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강-YouTube강의(사랑)1305023-이 근호 목사
35강-YouTube강의(사랑)1305023-이 근호 목사
이름 : 유일자(IP:116.33.234.248)
35강-YouTube강의(사랑)1305023-이 근호 목사
35강. 제목은 “사랑”입니다. 사랑! 너무 너무 좋죠. 사람들이 사랑을 얻기 위해서 교회 가는데 막상 교회가다 보면 거기서 요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뭐냐하면 “네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라는 말씀을 설교자가 말씀을 통해서 이야기하게 되죠.
하게 되면 듣는 교인 입장에서 어떻습니까? 사랑받기 위해 왔는데, 그리고 전도 할 때는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사랑한다고 했는데, 막상 교회 와서 듣게 되면, 사랑받기 위해서 내 쪽에서 하나님께 지불해야 될 어떤 조건 같은 것이 붙어 있다는 인상을 받을 수가 있죠.
그러면 한번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때는 하나님이 사랑해 줄까요, 안 해줄까요? 지금 제가 이렇게 질문하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이라 하는 것은 율법 지켜서 주신 사랑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피 흘리심에서 주신 사랑이라고 성경에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랑에는 조건이나 요건이 없다는 말이 되죠. 예수님 옆에 있던 강도도 “오늘 밤에 낙원에 있으리라” 할 때 강도가 주님 앞에 무슨 사전에 돈을 좀 드렸습니까? 세리와 창기가 구원 받을 때, 구원받을 조건을 나름대로 성의 표시해서 구원 받은 겁니까? 신약 초대 교회에서 하나님이 성령 주실 때 괜찮은 사람, 점잖은 사람 골라서 성령 주시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 죄인은 성령 안주시는 겁니까? 그런 겁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조건하에 만약에 우리가 사랑을 받을 수 있다면, 그건 율법이지 그건 사랑이 아닙니다. 조건 없이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주십니다. 그런데 조건 없이 하나님은 사랑을 준다고 제가 이렇게 언급 했건만, 사람이라는 것이 마치 빈 도화지가 아니예요. 속에 뭔가 우글거리는게 있습니다.
이 우글거리는게 뭐냐하면, 하나님 쪽에서 아무리 좋은 이야기, 선물, 그냥 공짜, 은혜라고 이야기해도 받아들이는 우리가 뭔가 댓가를 지불하고 내 쪽에서 어떤 조건을 만들어내서 사랑을 받더라도 좀 덜 미안스러운 마음 자세에서 받고 싶은 그런 충동을 자꾸 유발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주실 때, 그것을 피해서 사랑을 주시는데, 어떻게 피해서 사랑을 주시냐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의 모습들이 우리가 사랑할 만한 모습으로 오는게 아니고, 우리가 미워죽는 정말 꼴보기 싫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다가오면 그전에는 하나님을 사랑할 만반의 마음 솜씨가 차분하게 잘 가꾸어져 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난데없이 미워죽는 정말 꼴보기 싫은 그런 인물을 보내주면 우리가 불현듯이 하나님 미워! 라는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도록 만드십니다.
예를 들면, 나는 나름대로 경건하고, 착실하고, 신앙생활 잘하고, 하자 없고, 생활에 굉장히 모범적이며 인품으로도 안정돼있다“ 라고 했는데 갑자기 어떤 미친 비슷한 사람을 보내가지고 내속을 불 지르고 내 돈을 사기해 먹었다.
그럼 우리는 그런 사태를 일어나게 하신 그 최종적인 원인제공자, 하나님에 대해서 미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 미워, 난 예수님 싫어, 난 안 믿어.“ 라는 고백이 튀어 나올 때, 바로 우리의 미움의 대상이 되는 그분, 우리가 미워 죽는 그분에 의해서만 우리가 무상으로 사랑을 받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참 부끄러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 예가 마태복음 19장에 나옵니다. 평소에 스스로 자부하기를 어릴 때부터 십계명을 다 지켰다는 부자청년이 나옵니다, 이 부자청년이 예수님이 훌륭하다는 소문을 듣고, 어느 날 용기내서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자기 쪽에서 준비한 것을 내놓았습니다.
그게 뭐냐하면, 어릴 때부터 십계명을 다 지켰습니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고, 부모를 공경하고, 하나님 사랑하는 것은 기본이고 다했습니다. 이 부자청년의 이러한 제안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영생을 얻기 위해서 사전에 정지작업이라 할까요?
내 쪽에서 나름대로의 뭔가 마음 정돈이 될 때 하나님도 그것을 가상히 여겨서 어여삐 여겨서, 그리고 대견히 여겨서 사랑을 듬뿍 주리라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제가 아까 말씀 드렸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할 때는 우리가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사이에서 오는것이 아니고, 우리 쪽에서 하나님을 싫어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입장을, 상황을 만들어 놓고 사랑한다고, 그런 공식을 말씀드렸죠.
부자 청년도 예외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부자청년 쪽에서 그 정도로 성의를 표했으면 “참 수고했습니다. 대단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당신에게 영생주기로 작정했죠? 나를 믿으세요.“ 얼마든지 좋은 이야기를 가지고 자기 믿으라고 유도할만한데 주님은 이렇게 합니다.
“니가 온전하고 싶어? 그게 온전이야? 내가 온전이 뭔지를 말해줘? 네가 갖고 있는 모든 재산 다 팔아! 그리고 빈털터리 돼서 아무 미련없이 날 따라와. 그러면 네가 얻고자 하는 영생이 거기 있어.“ 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 자신감, 스스로 신앙있다고 한 자신만만 다 어디로 갔습니까? 부자청년은 생각했습니다. 당신은 나와 상종할 인물이 못되는 군요. 요즘 같으면 나는 다른 메시야나 찾아 봐야지, 그렇게 했을 겁니다.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여 유턴해서 돌아갔습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이 부자청년이 아니고, 착한 일 많이 한 청년이라면 주님께서 이렇게 이야기했을 겁니다. “네가 착하다 생각했던 것 다 죄라고 여기고 그다음에 나는 전적인 죄인으로서 날 따르라.“ 그러면 영생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했을 겁니다. 그렇다면 자기 착한일이 있기 때문에 진정 나가 나답다, 라고 여겼던 청년이라면 그도 역시 ”나도 당신 믿을 의사 없어요.“ 하고 삐쳐서 화를 내면서 돌아설 겁니다.
자, 그러면 또 예를 들어보죠. 12제자에게 예수님께서 “목자를 치면 양들이 흩어지리라” 라고 했을 때, 제자들이 뭐라고 생각했습니까? “다른 사람은 버려도 저는 버리지 않겠습니다.” 하고 누구나 이구동성 마음속으로 결심했을 겁니다.
그런데 메시야라고 알고 있던 예수님께서 메시야는커녕, 경찰한테도 꼼짝 못하고, 체포되어서 혹시 죽기 전에 뭔가 천사라도 올 줄 알았는데, 하늘에서도 아무 낌새도 보이지 않고 그냥 최후를 맞이할 때, 그동안 제자들이 3년 동안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 다녔던 그 당사자는 과연 누구였단 말입니까? 도대체 누구입니까?
뭔가 그럴싸했고, 우리를 구원할 메시야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분의 최후를 눈으로 목격하는 순간 걸음아 나 살려라. 나는 그래도 살아남아야지. 하고 주님 곁에서 도피하기에 급급한 자들이 바로 제자들 이었습니다. 누가 예수님을 알아서, 자진해서 주님께 나와 구원 받아요. 있을 수 없습니다.
마르다, 마리아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소에 주님을 그렇게 섬겼다 했는데, 막상 사랑하는 오빠가 죽었을 때 주님한테 달려들었습니다. 자 그러면 여러분한테 물어 보겠습니다. 마르다, 마리아가 진정 사랑 한 것이 3문항입니다. 첫째, 예수님을 사랑했는가, 두 번째, 오빠를 사랑했는가, 세 번째 오빠를 좋아하는 본인들을 사랑했는가, 셋 중에 하난데, 정답은 예수님도 아니고, 오빠도 아니고, 마르다, 마리아 자기 자신을 사랑했겠죠. 내가 주님을 믿는 그 믿음을 사랑했겠죠?
주님께서는 그것을 미움으로 바뀌게 하시면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바뀌게 하시면서... 주님의 사랑이라 하는 것은, 마중 나올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고, 우리가 도망칠 수밖에 없는 존재를 기어이 따라오셔서 잃어버린 양을 찾는 심정으로, 탕자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그냥 엄청난 사랑을 된통으로 퍼부어 줄때, 우리가 그 사랑 앞에서 뭐가 잘났다고, 내 인생 망쳤다고 불평이 나올 수 있습니까? 내 인생 왜 이렇게 험하게 하고, 내 인생을 왜 이렇게 망가지게 하냐고, 어떻게 그 사랑 앞에서 환난과, 곤고와 핍박 그런 것 가지고, 어떻게 불평이 되겠습니까? 그저 사는 주제에. 모든 것 그것이 사랑이라면, 그 사랑 앞에 우리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고, 그저 감사, 감사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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