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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08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시편) - 재정리자유게시판시편

2008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시편) - 재정리

이름 : 구득영(IP:203.223.97.152)

2008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 1강

강의 이근호 목사, 녹취 한윤범

먼저 이렇게 만나게 되어서 너무나도 반갑습니다. 일일이 찾아가서 인사를 하고 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한 점에 대해서 양해를 구합니다. 이번 수련회는 시편에 대해서 해보겠는데, 먼저 시편 24편입니다. 7절에서 10절까지인데, 제가 읽겠습니다.

(시 24:7)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시 24:8) 영광의 왕이 뉘시뇨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시 24:9)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시 24:10) 영광의 왕이 뉘시뇨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

◈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

시편이 상상외로 무척이나 어렵습니다. 정말 어렵습니다. 그래서 시편을 강해한다는 자체가 좀 버거운데, 서로 버거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 뜻이 있어서 구약성경에 시편이 있기 때문에, 비록 버겁더라도 약간의 맛이라도 본다는 마음으로 감히 시편을 해보려고 하는 겁니다.

방금 읽은 시편 24편을 그림으로 그리면 이렇습니다. 이 세상에 영원한 문은 없는데, 그 영원한 문이 없기 때문에 그냥 점선으로 할게요. 그냥 문이 아니고 어떤 문인고 하니까, 영원한 문이에요. 영원한 문은 소개된바가, 즉 인간에게 알려진바 없습니다. 그래서 그냥 점선인데, 있어도 사람들에게 알려진 바가 없기 때문에 없다는 겁니다. 즉 천국이죠.

그렇게 알려진 바가 없는데 없는데, 그런데 이 문들 바깥에서 한바탕 무슨 일이 벌어져요. 무슨 일이 벌어지느냐 하면, 여기에서 '여호와' 라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전쟁을 벌이십니다. 여호와께서 전쟁을 벌리셔서, 이 전쟁에서 승리했을 경우에 비로소 알려진바 되는 영역, 그것이 바로 영원한 문이 있는 천국이란 말입니다.

◈ 여호와 전쟁의 승리로, 천국 문이 !!

여호와 하나님께서 전쟁을 일으키고, 그리고 확실하게 승리했다는 것이 보장되지 아니하면, 이것은 여전히 감추어진 것이고, 알려진바 없습니다. "저런 것도 다 있었나?" 라고 하는, 알지 못하는 곳입니다. 이 영원한 문들이 여호와께서 승리했다는 표시로 들어오실 때, 이 영원한 문들은 비로소 왕을 영접하기 위해서 활짝 위로 문이 들려야 되는 거예요. 문이 들린다는 말입니다.

만약에 여호와께서 오시지 않고, 전쟁이 일어나지도 않고, 오셔도 승리하지 못했다면, 여전히 천국의 문은 감추어진 공간입니다. 이런 세계는 사람들에게 알려진바 없습니다. 사람들이야 죽어서 천국에 간다고 하지만, 그걸 '투사' 라고 하지요. 자기가 갖고 있는 자기 자유, 즉 자기의 목적성이란 말입니다.

사람이 하는 일에 어떤 목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아마 신도 어떤 목적이 있을 거야" 라고 생각하고, 그리고 사람은 자기가 하는 것을 자유선택에서 이해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아마 신도 자유선택에 의해서 할거야" 라고 하는 겁니다. 또는 남이 자기한테 해코지를 하면 "저놈 죽어라" 라고 저주하고 미워할 거예요. 즉 인간이 신에게 합당한 영광을 못 돌리면 화가 노발대발해서 벌을 준다고 여기는 겁니다.

◈ 스피노자가 말하는 가짜 종교의 특징 3가지 - 자유, 목적, 기질 !!

이 세 가지를 스피노자는 가짜 종교의 특징으로 봤습니다. 즉 인간이 갖고 있는 기질을 그대로 확장시켜서, "아마 신도 내가 이러하니, 내가 이런 성질을 갖고 있고, 내가 이런 포부를 갖고 있는데 아마 신도 나와 똑같은 포부와 기대가 있겠지. 에이, 있다고 치자. 그리고 그 대상을 신이라고 인정해주자" 라고, 이렇게 하는 거예요.

방금 제가 이야기한 것을 다시 한번 더 설명하면, 첫 번째는 '자유' 문제입니다. 두 번째는 '목적'이고, 세 번째는 '기질' 문제인데 말이죠. 이 자유 문제는 뭐냐 하면, 우리가 인간으로서 뭐든지 "나는 녹차를 먹을까? 커피를 먹을까? 아, 내가 선택했어. 난 녹차야" 라고 하면서, 우리가 이렇게 선택하잖아요.

그렇게 우리가 자유롭게 선택하듯이, 우리를 만드신 신도 아마 그러한 자유를 발휘할 것이라고 해서, 신의 자유에다가 신학의 원천을 걸어버립니다. 용어 자체가 어렵게 나오는데, 모든 신학의 원천, 뿌리에다가 신의 절대 자유를 갖다 붓는다는 말입니다.

이게 들어가면 '숙명론', '예정론', 이렇게 여러 가지가 되겠지요. 어쨌든 간에 이걸 확대시킨 게 뭐냐 하면, 신의 주권사상입니다. '주권사상', 이걸 신학으로 묶어보니 '개혁주의사상' 인데, 이걸 삶과 연결시키면 '청교도주의' 라는 겁니다.

어떤 분이 우리교회에 어젠가 질문을 했는데, 공부할 책을 좀 소개해 달라고 말이죠. 물론 제가 엉뚱하게(?) 답변을 했습니다만. 공부를 하는데 있어서, 교회사를 통해서 기독교를 알고 또 불교를 알아야 되는데, 불교를 왜 알아야 되느냐 하면, 그 사람들은 자기 부인에 열중하는 사람이에요. 사이비 말고 진짜 불교는 자기를 부인하고 낮추는데 열중하는 사람이란 겁니다.

◈ 교회사를 공부함으로서, 그 십자가의 원수 됨을 !!

우리가 기독교 교회사를 알아야 돼요. 거기는 온갖 각종의 기독교의 형태를 띤 인간의 종교성이 마음껏 거기에 담겨 있거든요. 그 가운데 청교도의 역사도 있고 말이죠. 이러한 기독교라는 것과 불교가 십자가의 원수로, 그것이 왜 십자가의 원수가 될 수밖에 없는가를 알기 위해선, 사전에 미리 다 공부해야 돼요.

교회사를 공부해서 "아, 기독교라는 것이 십자가의 원수고, 불교라는 것이 십자가의 원수구나" 라고 말이죠. 둘 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상급의 종교적인 성결이죠. 신앙이 아니고, 종교적인 성결과 거룩과 순진무구한 신앙심을 만들고 생산해내는, 그러한 활동들을 해온 겁니다.

◈ 신의 주권사상과 자기 투사 !!

그런데 이런 것들이 다 들어가면 그게 뭐냐 하면, 신의 '주권사상' 이라는 겁니다. 그 주권사상이 어디 들어 있는고 하니, 바로 우리 인간에게, 즉 "우리가 자유로우니까, 아마 우리를 만드신 분은 오죽 자유롭겠느냐?" 라고 하는, 그러니까 하나님의 자유성에다가 자기의 자유를, 그게 곧 '자기 확대', 곧 '투사' 라고 하는 겁니다.

'투사' 라고 하면 너무 어려우니까, 쉬운 말로 풀어서 하면, 자기보다 더 우수한 성질은 유지하면서도 자기보다 더 완벽하게, 완벽하게, 완벽하게 쳐서 올리면, 나중에 완벽한 자유를 구사하는 어떤 대상, 그게 곧 신의 주권사상입니다. 여기에 해당하는 게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인데, 모두가 다 여기에 해당되는 겁니다.

그 중에서 특히 신의 주권사상에 거의 미친 듯이 히스테리할 정도로 이걸 사수하는 게 바로 탈레반, 즉 이슬람 쪽이죠. 바이어하고 아무리 큰 흥정을 하다가도 금요일 '땡' 치면, 거기서 어느 자리에서든 절을 해야 돼요. 이런 신의 주권사상에는 바로 신의 자유성, 이러한 신의 자유성에 사실은 선택론이나 예정론도 여기에 결부가 돼요. 그래서 유대교의 경우에는 아주 예정론이 강렬하게 일어납니다.

그것이 바로 그러한 자유성을 가지고 자기가 지금 최고의 자유를 믿겠다는 말인데, 그건 무슨 뜻이냐 하면, "현재 나의 자유가 내 성에 자치 않는다" 라는 말입니다. 자기의 자유로운 행동은 어디서 나오느냐 하면, 자기 욕망에서 나오는데, 그런 자기 욕망을 달성하기에는 자기의 선택권이 세상에서 너무 좁고, 즉 이 세상이 자기 마음대로 안 돌아가는 거예요.

◈ 항상 결핍을 느끼는 인간 !!

그러니까 항상 결핍을 느끼는 겁니다. 미흡, 모자람을 말입니다. 사람이 많이 가졌다고 행복한 것이 결코 아니에요. 많이 가져도 모자란 것이 자꾸만 발생이 되면, 그 발생된 모자람만큼 그만 슬퍼져요. 사람이 슬퍼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데, 만사가 자기 뜻대로 안 되기 때문에 그래요. 사람이 결핍이 있고 비움이 있으면 가만있질 못해요. 그걸 반드시 채워야 돼요. 채우지 못하면 잠을 못 자는 겁니다. 그러면 빌어야 되죠.

그런데 사르트르 그런 이야기했어요. 사람이 자기 자유를 행사하려면 반드시 남의 자유를 침해하는 조건하에서 자기 자유를 발휘하게 되어있다고 말이죠. 남의 자유를 방해하지 않고 자기 자유를 발휘할 수는 없다고 보는 겁니다. 상식적으로 봐도 그렇게 보이고 말이죠. 하지만 사람은 "그게 옳으냐? 그르냐?" 라는 것은 뒷전이에요. 옳고 그름이 아니라, 자기한테 결핍이 있으면 참을 수가 없어요.

지옥에 가서라도 참지 못한 자가 있었는데, 누구입니까? 거지 나사로의 앞집에 살았던 부자의 경우에, 그가 지옥에 갔는데 그 지옥의 특징이 뭐냐 하면, 그게 결핍인 줄 몰랐지요. 세상에 있을 때 자기는 부자이기 때문에 만족스럽게 살았는데, 그런데 지옥에 가서는 물 한 방울이 그렇게 아쉬워요. 당장에 물 한 방울이 없다는 거예요. 지금 우리는 물을 마음대로 마실 수 있잖아요. 그런데 그 물 한 방울이 없어서 거지 나사로가 손가락으로 찍어서라도 달라고 요청을 한 겁니다.

요즘 한국에 대운하를 만들고, 대학자율화를 하고 하는데, 지옥에서 대통령이 되려면 그런 게 필요가 없어요. 대운하고 나발이고 필요가 없는데, 그냥 물 한 방울을 주면 지옥에서 대통령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니까 대운하, 4만불시대, 경제성장률 7%, 그런 구호가 전혀 필요 없어요. "제가 여러분 손가락에 물 한 방울을 찍어 드리겠습니다. 찍어 주세요. 반드시 보장하겠습니다" 라고 하면 대통령이 됩니다.

◈ 지옥도 역시 감추어진 세계 !!

성경이 재미있는 것은 아까도 제가 이야기했듯이, 이 영원한 문들이 있는 천국도 감추어진 세계지만, 놀라운 사실은 지옥도 이 세상에서는 여전히 감추어진 세계라는 겁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여호와께서 전쟁을 벌여서 승리하지 아니하면, 천국도 감추어진 세계고, 또한 지옥도 감추어진 세계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흔히(?) "성경은 예수님의 전쟁 중심이다" 라고 이야기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경을 볼 때, 예수님의 그 전쟁 중심이 아니고, 무슨 중심으로 본다고 했습니까? 첫 번째로, 우리의 끓어오르는 자유를, 즉 "나의 이런 결핍을, 신께서는 나보다 더 많은 능력을 가지시고 채워 주시겠지" 라고 하면서 말이죠.

그러한 신을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즉 "그 전능하다고 소문이 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내가 결핍을 느끼는 나의 자유성을 얼마나, 몇 퍼센트나 더 채워줄 것인가?" 라고 하면서, 그렇게 인간은 신을 부단히 찾고 또 찾고자 하는 겁니다. 전능하신 신을 말이죠.

◈ 불교 - '자유는 내 안에서' !!

그 찾는 것이 인류의 대표적인 종교가 뭐였습니까? 기독교이고, 다른 하나는 불교였단 말이죠. 불교는 간단해요. "자유를 외부에서 채워줄 게 뭐가 있노? 내 스스로 내 안에서 자유라고 외치면 그만이야. '나, 자유자다' 라고 외치면 그걸로 모든 게 자유인데, 신을 찾아서 달라고 할 필요까지는 없다" 라는 겁니다. 이게 불교사상이에요.

다시 말해서, "나는 자아도 없고, 아무 것도 없고, 흐물흐물하고, 나의 이 모든 것도 죽으면 다 흙으로 돌아가고, 난 아무 것도 없다. 그 순간부터 나는 사라지고 모든 것이 자유다" 라고 하는데, 이것이 곧 해탈이 아닙니까? 이게 바로 불교식인데, 불교는 그렇게 하는 거예요.

물론 이러한 것은 아주 불도가 심한 사람이나 도를 깨우친 사람의 경우에 가능한 것이지, 일반 불자들은 이런 수준이 안 되지요. 그래서 부적을 갖다 붙이고 해야 되는데, 즉 절에 가서 비는 것 따로, 점치는 것 따로, 그렇게 따로 따로 다 해야 돼요.

그런데 기독교는 뭐냐 하면, "하나님, 저를 아시지요? 그 전능하심을 가지고 지금 뭐합니까? 저를 안다면 그 솜씨를 좀 발휘하세요. 저의 안타깝고 험하고 힘든 것을 아시면, 그 있는 솜씨를 가지고 저의 결핍을 좀 채워주세요. 그러면 받은 것 중에서 다 먹겠다는 것이 아니고, 어느 정도는 떼서 십일조로 바칠 테니까, 일단 주시면 십일조를 바치는지 안 바치는지 그때 한번 보세요. 전체를 주시면 10퍼센트 정도는 드릴 용의가 있습니다" 라고 하는, 그게 기독교라는 겁니다.

◈ 첫째, '자유'에 대해서

사르트르 이야기를 다시 해봅시다. 자유라고 하는 것은 존재가 풀리는 것을 말하는데, 즉 존재가 슬슬 풀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입질을 해서 슬슬 당기는 거예요. 그렇게 존재가 슬슬 풀리는 것을 자유라고 합니다. 그러면 자유가 아닌 게 뭐냐 하면, 돌멩이죠. 돌멩이는 자유가 없어요. 냉장고도 그렇고, 이런 것은 죽은 거잖아요. 사실 죽었다고 할 것도 없는데, 처음부터 죽었으니까 말이죠.

◈ 사르트르 - '자유란, 존재가 슬슬 풀리는 것' !!

이렇게 존재가 슬슬 풀리는 것을 가지고, 여기서 좀 어려운 용어 나오는데, 그것을 '적자존재' 라고, 즉 그 자체로 있는 것인데, 이런 돌멩이와 같은 것 말이죠. 그리고 '대자존재' 라는 것은, "나 어디에 있지?" 라고 하면서, '나'를 '내'가 따로 만들어서, 그 '나'를 보고 있는 '내'가 있고, 또 '내'가 원하는 '나'가 있어서, 그 '나'를 쳐다보면서 '나'인 것을 다시 확인하는 것, 그것을 '대자존재' 라고 말하는데. 이런 것은 잊어버려도 돼요. 유식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없애버립시다.

어쨌든 자기가 되고 싶은 곳까지 도달되는 그 과정을 자유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유를 달라" 라고 하는 것은, 쉽게 말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놔둬요" 라는 겁니다. 이제 쉽죠. 자유가 뭐냐 하면, 중학생들 머리를 기르고, 여고생들이 매니큐어를 바를 수 있도록, 그렇게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해달라고 하는 것을 "자유를 달라" 라고 한다는 겁니다. 아니면 죽음을 주든지 말입니다.

아무튼 자유라는 것은 존재가 슬슬 풀리는 거예요. 그런데 풀려나올 때 어떻게 풀려 나오는고 하니, 그게 성질이 나오거든요. 그걸 속성이라고 하는데, 그 속성이 슬슬 풀려 나오는, 즉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본연의 성질이 슬슬 풀리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여자가 시집을 가서 처음에는 시어머니의 눈치를 본다고 꼼짝도 못하고 있다가, 드디어 삼 사 년이 지나면 안 주인 노릇을 하답시고 슬슬 성질이 나오죠. "요새 우에 사노? - 요샌 자유롭다. 내 자존심도 내 주장도 어느 정도 먹힌다" 라고 하는 거예요. "우리 시집에선 내 주장도 이제는 먹혀 들어간다' 라고, 그렇게 슬슬 자기 개체가, 즉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나가는 거예요.

◈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 자유는 철저히 개인주의다 !!

그래서 사르트르가 자유라고 할 때는 철저하게 뭐냐 하면, '개인주의' 라는 겁니다. 이것을 '실존주의' 라고 하는데, 철저하게 개인주의예요. 그러니까 그 어떤 인간이든 자기 자유를 자기를 마음껏 펼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는 겁니다. 달리 말하면, 백 사람이 있으면 백 사람이 믿는 예수가 모두 다르다는 말이죠. 백 이면 백 다 달라요. 왜냐하면, 각자의 성질이 모두 다르니 말이죠.

그 성질이 그 자유가 어디까지인고 하니까, 신과 내통하는, 물론 내통한다고 하면 나쁜 표현이지만, 성경대로 하면 교제라고 할 수 있는데, 아무튼 그렇게 신과 연결시켜서 자기 미흡함, 즉 자기가 도달되는 것을 팍팍 빠른 속도로, 그렇게 도달될 수 있도록 해줄 때, 그때 "역시 나의 하나님은 최고다" 라고 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보람을 가지려고 하는 겁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작년에 이만큼 응답을 했기 때문에, 올 2008년도 기도할 때 응답을 팍팍 주세요" 라고 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이미 아는 사이이기 때문에 말이죠. 그러니 기도한다는 것은 '딸랑딸랑' 흔드는 것인데, 그렇게 흔들면 밥을 주는 거예요. 기도하는 줄을 잡아당기면 위에서 밥이 쏟아진다는 말입니다.

◈ 자유는 각자각자 달라요 !!

그러한 자유인데, 하지만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과 대화가 안 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의 자유하고 각자 다르기 때문에 말이죠. 지옥에 있는 부자는 물 한 방울을 달라고 하는데, 아직 지옥이 있는지 천국이 있는지 알지도 못하는 세상에서는, 자기가 가진 것도 모자라서 미흡함을 느끼고 있다는 말입니다.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의 소원이 뭐냐 하면, "나도 홀인원을 한번 해봤으면 참 좋겠다" 라는 것인데, 즉 세 번 칠 것을 한 번만 쳐서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도박을 하는 사람은 장땡을 한번 잡았으면 좋겠다고 하고 말이죠. 사람마다 그렇게 다 달라요.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을 모두 다 없애라고 하는 그 소망을, 그 자유를 허경영 씨가 이루겠다고 하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는데, 아이큐 430이라고 하는 허경영 씨가 그렇게 다 이루겠다고 해서 득표율 무려 0.4%가 나왔어요. 이인제와는 0.3%나 차이가 나는데 말이죠(ㅋㅋ).

◈ 인간의 자유를 마음껏 펼치게 해주면, OK !!

인간의 종교성이라고 하는 것은, 이것은 교회에 불을 내고 절을 태워도 아무 소용이 없어요. 기독교나 불교나 종교성은 인간이 살아있는 한 영원합니다. 그들의 자유를 마음껏 구가할 수 있는 마당놀이, 그 마당놀이만 펼쳐주면 교회는 부흥됩니다. 마음껏 자유를 펼칠 수 있도록 말이죠.

한 맺힌 것, 누구한테 당한 것, 그것을 마음대로 풀 수 있는 프리한 마당놀이의 장을 형성을 해주기만 하면, 교회와 절이라는 것은, 특히 한국 땅에서는 영원합니다. 없어지지를 않는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인간 자체가 매일같이 자기 초월을 시도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30등을 했으면 25등, 25등을 했으면 10등, 그렇게 계속해서 자기 초월이란 말입니다.

이러한 것을 신과 연결시켜서, 즉 신으로부터 자기의 자유성을, "이것은 신도 보장해준 것이다. 그러니 나보고 너무 탓하지 마라. 하나님이 보장했다. 그 증거는 지난번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했거든. 나의 자유, 나의 욕심은 죄가 아니고 의로운 것임을 주께서 인정해준 것인데, 작년에 기도를 좀 했더니만 그리 응답되었다. 그래서 나는 용기를 얻어서 앞으로 더 밀어붙일 참이다" 라고 나온다는 말이죠.

이러한 것들이 주권사상, 개혁주의, 청교도 등에 보면 다 들어 있는데, 청교도는 뭐냐 하면, 하나님께 그냥 달려고 하기가 미안스럽잖아요. 그래서 성화를 하는 거예요. 즉 "착한 만큼 복은 오게 돼있다" 라는 공식인데, 하나님한테 뭘 달라하니까 미안스러우니까 좀 착한 일을 많이 한 것을 근거로 해서, 약간만 더 기도하면 응답이 되는데, 그 정도는 해야 사람이 염치가 있다는 거예요.

그렇게 염치가 있는 사람은 청교도이고, 반면에 염치도 없는 사람은 마구 달라고 떼를 쓰는 무당이고 말이죠. "주여, 주를 위해서 이렇게 충성했는데, 이것도 하나 안 해줍니까? 참 너무하시다" 라고 하면 응답이 된다고 하는 것이 청교도주의라는 겁니다.

◈ 두 번째로, '목적' !!

그 다음에 '목적' 이라는 뭐냐 하면, 이거는 철학적입니다. 종교적이라기보다는 철학적이에요. 이것은 보통 철학자들이나 공부를 조금 한 사람이 아는 것인데, 즉 "세상의 모든 것은 다 목적이 있다" 라는 겁니다. 목적이 없는 세상이 없는데, 즉 신께서는 목적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 내가 목적이 있으니, 당연히 신도 목적이 !!

여기에 대해서 "누가 그런 이야기를 하던데? 신을 만나봤어?" 라고 하면, "그건 아니지만, 신이 만들었다는 인간이 목적을 갖고 있으니까, 신도 목적을 갖고 있는 게 당연하지" 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목적이라는 게 있다는 말이죠. 그러니 아까 1번과 2번은 사실 똑같아요. 그런데 그 목적은 백이면 백 모두 다르다는 말이죠. 다 다르거든요.

예를 들어서, 이번 2008년 대통령은 이명박이 되는 게 신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전라도 사람들은 정동영이 되는 줄 알고 정동영에게 몰표를 보냈어요. 신의 목적이 거기 있는 줄 알고 말이죠. 그런데 하필 그 뒤에 폭설이 내려서 전라도를 덮어버렸는데, 일 미터 이상이 내려서 덮어버렸어요. 그러면 "그게 신의 응답이 아니다. 정동영이 아니었다" 라고 해석할 수가 있다는 겁니다. 방금 제가 한 방식대로 이명박 쪽에서 해석을 한다면 말이죠.

그러니까 사람이 존재하는 자체가 목적이 없는 게 없어요. 그래서 어떤 사람은 신이 자기 목적대로 안 해 준다고, 즉 수능점수가 안 나왔다고 뛰어내려 죽고, 그것도 쌍둥이 자매가 말이죠. 28살 먹은 청년이 사법고시에 세 번 떨어졌다고, 이번에 사법고시가 된 여자는 서른 살에 일곱 번을 떨어지고 합격을 했는데, 자기는 세 번을 떨어졌다고 자살해버린 거예요. 네 번이나 남았는데 말이죠. 그러면 사법고시에 세 번 떨어진 사람은 다 죽어야 됩니까?

◈ 인간과 신은 쌍둥이 !!

사람마다 신의 모습이 그렇게 다 달라요. 그것은 뭐냐 하면, 신이라는 것은 마치 쌍둥이처럼, 자기가 배가 불러서 자기가 잉태한 신이라는 겁니다. 자기가 만들고 자기가 낳은 신이죠. 구약에서 우상숭배라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우상숭배의 특징은 반드시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앞에 반드시 뭐를 하나 붙어요. '나를 위하여' 라고 말이죠. 그렇게 자기를 위하고, 그 뒤에 더하기 신이 나오면, 그 신은 반드시 우상이에요.

왜 그러냐 하면, 진짜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천국과 보이지 않는 지옥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혼자서 부지런히 지금 전쟁을 벌이고 있는데, 그런데 사람들은 천국도 모르고 지옥도 모르면서 안다고 하는 겁니다. 여호와께서 전쟁하는 그 취지도 모르면서 그냥 안다는 겁니다.

그렇게 자기가 안다고 하면서 자기가 일방적으로 천국과 지옥을 모두 만들어놓는다는 겁니다. 물론 거기 신은 자기가 만든 개별적인 신이고 말이죠. 이것은 뭐냐 하면, 결국은 자기를 위한 것은 반드시 우상이고 가짜 신이라는 겁니다. 자기를 위한 가짜 신, 그렇다는 말이죠.

◈ 세 번째로, '기질(성격)' !!

세 번째는 뭐냐 하면, "누구든지 나를 건드리는 놈은 못 참는다. 신께서 대신 갚아주기를 원합니다" 라는 거예요. 자기 돈을 떼먹는다든지 자기에게 해코지하는 놈은 반드시 복수를 하는데, 복수할 여력이 없으면 신에게 우회적으로 호소해서, 그 신이 자기를 대신해서 자기한테 해코지를 한 인간은 아주 저주를 받도록 조치하는, 바로 그러한 기질을, 성격을 가지고 우리는 매일같이 교회에 나옵니다. 즉 종교생활을 하는 거예요.

◈ 하나님, 복수해주세요 !!

그래서 목사님들이 교인이 하나 왔다고 하면, 특히 새벽기도를 하는데, 그동안 나오지 않다가 왔다는 겁니다. 그런데 인상이 험하면 "집에 무슨 일이 터졌구나. 일주일 나오다가 안 나오겠네" 라고 하는데, 과연 안 나와요. 문제가 해결이 됐거든요. 그러니 전부가 자기를 위한 신이에요. 말씀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고, 그건 말도 안 되고, 다 자기한테 관심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말씀이 관심이 있는 것처럼 하는 것은 뭐냐 하면, 자기한테 무슨 일이 벌어졌을 때, 자기 힘으로 안 될 때는, 아까 청교도는 뭐라고 했습니까? 뭔가 생색을 내지요. "주여, 말씀 보나이다. 그동안 성경을 못 봤는데 이제는 부지런히 봅니다" 라고 하는데, "어, 해결이 됐구나. 미쳤다고 성경을 보나. 해결이 됐는데 뭣땜시 보노" 라고 하면서 안 보지요. 이것이 청교도적인 습성이 나와서 그런 거예요. 그러니 전부가 다 '나를 위하여' 라는 겁니다.

그러니 이러한 종교성이, 제가 아까 사르트를 이야기하면서 이미 인간은 대자존재, 즉 '나' 라는 것은 모르고 자기가 상상한 '나'를 저만치 세워놓고는, 자기는 여기에 있고, 저쪽에 결핍을 채우려고 다가서려고 하는, 그런 식으로 태어난 게 인간인 이상, 하나님도 어떠하다는 말입니까? 결국 진짜 하나님도 항상 우리한테는 감추어진,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일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런 우상조차도, 이게 고정된 것이 아니고, 한 5년을 믿으면 수정하고 또 5년을 믿으면 업그레이드하고, 그렇게 386에서 586으로 자꾸만 하나님을 수정해요. 신학도 수정하고 말이죠. 처음에는 예수님의 십자가 피만이 구원한다고 하다가, 나중에 목회를 10년을 하다가 안 되니까, "피만 가지고 안 되더라. 딴 걸 보태야 한다" 라고 나온다는 말입니다.

◈ 피 주세요 !!

저에게 하나의 계획이 있다면, 올해는 책을 하나 쓸려고 해요. 제목을 한 자로 정했는데, 그게 뭐냐 하면 바로 '피' 라는 겁니다. 제목이 단 한 글자예요. 그러니 그 책을 구입하려고 하면 서점에 가서 "피 주세요" 라고 하면 된다는 말입니다. 물론 그렇게 해서 살 사람은 없겠지만 말이죠(ㅋㅋ).

아무튼 제목을 한 글자로 '피'로 정했어요.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전쟁에서 승리하실 때에 그 승리의 모체가 되는 유일한 근거는 어린양의 피 밖에 없기 때문에 말이죠. 그게 요한계시록에 보면 나와요. 피가 없이는 천국도 지옥도 감추어졌다는 겁니다.

◈ 흠 없는 어린양의 피만이 !!

예수님의 피가 고마운 것은, 이게 우리 자신의 피가 아니라는 것이 고맙죠. 물론 우리 피는 아깝다는 겁니다. 피를 바치려면 라면을 몇 개나 먹어야 하는지 모르는데 말이죠. 그런데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이, 놀랍게도 우리의 피가 아니고 예수님의 본인 피라는 겁니다.

왜 예수님의 피인고 하니, 그것이 흠이 없거든요. 반드시 흠 없는 피가 되어야만 해요. 우리의 피는 한 드럼을 바쳐도 구원을 못 받습니다. 문이 안 열려요. 이 문은 희한한 문이에요. 깨끗한 피만 열리게 되어있지, 우리 피가 가서 "열려라 참깨" 라고 하면서 백 날 문을 두드려도 안 열립니다. 영원한 문은 열리질 않아요. 오직 피로만 열립니다. 어린양의 피만 가면 자동문인데, 곧장 열립니다.

◈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

서론은 대충 이 정도로 하고 이제 성경으로 들어가겠는데, 성경이 어려운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구약성경에서는 여호와께서 전쟁에서 승리하시는데, 그것을 누구를 상대로 했느냐 하면, 이것이 어려우니 초반에는 천천히 해보겠습니다. 질문과 답변을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사람은 사람입니까? 사람이 아닙니까? 분명히 사람이 맞지요. 그러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누구를 위해서 삽니까? 사람이니까 당연히 자기를 위해서 살지요. 그런데 그 신은 누구를 위한 신입니까? 당연히 자기를 위한 신이지요. 하지만 이것과 같은 것이 뭐냐 하면, 그게 곧 우상이지요. 자기를 위한 것이니 말이죠.

◈ 언약이 뒤집어 씌어진 이스라엘 !!

그런데 이스라엘이 다행스런 것은, 이렇게 이스라엘 사람들, 이런 인간들을 몇 십만 명을 모아놓고, 이들 껍데기에게 무슨 껍데기를 씌워 놓았느냐 하면, 나중에 신약성경에 와서 구체적으로 그 실체가 드러나야 될 그림자와 같은 구조, 그게 하나님의 언약 구조인데, 그 언약으로 만든 구조를 이런 자기 밖에 모르는 인간들에게 강제로 뒤집어 씌워버렸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강제로 자기들에게 뒤집어 씌어진 언약의 명령들, 말씀들, 규례들, 이것들을 가지고 무엇으로 변경을 시키겠습니까? 원래 진짜 하나님의 언약은 그 실체가 뭐예요? 신약의 뭡니까?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 즉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이죠.

그런데 이스라엘은 무엇 밖에 모릅니까? 자기 밖에 모르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그 말씀들을 통해서 저 멀리 메시아의 고난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은 전혀 없고, 그 말씀들이 종교적인 어떤 신기한 그런 법칙들인 줄 알고 곡해해서 모두 자기를 위해서 적용시키는 거예요.

"일 년에 세 번씩 올라가라. 유월절, 맥추절, 수장절을 지켜라" 라고 하면, "예, 지키겠습니다. 지키면 복을 주시죠? 그러면 모든 명령과 규례들을 우리가 마음을 다하여 정성을 다하여 지키겠습니다" 라고 하는 겁니다. 하지만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백 날을 다해도, 그건 자기 마음이죠. 자기 마음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한다는 말입니다.

◈ 하나님, 당신이 책임지소 !!

가나안 땅,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장대와 같은 사람들이 완전무장을 하고서 "감히 어디를 넘봐" 라고 하고 있으니, 그것을 정탐하고 온 사람들의 소식을 듣고 온 나라가 대성통곡을 합니다.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고 가도 오도 못한다. 책임져라" 라고 하면서 대성통곡을 하면서 울지요. 사사기에도 그게 나옵니다. 하나님의 언약대로 한다니까, 백성들이 대성통곡을 하는 겁니다.

오늘날은 어떤 경우에 대성통곡을 하느냐 하면, 목사가 "이제부터 저는 세상의 물질적인 축복설교는 하지 않고 예수의 피만 증거합니다" 라고 하면, 그 소리를 듣고 교인들이 대성통곡을 합니다. "우리가 이 교회를 세운다고 집 바치고, 논 바치고 했는데, 왜 목사님은 이제 와서 우리를 배신 때리십니까? 기도해서 얼마나 많은 복을 받았는데, 이제 와서 예수님의 피란 말입니까? 그렇게 하려면 나가세요" 라고 하는 것과 똑같은 거예요.

◈ 예수님은 나에게 타인이 아닌가?

알다시피 하나님이 주신 모든 율법의 완성은 십자가에서 율법을 모두 이루었다는데, 그래서 율법은 십자가와 반드시 연관시켜야 되는데 말이다. 하지만 이 십자가라고 하는 것은 누구입니까? 우리 자신이 아니에요. 누구입니까? 우리 자신이 아닌 예수님이죠. 그러니까 "나에게는 타인인데, 타인이니까 내가 아니다" 라는 말이에요.

무슨 말인고 하니, "나는 내가 잘 되라고 하나님과 관계를 하는데, 그런데 하나님의 모든 법은 내가 잘 되는 게 아니다" 라는 겁니다. 그러면 뭡니까? "내가 아닌 예수님이 잘 되면, 즉 예수님이 전쟁에 승리하면 예수님과 함께 있는 사람은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라고 해서 천국에 가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에 간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계획인데, 그런데 사람들은 어떻게 나옵니까? 예수님이라는 타인을 향해 모든 말씀이 주어졌다는 것을 모르고, 사람들은 이것을 중간에서 인터셉트를, 즉 가로채기를 해서 자기의 포부와 욕망을 달성하는 용도로서만 자꾸 사용하려는 거예요.

◈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에 보면 뭐가 있는고 하면,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라는 곡이 있는데, 그 노래를 부르면 얼굴이 화끈거리고 부끄럽지 않느냐는 겁니다. 그 내용을 살려보면,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명예와 바꿀 수 없네" 라고, 즉 "주 예수라면 나는 뭐가 되도 괜찮아요" 라는 내용이거든요.

이것을 청교도적으로 하면 어떻게 돼요? "내가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라고 찬송을 불렀기 때문에, 복의 부스러기라도 좀 주세요" 라고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주님한테 가는 것 같은데, 화살이 가다가도 그 근처에서 맛만 보이고 한 20센티를 남겨두고 휙 돌아서 그만 다시 자기에게로 와버려요.

그러니 예수님이 종착점이 아니라, 예수님을 한 번 걸쳐서 오는 거예요. "예수님의 피가 전부다" 라고 하면 되는데, "예수의 피가 전부가 아니고, 그 다음에 우리가 잘 해야 돼" 라고, 이상하게 예수님의 피 이후에, 그걸 가지고 '구원 그 이후' 라고 합니다. 무슨 구원 그 이후가 다 있습니까? 그런 사람들은 예수의 피 이후에 남는 게 뭐예요? 그 다음에 공동체를 하고 있어요.

◈ 사르트르의 '집합'과 '집단' !!

사르트르는 두 가지로 보았습니다. '집합'과 '집단'으로, 그렇게 무리를 둘로 나누었어요. '집합' 이라는 것은 뭐냐 하면, 그 구성원을 바꿔치기 해도 아무 일도 없는 겁니다. 예를 들면, 318번 버스를 탈 때 버스 정거장에 혼자 서있는 게 아니죠. 옆에 어떤 아주머니도 서있단 말이죠. 왜 서있습니까? 318번을 타려고 말이죠. 아줌마 아저씨가 다 318번인데, 그러니 일시적으로 버스라는 제3자의 개입으로 여기에 모인 사람은 318번 타려고 같이 모였지요. 이걸 '집합' 이라고 하는 겁니다.

◈ 집합은, 개개인의 개성과 자존심은 인정되지 않아 !!

그러니 집합은 '나'의 개성, '나'의 자존심과 같은 것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318번이 와버리면 '내'가 잠시 어디 한 눈을 팔다간 그냥 버스가 가버려요. 즉 '나'를 인정해주지 않아요.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들어가도 그 버스는 아무 일도 없습니다. 그러니 집합의 개념은 무슨 뜻이냐 하면, '나'의 가치는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우연적으로 그냥 모여든 것이에요.

그런 집합이 있는데, 그런데 그 집합을 통해서 자기 가치가 일어나지 않으니까, 그 다음에는 집합을 뭐로 바꾸느냐 하면, 집단으로 바꾸어 버려요. 이것이 굉장히 위험해요. 집합은 '나'와 상관이 없는데, 그냥 우연히 모였다는 게 집합인데 말이죠. 그래서 "십자가 마을이 집합이냐? 집단이냐?" 라고 하면, 아주 모호하다는 겁니다.

◈ 그런데, 집단의 경우에는 !!

집단일 경우에는, 유아발달논리에 보면 그게 나와요. 청소년기에는 가정에서 이루지 못한 것, 즉 자기 자유를 발휘하지 못할 때 어떤 특정 단체를 자기와 동일시하는 시기예요. 만약 서울대학에 가고 싶으면 서울대학 전체를 자기와 동일시해서, 그걸 목표로 해서 공부한다든지 말이죠.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말이죠. 동방신기의 팬이라면 동방신기와 동일시하는 거예요.

이렇게 할 때는 거기에는 뭐가 있는고 하니, 이데올로기가, 그때는 똑같이, 그걸 '공통통념' 이라고 하는데, 어려운 말이 많이 나오지요. 사람들은 분명히 개개인인데 똑같은 현상들이 일어나요. 예수님을 같이 믿게 되면 주님의 사랑이 일어나는 것처럼, 그런 공통개념이라는 게 생겨나요. 그런 공통개념의 작용을 동일시해요. 같이 본다는 겁니다.

나이가 든 사람들은 동방신기를 별로 안 좋아하잖아요. 나이가 사십이나 오십이 되면 동방신기라고 하면 동쪽에서 온 중 정도로 생각하거든요(ㅋㅋ). 그런데 그 동방신기를 욕해 보세요. 아이들이 화를 내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동방신기를 자기와 동일시했기 때문에 말이죠. 그게 어릴 때의 청소년기라고 했는데, 사실은 그것은 아니에요. 어른이 되면 그것이 숨어 들어갑니다. 숨어 들어갔다가 언제 나오는고 하니, 나이가 칠십이 넘어서 치매에 걸릴 때 나온다는 겁니다.

◈ 우리 아버지가 저런 인간이었던가?

사람의 의식은 단층으로 돼있어서 한번 들어온 것은 없어지지 않아요. 밑에 계속해서 쌓입니다. 그게 현상학의 시간론에 보면 나오는데, 계속 밑에 차곡차곡 쌓여있다가 이게 언제 나오는고 하니, 나이가 칠십, 팔십이 되어서 똥 싸고 오줌 쌀 때, 그때 다 나와요. 더러워 못 봅니다.

똥오줌이 더럽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아버지가 저런 인간이었던가?" 라고 하는, 그게 더러워 못 본다는 겁니다. 그러니 아주 원초적인 즉자존재인데, 이왕 배운 것이니 다 써먹읍시다. 즉자존재, 즉 돌멩이와 같다는 말이죠. 그렇게 되기 전에 죽어야 복인데, 그게 안 되면 미리 알리안츠 보험에 들든지 해서 간병인을 구해서 자식들과는 멀리 뚝 떨어져서 살아야 하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만 같이 모인 것을 방금 뭐라고 했습니까? 그게 집합이라고 했는데, 방금 배운 것이니 써먹어야지요. 연세노인병동, 그런 것이 집합이에요. 몇 명이 죽어나가도 아무런 일도 없어요. 애 태우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냥 318번 버스를 타는 것과 똑같다는 말입니다.

제가 한번은 치매에 걸린 사람들이 있는 병원을 가보니까, 삼십 명이 쭉 누워 있어요. 중간에 조선족 간병인만 왔다갔다합니다. 거기서 얼마나 은혜를 받았는지 모르는데, "이게 바로 내 모습이구나" 라고 하면서 말이죠. 아무런 감각도 없어요. 그냥 완전히 뇌사 상태에 빠진 것 같아요. 그냥 가만히 누워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노인들이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 점검하려면 쉬워요. 그게 뭐냐하면, 욕을 해보면 됩니다. 바로 반응이 오는데, 그러면 "아하, 살아있구나" 라는 겁니다. 연세가 많은 노인들이 평소에는 어린양처럼 보이지만, 대놓고 한번 싫은 소리를 하면, 벌컥 성질이 나와요. 그러면 "아하, 아직까지 오래 더 사시겠다" 라고 여기면 되는 겁니다.

그러니 사람이 살아있다고 하는 것은 얼마 안 되어서 돌멩이, 즉 즉자존재로 한번에 가버리죠. 이게 나중에 어떻게 되는고 하니, 내일 할 시편에 보면 다 나옵니다. 왜 여호와께서 홀로 전쟁하시고, 홀로 승리해야 되는지, 그 이유가 다 나온다는 말입니다.

◈ 집단과 동일시하면 개인은 없어지는가?

집단이 될 경우에, 그러면 그 집단과 동일시하면 개인은 없어집니까? 여기서 감히 제가 이야기합니다. 집단이 된다고 할지라도 놀라운 사실은, 계속해서 자기 이상을 그 집단이 들어주는 조건하에 가입이 되는 것이지, 들어주지 않으면 얼마든지 탈퇴를 하든지 해서 다른 집단을 구성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유라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집합에서 집단으로 갔다가, 또 다른 집단으로 가고, 또 다른 집단으로 계속 가는 거예요. 이 교회에 갔다가 저 교회에 갔다가, 또 집에 모였다가 집에서 하는 게 심심하면 다른 곳에서 모였다가, 그렇게 돌아다니는 거예요. 그것도 시편에 나옵니다.

아까 개인주의와 공동체 운동에 대해서 언급했는데, 물론 이러한 것을 동일성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나중에는 어떻게 됩니까? 또 다시 허무하게 그 공동체 때문에 상처를 받고 가슴앓이를 하는 일들이 벌어지거든요. 이제 조금만 더 하고 마치겠습니다.

◈ 지금까지 한 것을 정리해보면 !!

지금까지 한 것을 정돈해보면 이렇습니다.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구약에서 사람이란 것은 하나님께서 언약으로 강제로 뒤집어씌웠다고 했지요. 그렇게 뒤집어씌워도 이 사람들은 곧장 오해합니다. "아하, 나를 위해서" 라고 말이죠. 여기서 뭐가 나온다고 했습니까? 예정론이 나오고, 그 다음에는 뭡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민족이다" 라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신약에서 뭐라고 했던가요? "아브라함의 후손인 너희들은 천국의 본 자손은 쫓겨나고, 이방인들이 천국에 간다. 너희들은 천국에서 쫓겨나서 이를 갈고 울고 있을 것이다" 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신 원래의 뜻이 아니다" 라는, 그런 의미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남은 시간은 신약에서 어떻게 완성되는지, 그것을 먼저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왜냐하면 시편은 구약이기 때문에, 시편만 해버리면 절망할 수가 있어요. "아, 시편을 했는데도 안 돼, 안 되네. 끝이야" 라고 하면서 말이죠.

◈ 낯선 분이 왔어요 !!

신약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낯선 분이 왔다는 겁니다. 이렇게 낯선 분이 왔는데, 그런데 오늘날 소위 교인들, 신자들, 또는 성도라고 할 수도까지 있는데, 자꾸 어떤 의심이 드는고 하면, "우리가 하는 게 헛짓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자꾸 들 거예요. 왜냐하면, 뭔가 복음을 이야기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말이죠. 전에는 한 서너 명이 되었는데, 이젠 서너 명은커녕 아무도 없는 거예요.

이전에는 복음에 관심이 없다고 탄식했는데, 요즘은 아예 말씀 자체에 관심이 없는 세대라는 겁니다. 말씀을 봐야 "이게 복음이거든" 라고 할텐데, 말씀 자체에도 관심이 없다는 겁니다. 조금 더 나가면, 아예 교회를 안 다니겠죠. 누구하고 이야기할 때는 소통을 해야되는데, 그 관심사가 이미 교회, 말씀, 복음으로부터는 이미 여기서부터 점점 더 멀어져 가는 거예요. 그렇게 멀어져가니까, 뭔가 이야기를 끄집어낼 바탕조차도 전혀 용납이 안 되는 겁니다.

그럴 경우에 그 다음에 무슨 문제냐 하면, 처음에는 "이 믿음도 없는 놈아, 세상에 믿음이 있는 자를 보겠느냐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맞구나" 라고 하다가, 그렇게 나가다가 나중에는 뭐냐 하면 "내가 혼자서 지금 착각하고 있는 게 아냐? 인간 문화재도 아니고 말이야" 라고 하게 된다는 겁니다.

진짜 인간 문화재라고 하면 나라에서 월급도 나오고 보상금이라도 나오는데, 그런데 이게 무엇이냐는 말이죠. 아무도 안 하는데, 요새 누가 갓을 만듭니까? 안 만들거든요.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그 말씀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마치 그와 같다는 말입니다.

◈ 신약성경 자체가 곧 십자가의 피 흘림

그때 신약성경 자체가 어떻게 보느냐 하면, 신약성경 자체는 곧 십자가의 피 흘림인데, 그 십자가에서 더 나가봅시다. 십자가뿐만 아니고 십자가에서 더 나가서, 이 십자가 피로 말미암아, 십자가에서 피를 흘린 게 확실하다면, 마태복음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틀림이 없다고, 그렇게 나오는 겁니다. 신약성경 전체가 그래요.

그러니까 "마태복음은 싫다. 요한계시록도 엉터리다. 착각이다. 베드로전서는 옛날 구닥다리다. 모두 삭제하자. 말해도 먹어주지도 않고, 들으려고 하지도 않으니까" 라고 할 때, 그런 회의가 들 때, 남이 아니라 이제는 본인한테, 심지어 복음을 전하고 있는 목사한데도 이런 것이 마치 안개처럼, 방역차가 모기약을 뿌리듯이, 그렇게 뿌옇게 와서는 마음을 낮추게 하신다는 말이죠.

그러니 우리는 매일같이 "차라리 문화활동을 하는 게 더 낫지. 예수 피, 그것보다도 아이들 영어 놀이방이 훨씬 더 돈이 되는 일인데 말이야. 괜히 예수 피를 말해서, 듣지도 않는데 더 이상 무엇을 하겠는가?" 라는 의심이 들거든요. 그렇지요?

◈ 부활이 아닌, 십자가의 '피' !!

그런데 신약성경에는 그 하늘과 땅의 접촉점, 그리고 복음과 죄악 된 세상의 접촉점을 줬어요. 그것이 뭐냐 하면, 부활은 안 보이니까 말할 것도 없고, 이야기해봐야 소용없는 것이고, 오직 뭐냐 하면, 사도바울이 이야기한 십자가가 눈앞에 보인다는 말이죠. 그리고 이것이 히브리서에 가면 십자가에서 더 나가는데, "바로 피다" 라는 말이죠. 즉 "예수님이 피를 흘렸다" 라고 나온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부활의 세계는 어디에 있습니까? 십자가 안 쪽에 있어요. 십자가를 들어가야만 비로소 아는 세계가 곧 부활의 세계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뭐냐 하면, 소위 종교라 하면, 이 종교에서는 십자가는 안 보이고, 십자가는 영 구미에 안 당기는 겁니다.

하지만 부활의 세계, 즉 "비록 내가 흙이지만 다시 천사와 같이 된다" 라는 그 부활의 세계가 너무나 탐이 나서, 그걸 그냥 상상해서 만들어서 부활 세계만 쳐다보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출입처가 없는데, 그 출입처는 안 좋아하죠. 즉 십자가의 피는 안 좋아는 거예요. 하지만 부활은 좋은 거예요. 부활의 세계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자기 착각이죠. 십자가를 통과해서 부활에 들어가게 되면, 이 부활의 세계는 뭐냐 하면, "나는 구원받지 않아도 될 사람인데, 하나님께서 공짜로 은혜로 나로 하여금 영생을 주었구나" 라고 해서, 모든 공로를 십자가 지신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반면에,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고 부활의 세계에 들어가면 "나, 천국에 가서 뭐 할꼬?" 라고 나오는데, 즉 예수님이 등장하지 않아요.

"만약 우리 엄마가 천국에 안 오면 나는 천국에 가서도 마음이 안 편할 건데, 그땐 천국 생활이 지옥 생활인지 혼동되지 싶다. 그리고 내가 제일 사랑하는 아내가 만약에 지옥에 가있다면, 내 가슴아 너무 아플 건데, 차라리 아내와 함께 지옥생활을 하는 게 낫지. 나 혼자 뚝 떨어져 천국에 가면 뭐하노?" 라는 것이죠.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지금 출입구를 엉뚱한 곳으로 들어가서 엉뚱한 자기만의 상상의 세계를 펼치다보니까,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고 부활을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벌어지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요. 굉장히 많은 게 아니라 거의 대다수라 할 수 있습니다.

◈ 십자가가 눈앞에 보이거늘 !!

그래서 사도바울은 말하기를 "십자가가 눈앞에 보인다. 십자가에 대해서 네가 아는 게 있는가? 십자가가 좋으냐? 예수님의 죽으심의 의미를 아느냐?" 라는 식으로 계속 들이대죠. 왜냐하면, 가짜 부활세계를 그리워하면서 교회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말이죠.

여기에 대해서 "그럼 목사님, 사전에 조사해서 쫓아내야 됩니까?" 라고 한다면,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제도 그런 이야기했습니다만, 어떤 경우든 자리에 앉게 된 것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제가 목사로서 "나가라, 마라" 라고 할 수 없습니다. 다만 목사가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일단 오신 분들은 성도라고 치고, "성도라면 십자가 통과하는 것을 매일같이 좋아합니다" 라고 전할뿐이죠.

왜냐하면, 이 세상이 자기가 아무 것도 아닐 때 주어진, 모든 것이 공짜로 주신 선물로서 그 기쁨이 크거든요. 자기가 뭘 가져야 된다고 생각할 때는 뭘 줘도 별로 안 기쁘죠. 그런데 자기가 이런 고난도 가질 필요 없고, 자기가 죄인이라는 걸 알 때, 그 모든 일어난 일들이 다 하나님께서 십자가 공로로 주었다는 것을 아는 기쁨이 있다는 말이죠. 쉽게 말해서, 망해야 기쁩니다. 얼마나 깊이 망하느냐에 따라서 얼마나 깊이 기쁘냐가 나옵니다. 덜 망하면 덜 기쁘고, 많이 망하면 많이 기뻐요.

◈ 예수님 쪽으로 시편 전체가 우르르 !!

이런 입장이 신약이기 때문에, 이제는 우리가 시편을 하면서, 시편으로 하여금 시편 안에 우리가 들어가게 되면, 주님이 주신 방향성이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목적성이 아닌 방향성이 끌고 가는데, 어디로 끌고 가느냐 하면, 그것은 곧 우리 자신이 아닌 예수님 쪽으로 시편 전체가 우르르 끌고 갑니다.

이 한 마디만 더하고 마치겠습니다. 그렇게 끌고 갈 때 기존의 시편은, 그게 모두 150편이죠. 맞지요? 시편 150편을 나누어서 보통 해석을 했어요. "12편은 다윗이 사울에게 쫓길 때 사울이 어떻게 했다" 라는 식으로 말이죠. 이렇게 해석해왔는데, 저는 이것을 나누는 것을 철폐해버리고 시편 150편 전체를 한 책으로 보자는 겁니다.

왜냐하면, 시편 150편을 다 읽어보면 어느 부분이라도, 우리가 여기에 있으면 이게 모두 다 개미예요. 시편 15편 개미, 17편 개미, 2편 개미, 1편 개미가 우리에게 달라붙어서 우르르 떠밉니다. 그렇게 떠밀어서 어디까지 가는고 하니, 십자가를 똑바로 보라고 십자가까지 데려가는 거예요. 이게 말이죠.

그래서 나중에 시편 끝에 보면 뭐라 하느냐 하면, '새 노래'가 나오거든요. 새 노래가 나오려고 하면, 즉 헌 인간의 입에서 새 노래가 나오려고 하면, 개미한테 뜯겨 먹혀야 돼요. 모두 다 뜯겨야만 돼요. 엄청나게 뜯겨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시편을 공부하면서 모두 다 뜯기시기를 바랍니다. 뜯겨먹고, 뜯겨먹고 우리 것이라는 것이 없어야 하는 겁니다. "내 것이랄 게 전혀 없어. 이건 내 것이라고 할 게 남아있지를 않아. 다 뜯어 먹혀서 아무 것도 없어" 라고 말이죠.

◈ 뜯기고 뜯기고 !!

그러면 다 뜯어 먹힌 채로 어디 갑니까? 좀 엽기적입니다만 우리의 피부 하나 세포 하나가 다 뜯어 먹히면서 어디로 들어가는고 하니, 시편이라는 개미 속에 들어가죠. 시편 23편 개미 속에 우리 살이 한 점이 뜯겨 들어가죠. 그러면 시편 23편이 가만있는 것이 아니고, 어디로 갑니까? 하나님의 성실하심에 의해서, 이게 시편 주제입니다. 시편 주제는 '주의 성실하심' 이라는 말이죠. 주님의 성실하심에 의해서 말씀대로 오고 가고 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도다" 라는 말씀이 이미 우리를 뜯어먹으니까, 우리 자신은 시편 23편과 무관한 사람이 아니고, 천날 만날 이제 시편 23편만을 고대해야 될 처지로 바뀐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 살점이 거기 들어앉아 있으니까 말이죠. 시편 23편을, 우리가 이 말씀을 이룬 게 아니고, 시편 23편을 주님의 성실하심이 이루어서, 우리를 오늘날 십자가 속으로 데리고 가신다는 말입니다.

그 작업은 다음 시간에 합시다.

2013,4,9 재정리함 - 녹취 '구'

첨부파일 : 08십자가마을겨울수련회(시편)(강의정리)(총10강)--재정리.zip (610.8K), Down:32

구득영(IP:203.♡.97.152)

13-04-16 23:08

요즘 가게에 손님이 없어서 다시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감사, 감사, 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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