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마 16: 5-12 (누룩 주의보)
Re..마 16: 5-12 (누룩 주의보)
이름 : 이근호(IP:)
누룩 주의보
2004년 6월 6일
본문 말씀: 마태복음 16:5-12
16:5 제자들이 건너편으로 갈째 떡 가져가기를 잊었더니
16:6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
16:7 제자들이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우리가 떡을 가져 오지 아니하였도다 하거늘
16:8 예수께서 아시고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음으로 서로 의논하느냐
16:9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
16:10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이던 것을 기억지 못하느냐
16:11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16:12 그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
예수님은 이 사회의 사정을 훤히 다 아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인간들은 이미 죽음의 바이러스에 의해서 감염되어 있습니다. 죽음에 이르는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입니다.
쉽게 말해서 장차 시신이 될 자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습니다. 자기 안에 죽음의 바이러스가 있다는 것도 모르는 채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서 우리 인간은 '예수님 관점'이라는 것을 만나게 되었고, 그 관점에서 보아 비로소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되어 있습니다.
남녀노소나 직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품고 있는 '죽음의 바이러스'에 대해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누룩'이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누룩의 특징이란 비록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온 몸에 퍼진다는 겁니다. 마치 지독한 암 세포와 같습니다.
그리고 구석구석 그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누룩에 대해서 오늘 본문에 보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 즉 '그들의 가르침'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바로 이들 유대교 성직자들의 가르침이 결코 제자들은 용납해서는 아니 된다는 겁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두 진영'을 염두에 두고 계십니다. 한 진영은 '누룩' 같은 것들을 자랑삼아 진리라고 장려하는 진영이요 다른 진영은 예수님과 함께 있는 제자들의 진영입니다. 저쪽 유대 성직자들의 교훈이 결코 이 쪽 예수님 진영으로 스며들어 오는 것을 절대로 용납해서는 아니 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유대 성직자들의 교훈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로마서 10:2-3에 보면,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뽑아 세우실 때, 그들의 대단한 자질을 염두에 두고 뽑은 것이 아닙니다. 그저 평범하기 짝이 없는 어부들이요, 세리요, 별 볼일 없는 자들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자체적인 의로움을 찾고자해서 제자로 뽑으신 것이 아닙니다.
그들 제자들 무리 속에는 그저 예수님의 자비와 용서하심과 인도하심만 그득할 뿐입니다. 그런데 유대 성직자들 진영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서 나오는 은혜에 대한 고마움과 감사보다는 자신들의 노고와 노력이 높이 부각됩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계속 다듬어 나가려고 합니다. 자기에게서 거룩하고 아름답고 선한 것이 출현되는 것을 목표로 말입니다. 없으면 만들려고 하고, 조금이라고 생겼다면 키우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자기 마음을 재구성하는 겁니까? 여기에 '자기 의'를 만드는 종교적인 기술과 윤리관인 수고가 동원됩니다. 이것이 그들의 종교가 되었습니다. 종교에는 신비감과 권위가 동원됩니다. 성직자들의 모든 일상용품이나 말씀이나 행동까지 거룩함과 성스러움을 둘러쳐져 있는 것으로 대중들에게 깊이 인상 남기기를 그들은 원했습니다.
예수님의 산상 설교에 나오는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인간이 해낼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가지고 거룩을 짜내는 식으로 말씀을 해석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누룩'이라는 말씀 하나로 그들의 위선을 여지없이 폭로시켜 버립니다.
즉 그들의 '누룩'은 죄가 들어 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도리어 '의'가 담겨 있다는 것을 예수님은 문제삼으신 것입니다. 물론 인간들이 만들어내고 조립하고 재구성해 내는 '의로움'이지요.
마태복음 5:28-30에 보면,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들은 소위 자체적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를 유지하고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우기는 유대인들의 종교 권세자들을 겨냥한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 어느 누가 자신의 죄지은 지체를 잘라내고 나머지로서 구원될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인간은 자신의 의로움과 선행으로는 도저히 자신을 죽음에서 건져낼 수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시는 말씀입니다. 죽음의 바이러스를 지닌 채 평생을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근본적인 해결책은 자체적인 '의로움'이 아니라 예수님의 생명과 부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 진영 안으로 유대 성직자들의 '누룩'이 들어오는 것을 용납하지 말라고 하시는 겁니다. 고린도전서 5:6-8에 보면,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 이후에 나타나는 성도들은 묵은 누룩이 없는 떡이라는 겁니다. 누룩이 없는 떡이란 유월절 제사를 통해서 나옵니다. '누룩 없는 떡'이란 곧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의 생명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은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완치된 자라고 보고 있는 겁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는 '인간의 의'가 설자리가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고린도전서에서 말씀하시는 사도 바울의 이러한 인식은 십자가 이후 성령님이 오셨기에 가능한 일입니다만
오늘 본문의 경우처럼, 아직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시기 전의 제자들 상황에서는 이런 관점이 아직 무르익지 않을 때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차원과 제자들이 알아듣는 차원이 같은 레벨에서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누룩'이라는 단어를 던지니까 제자들은, 자신이 챙겨야 될 업무중에 뭔가 빠진 것이 있기에 예수님께서 힌트를 주신 것으로 했습니다. 그렇다보니, 누룩→빵 같이 연관을 짓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생각하기를, '제 때 빵 챙기는 것'을 소홀히 했다고 책망주시는 암시로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도리어 답답해하십니다. 먹는 빵에 들어가는 누룩이 아니라는 겁니다.
사실 십자가 지시기 전 까지 제자들은 은근히 출세욕을 가지고 예수님을 추종한 것이 사실입니다. '누가 누구 더 높은 자리에 앉을 것인가'를 가지고 서로서로 견제했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은 각자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자신들에게 돌아온 투자 몫의 소득을 계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 말씀을 보다 높고 넓은 취지에서 이해하지 아니하면 인간들은 항상 자기 울타리에 갇혀 있는 꼴이 됩니다. 만약에 꿈에 예수님이 나타나면, 오늘 일진에 큰 영향이 있다 것을 미리 알려주는 힌트 같은 것으로 여기는 겁니다.
제자들의 이러한 태도를 보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리떡 5개로 5000명을 먹였고, 보리떡 7개로 4000명을 먹인 것을 보고서는 못 믿느냐"고 하셨습니다. 사람이란 자기 생존과 생계에 몰두하면 예수님의 그 어떤 말씀은 이런 식으로 곡해할 수 있습니다.
사람 몸 속에는 죽음의 바이러스는 양식을 계속 충당시킨다고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유대인들의 사고방식'이라는 '누룩 같은 의식'을 용납해서는 아니 되는 겁니다.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 발가벗겨야 합니다. 얇은 껍데기처럼 걸치고 있는 자신의 권위나 신비감 같은 것도 다 철거되어야 합니다. 성직자들이 조직을 사조직으로 전환하는 방법으로 목사직에 힘을 실으려고 합니다. 이것을 용납해서는 아니 됩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나처럼 만 거룩하면 하늘의 복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그런 말을 하는 자들은 사기꾼이요 악마의 일을 돕는 일꾼들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후서 그런 성직자들은 세웠다고 고린도교회에다 호되게 꾸짖고 있습니다.
자신의 의로서 신의 축복을 따낼 생각을 품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유월절 희생의 떡처럼 누룩이 들어가 있지 않은 예수님의 희생뿐입니다. 거기서는 오직 예수님의 의만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성도의 남은 생애는 감사와 감사뿐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은연중에 자신의 노고나 노력의 대가를 근거로 신의 축복을 따내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누룩 적인 사고방식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자신을 제대로 알게 하옵소서. 죽음의 병에서 치료되는 것은 십자가에서 나오는 예수님의 생명뿐임을 믿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