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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가락교회-70이레 논문(성전의 인격화)130502-19강a -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레위기

가락교회-70이레 논문(성전의 인격화)130502-19강a -이 근호 목사

이름 : 이한례(IP:203.90.42.222)

가락교회-70이레 논문(성전의 인격화)130502-19강a -이 근호 목사

제 19강a

223페이지 위에 성전 나오는데 지난 시간에 그 성전은 주의 이름과 관련돼 있다 했고, 주의 이름은 전쟁하는 하나님, 전쟁하는 하나님이니까 전쟁이란 적이 있어야 되니까 적은 있는데 그 적은 어떻게 나오느냐, 성전을 통해서 적이 나오게 돼 있습니다.

그러면 성전은 어떤 구조로 돼 있기에 그게 하나님의 적을 적으로서 보일 수 있는 그러한 기능을 할 수 있느냐?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나는 할 수 있다.’라는 것에서 ‘나는 할 수 있다.’에서 ‘나는 할 수 없다.’가 어떻게 만들어지죠?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다.’에서 ‘나는 할 수 없다.’가 나온다면 그 할 수 있다는 생각 속에서 할 수 없다가 나올 수 없죠? 나는 할 수 있지만 지금은 안 되지만 나중에 언젠가는 할 게, 지금은 안 돼, 이 정도는 되지만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다.’ 하다가 ‘아! 나는 뭐든지 안 돼.’ 이런 고백이 인간의 능력으로 나올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죠.

그걸 어려운 말로 능력은 한계를 대면할 수 없다. 라는 말을 해요. 이 말은 우리가 자기 한계를 안다. 그런 뜻은 아니에요. 내가 한계를 안다는 뜻이 아니고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이 스스로 ‘나 능력 아니야.’라고 포기할 수는 없다 이 말이죠. 왜냐 하면 능력은 무대포로 그냥 하는 게 능력이기 때문에 그래야 능력이거든요. ‘할 수 있다.‘ 이게 능력인데 할 수 없다면 할 수 없죠.

마찬가지로 죽음이라는 것이 ‘너 죽일 거야.’ 하다가 ‘나 너 안 죽일래.’ 이런 게 죽음에서 안 나와요. 왜냐 하면 그건 죽음 값도 못하는 거거든요. 어떤 거북이든지 뭐가 죽을 때 죽은 자체가 ‘너는 이제 내 안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거야.’ 하다가 ‘안 죽일게, 안 죽일게.’ 이러면 그건 온전한 죽음이라고 할 수 없죠. 여자가 행동을 곱게 한다. 여자니까. 그런데 여자가 왈가닥하게 나온다. 그렇다고 해서 그게 남자입니까? 잠시 여자로서 왈가닥했을 뿐이지 여자는 계속 여자잖아요.

동일한 성질에서 반대되는 게 안 나온다는 이야기를 지금 제가 하고 있는 겁니다. 죽음이 스스로 죽음을 철회할 수가 없어요. ‘너 죄졌구나. 난 죽음이다. 죄 진 사람에게는 죽음 밖에 없어. 죽을게.’ 하다가 ‘아이쿠, 너무 불쌍해서 내가 안 죽을게.’ 이런 것은 죽음이란 데서 나올 수 없어요.

악마가 ‘야, 너 나와 지옥 가. 어! 그런데 내가 보니까 너 지옥 가면 내가 가슴이 아파 안 되겠어. 그래, 그래 너는 놓아줄게. 너는 내 품에서 떠나서 천국 가.’라고 악마가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그게 천사지 악마가 아니잖아요. 그렇잖아요. 악마는 줄곧 악마이어야 돼요. 악마한테 동정심을 바란다는 이건 전혀 악마답지가 않은 겁니다. 정해진 성질은 그대로 가는 거예요. 정해진 성질 안에서 반대되는 성질이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성전은 바로 반대되는 성격이 같이 나오는 이것이 성전입니다. 성전은 상반되는 두 개의 성질이 유일하게 나오는 곳이 성전입니다. 상반되는 성질! 어렵게 할 거 없이 쉽게 합시다. 성전은 그리스도 몸이잖아요. 그리스도 몸에서 사랑과 심판, 축복과 저주가 상반되잖아요. 상반되는 것이 유일하게 나오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기능 이예요.

오른쪽 양은 천국 가잖아요. 천국 보내시는 그 주님께서 왼쪽에 있는 염소를 어디 보냅니까? 지옥 보내잖아요. 이 무슨 심보입니까? 이런 심보가 다 있어요? 지금 우리가 인간으로서는 이해가 안 돼요. 자식이 둘 있는데 하나는 밉고 하나는 좋아한다. 그래도 내 자식이라. 미워한다는 것은 얘 이뻐한다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미워하는 것이지, 다른 자식보다 더 미워한다는 뜻은 아니거든요. 왜, 그 애 하나를 사랑했던 그 사랑의 마음이 부모한테 있기 때문에 얘한테 사랑의 마음이 약간 적게 간다는 것뿐이지, 전혀 사랑이 안 간다는 말은 아닙니다. ‘니가 형 닮아서 공부 좀 해라.’ 이 말은 뭔 뜻입니까? ‘니도 형처럼 공부하면 언제든지 사랑할 용의가 돼 있다.’ 왜, 나는 부모니까. 이게 인간이다 이 말이죠.

인간은 절대로 상반 된 게 나올 수가 없어요. 인간이니까 그냥 가는 겁니다. 악마도 마찬가지, 악마도 ‘아휴, 내가 너하고 지옥 같이 가려하니까 내가 니 형편보니 안 됐다. 일찍이 조실부모하고 어렵게 사는 거 보니까, 그래 이 땅에서 고생했는데 또 지옥가면 안 되니까 니는 천국으로 가게 봐줄게.’ 뭐 이런 악마 없습니다.

전에 이야기했던가요? 악마가 노리는 건 하나밖에 없다고. 바로 상번돼서 나오는 그리스도 성전, 구약에서는 성전이고 신약에서는 예수님을 못 쳐다보게 만드는 것, 이건 악마의 일관된 겁니다.

이 세상에는 청색이면 청색이고 빨강색이면 빨강색이지, 뭐가 같은 크레용에서 두 가지 색깔이 나오는 것은 없어요. 같은 색깔에서 두 가지 색깔, 그것도 비스무리한 색깔이 아니고 서로 상반되는 색깔이 나온다는 것은 성립이 안 됩니다.

지난 주 가락강의와 지지난 강의가 공통점이 있었어요. 강의 중에 어머니 잃어버렸다는 전화가 왔어요. 오늘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자, 그걸 느끼면서 뭐냐 하면 지금 내가 어머니 잃어버려서 걱정이 되는 거예요. 걱정이 되면서 ‘여러분, 범사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아무 걱정 없습니다. 이것이 동일한 개체에서는 나올 수가 없어요. 그런 이야기하면서도 빨리 끝나고 전화해 봐야지. 지금 당장 갈 수도 없고 가봐야 차도 없고 걱정하면서 하니까 이것이 첫째 시간은 풀이 팍 죽어 있다가 둘째 시간에 찾았다 하니까 기가 살아서 이건 인간은 자기를 숨길 수가 없습니다. 숨기면 자기가 자기를 기만한다는 걸 못 숨기죠.

내가 나를 속인다는 것을 누구는 안속아 넘어갑니까? 본인은 안속아 넘어가는 거예요. 내가 나를 속이고 있다. 왜 남들 보이기 위해서. 그런데 이게 억지다. 하는 본인은 도저히 속일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상반된 것이 성전에서, 또는 그리스도에서 나왔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를 믿을 때 한쪽 면만 골라잡아서 선별해서 믿게 돼 있습니다. 몰랐죠? 자기 마음에 드는 것, 예수님의 어떤 면의 마음에 드는 그것만 반쪽만 취하는데 이게 피자 판 같으면 이게 이해가 돼요. 피자 판 같은 경우 6조각으로 나누는데 한 조각 먹었는데 1, 2, 3, 4, 5, 6인데 한 조각 먹었는데 배부르다. 그러면 2조각 안 먹어도 같은 피자 판이니까 이(2번) 맛이나, 이(3번) 맛이나 안 먹어도 맛은 같으니까 안 먹어봐도 다 아는 거예요. 전에 이야기했듯이 여자들이 이 남자, 저 남자 안 사귀는 이유가 한 남자 알면 남자 다 알아버렸어요. 이처럼 하나 먹어보면 다 아니까 필요 없는데.

그리스도는 상반되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해서 이거 알았으면 그것이 2번, 3번 영역에도 내가 아는 예수님이 아닙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피자 판이 아니라면 예수님은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가? 피자 판이 아니고 모형은 피자인데 안에 피자가 없는 거예요. 피자는 없고 피자 틀만 있고 여섯 개의 피자 틀만 있는 거예요. 이게 약간 억지가 섞인 것 같지만 이해를 위해서 억지로 써야 되겠어요. 우리가 예수님 할 때 예수님이 이름으로 들어오잖아요. 그러면 예수님을 오해했잖아요. 오해했으니까 이건 죄죠? 주님을 제대로 모르고 나는 이런 면이 좋아. 해서 예수 믿는다 했잖아요. 그 믿는 것이 일부 들어오게 됩니다. 들어오면 이걸 구워버려요. 예수님으로! 구워버리면 비로소 예수님을 드러내는 계기가 돼요.

예수님은 우리가 ‘죄인이지? 저리 가.’ 가 아니라 ‘니가 나를 이런 식으로 믿다니, 그런 식으로 나를 믿어? 저리 가.’ 이런 게 아니고 엉터리로 믿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수용합니다. 수용해서 그 수용한 것 가지고 그것 때문에 주님께서 조치를 하셔요. 희생하든지 피를 흘리든지 사랑으로 용서를 하든지 조치를 해버리면 거기서 뽑혀서 나온 것이 주님과 그리스도 몸이라는 피자가 되는 거예요. 우리가 원료라. 우리가 밀가루고, 피자고 건포도고 팬이고. 우리는 오해할 수밖에 없고 오해 거리를 재료로 삼아서 진짜 예수님을 드러내니까 진짜 예수 믿는 사람은 ‘주여, 나는 주님을 핍박하는 죄인입니다.’라는 그런 고백으로 따끈따끈하게 피자가 맛있게 구워지죠. 천국 가는 피자가. ‘나는 이런 식으로 구원받을 거야.’ 라는 그것도 오해거든요. 그것도 잘못된 거예요.

그런데 막상 주님한테 손에 잡혀서 그런 오해가 왜 오해할 수밖에 없는가를 들통 나는 가운데서 우리는 따끈따끈한 찐빵이 되고 성도가 되는 거예요. 사도바울이 “나는 죄인 중에 괴수다.” 이게 얼마나 따끈따끈합니까? 나는 죄인 중에 괴수기 때문에 내가 나한테 실망한다는 것도 분수에 넘어서는 주제넘은 객기에 불과한 거예요. 우리는 원래 실망했어야 돼요. 처음부터 우리 자신에게 실망했어야 되는데 뭐 새삼스럽게 지한테 어깨 잔뜩 힘주고 지가 뭐인 양 까불다가 한다 말이죠. 그냥 ‘나는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나는 따끈따끈한 찐빵입니다.’ 이런 식으로. 그게 바로 천국 가는 자태고 모습입니다.

어떤 사람은 거지가 돼서 온 사람, 어떤 사람은 강도 돼서 온 사람, 어떤 사람은 돈 밝히는 세리로 들어온 사람, 어떤 사람은 창녀 돼서 온 사람. 지난주일 낮 설교에 기생 라합 이야기하면서 내가 설교하면서 은혜를 많이 받았어요. 기생 라합이 정탐꾼을 받아들인 그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장차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느냐는 그 방식을 앞당겨서 기생 라합과 정탐꾼의 만남으로 오늘날 우리에게 알려준 거예요. 그러니까 기생 라합이 정탐꾼을 받아들이면서 자기는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 그게 자기는 주의 일 이예요. 조국을 배신하고 적군을 숨겨주는 것이 얼마나 큰 범죄입니까? 적대적 관계에 있는 적군을 받아들여서 이건 나라 같이 망하라고 동조한 셈이 되니까 이건 보통 범죄가 아니죠.

그런데 그 일을 뭐로 본다? 거기다 거짓말까지 하고. 이게 장차 오실 예수님의 일 이예요. 예수님의 일을 한다는 것은 ‘나는 거짓말 안 하고 살고 싶어. 나는 어떤 일에도 거짓말 안 할 거야. 나는 굳건하고 바르게 살 거야.’ 라는 것을 와장창 다 뭉개버리는 그 놀라운 기적. ‘니가 뭔데 거짓말을 안 해. 이게 지 주제도 모르면서 거짓말 안 한다고? 니가 어떤 존재인데도 모르면서 나 거짓말 안 할 거야.’ 평생토록 거짓말 해놓고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거짓말 안 한다고. ‘나 이제부터 다시는 술을 안 마실 거야.’ 맛있는 술 주면 또 어떻게 될지 몰라요.

노래에 다시는 사랑 안 해. 애인 따위는 필요 없어. 이런 인간들의 객기, 오기, 장담. 성경에 보면 아예 맹세하지 마라. 너희들 맹세 안 지켰다고 뭐라 안 하고, 맹세했다고 뭐라 안 하고, 그냥 맹세를 하든지 그냥 들어오면서 주님 안에서는 이것이 다 녹아져 버립니다. 피자 판에 보면 다 치즈고 뭐고 다 녹아서 주님의 심판의 불길에 머리카락이고 뭐고 다 녹아버려요. 뭐 잘난 체 하는 것, 재산, 학력, 인맥 이런 거, 경상도 출신, 전라도 출신, 이런 거 주님 앞에 서면 이게 다 녹아져 버려요. 심지어 남자 다섯 명 사귀어도 그건 아무것도 아니고 다 녹아져 버려요. 이왕 녹을 거 한 열 명 쯤 사귀지.ㅎ

그래서 성전이란 개념이 바로 성전에 대해서 적은 뭡니까? 니 인간들아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해라. 니 독립성을 뭉개지 마라. 니는 니가 원하는 대로 니가 원하기만 하면 니가 원하는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어.‘ 이게 바로 하나님의 타고난 원수입니다. 하면 된다. 이게 교회에서 이걸 가르치잖아요. ’여러분들이 원하는 비전은 여러분들이 꿈꾸는 대로 하나님은 여러분의 꿈대로 되게 해주시는 것을 믿습니까?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이럴 때 노멘 할 사람 아무도 없어요. 물론 십자가마을 사람 같으면 혼자 ‘아니요.’ 손들겠지만 아마 윤 집사님은 그럴 거예요. 이제 노령 연금도 받는데 기댈 것도 없고 바리스타 돼서 스스로 돈도 버는데.

주님의 원수가 있어야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제 진짜 어려운데요. 어려운 거 하면 미안한데 성전은 깨져야 진짜 성전이 나와요. 앞에 있는 성전을 그걸 형상이라고 해요. 성전이 형상이거든요. 형상인데 어려운 게 뭐냐 하면 형상은 그냥 형상이 아니고 비 형상에 둘러싸일 때만 형상화가 돼요.

여러분, 벽지 무늬 같은 걸 가만히 지켜보면 거기 보면 온갖 얼굴이 다 나오잖아요. 가만히 지켜보면 예수님도 보이고 부처도 보이고 박 근혜 대통령도 보이고 김정은까지도 다 나와요. 이게 심리적으로 게슈탈트(Gestalat) 심리학이라 하는데 하나를 초점 맞춰버리면 다른 것은 배경이 되어서 그것을 뒤받쳐 줘요. 그러니까 똑같은 그림인데 어떻게 보면 노파로 보이고 어떤 사람은 젊은 사람으로 보이고, 심리적으로 측정하는 게 있죠. 그리고 병에 포도주가 얼마 남았느냐, ‘반병이나 남았네.’ 하거나 ‘반병밖에 안 남았네.’ 하는데 따라서 그 사람이 장차 출세하고 성공하느냐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이게 성경 자체가 그래요. 성경 자체가 뭔가 단어를 던질 때는 개념이 있잖아요. 그 개념은 애매모호해요. 흐릿한데 주변이 또렷하게 우리는 모르는데 쉽게 말해서 이스라엘에 대해서 이스라엘 본인이 이스라엘이 뭔지 몰라요. 그런데 난데없는 주변에 있는 블레셋이란 개들이 멍멍 짖어대는 거예요. 그러니 이스라엘 본인들이 저들이 개같이 왜 짖는지 모르는 거예요. 사무엘상에 나오는 이야긴데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궤를 지고 전쟁에 나갔는데 언약궤를 놓쳐 버렸어요. 언약궤가 있는데 누가 언약궤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느냐 하면 블레셋이 더 언약궤에 반응하는 거예요. ‘저 언약궤를 앞장세우면 우리는 다 죽었다. 우리는 다 죽은 거야. 끝났어. 전쟁 끝났어. 그러니까 이왕 죽는 거 열심히 한번 싸워보자.‘ 이랬더니 이겼어요.

이것은 블레셋이 잘해서 이긴 것이 아니고 원래 언약궤가 언약궤 취지대로 잡아야 될 이스라엘이 잡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는 거예요. 이스라엘이 이게 뭐하는지도 몰라요. 그리스도의 피를 갖고 있어도 왜 죽었는지를 모르는 거예요. 왜 죽었는지를 모르는데 주변에서 왕왕 짖어대는 거예요. ‘니 복음 안다면서? 그럼 복음 아니까 막 살겠네.’ 주변에서 십자가마을 보고 막 짖어댄다니까요. ‘그래 막 살겠네. 그래 막 살아라. 우리는 막 살지 않겠다.’ 이렇게 나온다 말이죠. 우리는 뭐했는데? 막 산다 해서 우리는 전부 다 개판 같이 살았습니까? 아니잖아요. 저쪽에서 개같이, 이리 떼같이 짖어대는 거예요. 그것도 짧은 글 이런 거 보고. 책 같은 건 안 보고.

윤곽, 주변에 있는 어두움의 세력이 먼저 알아보고 짖어대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겁나서 누구한테 의지합니까? 여호와 하나님이나 선지자한테 의지하죠. 이건 뭐냐 하면 귀한 집 애가 큰 저택에 사는데 그 저택에 cctv 열 몇 대 있고 맹견 댓 마리 풀어놓고 거기다 철조망 쳐놓고 전부 다 했는데 도둑놈이 들어올 수도 없어요. 그런데 애가 뒤 쪽에서 우는 거예요. 그래서 엄마가 ‘얘야, 우리 집은 괜찮아.’ 하면서 다독거리잖아요.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깜짝깜짝 경끼 날 정도로 잘 놀라는 애들 같아요. 이스라엘 자체가. 하나님 여호와의 지켜주심을 애들 수준 밖에 몰라요. 지가 아는 수준만큼만 자꾸 여호와를 이용해 먹겠다는 식으로만 ‘하나님, 요정도 해주시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해서 여호와 알았다고 은혜 받았다고 바깥에 나가서 놀다가 깨져서 들어와서 ‘엄마, 쟤가 때려요.’ 해서 엄마한테 고자질하고 ‘맞아도 괜찮아. 내 자식이야.’ 그래서 다독거려주고 ‘때치 해줄게.’ 해서 때치 하니까 저쪽은 다 무너지고. 그러니까 ‘야, 역시 내가 똑똑한 모양이다.’ 니가 똑똑한 게 아닌데 또 까불다가 또 터져 와서 ‘아버지’ 하고 울거든요. 이게 사사기거든요.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하시느냐 하면 니가 구원받은 것은 니가 의로워서가 아니고 착해서 선해서가 아니라 여호와의 맹세, 언약이죠. 그 언약이 너와 대비하면서, 너와 비교해서 언약으로 구원될 자격도 없는 너를 언약 안에 있는 어떤 분에 의해서 너는 포용이 된 겁니다.

언약 안에 있는 어떤 분은 특징이 뭐냐, 단지 아들이란 이름 때문에, 단지 자기가 택했단 이름 때문에,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건사해주는, 그걸 받아주는 그런 작용이 그 언약 안에 계시는 분이예요. 언약 안에 계시는 분이니까 이건 하나의 점선이죠. 어떤 인물인데 점선, 이 점선을 초창기에는 성전이라는 형상화로 하는 거예요. 형상이니까 껍데기는 성전 건물이죠. 건물이 한 껍데기, 두 껍데기 벗겨가면서 점차로 뭐가 나타나겠습니까? 점선으로 된 인물이 서서히 인격화, 구체화, 인물화 되어가요. 성전이 인격화 되는 거예요.

성전을 헐라. 몇 일만에 짓겠다? 사흘 만에 짓겠다. 이거는 예수님 자신의 몸을 두고 이야기한 것이죠. 그러니 요 건물에서 이렇게 이동하려는데, 이것도 약간 난해하지만, 앞에 인격이 들어있고 바깥에는 건물구조죠. 자, 사람들이 있으면 안에 인물이 보입니까? 안 보입니까? 안 보이죠. 왜냐, 사람들이 보는 건물이라 하는 것은 아! 납득이 돼요. 저건 이해돼요. 왜, 자기가 손수 지었으니까.

아까 동영상 두 번째 그런 이야기 했죠. 레위기에 보면 장치가 있어요. 제사 지내는 장치, 방법이 다 있거든요. 그걸 누가 손수 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 레위지파 제사장이 그걸 했잖아요. 그들은 그걸 하면서 구원이 주어진다고 생각한 겁니다. 납득이 되는 거예요. 이해가 된다 말이죠. ‘그래, 이거 양 잡고 소 잡으면 참여한 우리 당사자가 구원받는다.’ 이해가 되는 거예요. 그리고 그건 출애굽기에 보면 이렇게 만들라 하거든요. 만들고 요렇게 하면서 뭐가 다시 뜯겨지느냐 하면 고렇게 제사를 지내고 참여하고 만들던 자도 성전구조 뜯기고 날라 갈 때 같이 날라 가는 겁니다. 성경적인 하나님 방법입니다. 요게 스리랑카입니다. 8층 건물 무너져서 200여명 죽은 것. 그 건물 자체가 곧 인간 덩어리라 하면 돼요. 건물 무너지고 그 안에 갇혀 있는 인간 같이 무너지고.

성전을 지으면서 사람들은 안의 인격을 안 봐요. 왜, 성전은 누가 짓는데요? 본인들이 지었습니다. 예배당에 피아노 바쳤다. 애가 피아노 올라가면 다른 사람은 ‘아이구, 저 애가 왜 장난치나.’ 하지만 피아노 기증한 사람은 환장합니다. 몽둥이 잡고 ‘이 피아노가 어떤 피아노인데 올라가?’ 꽃꽂이 해놓으면 철없는 애들은 꽃 따고 하잖아요. 철없는 애보다 더 철없는 엄마가 ‘얘야, 꽃 따줄까?’ 하면서 꽃을 따준다 이 말이죠. 그런데 꽃꽂이를 하나의 작품으로 보는 플로리스트라 합니까? 작품으로 보는 봉사하는 집사님 눈에는 뭡니까? 지옥 갈 원수로 보죠. 마귀 엄마로 그렇게 본다 이 말이죠.

목사님이 꽃꽂이 할 사람 손드세요. 왜, 이게 납득이 되니까. ‘까짓거 하지 뭐.’ ‘십일조 하세요.’ 수입의 1/10을 하면 되니까, 그런데 그게 십일조가 아니거든요. 십일조는 아무나 못합니다. 십일조 하는 사람이 없어요. 아무도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십일조 한 것은 십일조 한 게 아니고 십일조 되게 하셨죠. 왜, 멜기세덱 속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일조를 되게 하신 거지, 십일조 한 게 그 십일조가 그 십일조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십일조 내서 구원받았습니까? 아브라함은 요한복음 8장에 보면 누구 땜에 구원받느냐 하면 예수님 때문에 구원받는 줄 알아요. 아브라함이 아들 바쳐서 구원받은 게 아닙니다. 아들 바쳐서 구원받을 거 같으면 아들 바칠 사람들 분명히 여러 명 나올 거예요. 딸 밖에 없으면 아들 양자 들여서 아들 죽여 버리죠. 지 구원받는 게 중요한 문제지, 아들 죽는 게 뭐가 중요합니까? 그 정도로 자기가 믿음 있는 걸 보이고 싶어 하거든요.

어제 수요일 날 그런 설교 했잖아요. 언약 안에 다 떨어져 버리면 그리스도의 피 밖에 없는데, 사람들은 하나님의 언약 안을 뜯어보면 거기 지 몸 건강한 거, 지 교회 부흥 되는 거, 잘 먹고 잘 사는 길, 그게 안에 들어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게 뭐냐 하면 우상이라 했잖아요. 인간은 처음부터 우상이었어요. 왜냐 하면 죄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그래요.

초월, 두 가지 개념이 있습니다. ① 지배 개념이 있고 ②넘어선다. 신은 인간을 추월한다 할 때 두 가지 개념이 있어요. 하나는 아래 것들을 지배하는 것의 의미의 초월이 있어요. 두 번째는 자기 한계를 뛰어넘는 것, 예를 들면 100미터가 보통 10초라면 100미터를 8초에 뛰는 사람이 나오면 완전히 초월자죠. 10초나 9초76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 이신바예바가 높이뛰기를 할 때 뛰어넘는 것, 뛰어넘는다 할 때 이 ②번은 틀린 거예요. 왜 틀리냐 하면 뭔가 어디서부터 뛰어넘는다는 것은 반드시 그 전의 것을 염두에 두고 뛰어넘는 거잖아요. 무슨 말이냐 하면 당뇨가 들었다. 그런데 이제는 약을 먹고 해서 당뇨에서 나았다. 그러니까 이건 하나님의 은혜다. 이러잖아요. 당뇨 걸렸는데 기도했더니만 좋은 약 써서 당뇨에서 벗어났다. 그러니까 은혜라 하잖아요. 이게 제가 보기는 하나님 일이 아니거든요. 왜냐 하면 당뇨를 뛰어넘으려면 반드시 전제가 뭐냐 하면 ‘당뇨 걸렸다.’를 같이 늘 데리고 다녀야 돼요.

여러분, 길에서 장갑 한 쪽이 있을 때 이 장갑이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하는 건 어떻게 압니까? 상대방 장갑이 나타나야 알 수 있는 문제 아닙니까? 그렇죠? 그러니까 이것은 같이 가는 거예요. 같이 가기 때문에 하나님의 기적이라 할 수 없는 겁니다. 왜, 당뇨 걸린 것이 출발점이 돼 버려요.

그런데 성경에서는 죄 아래 지배를 당하고 있다니까요. ‘당뇨 걸렸다. 주여, 당뇨 걸렸는데 기도해서 당뇨 낫게 하옵소서.’ 당뇨 걸렸는데도 죄인이고, 당뇨에서 나아도 죄인이고 기적은 어디 있습니까? 없어요. 여전히 죄 아래 있다는 것이지, 당뇨 나았다고 천국 갑니까? 하나님의 일이 아닌 거예요.

그러니 언약에서 초월은 밑에 있는 한계를 넘어서는 게 아니고 뭡니까? 왕 노릇하는 거예요. 의의 왕 노릇하는 거예요. 이게 하나님만 아는 기적이라는 거예요. 지금까지는 뭐냐 하면 이 세상에 살다가 고생 너무 많이 했잖아요. 하나님의 은혜로 고생 그만, 죄 많은 곳에 살다가 죄 없는 곳, 아프다가 아픈 것도 없는 곳, 넘어서는 그걸 기적으로 봤다 이 말이죠. 그런데 그건 하나님의 일이 아니란 말이죠. 그건 마귀가 그렇게 그런 식으로 종교적으로 좋은 걸 우리에게 기분 좋게 하는 걸로, 실제로는 뭐냐 하면 죄 아래 있는 인간은 뭘 해도 죄예요. 그러니까 죄 아래 있으면서 ‘야, 죄 밖에 없는 나 천국 가고 싶다.’ 하는 그 천국이 어떤 천국이냐 하면 죄 있으면 안 되는데 지가 조작해낸 자기기만이잖아요. 그게 종교라는 거예요. 종교!

종교는 다 천국 가고 이슬람 보세요. 알라 신을 믿으면 천국 가고 분수가 있어요. 그건 왜냐 하면 사막에는 분수가 없어서 환장했어요. 오아시스밖에 없거든요. 오아시스보다 확장된 오아시스가 천국 이예요. 이게 뭡니까? 그러니까 이걸 달고 가는 거예요. 오아시스보다 더 좋은 오아시스니까 거기는 이 밑의 한계를 초월이니까 한계를 넘어서는 그 정도의 개념의 한계를 초월하는 개념이다 말이죠.

만약에 어떤 여자가 있는데 콧날이 오뚝 섰어요. 그런데 눈은 뭉개졌어요. 눈만 이렇게 하고 보톡스를 볼에 두 방 맞고 해서 콧날은 자기가 이쁘니까 그냥 유지하고, 그 사람이 천국 가서의 자기 이미지는 눈 고치고 보톡스로 요거 고치고 하는데 뭐는 안 고칩니까? 코는 안 고칠 거라 말이죠. 왜, 그건 너무 이쁘게 나왔으니까. 그게 무슨 천국 이예요? 뭐 그런 천국이 다 있어요? 그러니 이게 도대체 교회라는 게, 기독교라는 게 이 세상에서 이런 구라가 어디 있어요? 왜 이런 구라가 있느냐 하면 어떻게 하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초월적인 신분 있잖아요?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못 듣게 하기 위해서 그럴싸하게 인간들이 가슴 속에 품고 한 맺혀 있는 것, ‘여러분들이 이런 것들 좋아하죠?’ 그런 것들 좋아하는 것들을 다 내놓는 겁니다.

오늘 아침에 잠깐 보니까 김 진아가 나왔어요. 김 진규 딸인데 사연이 복잡한데 그 분이 하와이에서 외국 남자하고 살더라 말이죠. 자, 하와이 가면 죄 안 짓습니까? 이 땅을 훌쩍 떠나면 죄 안 져요? 북한에 있는 사람이 남한으로 탈북 했죠. 남쪽에 오면 죄 안 져요? 그러면 우리가 평소에 기도하는 내용을 살펴봅시다. ①번의 주님이 나를 지배해달라는 지배 쪽입니까? 아니면 ②번 쪽입니까? ①번의 지배해주시라고 노리는 결과물이 뭐다? ②번 쪽으로 주께서 잘 왕 노릇 하셔서 정작 내가 원하는 것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거지 나사로가 은혜 받아서 죽을 때 뭐로 죽었습니까? 거지로 죽었죠. 그것도 헌데를 긁고 개들이 핥고. 끝까지 주님께서 부자 안 되게 만들어요. 주님의 고집! 끝까지 형편이 안 풀리게 만들어요. 꼬여도 인생 그렇게 꼬일 수가 없어요. 꼬아도 인위적이 아니라 정말 주의 역사로 꼬여진 인생! 그리고 거지로 가보니까 그렇게 지가 부러워했던 건강하기 짝이 없는 저 밑의 부자는, 부자가 지옥 간 게 아니고 부자가 살던 그 상황이 지옥이었어요. 그러니까 ‘물 가져와라.’ 세상의 그 행색을 그대로 하죠. 지가 있던 거 그대로. 부자는 죽어서 보고 싶다. 맘껏 보라고 해, 여기서 연장된 거예요.

첫째 시간 수학부터 여섯째 시간 체육, 일곱째 시간 영어, 그 다음에 여덟째 시간이 보충수업이잖아요. 보충수업 한 거예요. 딴 날이 아니고 살던 행색 그대로 가져간 거예요. 부자는 지옥으로. 그래서 이 땅에서 우리가 사는 게 지옥입니다. 만날 이 부분만 생각하고 예수를 믿을 때 지한테 유리한, 지한테 도움 되는 쪽만 잘라서, 딴 쪽은 생각도 안 해요. 이것만 필요합니다. 하고 겸손한 척하면서 예수님을 그런 식으로 이용하는 그 마음자세, 우리 자신이 참 죄인의 모습입니다. 이것을 주님 말씀 앞에 끌어당겨야죠.

초월을 이야기하죠. 니가 생각하는 그런 한계를 넘어서는 슈퍼맨 되는 그게 아니고, 전혀 다른 분이 지금 요따위밖에 생각 못하는 우리를 하나님의 의로서, 용서로서, 사랑으로서 지배를 해주시는 거예요. 그냥 있는 니 몸 그대로 온나, 내가 따끈따끈하게 피자 만들어 줄게. 반성도 하지 마. 그냥 가져와, 완전히 내가 전혀 상상도 못한 전혀 다른 세계에 대해서 알려줄게. 그것이 이유가 뭐냐, 그것은 바로 우리는 단일 속성밖에 없지만 주님께서는 서로 상반되는 두 개의 속성이 주님의 기능으로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로마서 11장 22절 봅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바 되리라” 자, 요 대목을 우리가 요 심성을 이해하려면 우리 선에서 떠나야 됩니다. 우리 선에서 내가 생각한 것에서 떠나지 아니하면 이 상반된 속성을 이해할 수 없어요. ‘나 어느 편에 설래.’ 이런 생각조차를 떠나야 된다 말이죠. 우리 선에서 떠나려면 우리가 있어도 없다고 여깁시다.

여기 그림을 그려보면, 예수님한테는 뭐가 있겠습니까? 엄위와 인자가 있죠. 인자, 자비하심. 자, 우리가 여기 있다 합시다. 우리가 여기 있으면서 엄위와 인자를 이해하려 하니까 우리는 단일 속성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해가 안 되잖아요. 그러면 우리를 없애버리면 누구만 남습니까? 예수님의 엄위와 인자만 남죠. 그래서 예수님의 무서움으로 남겨져서 새로 등장하고, 주님의 인자하심이 담겨서 나타나면 그게 인간인 거예요. 항상 우리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주님이 미워하는 사람 따로 있고 사랑하는 사람 따로 있습니다. 할 때 ‘그것 참 잘했습니다.’ 하는 쪽이 어느 쪽이냐 하면 바로 주님의 용서를 받은 쪽, 주님의 인자를 받은 쪽은 그걸 동의하고, 주님의 용서를 받지 못한 사람들은 바로 ‘나는 그런 점에서 동의 못 하겠습니다. 사람이 뭐 한번 해보고 니 안 되겠어.’ 이래서 지옥 가도 괜찮은데 해볼 기회도 안 주면 기회 불평등의 원리 아닙니까? 해볼 기회도 안 주고 믿을 수 있는 기회도 안 주면서 복음도 듣지도 못했는데 복음대로 심판해 버리면 시험 문제 받지도 못했는데 0점 맞는 거와 똑같은 거예요. 불합리해도 너~무 불합리한 거예요.

토기장이가 먼저 있지 토기는 나중에 있는 거예요. 나중에 있는 토기가 토기장이보고 ‘날 왜 이렇게 만들었어요?’ 할 수 있는 그런 권리는 토기한테는 준 적이 없는데, 마귀가 와서 ‘토기야, 니도 토기야. 더 이상 토기장이한테 매이지 마라. 이미 만들어졌으면 이제는 관계 끊어라. 너는 스스로 설 수 있어. 언제까지 토기장이한테 붙들래? 너는 이제는 아름다운 토기로 너를 아름답게 빛낼 수 있어.’ 아까 이야기한 ‘하면 된다. 토기야, 궐기하라.’ 이런 식으로. 그게 지금 우리 속에 외침으로 울리고 있어요. ‘인생 그렇게 살다가 남한테 웃사 당한다. 조심해라. 니가 알아서 해야지, 내 인생 아무도 책임 못 진다. 니가 알아서 해.’ 이게 격려도 아니고 독려도 아니고 우리 속에서 매일같이 일어나잖아요.

그래서 어제 수요일 설교 시간에 그런 이야기했잖아요. 우리는 아침에 눈만 뜨면 악마의 일과를 시작한다. 끊임없이 세상에서 나를 사랑해 줄 자는 나밖에 없어. 하면서 이왕이면 반들반들한 토기, 그런 토기를 원하지 않습니까? 문제는 뚝배기냐, 놋그릇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 담겨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주님께서 구원할 때 담긴 거 보고 구원하지, 그릇 좋습니다. 이렇지 않습니다. 뭐를 담고 있느냐? 그래서 베드로전서에 보면 금보다 귀한 보배라고 한 거예요.

죽음이란 것은 죽음은 우리를 놓지 않습니다. 따라서 죽음을 이기는 방법은 그냥 죽음 속에 같이 들어가면 되는 것이지, 죽음을 피해서 도망가면 죽음은 우리를 노리개 감으로 삼아서 빙긋이 웃습니다. 사람을 사냥할 때 먼저 가, 하고 뒤에서 총 쏘는 즐거움을 느끼듯이 마귀가 베드로를 사냥감으로 봐서 베드로가 자기 손에서 못 빠져나오도록 하는 그 재미를 즐기고 싶어 하듯이 그 관계를 끊는 것은 예수님의 기도 뿐 이예요. 예수님께서 기도하니까 베드로와 악마의 케이블 끈을 끊어졌어요.

이쪽의 한계를 자꾸 넘으려 하지 마시고 지금보다 더 나은 것, more and more, 이런 게 아니고 그냥 낯선 분, 어느 정도로 낯서냐? 도저히 납득이 안 될 정도로. 어떻게 같은 분이 사랑을 해주고 어떻게 똑같은 분이 미움이 되느냐 말이죠. 도저히, 미움도 그냥 좀 봐주고 나중에 ‘그동안 고생했다.’고 봐주는 게 아니고 영원히 미워하는, 미워해도 영원히 미워하는, 한 번도 사랑의 눈길을 주지 않고 영원히 미워하는 것, 참 불쌍하다 피조물, 어쩌다 피조물 됐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돼야 마땅한데, 이 피조물 되니까 우리는 당하는 대로 당할 수밖에 없는 입장, 여기서 마귀는 이야기한다. ‘궐기하라. 피조물들이여, 단결하라. 신에게, 조물주께 대들자, 우리 권리를 다오. 내가 앞장설게.’ 앞장 선 존재가 누구냐? 바로 악마입니다.

악마가 이 세상을 전부 다 공중 권세 잡은 자의 권세로서 이 세상을 완전히 예수 그리스도에게 대항하는 세력으로서 만들어놨어요. 완전히 죄 월드. 전부 다 완전히 다 덮쳐서 이 땅에서 주님의 복음을 그걸 알아먹는다는 자체가 기적 중에 기적 이예요. 세상이 틈도 없어요. 죄의 왕 노릇에서 벗어날 어떤 빈틈 하나도 없어요. 바늘구멍 하나도 없습니다. 이 바늘구멍 없는 곳에 주께서 들어오신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주님께서 부활했다는 것만 신기해하지 말고 주님께서 죄 안에 들어 왔다는 그것도 신기해야 됩니다.

들어온 것이 없으면 나가는 것도 없어요. 들어온 구멍으로 나가거든요. 들어온 구멍이 무슨 구멍이냐? 이게 바로 성령께서 요단강에서 뚫어놨거든요. 성령으로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기뻐하는 아들이라” 주님의 계시가 성령을 통해서 하늘이 열리고 거기서 비둘기같이 뭐가 옵니까? 성령이 오죠. 주님도 사실은 유영하는 우주인처럼 뒤에 밧줄이 있어요. 지금은 아니지만 초기에 우주인들은 밧줄 가지고 우주선하고 떨어지지 않도록 했거든요. 요즘은 기계 조작으로 줄 없이 유영하지만.

주님 뒤에 뭐가 있느냐, 성령이라는 밧줄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성령이 아니면 그리스도 사람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누구나 성도는 뒤에 밧줄 하나씩 있다. 이 말입니다. 그 밧줄이 탯줄 이예요. 밧줄은 탯줄이라서 거기서 말씀이 공급되고 영생이 공급되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진짜로 더러운 그릇, 생전 모르는 곰팡이 핀 그릇, 마귀가 마련해 준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주의, 이 속에서 뭐가 들어오느냐 하면 예수님이 들어오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핍박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죠. 남이 예수님을 미워하는 게 아니고 내가 내 뜻대로 안 된다고 우리는 매일같이 주님한테 원망만 해대고 짜증을 내고 짜증 범벅으로 따지고 하잖아요.

그러면서도 우리를 구원해내시는 거예요. 그래서 말씀은 늘 우리에게 회개입니다. 주님 앞에 회개할 뿐이지, 이 바탕, 주께서 작용하는 이 기계가 내 기능이 아니고 주님이 자기 생명을 삽입해 주입시키는 그런 빨대에다 집어넣는 자기가 만든 자기기계가 돼야 돼요. 우리는 자꾸 마귀한테 배워서 이걸 내 인생이라고 오해를 합니다. 그러면 안 되겠죠.

조금만 하고 쉽시다. 중요한 게 있어요. 형상에 대해서 옆에 비형상이 나오죠. 성전 건물이 있는데 여기 .. 경우에는 여기 마르둑 신, 또는 앗수르 믿던 신에 성전이 나오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당시 말고 구약 당시에서는 무엇과 무엇의 대결이냐 하면 성경 말씀이라는 형상과 비 언약에서 나오는 이방 나라의 형상과 대결을 시키는 겁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안식일에는 너희들이 회개하고 금식하라 했잖아요. 그런데 너희들이 이사야에 보면 너희들은 안식일에 금식 안 하고 먹고 마시고 했다 했잖아요. 그러니까 나중에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에 뭐 한줄 알아요? 금식했어요. 그러면 그들은 옳았습니까? 아니죠. 안식일에 회개하라는 이것은 기존의 언약이 없는 다른 민족의 비형상과 그때 그 당시에 대비시키는 그 방법 이예요. 예레미야가 이곳은 성전이 아니라고 했지만 예레미야 이전에는 여전히 성전은 성전으로 유지돼야 된다 말이죠. 나중에 학개 같은 경우에 성전 지으라 했잖아요. 그런데 성전 지으니까 성전의 그 영광은 솔로몬 때 영광보다 못했죠. 그러면 솔로몬보다 더 잘 지면 될 게 아니냐? 라고 생각이 드는 것은 그 자체가 그 당시 무엇을 의식합니까? 그 당시에 성전이 필요 없다고 한 것을 의식해서, 그래도 성전 건물은 있어야 돼, 라고 주장을 해야만 하는 시대였다 말이죠. 그 시대가.

지금은? 지금은 새 언약 시대는 예수님의 찢어진 살과 피입니다. 그렇다면 구약의 그 당시에 비 형상과 대비된다면 오늘날은 뭐와 대비입니까? 이 십자가 복음과 복음이 아닌 십자가 바깥에 있는 것을 복음으로 대체하는 것과의 전쟁, 이게 하나님의 원수죠.

10분 쉽시다.

첨부파일 : 가락교회-70이레 논문(성전의 인격화)130502-19강a -이 근호 목사.hwp (65.5K), Down: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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