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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가락교회-70이레 논문(짐승과 주의 이름)130418-18강b -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요한복음

가락교회-70이레 논문(짐승과 주의 이름)130418-18강b -이 근호 목사

이름 : 이한례(IP:203.90.42.222)

가락교회-70이레 논문(짐승과 주의 이름)130418-18강b -이 근호 목사

제 18강b

70이레는 성전의 위상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성전에서 시간이 나온다는 게 이상하다 했죠? 우리 상식으로는 시간이 어디서 나오죠? 사람한테서 나오죠. 인물. 그런데 성전이라 하는 것은 건물이잖아요. 예배당, 건물에서 무슨 시간이 나와요? 건물 안에 누가 사신다? 하나님의 이름이 사신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이름이 살던, 우리가 살던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 동일하지 않느냐, 이렇게 생각하실 거예요. 동일하지 않습니다.

시간이라 하는 것이 우리가 시간을 생각할 때는 내 몸이 느끼는 것으로 다시 되받아서 느끼거든요. 그러면 예수님의 시간이라 하는 것은 예수님 위주로 시간을 펼치고 그걸 다시 회수를 하게 돼 있어요. 그러니 모든 시간은 누굴 위해서? 예수님을 위해서 펼쳐지는 시간들이죠.

그러면 이 시간은 무엇과 충돌하느냐 하면 시간을 느끼는 우리 몸하고 예수님이 생각하는 무한 몸에서 나온 시간하고 이게 충돌을 일으킵니다. 충돌을 일으키면 우리는 항상 과거 현재 미래로 흘러간다고 보는 반면에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응하게 함이라” 과거에 있던 이것도 이미 내가 있었느니라,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 그 예수님 말을 우리가 못 알아듣는 거예요. 알아들을 수가 없어요. 우리는 내 몸의 시간을 다 진리라고 굳히고 있기 때문에 이해가 안 되는 겁니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미래라는 것은 과거에 경험한 것을 근거로 해서 우리는 미래를 생각하거든요. 우리의 미래라는 것은 과거 경험한 게 없으면 미래라는 게 생각이 안 납니다. 예를 들어서 삶이 너무 고통스럽다. 그렇다면 천국이라는 개념의 미래는 뭡니까? 고통스러우니까 굉장히 행복할 거라 하잖아요. 이 천국은 이것과 연결돼 있는 천국이기 때문에 이건 가짜예요.

그러면 예수님의 천국은 뭐냐 하면 미래에 이미 천국이 있고, 우리 몸에 주는 게 아니고 예수님의 몸을 거쳐서 우리에게 프리즘(빛을 반사하는)처럼, 그리스도 몸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다 보니까 이 천국은 뭐냐 하면 예수님을 섬기는 나라예요. 그런데 현재 내 삶이 고통스럽다. 왜 고통스럽습니까? 내가 내 몸 섬겨야 되는데 현실은 안 따라주니까 짜증나고 화가 나는 거예요.

지난 시간에 한 거 여러분 아시는가 한번 물어봅시다. 이 세상은 어떤 식으로 움직인다 했죠? 요한복음 17장 2절에 영생 줄자에게 영생을 주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이 세상을 다스린다 했죠. 그런데 우리는 내 현재 있는 나를 곱게 잘 유지하는데 모든 세상이 그렇게 흘러갔으면 좋겠습니다. 하는 바램이 있는 거예요.

그런데 주님의 영생은 우리의 십자가가 우리를 죽이는 겁니다. 우리를 죽여서 다시 살리는 거예요. 나사로 있잖아요. 마리아 마르다 오빠, 죽었다가 나흘 만에 다시 살아났죠. 그리고 그 앞에 하신 말씀이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 나사로가 아팠는데 죽어요. 죽고 난 뒤에 다시 주님께서 살려내시잖아요. 아파서 죽으려 했는데 죽기 직전에 건강케 하는 게 아니고 죽여 놓고 살린 이유가 나사로로 하여금 영생이 무엇인가를, 그리고 영생을 주시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 알려주기 위해서 나사로의 목숨 가지고 쥐었다 폈다 이렇게 이용하신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그러니까 세상은 내 중심이 아니고 누구 중심이다? 예수님 중심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그러니 예수님 중심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내 중심으로 돌아가는 내 인생을 어떻게 돼요? 주님께서는 짓밟아버려야 돼요. 그게 우리는 울고불고 난리가 나는 겁니다. 주께서 내 인생을 짓밟는데 대해서 우리는 ‘아야’ 하면서 ‘이럴 수 있습니까? 왜 하필이면 접니까? 왜 나를 이렇게 못살게 구십니까? 이렇게 되는 거예요.

사람의 고통이라 하는 것이 아픈 것이 고통이 아니고 이게 영원하다는 점에서 고통스러워요. 아무리 아파도 치과에 가서 고치면 낫는다는 희망만 있으면 아파도 견딜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옥의 고통이라 하는 것은 이건 길어도 너~~무 길어. 어떻게 빠져나올 길이 전혀 없고, 아프다. 계속 아프다. 어제도 아프고 오늘도 아프고 내일도 아프겠지. 안 아플 경우는 이미 종쳤다. 없는 거예요. 이거 생각하면 진짜로 목숨 바치고 예수 믿어야 돼요. 이 세상의 아픔이라는 것은 언젠가는 끝이 나잖아요. ‘아프면 죽으면 끝나지’ 이건 죽어도 안 돼요. 아예 죽을 수도 없어. 아픔 때문에 죽을 수도 없어요. 아프면 벗어나는 게 아니고 지옥의 고통을 맛보기 위해서는 지옥의 고통만큼 너도 계속 살아있어야 돼요. 계속 살아서 지옥이 얼마나 혹독한 저주인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지옥 간 사람을 죽이지 않아요.

우리가 천국 가는 것은 우리가 잘나서 천국 가는 게 아니고 예수님의 용서와 사랑이 얼마나 귀한지를 알려주기 위해서는 우리도 못 죽어요. 계속해서 영생토록 영생을 누려서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와 그냥 봐주시는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지를 계속 찬양하고 감사할 수밖에 없어요. 이런 식으로 모든 게 최종적으로 정리가 됩니다. 알곡과 가라지, 염소와 양으로 정리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몸통 되는 짐승이 얼마나 듣기 싫어할까요? 왜냐하면 자기 짐승은 이미 지옥이 자기들 집어넣기 위해 만들었거든요. 그러니까 짐승은 이미 끝난 거예요. 짐승은 이미 멸망받기로 작정이 돼 있기 때문에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고 자기가 못 먹으니까 계속해서 십자가 피 복음을, 용서하시는 그 능력을 어떤 방법과 수단을 동원해서 계속해서 가리는데 그게 교회, 목회 성공, 이런 것 가지고 계속 가리는 거예요. ‘교회 나와서 복 받았습니까?’ 이런 식으로 계속 십자가를 가려 버리는 겁니다. 참 나빠도 보통 나쁜 사람들이 아니에요. 이 사람들.

성경은 말합니다. 주의 이름이 계시는 곳이 성전인데 성전은 거기서 새로운 시간이 나와서 기존의 성전 밑에 있는 사람들의 시간과 충돌을 일으킵니다. 그냥 일으킨다면 그걸로 끝나겠는데 그 이스라엘 망하게 하십니다. 니 시간은 아니고 이 시간으로 바꿔야 된다. 그래서 70년을 뭐로 바꾸느냐 하면 70이레로 바꾼 거예요. 70년이라 하는 것은 누구나 아는 거잖아요. 1,2,3,4…70년, 누구나 아는 건데 이걸 뭐로 바꿉니까? 70이레로 바꿔버려요.

이레는 묵시적 용어입니다. 이건 인간의 시간에 붙이는 그런 시간적 단위가 아니에요. 묵시적 단어, 예수님의 몸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따라서 70이레를 주관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몸, 예수님께서 다 언약을 이루신 그 몸이 70이레의 내용으로 꽉 찹니다. 예수님의 몸에서 일어난 이것을 양탄자처럼 쫙 펼쳐버리면 이게 요한계시록 이예요. “나를 찌를 자도 볼 터이요 너희들이 나를 찔러? 너희들 이제 죽었어.” 이렇게 되는 거예요.

주님께서 친히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말미암아 자기 몸을 찔렀던 자들에 대해서 사정없는 저주를 퍼붓습니다. 그리고 그 죽었던 그 몸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으로 활용하는데 영생주기로 작정한 자에게만 그 피를 발라서 진노의 유리바다를 무사히 건너오게 합니다. 건너오면서 부른 노래가 그게 유명한 모세의 노래입니다. 이 모세의 노래는 젠틀맨이나 강남 스타일, 이것과 족히 비교가 안 됩니다. 그런 노래 백날 불러봐야 허무해지지만 이 모세의 노래는 오직 부를 자만 부를 수 있는, 옷에 뭘? 옷에 피를 발라서 흰 옷 입게 된 사람만 부를 수 있는 모세의 노래!!

그 모세의 노래가 유리바다거든요. 밑에 투명유리가 깔려서 보이잖아요. 보면서 진노의 불이 붙는 걸 보면서 유리바다를 건너가면서 부르는 거예요. 마음 같아서는 못된 인간들 진노 받는 걸 보면서 가고 싶지만 빨리 건너야 돼요. 고급 빌딩에 가면 발판이 유리가 돼서 다 보이는 것처럼. 유리바다를 건너면서 진노에서 고생하는 걸 보면서 가는 겁니다.

그래서 이 모세의 노래라는 것은 원래 BC 1400년경인데 이것이 요한계시록에서는 바로 시간이 주님의 시간이기 때문에 우리 몸의 시간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이 같이 나란히 섞여 있어도 아무 탈이 없어요. 그때 홍해가 지금도 되풀이 된다 우리는 이렇게 설명하면 돼요. 역사란 묵시를 되풀이하는 장이다. 이렇게 보시면 간단하게 깔끔하게 정리됩니다. 끊임없이 되풀이 되죠.

자, 그럼 설명 안한 게 뭐냐 하면 도대체 성전에서 시간이 왜 나오느냐, 그 문제인데 그것은 성전이라 하는 것은 주의 이름이 있다. 주의 이름이 있으면 있는 것이지, 시간이 왜 나오느냐, 시간이라 하는 것은 몸에서 나오거든요. 그래서 언젠가는 주의 이름이 우리 인격적 몸을 입을 때가 오는 겁니다. 언젠가! 그때가 되게 되면 그때라 하는 것은 묵시가 역사와 만나는 고 시점이기 때문에 그때가 되게 되면 역사 속에 묵시가 한꺼번에 다 쏟아져서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의 젤은 의미 없이 돼 버리죠.

주사 바늘 생각하면 됩니다. 주사를 맞기 전에는 이 피는 내 피로 흐르고 있는데 여기 팔뚝에다 주사바늘을 꽂는 순간, 아주 작은 바늘을 꽂는 순간 주사바늘 액이 온 혈액에 퍼지겠죠. 얼마 안 있으면 온 혈액에 주사바늘의 약효가 다 퍼지잖아요. 그 주사바늘이 십자가고, 그 안에 들어오게 되면 우리는 나를 역사적 존재로 봤는데 그 십자가 약효가 들어오면 그때 우리는 묵시적 존재가 되면서 어린양에 속한 사람, 144,000이 되는 거예요. 동시에 나만 그런 게 아니고 세상은 짐승의 나라로 비로소 보이는 겁니다. 성령의 주사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프로포폴 같은 것을 돈 주고 맞지 마시고 성령의 주사를 맞게 되면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이 짐승의 나라에 있는 교회마저 반드시 다 무너져야 돼요. 교회 무너진다는 이건 욕하는 게 아닙니다. 교회를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교회를 붙들고 교회가 신앙의 대상으로 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예수님이지, 교회가 아니거든요. 말은 쉽다마는 이게 참~ 어려워요. 누가 교회 돈 내라 했어요? 지 돈 내니까 지 돈 낸 게 날라 가는 게 아깝죠. 돈 한 푼도 안내면 괜찮은데.

『보수주의 경향의 구약 신학자 카아저(Walter C. Kaiser)나 비-보수주의 경향의 구약학자인 침 멀리(Walther Zimmerli)나 모두 성전의 의미를…』이제 학자들이 나와요. 문제는 사람 손으로 만든 곳에는 주님이 계십니까? 안 계십니까? 안 계신다는 거예요. 아니 그러면 사람 손으로 안 만든 게 뭐가 있는데? 참 이런 게 어려운 거예요. 하나님은 사람 손으로 만든 곳에 계시지 않는다면 그럼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사람 손으로 만든 거예요. 모든 것이 사람 손으로 만든 것인데 그럼 주님이 안 계신단 말은 아예 없다는 말이 돼 버리죠.

이 말은 뭐냐, 너희들이 만들었다는 취지를 살려서 들어오지는 않고 내가 나갔으면 만들어지게 하죠. 주의 몸에 의해서 만들어지게 하는 성전은 어떻게 하느냐? 인간 손에 만들어진 것에 있지 않다는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 그걸 부숴버리죠. 그래서 부서진 것이 헤롯의 46년 된 성전인데 무너져 버립니다. 디도의 AD 7세기경에 디도에 의해서 완전히 박살나버려요. 그래서 성전이 없는 거예요. 성전이 없음으로서 사람 손으로 만든 성전은 더 이상 성전이 아닙니다.

그럼 성전이 어디 있느냐? 성전이 우리 몸이라고 하지 마세요. 이렇게 해야 돼요. 주께서 친히 만들어 내시는 것이 성전입니다. 이렇게 돼야 돼요. 그래서 성도한테는 이렇게 늘 수시로 주님의 복음이 성령을 통해서 전달됩니다. 어떤 경우냐 하면 우리의 눈이 묵시가 아니고 역사적인 의미로서 행복해지려고 할 때 그때 우리의 성전은 그렇게 책망을 받게 돼 있습니다.

쉽게 하면 이렇습니다. ‘니 몸이 니 몸이 아닌데 니가 왜 걱정하는데?’ 이런 식으로 오는 거예요. 내가 거하는 성전이라 했는데 왜 자꾸 내가 그랬으면 주인이 바뀌었잖아요. 주인이 주님으로 바뀌었는데 왜 걱정을 사서 하느냐 이 말이죠. 그런 식으로 책망을 해요. 니 몸이 니가 보기에는 역사적 존재가 돼서 니 나름대로 니가 어느 학교 나오고 어느 고향이고, 이렇게 나오죠. 주님한테는 그게 의미가 없다니까요. 하늘나라에서 어느 학교고 전라도 경상도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니가 전라도가 되든지 경상도가 되든지 어쨌든 니 몸은 이미 내 가 접수해 버리고 주님의 몸이기 때문에 주님의 몸은 너를 새롭게 바꾸는 거예요. 예수님의 몸으로 바꾸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그 작업에 대해서 제발 좀 눈 돌리지 말라고 우리한테 책망을 하죠. 그러면 우리는 잠시 은혜 받았다고 하죠. 그런데 항상 뭡니까? 이게 정상에서 균형이 조금만 비뚤어지면 죽~ 내려갑니다. 잠시 은혜 받았다가 또 다시 쭈르륵 미끄러지죠. 다시 또 올라오죠. 그렇게 해서 주께서 우리를 살려주시는 겁니다.

여기서 카이저와 비-보수주의 침멀리 이야기를 하는데 카이저란 사람은 보수주의 유명한 신학자거든요. 이 사람 이야기를 잠시 220 페이지 거기 보면 카이저가 뭐라고 하느냐 하면 집 개념과 성전 개념이 다른데 처음에는 집 개념으로 시작해서 나중에 성전 개념으로 되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 언약도가 바뀌었다. 『노아의 집은 방주에 들어갔으나 노아의 거주한 건물은 방주에 들어가지 못했다. 방주가 노아의 집이다. 『그렇다면 노아도 버려야 했던 ‘실제 살림집’이 단지 하나님의 손으로 만든 집에 일부러 거주하실 이유가 분명치 않게 된다. 즉 같은 시간대에 ‘집’과 ‘성전’이 공존해야 할 당위성을 성전개념에서 뽑아낼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상당히 이야기를 복잡하게 했지만 이런 이야깁니다. 성전을 우리가 살 집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주의 이름이 살 집인데 카이저 이 사람은 지가 살 집이라고 생각한 거예요. 이게 뭐냐 구원이 너무 성급해서 그래요. 아까 뭐라 했습니까? 인간의 구원은 뒷전이라 했죠? 뭐가 우선이라 했죠? 주님의 주님 되심만 되면 돼요. 주님은 용사시고 주님은 누구하고 싸웁니까? 우리 붙들고 우리하고 안 싸웁니다. 우리는 싸움의 대상도 안 됩니다. 누구와 싸웁니까?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몸통, 보이지 않는 이 원수와 싸우는데 그 원수를 우리가 모른다는 거예요. 왜, 우리가 원수 안에 있어서 원수를 무슨 원수로 봅니까? 우리의 임금님으로 보지, 우리의 지도자요, 우리의 보살피는 분으로 보지, 원수로 안 봐요. 왜, 말이 통하니까.

우리 어머니가 이사를 하는데 제 아내가 가서 이삿짐을 싸면서 버릴 것을 재활용 차 불러서
실으니까 어머니가 뭐라고 하느냐 하면 ‘내 것을 며느리 둘이 와서 다 들고 간다.’고 그걸 동네 호소를 하는 거예요. 정들었던 26년 동안 내 남편하고 같이 살았던 것들을 얘들이 와서 나를 무시하고 이걸 전부 다 버린다고 이럴 수 있느냐고, 이삿짐을 붙들고 이러는 거예요. 꼭 우리 모습 이예요. 우리는 그동안 마귀하고 너무 이야기가 잘 통한 겁니다. 척하면 척, 척, 척. 됐나? 기다려라. 감사합니다. 축복, 너무나 통해요. 그저 기도하면 응답 받고 너무나 마귀하고 잘 소통했기 때문에, 니가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출세하고 이런 거 기도하지 말라 하면 오히려 누가 삐지냐 하면 인간이 삐져요. ‘칫, 기도해도 응답 받는 사람 한두 명이 아닌데 그런 거 기도하지 말라 하면 그러면 기도 안 해. 기도 안 해.’ 이런다 말이죠. 실제로 많은 사람이 기도 못 하겠다 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동안 마귀하고 너무나 짝짜꿍이 잘 맞은 거예요. 죽이 잘 맞은 거예요. 마귀하고 죽이 잘 맞아 버리면 그래가지고는 천국에 못 갑니다. 천국에는 마귀하고 헤어져서 애굽하고 헤어져서 주님하고 살아야 될 텐데 주님은 안중에 없고 그동안 마귀하고 짝짜꿍하다 보니까 천국 가면, 천국 가서 괴로워서 못 살아요. 차라리 지옥이 더 낫다니까요. 보고 배우고 들은 것이 그런 것만 봤기 때문에.

그래서 제 어느 글에 있죠. 천국에 미장원 없으면 여자는 무슨 재미로 사나 몰라. 천국에 미장원 없다면. 그저 애굽에서 먹었던 거, 애굽에서 즐겼던 거. 그거 그대로 천국까지 가서 하면 그건 천국이 주님 나라가 아니고 지 살림 차리는 지 나라입니다. 교회들을 보세요. 교회들이 그게 아니라고 이야기해야 될 텐데, 그것 가지고 사람들 꼬셔요. 응답 받는 사람 한둘이 아니라고, 믿고 기도하면 다 이루어진다고. 이루어지죠. 몸통이 마귀인데 그래요. 마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뭐만 가리면 된다? 십자가 복음만 가리면 돼요. 무조건. 예수라는 이름을 막 거론시켜서,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입니다. 예수님한테 빌면 응답 받습니다. 자꾸 그런 식으로 해서 결국은 죽어야 된다. 죽는 하나님! 참 중요한 문젠데.

하나님은 죽는 하나님 이예요. 나 살아있고 하나님 살아있다. 이런 하나님이 아니고 죽는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죽는 하나님을 섬겨야 살 수가 있어요. 이거 어느 인간이 이걸 믿습니까? 그러니까 성령이 와야 이 어리석은 것이 믿어지죠. 진리로 믿어지죠.

살려고, ‘저 살려고 합니다. 어떻게 살려주세요.‘ 하면 ’나 죽었잖아. 너도 죽어야 돼, 그래야 나 죽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려 함이라.‘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 세상에는 우리가 살려고 사는 게 아니고 죽으려고 사니까 그냥 곱게 죽읍시다. 그냥 곱게 죽으면 돼요. 죽기를 무서워 종노릇하는 사람을 주께서 풀어주려 하심이라. 해방시키려 해야 되죠.

그래서 카이저는 문제가 뭐냐 하면 구원론에 너무 집착을 했어요. 그리고 침멀리 봅시다. 『침멀리는 성전개념을 하나님의 자유로운 임재의 장소로 본다 성전이란 그 어떤 공간에도 얽매이지 않고』이렇게 돼 있어요. 침멀리가 뭘 빠뜨렸느냐 하면 하나님이 어떤 공간에도 매이지 않는다면 예수님께서는 뭣 때문에 십자가 죽었습니까? 하늘에서 그냥 ‘너 올라와.’ 하면 끝나는 문제지, 그렇잖아요. 그렇지 않습니까? 침멀리 하면 카이저 다 잊어버리겠네요.

카이저는 우리가 거할 수 있는 곳이 성전이라는 거예요. 자기 구원론에 너무 집착한 거죠. 침멀리 문제점은 뭐냐 하면 하나님은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매이지 않는 분이 왜 사람이 만든 집에 안 온다 해놓고 왜 들어갔어요? 솔로몬 성전에 왜 계셨습니까? 이게 설명이 안 되잖아요. 사람이 지은 곳에 있지 않는다 해놓고 들어왔잖아요. 사람이 있으면 안 들어온다 했으면 안 들어와야 하는데 왜 들어왔느냐 이 말이죠.

하나님께서는 죄인과 함께 있지 않는다 해놓고 왜 하나님께서는 죄 있는 육신의 모습으로 왜 오셨어요? 그건 바로 십자가! 원수를 밝혀내줘야 그게 주님이 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간의 죄를 밝혀주시고 그 죄를 싫다 하시면서 그 죄 속에 풍덩 뛰어 들어오신 하나님, 그래서 우리가 뭣 때문에 고민하고 우리가 뭣 때문에 걱정하는지 주께서 우리의 심보와 심지를 마음을 다 알고 계셔요. 지금도 우리 어머니 잃어버려서 걱정을 한다는 걸 다 알고 계시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 보면 법궤라는 상자에 집착해야 될 이유를 침멀리는 여기서 아무 답변을 못합니다. 왜 조그만 상자냐? 아카시아 상자, 금박 입힌 상자, 왜 상자에 하나님이 계시느냐 이 말이죠. 어디든지 계시면 어디든 계시든지, 나무 위에 계시든지 책상 위에 계시든지 밑에 계시든지, 왜 언약궤란 거기에만 계십니까? 성소에 주의 이름이 어디 계십니까? 바깥에 계신 게 아니고 어디 계십니까? 지성소 안에 있는 언약궤 위에 주의 이름이 계시거든요. 왜 거기 계십니까? 어디 요정입니까? 귀신입니까? 어깨에 있는 피로입니까? 보통 TV보면 어깨에 피로가 있데요. 악마처럼. 주께서 거기 달라붙어서 원숭이처럼, 거기서 뭐하시는데? 왜 거기 달라붙어요? 바깥에 막 왕래하시지, 왜 달라붙어요? 그게 뭐다? 언약이기 때문에.

왜 주님은 언약에 매이느냐에 따라서 침멀리는 자유주의 신학자는 아무런 답변이 없어요. 언약에도 안 매여야지 하나님이죠. 그러니까 침멀리의 사고방식은 신이라 하는 것은 마귀가 만들어 낸 마귀의 지배하에 만들어 낸 신은 아마 위대하시니까 얽매이지 않을 거야. 이렇게 만드는 거예요. 그러니까 뭘 비껴가는 거예요? 십자가 피를 흘리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침멀리를 통해서 또 이렇게 우리한테 또 속여요.

지금까지 한 걸 정리해 보면 묵시에 계신 분이 역사에 흔적을 남겼다. 그게 바늘구멍 같은데 그게 뭐냐 오직 십자가다. 그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 몸이 생각했던 세상 관, 시간관, 이 모든 것은 숨어있는 악마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다. 어떻게 아느냐? 주님이기 때문에! 주님인데 어떻게 아느냐? 주의 이름은 우리한테 찾아오는 게 아니고 뭐부터 싸운다고 했어요? 주의 원수부터 싸우는 거예요. 그 원수부터 싸워서 원수를 드러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어디 속했다? 원수에 속한 거예요.

도둑놈 잡아서 거꾸로 흔드니까 호주머니에서 뭐가 떨어진다 했습니까? 동전이 떨어진다 했죠. 동전이 뭐냐, 동전이 우리들이라 말이죠. 원수 품속에 있던 것을 거꾸로 하니까 떨어지잖아요. 주께서 원수보고 달려들었는데 우리는 자꾸 주님 붙들고 ‘어떻게 하면 내가 구원받습니까?’ 지 주제파악도 안 되면서 그런 식으로 하더란 말이죠.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지은 건물에 안 계시지만 들어오시는 이유는, 들어와야 그 사람 손으로 왜 성전을 그렇게 만들었느냐, 그 죄가 하나님의 원수에서 나왔다는 것을 밝혀내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지금도 주님께서 이 허접스런 우리 몸에 들어오는 이유가 이 몸의 모든 속성과 배어있는 습관이 어디서 나온 겁니까? 너무나 육신적이고 세상 적이잖아요. 그러니까 더욱 더 들어오셔야 되는 거예요. 걱정할 필요도 없는데 걱정하고 고민할 필요도 없는데 고민하고.

마리아, 마르다가 ‘우리 오빠, 오빠가 죽어가요. 빨리 예수님 오셔서 낫게 해주세요.’ 오빠 죽는다고 걱정하잖아요. 주님께서는 ‘그래, 알았어.’ 안 갑니다. 어떻게 됩니까? 걱정이 절망으로 바뀌길 기다리십니다. ‘끝났어, 끝났어. 오지마라 해라. 예수? 오지마라 해, 죽어버렸어. 그렇게 우리가 오라고 했는데 우리가 주님한테 잡채도 해줬지, 탕수육도 해줬지.’ 그동안 얼마나 섬겼습니까? 예수님한테 여관비까지 다 줘서 잠재워줬는데. 남은 그렇게 잘 살려주고 그렇게 친하다는 우리 오빠, 오빠, 오빠는? 죽여 버리고. 마리아 마르다가 진짜 멱살 쥐고 싶은 심정으로 주님한테 달려들었잖아요. 그게 바로 우리 몸에 찾아와야 될 이유입니다. 아직도 녹녹치 않아요. 아직도 우리는 ‘주님, 주님’ 하지만 사실은 주님보다 나를 더 사랑합니다. 하여튼 나 죽으면 주님도 필요 없다고 그렇게 고함칠 우리들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제발 조용하게 죽어줘. 제발 나대지 말고 설치지 말고 조용하게 죽어줘. 가만있어도 죽고 설쳐도 죽는 거예요. 우리 컨테이너가 발판이 그렇게 가게 돼 있습니다. 기침해도 누가 죽을지 기침 안하는 내가 죽을지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머리 빠져서 심어도 소용없어요. 당뇨 걸려도 살게 하시면 살고 암 걸려도 죽고 그건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자, 이렇게 해서 카이저의 문제점은 지 살 궁리부터 먼저 챙긴다는 게 문제고 침멀리의 문제점은 주님께서 그렇게 위대한 분 같으면 십자가의 더러운 곳에 올 이유가 뭐냐를 밝히지 못한 게 문제되는 것이다.

그럼 둘 다 문제시 되면 그럼 성전은 뭡니까?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면 성전은 뭡니까? 만날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고 할 것이 아니라 성전이 이것이라고 이야기할 것 아닙니까? 성전이 무엇이냐? 성전은 하나님의 언약을 다루는 곳입니다. 언약을 다룬다는 말이 추상적인데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세요. 하면 장차 언약의 완성이 뭡니까? 십자가죠. 십자가를 미리 보여주기 위해서 구약은 모형입니다. 됐죠? 히브리서에 나오는 이야기.

구약에 나오는 모든 제사법은 신약에 오는 그것의 그림자요, 그 다음에 모형! 모형이라 하면 항상 설계 사무실에 있는 아파트 모형, 건물 모형 생각하시면 되는 겁니다. 예쁘지만 들어가 살 수는 없어요. 머리가 커서 못 들어갑니다. 그런데 그 모형보고 ‘이 모형 한 평에 250만 원 주고 사겠습니다.’ 하는 바보는 없고, 이거 있다는 말은 이거와 똑같이 생긴 게 따로 있다는 말입니다. 똑같이 생긴 게 있어야 되는데 똑같이 생기지 않았어요.

여기서는 성전이고 양이고 제물이고 제사장이지만 여기서는 실제로 뭡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죠. 모양새가 똑같지 않아요.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이렇게 됐기 때문에 그 모양 가지고 찾아가서 실체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냥 실체 먼저 보여주고 그게 모형이니까 잘 지켜봐라. 그 모형은 딴 게 아니고 우리가 살려고 해도 죽으니까 너무 살려고 하지 말라. 뿐입니다. 죽어야 산다. 자기 목숨을 미워하면 니가 살게 될 것이다. 그런 넉넉한 말씀입니다. 아주 안심되는 말씀 이예요. 이제 안심 됐죠? 여러분!

그 다음에 221 페이지 중간에 봅시다. 성전은 어디서 만들어진다? 『성전은 ‘전쟁하시는 신’에 의해서 만들어진 기념 공간이다.』기념물이니까 모형적인 성질이 강하죠. 어떤 신입니까? 전쟁하는 신이죠. 그럼 전쟁한다는 말은 전쟁하려면 적이 있어야 될 게 아닙니까? 적은 누구죠? 주의 이름이 벌리는 적은? 이게 주의 이름이 묵시적 존재기 때문에 그 원수도 묵시적 존재입니다. 그걸 역사적 인물을 들이대면 안 됩니다.

목사님, 제가 알죠. 주의 이름의 원수는 구약 때 바벨론입니다. 바벨론, 바벨론 아니거든요. 왜, 바벨론도 주님이 쓰시는 몽둥이에 불과한 겁니다. 그럼 앗수르, 앗수르 아니거든요. 앗수르도 이사야에 보면 몽둥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몽둥이 밖에 없고, 이 세상에 하나님의 원수는 누구지? 아, 사울인가? 역사적 존재를 집어서 이야기하면 안 돼요. 이게 역사 자체를 총괄하는 몸통은 따로 있기 때문에 그 몸통이 원수예요.

나 아니고 너가 원수다. 라는 말을 하지 마세요. 우리가 우리를 포함해서 원수가 되는 겁니다. 로마서 5장 10절,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 된 자였는데 십자가 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의롭다 함을 입었다” 이렇게 돼 있죠. 이미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 돼 있는 것에 포함이 된 거예요. 역사적 특정 인물을 지목하거니 지정하고 그러지 마세요. 그러면 뭘 놓칩니까? 묵시 적을 놓쳐버려요. 묵시 적을 놓쳐버리면 예수님이 원수라고 지목한 것과 우리 역사적 인물이 같은 역사적 인물을 원수라고 지목하는 이것은 100% 엉터립니다.

죄인이 죄인을, 이 죄악 된 세상을 개선할 수 없습니다. 내가 판단하는 것, 백날 판단해봐야 옳은 판단 아니에요. 왜, 우리는 역사적 존재기 때문에. 같은 마귀에 속하면서 같은 마귀에 속한 것을 마귀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이건 마귀적입니다.

그 이야기를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2장에서 했어요. 마귀에 속한 것이 마귀 나라를 무너뜨리면, 마귀 대장보고 뭐라고 하면 둘 다 망하지, 그게 말이 되느냐, 이런 이야기했거든요. 같은 편이거든요. 인간은 다 같은 편이예요. 왜, 역사적 밖에 파악을 못해요. 지한테 잘해주면 좋은 사람이고 못 해주면 원수라고 생각이 드니까 다들 그렇게 생각하니까 거기서는 해답이 나오지를 않습니다.

주님께서 승천해야 될 이유가 여기 있고 승천하신 분의 영이 성령이니까 성령 받게 되면 ‘주님은 승천하셨습니다.‘ 가 항상 우리한테 새겨지고 감동이 되면서 ’아! 역사 적에서는 따로 원수를 뽑아낼 수 없고 세상 자체가 원수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구원이 어떻게 되는가? 이렇게 되니까 구원은 불가능하죠. 구원이 불가능하죠. 제 말이 맞잖아요. 구원 받겠다 하는 것도 하나님의 원수에서 나왔다면 구원받겠다는 그 의지와 노력 자체가 이게 마귀로부터 나왔다면 도대체 ‘구원 한번 해볼까?’ 요것도 마귀하면 그러면 구원 자체를 생각을 안 할 수는 없는 거고, 왜, 너무 힘드니까, 어째 편하게 살고 싶으니까, 구원은 돼야 되는데 ‘구원 한번 해볼까, 말까.’ 요것도 원수거든요. 구원을 끄집어낼 수가 없는 입장 이예요.

그러면 구원을 끄집어낼 수가 없는 인간이 어느 인간이 구원을 받습니까? 자기가 구원을 받고자 해야 구원을 받는데, 그 끄집어내는 것도 반칙이라면, 누가 구원받아요? 막달라 마리아가 울면서 예수님께 향수를 뿌렸습니다. 그때 그 비싼 향수는 사실은 그 향수 모아놨으면 그 향수 누구 쓰려고 모아놓은 거죠? 본인이 쓰려고 모아놓은 거죠. 그런데 본인에게는 몸이 있잖아요. 구원은 어디서 나왔습니까? 구원은 내 몸이 잘되는 게 구원이잖아요. 좋은데 사는 것.

그러면 막달라 마리아가 향수를 누구한테 뿌려야 됩니까? ‘예수님 고맙습니다.’ 하고 이제 향수는 자기한테 뿌려야 될 것을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 몸에다 향수를 부어버립니다. 그러면 그동안 향수를 모아놓은 것이 남들 보기는 허비한 게 되지만 그동안 주께서 자기 몸을 장례식을 준비하기 위해서 미리 막달라 마리아 몸을 만들어 놓고 막달라 마리아로 하여금 창녀 짓을 하게 만들었는지 그건 모르지만 성품이 나쁘다고 하니까 창녀라 치고 창녀 짓을 하게 해서 남자를 밝혀서 모은 돈 가지고 향수를 산 이 모든 것이 결국은 예수님을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하나의 과정이었죠. 본인은 창녀지만, 과정이었죠. 그러니까 아낌없이 향수를 뿌립니다. 이 몸 받아주시옵소서. 제 눈물 받아주시고 원래부터 당신의 것이었습니다. 제 것은 없었습니다. 골로새서 1장 16절 세상의 모든 것들은 주를 위하여, 누굴 만들었다? 주로 만들어 놓고 주께서 그렇게 하게 하셨다는 겁니다. 여기서 우리가 예외 되면 곤란하겠죠.

자, 예수님의 몸을 끊어 버립시다. 끊어버린 사람이 옆에 구경했던 사람 누가 끊었습니까? 바리새인이 끊었어요. 바리새인이 이걸 끊어놓고 뭘 보느냐 하면 예수님 몸을 역사적 몸으로 보고 중요한 부분은 묻지 않고 묵시적 몸인 예수님 몸도 여기 예수님 몸에다 향수를 붓는 막달라 마리아도 우리와 똑같은 몸이고 그걸 구경하는 자기의 몸도 같은 세상의 몸이 동일한 역사 속에 있다고 본 거예요.

그래서 바리새인이 뭐라고 하느냐 하면 ‘예수 저분은 도사하고 하면서 행실 나쁜 여인이 어떤 질 나쁜 여인인지도 모르고 질 나쁜 여인의 재물을 받느냐’ 라고 했어요. 성경에 보면 나쁜 짓을 한 그런 것들은 이웃사랑에 도움을 주면 안 된다고 했어요. 창녀가 버린 돈 가지고 성전에 내면 안 되듯이 나쁜 짓해서 번 돈으로는 안 돼요. 나쁜 짓해서 벌은 돈 가지고 저렇게 해도 저리 좋다고 히히덕거리니 뭐가 좋겠나, 이렇게 된 거예요. 이건 뭐냐 이 중에는 모두가 역사적 몸이죠. 특수한 묵시적 몸이 없죠.

그런데 보세요. 이 막달라 마리아는 자기 몸을 버리고 주님의 몸을 위해서 있다고 하는 거예요. 이것이 바로 구원받은 사람의 정해진 모델입니다. 신약에 있는 성령 받고 난 뒤에는 전부 다 요 말씀 그대로 100% 우리한테 적용이 돼요. 그래서 세상에서 살면서 우리가 성령의 은혜 받는 순간이 요런 순간에 은혜를 받습니다. ‘야, 내 몸도 아닌데 내가 너무 걱정을 하는구나. 발걸음도 세신다는데, 지금 어머니 발걸음을 주께서 세고 계실 텐데.’ 걱정을 내가 한다는 자체가 다시 내 위주의 주체를 생각한 게 아닌가, 다시 한 번 반성하게 되죠.

이것을 어떻게 합치느냐, 주께서 일부러 사건을 일으켜요. 자꾸 난처한 사건을 부딪히게 만듭니다. 이게 한번 행했다 싶으면 시지프스의 바위처럼 이 조시로 죽 하면 좋을 텐데 하면 사건이 나서 우르르 다시 무너지고, 한 개 해결되면 다른 게 터지고, 이거 해결되면 이게 터져 버리고 그럴 때마다 우리의 순간, 순간 그 틈 사이에 묵시가 스며들어오는 그런 느낌을 받게 됩니다. 성령을 통해서. 못 받으면 할 수 없고.

다음 222 페이지, 여기 『‘주의 이름’ 이외의 딴 이름이 걸리고, 경배 받는 것을 용납 못한다.』주의 이름 말고 다른 이름이 뭐죠? 인간의 이름이죠. 그래서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을 안 받는다는 거예요. 인간의 이름, 마귀 이름이라 했는데 왜 인간의 이름이죠? 이 목사님 당신 주장에 의하면 주의 원수는 누굽니까? 악마 아닙니까? 악마 같으면 주의 이름하고 싸워야 하는데 왜 여기는 인간의 이름이냐? 이건 안 맞는 이야긴데, 이렇게 궁금해 하실 거예요.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해도 참고 …, 여러분, 주의 이름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역사 속에 들어온 하나님이 주의 이름입니다.

하나님이 이름을 가진다는 것은 이미 역사 속에 들어왔다는 거예요. 주의 이름은 같은 역사 적속에 들어왔기 때문에 만나는 것은 인간의 이름과 만납니다. 그러나 그 인간의 이름 배후에는 뭐가 있어요? 진짜 주의 이름을 공격하는 원수가 있겠죠. 하지만 이 땅에서는 인간의 이름과 싸우는 겁니다. 이게 마태복음 16장에 나오죠. 베드로가 이야기할 때 “사단아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그 다음에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 사람의 일은 하나님의 일과 원수가 된다 이 말입니다. 그리고 ”사단아 물러가라“ 했으니까 사람의 일을 하게 하는 배후 주동자가 누구다? 바로 사단 이예요.

또 베드로가 “예수님 제가 버리지 않겠습니다.” 하니까 “마귀가 청구하려고 나한테 부탁했는데 내가 거절했다. 베드로야, 니가 니 인생 관리하는 게 아니고 내가 마귀하고 싸워서 그래서 싸운 능력으로 너를 관리하는데 자꾸 니 힘으로 뭔가 소원을 이루려고 하니까 자꾸 주님의 이름이 개입될 여지가 없어요.

그리고 마지막에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기 전에 만날 때는 가야바 제사장 청원경찰에게 잡히게 만들죠. 가야바 청원경찰 그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할 뿐인데 그것도 배후에 악마가 있잖아요. 그런데 베드로가 누구 편을 듭니까? 그런데 예수님 편을 안 들잖아요. ‘나는 저분을 모릅니다.’ 쫄았어. 왜 쫄았어? 자기는 주님, 주님 하지만 사실은 이미 자기는 벌써부터 어디에 쫄았어요? 세상 권력에 푹~ 젖어서 큰 소리 치지도 못하는 거예요.

예수님하고 있을 때는 객기를 부려서 칼 가지고 말고의 귀를 베고 까불고 했죠. 막상 잡히고 나니까 끽 소리 못하고 고개 푹 숙이고 신창원의 원숭이처럼 이렇게 까불고. 부산에 있는 원숭이도 지가 잡히고 보니까 지가 인간인 줄 알고 고개 푹 숙이고 수갑 찬 것처럼. 같잖아서 지가 인간인 줄 알고 흉내를 내요. TV를 많이 봤는지. 체포되면 고개 숙이는 것 있잖아요.

주님께서 기도했기 때문에 우리가 한 발짝, 두 발짝 천국으로 가는 겁니다. 지금 세상에 있는 사건들 우리 힘으로 다 갊으려 하면 우리 몸이 100개라도 안 돼요. 이리 터지고 저리 터지는 것을 어떻게 지금 막고 합니까? 안 된다니까요. 개성공단도 해결해야 되지, 한화 연성해야 되죠, 축구 팀 올림픽 나가야 되죠, 지금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죠. 싸이도 젠들 맨 떠야 되죠.

구약부터 계속해서 묵시가 계속 역사를 건드려 온 겁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역사가 다른 나라 역사와 달라요. 다른 역사는 묵시를 동원해도 잘 됐다 이런 쪽으로 가잖아요. 이거는 계속 ‘이스라엘은 영원하다.’ 하나님이 ‘영원한 것 좋아하네.’ 다 부숴버려요. 자꾸 파쇄해 버리고 부숴버리고 멸망시켜서 ‘죽어라. 죽어라.’ 하면서 결국은 죽어버린 나라가 이스라엘입니다.

오늘날 우리 인생하고 똑같아요. 살아보려고 성도로서 잘 살아야 주께 영광이 되지 않습니까? 살아보려고 하는데 일 못하게 하죠. 꽃이나 찍고 다니죠. 뭐 할 수도 없어요. 그냥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우리를 죽으라고 있는 거예요. 제발 좀 조용하게 사라져줘. 일은 내가 할 테니까 니가 설치지 말고, 니가 복음 전하지 말고 그냥 조용하게 죽어줘. 내가 알아서 택한 백성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다 살려낸다 말이죠. 그래서 모든 권세는 누가 쥐고 있느냐 하면 우리 주님이 쥐고 있는 거예요.

조금만 더 하고 마치겠습니다. 222페이지 밑에 보면 『영구히 파멸된 곳을 향하여 주의 발을 옮겨 놓으소서 원수가 성소에서 모든 악을 행하였나이다.』원수가 왜 성소를 공격합니까? 거기에 누가 있기 때문에? 주의 이름을 공격하죠. 그러면 원수가 성전을 불로 태웠잖아요. 불로 태웠을 때 누가 절망하느냐 하면 성전에 하나님 계신다고 믿던 이스라엘 사람, 유다 사람들이 절망을 하죠. 그거 하나님께서 원했던 거예요.

교회가 망하잖아요? 교회 망하니까 교인들이 하나님이 우리를 버린 줄 알죠. 주께서 원하시는 겁니다. 그거 구원의 과정 이예요. 사람이 믿는 순간 그것은 하나님의 원수 공격 표적이 되는 겁니다. 우리가 나를 믿는다? 내 통장을 믿는다? 내 건강을 믿는다? 항상 그게 표적이 돼요. 주께선 건강을 믿으면 건강을 다치게 하고 통장을 믿으면 통장을 비게 만들어서 계속해서 합력하여 우리로 하여금 영생의 길을 가도록 이끄십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이야기하면 머리 통 밥 굴려서 두 번 다시 통장 신경 쓰면 내가 성을 간다. 이러거든요. 그런데 안 쓸 수 없도록 그렇게 유도해요. 주께서 일을 이렇게 만들어요. 안 쓸 수 없도록. 그러니 어쩔 수가 없어요. 그냥 질질 끌려가시면 되는 겁니다.

『주의 성소를 불사르고 주의 이름이 계신 곳을 더럽혀 땅에 엎었나이다.』라고 하죠. 그럼 요게 구약 시편에 나온 말씀인데 시편 이것이 신약에 그대로 이루어집니까? 안 이루어집니까? 그대로 이루어지죠. 그대로 이루어져서 이스라엘 헤롯 성전은 불타 버리죠. 불타 버리면서 누가 불타게 했을까요? 라고 묻는 거예요. 그때 열 두 사도가 막 탄식하면서 ‘이럴 수 있습니까?’ 울고불고 난리 했습니까? 아니죠. 손 탁탁, ‘내 그럴 줄 알았어.’ 왜, 이미 마태복음, 마가복음 마지막에 주님께서 성전 불탄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안 했어요? 무화과나무 비유할 때 했잖아요.

이걸 제자들이 성령 받고 난 뒤에 제자들이 다시 회개해 보니까 아! 망해야 할 자들이 망했다. 그 말은 안 망할 사람들은 바로 우리들이구나. 하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야! 주께서 새로운 성전을 만들어 놓고 저쪽을 불태우는 아! 이런 방법을 사용하셨구나. 아는 거예요.

223 페이지 중간에『이 부정과 긍정이 성전 파괴가 일어나는 시점에 ‘선지자의 몸=선지자의 신체‘를 통해서 역사 한 가운데 등장하게 되는데』이거 설명하고 마치겠습니다. 자, 무슨 설명하려고 하느냐 하면 성전에 누가 들어있다? 주의 이름! 주의 이름이 추상적이죠. 추상 적에 요게 뭐가 있느냐 하면 인물, 인격체가 돼야 되겠죠. 요 중간 과정에 선지자 있고 주의 영이 임한다. 아시겠죠. 그냥 성전에서 뿅, 해서 사람이 퉁, 신선 나타나는 게 아니고, 성전이 깨지면서 그 성전에 있는 고난이 선지자의 고난으로 바뀌면서 성전 고난 받는 거와 마찬가지로 선지자가 고난 받는다. 왜 선지자는 누가 있기 때문에? 주의 영, 주의 이름이 있는 선지자가 고난 받을 때 나처럼 장차 오실 예수님도 주의 이름으로 오시지만 내가 고난 받는 것처럼 이렇게 고난 받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선지자 이름이 뭐냐, 인자라고 하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의 이름은 하나님의 원수가 관계되는데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주의 이름을 우리 구원과 연결시키려 했습니다. 주께서 주의 원수를 이김으로 그 부산물로 우리가 덜렁 구원이 되었사오니 이미 구원됐다는 사실을 잊지 말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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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