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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유튜브 (34강 35강) 교회실험 , 사랑 130523강의사도행전

유튜브 (34강 35강) 교회실험 , 사랑 130523

이름 : 관리자(IP:119.18.69.144)

34강

35강

유일자(IP:116.♡.234.248)

13-05-26 22:00

34강-YouTube강의(교회 실험)1305023-이 근호 목사

34강.“교회 실험”이란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교회 다닐 때 과연 이 교회가 주님이 함께 하는 교회인지 아닌지를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연 하나님이 살아 계신지... 아니면 그냥 인간들만 모여 있는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이 분명히 정립이 되게 되면 아낌없이 그 교회에 재산과, 마음과, 시간과 모든 것 다 때려 넣어도 아깝지 않고 결국 천국을 따낸다 하는 것을 가질 수 있는데, 문제는 내가 다니는 교회가 진짜 하나님이 계신 교회인지, 그 확답하는 문제가 제일 중요한 문제가 되겠죠.

그래서 사람들은 당회장뿐만 아니고 모든 장로, 집사, 모든 교인들이 자기 교회가 하나님이 함께 있는 교회인지, 아닌지를 수시로 실험하게 됩니다. 실험을 하는 식으로 교회에 주님이 함께 있다. 혹시 우리끼리만 있는게 아닌가! 이런 생각을 측정해 나가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을 찾아보게 되면, 교회들이 성경을 보면서 자기들이 성경에 나와 있는 주와 함께 있는, 성령이 함께 있는 성령의 공동체 모습이라고 보여지는 그러한 장면을 교회인이나 모든 당직자 분들이 잊을 수 가 없겠죠.

예를 들면 사도행전 2장 43절에 보면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초대교회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들이 다니는 교회가 진짜 하나님이 살아계신 교회인지, 아닌지는 성경에 나오는 교회와 일치되는 지를 파악하면 되겠죠. 그리고 사도행전 2장에 그 당시 초대교회 모습이 나오니까, 이걸 그대로 판박이처럼 그대로 우리교회에서 하게 되면, 이건 누가 뭐래도 하나님이 함께 있는 교회 맞고, 그리고 하나님이 함께 있는 교회라면 그 교회에 등록해서 다니는 본인도 누가 뭐래도 죽으면 천국갈 수 있다는 확신 같은 것이 자리 잡겠죠.

그런데 우리가 이점을 생각해봐야 됩니다. 교회를 묘사할 때 형식적으로 이렇게 묘사하는 대목이 나오는 반면에, 사도행전에 보면 전적으로 단촐하게 교회가 이렇다고 묘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모습은 이렇습니다. 같이 모이고, 날마다 같이 하고, 떡을 떼고 사실은 이것은 얼마든지 이러한 형식이라 하는 것은, 뭐 그 당시 사람들은 이렇게 했으니까, 얼마든지 이렇게 흉내 낼 수도 있고, 모방할 수도 있고, 또는 반강제로 이런 모습을 보여야 우리 교회가 진짜 하나님 교회입니다. 라고 당회장이 이렇게 선동해서 잠시나마 이런 모습을 띨 수도 있습니다.

교회에서 바자회 여는 것도 진짜 이러한 취지를 따라서 “초대교회에서 이렇게 했으니까 우리도 하면 진짜 교회 맞다.” 하는 확신을 교인들이 갖을 수 있는 근거가 되겠죠. 그런데 질적으로 “교회다” 하고 정해진게 있습니다. 사도행전 20장 28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 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교회가 뭐냐!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하나님의 피니까, 물론 하나님의 피있을리 없고 예수님이겠죠. 예수님이 피 흘렸다 이말이죠. 피 흘리신 분은 예수님입니다. 피 흘린 분이 직접 교회를 이 지상에 만들어 내십니다. 그게 자기 피로 사신 교회예요. 제 말은, 피 흘리신 분이 아니고, 다른 제 삼자, 다른 인간들이 교회 만들기를 하나님은 허락한 적이 없다는 이야기를 말씀드리는 겁니다.

피를 흘리신 그 하나님께서 직접 교회를 만들었다면 피를 흘리지 않은 다른 제 삼자가 교회 만들기에 개입할 수 있겠습니까? 안되죠. 아무리 사도행전 2장에서 우리 모입시다, 떡을 뗍시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재산을 서로 통용하고, 어려운 사람 돌보고 “날마다 모이기를 힘씁시다.” 하고 음식을 같이 먹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찬미해도 그것이 사도행전 20장28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대신할 수 있겠느냐 이말입니다. 대신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너희들이 서로 모이고, 떡을 떼고, 자기 재산을 자기 재산이라 하지 않고, 서로 나눠주면 그때사 그런 괜찮은 교회를 내가 피로 주고 그걸 내 교회로 수용할게.” 하나님이 그렇게 나오시지 않습니다. 인간들이 아무리 모이고, 재산 다 팔고 대한 예수교 장로회 간판 걸었다 할지라도 그것이 교회될 수 있는 가능성은 영퍼센트입니다. 제로입니다. 없습니다. 사람 쪽에서 교회 만들기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교회라 하는 것은 사람 쪽에서 그걸 만들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자기 피로 이미 교회되게 했습니다. 이미 교회가 되어 버린 교회 특징이 뭐냐하면, “자 우리 모입시다. 떡을 뗍시다.” 가 아니라, 우리가 모이든 안모이든, 떡을 떼든 안떼든, 재산을 공유하든 안하든, 어려운 사람 돌보든지 관계없이 이미 예수님의 피만 보고, 섬기고 서로를 형제라고 그 예수의 피를 매개로 해서 이미 교회됨을 고백하는 사람 그 사람들이 교회입니다.

이 교회 특징은 어떤 특징이 있느냐하면 주님께서 천국사람 되게 하기 위해 피를 흘렸기 때문에 그 피 앞에서 우리의 모든 어떤 일상의 일도 그 피 앞에서는 회개할 것 밖에 없는 다 죄로 드러난다는 사실을 그들은 경쟁하다시피 고백을 하는 겁니다. 목사는 설교하는 자체도도 죄입니다. 장로는 기도하는 이것도 죄입니다. 집사는 헌금하면서 수입의 십분의 일을 가져오면서 이것도 죄입니다.

왜 그것이 죄가 될까요? 오직 십자가 피로만 교회가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모일 때마다 우리는 죄인의 모습으로 모여서 예수님의 피 용서의 그 엄청난 능력과 그 효과를 감사 하는 거죠. 그러니까 는 설교자가 설교 할 때마다 오직 왜 예수님의 피로만 용서가 되고, 왜 우리의 행동이나 선함은 하나님께 영광이 안 되는지를 제대로 설명해줄 때, 그 모임은 바로 회개하는 단체 모임이 되는 겁니다.

거기서 자기 자랑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회개한다는 것은, 이미 구원 받았다는 증거고 이미 예수님의 피로 구원 받았기 때문에 회개를 통해서 인생의 모든 일에 감사만 터져 나오는 모임, 그것이 노래가 되면 찬송이 되고, 찬미가 되고 서로 베풀면 그것이 구제가 되고, 형제에 대해서 관심을 주면 그것이 사랑이 되는 겁니다.

사랑해서 구원받고 교회되는 것이 아니고, 오직 그 중심에는 예수님의 피 앞에서 누구나 죄인이고, 누구나 늘 상 되풀이해서 회개 할 수밖에 없다는 그 당위성, 그러한 현실성 그것이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유일한 교회입니다.

유일자(IP:116.♡.234.248)

13-05-26 22:02

35강-YouTube강의(사랑)1305023-이 근호 목사

35강. 제목은 “사랑”입니다. 사랑! 너무 너무 좋죠. 사람들이 사랑을 얻기 위해서 교회 가는데 막상 교회가다 보면 거기서 요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뭐냐하면 “네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라는 말씀을 설교자가 말씀을 통해서 이야기하게 되죠.

하게 되면 듣는 교인 입장에서 어떻습니까? 사랑받기 위해 왔는데, 그리고 전도 할 때는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사랑한다고 했는데, 막상 교회 와서 듣게 되면, 사랑받기 위해서 내 쪽에서 하나님께 지불해야 될 어떤 조건 같은 것이 붙어 있다는 인상을 받을 수가 있죠.

그러면 한번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때는 하나님이 사랑해 줄까요, 안 해줄까요? 지금 제가 이렇게 질문하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이라 하는 것은 율법 지켜서 주신 사랑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피 흘리심에서 주신 사랑이라고 성경에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랑에는 조건이나 요건이 없다는 말이 되죠. 예수님 옆에 있던 강도도 “오늘 밤에 낙원에 있으리라” 할 때 강도가 주님 앞에 무슨 사전에 돈을 좀 드렸습니까? 세리와 창기가 구원 받을 때, 구원받을 조건을 나름대로 성의 표시해서 구원 받은 겁니까? 신약 초대 교회에서 하나님이 성령 주실 때 괜찮은 사람, 점잖은 사람 골라서 성령 주시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 죄인은 성령 안주시는 겁니까? 그런 겁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조건하에 만약에 우리가 사랑을 받을 수 있다면, 그건 율법이지 그건 사랑이 아닙니다. 조건 없이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주십니다. 그런데 조건 없이 하나님은 사랑을 준다고 제가 이렇게 언급 했건만, 사람이라는 것이 마치 빈 도화지가 아니예요. 속에 뭔가 우글거리는게 있습니다.

이 우글거리는게 뭐냐하면, 하나님 쪽에서 아무리 좋은 이야기, 선물, 그냥 공짜, 은혜라고 이야기해도 받아들이는 우리가 뭔가 댓가를 지불하고 내 쪽에서 어떤 조건을 만들어내서 사랑을 받더라도 좀 덜 미안스러운 마음 자세에서 받고 싶은 그런 충동을 자꾸 유발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랑을 주실 때, 그것을 피해서 사랑을 주시는데, 어떻게 피해서 사랑을 주시냐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의 모습들이 우리가 사랑할 만한 모습으로 오는게 아니고, 우리가 미워죽는 정말 꼴보기 싫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다가오면 그전에는 하나님을 사랑할 만반의 마음 솜씨가 차분하게 잘 가꾸어져 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난데없이 미워죽는 정말 꼴보기 싫은 그런 인물을 보내주면 우리가 불현듯이 하나님 미워! 라는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도록 만드십니다.

예를 들면, 나는 나름대로 경건하고, 착실하고, 신앙생활 잘하고, 하자 없고, 생활에 굉장히 모범적이며 인품으로도 안정돼있다“ 라고 했는데 갑자기 어떤 미친 비슷한 사람을 보내가지고 내속을 불 지르고 내 돈을 사기해 먹었다.

그럼 우리는 그런 사태를 일어나게 하신 그 최종적인 원인제공자, 하나님에 대해서 미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 미워, 난 예수님 싫어, 난 안 믿어.“ 라는 고백이 튀어 나올 때, 바로 우리의 미움의 대상이 되는 그분, 우리가 미워 죽는 그분에 의해서만 우리가 무상으로 사랑을 받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참 부끄러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 예가 마태복음 19장에 나옵니다. 평소에 스스로 자부하기를 어릴 때부터 십계명을 다 지켰다는 부자청년이 나옵니다, 이 부자청년이 예수님이 훌륭하다는 소문을 듣고, 어느 날 용기내서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자기 쪽에서 준비한 것을 내놓았습니다.

그게 뭐냐하면, 어릴 때부터 십계명을 다 지켰습니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고, 부모를 공경하고, 하나님 사랑하는 것은 기본이고 다했습니다. 이 부자청년의 이러한 제안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영생을 얻기 위해서 사전에 정지작업이라 할까요?

내 쪽에서 나름대로의 뭔가 마음 정돈이 될 때 하나님도 그것을 가상히 여겨서 어여삐 여겨서, 그리고 대견히 여겨서 사랑을 듬뿍 주리라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제가 아까 말씀 드렸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할 때는 우리가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사이에서 오는것이 아니고, 우리 쪽에서 하나님을 싫어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입장을, 상황을 만들어 놓고 사랑한다고, 그런 공식을 말씀드렸죠.

부자 청년도 예외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부자청년 쪽에서 그 정도로 성의를 표했으면 “참 수고했습니다. 대단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당신에게 영생주기로 작정했죠? 나를 믿으세요.“ 얼마든지 좋은 이야기를 가지고 자기 믿으라고 유도할만한데 주님은 이렇게 합니다.

“니가 온전하고 싶어? 그게 온전이야? 내가 온전이 뭔지를 말해줘? 네가 갖고 있는 모든 재산 다 팔아! 그리고 빈털터리 돼서 아무 미련없이 날 따라와. 그러면 네가 얻고자 하는 영생이 거기 있어.“ 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 자신감, 스스로 신앙있다고 한 자신만만 다 어디로 갔습니까? 부자청년은 생각했습니다. 당신은 나와 상종할 인물이 못되는 군요. 요즘 같으면 나는 다른 메시야나 찾아 봐야지, 그렇게 했을 겁니다.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여 유턴해서 돌아갔습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이 부자청년이 아니고, 착한 일 많이 한 청년이라면 주님께서 이렇게 이야기했을 겁니다. “네가 착하다 생각했던 것 다 죄라고 여기고 그다음에 나는 전적인 죄인으로서 날 따르라.“ 그러면 영생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했을 겁니다. 그렇다면 자기 착한일이 있기 때문에 진정 나가 나답다, 라고 여겼던 청년이라면 그도 역시 ”나도 당신 믿을 의사 없어요.“ 하고 삐쳐서 화를 내면서 돌아설 겁니다.

자, 그러면 또 예를 들어보죠. 12제자에게 예수님께서 “목자를 치면 양들이 흩어지리라” 라고 했을 때, 제자들이 뭐라고 생각했습니까? “다른 사람은 버려도 저는 버리지 않겠습니다.” 하고 누구나 이구동성 마음속으로 결심했을 겁니다.

그런데 메시야라고 알고 있던 예수님께서 메시야는커녕, 경찰한테도 꼼짝 못하고, 체포되어서 혹시 죽기 전에 뭔가 천사라도 올 줄 알았는데, 하늘에서도 아무 낌새도 보이지 않고 그냥 최후를 맞이할 때, 그동안 제자들이 3년 동안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 다녔던 그 당사자는 과연 누구였단 말입니까? 도대체 누구입니까?

뭔가 그럴싸했고, 우리를 구원할 메시야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분의 최후를 눈으로 목격하는 순간 걸음아 나 살려라. 나는 그래도 살아남아야지. 하고 주님 곁에서 도피하기에 급급한 자들이 바로 제자들 이었습니다. 누가 예수님을 알아서, 자진해서 주님께 나와 구원 받아요. 있을 수 없습니다.

마르다, 마리아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소에 주님을 그렇게 섬겼다 했는데, 막상 사랑하는 오빠가 죽었을 때 주님한테 달려들었습니다. 자 그러면 여러분한테 물어 보겠습니다. 마르다, 마리아가 진정 사랑 한 것이 3문항입니다. 첫째, 예수님을 사랑했는가, 두 번째, 오빠를 사랑했는가, 세 번째 오빠를 좋아하는 본인들을 사랑했는가, 셋 중에 하난데, 정답은 예수님도 아니고, 오빠도 아니고, 마르다, 마리아 자기 자신을 사랑했겠죠. 내가 주님을 믿는 그 믿음을 사랑했겠죠?

주님께서는 그것을 미움으로 바뀌게 하시면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바뀌게 하시면서... 주님의 사랑이라 하는 것은, 마중 나올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고, 우리가 도망칠 수밖에 없는 존재를 기어이 따라오셔서 잃어버린 양을 찾는 심정으로, 탕자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그냥 엄청난 사랑을 된통으로 퍼부어 줄때, 우리가 그 사랑 앞에서 뭐가 잘났다고, 내 인생 망쳤다고 불평이 나올 수 있습니까? 내 인생 왜 이렇게 험하게 하고, 내 인생을 왜 이렇게 망가지게 하냐고, 어떻게 그 사랑 앞에서 환난과, 곤고와 핍박 그런 것 가지고, 어떻게 불평이 되겠습니까? 그저 사는 주제에. 모든 것 그것이 사랑이라면, 그 사랑 앞에 우리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고, 그저 감사, 감사뿐입니다.

카리스(IP:39.♡.95.103)

13-05-31 06:11

이근호목사님은 천국가시는지요?

관리자(IP:119.♡.69.144)

13-06-02 07:38

구원을 관장하시는 분에게 물어볼 질문입니다. 저는 저의 구원을 관장할 존재가 아닙니다.

카리스(IP:39.♡.169.26)

13-06-02 08:29

이근호목사님은 성도가 아니신가요??

이근호(IP:220.♡.41.202)

13-06-02 10:17

예수님에게 모든 권한을 맡기는 자가 곧 성도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지체만이 성도입니다.내가 성도가 되면 "나와 다른 너는 성도가 아니다"고 판정하는 판정관으로 나서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예수님을 대신하여 심판하는 심판관이 됩니다. 성도되게 하시는 능력은 오로지 예수님에게만 나온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이근호(IP:220.♡.41.202)

13-06-02 10:22

성도라는 개념을 이해하는데 있어 "누구는 어떻더라"라는 식으로 특정 인간의 존재성을 집어넣어서 설명하면 틀린 설명입니다. 예수님의 생각은 이와 다릅니다.

카리스(IP:39.♡.169.26)

13-06-02 17:38

이근호목사님은 예수님의 능력에 의해 성도되게 되신 것이 아닙니까???

이근호(IP:119.♡.69.144)

13-06-03 06:08

예수님의 능력이 임하면 성도 안에서 여전히 예수님의 능력으로 남지 결코 성도의 것으로 전환되지 않습니다.

카리스(IP:39.♡.170.58)

13-06-03 19:46

이근호목사님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셨지요?

이근호(IP:119.♡.69.144)

13-06-03 21:29

제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다는 것은 성경에 없는 이야기입니다. 세상은 우리 자신 중심이 아니라 성경 말씀 중심입니다. 성령받은 자는 예수님을 증거하는 자이지 자신을 증거하는 자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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