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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극락이 찾아낸 이웃묻고답하기사무엘하

64 천국이 찾아 내는 자천국이 찾아내는 자 곧 강도 만난 자지난 주에 지금까지 배운 신약의 예수님의 세계에 대해 중간 요약을 했습니다.1.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인간은 어디까지나 인간입니다. 자신의 신됨을 누리기 위해 예수님을 이용합니다. 그러나, 사도 마태는 주 예수 그리스도 세계 이 외의 것은 다 거짓의 세계로 봅니다.2. 예수님의 족보에 나타난 5명의 여인예수님의 족보에 창세부터 예수님까지 감추인 보화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5명의 여인입니다. 유다의 며느리이자 아내인 1) 다말에게서, 가나안 민족의 신을 배반한 2) 기생 라합에게서, 술취한 아버지 롯을 딸들이 아버지를 성추행하여 낳은 큰 딸의 자식이 모압이요 그 더러운 족속의 개 같은 이방 출신의 모압여인인 3) 룻에게서, 유대인의 왕 다윗 왕이 헷 족속 우리아(우리야) 장군을 일부러 모략으로 최전방에 보내 타살당하도록 하고 난 뒤에 우리야장군의(오로지 여호와의 거룩한 전쟁에만 관심 뿐인 (삼하 11:11)) 아내 밧세바를 빼앗는 바로 그 4)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마리아와 정혼한 요셉이 마리아가 임신한 것을 보고 몰래 파혼하여 끊고자함을 마땅히 당해야 할 처녀 5) 마리아에게서, 예수님은 자신의 보화를 감추어 두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세계가 이러했기에 앞으로도 예수님 자신이 보화를 감추어 두고자 하는 자는 바로 이런 자들, 감추인 보화와 그들이 일체가 되어 졸지에 그 보화 때문에 모든 것을 압수 당하는(잃어버림 당하는, 빼앗기는) 기쁨의 세계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다시 그런 자를 자신의 족보에 자신의 세계에 올리고자 다시 새이스라엘을 모으십니다. 그 잃어버림의 흔적(예수님의 일하심 때문에 졸지에 우리야처럼 모든 것을 감추인 보화와 일체화 되는 자)이 있는 자가 바로 지난 주에 배운 혈루증 앓던 여인, 야이로의 딸 죽음 속에서 다시 찾은 소녀, 오늘 배울 강도 만난 자, 99마리 양이 아닌 잃어버린 한 마리 양, 의사가 필요없는 건강한 자가 아닌 환자, 죄 때문에 들림을(죽음) 받을 인자(人子)를 쳐다볼 필요 없는 의인이 아닌 죄인,3. 선지자 세례요한의 운명. 곧 도살 당할 운명 소모품의 운명(롬 8:36) 선지자 세례요한을 통해 그는 주의 길을 예비함으로 사람들에게 대접받는 운명이 아니라, 싫어버림바 되는 소모품 운명처럼 그는 흥하고 자신은 망해야 함을 일관하고 있습니다. 제가 수 많은 교인들을 만나서 이 세례요한의 선지자 삶을 운운하면 그들은 벧전 2장 9절 너희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요,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는 선지자라고 성경 운운 하면서 세례요한처럼 개 죽음 당할 리가 없다고 절대 하나님 믿는 자는 그럴 리가 없다고 주로 청년들에게서 그런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만, 바로 벧전 2 장 9절 위에 뭐라고 되어있던 가요?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기 때문에 그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는, 잃어버림을 당하는, 싫어버린 바 되는, 아무쓰잘데 없이 일회용으로 잠깐 사용하다 버리는 소모품처럼 취급 당하는, 바로 그런 선지자의 운명을 다른 누구가 아닌 예수님도 같은 선지자의 소모품 운명처럼 자신의 세계를 펼치시는 겁니다.4. 예수님의 활동 개시 (천국의 움직임)천국의 시작은 거창하고 화려하게 시작 되는 것이 아니라, 보라 세상 죄 지고 가는 어린양을 보라고 선지자가 피를 토하며 외쳤듯이, 에구에구 겨우 어린양이야? 어린양이 뭐한다고? 어린양은 겨우 제사음식꺼리 밖에 안되는데? 그런 초라한 어린양으로부터 천국의 시작은 예수님의 선포는 광야에서 시작 됩니다. 마치 천국은 지금 뭔가를 지적하고픈 겁니다. 무엇을 요? 가짜 천국이 이미 사람들을 장악해 버렸음을 말이죠. 에이 설마? 그래서 그 가짜 천국의 주인, 그 가짜 천국 백성의 보호자를 치시러 예수님은 광야로 가십니다. 바로 천국의 시작은 아무것도 없는 아무도 찾지 않는 바람부는 언덕에 이름모를 잡초만 있는 그 곳에서 우두머리랑, 보스랑 단판을 지으러 갑니다. 보스와 보스의 대결 이 대결로 인해 모든 대결은 종식 됩니다. 가짜 천국 백성의 보호자인 마귀는 예수님께 3가지 제안을 합니다. 그 제안은 이미 사람들 속에 가득 담겨진 천국관입니다. 니가 메시야냐? 그럼 1) 돌을 떡으로 만들어라. 굶어죽어가는 자를 살리고 구원하는 구원자의 조건이 무엇이랴? 저들의 아픔을 배고픔을 감당하는 것이 아니냐? 오늘날 수많은 개신교 개혁교회가 외치는 구원자죠?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라고 하십니다. 에이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임이 의심스러운데? 진짜로 하나님이 보낸 자 맞냐? 적어도 메시야라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말씀에 있는대로 될 것이다 ! 2) 거룩한 성전 십자가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라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는 털끝 하나 안다치도록 천사들을 보내셔서 딱 받아줄 것이다. 뛰어 내려봐 내려봐 ? 겁나지? 죽을 준비 했다메? 왜 안죽고 아직도 여태 살아 있노? 죽어봐 죽어봐? 돌에 부딪히지 않게 너를 위하여 사자들에게 명하여 저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줄 것이다. 뛰어내려라 십자가 외쳐 놓고 말만 십자가 십자가 외치지 말고 이왕 죽을꺼 우리가 눈에 보고 확인할수 있도록,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하나님이 보낸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믿을 수 있도록 뛰어내려봐라? 죽어봐라? 기적을 보여봐라?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보여줄 표적은 요나의 표적 뿐입니다. 그래서 저들은 아직도 십자가 안지고 있냐고 비아냥 거리면서 거룩한 성전 꼭대기에 있는 빨갛게 네온 불빛을 내뱉는 십자가에서 조롱하고 있는 겁니다. 좋아 그렇다면 3) 내가 누리고 있는 천하만국의 영광을 보여 주마. 날 따라오너라. 나야 말로 천국을 너에게 선물로 주겠다 나와 함게 손잡고 이 천국의 영광을 함께 누려보자? 나와 함께 천국을 이루고 싶지 않느냐? 나에게 엎드려라. 이 영광을 너에게 주노라. 귀있는 자는 들을 지어다! 어서 나와 손잡지 않으련?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 외에 다른 피조물이(어떤 영적 존재라도) 경배의 대상이 됨을 허락지 않습니다.이 3가지 시험을 통해 인간 속에 있는 마귀의 정체를 밝혀 보여 줍니다. 그들은 유대인 속에서 개혁교회 속에서 이미 가짜 천국을 철두철미하게 심어 두었습니다. 자 이제 마귀의 시험을 이기시고 그 정체를 밝히시는 주님이 그 가짜 천국 속에서 애굽 속에서 자기 백성을 끄집어 내시는 작업이 시작됩니다. 그 출발 점이 광야요 이스라엘은 없는데서 창조된 무에서 창조된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예수님은 자기 백성 모으기를 시작 하십니다. 원래 이스라엘은 없는 민족입니다. 아주 미약하였고, 가장 작은 소수인(신 7:7) 일부러 없는 자 취급 받는 그런 무가치한 자로 모인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그런 자들로 다시 새이스라엘을 모으십니다. 창녀, 귀신들린자, 죄인, 강도, 사마리아인, 개같은 이방여인, 일부러 이런자들로만 구성된 이스라엘을 건국시민으로 초청하며 부르시는 겁니다 곧 천국의 시작입니다.(롬 4: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5. 천국이 파송하는 자천국이 광야에서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그 부르심은 이 땅의 실체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를 증거하는 증인 목격자로 세우기 위함입니다. 그러기위해선 이 가짜 천국의 실상을 거짓됨을 뼈져리게 아는 자 곧 죄인을 부르시는 겁니다. 죄의 심각성을 교리적 신앙으로 카바하고 전통적 신앙행동으로 피하려는 자들의 실체를 폭로하고자 철저하게 그 속에서 속고 또 속고 또 속았음을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그 긍휼 앞에서 부르심 앞에서 비로소 깨달은 자 바로 죄인임을 예수님을 때문에 안 자를 부르셔서 미끼로 파송합니다. 그 미끼는 의인들을(의사가 필요 없는) 낚으러 죄인을 미끼로 삼으시는 겁니다.예수님 자신이 죄인 하나 찾으시려고 직접 가짜 천국의 바다 속에 미끼가 되어 이 땅에 내던져 집니다. 육을 입고 죄인과 같이 되었습니다.(빌 2장) 그래서 한 놈이라도 더 낚을려고 이 지옥같은 가짜 천국 속에서 제발 지옥 가지말라고 자신이 무모하게 이 죽음의 세계로 뛰어든 겁니다. 바로 그런 주님의 십자가의 고통을 아주 시시하게 여기는 자는 당연히 천국가는 것이 마땅함을 주장하며 참천국이 펼치는 시위를 권력과 모략으로 막을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으나, 이미 넉넉히 승리한 천국입니다. 저 화려한 가짜 천국에 빠진 자는 이를 갈려 울것이고, 초라한 예수님이 몰고온 초라한 천국의 움직임 속에 불림을 받은 자는 이 땅에 미끼로써 죄의 심각성을 밝히는 폭로하는 증거자로써 천국에 의해 떠밀림을 받는 겁니다. 잘난 자들 지혜로운자들 이 천국 앞에서 자신들의 의(義)는 우상이었음을 폭로 당할 겁니다.(신 8:16)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신 8:17)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6. 천국이 선포하는 비밀스러운 천국 비밀 (비유)돈으로, 맘 착해도, 벼슬로도, 힘으로도 못가는 나라 천국은 패쓰워드가 걸려서 아무나 들어노는 것이 아닙니다. 패쓰워드가 하나 뿐이냐? 이미 가짜 천국 패쓰워드가 쫙 깔려 있어서 그것으로는 못 통과하는데? 통과하는 줄 착각하고 속아 사는 자들이 모든 인간입니다. 어린양의 공로 때문에 그 패쓰워드는 공짜로 주어집니다. 그것이 바로 비유입니다. 거짓백성에게는 아무리 충성 봉사 해도 결단코 못 깨닫도록 귀구멍 막아버리고, 자기백성에게는 아무리 돌머리고 무식하고 문맹자며 눈봉사 벙어리 어떻게든 지혜를 전혀 접해보도 못한 자였더라도 누가봐도 귀가 절대로 열릴 수 없는 자라도 그 귀를 지으신 예수님은 반드시 귀구멍 틔이게 하여서 자신을 알아보도록 하시는 것이 비유다 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유는 철저하게 두 패로 가릅니다. 그것이 천국 비유가 하는 일, 가르는 일 입니다. 기가막히게 잘 가려냅니다. 아무리 가라지 안될려고 알곡 될려고 몸부림쳐 본들 소용 없고, 아무리 가라지라고 주 앞에서 죄인이니 날 떠나주세요 나는 죄인입니다. 라고 주님의 방해꾼 밖에 안된다고 해본들 알곡 이신 예수님의 긍휼 때문에 알곡됨을 거부할 수 없는 반드시 끌고가셔서 자기 백성 삼으시는 그 고집스러움이 우리 고집 보다 더 셉니다. 이것이 비유 속에서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더더욱 은밀하게 감추어진 채로 그러나 자기백성에게는 너무너무 자유스럽게 일방적으로 통째로 안겨 줘 버립니다. 아무것도 한 것이 없음에도, 조건 없이, 은혜로 말이죠.7 천국이 베푸는 기적천국이 베푸는 기적은 사람들의 종교관에서 포착할수 있는 그런 기적이 아닙니다. 인간의 기존에 깔려진 기적관을 깨어 부서드리며 진행 되는 기적입니다. 아 그렇다면 더욱더 파워스럽고 떠 짜릿하며 더 큰 기적이겠군요? 천만의 말씀, 더 초라하며, 더 보잘 것 없는 기적이다는 겁니다. 그것은 기적은커녕 심판을 앞장 세운다는 겁니다. 날 살리는 것이 아닌 날 죽이는 기적이다는 겁니다. 곧 심판을 미리 앞당겨 받는 기적이 바로 요나의 표적 예수님이 보여줄 딱 하나의 표적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관심사는 눈에 보이는 것에서 시작해서 눈에 보이는 것으로 끝납니다. 도저히 예수님이 몰고오는 기적을 볼 수 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눈을 송두리째 뽑아 버립니다. 헌 눈 다 오, 새 눈 줄 게 이것이 우리의 어두운 눈이 못밖아 버린 십자가의 용서로 일관된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그 어두운 눈 고치시러 자신의 눈을 봅아서 우리 눈에 박아버리시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핍박자 사울을 예수님의 증인이 된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받은 것은 오로지 자신이 받은 심판 뿐이며 그 심판만을 자랑하며 다니며 다른 것 자랑하지 않겟노라 라고 선언하는 겁니다.(갈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이것이 요나의 표적입니다. 요나는 구원받아 마땅한 자신과 자신의 민족 이스라엘을 심판하는 진짜 구원의 하나님을 만나고 그의 눈은 십자가 앞에서 심판 받는 예수님을 심판 받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지난 주에 한 10가지로 정리했는데 하다보니 7가지로 정리했네요 오늘은 천국이 끌어모으는 자는 어떤 자이며 그들은 어떤 길로 가는 가에 대해 알아보기로 합시다. 오늘 내용은 한 율법사가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지 예수님께 물으면서 예수님의 영생을 소개하는 이야기입니다. 전에 배운 니고데모, 또 부자 청년, 기타 등등 오히려 영생에 대해 무지 무지 관심사가 높고 그것을 위해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는 자들이 영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다 할려는 자가 정작 코 앞에 눈 앞에 영생 되신 예수님은 전혀 모르고 있는 반면에 니고데모와 대비된 사마리아 여인은 우연히 영생이신 예수님께 공짜로 보너스로 영생을 받는 둥 아무튼 예수님을 일하심이 인간의 열심에는 전혀 포착이 되질 않습니다. 팔을 어긋나게 선택하는데 고수입니다. 즉 오늘 이 이야기 속에서도 이미 사람들은 이웃이 나의 이웃이 누구인가에 미리 깔려 있는 이웃이 있다는 겁니다. 영생을 설명하면서 예수님은 율법사가 기가막히게 잘 아는 계명을 묻습니다. 어떻게 하면 영생 얻나요? 니가 율법사이니까 그 율법에 뭐하고 하던?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되어있는뎊쇼그래 이웃을 사랑하거라 끝에이 예수님 그렇게 살살 맞게 끝내지 말고요 좀 더 부연 설명 여기 있는 이웃 형제 자매들 모두가 영생에 나라에 가야 할 것 아닙니까? 그렇게 단답형으로 짤뚝 말해버리면 질문하는 나도 섭하지요, 듣는 귀들도 많은데 좀 더 짜~~~세히 좀 더 구체적으로마치 자신이 이렇게 영생과 지혜가 관심을 많음을 은근히 연기력으로 주변에 있는 타인들이 들으랍시고 예수님을 더욱더 자기 대화에 충실할 것을 요구합니다.(앞서 배운 마귀의 예수님 3시험이랑 같습니다)음 그렇다면 예수님 누가 이웃입니까?예수님은 지금 이들 속에 깔려 있는 이웃을 들추어냅니다. 율법사는 자신들을 위해 기도하고 대신 선교하러 전도하러 교회 충성 봉사 하는 이 율법사와 같은 이들이 이웃이 되어 주기에 그 고마움을 잊으면 안된다는 식으로 그 당시나 지금 현대나 만인제사장 함부로 차용하면 안되고 그래도 전문가가 있어줘서 그런 전문가가 이웃이 되어줘서 그들의 달란트와 사명감 때문에 그들의 노고와 흘리는 땀의 공로로 거룩한 성전 종사자야 말로 이웃임을 밝혀 줄 것을 내심 기대하면서 이웃이 누구인지를 묻고 있습니다.엥 그런데 이게 왠 걸 예수님의 이웃 이야기에 그만 타켓이 되고 말았습니다. 율법사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게(성전 종사자) 철저하게 속아 살던 그 주변인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이웃 개념이 일상적인 상식적인 이웃개념이 홀라당 날라가버리고, 엉뚱한 이웃이 나타납니다.예수님의 이야기는 한 사람이 이동 중에 강도를 만났는데 그만 그 강도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두들겨 구타 맞고 해서 거의 반 죽음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강도 당 한 그 길에 한 제사장이 지나갔는데 그만 그 강도만난자를 은근 슬쩍 지나쳐 모르는채 지나가버렸고, 또 레위인도 마침 지나갔는데 그 레위인 또한 피하고 모르는채 빠져 나갔고, 또 그 다음 마침 사마리아 인이 여행 중에 그 강도만난 자를 발견하고서는 그를 불쌍히 여기고서 나귀에 태워 병원으로 이송하고 먹을 것 입을 것 모든 회복을 위한 조치를 다 일방적으로 베풀어 주더라 라는 이야기를 하시며 누가 이 세 사람 중 너의 이웃이냐 라고 묻습니다. 자비 긍휼을 베푼 자다 라고 대답합니다.여기서 예수님은 성전 종사자가 이 땅이 지금 마귀에게 물린 강도 당한 처지로 못보고 자신이 하나님께 부여 받은 성직 직분 그 자체로 생의 보람과 삶의 가치와 모든 성전 일로 인해 자동적으로 모든 사람들의 이웃이이며 봉사자요 존경의 대상임을 송두리째 홀라당 뽑아버리고 있는 겁니다. 오히려 이웃은커녕 못본채 그냥 가버리는 파렴치한 강도랑 다를바 없음을 말해 줍니다. 반대로 그들 성전 종사자에게서 입버릇처럼 저 사마리아인과는 상종치 말 것을 귀 따갑도록 들었는데 저들은 절대 우리와 이웃이 될 수 없는 더러운 자들이며 그들과 함께 있으면 같이 더러운 자가 될것임을 무지 무지 강조 했으며 거기에 세뇌 당하며 지냈었는데 예수님은 그것을 뒤 엎어 버리시는 겁니다. 정작 거룩한 성전 종사자는 이웃 개념과는 전혀 상관 없는 자요, 오히려 늘 개같은 이방인이기에 이웃 축에도 못 끼여드는 그 사마리아인이 참이웃이었다는 마치 지난번에 배운 귀신들린 자는 정작 예수님으로 인해 지금 그 순간 새로 고침 받아 증인이 되는 영접하는 자였지만 귀신들린자를 보고 자신들은 아주 건강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며 자부하던 자는 오히려 예수님의 일하심으로 자신들이 진짜 귀신들린 자임이 폭로되는 그래서 발로 뻥차버리며 나가달라고 우리 동네에서 나가주세요 라고 배척하는 거랑 똑 같습니다.그렇다면 누가 이웃입니까? 강도 만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입니다. 문제는 강도 만난 자가 누구인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누가 강도 맞았남? 예수님은 이 이야기를 통해 그동안 성전 종사자에게 오늘날 개혁을 부르짖는 개혁교회 만들기에 몸부림치는 교역자들에게 속아 넘어간 자를 강도 맞은 자로 보고 계십니다. 그들의 개혁관에서 강도 만난 자는 사역대상에서 제외 되는 겁니다.그런데 문제는 아무도 강도 맞은 적 없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그렇게 보고 있는 예수님이 더 측은히 불쌍히 여김 받아야 할 것 같다는 것이 우리의 안목입니다. 우리의 안목은 그냥 나온 안목이 아니지요 다 한 신앙한다는 그 속에서 한 믿음 하는 그 믿음 속에서 나온 안목이기에 거봐 남을 그렇게 삐딱하게 보더니 정작 예수님 자신이 강도가 지는 그 십자가의 형벌을 받고 있잖아 라고 하는 겁니다.바로 이런 눈이 강도를 만났기에 불쌍히 여김을 받아야 고침을 받지 외부에서 불쌍히 여기는 자가 없다면 회복 불가능한 것이다는 겁니다. 그럼 그 이웃이 되지 못한 교역자들은 무엇을 심은 겁니까? 자생으로 자력으로 회복할수 있는 맘을(곧 마귀의 3가지 시험 속의 메시야관)심었기에 정작 강도 만난 자는 없이, 강도 만난 자의 이웃만 강도짓을 당하는 아주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인으로써 이 땅에서 사마리아인의 취급을 받으며 유대인의 왕이라고 놀림을 받는 치욕의 길을 걸었는데 우리는 달랑 안꼬만 쏙쏙 빼먹는 식으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는 이용만 할려고 강도 만난 예수님을 못본채 하고 가버리는 겁니다. 아예 안본채 하며, 아니 아예 만난 적도 그 길을 간 적도 없는 외면을 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심각한 강도 짓을 우리는 당했습니다 마귀에게. 바로 그 강도가 우리임에도 말입니다.그래서 그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될려고 예수님은 오셨지만, 강도 만난 자를 찾을 수 없습니다. 다들 천국에 이미 가있는 믿음으로 꽉 차 있기에 믿음되신 예수님은 오늘도 모든 피조물과 함께 성령을 통해 놀라운 탄식으로 울부짖고 있는 겁니다. 유독 강도 당한 인간만 모르고 있습니다.(롬 8: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롬 8:23)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주님 이런 강도 말라꼬 불쌍히 여기십니까? 그냥 지옥 불에 가서 죽도록 내버려 두시지 왜 지옥 속에서 우리를 건지 실려고 지옥 속으로 뛰어드셨습니까? 왜요?우리는 한 번도 주님을 귀히 여긴 적 없이 그저 이용해먹기만 하는데 왜 강도 같은 우리를 귀히 여기시는 겁니까? 왜요? 왜 그렇게 무모한 행동을 하시는 겁니까? 도대체 주님의 마음을 알 길이 없습니다. 딱 한 번 만이라도 그러시는 이유 좀 알고 죽는 자 되길 원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만 경배되는 그 날이 오길 바라며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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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3,735건 중 129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535 묻고답하기 Re..정확한 차이가 무엇입니까?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4-07-22
534 묻고답하기 정확한 차이가 무엇입니까? - 최고관리자 04-07-22
533 묻고답하기 Re..그럼 이런 생각도 틀린건가요?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4-07-20
532 묻고답하기 Re..목사님의 설교를 듣다가 생긴 질문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4-07-19
531 묻고답하기 목사님의 설교를 듣다가 생긴 질문 창세기 최고관리자 04-07-19
530 묻고답하기 젖먹이의 믿음 창세기 최고관리자 04-07-19
529 묻고답하기 Re..승리~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4-07-16
528 묻고답하기 승리~ - 최고관리자 04-07-16
527 묻고답하기 이성녀 성도님 - 최고관리자 04-07-15
526 묻고답하기 Re..달란트 비유에 대한 마지막(?) 질문입니다.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4-07-15
525 묻고답하기 달란트 비유에 대한 마지막(?) 질문입니다. - 최고관리자 04-07-15
524 묻고답하기 Re..두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4-07-14
523 묻고답하기 달란트 비유에 대한 두번째 질문입니다 - 최고관리자 04-07-14
522 묻고답하기 Re..달란트 비유에 대해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4-07-13
521 묻고답하기 아주 작은 겨자씨 믿음 고린도전서 최고관리자 04-07-04
520 묻고답하기 '회원 등록제'에 대하여 - 최고관리자 04-06-29
519 묻고답하기 물에 빠지지 않을려는 믿음과 빠뜨리는 믿음 - 최고관리자 04-06-27
518 묻고답하기 도망치는 천국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04-06-20
517 묻고답하기 구원은 없다 로마서 최고관리자 04-06-20
516 묻고답하기 Re..이윤자 집사님 어디 편챦으신지요? 묻고답하기 최고관리자 04-06-17
515 묻고답하기 강도야 ! 꼭 꼭 숨어라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04-06-13
열람 ➜ 묻고답하기 극락이 찾아낸 이웃 사무엘하 최고관리자 04-06-06
513 묻고답하기 비웃음과 울음 - 최고관리자 04-05-30
512 묻고답하기 Re..창세기 19장 1-11절에 관하여... 창세기 최고관리자 04-05-29
511 묻고답하기 창세기 19장 1-11절에 관하여... 창세기 최고관리자 04-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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