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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31강-YouTube강의(교회의 과오)1304018-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마태복음

31강-YouTube강의(교회의 과오)1304018-이 근호 목사

이름 : 유일자(IP:116.33.234.248)

31강-YouTube강의(교회의 과오)1304018-이 근호 목사

31강 제목은 “교회가 사람을 버려 놓는다.”그런 주제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교회 갈 때는 잔뜩 기대를 하게 됩니다. 세상에서 망난이들처럼 살다가 이제는 신성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이 내속에 들어오면, 나는 개과천선해 참 훌륭한 인간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천국 백성으로 천사같이 깨끗한 마음가짐으로, 살아갈 날이 앞으로 창창하다고, 그렇게 기대하고, 교회를 오게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교회가 오히려 사람을 버려놓는 하나의 장소가 된다는 것은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죠. 그것은 교회라는 단체가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세워지는 것이 아니고, 말씀이전에 교인들이 내는 헌금과, 그리고 부동산과, 그리고 그들의 우정과, 교제와, 교류의 집합체로서 교회가 유지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되면 세상에 나오는 여러 가지 단체와 조금도 달라질 것이 없죠.

그렇다면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그것을 교육시키고, 양육시켜서 오늘 죽어도 천국갈 수 있는 사람으로, 새로운 인간으로 만들어내는 양육의 장으로서, 충분히 감당하려면 교회가면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가야하는가. 하는 이점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교회 갈 때 절대로 기대를 해서는 안되는 겁니다.

왜냐하면은 사람이 뭔가 기대한다는 것은, 그 기대하는 이상향을 내 쪽에서 이미 굳히고 들어가는 셈이 되죠. 무슨 말인가 하면, 교회에서 하나님 말씀을 배우게 되면, 사람들은 그 말씀을 가지고 아~ 나는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아브라함 나오면, 나도 아브라함처럼 이렇게 살아야지. 모세가 나오면, 나도 모세를 본받아야되. 예수님 나오면, 아~ 예수님의 아픔을 이해 못했구나. 이제는 예수님의 아픔을 안고 살아야지. 항상 기대를 하게 되는데, 이렇게 기대하는 자체가 사실은 하나님께서 노리는 바입니다.

인간은 자기 속에 뭐를 담고 있는지를 모릅니다. 그런데 뭔가 하나의 계기가 되고, 어떤 노력을 하고, 목표를 정해버리면 그 순간부터 자기 속에 담겨져 있던 것이, 그 기대에 찬 희망이, 목표와 강제로 억지로 일치시키려고 얘를 쓰게 됩니다. 그때부터 그 사람은 모델을 찾게 되고 이상형을 찾게 됩니다.

그런데 이상형을 찾고, 모델을 찾는 잔뜩 기대하는 그 자체가, 이것이 마귀가 준 가장 근원적인 죄악성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선 그 점을 설명하기 위해서 말씀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먼저 말씀 드리겠습니다. 하나님 말씀이라 하는 것은, 우리의 예상을 항상 빗나가는 식으로 우리에게 작용을 해버립니다. 내가 이런 인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잔뜩 어깨에 힘을 주고 나서게 되면, 하나님은 그 기대를 벗어나 버립니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 6장에 나오는 기도에 관한 겁니다. 기도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런 정도의 고상한 내용은 주께서 응답하리라. 생각하고 기도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기도에 대해서 하나님은 이렇게 반응이 나옵니다. “ 너가 왜 그런 내용으로 기도하지?” 하고 도리어 묻는 식으로 우리에게 응답해버립니다. 그러면 우리는 여러 가지 핑계를 댑니다.

우리가 이렇게 되면 하나님께 영광을 더 돌릴 것이고, 주님께 감사가 될 것이고, 찬양이 될것이고, 하늘나라가 확장이 될 것이고, 이 한 몸 부서져서 하늘나라의 일꾼으로 쓰여지게 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이고, 성경 말씀대로 새로운 피조물답게 생활하게 될 것이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이야기를 끄집어낸다는 자체가, 이미 하나님께서 응답하기 이전에 이미 내 나름대로의 기대치가 한껏 부풀어있는 그 상황에서 나온 나의 이상형을 그렇게 고백하게 되죠. 그래서 기도를 안 한 것이 아니고, 우리는 항상 기도를 하게 되고, 기도를 할 수밖에 없는데, 기도를 하는 그 와중에서 속에 담고 있던 내용들은 여과 없이 다 노출하게 됩니다.

이정도 고상하고, 건전한 내용 같으면 분명히 하나님께서도 응답 하실 거라는 그러한 희망을 품고 기도하게 되죠.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자체를 거두어서 그걸 죄로 매김 해버립니다. 성경에 있는 온갖 좋은 성경구절은 다 뽑아 기도를 하고, 이 응답을 위해서 내 마음 버리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했는데, 하나님은 그것마저 수습해서 그것을 죄로 규정해 버립니다.

왜 그러냐하면 항상 우리는 무슨 말을 끄집어 낼 때 자기 딴에는 순수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내용대로 되면 반드시 거기에 대한 결과가 이런 식의 업적이나, 이런 식의 인간이 될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미리 상정하게 됩니다.

모델을 끄집어내는 거예요. 모델을. 손 향원 목사님처럼, 주 기철 목사님처럼 아니면 주변에서 남한테 구제 했다고 들었던 훌륭한 신앙인의 모습처럼, 아니면 이디오피아 가서 병들면서도 고생했던 천주교의 어떤 의사 신부처럼, 그런 것을 미리 생각해서, 그 사람과 접근해 나가고 목표를 잡아서 나가면 그것이 바로 참된 신앙인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은 바로 구약에서 하나님이 그토록 싫어했던 우상입니다. 교회가 인간을 버려 놓는다는 말은, 교회는 이런 우상적인 모델만 제시한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어떻게 일하는가를 말하지 않고, “여러분! 여러분들이 기대하는 것이 있죠? 그렇다면 여러분들이 기대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들이 실천해 옮긴다면 여러분들이 기대하는 그러한 신앙인다운 건전한 모습으로 접근할 것입니다.” 라고 목사들이 설교해서 이야기 해버립니다.

교인들은 그 이야기를 또 대단히 좋아합니다. 왜! 지금 나보다 질적으로 우수한 내가 될 수있는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람의 삶이란 것은, 항상 지금보다 향상되고, 진보하고 발전하는데서 자기 인생에 대한 긍정심이 부룩부룩 일어나는 겁니다.

좌절감에 극복하는 것은 뭔가 꿈이 있고, 희망이 있고 자기 자신의 긍정적인 어떤 포부가 보일 때 사람은 주저하지 않고, 불현듯 다시 일어나게 마련입니다. 그 희망을 교회에서 듣게 되고 교회에서 제공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설교자나 교회 나온 교인들이나 그런 점에서 생각이 일치가 되는 겁니다.

그래! 그동안 내가 너무 좌절 한거야. 할 수 있어. 나도 저 정도는 다 할 수 있어. 희망을 품고 일어설 수 있어. 지금보다 쉬지 않고 더 노력하면 저 정도 목표는 달성할 수 있어. 이러한 용기를 다시 한 번 갖게 되면 그 용기가 어디에 부여되는가.

내가 설정해놓은 내가 기대한 그 이상형과 목표점을 접근할 수 있다는 식으로 열심히 활동하게 되고, 활동하다보면 몸에 생기도 일어나게 되고 삶의 활력소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게 바로 교회가 사람을 버려놓는 겁니다.

교회는 우리의 발전을 돕는 것이 아니고, 교회라 하는 것은, 우리의 이상과 목표 때문에 뒤에 뭔가 자꾸 잊어 버린게 있고, 놓친게 있다는 것을 끄집어내서 말씀을 우리에게 제공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그런 식으로 교묘하게 가린다는 겁니다.

우리가 행복을 위해서, 우리의 긍정적인 삶의 기쁨을 위해서, 생기 넘치는 그런 삶을 위해서 성경말씀이, 또는 하나님이, 예수님이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근원을 이미 익히 아시고, 그것은 바로 하나님에게 버림받아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버림받아야 될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줌으로서, 이 버림받아야 될 존재가 어떻게 구원에 이르는가. 그것은 순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덕이라는 것을, 그 희생의 덕, 주님의 용서와 사랑이 담겨있을 때, 그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께 유일하게 영광이 되는 존재가 되는 순간입니다. 따라서 나로부터 출발해서 내가 되는 이상형을 생각할 때, 그 틈의 사이에는 뭔가 우리가 지금보다 더 나은 내가 된다는 것 때문에 지금보다 더 못한 나라는 생각을 우리는 십자가 앞에서, 피 앞에서 우리는 인정을 하지 안하려고 하는 겁니다.

지금보다 더 못해도 되는데, 우리는 자꾸 생각하기를 지금보다 더 나아져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방향성이 바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한 악마가 노리던 바로 그 죄악된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가 교회 가서 진정 들어야 할 것은, 더 나아질 필요도 없고, 더 안 나아져도 된다는 그 자유를, 우리는 십자가 피 앞에서 무거운 짐을 벗어 버리고, 지금 이대로 피를 받아들이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첨부파일 : 31강-YouTube강의(교회의 과오)1304018-이 근호 목사.hwp (16.5K), Down:17

파란배경(IP:116.♡.175.27)

13-05-01 00:14

유투브에 영상이 올라오기를 기다리다가... 이렇게 사이트에 들러 글로 읽고 갑니다.
더 나아질 필요가 없다는... 상당히 언짢은 말씀... 그러나 인정할수밖에 없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인정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린거 같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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