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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대전130425b-마13장34절(언어와 비유)39강 - 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마태복음

대전130425b-마13장34절(언어와 비유)39강 - 이 근호 목사

이름 : 공은주(IP:218.147.193.250)

대전130425b-마13장34절(언어와 비유)39강 - 이 근호 목사

마태복음 13장 34절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거 하나만 알고 있으면 다 끝나요. 언어라 하는 것은 대상과 나 사이에 언어가 끼어있습니다. 언어라 하는 것은 대상과 나와의 일치시키려고 언어가 있어요. 이게 만약에 꽃이라면, ‘꽃’하고 발성하잖아요. ‘플라워’하잖아요. 플라워가 꽃입니까? 그냥 소리지요. 단절된 소리. 절단된 소리에 음소들의 뭉침이지요. 꽃은 아닌데 여기 꽃이 피어있다, 말이지요. 꽃이라는 이것을 함으로서 발성함으로서 이 꽃과 일치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데 일치할까요? 일치 안할까요? 이건 전혀 꽃하고는 일치한 적 없잖아요.

그러니까 인간들이 같다고 일치한다고 일방적으로 규정해 버리는 겁니다. 이것은 꽃하고 사귀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같은 누구하고 사귀려고? 같은 인간들,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 언어를 사용하는 겁니다. 그러면 오늘 해답 나왔지요. 언어라 하는 것은 예수님을 안 넣어주고 누구끼리? 예수님 빼놓고 하나님 빼놓고 누구끼리 노는 게 언어입니까? 인간 자기들끼리 노는 거예요. 언어자체에서 스스로 죄를 알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모르지요. 왜? 인간들은 이미 죄를 지었잖아요. 인간이 끄집어낸 죄는 죄진 상태에서의 죄이기 때문에 원래 그 죄는 아닌 겁니다.

“이걸 딸기라고 하자.” “그래, 딸기라고 하자.” “너, 동의했어?” “나, 동의했어.” ‘딸기’ 그런데 인간이 이걸 보고 딸기라고 하는 것도 죄인데요. 왜, 누가 지어냈습니까? 누가 동의하고 누가 협약을 한 거예요? 죄인이 협약했기 때문에 그 딸기라고 한 것이 죄가 되는 거예요. 만약에 죄가 아니라면 인간은 딸기라는 말을 했기 때문에 의의 나라에 천국에 구원받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는 게 아니고 딸기를 딸기라고 했기 때문에 구원받는 거예요. 왜, 거기는 죄가 안 들었다고 여긴다면 구원받는 거예요. 인간은 딸기를 딸기라고 이야기하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고, 형을 형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구원받는 게 아니에요. 또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고 부르지 못한 홍길동이라도 구원받지 못하는 겁니다. 왜, 그건 언어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그래서 이 언어자리에 누가 오느냐 하면, 말씀이 뭐가 되지요? 육신이 되지요. 말씀이 육신 되신 분이 누굽니까? 예수님이지요. 예수님은 뭘 끌고 오셨느냐, 끌고 왔다는 말은 어패가 있지만, 우리보기에. 예수님은 뒤에 뭘 숨기고 오셨는가 하면, 아버지를 숨기고 왔어요.

그런데 시나 언어 속에는 인간들끼리 머리를 짜내서 만든 언어 속에는 그 대상이 누굽니까? 하나님을 대상으로 해서 신을 통해서 하나님과 자기가 일치된다고 보는 거예요. 딸기처럼. 글자처럼, 책, 성경처럼, 우리는 말을 할 때 이게 카메라인데 딸기보고 카메라하면 틀렸다고 하는 거죠. 왜? 일치되는 사물은 따로 있는데 이걸 보고 카메라라고 하느냐, 이건 딸기지, 구분 짓는 거거든요. 그걸 보고 소쉬르는 ‘차이성’이라 합니다. 언어학에서는.

인간의 언어는 인간들끼리 소통하기 위해서 된 건데, 그 말씀에 예수님이 말씀으로 오셔버린 거예요. 오셨으니까 예수님은 오실 때 그냥 오신 게 아니고 뭘 끌고 왔어요. 그걸 ‘묵시의 세계’라 했지요. 묵시는 역사를 중지시켜 버려요. 말이 어렵지요. 하나의 예를 들어보면, 요한계시록11장 8절 보면, “저희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 그 두 증인이 죽은 곳이 뭐다? 소돔이지요. 그 다음 애굽이지요. 그 다음에 뭡니까?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지요. 역사적으로 지리적으로 같은 장소입니까? 이 말을 달리하면, 그 두 증인이 죽은 곳이 대전이니, 곧 대구라 하며 곧 비례동이라 할 수 있다. 그 세 곳이 다 다르잖아요. 그런데 8절 문장에 나와 있거든요. 상세한 것은 요한계시록 해석법에 나와 있어요.

결국 이건 뭡니까? 요한계시록은 역사책이 아니고 묵시죠. 묵시에서는 인간들이 사는 장소와 공간자체를 인정하지 않아요. 왜? 새로운 언어가 도입됐기 때문에. 새로운 말씀이 들어있기 때문에. 만약에 전화하면서 “야, 니 거기 어디야?” “몇 킬로 쯤 떨어져있어?” 사람들이 답변하기를 “택시로 5분 거리야.” 그러거든요. 택시로 5분 거리이니까, 이것은 거리입니까? 시간입니까? 시간이지요. 시간인데, 묻는 사람은 공간의 거리를 물었잖아요.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는 시간은 공간으로 환원될 수 있고 공간은 시간으로 환원될 수가 있는 겁니다. 이걸 정밀하게 무중력을 가지고 측정한 사람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라고 하는 겁니다. 공간이 바뀌면 시간도 바뀌고 거기다가 에너지까지 집어넣으면 빛을 집어넣으면 빛 때문에 공간과 시간 전부 다 얽혀있다는 겁니다. 시공간이라는 4차원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사는 세계에는 항상 누구 위주입니까? 에너지든 공간이든 시간이든 나위주로 하거든요. 오늘 일기예보에 분명히 비가 온다고 돼 있어요. 전국에 비가 온다고 되어 있어요. 그래서 내가 대구에서 올 때 우산을 준비했어요. 내가 우산을 준비했으면 비가 와야 돼요? 안 와야 돼요? 비가 안 온다는 게 말이 안 되지요. 내가 준비했기 때문에.

내 아이가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올라갈 때, 중학교3학년인데 공부를 못한다. 그러면 평준화 되어야 돼요? 안 되어야 돼요? 되어야 돼요. 내가 수능을 잘 못 친다. 그러면 수능 없이 그냥 다른 스펙으로 들어가야 돼요. 바로 요러한 인간이 자기 위주를 누가 그대로 닮아서 오셨느냐 하면, 예수님이 그렇게 닮아서 오셔요. “너희들은 너희 위주지, 그렇다면 나는 내 위주다.” “내가 곧 길이요, 내가 곧 진리요, 내가 생명이다. 누가 고집이 센지 붙어보자.” 누구 고집이 더 센지, 골로새서 1장 16절에 보면, 세상의 모든 것은 나를 인하여 나를 위하여, 쉽게 이야기하면 예수님 자신을 위하여 만들어 놨는데 이걸 마귀가 가지고 가서 인간들 너희들끼리 속 풀이 했다, 말이지요. 내가 주님 되시기 위해서 만든 세상을 전부 다 인간들은 짐승의 뱀의 말 듣고 저희들끼리 뿜빠이해서 자기들 위주로 세상을 만들어 버리니까 내가 회수를 해야 되겠다는 거예요. 전부 다 내 위주로.

그러니 이런 사실을 예수님께서 언어에 담는 거예요. 언어에 담으니까 예수님 중심으로 해서 예수님과 아버지는 일치되거든요. 그 다음에 인간 일치, 예수님 중심으로 해서 아버지와 하나가 예수님이 하나가 되는 요한복음17장에 나옵니다. 내가 아버지와 하나 된 것과 같이 너희도 나와 함께 하나되리라,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언어를 사용하는데, 이 언어가 듣는 사람한테는 너무나 일상적인 언어입니다. 이게 문제가 되는 거예요. 우리가 흔히 쓰는 언어를 사용하는 거예요. 농부가~ 씨를 뿌렸거든. 그런데 길가에 뿌렸단다. 제자들은 “알아요. 알아요. 우리는 농사지어 봤으니까 알아요.” “그런데 모르거든.” 왜 안다는데 모른다고 할까?

또 예를 들면, “너를 위해서 내가 십자가 못 박아 죽었거든.” “알아요, 알아요, 우리는 선교단체에서 다 배웠어요. 알아요.” 하거든요. “모르거든” 아브라함 같은 경우는 어떻게 압니까? 사랑하는 아들을 잡아 죽일 때, 그 때 알지요. 너무 혹독해. 주께서 알려 주실 때는 너무 심하게 알려 줘. 아브라함이 아들을 바치니까 아들을 지 손으로 죽이면서 얼마나 덜덜 떨겠습니까? 죽이면서 진짜 아들은 이삭이 아니었습니다. 옆의 수풀의 수양이었습니다. 그 수양이 장차 오실 아들인 거예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그 관계 속에 얽혀든 거예요. 남의 집 가정사에 아브라함이 그냥 멋도 모르고 그냥 얽혀들어 간 거예요. 오직 아들과 아버지 사이. 아버지는 아들을 버리고 그러므로 아들은 주가 되고. 이 아버지와 아들의 언약 관계에 아브라함은 그냥 멋도 모르고 들어가다 보니까 아버지 가정뿐 아니고 하나님 가정과 지 가정도 엉망진창되어 버렸어요. 아버지가 지 아들을 지 손으로 죽여야 되고, 미친 짓이에요. 그걸 가지고 야고보서에서는 행함으로 보여준 믿음이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아~~ 참, 얄밉지요. 아버지가 아들 죽이는데, 그걸 가지고 이게 바로 ‘믿음에 합당한 행함’이라고 하는 거예요.

구제하고 이게 합당한 게 아니고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는 거예요. 뿐만 아니고 라합이라는 가정에 정탐꾼이 들이 닥칠 때 라합이라는 가정은 정탐꾼 자체를 보지 않고 이스라엘 하나님이 자기 가정에 온 걸로 믿은 거예요. 미쳤어요. 미쳤어. 완전히.

소문으로 듣던 그 여호와가 미리 정탐꾼을 보낸 걸로 여깁니다. 자기 가정에. 그 찬스를 놓칠 리가 있겠습니까? 거짓말이라도 더한 죄라도 얼마든지 지을 용의가 되어있습니다. 왜? 들어온 복을 왜 차는데. 그 사람들에게 잘만 보이면 구원 받을 수 있는데. 그래서 인간이 말하는 죄라는 것은 사실은 주님의 십자가 복음을, 성도한테는 십자가 복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우리로 하여금 죄짓게 하는 거예요. 전부 다. 그 죄에 대해서 반성한다는 자체가 수상해. 믿음이 없는 거예요. 그걸 왜 반성해요. 범사에 감사해야지. 범사에 감사해야 되는 겁니다.

집사님이 다리를 다쳤다. 권사님이 도와줬다. 복음을 위한 일이에요. 거기에서 어떤 것도 반성할 이유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처럼 복음을 하는 부부 사이는 쓸데없이 지적절하지 마세요. 주께서 그렇게 일으키신 겁니다. “이야, 내가 이런 잘못을 저질르다니.” 이러거든요. 제가 전에 설교시간에 이야기했잖아요. 그러면 5년 뒤에 그것보다 더 큰 죄를 지었으면 어떻게 할 건데요. 자기가 가슴을 치면서 내가 이런 짓을 하다니! 예수님 믿는 사람답지 않게. 어떻게 이런 망칙한 짓을 하다니! 그러면 5년 뒤에 그것보다 더 할 것 같으면 어떻게 할 건데. 제가 예를 들었잖아요. 죄 지었다고 칼 가지고 5군데 찌르면, 그럼 5년 뒤에 더한 죄를 지으면 12군데 찢어야 됩니까?

복음이 나타나거든 그것도 감사한 줄 아세요. 복음에 집어넣기 위해서 일부러 그 일을 유인한 거예요. 니가 복음을 사랑하는지, 니 자신을 사랑하는지, 그걸 유인하기 위해서 주께서 그렇게 하신 거예요. 쓸데없이 반성질 하지 마세요. 지한테 벌점 좀 세우지 마세요. 내가 이런 나쁜 짓했기 때문에 헌금도 5,000원 더한다고. 물론 교회는 좋겠지요.

마태복음 13장 해봅시다. 어려운 거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할 때, 하나님은 안 보입니다. 나를 본 자가 아버지를 봤거늘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이 말은 뭐냐, 너희들의 언어 구조성에는 예수님을 건너뛰는 버릇이 있어요. 인간 구조에는. 언어에는 신이라는 게 여호와 이름을 부르면서 이게 하나님이 여호와인 줄 알고 있어요. 마치 오늘날 예수 부르면 예수가 오는 것처럼.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너희와 함께 있다 하는 게 예수 이름을 부르는데, 이거 예수 이름을 어떻게 부를까요? 디저스라고 부를까요? 여호와라고 부를까요? 어떻게 부를까요? 주님하고 부르면 주님이 주르룩하고 옵니까?

주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 두 세 사람이 나와 함께 있다, 라는 말은 주께서 주의 이름을 부르게 한 사람 속에 주님이 함께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서울에서 재림강의를 했잖아요. 강림. 재림을 한다는 것은 주께서 오신다는 게 아니고 주께서 지금 현재 우리와 함께 있는 겁니다. 함께 있는데 우리의 커튼을, 상보자기를 열면 고등어도 있고 죽 있잖아요. 커튼을 계시를 벗기는 거예요. 벗기면 “아, 주님이 우리와 함께 있었구나!”를 느끼는 겁니다. 새삼스럽게 느끼는 거예요.

인간은 역사를 통해서 자기 상황을, 현실을 만들거든요. 현실을 만드니까 주께서는 역사 속에 침투하는 걸로 그렇게 이해되는 거예요. 그러나 주님이 침투한다는 말은 역사라는 것을 벗겨보면 지금 주님과 함께 있는 거예요. 결국은. 이게 사도바울이 고백한 겁니다. 사도바울이 말하기를 지금 주님은 나와 함께 계시다, 했잖아요. 주님이 나와 함께 있는 거예요. 삼층천에 올라갔잖아요. 주님과 함께 있는 거예요.

우리가 몸이 있는 한 역사적인 현실을 우리가 벗겨낼 수 없어요. 지금 주여! 주여! 보고 싶다, 해도 배는 뭡니까? 꼬르륵, 꼬르륵 밥줘, 밥줘 하는 입장에서는 우리가 절대로 역사적 현실을 벗어날 수 없어요. 그래서 신비주의를 봤다하는 것은 전부 다 거짓말입니다. 배불러서 하는 거예요. 배고파 보세요. 밥이 보이지, 예수 안 보이거든요. 돈 한 푼도 없으면 돈이 보이지, 예수는 안 보이게 되어 있어요. 진짜 예수님이 보이는 것은 뭐냐 하면, 예수님 쪽에서 옛 하늘과 옛 땅을 벗겨줘야 됩니다. 그걸 벗겨내면서 하는 거예요.

역사라 하는 것은 일종의 마개에요. 병마개. 병뚜껑을 뿅하고 뚫어주면서 주께서 천사와 함께 나타내주시는 겁니다. 보이는 거예요. 데살로니가전서4장에서 주께서 천사와 나팔소리와 함께 오시리라, 지금은 나팔소리가 안 들린다니까요. 빰빠밤바해도 안 들린다니까요. 왜? 우리는 어디에 갇혀있기 때문에? 우리의 역사적 상황 속에 갇혀있기 때문에 지금도 천사가 불고 있거든요. 하나님 우편에서 찬송하고 있습니다. 그 소리가 우리 귀에 들리지를 않아요. 나중에 벗겨버리면 천사의 나팔소리와 함께 우리에게 들이닥칠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 스스로 육신에 갇혀있기 때문에 전부 다 주님이 안 보이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가 몸을 떠나면 보이느냐, 몸이 떠나면 주와 함께 있지만, 그걸 가지고 재림이라고 할 수 없어요. 재림이라 하는 것은 항상 사건화 되어서 어떤 특정시점에 와야 되는 겁니다. 포괄적인 심판 날이기 때문에. 사도바울이 말했잖아요. 지금 내가 소망이 있는데, 소망은 뭐냐, 내 육신을 벗어버리고 누구와 함께 있다? 주와 함께 있는 겁니다. 주와 함께 있으면 아브라함과 야곱과 이삭처럼 주와 함께 있는 거예요. 하지만 그것은 재림은 아니에요. 강림도 아니고 강림과 재림은 역사적 상황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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