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유튜브(32강, 33강) 죽음, 말씀과 신자 130502강의[신학]

유튜브(32강, 33강) 죽음, 말씀과 신자 130502

이름 : 이근호(IP:119.18.69.144)

32강

33강

유일자(IP:116.♡.234.248)

13-05-08 17:58

32강-YouTube강의(죽음)130502-이 근호 목사

오늘은 “죽음“이란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세상을 아주 비장함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비장함으로 버티는 그 내막에는 뭔가 쫓기고 있기 때문에 그런데 사람들이 쫓기는 것이 죽음에 대해서 쫓기고 있습니다. 죽음에 대해서 쫓기다 보니까 어떻게 하든지 죽음의 그림자가 닿지 않는 곳으로 피하고 좀 여유 있게 살고자 애를 쓰는데 죽음이란 것은 마냥 피한다고해서 극복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죽음을 이기기 위해서 동원되는 것들, 쉬운 예로 죽음에서 피하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것이 돈이 필요하겠죠. 돈 없으면 죽고, 돈이 좀 있으면 좀더 목숨이 부지되니까 하지만 그 돈이 오히려 죽음을 더욱더 재촉한다는 사실을. 돈을 밝힘으로서 죽음이 가슴에 현실로 더 현실답게 다가온다는 사실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되는 겁니다.

14년 동안 베네슈엘라를 독재했던 차베스가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주변 사람에게 의료진에게 이렇게 얘기 했습니다. “제발 죽지 않게 해 달라.” 평소에 차베스가 대통령하면서, 대통령하기이전부터, 공부를 하던지, 운동을 하던지, 뭘 어떤 일을 해도 그 마음속에 자기는 느끼지 못했죠. 그 마음속에는 제발 이런 식으로 활동 할 테니까, 제발 죽지 않게 해달라. 사실은 그런 심정이 다 담겨 있었습니다.

그것이 차베스가 병에 걸려 모든 것을 다 그만두고 놔 버릴때 그때 자기 내부에서 그 동안 자기 내부를 지탱해왔던 그 본심이 마지막 죽는 순간에 터져 나온 겁니다. 제발 죽지 않게 해달라 나를. 그런데 이 현실은 이 세상이라 하는 것은 나를 죽지 않는 쪽으로 세상이 돌아 가지를 않습니다. 차베스는 평생 살아도 현실을 모르고, 현실 내막도 모르고 비현실적으로 자기만 생각하면서 살아온 겁니다.

사람들은 돈 버는 것이 가장 성공한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돈으로 뭐할라카는가. 그 돈으로 제발 죽지 않게 해달라. 라는, 그 내부적인 음성을 덮을 수 있다고 그렇게 여기고 돈 버는데 매진하고 있습니다. 돈 벌어서 뭐할거냐. 돈 벌어서 덜 죽도록, 마치 안 죽는 사람처럼, 마치 죽음이 없는 사람처럼 그렇게 죽음에 자유로운 상태로, 죽음을 극복한 상태로 한 순간이지만 한번 살고 싶다는 본심을 돈 벌자. 돈이 많으면 좋겠다. 라는 표현으로 그렇게 표현한 겁니다.

그러나 죽음이라는 것은 쉬운 예로 이런 것입니다. 항공모함에 전투기를 탑재해서 태평양 바다를 다닐때, 전투기에 해당되는 것은 우리 자신이고 그 항공모함에 해당되는 것은 죽음입니다. 죽음이 평생토록 우리를 바쳐서 우리는 그 죽음위에서 놀고, 울고, 불고, 웃기도 하고 행복에 겨워 어쩔 줄 모르기도 하고, 절망으로 좌절하기도 하고 하지만 그 모든 밑바닥에는 어쩔 수 없이 인간은 죽음이 이끄는 대로 죽음의 힘에 의해서 버티지 못하고 나중에 맥이 빠져서 당기는 대로 땅길 수밖에 없는 죽음의 인장역을 우리는 매일 같이 경험하면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직장을 다닌다든지, 공부를 한다든지 이것이 강력한 죽음의 힘을 무의식적으로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한번 극복해보자 하는 것인데, 여러분 죽음이라하는 것은, 극복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고, 죽음을 그냥 받아들이면 되는 것입니다. 죽음 속으로 뛰어들면 그것이 죽음의 본질, 죽음의 진수, 죽음의 내막 속에, 죽음의 블랙홀 속에 우리가 뛰어들 수만 있으면 비로소 우리는 더 이상 죽음에 이끌려 다니지 않는 인생을 살게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죽음 속에 들어갔다가 죽음에서 튀어나오신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이 이 세상에 유일하게 예수님 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서 어떤 소식을 듣게 되는데, 그 소식은 바로 나는 이렇게 해서 죽음에서 벗어났다는 그 소식을 우리가 접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죽음을 어떻게 이겼는가! 예수님은 이 세상 자체를 죽음이 만들어낸 현실로 간주했습니다. 이것이 대전제입니다. 이 세상에는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들어왔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는, 그러한 세상 속에 지금 우리가 놓여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아예 죽음의 힘이 작용하는 영역으로 간주하신다는 것은, 그런 말을 내뱉었다는 것은 예수님에게만 죽음의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비책이 그 분만 갇고 있기 때문에 자신만만하게 그런 이야기를 하시는 겁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죽음을 이기셨는가. 예수님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죽음 말고 다른 죽음을 생각했습니다. 보통 사람의 죽음이라 하는 것은, 세포의 기능이 다해서, 힘이 빠져서 심장 박동이 뛸 수 있는 그런 에너지가 없어서, 힘이 없어 그만 둘 때 심장도 멈추고, 두뇌도 멈출 때 그런 죽음, 우리가 과학에서 알았던 그런 죽음, 그런 식으로 예수님은 죽음을 이해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어떻게 이해했느냐. 하면 말씀이 와서 말씀대로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이해를 한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죽음이라 하는 것은 우리가 거부해야 될 것이 아니고, 수용해야될 사실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우리는 죽음을 이기는 것이 현실이라고 생각하는데 예수님은 반대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가장 현실다운 삶이라고 본겁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죽음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 맞이했습니까? 예수님은 죽음을 어디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느냐 하면,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서 죽음이 주어졌다고 본겁니다. 그 계획이라하는 것은 죄가 있는 곳에 반드시 죽음이 있고, 심판이 있다는 것을 예수님은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 목숨을 부지해볼까 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인데요, 왜그러냐 하면, 죽음이라 하는 것은, 말씀에 위배해서 죄로 말미암아 왔기 때문에, 죽음을 지연한다고 해서 죽음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거든요.

예수님의 방법을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의 방법은, 죽음에 대해서 해결하는 것은, 죄를 용서 받으면, 죄 문제가 의로서 해소가 되고 죽음도 저절로 영생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걸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거예요. 예수님의 방법은 죽음이라는 죄로부터 하고 죄가 규정되는 것은 아버지의 말씀으로 되기 때문에, 그 말씀 속에 들어가 버리면, 죽음에서 벗어나고,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비책이 말씀 안에 있다는 사실을 예수님은 발견한 겁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마귀로부터 재정적인 것, 경제적인 문제와, 인기 문제와, 권력 문제 가지고 죽음을 해소하라는 유혹을 받았는데 예수님은 그 세 가지 방법으로 죽음을 이기는 것을 다 거부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돈 있고, 인기 있고, 권력 있으면 마치 죽음을 지연할 수 있는 것처럼 아직도 마귀의 올무에 빠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뭐든지 말씀대로 살면 그것이 의가 되고, 그 의로 말미암아 죽어도 사흘 만에 부활하고, 영생 얻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겁니다.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주께서 이루어진 말씀의 완성 상태가 우리에게 주어지게 되면 우리는 죄 있는 인간이 하나님에 의해서 우리가 영생을 얻고 죽음에서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근거는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믿음, 예수님이 이루신 “다 이루었다.” 는 말씀, 그 십자가의 완성에 있기 때문에, 예수임의 영, 성령이 오게 되면 우리는 무엇이 주어지느냐, 주님의 말씀에 완성에 합류가 되고, 참여가 되고 그리고, 우리의 삶은 십자가 완성에 대한 표현으로서 인생을 살게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죽음도 알고 더욱더 중요한 것은, 죽음에서 벗어난 부활의 영생의 삶을 살아 가면서도, 이미 표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생의 삶, 천국의 삶입니다.

유일자(IP:116.♡.234.248)

13-05-08 18:01

33강-YouTube강의(말씀과 신자)130502-이 근호 목사

33강 “말씀과 신자“ 관계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보통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성경이 있다 그렇게 이야기하죠. 성경의 말씀이 있는데, 성경 읽기만 하면 되겠습니까? 보기만 하면 절로 우리에게 은혜가 됩니까?

성령님께서는 이 말씀을 그냥 문자로 매이게 하시는게 아닙니다. 고린도후서 3장에 보면 사도바울이 말하기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문자가 아니고 영으로 쓰는 것이라.”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물론 영으로 쓴다고 해서 문자가 없는건 아닌데, 그 문자가 성령에 의해서 작용을 하지 아니하면 우리는 말씀에 접할 수가 없습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나라가 멸망합니다. 하나님 믿는 백성이 망한다는 것이 이상하죠. 하나님 믿는 백성이 잘되야 오늘날 하나님 믿는 우리도 잘된다는 희망과 기대를 가질 텐데 구약에서는 우리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하나님 믿는 백성들이 나라가 통째로 망하고 그 백성들이 흩어지고 포로 잡혀가고 종노릇하게 됩니다.

그리고 여태껏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이 어디서 실패했는가를 알아야 되는데 사도바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실패한 이유가 나옵니다. 그것은 인간은 처음부터 구원에 성사할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그들은 몰랐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많은 교회들이 있으면서, 교회 가는 사람들이 살아 있을 때 고생 많이 했으니까 죽어서는 편하게 한번 쉬어보겠다는 그러한 희망을 가지고 교회가 자기의 소원을 들어줄까 싶어서 구원하는 그 소원을 들어준다는 그 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근데 그들이 뭘 모르냐하면, 옛날 구약 때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한 사고방식으로 하나님께 관계가 있다가 모조리 실패했다는 사실을, 그 원인과 이유를 그들은 여전히 모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되도 실패했는데, 오늘날 우리가 교회 출석 한다고 해서 구원이 되겠습니까? 성사될 수 없는 일이죠.

그러면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 그들이 실패한 이유에 대해서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그들이 실패한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그들은 말씀을 지키면 구원된다는 희망을 가진 것 자체가 실패의 원인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목사님들이 설교를 하면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제가 이렇게 설교 하는걸 말씀 들으면 여러분들은 구원받습니다.” 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그래 저 말씀을 들으면 구원에 성공할거야.“ 라고 생각 하신다면 바로 그 생각 자체가 옛날 구약 때 구원에 실패한 이유와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 말씀 율법은 구약 이스라엘로 하여금 뭔가 구원에 성공 하겠다는 그 심사 자체가 하나님의 뜻과 다르다는 것을 폭로하는 그런 차원에 이스라엘 나라가 있었던 것입니다. 쉽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구약 이스라엘 나라를 하나님이 만드신 것은, 인간은 이래도 저래도, 어떻게 해도 구원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는 것을, 명백하게 알려주기 위해서 대표적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만든 겁니다.

이스라엘만 구원 못되는 것이 아니고, 다른 나라도 다 구원 못되는데, 이스라엘을 대표해서 구원시켜주지 않으므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은 구원 될 수 있는 소지와, 능력과, 자질과, 권리와, 권한이 애초부터 박탈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스라엘을 통해 알려준 겁니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종교가 있습니까? 일본 같은 데는 수백 만 개의 종교가 있고, 인도 같은 경우도 한국 사람들이 인도에 여행하는 이유는, 거기서 진리를 찾기 위해서 가고, 티벳 불교를 연구하기 위해서 네팔에 가고 그렇게 합니다. 왜 그런짖을 합니까?

천주교의 신부들, 수녀들, 철야기도, 새벽기도 왜 그렇게 하는 거죠? 그들이 노리는게 뭡니까? 그들은 뭘 원해서, 돈 벌기도 시간이 아까운데 그들은 잠시 중지하고, 교회 가서 기도하는 이유가 뭡니까? 처음에는 물론 기복신앙 쪽으로 돈 더 벌기 위해 하다가, 좀 정신 똑바로 박혔다고 여겨지는 그런 목사 만나서 “아~ 기복신앙은 하나님이 좋아하지 않는구나. 따라서 개혁적인 방식으로 우리는 하나님 그 자체를 위해서 섬겨야 된다.” 이런 식으로 알면 그것이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있는 근거가 되는 바탕이 되는 겁니까?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게 되면 그것이 구원되는 겁니까?

인간들이 교회가고 말씀을 대하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가 뭐냐. 남은 뭐래도 나는 구원 되겠다는 자기 구원의 치밀어 오르는 구원욕을 자기가 저지할 수 없어 그렇습니다.

구약 이스라엘 사람들이 보통 똑똑한 사람들이 아니예요.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놓고 연구했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어떻게 하나님과 합체될 수 있는가, 그 나라에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가,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다 동원해서 열심히 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면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근본적인 모르는 예를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레위기에 보면 어떤 장치가 있습니다. 그 장치는 뭐냐 하면, 어떤 뜰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다가 제단을 만들어 놓고, 그 제단에 규격과 제단에서 일어나는 세세한 조항까지 그리고 거기에 바쳐지는 제물까지 전부다 낱낱이 레위기에 다 나옵니다. 자~ 그 장치는 무엇을 위한 장치 였을까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해를 했습니다.

그러한 제사를 드리고, 그러한 장치를 만들고 시키는 대로 그대로 양을 바치고, 소를 바치면 구원되리라고 생각한 겁니다. 그들이 그런 장치를 만들고, 그런 행동을 하는 모든 정신적인 밑바탕에는 이런 식이라도 시키는 대로 다하면 구원 되겠지가 항상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장치의 내용은 하나뿐이었습니다. 그것은 뭐냐, 어린양이 죽는다는 사실, 메시야가 죽는다는 사실, 하나님이 죽으신다는 사실. 사람들은 자기 구원 욕구가 우선이기 때문에 하나님마저 죽는다는 사실마저 자기의 구원받는데 어떤 수단이나 방법처럼 끌어당긴 겁니다. 2000년 기독교가 엄청나게 오해한 것이고, 그 배후에는 하나님의 뜻을 변개하고자 하는 악마적인 작용이 있었던 거죠.

이 세상은 저부터 해서 듣는 모든 사람들은 오직 하나님이 죽었다는 사실을 증거 하기 위해서 이 땅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느냐 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거나 신경써야될 문제가 아닙니다. 주제넘게 우리가 신경 쓴다는 자체가 우리의 지존의 경계를 넘어서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는 뭐든지 우리가 구원받겠다, 하는 그 생각 자체가 잘못된 생각이라고 느끼는 그것은, 바로 그것만이 이스라엘 나라가 반드시 망해야 된다는 사실을 비로소 아는 사람입니다.

레위기에서 제사하는 장치는 우리가 거기에 참여하라는 거예요. 바로 하나님이 죽고, 어린양이 죽는 이유는 바로 그런 장치를 손수 만든 우리들이 구원 욕구를 가지고 구원되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를 가지고 덤벼든것 때문에 그러한 의지와 하나님의 죽으심과 매치되는 자리에서 비로소 언약이라는 것이 제 모습을 보이는 겁니다.

우리는 구원되고자 하는 욕심에서 비롯해서 제사에 참여하고 주님은 그런 심보로 참여하는 우리를 위해서 대신 죽으심으로 비로소 우리는 죄인으로서 가담하고 주님은 죄인 때문에 희생당하신 하나님으로 가담되어서 그 둘이 만나서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지면 그 언약의 효과로 우리가 구원 받는 겁니다.

따라서 우리가 구원 받고자 하는 그 욕심과 탐욕, 그것은 하나님의 법의 위반을 통해서 우리는 그 현실을 파악해 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면 말씀이 주어지게 되고 우리는 그 말씀 속에서 어떻게 하든 우리는 말씀의 위반자고, 말씀을 지킬 수 없는 자라는 것이 들통 남으로서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언약의 완성에 구원자로서, 참여함을 당하게 되는 겁니다.

우리는 그 모든 일에 대해서 예수님의 하시는 일에 연속이라는 것을 고백함으로서, 구원의 반열에 이미 놓여있다는 사실을 증거 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이 모든 일이 주님으로부터 시작해서 주님으로 마감된 일입니다.

◁ 이전글

다음글 ▷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346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12,517 자유게시판 조선일보 기사입니다. - 최고관리자 13-05-03
12,516 자유게시판 38강-에스겔14장 1-5(우상의 역효과)130501이 근호목사 에스겔 최고관리자 13-05-03
12,515 묻고답하기 어떤 간증-이상규 집사님 [신학] 최고관리자 13-05-03
12,514 묻고답하기 복음의 지식? - 최고관리자 13-05-03
12,513 강의 성전의 인격화 130502 레위기 최고관리자 13-05-03
열람 ➜ 강의 유튜브(32강, 33강) 죽음, 말씀과 신자 130502 [신학] 최고관리자 13-05-03
12,511 자유게시판 가락교회-70이레 논문(짐승과 주의 이름)130418-18강b -이 근호 목사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3-05-03
12,510 우리교회 우상의 역효과 130501 에스겔 최고관리자 13-05-01
12,509 자유게시판 대전130425a-행18장1절(말씀에 붙잡혀)48강 - 이 근호 목사 사도행전 최고관리자 13-05-01
12,508 자유게시판 31강-롬6장 1-5(죄에 대하여 죽은 자)130428-이 근호 목사 로마서 최고관리자 13-05-01
12,507 자유게시판 07십자가마을여름수련회(욥은가짜다)(총11강) - 재정리 로마서 최고관리자 13-05-01
12,506 자유게시판 3강-습1장12-13(복과 저주도 없다)130428-이 근호 목사 스바냐 최고관리자 13-04-30
12,505 우리교회 [일반] 자기가 자기를 기만한다 [일반] 최고관리자 13-04-30
12,504 묻고답하기 자기가 자기를 기만한다 - 최고관리자 13-04-30
12,503 우리교회 복과 저주도 없다 130428 스바냐 최고관리자 13-04-28
12,502 묻고답하기 세례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3-04-28
12,501 우리교회 해골 130428 에스겔 최고관리자 13-04-28
12,500 설교 죄에 대해서 죽은자 (롬 6:1-5) 로마서 최고관리자 13-04-28
12,499 우리교회 죄에 대해서 죽은 자 130428 로마서 최고관리자 13-04-28
12,498 자유게시판 가락교회-70이레 논문(짐승과 주의 이름)130418-18강a -이 근호 목사 미가 최고관리자 13-04-26
12,497 강의 사도행전 48강 마태복음 39강 130425 전도서 최고관리자 13-04-25
12,496 자유게시판 37강-에스겔13장 17-19(예언하는 부녀)130424이 근호목사 에스겔 최고관리자 13-04-25
12,495 자유게시판 안양20130412b-히2장6절(사람과 인자) - 이 근호목사 히브리서 최고관리자 13-04-25
12,494 우리교회 [일반] 요한계시록 해석법 요한계시록 최고관리자 13-04-25
12,493 자유게시판 요한계시록 해석법 요한계시록 최고관리자 13-04-25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