 것은 의사에게 묻고, 또한 "돈을 벌게 해주세요" 라고 하는 것은 주식투자나 금융전문가에게 물으면 되고 말이다. 하나님에게 그런 것을 가지고 나오지 말라는 것이다.

◈ 어떻게 '나'를 바꿔치기 할 수 있는가?

지금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근원에 대한 문제인데, 그냥 지금 우리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구원을 시켜주면 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자기 자신을 부인하라고 하니까, 어떻게 부인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부인한다는 것은 바꿔치기를 한다는 말인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달랑 몸뚱아리 하나뿐인데, 어떻게 바꿀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바꿀 것이 있어야 바꾸든지 할 게 아니냐는 말이다.

그러니 예수님이 "자기를 부인하라" 라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나는 안 돼. 이런 몸으로 천국에 간다는 것은 천국을 욕보이는 것이야" 라고 하는, 그렇게 되어야만 천국에 간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기를 부인하려고 하면 뭔가 있어야, 즉 "아하, 저쪽 천국세계는 나에게 어처구니가 없어. 저런 세계에 내가 들어간다는 것은 말이 안 돼" 라고 하는, 그런 특정한 상황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나라오너라" 라고 하실 때,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이니까, 예수님 앞에서 자기를 부인하라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 앞에서, 예수님의 옷차림이 어떻고 키가 어떻고 하는 게 아니라,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살다가 돌아가셨는데, 그럴 때 "저 분은 왜 죽으셨지?" 라고 예수님 앞에서 자기 인생을 돌이켜 본다는 것이다.

그러니 "예수님은 나의 죄 때문에 죽었다" 라고 하는 말씀 앞에서, 우리가 자기 나름대로의 인생을 살았다고 하는 그 방향이 전혀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었음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가 추구하는 방향은 전혀 천국과는 다른 곳이라는 것을, 그런 사고방식에 지금 우리 자신이 몰려있다는 것을, 바로 예수님의 방식 앞에서 그렇게 비추어본다는 말이다.

◈ 도대체 무엇이 인간을 떠 바치고 있기에?

여기서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예수님이 "자기를 부인하라" 라고 했을 때, 그 자기를 부인하라는 근거가, 도대체 무엇이 인간을 떠 바치고 있기에, 그렇게 자기를 부인하라는 소리가 여기 밑둥치 뿌리에서 올라오느냐는 말이다. 바로 그것을 이 시간에 한번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우리가 삽을 가지고 우리 있던 곳의 땅을 파면 해결이 되는가? 일본말로 수건포라고 하는데, 그것을 가지고 자기 바닥을 파면, 거기서 자기 근원이 나오겠느냐는 말이다. 자기 근원을 파려고 하는데, 도대체 방법이 있어야 파든지 말든지 할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공부를 하면 되는가? 공부는 하면 할수록 바닥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머리 속에 들어가지 뿌리로는 접근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비로소 성경만이 여기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게 교재 285페이지에 나오는데, 한번 살펴보자.

** (바. 피와 성도의 만남) 히브리인들이 애굽에서 빠져 나오면서, 애굽은 죽음이 지배하는 제국인 것을 알게 되었다.

◈ 구원 = '히브리인들 + 애굽 + 빠져 나옴' !!

여기에 보면 "히브리인들이 애굽에서 빠져 나오면서" 라고 되어있는데, 여기에서 먼저 1번으로 '히브리인들'이 나오고, 2번으로 '애굽'이 나오고, 그리고 3번으로 '빠져 나옴' 이라는 것이 나온다는 말이다. 이 세 가지를 합쳐서 '구원' 이라고 하는데, 그러니 구원이 되려고 하면 다른 이방 민족들은 안 되고, 히브리인들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 '히브리인들' 이라는 것을 분석해보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언약으로 인해서, 없었던 민족이 새로 생겼다는 것이다. 없던 민족이 말이다. 요셉으로 하여금 이방나라인 애굽의 국무총리까지 되게까지 하시면서, 하나님께서는 기어이 아브라함의 자식을 하늘의 별같이 바다의 모래같이 많아지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번식하는 장소가 가나안이 아닌 애굽 땅인데, 하나님의 작전이 놀랍지 않은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하늘의 별같이 바다의 모래같이 많아지게 하겠다고 하셨는데, 그리고 4대만에 나와서, 한 대를 100년으로 잡아서 거의 400년으로 보면 되는데 말이다. 그렇게 400년만에 나와서 약속의 땅인 이방민족의 땅인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해주겠다고 약속을 하셨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약속을 해놓고는, 함의 땅인 애굽의 땅에 가서 번창하도록 해서, 다시 함 족속이 살고 있는 가나안 땅에, 그 땅을 아브라함의 자손인 셈 족속의 입장에서 정복하게 될 때, 그것은 곧 함 족속 뒤에는 저주가 따르고 셈 족속 뒤에는 축복이 따른다고 하는 노아의 언약을 그대로 따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처음부터 언약이고 약속이고, 그렇게 언약대로 약속대로 실시가 된다는 말이다.

◈ 어, 살아있네 !!

그러면 구원은 무엇인고 하니, "이미 약속이 된 자에게 약속대로 주어진다" 라는 것이다. 약속이 된 자에게 약속대로 말이다. 역사라는 무대 위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언약은 죽지를 않았다는 것이다. '범죄와의 전쟁' 이라는 영화에 보면 유명한 멘트가 나오는데, "살아있네!" 라고 말이다(ㅋㅋ).

하나님의 언약은 살아있다는 것인데, 그렇게 약속이 살아있으면 '나' 라는 것은 무엇인가? 자기를 부인하려면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죽어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기는 매일같이 죽어있는데, 굳이 자기는 살아있지 않아도 되는데, 무엇만 살아있으면 말인가? 약속만 살아있으면 말이다. 그런 약속이 살아있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죽어있는 우리를 매일같이 살게 하신다는 것이다.

어제 제가 오후설교 시간에 무엇이라고 했는고 하니까, "내가 있다는 것이 근거가 없다" 라고 했는데, 그게 무슨 의미인가? "주님이 보시기에 나는 없는 존재인데, 복음이 있고 말씀이 있으니, 그 말씀이 말씀이 되게 하기 위한 그 조건하에서만 내가 살아있다" 라는 말이다.

그래서 "내가 여기에 있는데 왜 없다고 하는가?" 라고 하면, 주님이 보시기에 천국에 없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즉 "그 사람이 천국에 왔나? 안 왔단 말이지? 그러면 없는 존재야"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천국에 나타나지 않으면 있으나마나한 존재라는 말이다.

그러니 항상 우리의 관점이 아니라, 약속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유치부 아이들도 다 아는 내용인데, 즉 "구약은 옛날 약속이고, 신약은 새로운 약속인데, 그것을 합쳐서 신구약성경이라고 한다" 라는 것을 말이다. 성경은 약속인데, 그것은 신실하고 성실하게 완성이 되는 약속이라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약속이라고 할 수 없다는 말이다.

◈ 다시, 도대체 근원에 무엇이 들어있기에?

지금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고 하니, 이 근원에 무엇이 들어있기에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 거기에서 왜 자기 부인이 나오느냐는 말이다. 즉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도 그냥 천국에 넣어주면 되는데, 왜 그런 조건을 다느냐?" 라는 것이다.

자기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그런데 자기를 부인하라는 것을 몰랐다고 하면, 그것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인간은 예수님도 믿어야 하고, 자기 부인도 해야하고, 먹는 것 입는 것도 족한 줄로 알아야 하고, 돈을 사랑해서도 안 되고, 또 마음속으로도 음욕을 품으면 안 되고, 그러니 도대체 무슨 수로 이런 조건을 다 맞추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느냐는 말이다.

그러니 약속이라는 것은, 우리 앞에서 스톱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우리를 점령해버리는데, 점령군으로서 말이다. 그렇게 점령해서 우리에게는 자기를 부인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자기만 생각하지 말이다. 그 능력이 우리를 떠 바치고 있는 원천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 원천이 방금 이야기했듯이 언약이라고 했는데, 그 언약 속에, 그 약속 가운데 무엇이 들어있기에 자기 자신을 부인할 수 있는 능력이 나와서, 기어이 자기를 부인하도록 해서 천국에 가도록 하는지, 제가 그것을 지금 설명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 약속이 개입한 역사는, 결국 '분류작업' !!

히브리인들이 애굽에서 빠져 나온다고 했는데, 이것을 그림으로 그려보면, 여기 이렇게 애굽이 있는데, 그러면 모두가 애굽의 한 백성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예수님께서 그만 출애굽을 시켜버리면, 일단의 무리가 '히브리인' 이라는 이름으로서 따로 탈출이 된다는 것이다. 즉 구원이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일이 있기 전에는 모두가 애굽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 가는 역사라는 것은 결국 무엇인고 하니, 결국 분류작업이란 것이다. 역사가 그냥 흘러가면 절대 분류가 되지 않는데, 그런데 여기에 하나님의 맹세인 언약이 끼어 들게 되면, 이 역사가 계속해서 분류를 시킨다는 말이다. 그렇게 분류가 되는데, 역사가 흘러가면서 언약이 개입하면 또 분류가 되는데, 그래서 여기 나온 히브리인들의 경우에도 또 분류가 된다는 말이다.

오늘 강의를 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인데, 이제 민수기 11장에서 13장을 언급할 텐데, 이렇게 하나님의 계시가 주어지게 되면 계속해서 분류가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민수기 14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하시는고 하니, "너희들이 가나안 땅을 탐지한 하루를 일년으로 해서, 광야에서 40년 동안 유리방황을 하다가 결국에는 다 죽을 것이다"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 하루를 일년으로, 40년이야 !!

(민 14:33) 너희 자녀들은 너희의 패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 년을 광야에서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민 14:34) 너희가 그 땅을 탐지한 날 수 사십 일의 하루를 일년으로 환산하여 그 사십 년간 너희가 너희의 죄악을 질지니 너희가 나의 싫어 버림을 알리라 하셨다 하라
(민 14:35) 나 여호와가 말하였거니와 모여 나를 거역하는 이 악한 온 회중에게 내가 단정코 이같이 행하리니 그들이 이 광야에서 소멸되어 거기서 죽으리라

그러니 아직 구원작업이 마무리가 된 것인가? 되지 않은 것인가? 안 되었다는 것이다. 홍해를 건넜을 때는, "이제 한번 잘 해보자. 우리는 히브리인이야. 이게 모두 아브라함의 언약덕분이다" 라고 하면서 온갖 좋은 소리를 다 했는데 말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그들의 죄악을 책임지도록 하시는데, 그 하루를 일년으로 계산해서 말이다. 즉 "너희들의 죄악은 너희들이 져야한다" 라는 것이다.

왜 그렇게 되었는고 하니,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한 정탐꾼들은 그 땅을 탐지하고 나서 뭐라고 했는고 하니, 그들이 너무나도 강해보였다는 것이다. 즉 그들은 대장부들이고, 자기들은 메뚜기와 같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온 백성들이 다 같이 울었다는 말이다.

(민 13:32)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민 13:33)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

그런데 여기 민수기 13장 33절에 뭐라고 하는고 하니까, 이것이 더 중요한 대목인데 말이다.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우리 히브리인들뿐만이 아니라, 거기 가나안 땅에 사는 사람들이 보아도 역시나 그렇다는 말이다. 자기들이 세고 우리는 약하다고, 그렇게 여길 것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전혀 오해인데, 사람은 자기 생각을 확장시켜서 남의 생각도 자기와 같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은데,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들의 간담을 다 싸늘하게 해놓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기 생각을 믿는데, 자기들이 보기에 자기들은 덩치가 작고 그들은 엄청 크니까, 그들이 보기에도 역시 그렇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일종의 '막힘' 인데, 즉 구원이 노선이 이렇게 가다가 막혀버린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일부러 그렇게 하셨는데, 왜냐하면 자기 부인을 하라고 말이다. 자기 생각대로, 즉 "이럴 것이다" 라고 하면 천국에 가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천국은 자기 생각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엉터리임이 발각되는 자기 부인이 되풀이되는 가운데 간다는 것이다. "내 생각이 옳지 않다" 라고 할 때, 천국에서 마중을 나와서 그들을 맞아준다는 것이다.

◈ 막힘을 자기 부인의 기회로 !!

그렇게 주님이 막을 때마다 자기를 부인하는 기회로 삼아서, "그래, 나는 아니야. 주님께 맡겨야 돼" 라고 하면 되는데, 계속해서 뭐냐하면, "내 생각이 옳은데, 내 생각대로 하면 천국에 못 간다고 하면 나는 안 갈래" 라고 나온다는 말이다. 그렇게 여전히 자기 부인이 안 되니까, 자꾸만 막힌다는 것이다.

길이 뚫려야 하는데, 가면 막히고 가면 막히고, 그런데 주님은 그렇게 막힐 때마다 분류작업을 하셔서, 믿음이 있는 사람은 넣어주고 없는 사람은 탈락시킨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는 이런 분류작업을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는데, 이러한 분류작업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똑같이 시행이 된다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이 좋다고 하는데, 하지만 복음을 알고 난 뒤에 자기 인생살이가 막히니까, 복음이 자기가 살아가는데 전혀 보탬이 되지 않는다고 여긴다는 말이다. 즉 "내가 하나님도 알고 또 복음도 아는데, 왜 내 인생이 이렇게 꼬이는가?" 라고 하는데, 하지만 그것은 바로 구원의 원천에 있는 자기 부인이 빠지고 없다는 것이다. 그것을 완전히 놓치고 말았다는 것이다.

◈ 그래도 지킬 것은 지켜야 하지 않는가?

어제 우리교회 어떤 학생이 말하기를, 아마 학교에서 성경 이야기를 좀 하는 것 것인데 말이다. "봐라, 율법은 죄를 더하게 한다. 그러니 율법은 우리가 지킬 수 없다" 라고 하니, 상대방이 "그래, 그 말씀은 지키지 못하지만, 그래도 지킬 것은 지켜야 하지 않는가?"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니 결국 무엇이 되지 않는가? 자기 부인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그 젊은 대학생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나이가 60이 넘고 목회를 30년 이상을 한 목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자기 부인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뭐라고 하는가? "그래도 성경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지킬 것은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라고, 또 다시 그렇게 나온다는 것이다. 즉 자기의 원천으로 내려가지를 않는다는 말이다.

◈ 언약의 땅에 발이 푹푹 빠지면서 !!

다음과 같이 생각하면 간단한데, 즉 지금 히브리인들의 경우에, 그들이 지금 밟는 땅은 그들이 과거 익히 알던, 애굽에서 살던 때의 땅이 아니라, 주님의 언약이 있는 그 언약의 땅에 장화를 신고 발이 푹푹 빠지면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발이 빠지고 빠질수록 자기 부인이 되어야 하고 말이다.

그러니 그 땅이 약속의 세계이고 약속의 땅인데, 처음에는 발만 빠지다가 나중에는 점점 더 올라와서 온 몸이 다 빠지고 만다는 것이다. 에스겔서에 보면 성전에서 물이 나오는데, 그것이 어떻게 되는가? 나중에 물이 어디까지 흘러 넘치는가? 물이 완전히 우리를 잠기게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곧 거룩에 잠기는 것인데, 즉 하나님의 일에 잠수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것을 영적 세례, 즉 성령의 세례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는데, 아무튼 완전히 잠기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니 거기서 자기 부인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는 말이다. 통 채로 그냥 잠겨서 죽는 존재이니 말이다.

그러니 히브리인들이 접근을 할 때는, "이것이 옛날에 우리 조상들이 살던 그 땅이다. 그 나무이고 그 산이고 그렇다" 라고 보지 말고,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주님의 언약에 의해서, 그 언약 속에 푹푹 빠져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빠진다고 여기면 그만 발을 빼고 마는데, "이런, 복음을 알았다가 신세를 조지는 수가 있구나. 복음으로 목회성공을 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왕창 망하는 수가 있겠다" 라고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발을 빼버리면 누가 곱게 그대로 유지가 되는가? 자기가 생각했던 바로 자기 자신, 즉 '멋있는 나', '근사한 나', '꿈꾸던 나'를 다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 자아상을 말이다. 그렇게 되면 애굽에서 무엇이 빠져 나왔다는 말인가? 전혀 나온 것이 없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히브리인들이 애굽에서 빠져 나오게 하실 때, 이것이 오늘 강의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인데 말이다. 그렇게 히브리인들이 애굽에서 빠져 나오는 분류작업을 함에 있어서 외부에서 개입되는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어린양의 죽음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어린양의 피로 인해서 분류가 되는 것이 곧 총회이고 하나의 교회인데, 그게 히브리서 12장 23절에 나온다는 것이다.

(히 12:23)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히 12:24)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

◈ 낯선 여분의 힘 !!

저는 이것을 '여분의 힘' 이라고, 그것도 낯선 여분의 힘이라는 것이다. 즉 '잉여' 라는 말이다. 역사라는 것은 인간의 손에 의해서 잠식이 되는데, 하지만 인간의 손에 주어지지 않는, 인간이 전혀 예상하지도 못하고 감도 잡지 못한, 그야말로 갑자기 투입된 어린양의 죽음, 그것을 신약성경에서는 "니가 쓴 잔을 마셔야 한다" 라고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세베대의 어미와 그 아들들을 보고 "너희들 가운데 누가 더 높은지, 그런 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쓴 잔을 마실 수 있는가?" 라고 하셨는데, 그것을 바로 "그 쓴 잔을 반드시 마시게 된다" 라는 것인데,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마 20:20)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마 20:21)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엇을 원하느뇨 가로되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마 20:2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마 20:23) 가라사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조금 전에 제가 두 발로 장화를 신고 언약 속에 푹푹 들어간다고 했는데, 그것을 다른 말로 하자면, 그것은 뭔가를 벌컥 벌컥 자꾸만 마시게 되는 현상이 일어난다는 말이다. 그것은 바로 자기가 원하지 않는 사약과도 같은 것인데, 그것이 예수님 피의 이름으로 자꾸만 우리 속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것을 어제 주일 낮 시간에 "진리를 먹고 마신다" 라고 했는데, 하지만 우리는 돈을 원하는 것이지 진리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돈이 될 때만 진리이지, 돈도 안 되는데 그것이 무슨 진리냐는 말이다. 오랜만에 바른 소리를 한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가? 돈도 안 되는데, 그것을 누가 좋아하겠느냐는 것이다.

사람들이 신학을 왜 배우려고 하는가? 돈이 되니 한다는 것이다. 또한 교회는 왜 세우는가? 정말로 망하려고 교회를 세우는가? 그것이 아니라 돈이 되니까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하다못해 생활비라도 벌어보려고 말이다. 그렇지 않은가?

◈ 말씀 속으로, 말씀 속으로 !!

하지만 스데반 집사가 왜 죽었는가? 회사가 부도가 나서 죽었는가? 그게 아니라면, 복음을 전하다가 복음이 먹혀들지 않아서 돌에 맞아죽었는가? 12사도가 왜 죽었는가? 그들이 목회에 실패라도 해서 죽었느냐는 말이다. 그들은 진리를 먹고 마셨는데, 말씀을 말이다. 즉 장화를 신고 말씀 속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겁도 없이 말이다. 물론 장화를 벗고 들어갔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아무튼 사람은 누구나 다 돈을 원하고 좋아하는데,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돈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라고 하신 것은, 그것은 바로 "인간은 누구나 돈을 사랑한다" 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근호도 돈을 사랑하고, 여러분도 돈을 사랑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성령이 오게 되면, 자기가 돈을 사랑하는 것을 알지만, 그런 자기를 부인하게 한다는 것이다. 돈을 사랑하지 않는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돈을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했습니다" 라고 고백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나는 돈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라고 하면, 자기를 부인할 게 없다는 말이다.

◈ 저는 개만도 못한 신학박사입니다 !!

돈을 사랑하는 그 마음에 죽을 때까지 계속 나오는데, 그런데 겸해서 뭐가 나오는고 하니, "바로 그것 때문에 주님이 피를 흘렸습니다" 라는 막달라 마리아의 낮아짐이, 그리고 또 "제가 바로 개 같은 여자입니다" 라고 하는 것이 나온다는 말이다. 그게 분명히 성경에 나오는데, 신학박사가 아닌 수로보니게 여인이 말이다.

신학박사들 중에서 자기가 개라고 하는 자들이 있던가요? 저는 아직 보지까지 못했는데, 개가 되기 위해서 유학을 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학위를 받으려고 이런 짓을 다 하다니, 저는 개가 맡습니다" 라고 하는 고백이 나와야하는데, 박사학위를 받는 그 현장에서 말이다. "남들은 닥터라고 할지 몰라도, 저는 도그입니다" 라고 해야한다는 말이다.

물론 목사의 경우에도 "저는 주인이 시키는 대로만 하는 개가 되기 위해서 목사가 되었습니다" 라고 하는 고백이 나와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길을 가다가 오줌을 싼다든지, 심방을 한다고 하면서 전혀 엉뚱하고 이상한 곳에서 만나자고 하든지, 그런 개 같은 짓을 하면 안 되지만 말이다(ㅋㅋ).

◈ 원천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삶이 되어야 !!

이것은 완벽한 인간이 되라는 말이 아니고, 그렇다고 자기 부인을 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말도 아니고, 그러면 무엇인가? 자기를 부인하라고 하는 그 원천을 위해서 우리가 위에 껍데기로 있다는 말이다. 즉 뿌리를 위해서 위의 것이 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원천은 따로 있고, 그 원천이 무엇인지 보여주기 위해서 우리는 죄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렇게 죄인으로 살면서, 자기가 구원을 받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원천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원천을 보여주는 것이 말이다.

그러니 예수님을 증거하는 자가 곧 성도인데, 자기가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자기 잘난 체를 하라고 성령께서 온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이다. "봐라, 니 같은 인간도 구원이 되었잖아? 그 이유가 바로 예수님 때문이야!"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목사가 해야되고, 또한 교인들도 해야된다는 것이다.

아무튼 여기에 어린양이 투입된 것은 외부에서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외부에서 투입된다는 것을 다른 말로 하면, "원천에서 튀어나왔다" 라고 할 수 있는데 말이다. 그러니 구원의 주인공은 누구라는 말인가? 히브리인들도 애굽도 아니고, 물론 거기서 빠져 나온 자들도 아니고, 그 일을 성사시킨 분이 곧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 '주의 이름'은 사건의 틈새 속에서 !!

그렇게 해서 출애굽을 하게 되는데, 그걸 어려운 말로 무엇이라고 하는고 하니, 성경에 나오는 것인데, '주의 이름'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주의 이름, 이것이 얼마나 설명하기 힘든 것인지 모르는데 말이다. 원래 주의 이름이 없는데, 그런데 사건의 그 틈새 속에서 튀어나온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것이 인간밖에 없는데, 그렇게 인간만 있으면 인간의 이름밖에 없는데, 즉 아담의 이름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 아담의 이름에서 주의 이름이 나오려고 하면, 그게 안 된다는 것이다. 찾을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런 인간의 이름을 죄인이라고 규정하면서 튀어나올 때, 바로 그 틈새에서 튀어나오는 분이 주의 이름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이 주의 이름을 인간이 잡을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까, 주의 이름이 튀어나오게 되면, 히브리인들이나 애굽이라는 그 모든 것도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고, 그들은 주의 이름을 주의 이름이 되게 드러내기 위해서 배치되어있는 하나의 바둑알과 같은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주의 이름을 제대로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히브리인들이나 애굽이 아니고, 그 배후에 있는 주의 이름만이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도 잠시 동안의 생각일 뿐이고, 우리가 다시 정신을 차리게 되면, 그 주의 이름은 그만 바람과 같이 날아가 버리고, '나' 라는 히브리인과 '너' 라는 애굽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 모세의 경우에 !!

그래서 "내가 이 애굽이라는 권세에서 어떻게 벗어나게 할 수 있지? 옳지, 내가 애굽인을 쳐죽어야 하겠다" 라고 하는, 모세의 객기 어린 애국심이 나오게 되는데, 마치 우리나라의 안중근 의사처럼 말이다. 권총으로 이토오 히로부미를 쏴 죽였다는 것이다.

모세가 자기 나이 마흔에 그런 짓을 했는데, 민족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자기가 애굽 사람을 주먹으로 때려서 그만 죽여버렸다는 것이다. 모세가 얼마나 주먹이 센지 모르는데, 완전히 돌주먹이라는 것이다. 요즘 같으면 격투기 시합에 나갔으면 성공했지 싶은데 말이다.

물론 모세는 알았는데, '나' 라는 인생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주의 이름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을, 즉 주의 이름을 위해서 주께서 그 자리에 있게 하셨다는 것이다. 성경에 보면 모세의 누나가 나오는데, '미리암' 이라고 말이다. 물론 누나는 모세에게 참 잘해주었는데, 그 누나가 없었으면 모세는 태어나자마자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모세를 갈대로 만든 바구니에 넣어서 공주가 목욕하는 강물에 띄웠는데, 공주가 모세를 꺼내자마자 달려가서 무엇이라고 했는가? "제가 좋은 유모를 알고 있는데, 소개해드릴까요?" 라고 해서, 모세의 친엄마를 유모로 만들어서 직접 키우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누가가 얼마나 큰 공로자냐는 말이다.

(출 2:7) 그 누이가 바로의 딸에게 이르되 내가 가서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당신을 위하여 이 아이를 젖 먹이게 하리이까
(출 2:8)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가라 그 소녀가 가서 아이의 어미를 불러오니
(출 2:9)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이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이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
(출 2:10) 그 아이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의 아들이 되니라 그가 그 이름을 모세라 하여 가로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

그런 누나가 평소에 모세에게 잔소리를 많이 한 것 같은데, 결혼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 누나가 모세를 보고 흑인인 미디안 여자와 눈이 맞아서 돌아다닌다고 핀잔을 주었는데, 그러자 그만 그 누나가 문둥병에 걸려서 진 바깥으로 쫓겨나서 7일 동안 벌을 서고 했다는 것이다.

◈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

그때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셨는가? "이 세상에 모세만큼 온유한 자가 없다.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의 음성만 들었지만, 내 종 모세는 나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을 보았다. 그런데 감히 하나님의 형상을 본 사람을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취급해서 함부로 비방을 하는가?" 라고 하신다는 말이다.

그러니 모세는 무엇을 안다는 말인가? 자기 부인이 되는데, 즉 모든 것이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님을 안다는 말이다. 모세는 자기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자기를 구원해준 주의 이름을 위해서 존재함을, 즉 모세라는 자기 이름이 그냥 거기에 덧붙여지는 것에 불과함을 알았다는 것이다.

(민 12:1)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
(민 12:2)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
(민 12: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
(민 12:6) 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이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민 12:7)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민 12:8)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 아니하느냐

◈ 준비된 수양 !!

이것을 그림으로 그려보면, '나' 라고 하는 모세는 밑둥치에 의해서 있게 되는데, 그 밑둥치가 곧 조금 전에 말한 어린양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모세뿐만 아니라, 창세기 22장에 나오는 이삭도 마찬가지인데, 아버지가 아들 이삭을 잡아죽이는데, 그때 하나님이 주목한 것은 옆에 수풀에 걸려있던 수양이었다는 것이다. 여호와 이레, 즉 수양이 준비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창 22: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수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창 22: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바로 그 수양 덕분이 이삭이 살았는데, 그러니 앞으로 이삭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자기를 대신해서 죽은 수양의 삶을 대신해서 미리 살아주는 것으로서, 그러므로 진짜 약속의 주인공은 수양, 즉 어린양이라는 것이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란 말이다.

◈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소식은 무엇인고 하니,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다" 라는 것인데, 북한의 핵이나 장거리 미사일이 아니고 말이다. 왜냐하면, 밑둥치가 드디어 현실세계에 등장했다는 것이다.

(요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하나님이 오신 것이 아니고, 존재의 근원이 되는 그 밑둥치가 드러났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기존의 하나님이라는 것은 인간이 조작한 것이고, 드디어 인간의 근원이 되는, 그야말로 진짜 숨어있던 분이 이 세상에 등장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그분과 함께 계시는데, 평소에 우리 인간들이 상상한 하나님이 전혀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그분이 우리에게 요구한 것이 무엇인고 하니, "자기를 부인하라" 라는 것인데, 그러니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면 그분이 계시는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기 자신을 부인을 하는가? 전혀 턱도 없는 소리인데, 우리는 결코 자기를 부인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죄인이 되고, 어린양은 그런 죄인마저도 구원하시는 어린양이 된다는 말이다. 그러니 예수님과 함께 생활하고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고 해서 구원이 되는 게 아니라, 주께서 뭔가를 행하셔야만 한다는 것이다. 주께서 뭔가를 말이다.

◈ 다시 한번 정리하면 !!

민수기를 본격적으로 살펴보기 이전에 다시 한번 정리하고 넘어가겠는데, 이렇게 인간이 있는데, 그게 여러 명이 있으면 이스라엘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 밑둥치는 무엇인고 하니까, 히브리인들이 애굽에서 나왔을 때, 그 근거가 된 어린양의 죽음이었다는 것이다.

그 어린양의 죽음이 곧 '주의 이름' 인데, 바로 이 주의 이름을 위해서 그들은 역사 속에서 움직이게 되어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주의 이름은 그냥 주의 이름이 아니라, 반드시 어린양의 죽음을 근거로 하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어린양의 능력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장에 보면 뭐라고 하는가? 십자가가 곧 하나님의 능력, 즉 구원의 능력이라고 했다는 말이다. 그렇게 십자가에 구원이 능력이 있으면, 그것을 홀라당 외우면 되는가? 그것이 아니고 십자가의 능력이 계속해서 뿜어져 나온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예수님이 부활해서 살아있는데, 어린양의 취지를 가지고 살아있기 때문에, 어린양의 취지가 계속해서 뿜어져 나온다는 것이다.

(고전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이유가 뭔고 하니, 자기는 그대로 단단히 있고, 그 다음 예수님에 대해서는 상상 속에서 그려가지고, 일단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었다고 해놓고, 그렇게 해서 생생하게 살아있는 '나' 자신이 그 생생한(?)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이 되지 않겠느냐고 한다는 것이다.

◈ 나도 안다. 십자가 복음을 안다 ??

왜 이런 생각을 하는고 하니까, 자기 생각과 주님의 생각이 같다고 여기는 것인데,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과거 사실이 아니라, 지금도 생생하게 살아있어서 여기서 어떤 취지를 가지고 힘이 쏟아져 나온다는 것을, 그 힘이 화살이 되어서 자기에게로 마구 날아온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나도 안다. 십자가 복음을 안다" 라고, 매일같이 그런 소리를 한다는 말이다.

(여보세요? 예, 강의 중입니다) 아무튼 화살이 계속해서 쏟아지는데, 그러면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 내가 십자가를 안다" 라고 하는 자체가 아무런 소용이 없고, 지식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진짜 십자가가 쏟아지게 되면, "예수님을 믿는 내가 왜 죄인이며, 또한 십자가를 안다는 것 자체가 왜 죄가 되는가?" 라는 것에 대한, 그러한 고백이 마구 튀어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 나의 이름을 걸고 ??

조금 전에도 그런 이야기를 했지만, "나는 십자가도 알고 복음도 아는데, 왜 내가 하는 일마다 자꾸 꼬이는가?" 라고 한다면, 십자가의 그 어린양의 취지가 무엇인고 하니, 어제 윤창중의 예를 들었는데, 그가 뭐라고 했는가? "나는 내 이름과 내 양심을 걸고 다른 사람에게 부끄러운 일을 한 적이 없다" 라고 나오는데, 아무리 달린 입이라고 해도 무슨 그 따위 소리를 다 하는지 모르겠는데 말이다.

그런데 그 인간의 문제가 무엇인가? 성추행을 했다는 것 자체보다도, 아직까지도 내걸 수 있는 자기 이름이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자기 몸이 있는 이유가 자기 이름을 걸라고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주의 이름을 밑바탕으로 해서 그 주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해서 몸이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 인간의 그 주의 이름과 연결되지 않으니, "내 몸은 내 몸이다" 라고 해서, 소위 자기 것을 사수하는데 전심전력을 다한다는 것이다.

◈ 나는 이대로는 못 나간다 ??

목사가 교회에서 쫓겨나지 않으려고 하고, 나가더라도 돈을 더 받아내려 하고, 그렇게 자기 것을 사수하려는 것을 보면 가관이라는 것이다. "내가 이 교회에 와서 교인을 얼마나 늘렸고, 또 헌금이 이렇게 늘어나게 했는데, 그런데 퇴직금은 왜 이것밖에 안 주노? 교회에서 못 나간다" 라고 하면서 말이다.

제가 그런 광경을 한 두 번을 본 것이 아닌데 말이다. 젊은 장로는 "그런 목사는 십 원도 아깝습니다. 그냥 내보냅시다" 라고 하고, 그래도 나이가 좀 있으면 "그래도, 한 장을 더 줘서 보내자" 라고 하고 말이다. 왜냐하면, 시간을 질질 끌면 교회에 손해이니 말이다. 그래서 말도 안 되지만 더 줘서 얼른 내보내자고 한다는 것이다. 그게 다 나이가 든 장로의 경험에서 나오는 이야기인데 말이다.

그런 문제로 제가 한 상담만 것만 해도 아마 수 십 차례가 되지 싶은데, 그렇게 전부가 다 자기 것이라는 말이다. 즉 "나의 이름을 걸고"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다. 이게 무슨 자기 부인이냐는 것이다. 하지만 십자가의 화살이 날아오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비록 그런 인간이라도 주의 이름이 점령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히브리서 11장을 보면, 아니 민수기 11장인데, 1절에서 6절입니다.

(민 11:1) 백성이 여호와의 들으시기에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로 그들 중에 붙어서 진 끝을 사르게 하시매
(민 11:2) 백성이 모세에게 부르짖으므로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니 불이 꺼졌더라
(민 11:3) 그곳 이름을 다베라라 칭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불이 그들 중에 붙은 연고였더라
(민 11:4) 이스라엘 중에 섞어 사는 무리가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가로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민 11:5)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민 11:6) 이제는 우리 정력이 쇠약하되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

◈ 이제는 우리 정력이 쇠약하되 !!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하다가 너무 힘이 들어서 불평을 하는데,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진노를 하셔서 그만 이스라엘의 진 끝을 불을 가지고 태워버렸는데, 그 진 끝에는 불평하는 자들이 있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모세가 기도해서 불을 꺼지게 했는데 말이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엇이라고 하는가? 5절과 6절에 보면, "애굽에 있을 때는 값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을 먹었는데, 이제는 우리 정력이 약한데, 이 만나 외에는 아무 것도 없어서 그렇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가? 히브리인들이 애굽에서 빠져 나올 때, 그들이 자기 부인이 되지 않으니, "내가 빠져 나왔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즉 자기들의 신세가 더 펴지려고, 자기들의 팔자가 더 좋아지려고 애굽에서 빠져 나왔다고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구원의 주인공이 누구인가? 그만 히브리인들 자신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까 강의를 하면서 뭐라고 했는고 하니, 구원의 주인공은 자기 자신이 아닌, 숨어있는 주의 이름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가 주인공으로 여기고 보니까, 애굽에 있을 때의 자기 모습과, 지금의 자기 꼬라지를 비교하게 되니, 지금이 더 못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운다는 말이다. 자기들 신세를 한탄하면서, 제대로 보상을 해달라고 말이다.

◈ 이스라엘은 우리의 판박이 !!

여러분, 어떤가요?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판박이가 아니냐는 것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교회에 나왔는데, 왜 이렇게 수입이 줄어들고 살림살이가 더 나빠지느냐는 것이다. 자기 것이 더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줄어들고 삭제가 되는데, 그래도 하나님을 믿어야 하느냐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나를 구원시켜주려고 한다면,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더 잘되어야 하는데, 그런데 오히려 교회에 다니기 이전보다 더 못하니, 이게 뭡니까? 정말 하나님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런 동기유발이 되지 않습니다"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 이게 정녕 남의 이야기인가?

이런 이야기를 제가 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복음을 전한 상대방에서 이런 것들이 마구 튀어나온다는 말이다. 즉 "목사님, 말을 맞는데 그렇게 해서 교회부흥이 되겠습니까?"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주의 이름은 온데간데없고, '내 가정'을 지키고, '내 교회'를 지키고, 그렇게 '나'의 것을 지키기 위해서 주님을 등쳐먹는 심사들만 가득하다는 것이다. 어리석은 부자청년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그런 분들이 성경을 아무리 많이 읽어본들, 성경에 이렇게 분명히 나와있는데, 도대체 어디를 읽었느냐는 것이다. 그래도 자기가 목사라고 하니까 성경을 볼 수밖에 없는데 말이다. 민수기의 이런 내용을 보면서 도대체 무엇을 느낀다는 말인지, 이게 정녕 남의 이야기냐는 것이다. 정말 그런가요?

계속해서 민수기 11장을 봅시다.

(민 11:10) 백성의 온 가족들이 각기 장막 문에서 우는 것을 모세가 들으니라 이러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심히 크고 모세도 기뻐하지 아니하여
(민 11:11) 여호와께 여짜오되 주께서 어찌하여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나로 주의 목전에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나로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민 11:12) 이 모든 백성을 내가 잉태하였나이까 내가 어찌 그들을 생산하였기에 주께서 나더러 양육하는 아비가 젖 먹는 아이를 품듯 그들을 품에 품고 주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 하시나이까
(민 11:13)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내가 어디서 얻으리이까 그들이 나를 향하여 울며 가로되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라 하온즉
(민 11:14)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질 수 없나이다
(민 11:15)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나로 나의 곤고함을 보지 않게 하옵소서

◈ 즉시 나를 죽여주세요 !!

여기 15절에 보면, 모세가 자살을 요청하는데, 즉 "즉시 저를 죽여주옵소서. 통촉하소서" 라고 한다는 것이다. 모세가 보기에 얼마나 지금 이 현실과 하나님의 생각이 차이가 났으면 그렇게 하겠느냐는 것이다. 지금 모세는 그 가운데 끼어서 숨이 막혀 죽을 지경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이런 꼴을 보느니, 차라리 눈을 감는 것이 낫겠다" 라는 것인데, 그 격차가 얼마나 컸으면 그런 말을 했겠느냐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성도가 당해야하는 숨막힘인데, 그것을 모세가 미리 맛보면서 알려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원망을 백성들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깨닫지 못하게 일부러 조치를 하시는 하나님에게도 섭섭한 감정을 지울 길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능력이 넘치고 전지전능하신 분께서 왜 인간들이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두시는지 모르겠다는 것인데, 모세가 그런 생각이 들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하시는고 하니, 주의 이름에 관심이 없는 자들은 중간에 빠져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탈락을 해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결국은 분류작업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되는데, 우리나라나 중국에 보면 계단식 논이 있다는 것이다. 제일 꼭대기에는 저수지가 있고 말이다. 그래서 그 저수지에서 물을 틀면 여기 논에 물이 순서대로 줄줄 흐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의 언약은, 즉 주의 이름은 이렇게 계속해서 타고 내려가는데, 마치 사다리 타기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쪽 다음에 저쪽, 또 저쪽 다음에 이쪽, 그런 식으로 계속해서 골을 따라서 주의 이름이 가게 되면, 그렇게 가는 골 단위 단위마다 자기 부인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 중의 하나가 무엇인고 하니 모세인데,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을 원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 힘이 들어서 정말 못하겠습니다" 라고 말이다.

모세도 결국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었는데, 그런 분류작업이 계속해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모세는 "에이, 더러워서 못해 먹겠다" 라고 할 밖에 없었는데, 자기는 그렇게 바른 소리를 하는데도 사람들이 믿지를 않으니까,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으냐는 것이다. "차라리 사기를 칠까?" 라고 하는, 아마 모르기는 해도 그런 생각도 들었지 싶은데 말이다.

계속해서 민수기를 봅시다.

(민 11:18) 또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 몸을 거룩히 하여 내일 고기 먹기를 기다리라 너희가 울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애굽에 있을 때가 우리에게 재미 있었다 하는 말이 여호와께 들렸으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실 것이라

◈ 우리에게 재미있었다 !!

여기에 보면 "우리에게 재미있었다" 라고 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것을 우리가 이해를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사는 것이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데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지금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이 재미가 있다는 말인가? 없다는 말인가? 전혀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교회에 나올 이유가 없는데, 그러면 목사가 어떻게 해야하는가? 목사는 교회에 나오는 것이 재미가 있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런 교회는 주의 이름이 아니라, 목사 자신이 이름이 있는 곳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일부러 재미가 없게 하라는 소리는 아닌데, 그렇게 재미가 없다고 해서 주의 이름이 찾아오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다만 재미가 있던 없던 간에 주님께서 쓰셔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가 주님에게 쓰일 만한 폼을 잡는 것이 아니라, 그냥 주께서 사용하셔야 하는데, 그렇게 쓰시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는데, 그것이 바로 '막사는 것' 이라는 말이다. 이제 '막산다' 라는 깊은 의미를 알았지 싶은데, 그렇게 막살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에게 좋게 보이려고 위장술을 부리고 있다고 보면 된다는 것이다. 가식적이고도 가증한 짓들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면, 주님의 의사이니 "환자 분, 옷을 벗고 이제 수술대에 누우세요" 라고 하면, 우리는 누우면 되는데, 그런데 의사가 수술을 하려고 하면 그만 옷을 입고 수술대에서 내려오려고 한다는 것이다. 맡겨야 하는데 말이다. 그렇게 맡기는 것이 막사는 것인데, 그렇게 맡기면, 주의 이름에 살아있어서 분류작업을 하기 때문에, 그 분류작업의 기준으로 떼어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 주님께 맡기는 것이 곧 자기 부인 !!

다시 말해서, "이 분야에서 너는 너의 이름을 나의 이름보다도 더 좋게 여기고, 저 분야에서는 너는 너의 이름을 부끄럽다고 하면서 감추고, 그리고 이 분야에서는 니가 잘한다고 남에게 떠벌리는구나" 라고 하면서, 그렇게 도살장에서 돼지고기를 안심과 등심과 삽겹살을 따로 분리를 하듯이 떼어내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주님에게 맡기면 되는데, 그러면 그 전체가 자기 부인이 된다는 말이다.

심지어 베드로의 경우에는 어떠한가?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는고 하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강의 중에 이렇게 원치 않는 휴대폰도 요란하게 마구 울리고 하는데 말이다(ㅋㅋ).

(요 21: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 다시 정리를 해보면 !!

이제 정리해보면, 이렇게 히브리인들이 있었는데, 그 히브리인들은 어떻게 생각했는고 하니, 자기들은 구원을 받았다고 여겼다는 것이다. 즉 구원을 자기 것이라고, 자기들이 구원을 챙겼다고 여겼다는 말이다. 하지만 구원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주의 이름이 주인공인데, 히브리인들이 아니고 말이다.

그래서 그 주의 이름의 어린양의 취지로서 마구 쏘아대니까 그들이 뭐라고 하는가? 자기들은 분명히 구원을 받았다고 해놓고는, 즉 애굽에서 살지 않고 나온 것을 좋아했는데, 그런데 민수기 11장에 오니 뭐라고 하는가? "애굽, 그때 그 시절이 재미가 있었다" 라고 하는데, 바꾸어 말하면, "지금은 재미가 개 코도 없다. 정말 재미없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볼 것은 무엇인고 하니, 만약에 그런 상태로서 천국에 간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렇게 재미가 없는 것이 한 때도 아니고 영원토록 계속해서 된다면, 그야말로 영원토록 재미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천국에 가도 견디지를 못하고 탈출하려고 하지 싶은데 말이다. 어떻게 견딜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따라서 주의 이름은, 이렇게 "재미가 없다" 라고 하는 인간 그 자체를 분류하는 작업을 통해서, 재미가 있고 없고 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야말로 할 말을 잃어버리게 한다는 것이다. 바로 그런 동네에 왔다는 것인데, 재미가 있고 없고 하는 것은 애굽에서의 하던 평가이고 말이다.

◈ 상상 그 이상의 '천국' !!

고린도후서 12장에서 사도바울이 뭐라고 하는가? 자기가 삼층천에 올라가서 보니, 그야말로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길이 없더라는 것이다. 상상 그 이상인데, 어떻게 설명을 하려고 해도 설명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세상에 있던 것은 모두 다 꿈에 본 것이 되고, 그렇게 꿈에 본 것으로 잊어버린다는 말이다.

(고후 12: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이것이 시편 90편에 나오는데, 한 평생을 사는 것이 그냥 '휙' 하고 지나가 버린다는 것이다. 평소에 살아가던 모든 것이, 그렇게 시집살이를 하면서 힘들게 살았는데, 자식들은 또 얼마나 속을 썩이는지 말이다. 큰놈이 잠잠하면 작은놈이 사고를 치고, 그야말로 감당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고생스러운 모든 것이 다 천국에 가니 한 밤에 꾼 꿈과 같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시 90:4)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
(시 90:5) 주께서 저희를 홍수처럼 쓸어 가시나이다 저희는 잠간 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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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342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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