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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13 대구강의 8] - [피 94] - 피와 생명강의[피]

[13 대구강의 8] - [피 94] - 피와 생명

이름 : 구득영(IP:203.223.97.152)

[13 대구강의 8] - [피 94] - 피와 생명

13,05,06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오늘은 교재 282페이지부터 살펴보자.

** 생명이란 인간 쪽에서 발견될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인간으로부터 생명을 빼앗길 때, 비로소 생명이 보인다. 피를 그들 앞에서 흘리시기 때문이다. 피가 곧 생명이다.

◈ '생명' 이란 무엇인가?

오늘강의는 생각보다 상당히 어려운데, 이 '생명' 이라는 용어자체가 무엇인지 설명을 한번 해보자는 것이다. 생명은 알다시피 물체가 아닌데, 그렇게 물체가 아닐 때 표현하는 방법은 그 원형을 찾아가면 되는데, 그것을 형상이라고 하는데 말이다.

예를 들어서, "아름다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세요" 라고 하면, '아름다움' 자체가 아니라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꽃이 아름답다. 산이 아름답다" 라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것들은 결코 아름다움 그 자체는 아니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아름다운 것들은 다수인데, 즉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다.

◈ 인간아, 경건 자체가 뭐꼬?

소크라테스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고 하는데, "경건이란 무엇인가?" 라고 하니, "경건됨은 이웃을 돌보는 것이고, 신전의 물건을 훔치지 않는 것이고" 라고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가 웃으면서 "경건 자체가 무엇인가?" 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경건한 것들을 많이 수집한다고 떠들든 사람이 그만 입이 쑥 들어가고 말았다는 것이다. 자기는 한번도 경건함 자체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경건한 것들은 생각했는데 말이다.

남자가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서 열심히 운동해서 뱃살을 없애는 것은 좋은데, 그렇게 하면서도 아름다움 그 자체에 대해서는 모른다는 것이다. 자기가 아름다워지려고 하는 것은 굉장히 오랫동안 해왔는데, 아름다움 그 자체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아름다움 그 자체를 생각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데, 굳이 그런 것을 왜 생각하느냐는 것이다.

◈ 산다는 것에 바빠서, 삶 자체를 모르는 인간 !!

그러면 "생명은 사는 것이다" 라고 했을 때, 그런데 사는 것 자체가 무엇인지, 거기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살기에 너무 바빠서 말이다. 그러니 사는 것에 바빠서 산다는 것이 무엇이지 모른다고 하면, 그게 참 얼마나 웃기는 이야기냐는 것이다. 즉 사는 것이 바빠서 그만 생명 자체를 모르게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성경에서 생명이 나오면 당연히 사람들이 오해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생명 자체에 대해서는 무지하니까, 그 생명을 무엇으로 보는고 하니, '사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 앞에다가 무엇을 하나 더 추가해서, "내가 사는 것", 바로 그것을 생명으로 본다는 말이다. 하지만 죄송하게도 자기가 사는 것은 생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만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 사는 것도 있으니, 그러면 생명이 그만 다수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 생명은 하나이어야 !!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아름다운 것들은 많이 있지만 아름다움은 하나밖에 없듯이, 이와 마찬가지로 사는 것은 많이 있지만, 하지만 그것을 다 끌어 모은다고 해서 그것이 생명자체는 아니라는 것이다. 생명은 하나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요한복음 14장에 나오는 말씀을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데, 거기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라고 되어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앞의 것은 제거하고, "나는 생명이다" 라고 했을 때, 여기서 '나' 라는 것은 예수님이니, 즉 "예수님은 생명이다" 라고 된다는 것이다.

(요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하지만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는 무엇인고 하니, 이 생명이라는 것이, 앞으로 점점 어려워지는데, 가능하면 쉽게 하려고 하는데 말이다. "예수님은 예수님이다" 라는 것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데, 그런데 "예수님은 생명이다" 라고 해버리면, 이렇게 예수님에게서 생명으로 건너가는 방식은 우리 인간에게는 난처하기가 짝이 없는 문제라는 것이다.

◈ '관념'과 '형상' !!

여기에는 두 가지의 방법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관념'과 '형상' 이라는 것이다. 먼저 이 '관념' 이라는 것은 인간의 정신에 의존하는 것을 말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형상' 이라는 것은, 인간의 정신과는 독립이 되고 분리가 되는 것으로 본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서,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라고 할 때, 그 사랑이 얼마나 되는지, 그게 몇 kg이나 나가는지, 그런 것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사랑은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사랑은 관념이 된다는 것이다. 자기가 그 사람이 좋다고 하면 그냥 좋은 것이지, 그것을 꼭 말로 해야하느냐는 말이다. 그냥 직관적으로 좋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가 어떤 남자를 좋아하는데, 그 남자의 키가 180이라고 하면, 하지만 키가 180인 남자가 이 세상에 어디 한 두 명이냐는 말이다. 다른 수많은 남자들도 있는데, 왜 다른 남자들은 싫고 유독 그 남자만 좋으냐는 것이다. 그것이 전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관념을 알기 쉬운 말로, '주관주의' 라고 하는데, 그래서 뭐라고 하는가? "그 남자가 좋은 것은 내 주관이다. 왜?" 라고, 그렇게 나온다는 말이다.

그러면 상대방은 "그 남자가 왜 좋은지 객관적으로 말해라" 라고 하는데, 그러면 "그 남자는 키가 180이고, 집안이 빵빵하고, 아파트가 두 채나 있다" 라고 하는데, 하지만 키가 180이고, 집안이 빵빵하고, 아파트가 두 채나 있으면 다 좋아해야 한다는 말인가? 과연 그러하냐는 것이다.

◈ 내 마음이 끌리지 않아 !!

젊은 사람들이 선을 볼 때, 특히 여자의 경우에 말이다. 그냥 한번 선을 보고 결혼을 하면 되는데, 왜 그렇게 선을 많이 보느냐는 것이다. 아까 장로님이 하신 말씀처럼, 그냥 고맙다고 여기고 시집을 가면 되는데, 왜 "나는 저 남자가 싫어. 이 남자도 싫어!" 라고, 하면서 왜 자꾸만 튕기느냐는 말이다.

그러니 그것은 객관적인 신랑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맞는 주관적인, 즉 "저 남자가 무엇이 모자라서 싫은가?" 라는 것이 아니라, 그런 부족함의 문제가 아니고, "내 마음이 끌리지 않는다" 라는 것이다. 그럴 때 그것을 관념이라고 하는데, 자기 정신과 관련이 되어있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삼각형의 경우에는, 물론 이렇게 길고 짧고 여러 가지 삼각형이 있을 수 있는데, 그렇게 삼각형은 여러 가지 많이 있는데, 하지만 "삼각형 그 자체는 하나밖에 없다" 라고 할 때는, 그것은 인간의 정신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을 형상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 플라톤의, 이유 있는 꼼수 '국가론' !!

누가 이런 구분을 했는고 하니, 그 유명한 플라톤이 이렇게 했는데, 여기에는 나름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게 무엇인고 하니, 그 당시에는 신을 많이 섬겼는데, 그런데 철학자들이 거기에 대해서 노골적으로 "신은 없다!" 라는 소리는 하지 못하고, 왜냐하면 신은 있고 없고 하는 것을 논할 대상이 아니기에 말이다. 사람은 되지만, 신은 그게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철학자들의 경우에, 자기들은 신은 믿기 싫은데, 하지만 신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고, 그래서 그들이 뭐라고 하는고 하니까, "신은 신이고, 우리가 정신을 좀 다른 곳에 쓰자" 라고 했다는 것이다. 슬그머니 신에게서 좀 빠져 나오려고 말이다.

예를 들어서, 대전에 카이스트 교수가 있는데, 자기는 과학적인 업적에 몰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교수가 이제는 연세대학교 교수로 가고 싶어하는데, 그러자 연세대 총장이 뭐라고 하는고 하니, "교회는 다니십니까?" 라고 물으면, "저는 미국에 유학을 갔을 때 좀 다녔습니다" 라고 하면, "우리는 기독교 재단이니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 인간의 정신과는 독립된, '신의 형상' !!

그런데 과학하고 기독교가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 어디 과학을 버려야 하는가? 그럴 이유가 없다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이 철학자들의 아이디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인간의 정신과 독립된 '형상' 이라는 것은, 앞에 무엇이 하나 더 붙는데, 즉 '신의 형상'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신의 형상 말이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신을 믿는다는 것은 너무 관념적이니, 신을 형상으로 바꾸게 되면, 신은 신들끼리 바둑을 두든지 하도록 놔두고, 인간은 눈에 보이는 형상, 즉 사물에 치중하게 되면, 이것은 따로 우리 인간들끼리의 인간 세상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복음적으로 말하면 상당히 악마적인데, 이러한 사고방식이 굉장히 비언약적이고 이방적이고 악마적이라는 것이다. 신을 믿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신은 신들끼리 따로, 즉 신은 영광만 받으시고 존귀함만 따로 받으시고, 즉 우리 인간들의 예배와 찬양만 받으시고, 우리 인간들끼리의 사소한 객관적이고 주관적인 것들은 좀 간섭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는, 그런 바램이 들어있다는 말이다.

◈ 만약 이스라엘의 경우라면 !!

여기서 제가 질문을 하겠는데, 만약 이스라엘의 경우라고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과연 이런 관념과 형상이 따로 떨어져 나오겠느냐는 말이다. 전혀 아닌데, 왜냐하면 숨쉬는 것도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쉬는 것이고, 또한 발걸음도 주께서 세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도대체 피할 길이 전혀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뭐라고 하셨는가?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는가? 들의 백합화를 생각해 보라. 주께서 얼마나 아름답게 키우고 있는가? 내일 아궁이도 들어가서 없어질 들의 풀도 주께서 친히 기르신다" 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눅 12:25)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눅 12:26) 그런즉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능치 못하거든 어찌 그 다른 것을 염려하느냐
(눅 12:27)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아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눅 12:28)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지만 철학과 과학의 경우에는, 철학이 먼저이고 그 다음이 과학인데, 아무튼 과학시대에 접어들게 되면, 이제는 돋보기를 들고 들의 풀도 연구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독초인지 아닌지도 구분하고 말이다. 그러니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간섭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인간들끼리의 체계이고 질서이니 말이다.

◈ 국가론 - '우리끼리 질서를 잡는데는 신이 관여하지 마세요' !!

바로 이러한 인간세상을 뭐라고 하는고 하니, '국가'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플라톤은 '국가론'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는 모두 다 신을 믿던 사람들인데 말이다. 즉 "신이 존재하는 것은 좋은데, 우리끼리 질서를 잡는데는 신이 관여하지 마세요!" 라고, 그렇게 국가론에서 주장했다는 것이다.

최근의 것을 예로 들어보자면, '전국 미술인 협회' 라는 것이 있는데, 우리가 거기에 가입해야하는가? 그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거기에 가입하지 않는다고 해서 기독교 신자가 아닌가? 개인적으로 신을 믿던 믿지 않던 간에, '전국 미술인 협회'의 모든 규칙은 그 멤버들이 다 알아서 만들겠다는 것이다.

◈ 독특한 관념의 세계, '가정' !!

그게 무엇인고 하니, 관념의 세계라는 것이다. 이런 관념의 세계에서 공동체, 집단, 조직 등이 나오게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게 가정에서는 잘 되지 않는데, 왜냐하면 '전국 미술인 협회'의 경우는 모두 남들의 모임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가 싫으면 탈퇴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정의 경우에는, "내 새끼, 내 딸, 내 마누라" 라는 것인데, 도대체 어떻게 하겠느냐는 말이다.

물론 자식이 말을 듣지 않으면 "앞으로 나는 니 얼굴을 안 본다" 라고 말은 하지만, 그게 안 된다는 것이다. 자기 자식이 예수를 안 믿는다고 하면, 물론 겉으로는 "정말 안 믿는다고 하면 남의 자식으로 여기지 뭐!" 라고 하는데, 그게 그렇게 되겠느냐는 말이다. 새벽마다 교회에 나와서 "주여!" 라고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제발 예수님을 좀 믿게 해달라고 말이다.

이렇게 가정에서 어떻게 인력으로 도저히 되지 않을 때는, 아버지의 경우에는 "이 아버지의 종교를, 이 아버지의 믿음을 자식들이 따라주었으면 참 좋겠다" 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그러면 그 가정에서 자식의 주관은 아버지의 주관에 어느 정도는 양보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정은 국가나 일반적인 이익단체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물론 가정은 직장과도 전혀 다르고 말이다. "사원을 가족같이!" 라고 하지만, 그것은 끝까지 이용을 해먹겠다는 소리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족과 회사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데 말이다. 직장은 얼마든지 그만 둘 수가 있지만, 가족은 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럴 때는 아버지의 종교가 강압적으로 제공이 된다는 것이다.

◈ 이스라엘의 경우에는 !!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경우에, 이스라엘 종교가 사실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가족종교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여러분도 잘 알지만 다시 한번 더 정리하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대로 진행되는 그 공간이 우리나라, 곧 이스라엘이라는 것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약속대로 말이다.

그것은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대로 만들어진 것이 곧 교회라는 말이다. 그러한 경우에만, 즉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인데, 그러니 지금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살아있는 것이고, 그렇게 해서 산 자에 합류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관념적 구분은 결코 이스라엘에게는 인정받을 수 없다 말이다. 일단은 그렇게 이야기를 하겠는데, 제가 왜 이스라엘 이야기를 중간에 넣었는고 하니까, 바로 이 "생명은 관념이 아니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물론 생명이란 것은, "내가 살고 니가 살고", 그렇게 서로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런 것들을 서로 끌어 모아서, "생명은 이런 것이다" 라고 하면, 하지만 그것은 생명이 아니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생명은 우리 인간의 정신에 의존해서 만든 것이 아니기에 말이다.

물론 현대과학에서는 생명을 관념으로 보지만, 그게 무엇인고 하니, "식물도 살아있다. 미생물도 살아있다" 라고, 미생물도 아주 작지만 살아있는 생물이라는 것이다. 물론 돌멩이는 죽어있는데, 바로 그런 식으로 분류해서, 즉 살아있는 것을 다 모아서 그 중에서 공통점을 끄집어낼 때, 그것을 생명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 생명이, 정말 영원히 사는 것인가?

우리는 이런 과학시대에 그렇게 배웠는데,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고 하니, 과학시대에 그렇게 배웠던 그 인식을 가지고 그대로 성경말씀을 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예수를 믿고 오래 동안 살아야지" 라고 하는데, 오래 동안 사는 것이 생명이 아닌데 말이죠. 생명이라고 하면, 영원히 오래 사는 것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영생이란 말도 성경에 나오니 말이다.

이러한 오해가 바로 따지고 보면,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이미 그들이 신을 배격하고자하는 음흉하고도 은밀한 마음의 솔직함이, 철학이란 이름으로 오늘 우리에게까지 전파가 되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지금까지 이렇게 "생명은 관념이 아니다" 라고 했는데, 즉 인간의 정신에서 나온 것이 아니란 것이다. 그러면 생명은 무엇인가? 여기에 대해서 답변하기가 난처해지는데 말이다. 예를 들어, 여기에 난로가 있다면, "난로란 무엇인가?" 라고 했을 때, 즉 "이 덩치는 무엇인가?" 라고 했을 때, "이것은 난로다" 라고 해서, 난로라는 말이 나오기 위해서는 어떤 덩치, 혹은 덩어리, 즉 사물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 '예수님은 생명이다' 라고 한다면 !!

그렇다고 하면 "이것은 생명입니다" 라고 했을 때, 그 덩어리는 무엇으로 채우느냐는 말이다. 살아있는 것은 관념이라고 했으니, 그것은 일단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 생명의 덩어리는 무엇인가? 그런데 요한복음 14장에 보면, "예수님은 생명이다" 라고 하는데, 그렇게 예수님이 생명이라고 하면, 여기서 사람들이 헷깔린다는 것이다.

물론 사람들이 살아있는 것 자체를 생명이라 하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즉 "너도 살았고 나도 살았다" 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관념인데, 즉 인간에게서 나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건 아니라고 하면, 그러면 "이것은 생명이다" 라고 했을 때, 그 자리에 뭘 집어넣느냐는 말이다. 거기에 예수님을 넣어서, "예수님은 생명이다" 라고 하면, 예수님을 넣든 말든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똑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대과학에서는 이 자리에 예수님 대신에 무엇을 집어넣는고 하니, DNA를 넣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분자구조인데, 그런 분자를 쪼기면 원자가 나오고, 또 그것을 쪼개면, 그렇게 어떻게 되느냐는 말이다. 원자의 내부는 대부분이 빈 공간인데, 일종의 에너지 장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생명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예수님이 생명이라고 하면, 그러면 예수님을 분해하면 생명이 나오는가? 예수님을 낱낱이 해부하고, MRI로 촬영하면 생명이 나오느냐는 말이다. 물론 나오지 않는데, 그러니 우리는 그렇게 교회에 다니면서도 생명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오늘 이 시간에 알고자 하는데, 그러면 생명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여기서 첫째로 생각해볼 것은, "우리가 생명에 대해서 왜 그렇게 관심이 많은가?" 라는 것이다. 먼저 그러한 점부터 수상하게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 우리는 생명에 대해서 왜 그렇게 관심이 많은가?

예를 들어서, 어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회개하고 애통해하면서 기도를 하는데, 그래서 그 사람에게 물어본다는 것이다. "당신은 왜 그렇게 간절히 회개기도를 합니까?" 라고 말이다. 그러면 "저는 완벽하게 살지 못해서 이렇게 반성합니다. 주님께서는 완전하라고 했는데, 그렇지 못해서 회개를 합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거기에 대한 정확한 답변은 무엇인고 하니까, "당신이 완전하고자 하는 그 자체가 문제입니다" 라는 것이다. 완전하면 구원을 받는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그건 예수님을 믿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예수님을 자기가 완벽해지는데 필요한 하나의 모델케이스로 여긴다는 것이다. 즉 일종의 마네킹인데, 그러니 "마네킹이 입으면 그렇게 예쁜데, 나는 왜 이렇지? 몸매를 좀더 가꾸어야 하겠다" 라는 식으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마네킹을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마네킹을 언젠가 따라잡아야 하는데, 지금 그렇지 못하니 회개하고 반성한다고 난리가 났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사람은 누구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인가? 예수님이 아니라, 그 궁극적인 관심은 "그래, 나도 예수님처럼 될 거야" 라고, 그렇게 자기에게 계속해서 집착하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라" 라고 하셨는데, 그런데 이 사람은 자기 부인이 되겠는가? 만약에 결혼은 했으면 자기 부인은 있겠지만 말이다(ㅋㅋ). 평소에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회개하고 반성하는 것이 무엇인가? "주여, 제가 완전치 못하니 용서하소서" 라고 하는데, 주님이 언제 인간이 완전해야 된다고 했느냐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회개를 어떻게 해야하는가? 즉 "내가 완전해야 한다" 라고 하는 썩어질 사고방식은 도대체 어디에서 왔느냐는 것이다. "내가 완전해야 어느 정도 기분 좋게 살 수 있다" 라고 하는, 왜 우리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느냐는 것이다.

◈ 누가 정죄하리요 !!

그것은 바로 마귀가 우리를 계속해서 힘들게 하는 것인데, 그것을 로마서 8장에서 고소하는 자, 즉 '송사하는 자' 라고 하는데, 즉 "누가 너희를 정죄하리요?" 라고 하는데, 누가 우리를 정죄하겠느냐는 것이다. 마귀가 아니면 누가 그렇게 하겠느냐는 말이다.

(롬 8:33)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롬 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스가랴서에 그게 나오는데, 스룹바벨을 마귀가 정죄하고, 또한 욥기에도 보면 사탄이 그런 짓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정죄한다는 것은, 우리 속에 마귀적 속성이 남아있다는 것인데, 즉 마귀가 그런 짓을 하도록 허용하고 있다는 말이다. 물론 우리는 거기에 맥도 못 추고, 마치 술에 취한 것처럼 비틀거리고 있다는 것이다.

◈ 여러분, 한나를 본받으세요 ??

사무엘상 1장에 보면 여인이 한 명 등장하는데, '한나' 라는 분인데 말이다. 그녀가 기도할 때, 마치 술에 취한 것처럼 했다고 하는데, 그렇게 기도하면 아들을 낳는가? 기도에 응답이 되느냐는 말이다. 사람이 성경말씀을 믿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자기 자신을 믿는 채로 성경을 보기 때문에, 좋은 것은 다 모방하고 흉내내는데, 그것을 따오려고 한다는 것이다.

아들을 낳는데 있어서 술에 취한 듯이 기도하는 묘수가, 대구에 가면 '안지래이(?)' 라고 갈라진 곳이 있는데, 거기서 기도하는 것보다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보통 그런 갈라진 곳에서 기도하면 아들을 낳는다고 하는데, 그래서 사람들이 산에 가더라도 갈라진 곳이 있으면 천막을 치고 있다는 말이다. 즉 여성의 임신하는 이미지를 자연에서 발췌해서, 거기에 자기의 정성을 담는다는 것이다.

이런 버릇을 그대로 가지고 교회에 가서 성경을 보니, 물론 목사도 그렇게 성경해석을 하고 말이다. 그러니 서로 죽이 맞아떨어지는데, 그래서 "여러분, 한나가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으면 술 취한 것처럼 보였겠습니까? 여러분이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은 이런 게 없기 때문입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무엇인가? 갈 때까지 가보자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매달리면 모두 다 응답을 받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자기 부인이 아니라, 차라리 그것은 오기가 아니냐는 것이다. 즉 객기가 생긴다는 말이다. 어제 설교시간에 이 객기를 이야기했는데, 즉 성전에서 뛰어내는 것을 말이다. 그러한 소리를 하니 우리교회 교인들은 좋아하는데, 아무도 뛰어낼 의사가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다른 교회는 그렇게 하면 난리가 나는데, 자기 믿음의 본 때를 보여준다고 말이다. 믿음의 증거를 이번 차에 한번 가져보겠다고 나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마귀가 예수님에게 한 소리인데, "성전에서 뛰어내려라" 라고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게 마귀의 소리인 줄 모른다는 것이다.

◈ 생명나무를 철거하시는 하나님 !!

사람들이 생명을 얻겠다는 사고방식이, 그게 바로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고 난 뒤에 하나님께서 생명나무를 치워버린 취지가 된다는 것이다. 선악과를 따먹고 난 뒤에, "이제 되었다" 라고 하면서 그냥 가만히 있을 인간들이 아닌데, 어디까지 넘보는가? 생명나무까지 넘보기 때문에, 하나님 쪽에서 조치가 필요했는데, 그게 바로 생명나무의 철거라는 것이다.

그런 철거하는 방식으로 아담을 에덴동산에서 추방시키는데, 그러면 이제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무슨 좀비도 아니고 말이다. 좀비는 정신없이 사람의 냄새를 맡고 돌아다니는데, 피를 빨아 마시려고 말이다.

인간들은 본인의 이성과 똑똑함과 학식과 덕목과 관계없이, 어디서 영생냄새를 풍기기만 하면 그냥 쫓아간다는 것이다. 교수나 박사들도 이단종교에 빠져서 헤매고 있는데, 신천지 같은데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박학다식하기로 소문난 이어령 교수도 한 때 통일교에 빠졌다는 말도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금도 통일교에 빠진 교수들이 많이 있는데, 거기는 돈이 많아서 대주고 하니 말이다. 그래서 그리로 간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이 생명나무를 찾는 본성을, 어떤 학식이나 덕목을 입힌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예수님이 생명이다" 라는 것은, 사실 우리 인간들에게 약올리는 소리인데, 즉 "너희들에게는 생명이 없다. 그리고 너희들이 얻고자 해도 얻지 못한다" 라는 것이다. 이렇게 생명이라는 운을 띄운 것은, "너희들은 생명이 없지? 그렇지?" 라는 것을 확인시키는 말씀이라는 것이다. "생명은 여기 있다" 라고 하는 것은, "너희들 쪽에서 생명은 구경도 하지 못한다" 라는 의미라는 말이다.

◈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 !!

그러니 "생명이란 무엇인가?" 라고 했을 때, 성경에서 예수님이 "내가 곧 생명이다" 라고 하는 것은, 여기 '나' 라고 하는 것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함께 있는 '나' 라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에서 생명이 무엇인지, 그 정의를 내려보면,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이다" 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면 아버지와 함께 있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생명이 없는데, 그런데 아버지와 함께 있는 분은 예수님밖에 없는데, 그러니 예수님만이 생명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말은 그야말로 약을 올리는 것인데, 이미 생명나무가 끊어진 상태에서, 예수님께서 "너희들이 잃어버린, 너희들이 얻으려고 해도 얻을 수 없는 생명이 바로 나다" 라는 식으로 나타나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믿어라!" 라고 하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우리 쪽에서는 생명이 없음을 믿으라는 것인데, 즉 없음을 분명하게 나타났음을 믿고, 오직 그분만이 아버지와 함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인간 쪽에서는 아버지가 있다는 것인가? 없다는 것인가? 아버지가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다는 말이다.

◈ 죄의 본질에 더욱 더 깊숙이 !!

사도바울은 "율법은 죄를 더하게 한다" 라고 했는데, 그것은 죄의 양이 증가한다는 것이 아니고, 죄의 깊이를, 더 깊숙이 들어가게 하신다는 것이다. 죄의 본질에 더욱 더 깊숙이 파고들게 하신다는 말이다.
"아하, 죄라는 것은 나의 행동이 옳고 그름이 아니라, 이미 죄 속에 놓여있구나" 라고 하는 것을 날이면 날마다 더욱 더 깊이 안다는 것이다.

이런 '깊이'에 대해서는 에베소서 3장에 보면 사도바울이 이미 기도 가운데 이야기를 했는데, 그 기도제목이 무엇인고 하니, 주님의 사랑을 더욱 더 깊이 알게 해달라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죄의 깊은 속에 빠져있음을 알아서, 여기서는 아무리 관념이고 형상이고 해도, 그렇게 노력해도 생명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엡 3: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엡 3:19)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 예수님은, 아버지의 생명으로 !!

예수님이 아버지를 대신해서, 아버지의 생명으로 오셨는데, 그래서 예수님은 아버지의 생명인데, 그것을 줄이면 "나는 곧 생명이다" 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아버지의 대신해서 길이 되게 위해서 오셨는데, 즉 예수님은 "나는 곧 길이다" 라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아버지의 진리를 대신해서 오셨는데, 거기서 아버지를 빼고 나면 "나는 곧 진리다" 라고 말이다. 그것을 합치면 "나는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세 가지의 공통된 특징은 무엇인고 하니까, "이 동네에는 없고 아버지와 함께 있는 나의 동네에만 있다. 너희들이 그렇게 원하는 길도 있고, 진리도 있고, 생명도 있다. 따라서 내가 너희에게 주면, 그것이 곧 길이고 진리이고 생명이지만, 하지만 내가 주지 않으면 너희들은 길도 없고 진리도 없고 생명도 없다" 라는 것이다.

◈ 생명은 어떻게 옵니까?

그래서 지금 정리가 된 것이 무엇인고 하니, "생명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우리 입에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고, "생명은 어떻게 옵니까?" 라고 하는 것은 가능한 질문이라는 말이다. 예수님에게 "생명이 무엇입니까?" 라고 하면, 예수님은 "니가 알아서 뭐 할래?" 라고 나올 것이니, 그것은 우리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는 질문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생명이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은 우리에게 해당이 되지 않지만, 우리는 그것을 궁금해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엉뚱한 대답을, 즉 동문서답을 하시는데, 즉 "내가 곧 생명이다" 라고 말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무엇이 생명이다" 라고 할 때, 우리에게 납득이 되지 않는, "예수님이 곧 생명이다" 라고 하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 쪽에서 이미 생명을 얻으려고 하는 자들에게는 "예수님이 곧 생명이다" 라는 말씀은 그만 거침돌이 된다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는 말이다.

예를 들어서, "봄이란 무엇인가?" 라고 했을 때, "봄은 책상이다" 라고 하면, 그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도대체 봄과 책상이 무슨 상관이 있는가? 물론 봄이 되면 책상에 엎드려서 잠을 자는 시간이 늘어나겠지만 말이다(ㅋㅋ).

◈ 너희들이 생각하는 생명은 잊어라 !!

그러니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고 하니까, "너희들이 생각하는 생명은 잊어라" 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무엇이 생명이다" 라는 것이 우리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그것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나는 무엇이 생명인지 알 수만 있다면, 나는 그것을 얻을 수 있다" 라는 사고방식 자체가 주님에게는 전혀 용납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너희들은 생명을 얻을 수 없음을 알아야지, 어떻게 생명을 얻을 수 있을까?" 라고, 그런 생각은 하들들 말라는 것이다. 우리 인간이 가질 자격도 못 되면 솔직하게 못 된다고 고백을 해야지, 그래도 가져야겠다고 하는 자체가 생명을 가로막는, 즉 "예수님만이 생명이다" 라는 생각을 가로막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런 말씀을 듣고 믿었는가? 그게 아닌데,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구원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이 생각하는 것들과는 전혀 섞일 수 없는 것이기에 말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도대체 왜 그러하냐는 것이다.

◈ 다시, '이데아의 세계와 관념의 세계' !!

여기서 잠시 복습을 해보면, 인간은 관념과 형상을 구분하는데, 이 형상은 신의 형상이라는 것이다. 향상 앞에 '신' 이라는 것이 붙는다는 말이다. 인간의 주관과 독립이 되어있는 객관적인 모든 신, 아름다움 그 자체, 삼각형 그 자체, 개들은 있지만 개는 없다는 것이다. 책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만든 것들은 많이 있지만, 책상 그 자체는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 것들은 형상에 속하는데, 즉 아름다움의 형상, 사람의 형상 등등,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집합한 것이 신, 즉 '신의 형상' 이라는 말이다. 그것을 이데아의 세계라고 하고, 거기에 비해서 인간에게서 나온 것은 관념의 세계라고 해서, 플라톤은 이렇게 신비와 실제로, 즉 눈에 보이는 자연세계로 구분했다는 것이다.

◈ 플라톤과 어거스틴, 그리고 루터와 칼빈 !!

중세의 신학자들은 이런 플라톤의 생각을 받아들여서, 이런 신비에 속한 것은 하늘나라이고, 관념에 속한 것은 땅의 나라라고 구분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어거스틴인데, 그 뒤에 나오는 수많은 신학자들이 그렇게 이야기했다는 말이다.

여기에 대해서 유일하게 반대한 사람이 누구인고 하니, 그가 바로 루터인데, 물론 그렇게 반대를 해놓고는 결국 자기도 거기에 빠지고 말았는데 말이다. 그런 루터의 반대취지도 모르고 다시 어거스틴에게로 돌아간 사람이 바로 칼빈인데, 그래서 오늘날 개신교도 똑같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하나님의 형상' 이라고 해서, 거기에 대해서 아주 거룩하고 고상하고 참된 것은 하나님의 형상에 다 몰아넣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형상을 본받아야 된다" 라고 하는데, 그래서 기도할 때 회개하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완전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회개한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저는 다시 묻기를, "당신은 그렇게 완전해서 어디에 써먹으려고 합니까?" 라고 말이다. 그러면 "완전해야 구원이 이른다고 합니다" 라고 하는데, 아니 우리가 어느 세월에 완전해져서 구원에 이르겠는가? 그것은 바로 마귀가 그런 식으로 장난을 쳤다는 것이다. 마귀가 즐기는 일종의 오락인데, 마귀는 그렇게 사람을 가지고 논다는 것이다. 즉 개혁주의가 주장하는 '성화론' 이라는 말이다.

지금까지 강의한 것이 생명에 대한 서론인데, 본론에는 들어가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서론 끝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생명은 어디에만 있다는 것인가? 아버지와 아들에게만 이 생명이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생명이니 말이다.

그런데 그 생명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뭐라고 하셨는고 하니, "내가 온 것은 말씀을 이루려함이라" 라고 말이다.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이다. 그러면 구약성경의 율법 안에 이런 생명에 대한 흔적이, 그것이 이스라엘 내부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요? 그러면 과연 그러한지 한번 살펴보자는 말이다.

구약성경 레위기 17장 11절과 12절 말씀인데, 제가 읽겠습니다.

(레 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레 17:12)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너희 중에 아무도 피를 먹지 말며 너희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이라도 피를 먹지 말라 하였나니

◈ 역시 보신탕 !!

사실 우리는 이 말씀이 이해가 잘 되지 않는데, 왜 그런지 그 이유를 살펴보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선지국을 먹는다고 하면, 소의 피를 굳게 해서 여러 가지 나물을 넣어서 만든 게 선지국인데 말이다. 혹은 보신탕이나 오리탕을 먹든지 말이다. 몸이 지키고 피곤할 때 주로 그런 음식을 먹는데, 그래서 보신, 혹은 보양탕이라고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엄마가 "야, 요즘 직장생활이 힘들지? 기운이 없어 보이네. 그때는 이 보신탕이 최고다" 라고 하면서, 고사리나 버섯 등을 넣어서 끓어준다는 것이다. 고기를 좋아하는 분들은 적당히 소금만 넣어도 괜찮고 말이다. 특히 감기에 걸렸을 때는 보신탕을 먹으면 원기가 돈다고 하는데, 제 아내의 경우에는 불로동에 가서 고기를 사서 며칠을 먹으면 털고 일어난다는 것이다. 물론 자기 혼자서 먹는데, 저는 옆에서 코를 막고 있고 말이다(ㅋㅋ).

◈ '생명은 피에 있다' 라고 해놓고, 왜 피를 먹지 말라고 하시는가?

그건 그렇고, 여기에 보면 "생명은 피에 있다" 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생명을 얻는 방법은 무엇인가? 피를 먹으면 되는데, 그렇지요? 매우 간단하다는 것이다. 개고기에 원기가 있어서, 개고기를 먹으면 원기를 회복하듯이 말이다. 그렇게 생명이 피에 있다고 하면, 그것을 선지국처럼 끓여서 먹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방금 읽은 말씀에 보면, 앞에서는 생명은 피에 있다고 해놓고는, 그 뒤에 기서 보면 피를 먹으라고 하는가? 먹지 말라고 하는가? 먹지 말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게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가 아니냐는 말이다. 이것을 누가 한번 해결해보라는 것이다. 이것을 반드시 해결하고 지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누구를 약을 올리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 '피를 먹지 말라' 라는 이야기는 왜, 왜?

처음부터 살펴보면, "생명은 피에 있다" 라고 했을 때, 피는 눈에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면 눈에 보이는 것 안에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이 들어있다는 것인데, 그러니 눈에 껍데기를 것을 섭취하는 순간, 거기에 담겨서 무엇도 들어오는고 하니, 보이지 않는 생명도 함께 쏙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러니 피를 먹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반드시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마음을 가다듬고 그 뒤의 말씀을 읽어보니까 뭐라고 하는가? 피를 먹는 자는 생명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아예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에서 끊어지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우리보고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는 것이다. 우리가 먹을 수 없는, 그런 이야기를 왜 끄집어내었느냐는 말이다. 핵심이 바로 이것인데, 즉 우리보고 "너희들은 먹지 말라!" 라는 이야기를 왜 했느냐는 것이다. 이게 어려우면서도 아주 오묘한데 말이죠.

◈ 어머니, 피자를 먹지 마세요 !!

며칠 전에 울산에 가서는 서 목사님이 피자를 대접해서 맛있게 먹었는데, 그런데 양이 너무 많아서 집에 가지고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머님에게 드렸더니만 "야야, 이런 맛있는 것이 다 있었나. 나는 이런 것은 생전에 처음 먹어본다" 라고 하신다는 말이다. 미스가 아닌 미스터 피자인데, 사실 이것이 참 중요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녹취자 - 서 목사, 나도 한번 갈게. 조금만 기다려!)

똑같은 원리인데, 옛날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뭐라고 하셨는고 하니까, 자식들에게 종종 하는 소리가 "나는 라면을 안 먹는다. 난 생전에 라면을 먹어본 적도 없다"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면 라면을 전혀 먹어본 적도 없는 양반이 라면을 먹지 않겠다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냐는 말이다. 뭘 먹어봐야 "에이, 이건 먹을 게 못 돼!" 라고 하든지 해야 말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먹어본 적도 없는 양반이 먹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고집이냐는 말이다. 그게 할배의 왕고집인가?

만약에 우리 어머니에게 "어머니, 피자를 먹지 마세요" 라고 한다면, 그게 말이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어머니는 그동안 피자를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피자를 먹어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는 "피자를 먹지 마세요" 라는 말은 성립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 죽음도 모르는 아담에게 왜, 왜?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악과를 따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라고 하셨는데, 그러면 그 이전에 아담과 하와는 죽음이 무엇인지 아는가? 모르는가? 그들은 죽음을 알았던 적이 없다는 것이다. 죽음이 무엇인지, 그런 죽음을 경험하지 못한 자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목이 칼칼해진다" 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제가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고 하니, 이렇게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라고 하는 하나님의 멘트가, 과연 죽음을 전혀 경험도 하지 못한 아담에게 어떤 효력을 발생시킬 수 있느냐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됩니까?

예를 들어서, 매운 맛도 전혀 모르는 아이에게 "야야, 이 고추를 먹으면 안 된다. 이것은 엄청 매워" 라고 한다면, 그 아이는 "삼촌, 매운 게 뭐야?" 라고 하는데, "아무튼 무조건 매운 거야. 먹으면 안 돼"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 아이는 "삼촌, 매운 게 뭐야?" 라고 하면, "에이, 모르겠다. 그냥 먹여보자. 매우면 안 먹겠지" 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말이다.

◈ 우리의 순종을 끊어버리시는 하나님 !!

성경이 어느 정도 어려운고 하니, 하나님은 항상 우리가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신다는 것이다. 그 생각에 의해서 우리가 성경말씀을 성취한다든지 실천에 옮기는 모든 것을 다 끊어버린다는 말이다. 우리는 성경을 지키려고 하는데, 즉 순종을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순종이 안 되게 하신다는 말이다.

"생명은 피에 있다" 라고 했을 때, "따라서 먹어라" 라고 하는 것이 우리들의 상식인데, 즉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고, 하나님은 우리가 잘 되는 것을 원하고, 하나님은 우리가 지옥이 아닌 천국에 가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영생을 원하기 때문에, "생명은 피에 있다" 라고 하면서 그 뒤의 말을 우리보고 쓰라고 하면, "그래서 피를 마음껏 먹자" 라는 것이 우리의 당연한 생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뭐라고 하시는가? "생명은 피에 있으니, 먹지 말라"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면 결국 "생명은 피에 있으니, 그 피를 먹어야 산다" 라는 우리의 생각을 주께서는 거부하신다는 말이다. 즉 생명은 피에 있지만, 이 피가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식용의 피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 "생명은 피에 있다" 라는 이야기는 괜히 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다. 하지 않는 것이 더 좋을 뻔했다는 것이다.

◈ 피가 어디에 소모되는지를 보라 !!

그러면 하나님은 이런 이야기를 왜 하셨는가? 그것은 바로 "이 피가 어디에 소모되는지를 보라" 라는 것이다. 생명은 피에 있기 때문에, 그 피가 지나가는 경로를 추적해보라는 것이다. 즉 피가 어디에서 흘려지고, 어디에서 발려지고, 어떻게 생산되고, 어떻게 소모되고, 어떻게 뿌려지는지를 말이다.

그 피의 경로를 살펴보면, 이 피는 인간이 손을 탄 곳에는 피가 모두 뿌려지는데, 마치 피가 인간의 지문을 일일이 조사하는 것처럼 말이다. 예를 들어서, 도둑놈이 지문을 남겼다면 어떻게 하는가? 형사들이 와서 그 지문자국을 다 살핀다는 것이다. 피가 바로 그렇다는 말이다.

교재에도 그런 내용이 나오는데, 283페이지를 보자.

** 우리는 매일같이 우리의 발 밑을 살펴야 하는데, 그곳은 예수님이 피를 흘리신 좁은 길이 때문이다. 성도가 하나님께 감사할 일은 이 생명의 길, 피의 길을 매일같이 우리에게 일깨워주신다는 데 있다.

여기에 보면 "우리의 발 밑을 살펴야 한다" 라고 하는데, 우리에게는 자기 나름대로 학교를 졸업하고 결혼을 하고 또한 취직을 하는, 그런 우리의 업적들이 다들 있는데, 하지만 그것은 위의 것이고, 그런 것 말고 우리의 발 밑을 보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떠하다는 말인가?

우리가 학교를 어디를 다니고, 누구와 결혼하고, 어디에 취직을 하든지, 그런 것과는 전혀 상관없이 우리의 발 밑에는 무엇이 있다는 것인가? 무엇이 있기 때문에 생명과 관련이 있다는 말인가?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피가 말이다.

성도는 그렇게 항상 피가 흐르고 있는데, 그런데 성도는 피를 바라보는 것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나는 학교를 어디를 나오고, 누구와 결혼하고, 어디에 취직하고" 라는, 그런 것에다가 관심을 둔다는 것이다. 생명은 그런 것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닌데, 생명은 피에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우린 우리의 죄를 씻어주는 피에는 관심이 없고, 우리 손으로 만든 업적에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 피인가? 땀인가?

그것을 여기 교재에 283페이지에 보면 뭐라고 되어있는고 하니까, 같은 한 글자인데, 피가 아닌 '땀' 이라는 것이다. 로마서에 의하면 행함이 되고 말이다. 우리는 피를 마치 선지국처럼 먹어야만 하는데, 왜냐하면 그 피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평소에 밥을 먹고 수박을 먹고 바나나를 먹듯이, 그렇게 우리 자신이 피를 먹으려고 하는데, 숟가락을 직접 들고 말이다.

그렇게 피를 먹으면, 즉 피가 이렇게 있는데, 그 피를 우리 자신이 직접 손으로 먹게 되낟면 어떻게 되는가? 그러한 방식으로 피가 우리 자신에게 들어오면, 우리는 "나는 영생을 확보할 수 있다" 라고 하는 사고방식 자체를 하나님께서는 반대하기 위해서,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피를 먹지 말라" 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은 바로, "니가 밥을 먹어도, 그것은 생명이 아니다" 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아무리 떡을 먹어도 그게 자기에게 생명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밥을 먹고 떡을 먹듯이 피도 먹어야 한다" 라고 여기는데, 우리는 그런 방식밖에 모른다는 것이다. 다른 방식은 생각조차도 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 이스라엘과 나란히 !!

쉽게 이야기를 하면, 지금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시는고 하니, 나란히 가신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하는 행위와 하나님이 하시는 행위가 딱 붙어서 나란히 간다는 말이다. 그건 오늘날 성도도 마찬가지인데, 그래서 성도의 발 밑에는 피가 흐르는데, 즉 피가 묻혀있다는 것이다. 그 피가 없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말이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교도소에 가도 피가 있고, 대통령이 되어도 피가 있는데, 그러니 우리는 교도소에 간 것을 너무 슬퍼하지 말고, 또한 대통령이 된 것을 너무 좋아하지 말고, 오직 피만 자랑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가? 우리 인간은 그 피를 자랑할 줄을 모른다는 것이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우에, 본인들은 정작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여겼다는 것이다. 물론 자기들만의 착각이었는데 말이다. 그들은 계속해서 따라붙는 어떤 하나님의 그림자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그것을 다루려고 하는데 말이다.

◈ 어린 소녀와 형사 가제트 !!

이렇게 어렵게 이야기하면 좀 그렇고, 쉽게 하기 위해서 만화의 예를 한번 들어보자는 것이다. '형사 가제트' 라는 것이 있는데, 바바리를 입고 모자를 쓴 형사가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는 12살 정도가 된 소녀도 같이 나오고 말이다.

가제트가 형사니까 항상 사건을 쫓아다니는데, 그런데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물론 결과적으로는 형사 가제트가 다 해결을 하지만, 그런데 그 과정을 보면 정작 이 가제트는 아무 것도 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그냥 매사에 덜렁거리기만 하고 말이다. 실제로 사건은 이 똑똑한 소녀가 모두 다 해결하는데, 그런데 모든 영광은 가제트가 다 받는다는 것이다.

이 형사 가제트가 이스라엘이라고 하면, 그러면 이 이스라엘을 살리는 것은 누구인가? 어린 소녀인데, 그런데 이스라엘은 자꾸만 자기들이 잘나서 구원을 받았다고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잘해서 구원을 받았다. 그렇지? 우리가 하나님을 잘 믿었지. 그렇지?" 라고, 자기들끼리 그리 한다는 말이다. 맨 날 그런 짓만 하고 있는데, 즉 "적들이 물러가는 것은 우리가 열심히 기도해서 그렇다. 그렇지?" 라고 말이다.

◈ 예수님과 이스라엘 !!

그래서 주님께서는 어떻게 하시는고 하니, 이 소녀가 가제트를 떨어지지 않고 밀착해서 붙어 다니듯, 항상 이스라엘이라는 것은 제사를 드려서 피를 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너무, 즉 우리가 너무 덜렁거리니 말이다. 성도라고 해도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는데, 조금만 자기가 잘하는 것이 있으면 자랑한다고 난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못하는 것이 있으면 변명을 늘어놓는다고 난리이고 말이다.

하지만 주님이 언제 자랑하고 변명을 하라고 했는가? 잘하는 것과 잘못하는 것을, 그것을 구분할 필요도 없이 그 근거만 가지고 있으면 되는데, 그 근거가 무엇인가? 생명은 우리가 덜렁대는 것에 있는 게 아니라, 생명은 피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덜렁대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주여, 오늘도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피를 먹지 말라고 해도 피를 안 먹었습니다" 라고 하면서 말이다. 오늘날 교인들하고 똑같다는 것이다.

하지만 피의 주인공은 우리가 아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니고, 가제트 형사가 아니고, 바로 예수님인데,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진짜 아버지의 뜻을 제대로 완수하는 것은 아들밖에 없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덜렁거리면서 오해만 하고 곡해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생명은 피에 있다. 먹지 말라" 라고 하니, "어어?"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생명이 피에 있으니, 먹어라" 라고 할 줄 알고 말이다. 그건 무슨 의미인고 하니, "이스라엘의 이스라엘 됨은, 즉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됨은, 너희들의 행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너희들을 따라 붙이는 피의 제사가 너희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이 되게 할 것이다" 라는 것이다.

◈ 참새, 찍찍 !!

여러분이 초등학교를 다닐 때 원종(?)을 많이 갔지 싶은데, 소풍을 말이다. 저는 대성초등학교를 다니면서 분기산(?)으로, 지금의 우방랜드가 있는 곳인데 말이다. 그렇게 소풍을 가면 아이들끼리는 무섭지만 누가 있어서 든든한가? 선생님이 계시니 "참새, 찍찍" 라고 하면서 줄을 맞춰서 간다는 것이다. 엄마가 싸준 김밥과 말표 사이다를 한 병씩 가방에 넣어서 말이다. 그땐 설탕으로 만든 칠성사이다가 나오기 전으로, 사카린을 넣은 말표 사이다인데 말이다.

참으로 재미가 있는데, 그래서 소풍을 가지 전날에는 잠도 잘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친구들끼리 놀러 가면 안 되고, 무서워서 말이다. 하지만 누가 함께 있어서 인도하는가? 주의 사자, 즉 선생님이 있으니 괜찮다는 것이다. 그래서 평소에는 여자 선생님을 좋아하다가, 소풍을 갈 때는 남자 선생님이 더 인기가 좋다는 것이다. 힘이 더 세니까 말이다.

그렇게 이스라엘은 하늘나라로 소풍을 간 자들인데, 그런데 함께 가는 선생님이 피를 줄줄 흘리면서 가신다는 것이다. 장차 오실 예수님이 피를 흘려서 말이다. 십자가 사건은 분명히 한 번이지만, 하지만 역사가 진행되면서 십자가 사건은 매일같이 우리 발 밑에서 피를 흘리면서 적시고 있다는 것이다. 매일 매일 말이다.

◈ 단 한 번의 제사로 !!

그런 내용이 히브리서 7장, 8장, 9장, 10장에 보면 나오는데, 즉 "제사를 옛날에는 계속해서 여러 번을 드렸지만, 하지만 이제는 단 한 번만으로 족한데, 그러니 너희가 드릴 제사는 더 이상 없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히브리서 10장에 나오는데, 즉 "너희들의 죄 때문에 더 이상 드릴 제사는 없다" 라고 한다는 말이다.

(히 10:10)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그러니 헌금을 해도 자기가 지은 죄 때문에 추가해서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죄를 많이 지었다고 해서 만원 짜리를 더 한다든지, 그런 짓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죄가 더 용서되고, 덜 용서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 내 피가 아니면 안 돼 !!

아직까지 피 이야기가 끝난 것이 아닌데, 요한복음 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내 피를 마시지 않으면 생명이 없다"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당시 유대인들은 이미 구약의 레위기 17장을 잘 알고 있는데, 거기에 보면 "일체 피는 먹지 말라" 라고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잠시 방문한 손님이라도 해도 말이다.

(레 17:12)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너희 중에 아무도 피를 먹지 말며 너희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이라도 피를 먹지 말라 하였나니

그런데 그러한 자들에게 예수님은 뭐라고 하시는가?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다" 라고 하시는데, 요기서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라는 것을 빼면, "너희 속에는 생명이 없다" 라고 된다는 것이다. 즉 "현재 너희들의 상태로는 생명이 없거든!"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다.

(요 6: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 우리는 피를 안 마셨어. 잘했어 !!

하지만 유대인들은 이런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가 없는데, 왜냐하면 자기들은 피를 마시지 않기에 말이다. 피를 마시지 말라고 해서 마시지 않는데, 그러니 그것이 생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게 다른 사람의 명령도 아니고 하나님의 명령인데, 분명히 레위기 17장에 나온다는 말이다.

그렇게 그들은 피를 마시지 않았으니 그건 말씀을 실천에 옮긴 것이고, 실천에 옮겼으니 그 자체가 생명인 줄 알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히려 반대로 말씀하시는데, "내 피를 마시지 않으면 생명이 없다" 라고, 즉 "지금 너희들의 상태로는 생명이 없는 거야"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 더 깊이 들어가면, '그게 바로 죄다' !!

여기서 더 깊이 들어가면, "너희들에게 생명이 없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까, 지금 너희들은 레위기 17장에 나오는 말씀을 지켰기에 생명이 있다고 여기는데, 오히려 그것이 생명이 없는 증거이다"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즉 "내가 말씀을 지켰기 때문에 구원을 받을 거야" 라고 하는 생각이, 그것이 바로 오히려 구원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하는 표를 단단히 내고 있다는 말이다.

예수님이 그런 이야기를 할 때, 그 유대인 지도자들은 어떻게 나왔겠는가? 예수님을 살려두겠는가? 아니면 죽이겠는가? 당연히 죽이는데, 그럴 때 예수님은 무슨 역할인고 하니까, 가제트를 따라다니는 소녀역할인데, 즉 줄기차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따라다니면서 피를 흘려야 되는 어린양인 희생제물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무슨 역할인가? 어린양을 잡아서 피를 흘리게 하는 죄인의 역할로서 거기에 가담이 된다는 말이다.

◈ 다시 정리를 해보면 !!

지금 제가 뭔가 스위치를 잘못 눌려서 조금 당황스러운데, 아무튼 쉽게 말하면 다음과 같다는 것이다. 이것을 그림으로 그려보면, 여기에 제사에 종사하는 레위인들이 있는데, 그 당시의 제사법에 의하면, 어린양이든 염소든 간에 잡아서 피를 흘리게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피가 뚝뚝 흐르면, 그 피를 인간들이 손을 댄 곳마다 모두 다 뿌리면 어떻게 된다는 말인가? 속죄, 즉 죄가 용서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고 하니, "이스라엘 백성들아, 너희들은 전부가 다 죄투성이다" 라는 것이다. 온 천지가, 양 사방이 다 죄라는 말이다. 그러면 제사에 종사는 레위인들도 역시 어떠한가? 그들도 역시 죄인으로서 제사에 가담해서 피를 낸다는 것이다. 죄인으로서 말이다.

그러니 유대인들은 어떻게 생각했는가? 자기들은 죄인으로 가담해서 피를 흘렸는데, 그리고 피를 마시지 말라고 했으니, 그렇게 마시지 않는 것을 통해서 자기들은 의인이 되고, 또 영생을 얻은 것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런 유대인들의 믿음까지도 몽땅 다 확대해서 '죄' 라고 규정하셨다는 말이다. 즉 그런 유대인들의 생각까지도 죄의 범주에 집어넣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되니, 인간들이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했는가? 예수님을 그만 죽이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니 자기들은 믿음이라고 생각한 것이 그만 더욱 더, 즉 메시야를 죽이게 만든 동기로서 작용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더욱 더 확고한 죄의 범주로서 말이다.

◈ 인간은, 새롭게 펼쳐지는 씀을 보여주기 위한 인부들 !!

이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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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