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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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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의 죄악 130508우리교회마태복음

선지자의 죄악 130508

이름 : 이근호(IP:119.18.69.144)

선지자의 죄악(에스겔 14:9-11)

이근호

13-05-08 21:14

선지자의 죄악

2013년 5월 8일 본문 말씀: 에스겔 14:9-11

(겔 14:9, 개역) 『만일 선지자가 유혹을 받고 말을 하면 나 여호와가 그 선지자로 유혹을 받게 하였음이어니와 내가 손을 펴서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서 그를 멸할 것이라』

(겔 14:10, 개역) 『선지자의 죄악과 그에게 묻는 자의 죄악이 같은즉 각각 자기의 죄악을 담당하리니』

(겔 14:11, 개역) 『이는 이스라엘 족속으로 다시는 미혹하여 나를 떠나지 않게 하며 다시는 모든 범죄함으로 스스로 더럽히지 않게 하여 그들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려 함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하나님의 백성 되는데 있어 인간은 관여하지 못합니다. 인간이 관여하면 천국은 인간들의 나라로 전락합니다. 따라서 인간들이 시도해서 쟁취하는 식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께 일임된 업무로서 만들어지는 것이 ‘하나님 백성’입니다. 하지만 채택당할 입장에 놓인 우리 인간들로서는 하나님의 백성 만들기 방식에 의해서 사전에 어느 정도 정보를 알아야 되지 않느냐 하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즉 오늘 본문 내용을 두고서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께 다음과 같은 불평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선지자가 미혹받아서 범죄했고, 그래서 미혹받은 선지자나 그런 선지자를 미혹한 백성들이 모두 벌을 받는다는 식의 과정이 꼭 들어갈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라고 말입니다. 즉 나쁜 자들은 나쁜 짓하도록 내버려두고 백성될 사람에게만 합당한 일만 제공해서 구원하시는 간편하지 않습니까 라는 의문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미혹된 선지자나 그런 선지자를 좋아하는 백성들을 자기 이야기가 아니라 남의 이야기를 처리해도 무방할 것이 보일 것입니다. 적어도 참된 백성들에게는 생략되어도 상관없는 상황인 것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발상은 오산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만들기 과정에 있어 필히 ‘선지자들의 미혹’이 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면서 ‘미혹된 선지자’를 도리어 당연히 등장될 ‘참된 선지자’로 오해할만한 요인이 내부에서 터져 나오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구원방식, 즉 하나님의 백성 만들기에 엄청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이 오해를 본인이 “나는 여기 있다. 이 여기 있는 나에게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도록 해야지”라는 근본적인 의욕 때문에 생겨나는 겁니다.

이러한 오해는 마태복음 16장에서 베드로가 대표적으로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구원방식을 알지 못란 베드로는 예수님의 필수 코스를 적극적으로 저지하고 나섭니다. 이를 때, 예수님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22-23절)

베드로는 그 당시 다른 일반사람들과 더불어, 자신이 현재 ‘있음’으로부터 출발해서 ‘영원히 있는 나’로 나아가려고 시도하고자 예수님을 쳐다보고 살아왔습니다. 즉 ‘현재 있는 자’가 ‘현재 있는 예수님’과의 관계해서 영생이 확보되고 천국 백성이 된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없는 예수님상’으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을 나타나셨습니다.

즉 사람들 머리 속에서 도저히 들어있지 않는 메시아상을 가지고 평소에 일하시고 말씀해오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아무리 말씀을 쏟아내어도 주변 사람들이 “나 여기 있음, 이 있음을 포기 못해!”라는 정신 상태에서는 예수님을 이해할 수가 없는 겁니다. 백성으로서의 관계가 성립될 수 없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렇게 당부합니다. “무릇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말입니다. 인간들은 자기 존재성을 기본으로 해서 좋은 쪽으로 자신을 밀어넣어서 구원에 이르고자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식이라면 모든 거짓 선지자를 참된 선지자로 이해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신약에 이르러서 오늘 본문을 언급하신 그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모양으로 오셔서 그 진위를 밝혀주십니다. 즉 왜 인간들은 선지자를 미혹하고 또한 미혹된 선지자를 선호하는지를 말입니다. 마태복음 23:6-12에 보면,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이 사람이 참된 선지자일까 저 사람이 참된 선지자일까를 따질 필요도 없이 그 어떤 인간이라도 참된 지도자도 아니요 참된 아비도 아니요 참된 선지자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참된 지도자나 아비는 오직 ‘한 분’입니다. 다양성이 아닙니다. 여럿 사람이 아닙니다. 이 한 분은 인간 세계에서 자신들이 ‘있는 존재’인 것처럼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들이 자기 있음에서 나온 활동이나 말처럼 예수님은 그런 활동이나 말씀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자기 있음을 기본으로 해서 자신을 천국까지 입성시키려 하기 때문에 결국은 ‘없는 존재’로서 활동하시는 예수님에 대해서 인간들이 파악할 수 있는 대상으로 오해하게 된 것입니다.

인간들이 이런 식으로 나오는 것은 자신의 미래가 기껏 자신의 과거 경험에서 상상해서 만들어진다는 사실로 인해 예수님 이해의 한계로 갖게 된다는 점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너무나도 자신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온갖 좋다고 여기는 것들은 다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의 이런 시도에 말려들지를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도리어 이런 인간들로부터 오해의 소지가 있는 인물로 등장되십니다. 마태복음 16:13-15에 보면,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가로되 더러는 침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있음으로 인하여 전혀 예수님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있음’인 예수님으로부터 ‘백성 있음’으로 나타나게 하십니다. 바로 말씀대로 예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백성으로 만들어내십니다.

있음을 없음으로, 그리고 없음에서 있음으로 만들어내십니다. 그래서 성도는 예수님 작업의 결실이요 작품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날마다 거짓 것만 좋아하는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 자신을 부인케 하옵소서. 이미 자로서의 자격이 없음을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이근호

13-05-11 00:23

39강-에스겔14장 9-11(선지자의 죄악)130508이 근호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에스겔 14장 9절에서 11절까지입니다. 구약성경 1168페이지입니다.

에스겔 14:9-11

“만일 선지자가 유혹을 받고 말을 하면 나 여호와가 그 선지자로 유혹을 받게 하였음이어니와 내가 손을 펴서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서 그를 멸할 것이라 선지자의 죄악과 그에게 묻는 자의 죄악이 같은즉 각각 자기의 죄악을 담당하리니 이는 이스라엘 족속으로 다시는 미혹하여 나를 떠나지 않게 하며 다시는 모든 범죄함으로 스스로 더럽히지 않게 하여 그들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려 함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하나님의 백성은커녕 사람이 일생을 다 소비하고 거기에 진력을 다 투입해도 하나님을 안다는 것조차 안 되는 일입니다. 사람이 사람도 모르고 자신을 아는 일에 평생을 다 보내도 알지 못하는데 감히 눈에 보이지 않는,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다 만드신 하나님을 우리가 제대로 안다는 것, 이것은 평생을 다 바쳐도 꼭 필요한 일이고 이 일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그 사람이 아무리 오래 살고 부유하게 살아도 인생 헛산 겁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눈에 보이는 세상만 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지혜 있는 자라고 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하나님을 아는 정도가 아니고 오늘 본문에 보면 그들로 “그들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려”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한다, 하나님과 함께 살게 한다, 다 같은 말이겠지요.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사람이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축복 외에 더 큰 축복이라는 것이 이 세상에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제일 큰 축복이고 마지막 축복이고 세상에서 인생 아무리 힘들게 살고 꼬여서 살았다 할지라도 결국에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면 그 모든 것을 충분히 보상하고도 넉넉하게 남는 일입니다.

문제는 이겁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되느냐, 문제는 그 문제만 남았어요. 백성이 되기만 하면 참 좋은데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그 방법에 대해서 인간 쪽에서 이렇게 하면 백성이 된다는 것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아무런 언질을 주신 것이 없습니다. 내가 선택한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백성 되기 때문에 하나님만 할 수 있는 원리와 원칙이 우리에게 덮치게 되는 겁니다. 우리 인간들은 몰라요. 하나님만 아시는 원리원칙이 들어오게 되는 겁니다. 방금 제가 인간들은 모르고 하나님만 아신다고 했는데 왜 인간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 되는 방식에 대해서 몰라야 되고 안다고 해도 실천에 옮길 수 없는 입장에 있는가, 그 이유에 대해서는 우리가 잘 모르지만 오늘 본문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자기백성을 만드는 방법 중에 하나로써 선지자가 유혹을 받는 대목이 나옵니다.

선지자가 미혹을 받는데 당연히 하나님의 원수인 악마한테 미혹을 받겠지요. 하나님께 미혹을 받는데 그 선지자도 망하고 그 다음에 10절에 보면 “선지자의 죄악과 그에게 묻는 자의 죄악이 같은즉 각각 자기의 죄악을 담당하리니.”라고 되어 있어요. 하나님께서 자기백성을 만드는데 있어서 “하나님,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까?”라고 묻고 싶은데 그 점에 대해서는 하나님만 아신다는 거지요. 우리는 모른다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만 아시는 그 방식이 뭐냐, 하나님께서는 거짓선지자와 거짓선지자를 좋아들 하는 사람들, 이런 상황들을 먼저 내놓습니다.

이렇게 하면 백성 된다, 쉽게쉽게 가면 될 텐데 하나님께서는 쉽게쉽게 가지를 않아요. 거짓선지자와 그들을 따르는 백성들의 출몰을 먼저 개시해놓고 또 그들에 대해서 이것이 바로 거짓선지자이며 이것이 바로 잘못된 계시이며 이런 잘못된 계시를 좋아하면서 그것만을 듣고 싶어하는 이 백성들이 가짜며, 라는 식으로 백성이 아닌 요건들을 쫙 깔아놓으시고 그 다음에 “너희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라고 하거든요. 인도에 이런 종교가 있습니다. 참 별난 종교가 많아요. 뇌물 가져다 신 그냥 섬기면 되는데 그게 아니고 자갈이나 깨진 유리병을 깔아놓고 혹은 불을 질러놓고 “여기에서 신을 잘 섬기는 사람만이 이 깨진 유리병을 밟아도 상처 나지 않고 죽지 않고 불에 데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제 도를 많이 닦은 사람들이 거기를 맨 발로 지나가도 발이 다치지 않았고 뜨겁게 달궈진 자갈을 성큼성큼 걷는데도 불에 데지도 않고, 그러면 사람들이 “야, 정말 당신은 신과 함께 있는 사람이 맞습니다.” 하고 주변의 사람들이 동조를 하는 거예요. 태국이나 동남아에 이런 것이 많은데 그런 다큐를 보면서 생각해 봤습니다. 저 종교에 있는 사람들은 좀 얄밉다고나 할 까요, “내가 소개하는 하나님이 참된 신이니 믿으세요.” 하면 믿고 “헌금 가져오세요.” 이러면 쉬운데 꼭 뜨거운 자갈이나 깨진 유리병을 깔아놓더라는 말이지요.

그 의미는 뭐냐, 어지간한 사람은 오지 말라, 그런 뜻이거든요. 도를 닦지 않은 사람은 우리 종교에 들어와서 구원 못 받습니다, 라는 교리에 대한 강한 체험을 가지고 교리를 강조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겁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거짓선지자를 하나님께서 깔아놓고 많은 사람들이 거짓선지자에 미혹되어서 그것을 따릅니다. 이것은 마치 인도종교에 있어서 자갈이나 깨진 유리병을 깔아놓는 것 같아요. 이것을 통과하지 아니하면 아무도 내 백성 될 수 없다는 식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제시가 되는 겁니다.

자 그렇다면, 참된 하나님이 이런 것을 먼저 제시했다면, 우리가 참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알고자 한다면 대체 그 당시의 많은 백성들이 거짓선지자들에게 미혹된 것, 이 미혹된 내용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되겠지요. 지금부터 약간 어렵게 할 것이니 주의 깊게 들으시기 바랍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 사람이나 동물이나 모든 것들은 그 존재의 의미, 목적이 ‘지금 내가 여기 있다.’에서부터 나에게 무슨 이익이 되고 도움이 되겠는가, 이렇게 의미를 찾게 됩니다. 나는 여기 있다. 그런데 저 감나무가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조금 전에 감을 많이 먹었다. ‘에이 감 따기 싫다. 많이 먹었다.’ 이러면 별 의미가 없지요.

그런데 평소에 ‘감이 먹고 싶다. 정말 감이 먹고 싶다.’ 그런데 감나무가 나타났다. 그러면 ‘아,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구나.’ 하고 감을 따먹거든요. 세상의 모든 의미라는 것, 생각한다든지 행동한다든지 상상하고 기억하는 이 모든 것은 항상 전제가 ‘내가 여기 있다.’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그 다음에 ‘있는 나를 어떻게 더 키워볼까?’ 이것과 관련되어 있어요. 지금 설명하는 것이 뭐냐, 거짓선지자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의식에 대해서 지금 설명하고 있는 겁니다. 사람들이 거짓선지자를 찾는 이유는 거짓선지자가 예뻐서가 아니라 거짓선지자가 하는 말이 지금 내가 여기 있는데 나의 존재의 의미를 거짓선지자가 내 욕망대로, 욕심대로, 내 원하는 대로 잘 장단맞춰주더라는 말이지요.

그런데 지금 하나님께서 거짓선지자를 허락하신 이유가 뭐냐, 그 전에 먼저 생각할 것은 하나님께서 그냥 이것은 내 백성이라고 하면 끝나는 이야기인 것을 가지고 거짓선지자 이야기는 왜 끄집어냅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거짓선지자가 있고 많은 사람들이 그 거짓선지자를 따른다고 되어 있는데 우리는 어떤 생각이 들어가냐 하면, ‘거짓선지자가 있고 그 거짓선지자를 따르는 사람이 있고 벌을 주고, 라는 거추장스러운 과정을 생략하시면 안 됩니까?’라는 질문을 하나님께 하고 싶은 거예요.

제가 강의를 하게 되면 이런 분들이 가끔 있었어요. “목사님은 성경이야기만 하면 되는데 한국교회 비판을 왜 하십니까?” 꼭 그런 분들이 여러 명 나와요. “성경본문은 이러니 이것을 믿으라고 하면 간단한 문제를 가지고 한국교회가 문제고 한국교회 교인들이 문제라는 그 이야기를 왜 꼭 하셔야 됩니까?”라고 기분 나쁜 투로 저에게 묻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었습니다. 그 질문을 지금 우리는 하나님한테 해 보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약속하기를 ‘너는 내 백성 된다.’ 했잖아요. 그러면 내 백성 되는 방법만 이야기해주면 되지 8절 9절 10절에 왜 거짓선지자 이야기를 끼어 넣느냐는 말이지요.

거짓선지자를 아예 허락 안하시고 성경에서도 아예 빼면 되잖아요. 우리 생각은 이렇습니다. “얘들아, 거짓선지자가 여기 있다. 그러니 조심해라.” 그 이야기를 하나님 쪽에서는 할 필요가 없다고 본 거예요. 왜,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시고 못하는 게 없으신데 거짓선지자가 나타나게 되면 거짓선지자를 알아서 처리하신 뒤에 “얘들아, 내가 알아서 거짓선지자를 죽였으니 이제 선지자라고 한다면 다 참된 선지자니까 마음 놓고 믿으라.” 이렇게 하면 얼마나 편해요? 저한테 한국교회 비판한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뭐냐 하면, 그렇게 한국교회에 그렇게 문제가 있는 사람이 혹간 어쩌다 있는 것인데 그 한두 사람을 가지고 전체가 목사가 다 잘못된 것처럼 매도를 하느냐고 나와요.

“한 둘을 가지고 일부러 전체인양 거론하느냐, 대다수가 바르게 목회하고 대다수가 바르게 복음 전하고 하나님의 뜻과 영광만 돌리면서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오리다.’ 찬송 불러가면서 그 힘들고 어려운 길 가는데, 특히 나이지리아나 아프리카의 오지에서 또 남미의 정글에서 선교사들이 헐벗고 고생하면서 복음 전하고 있는 분들이 많은데 당신 말대로라면 어떻게 이들이 다 하나같이 다 이단인가, 이렇게 매도하게 되면 정작 당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빛을 잃어버리는 바보짓, 그런 자충수를 두는 식으로 왜 하는가?” 이런 식으로 저에게 어퍼컷을 날리듯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굉장히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거짓선지자의 이야기를 언급하시는 이유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따랐다고 한 이유는 어떤 인간도 거짓선지자의 말에서 외면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없다는 거예요. 우리는 우리가 여기 있다, 이렇게 해놓고 그런데 성경에 보니 하나님께서 내 백성을 만들고자 하니까 여기 있는 나를 하나님의 백성 된 입장에서 내가 그대로 있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모든 상식입니다. “하나님, 저 여기 있는 것 보고 계시지요? 귀를 만드신 분이 듣고 계시고 눈을 만드신 분이 보고 계시니까 제가 여기 있는 것 아시지요? 저의 소망은 주와 함께 있고 싶습니다. 방금 제 말 들으셨지요? 그러니 여기 있는 나를 주와 함께 있고 싶은 내 소망대로 나중에 주와 함께 있기를 원합니다. 제가 어떻게 할까요? 주께서 원하는대로 다 해드리겠습니다. 예수를 믿으라면 예수를 믿고 십자가를 믿으라면 십자가를 믿겠습니다.” 이렇게 나오더라는 말이지요.

바로 그런 사람이 거짓선지자의 유혹에 말려든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하시는 거예요. 얼마나 중요한 문제입니까? 한국교회비판은 이 앞에서 문제꺼리도 아니에요. 이것은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백성 만드는데 거짓선지자가 있고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따랐다는 그 이야기를 필수적으로 첨가하는 이유가 뭐냐는 겁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은 있는데서 있는 대로 가는 것이 아니고 없는데서 의미가 주어질 때만 비로소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겁니다. 내가 여기 있다, 그래서 나는 천국가야 되겠다, 이것은 신자든 불신자든 관계없이 모든 인간이라면 다 지금의 자신이 너무나 사랑스럽기 때문에 영원토록 이 사랑스러운 나를 잃고 싶은 생각을 아무도 하지 않습니다.

다 영원토록 보호하고 싶어요.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는 이야기가 왜 나왔습니까? 대한민국사람은 영원토록 같이 가자 그 말 아닙니까? 그게 뭐냐, “이미 있는 것을 계속 있게 만드는데 하나님이 도와주소서.”라고 하는 겁니다. 애국가 가사잖아요. “하나님이 보우하사” 하나님이 뭘 보호한다는 말입니까? 현재 있는 우리를 계속 있음으로 보호해 달라는 거잖아요.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아닙니까? 그게 이스라엘이라도 예외가 아니에요. 우리나라뿐만 아니고 옛날 이스라엘도 마찬가지라니까요.

“하나님이 보우하사 이스라엘 만세.”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이런 마음과 기대를 갖고 있기 때문에 거짓선지자와 짝짜꿍이 된 겁니다. 우리교회 영원토록! 십자가마을 영원토록! 바로 그게 거짓선지자의 주장이에요. 이러니 한국교회 치고 이러지 않는 교회가 어디 있습니까? 기독교 자체가 그런데요. 무슨 일부가 그렇습니까? 전부 다 그런데! 인간자체가 그런데요, 인간자체가. 자기집안 망하려고 교회 온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나가서 “주여, 우리 집안 망하게 하옵소서.”이런 기도하는 순복음교회교인 없어요.

그게 순 복음 아니라 순수복음도 마찬가지고 장로교니 침례교니 합동 측이니 뭐니 다 마찬가지라니까요. 말이 거짓선지자지 누가 거짓선지자라고 이야기를 해줘야 거짓선지자지요. 이 말을 하시는 분이 진짜 나타나야 되는 이야기지요. 우리는 선지자가 진짜 선지자인줄 알고 있습니다. 뜸 들일 것 없이 정면으로 돌 직구를 던져 보겠습니다. 방금 본문에서 거짓선지자가 죄악을 담당한다고 거짓말로 사람들을 미혹한다는 그 이야기를 이래서 거짓선지자라고 유일하게 지목할 수 있는 분이 신약에 나타났습니다. 누구냐, 예수님이십니다.

그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3장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좀 길지만 우리가 세상에서 많이 보고 있는 현실의 이야기기 때문에 읽겠습니다. 23장 5절부터 11절까지 보면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이렇게 되어 있어요.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어떤 선지자가 지도자입니까, 어떤 선지자가 아비입니까?”라고 우리는 현재 있는 누군가를 지목하고 싶어요.

그런데 예수님은 “지도자든 랍비든 아비든 오직 너희들을 구원할 자는 오직 한 분이니라.”라고 하는 겁니다. 다수가 아닙니다. 다양성도 아닙니다. 이 교회 저 교회, 박 목사, 최 목사, 김 목사도 아니고 권 목사도 아니고 이 목사도 아니고 오직 박, 최, 이, 정, 김 목사가 아닌 그 사람, 그 분이 우리 목자십니다. 지금 이 대목을 보면서 사람들이 오해하기를 바르게 목회하는 사람, 이라고 하는데 바르게 목회하는 정 목사, 박 목사가 아니고 하여튼 정이든 박 이든 이든 간에, 오 목사도 있네, 그리고 서 목사이건 간에, 그리고 바르게 하고 안하고가 문제가 아니에요.

사람 목사를 보고 바르게 목사를 한다는 그걸 기대한다는 그 자체가 나쁜 거예요. (생각이 또 나는데) 전목사도 있어요. 박 목사, 김 목사, 오 목사, 이 목사는 전부 눈에 다 보이는 사람들입니다. 눈에 보이는 그 사람을 가지고 “목사님, 저 분은 바른 목사입니까? 저 사람은 거짓 선지자가 아니겠지요?”라고 찾고자 하는 것은 그 목사가 존경스러워서가 아니라 현재 자기 자신이 존경스러워서 하는 소리에요. 바른 목사를 찾는 본인이 자기 포기, 자기 부인이 안 되어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거예요.

내가 여기 있다, 라는 것은 곧 내가 거짓선지자를 찾을 수밖에 없는 속성을 발휘하는 존재로서 여기 있는 거예요. 나는 나밖에 모르며 나는 나만 사랑하며 하나님이고 예수고간에 날 위해줘야 믿을 용의가 되어 있다, 이런 욕구와 욕망이 터져 나오는 채로 ‘어디 참된 선지자 없나?’라고 찾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진짜 오늘 본문 말씀을 주신 그 분이 이 지상에 사람의 모습으로 오셔서 이야기하는 것은 뭐냐 하면, “이 목사 저 목사가 아니라 오직 한 분뿐인데 왜 너 같은 인간들이나 찾느냐?” 그 말이지요.

그런데 그 한 분이 사람들과 함께 섞여 있어도 항상 행동과 말은 없는 분으로 존재하십니다. 이게 어려워요. 없는 분으로 존재하신다는 것. 예수님이 있지만 그리고 예수님이 자신을 인자라고 또 메시아라고 했지만 사람들 앞에 있는 예수님은 메시아는 없고 메시아로 자처하는 분만 있을 뿐입니다. 마태복음 16장에서 예수님이 물었지요.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레미야라 하기도 하고 선지자라 하기도 합디다.”라고 해요. 그러니까 예수님은 아무리 인자라고 해서와도 인자가 아니고 메시아로 취급을 받지를 못합니다.

왜, 그래야 사람들은 거짓선지에게 매료될 수밖에 없는 속성을 지닌 채 지금 나 예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내가, 이 하나님이 너희들 속에 섞여 있어도 너희들은 메시아인지 아닌지 구분도 못할 정도로 평소에 다른 선지자를 찾고 있었다.”라고 주께서는 이야기하고 싶은 겁니다. 그 원인이 어디 있는가? 바로 여기 있는 자기 부정이 안 되어서 그렇습니다. 그 이야기가 마태복음 16장에 나오는 이야기거든요. 16장 끝부분에 예수님께서 베드로보고 “사탄아 물러가라.”고 하시면서 그 뒤에 나오는 말씀이 뭐냐,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

다시 말해서 “있음이 없음으로 바뀌어 지지 않는 한은 없음에서만 비로소 나오는 하나님의 백성에 너희들은 동참하지 못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구원하는 방식은 소위 있다고 하는 것들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들이 예수님마저도 거짓선지자로 취급하는 악한 속성들을 내뱉고 있음을 분명히 합니다. 바리새인만 그런 것이 아니고 예수님 제자들도 마찬가지거든요. 예수님과 함께 있어도 예수님을 못 믿었습니다. 믿을 수가 없어요.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 육이기 때문입니다. 그냥 안 믿는다는 것 정도가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바라보면서도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하면, 그들은 거짓선지자를 찾는 그 속성으로, 물론 그들은 그것이 거짓선지자인지도 모르면서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을 도배를 하고 해석을 해버리는 겁니다. 그러니 오늘날 목사가 복음 전한다는 자체가 위험한 일이에요. 백날 설교해 봐야 자기 구원받는 그 욕구입장에서 전부 다 바꾸어서, 이걸 전치 해석하고 이용을 해버려요. 아까 그 이야기 계속해 봅시다. “목사님은 이게 복음이니 이 복음 믿으세요, 하면 되지 왜 한국교회의 일부목사나 일부의 사람들이 하는 짓을 다 하는 것으로 매도해서 비판하면 그 근본취지가 빛을 잃어버리면 결국 손해가 아닙니까?”라는 식으로 비판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듣고자 하는 것이 대체 뭐냐는 겁니다.

제가 한국교회를 비판할 때 그들은 오해한 거예요. 우리들 교회 빼놓고 저쪽교회만 비판하는지 안거예요. 그런데 제가 한국교회 이렇습니다, 하고 비판하는 것은 바로 이 자리, 소위 복음 안다는 이 자리가 똑같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예요. 어떤 분이 저에게 실제로 그런 질문을 했었어요. “교회로부터 핍박받는 교회가 진짜 교회입니다.” 라는 이야기를 왜 처음부터 하지 않았느냐고 댓글을 달아놓았어요. “교회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인데 왜 그 교회를 문제가 있다고 왜 비판합니까?” 라고 나와서 제가 답변하기를 “진짜 교회는 숨어 있는데 가짜교회들에게 핍박받는 형식으로 숨어 있습니다.”라고 댓글을 달았거든요.

그러니까 또 댓글을 달기를 “그러면 교회는 숨어 있고 가짜교회로부터 핍박받는다는 그 이야기를 처음부터 왜 안하십니까?”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우리 본인이 참된 교회를 핍박하는 교회가 되지 아니하면 우리가 참된 교회에 가담될 수가 없다.”는 겁니다. 출발점을 나쁜 데는 안가고 나는 건전하니까 좋은 쪽을 택해서 거기에 먼저 쏙 들어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설교 처음으로 돌아갑시다. 하나님이 거짓선지자 이야기를 쏙 빼고 네가 이렇게 하면 백성이 된다고 바로 이야기하면 될 것을 왜 거짓선지자 이야기를 하고 또 사람들은 거기에 유혹을 받는다는 식으로 왜 유혹이라는 나쁜 뉘앙스를 풍기는 단어를 써가면서 왜 그렇게 하십니까, 라는 투로 한다면 바로 예수님 오시기 전에 우리 딴엔 참된 선지자와 거짓선지자를 분별할 수 있는 분별력이 있다고 자부한 겁니다.

그런데 그 자부하는 모양새가 진짜 주님한테 들키면 그것이 다 잘못된 해석이 된다 그 말입니다. 우리 자신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몰라요. 항상 나는 여기 있다, 내가 어떻게 잘 될 것인가, 신은 나에게 어떤 도움을 줄 것인가, 항상 이런 지점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주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없고 내 사랑을 내가 포기를 못합니다. 10년 믿으면 될 줄 압니까? 20년 믿으면 포기가 될까요? 여기서 더 어려운 것을 이야기해 보면 이렇습니다. 인간에게 미래라는 것은 항상 과거의 경험이 뭉쳐져서 나온 미래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미래를 가지고 ‘오래된 기억’이라고 합니다. 상당히 말이 어렵지요? 아직 도달되지 않은 그것을 가지고 오래된 기억, 그러니까 옛날에도 묵혀져 있던 기억들이 결국 미래라는 상상을 동원할 수밖에 없는 게 인간두뇌의 구조에요. 인간의 기억은 해마라는 것이 있어서 거기에 저장이 되는데 이 해마가 고장 나면 단기기억이 안돼요. 일단 해마로 가서 번연계를 통해서 피질이라 해서 두뇌와 교류가 되면 계속 기억과 기억들이 서로 편집되고 상상을 해서 미래를 꾸며내게 되어 있는 것이 인간두뇌의 작용입니다.

그런데 그 미래를 꾸며내는 모든 것의 모티브가 뭐냐, 주제가 뭐냐 하면 ‘나 살아야 된다.’는 거예요. 이것은 마귀가 그렇게 한 겁니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따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했는데 우리는 그 ‘죽으리라’ 는 말을 잘라버린 거예요. “죽기는 개뿔이 죽어? 내가 왜 죽어? 내가 여기 있는데 왜 죽어? 무슨 수를 써서든 영생을 얻어야지 죽기는 왜 죽어?” 이게 계속해서 마귀가 우리한테 부추기고 있는 모양새거든요. 그런 부추기는 욕망 앞에서 예수가 나오든 성령이 나오든 삼위일체가 나오든 조직신학이 나오든 목사가 나오든 장로가 나오든 상관없이 지금 이것이 포기되지 않는 상태에서는 결국 사이비한 결탁에 불과한 겁니다.

그래서 교회라 하는 것은 결국 사이비한 결탁이에요. “나, 나, 여기 있는 나를 어떻게 영생으로 살려낼 것인가? 신이시여, 내 앞에서 재롱을 한 번 부려보세요.” 그런 식으로 하나님을 다루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이 오게 되면 그게 바로 육이라는 것을 알지요. 성령이 오면 그것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잘려지는 것이 아니고 그게 바로 육이라는 것, 그 육으로 인하여 예수님이 피 흘려야 했고 우리 때문에 흘린 그 피가 도리어 우리를 이 육으로부터 영으로 전환시키는 하나님만의 약속실행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그 결실이고 피의 열매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요.

그게 바로 하나님의 미래입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있음에서 나오는 경험인데 주님의 경험은 없음에서, 있음에서 나온 있음을 모두 부정하고 우리가 분명히 있지만 우리가 경험하지 않은 없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서 생명은 주어집니다. 우리가 따먹어본 적이 없는 생명나무, 우리한테는 없는 나무가 우리를 있음에서 없음으로 그리고 없음에서 있음으로 전환시켜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있음으로 주님의 나라에 참여시키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제 사는 의미를 내가 살고자 해서 살지 말고 예수님의 살아계심에서 찾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과 하나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사오니 내가 주인이 아니고 주님이 주인이라는 입장에서 주 예수를 믿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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