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20130328b-마13장31절(겨자씨 비유)38강-이 근호 목사
대전20130328b-마13장31절(겨자씨 비유)38강-이 근호 목사
이름 : 공은주(IP:61.100.205.105)
대전20130328b-마13장31절(겨자씨 비유)38강-이 근호 목사
어렵다는 말 이외 달리 할 말이 없어요. 두 번째 시간입니다. 마태복음13장31~32절입니다.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이 말씀 왜 합니까? 이 말씀은 우리가 원했던 말씀이 아니지요. 주님이 일방적으로 주님하고 지금 찻집에 앉아가지고 커피한 잔 해놓고 일방적으로 이야기한다 말입니다. 이걸 우리가 요구했습니까? 주님의 하늘나라는 겨자씨 한 알이 모든 씨보다 작을 것을 요구했습니까? 없지요. 일방적으로 이야기하지요. 그러면 이 말씀을 마태복음 13장에 가서 처음에 한 것이 천국의 비유다 말이지요. 그러면 이 말하는 것은 결국은 무슨 말을 하느냐 하면, 이미 우리가 뭘 상정하고 뭘 짐작하고 있습니까?
우리 쪽에서 내세우는 천국 관, 천국은 이러해야 천국이라는 것을 이미 갖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겁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이 나타나셨잖아요. 예수님은 원래 하늘에 사셨던 분입니다. 이게 요한복음8장과 3장에 나와요. 나는 위에서 났고 너희는 땅에서 났다. 분명히 이야기했잖아요. 위에서 났기 때문에 너희들은 아무리 죽었다 깨어나도 내 말을 알아듣는다? 못 알아듣는다? 못 알아듣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너희들은 내 말을 못 알아듣는다. 해놓고 난 뒤에 성령이 오게 되면 알아듣는다, 했잖아요. 그러면 성령을 빼버리면 뭡니까? 내 말을 알아듣는다? 못 알아듣는다? 못 알아듣는다, 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이야기하신 거예요. 이미 너희들은 나름대로 천국 관을 갖고 있다. 하지만, 내가 이제 이야기할 텐데 이미 갖고 있는 그것이 내가 말하는 천국 관을 못 알아듣도록 만드는 힘이 작용한다. 이 말이에요. 그러니 대충 해석을 얽어먹을 생각하지 마세요. 아주 잘라 버려야 돼요. 도저히 못 알아듣겠다는 말이 고백으로 나와야 정상입니다.
마태복음13장 초반에 봅시다. 14절에 보면, 이사야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했지요. 이사야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되, 지금 여러분도 보고 저도 봤습니다. 이 예언이 이루어집니까? 안 이루어집니까? 이루어지지요. 그 다음 봅시다. 너희는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 할 것이요, 라는 말이 이루어집니까? 안 이루어집니까? 이루어져야 되지요. 그러면 이루어지기 위해서 우리는 듣기는 들어도 깨달아야 돼요? 못 깨달아야 돼요? 못 깨달아야 되지요. 간단한 이야기에요. 그러면 우리가 마지막 고백할 것은 “저는 깨닫지 못했습니다.”를 깨달을 수밖에 없지요. 제가 지금 말장난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뭐라고 이야기해도 저는 못 알아듣겠습니다.” 라고 한 사람이 그게 바로 이사야 말씀이 덮친 사람이에요.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그 가운데 예수님의 십자가라 하는 게 뭐냐 하면, 사도 바울이 십자가는 어리석다고 이야기했지요. 성령을 통해서 십자가가 등장할 때는 항상 우리 앞에는 뭐로 비쳐야 합니까? 어리석음으로 보이지요. 어리석은 것을 우리가 극복해버리면 우리는 어리석지 않고 우리는 똑똑해 버려요. 그러면 십자가는 안 어리석은 게 돼버려요. 똑똑해서 구원받을 거 같으면, 니만 똑똑하나 니가 똑똑해서 구원받을 거 같으면 내가 니보다 공부를 못했어, 니보다 대학이 떨어져, 니 똑똑하면 나도 똑똑한 거예요. 여러분, 사법고시 힘듭니다. 두꺼운 책을 20권 봐야 되지요. 하지만 아무리 어렵지만 된 사람들 있잖아요. 변호사들, 검사들. 그러면 노력하게 되고 머리 똑똑하면 이건 어렵지만, 할 수 있어요. 주님의 천국 가는 사람은 뭐냐, 어렵게 간 사람이 아니고 불가능한 사람이에요, 강도, 이 사람은 불가능한 사람이에요.
그러면 그 사람들이 주님께서 천국 갈 사람을 보여 줄 때는 뭡니까? 계속해서 보고 “치~ 불가능한 인간.” 구원에 불가능한 인간을 남겨둔 거예요. 세리와 창녀, 간통하다 현장에서 잡힌 사람. 누가 봐도 돌멩이로 치고 싶어 환장한 사람. 특히 그 중에서 제일 나쁜 사람이 누구냐, 예수님입니다. 예수님보다 더 착한 사람이 누구냐, 가룟 유다입니다. 자기 스승을 팔았다고 돈도 환불했어요. 요새 그런 착한 교회 오빠 없어요. 부동산 구입했잖아요. 땅을 샀으니까. 토기장이 땅을 샀잖아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토기장이 땅 사는 것까지 이미 예레미야에 예언된 거예요. 무슨 수로 말씀에서 벗어납니까? 말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고백해서 구원받고, 말씀에서 벗어나지 못한 주제에 기어이 벗어났다고 우긴 인간이 지옥가고. 둘 다 말씀 벗어나지 못한 건 마찬가진데.
사도행전의 구원 받은 사람의 특징이 뭐냐 하면, ‘예수님은 주시다.’ 성령이 아니고서야 이 말을 누구도 못한다고 고린도전서12장에 나오지요. 성경말씀을 인용하기가 겁나요. 하도 성경을 안보니까. 그런 게 있어요. 그럼 성령이 임하게 되면 너, 나를 보지 않고 뭘 쳐다봐요? “저 사람은 하나님의 발입니다. 나는 손이요.” 이런 사람들은 성령 받은 사람이 아니라 했지요. 성령 받았으면 누굴 봅니까? ‘아, 저 사람도 성령 받았구나, 나도 성령 받았구나, 그럼 저 사람이 허드렛일을 하든지 내가 고귀한 일을 하든지 성령 앞에서는 아무 의미 없지. 저 사람은 목사고 나는 집사고 성령 앞에서는 아무 의미 없지.’ 라고 하면서 뭐만 다 같이 쳐다봐요? 십자가 지신 주님만 바라보지요. 그게 성령의 역사 아닙니까? 그렇지요.
그런데 헤겔은 이야기했습니다. 인간이 타인을 바라보는 것은 타인이 궁금한 게 아니고 저 사람이 볼 때, 내가 어떻게 보이는가? 상대방을 거울용으로 삼아요. 그럼 상대방을 보는 게 아니고 상대방을 알아서 뭐하는데? 친구 알아서 뭐할 거예요? 친구가 나를 어떻게 비추는가에서 고 친구의 마음에 비친 내가 내라고요. 그게 내가 내에요. 그래서 사람들은 거울 없이는 못 살 듯이 사람들은 친구 없이는 못 살아요.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하느냐 하면,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외롭다.’ 집에 강아지 왜 키우는가 하면, 강아지가 내말 잘 들어요. 내 말 잘 들으니까 나는 뭡니까? 강아지 앞에서 주가 되잖아요. 내가 주가 됐다는 그 기분에 외로움을 견딜 수가 있어요.
사람들이 돈이 없어 외로운 게 아니고요, 군에 가나 학교가나 왕따 당하는 것이 제일 힘들어요. 왜냐 하면, 내가 누릴 기회를 그들이 박탈했기 때문에 그래요. 저희들끼리 뭉쳐가지고. 내가 얼마나 잘난 인간인지를 내가 좀 알아보고 싶은데 누가 그걸 이야기해 주는 사람이 없을 때. 치매 걸립니다. 우울증 걸려요. 전에는 남편이 해줬거든요. 남편이 죽고 난 뒤에 누가 해줘요? 다른 사람보고 할머니가 전에 남편에게 하는 식으로 “아이고, 자네. 내가 어때?” 물으면 “내가 할아버지입니까? 바쁜 사람 붙들고 왜 그래요?” 이러거든요. 그러니까 그게 안 되니까 노인정에서 노래 부르고 취해가지고 “나 노래 잘하는 사람 할머니 맞지요?” 라는 확인 받고 싶은 거예요.
드럼 치는 것도, 오토바이 타는 것도,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으니까. 사실은 남이 나를 알아주는 것이 아니고 내가 원하는 이미지만큼 나에게 그 정도로 안 알아주니까 고 폭만큼 짜증이 나는 겁니다. 그걸 가지고 짜증나니까 그걸 내가 알아줄 때, 특히 여자분들 잘 들어보세요. 그걸 가지고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내가 나를 사랑해 주는 것을 남이 해줄 때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하느냐 하면, 내가 사랑하는 남자라고 하는 거예요. 그럼 내가 사랑하는 남자는 유효기간이 언제까지입니까? 내가 나를 사랑하는 만큼 사랑을 안 해줄 때는 그 때는 더 이상 그냥 남자지요. 내 사랑하는 남자가 아니지요. 그러면 그 남자는 왜 헤어지는 줄 알아요? 내가 그 남자를 사랑해주면 내가 만족하면 되는데 점점 더 간이 부어가지고 점점 더 내가 나에 대한 사랑을 집중해서 해요. 머리를 한다든지, 보톡스를 연장한다든지, 내가 내 사랑하는 만족도가 높아가지요. 높아 가면 누가 같이 보조를 맞춰가야 돼요? 내 거울 있잖아요. 내 손거울. 남자친구도 맞춰줘야 되지요. 안 해주면 삐졌어. 이게 무슨 사랑이에요? 일방적이지요.
그래서 천국이라 하는 것은 인간은 항상 내가 주인공이에요. 내가 어느 날 빛이 나고 내가 어느 날 편안히 살고, 천국 하는 것은 항상 먼저 떠올리는 것은 뭐냐 하면, 골프장이에요. 왜 자기가 주인공이니까. 나 샷하고,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아까 첫 시간에 했지요. 인간이 기억하는 것은 과거의 내가 경험한 것들의 조합이지요. 내가 경험하지 않은 것은 내 미래상에 들어갑니까? 안 들어갑니까? 안 들어가지요. 그래서 주님께서는 성령을 보내가지고 무슨 판이 뭉겨지게 합니까? 내가 꿈꾸던 내가 상상한 그 모든 것이 얼마나 현실과 안 맞다, 는 것을 일깨워주는 겁니다.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내가 계획한 거 안 되고, 어떻게 하나같이 세상은 이 대전바닥은 어떻게 내 뜻대로 안 되는 도시냐 말이지요.
다시 이야기할게요. 롯이 소돔과 고모라에 있을 때에 소돔과 고모라가 무너지라고 사전에 지가 소원을 들고 기도한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지요. 왜 없습니까? 자기 딸이 지금 결혼해야 돼요. 요새 딸 가진 사람 부모들 결혼 안 해서 난리잖아요. 사위가 둘이라. 그런 횡재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사위한테 전도한 거예요. 왜 천국은 뭐냐 하면, 사위 없는 천국은 없고, 내 딸을 위해서라도 내 딸을 손거울처럼 사랑해줄 수 있는 사위와 같이 가면 얼마나 좋겠나, 해서 사위를 포함한 그러한 미래상을 생각했는데, 이 도성이 불난다 하니까 사위가 뭐라고 했습니까? 농담을 여겼지요. 롯이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 종교생활이 뭐라고. 천사가 온 게 착할 수 있는 문제인데. 종교생활이 뭐라고. 남들이 얼마나 욕하겠어요? 광신도. 기독교 교리에 미쳐서 사위도 내친 인간을. 청천하늘에 유황불 떨어진다고 그게 성경에 있다고 그걸 바보같이 믿는 이 바보.
옛날에 신화들로 만든 조합으로 만든 이 유물에 불과한 문자로 된, 활자로 된 책인데 그냥 읽고 참고로 하면 그만인데 세상에 이 말씀대로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게 요새 21세기 과학시대에 천치바보가 하는 짓 아닙니까? 얼마나 똑똑한 사람도 많고 돈 버는 시간도 아까운데 이 성경을 미쳤다고 옛날 고서적을 명품 진품에 나올 이 책을 이걸 왜 봐요? 이걸. 이게 돈이 나옵니까? 취직이 됩니까? 무슨 도움 된다고? 몰라, 이거 봐가지고 복 받는다 할 수는 있겠지만. 그러니 롯의 믿음이라 하는 것은요, 베드로후서에 뭐라고 하지요? 롯의 마음이 뭐했다? 상처받은 거예요. 상처 받았어요. 뿔뿔이 다 떨어져. 사위, 마누라까지 뒤돌아봐서 죽었잖아요.
그러니 롯이 믿은 것은 이것은 불가능한 겁니다. 롯이 믿었다. 뭘? 말씀대로 될 것이다, 를 믿은 거예요. 말씀대로 믿는데, 이 말을 이야기하면 인간들은 “제가 말씀대로 깨닫고 있습니다.” 오해할 거라는 거예요. 그것이 오해에 불과하다는 거예요. 그러면 언제까지 오해해야 되느냐, 여러분, 다시 십자가 할게요. 예수님이 십자가 질 때에 제자들의 죄는 여기서 빠집니까? 들어갑니까? 제 질문은 간단해요. 예수님이 십자가 질 때에 제자들의 죄가 빠집니까? 아니면 제자들의 지은 죄도 포함돼 있습니까? 포함돼 있지요. 그러면 제자들이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 본 만큼 분량대로 빠지는 거예요? 그것마저 죄라고 포함되는 겁니까? 포함이 되지요.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렇게 고백했는데 베드로가 나중에 예수님 가까이 있을 때 뭐했지요? 부인했지요. 베드로가 기껏 내세운 게 뭐냐, 하나님이 천국 이야기하니까 제 목숨 바쳐서 따라가겠습니다, 할 때 주님께서 베드로보고 니가 못 온다고 이야기하지요. 인간이 갈 수 없는 곳에 우리를 집어넣으려고 하는 거예요.
인간이 왜 갈수 없을까요? 이건 인간의 상상세계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왜 인간은 상상 못할 세계에 주께서 넣어주려 하면, 인간이 뭘 상상하든 간에 항상 그 주인공은 누가 되는 겁니까? 그 중앙에는? 자기 자신이 주인공이 돼 있습니다. 천국가든 면류관 반납하든 그 모습보고 지가 지한테 사진 찍어요. ‘어우, 세상에 내가 여기 와서 아브라함하고 껴안고 할아버지 믿음의 조상, 오! 예! 아이고, 오래간만입니다. 내가 엘리야 만나면 물어보려고 몇 가지 준비해왔는데...’ 이런 거. 그 모습을 자기가 상상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천국 가서 “이 부자야, 그래 내 보고 가난하다 욕했지. 니는 오지도 못해 이 자슥아” 이 사적인 복수심, 현재 내가 조작할 수 있는 모든 천국은 전부 다 하는데 그 작업을 누가 해주냐 하면, 제자들이 바로 옆에서 했어요. “여보게, 천국가면 우리가 한 자리 차지한다고 하는데 그 중에 누가 높을까?” 라는 이야기를 주님 안 듣는다고 했어요. 그럴 때 주님께서 무서운 이야기했습니다. 죽~이야기해놓고 뭐라고 하는가 하면, 천국 못 간다고 이야기 한 거예요.
마태복음 13장 비유이야기는 천국 못 간다는 이야기를 비유로 한 겁니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하는 말이 “너희가 어린아이 같이 하지 아니하면 천국에 못 간다.” 하는 겁니다. 천국 못 간다 해놓고 가로 엽시다. 이 안에 집어넣읍시다. 우리 보고 집어넣으라 하면 뭘 집어넣는 줄 알아요? 자기는 빼요.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은 빼고, 지는 기어코 갈 사람으로 여기고, 지가 제일 미워하는 사람 짓들 있잖아요. 지 욕한 거. (욕하는 사람)은 천국 못 간다. 제가 얼마 전에 강의할 때 그런 말 했지요. 마음속으로 간음하면 간음죄라 했지요.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했지요. 그런 간음한 사람 어떻게 돼요? 잘라 버려야 되겠지요. 고자 되겠지요.
자, 마음속으로 간음했다고 할 때, 사람들이 생각하기는 뭘로 나누는가 하면, 마음속으로 간음한 것과 실제적으로 간음한 것을 구분할까요? 안 할까요? 구분하지요. 진짜 성령 받으면 구분해야 돼요? 안 해야 돼요? 마음속으로 간음한 것도 무슨 죄다? 간음죄다. 그러면 우리가 그 말씀 듣고 실제적으로 접촉한 것과 그냥 마음속으로 간음한 것과 구분해야 돼요? 안 해야 돼요? 성령 받으면 안 해야 되지요. 안 해야 되는데 구분하는 거예요. 왜? 기어이 지는 신체적으로 간음 안 한사람으로 남기 위해서. 저는 환장할 지경이에요. 구분을 하기 때문에 어떤 목사가 간통을 하면, 욕을 하는 거예요. 목사가 돼가지고. 그것도 못 참고. 세상에 마음속으로 간음한 것을 무엇으로 참습니까? 오른 손이 하면 잘라내면 되지요.
마음속으로 한 것을 무슨 수로 잘라내요. 톱으로 집어넣을까요? 마이크로 칩을 넣어서 지가 알아서 잘라내게 할까요? 성경해석을 하면 환장한다니까요. 왜 목사들이 그런 소리합니까? 돈 들고 온 손님들이 십일조 들고 온 사람들이 그걸 원하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목사님, 나를 어떻게든 의인으로 만들어서 교회에서 내보내 주세요.” 마음속으로 간음 안한 사람만이 간음한 사람 돌로 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왜 아직까지 신체적인 간음을 안했느냐 하면, 아직 그런 기회가 안와서 그래요. 그런 환경이 조성 안돼서 그럴 뿐이지. 지가 절제를 많이 해서, 성령이 절제해서 그런 게 아닙니다. 친구 따라 군대 가기 전에 사창가 다 가 봐요. 물론 나는 안 가봤어요. 그렇다고 해서 내가 간음안한 게 아닙니다. 진짜 예수님의 말씀을 모독해도 보통 모독한 게 아니에요.
다시 할게요. 어린애처럼 받들지 아니하면 어느 나라 못 간다? 니가 어린애처럼 받들라, 이 정도가 아니에요. 니가 최선을 어린애를 받들라, 이것도 아니에요. 어린애처럼 받들지 아니하면 천국에 못 간다는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뭐냐 하면, 사람들은 쓴잔을 마실 생각은 안하고 예수님의 피를 마실 생각은 안하고 제자들은 뭐했습니까? 누가 높은가 한 거예요. 결국 그 관건이 뭐냐, 예수님 앞에서 뭐라 했습니까? 나, 저 사람을 모른다고 한 거예요. 모른다고 한 게 그 때만 모른다고 한 게 아니고 이미 그 전에 예수님 따라 다닐 때부터 잠복돼 있었던 겁니다.
십자가가 뭐냐 하면, 십자가가 어느 인간도 자력으로 구원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12제자를 몰고 다닌 거예요. 그럼 제자들은 뭡니까? 신자에요? 불신자에요? 철저한 불신자 돼야 돼요. 기껏 해 봐야 제자정도 밖에 안 돼요. 아무리 노력해도. 그런데 제자들마저 스승을 배신자여 했다면, 우리가 교회에서 실컷 노력해도 결국 우리 입에서 뭐가 나오느냐 하면, “나는 예수를 모른다.” 다른 말로 하면, “나는 돈만 안다.” 그런 뜻이에요. 왜 하나님께서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한 거예요. 지금 돈이 없으니까 이 강의 듣고 있지, 집에 한 80억 있으면 올 이유가 없어요. 돈 쓰는 게 바쁜데. 지금 회사가 안 되니까 와있지. 지금 중국에서 바이어 오고 그러면 여기에 참석 안합니다. 한 건이라도 건져야지. 대학생들 영어도 배워야지, 이거 배운다고 취직시켜 주는 거 아닙니다. 제가 다시 할게요. 그냥 사세요. 그냥 살아도 구원됩니다. 왜, 십자가에서 이미 다 이루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이루어진 걸 근거로 해서 소급해서 우리에게 지적하는 거예요. 성령께서. 설치지 말라고. 깝죽대지 말라고. 나대지 말라는 말이지요.
한 천국은 아무도 몰려오지 않습니다. 몰려온 사람들이 만든 천국과 딴 살림 차렸어요. 그들이 찾으래야 찾을 수 없는 곳에다가 주께서 천국을 만듭니다. 그런데 요 접촉점이 뭐냐, 겨자씨에요. 예수님 말씀이 난해하고 어려운 이유가 겨자씨는 아무리 해도 보이지요. 그리고 겨자씨가 커서 보이면 나무도 보이잖아요. 나무라는 게 보이는 겁니다. 사랑 안 보여요. 성령 안 보입니다. 나무 보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지금 보이는 겨자씨와 보이지 않는 나무사이에, 나무를 등장한 것은 중간에 뭘 끄집어내는가 하면, 겨자씨가 100년 놔두면 나무가 됩니까? 이게 보이지 않는 어떤 다른 힘에 의해서 겨자씨가 점점 커서 나무 값을 하는 거예요. 모든 걸 포용하는 나무 값을 한다 말이지요. “야, 나무다!” 하면 안돼요. 그건 틀린 거고. 겨자씨 안에서 뭘 봐야 돼요? 나무를 볼 수 있어야 돼요. 우리는 겨자씨를 보면 뭐로 보여요? 겨자씨로만 보여요. 겨자씨로만. 그 뒤에 큰 나무가 있다는 것이 안 보이지요.
그 뒤에 나오는 말도 똑같은 말이에요. 누룩이 보입니까? 안 보입니까? 누룩이 안 보이지요. 누룩이 안 보이는데 밀가루 반죽하니까 커졌잖아요. 이 이야기를 하게 되면, 이제부터 어려우니까 새겨 들어보세요. 씨 뿌리는 비유에서 농부 눈에 보이지요. 농부 씨 뿌립니다. 씨보이지요. 뿌리는 행동 보입니다. 뿌리니까 30배, 60배, 100배 열매 맺지요. 보이지요. 보이는데 하늘나라는 안 보입니다. 왜? 보이기 때문에 안 보이게 되는 겁니다. 그게 주께서 말씀하시는 방법입니다. 보이기 때문에 안 보이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저 쪽 바다에서 걸어오고 있지요. 보이지요. 베드로가 보이는 예수님 봐서 보이기 때문에 자기도 예수님 다가갔지요. 자, 베드로가 2가지 봅니다. 하나는 뭐냐 하면, 예수님 볼 때 뭐가 안 보였던 거예요? 내가 지금 땅위를 걷는지 물위를 걷는지 안 보였지요. 그런데 평소에 베드로 답지 않아요. 그런데 예수님 본다고 정신없이 해가지고 평소에 자기가 보던 세계관이 와르르 무너졌지요. 그런데 가다 보니까 미쳤지, 갑자기 내가 지금 뭐를 건너는 거야, 하고 물위를 보는 순간 예수님은 자기가 보는 세계에 합류가 안 돼버리고 지는 물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겁니다. 두 세계관의 충돌, 두 판의 만남, 육지판과 해양판의 만남, 육지판과 해양판이 있어가지고 해양판은 무겁고 육지 판은 가볍거든요. 들어 올립니다. 들어 올리면 여기서 단층이 생기면서 지진이 발생되지요. 그러면 그걸 사람들이 어떻게 압니까? 지진을 조사해 보니까 모든 판들은 자동적으로 움직이게 돼 있고, 1년에 2~3Cm정도 움직이게 돼있고, 그것이 외핵에서 불어오는 에너지에 의해서 움직이게 된다는 것을 알지요.
그런데 그런 과학적 설명 같으면 원인을 조사해보니까 다 우리가 익히 아는 과학적 세계 안에서만 통용되는 원리원칙들을 동원해서 해명하고 설명하잖아요. 요한계시록에 지진 나오지요. 그 지진 해명됩니까? 요한계시록의 지진은요, 예수님에 의해서 천사가 와서 일으킨 거예요. 예수님이 바다를 건널 때, 풍랑 누가 일으킵니까? 성경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잠잠 하라, 하니까 잠잠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풍랑을 일으켰고, 잠잠 하라, 하신 거예요. 제자들에게 믿음 보여주기 위해서.
그러면 과학적인 요소에서는 파도는 물로 돼있고 물은 H2O로 돼있고 H2O는 수소로 결합돼 있어요. 수소결합은 에너지에 의해서 움직이게 돼 있습니다. 그걸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했다는 걸로 도출됩니까? 안 되지요. 있는 것은 있는 것으로, 유에서 유지, 개입 안 됩니다. 주님께서는 비유를 할 때, 그들이 아는 씨 뿌리는 이야기를 해요. 해 놓고 그 안에 뭘 집어넣습니까? 인간의 논리 바깥에 있는 것을 집어넣어버린다고요. 이것은 뭐냐, 예수님은 이 땅에 사람으로 분명히 왔지만, 이 땅에 속하지 않는 이 땅에서 찾으래야 찾을 수 없는 다른 세계에서 오신 분으로 너와 함께 섞였다는 것을 말씀을 통해서도 이야기해 줘버리는 거예요.
마리아가 임신했습니다. 남자친구죠. 요셉이 뭐라 합니까? 점잖은 사람이 돼가지고 “니, 이제 내 앞에 할 말 없지?” “성질 내지마, 나 보통사람이 아니니까. 종용히 끊어줄게.” “따지고 싶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야, 이 임신한 남자 누구야? 딴 소리 하지 마, 말씀으로 성령으로 그 따위 소리하지 마. 그 소리하면 나 화 더 나니까.” 그러니 마리아가 얼마나 설득했겠습니까? 다방에 앉아서. 얼마나 설득했겠어요. 그런데 요셉이 언제 설복 당했습니까? 마리아였습니까? 누구한테 설복 당했어요? 천사가 하니까 이게 마리아만 미친 게 아니고, 요셉도 미쳐버렸어요. 남자친구가 “어이, 요셉아, 니 여자 친구가 임신한 거 알았나?” “알았지.” “그냥 봐주나?” “왜, 봐주지.” “왜, 봐주는데?” “나도 니처럼 따졌는데 어느 날 밤에 자고 있는데 천사가 왔다.” “이것도 같이 미쳤어!” 하나님이 일으킨 사건은 계속 외곽으로 우리를 내몰고 말아요. 뭔가 설득해서 꼬셔가지고 교회전도해서 전도 상 타려고 마음먹었는데 이야기하면 할수록, 예를 들어서 그들이 원하는 게 있잖아요. 교회 나오면 취직 잘된다든지, 복 받는다든지, 이러면 기는데, 복음을 이야기해버리면 계속 있는 친구 다 떨어져버려요.
그러면 우리는 떨어지면 누구한테 불평한다 했지요? 아까 했지요. 배운 거 복습해 봅시다. 친구와 떨어지면 손거울 없지요. 손거울 없으면 우리는 뭡니까? 내가 누구냐를 파악할 길이 없지요. 내 친한 친구가 비로소 내가 사랑하는 만큼 나를 사랑해 줄 건데 그 사랑하는 친구한테 복음이 개입해 버리니까 오히려 화를 내고 가버렸지요. 그럼 이 세상에 누가 나를 사랑해 줄 건데요? 예수님이? 예수님 안 보이는데요. 안 보이는 예수님과 한 번 살아보지, 기분 좋은가. 외로움만 더한데. 어쩔 건데? 자기 친구한테 술 한 잔 사주고 또 나오겠지요. “니, 교회 안 갈라나?” 내가 놀아줄게.“ 목사님 당분간 안 나올게요. 하고 놀아주겠지요. 또 성령이 천사가 와버렸어요. 제가 이런 말 하니까 누가 이야기했잖아요. 당신은 계룡산에서 내려왔다고. 한국최고의 70넘은 신학박사가 그랬어요. 당신 이야기는 계룡산 이야기다. 중요한 것은 역사가 중요하지, 우리가 예수를 믿고 역사를 어떻게 전환시키느냐, 어떻게 개혁하느냐가 중요한데, 당신 이야기는 역사 자체를 부정하기 때문에 당신은 계룡산에서 내려왔다. 하는 거예요. 그거 녹음 다 됐어요.
더 이야기해봅시다. 낮에 나무를 보면, 겨자씨 잊어버립니다. 주님께서는 겨자씨와 나무를 엮을 수 있는 능력이 너한테 있느냐를 묻는 겁니다. 우리한테는 없습니다. 왜냐, 우리는 나무를 소유하려해요. 겨자씨를 소유하려하지, 겨자씨가 스스로 자라난다는 것을 우리는 참을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스스로 해버리면 나는 주님의 졸다구가 돼버려요. 그러면 천국에서는 내가 주인공이 되지를 못해요. 나는 여전히 졸다구, 종이 돼버려요. 주님은 그럴 줄 알고 이야기했습니다. 너희들이 주인을 만날 때는 내가 했습니다. 라고 하지 마라. 밥 먹을 때, 같이 겸상하려고 하지 말고 주인이 밥 먹을 때는 니는 밥만 챙겨주고 옆에 기다리고 있다가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만 먹어도 니는 고마운 줄 알아라. 그래서 종이라 하는 것은 뭐냐 하면, 니가 수고했다 하더라도 우리는 뭐해야 한다? 나는 아무 이익이 없는 주님 앞에 보탬이 없는 무익한 종이니 할 바를 했을 뿐입니다, 라는 말만 하란 이 말이죠.
모든 공로는 누구한테 돌아갑니까? 주인한테 돌아가는 거예요. 막달라 마리아가 향수뿌리고 눈물로 씻을 때, 그걸 사진 찍어 보세요. 대단한 믿음 아닙니까? 그럴 때 그 사진가지고 “아줌마, 이거 어떠세요?” 할 때 아줌마한테 매 맞지요. 지는 죄송해서 울고 있는데 그걸 가지고 아줌마 믿음 좋네, 하면 그 아줌마가 화낸다고요. 내가 구원받기 위해서 이 짓한 거 아니라는데. 그 사람은 그 짓해서 구원받는다고 오해하는 거예요. 모든 게 눈에 보이는 게 문제였어요. 교회 와서 누굴 본받으세요. 그게 문제였어요. 따라잡을 수 있다고. 나도 저 정도 행할 수 있다고. 갑자기 오기가 살아난다든지. 이게 문제라니까요. “내가 천하에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이게 은혜에요. 이게 영광입니다.
시험 칠 때, 아무것도 안 쓰고 그냥 백지 내는 게 영광입니다. 그래도 70점 냈잖아요.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주님 앞에 제발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그렇게 잘 말했던 욥이 마지막에 주님이 나타났을 때, 뭐라 합니까?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고, 재만 뒤집어쓰고 나는 그냥 잠잠할 뿐입니다.” 이게 진짜 하나님 만난 사람의 고백이에요. 꼭 서울 안 가본 놈이 서울 이야기한다고, 진짜 하나님 만난 사람은 “화로다, 망하게 되었구나!” 도대체 주님 앞에서 할 말이 뭡니까? ‘주’잖아요. 모든 것은 다 주께서 알아서 하신 겁니다.
그럼 우리는 이 땅에 몸부림치면서 남긴 흔적만 남아있어요. 모래사장에 진흙이 꿈틀하잖아요. 파도가 휩쓸고 난 뒤에 남는 게 뭡니까? 꿈틀했던 그 자국만 남아있지요. 연예인이 손을 석고 뜰 때, 그 영화배우 죽어도 남아있는 게 뭡니까? 손바닥만 남아있지요. 나를 그렇게 애먹이고 힘들게 했던 가족들, 주위 친구들 하지만 그 사람들은 내 탁본 뜨기 위해서 불러 모은 거예요. 그들도 떠나고 친구들도 다 떠나버리고 남는 건 뭡니까? 내가 내 자존심을 안 죽이기 위해서 몸부림치면서 기어이 내가 나답다는 나의 우수함을 증거 하기 위해서 몸부림 쳤던 그 흔적만 탁본으로 있어요. 우리 주님한테 속아 넘어간 거예요. 그 잘 난체 하면서 몸부림쳤던 거예요. 내가 가정주부로서 이렇게 애썼습니다. 하는 그 탁본만 남아 있어요. 남편과 자식은 다 허수아비인데. 나를 약 올리기 위해서 주께서 보내신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은데 우리는 그 허수아비를 상대로 해서 되지도 않는 쓸데없는데 승리하겠다고 자존심 안 끌리겠다고 싸운 거예요. 돌아서면 주께서 의도적으로 우리가 어느 정도 안 되는 인간인가를, 꼴 보기 싫은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배추밭에 가서 배추보고 욕하는 인간이 허무한 인간이에요. 가만히 보면 밤에 가면, 배추밭이 사람인 줄 아는 거예요. 밤에 실컷 욕했거든요. 욕하지 말라고 술 먹고 한 이야기가 다음날 아침에 보니까 전부 다 배추밭이라. 해골이라. 상대할 가치도 없어. 우리는 상대할 가치도 없는 인간들을 만나가지고 괜히 우리는 분발한 거예요. 내 손거울로 삼은 거예요. “저, 인간 이쁘게 하면, 나한테 어떤 보탬 되겠지, 내가 저 사람 도와주면 날도와 주겠지.” 인간은 도움 줘도 도움 안 줍니다. 인생을 한 번 살아보세요. 나를 등쳐먹기만 하지. 심지어 남편도 내 등쳐먹는데. 자식도 부모도 등쳐먹는데.
쉽게 말합시다. 나는 내가 관리한다. 따라서 천국 가는 것도 내가 관리해서 천국 가겠다. 라는 천국 관에 대해서 주님께서는 이 겨자씨가지고 대항하시는 겁니다. 겨자씨가 나무되는 거. 그거? 그거는 하늘 나라에서 니 손에서 니 노력으로 보탠다고 될 문제가 아니다. 니가 전도한다고 하늘나라가 확장되는 게 아니다. “전도 열심히 하세요. 하늘나라 확장됩니다.” 전부 다 구라에요. 돈 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일하는데 돈 안 내면 나쁜 놈이다. 이런 뜻이에요. 말길을 잘 알아들으세요. 목사가 2번, 3번 돌려 말해도 결국 마지막은 돈 내라는 말이에요. 이렇게 착한 일하고 밥 퍼주는데 돈 안내면 누가 밥 퍼주느냐, 돈 내라 그 이야기에요.
여러분, 천국은 돈 줘서 가는 나라가 아닙니다. 우리는 돈 없이도 그냥 가는 나라에요. 여러분 한 번 물어봅시다.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물 길러 온 아줌마, 주님한테 돈 얼마 냈습니까? 얼마내고 은혜 받았어요? 정답은 ‘박탈’이에요. 처음에 자기 세계관에 물 길러 왔잖아요. 물 길러야 자기 가족사니까. 갈 때에 뭐를 버려뒀지요? 미쳤어, 미쳤어, 물동이를 버려둔 거예요. 원래 왔던 목적이 뭡니까? 물 길러 왔는데, 노선이 육의 노선에서 뭐로 바뀌었습니까? 영의 노선으로 바뀐 거예요. 갈라디아서 6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니가 육만 심었다는 거예요. 육만 심었는데, 성령이 오게 되면 이제는 육만 심지 않고 육만 심으면 썩어질 것으로만 거두지만, 성령이 오게 되면 영생을 얻는 영의 일을 한다 말이지요. 그 요한복음 4장에 있는 아줌마가 지가 영을 얻은 게 아니에요. 소유한 게 아니에요. 주님께서는 그 아줌마의 마음을 남자 5명 밝혔고, 여섯 번째 남자에요. 그 남자와 헤어진 게 아니에요. 계속 살고 있어요. 그 남자 좋아하는 그것이 뭐냐 하면, 우물이에요. 주님한테 잡혀버린 거예요. 니 속에서 영원토록 물이 나오는 우물을 가질 때는 물을 소유하는 거잖아요. 항아리 들고 소유하러 왔다가 소유 당해버린 거. 그게 성령의 역사입니다.
뭘 해도, 어떤 죄를 지어도 십자가의 용서하심을 보여주기 위해서 우리로 하여금 분발케 하는 겁니다. 숨어 있는 죄를 드러내기 위해 분발케 하는 겁니다. 메시아 만났다, 하고 물동이 버려 놓고 다시 세상 속으로 뛰어 들어갑니다. 어떻게요? 슬픔으로? 기쁨으로? 지금 물동이 버렸는데 나중에 물동이 벗어나면 자기 엄마한테 혼날 거예요. 두렵지 않아요. 두렵지 않았습니다. 왜냐 하면, 물 아무리 길어도 발휘하지 못한 구원자를 만났기 때문에. 메시아를 만났기 때문에. 자기가 남자 5명이고 6번째라는 남한테 숨기고 싶은 은밀한 바바리 속에 숨기고 싶은 그것마저 주님 앞에서는 낱낱이 다 발각됐을 때 오는 그 희열, 그거 돈 주고도 못 삽니다. 주님한테 앞으로 지을 죄까지 몽땅 발각되었을 때 그것만큼 떳떳한 게 없어요. 세상 사람들한테.
그렇게 남자 6명 밝혀도 오늘 아침은 밥을 먹었잖아요. 그 밥은 누가 주신 거예요? 죄지었다고 죄 값으로 주신 거예요. 주님의 희생으로 준거다 이 말이에요. 다른 말로 하면, 우리는 죄인이고 주님은 그 죄 때문에 희생했기 때문에 십자가에진 공로에 근거해서 우리에게 오늘도 밥을 줬기 때문에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한 건 매일같이 우리에게 밥을 주시고 양식을 주시는 겁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겁니다. 내일되면 또 모르지만.
모든 것이 십자가를 경유해야 돼요. 십자가를 경유하지 않으면 자기가 자기를 관리하기 때문에 엉뚱한 천국에 가있게 됩니다. 그 엉뚱한 천국을 지옥이라 하지요. 제가 이런 이야기하면서 문뜩 생각나는 것이 갑자기 종교가 미워져요. 옛날에는 불교만 미웠거든요. 이 말을 하다보니까 갑자기 기독교도 미워져요. 너무 권력과 세력화가 됩니다.
정리해 봅시다. 예수님께서 겨자씨 이야기하는 것은 뒤에 있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겨자씨 한 것은 그 다음에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라고 했습니다. 여자가 부풀게 했습니까? 누룩이 부풀게 했습니까? 여기는 여자가 해놓고 빠지는 거죠. 농부가 열매를 맺게 했습니까? 농부가 뿌린 씨가 30배 60배 열매 맺게 했지요. 씨지요. 씨는 말씀이다 말이지요. 농부는 눈에 보이거든요. 씨는 어떻게 했느냐, 그건 눈에 안 보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들이 파악해도 파악되지 않는 식으로 이미 일은 벌어졌다 이 말입니다. 일은 벌어졌고 이미 벌어진 것에 대해서 구원받은 백성은 “제가 안했는데요.” 라는 식으로 하면서 구원받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럼 “니가 안 했으면 누가 했어?” “주님이 했는데요.” 요걸 가지고 행함이 아니고 믿음이라고 하는 겁니다. “아, 니 믿음!” “내 믿음 아닌데요. 선물로 받은 믿음인데요.” “그럼 니 믿음은?” 선물로 믿음이 오니까 내 믿음은 믿음도 아니고 행함의 일종이라는 것을 스스로 고백합니다.
진짜 믿음이 오게 되면, 내 믿음으로 내가 예수 믿은 게 아니고 내 믿음을 오히려 부정하면서 그게 아니라고 부정하면서 내 믿음마저 죄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면서 내 믿음과 소망과 사랑마저 죄라고 깨닫게 하시면서 십자가만 보이게 하시는 겁니다. 내 믿음은 내 행함의 믿음이지만, 주께서 선물로 준 믿음은 예수님의 십자가 행함이 우리의 본 내용으로서 우리에게 찾아오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가, 우리는 그걸 가지고 뭐냐, 결과물이지요. 제가 말은 이렇게 쉽게 하지만, 생각해보면 너무 은혜로워요. 내가 여기 있고, 내 결과물을 얼마나 따로 했습니까? 이걸 지우지 말고, 내가 양동이 들었다. 물 길러 온다. 내가 양동이를 들 때, 어떤 결과물을 노렸지요. 물 길러서 한 양동이 담아서 간다. 가는데 중간에 설마 내가 결과물이 될 줄이야. 누구를 만났을 때입니까? 내가 숨기고 싶은 것을 도리어 다 노출시키게 만든 그 분의 작품이 누구다? 노출된 내가 구원받는 거예요.
우리가 어디서 어떻게 예배 드려야 합니까? 그런 소리 하지 마라. 성령이 오게 되면 그것이, 니 성령 받은 니 자리가 곧 예배의 자리다. 왜? 내가 니 속에 들어갈 거니까. 니만 살아있는 것이 아니고 누가 살아있다? 니 안에 내가 살아있다. 니는 더 이상 내가 살아있음으로서 니가 산다는 소리하지 마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혔나니 그 다음에 뭡니까? 나는 이미 죽었고 이제 내가 사는 것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세상에 한 구절 한 구절이 정말 가능한 이야기가 하나도 없어요. 성경의 어느 구절도.
돈을 사랑하지 마라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니가 평소에 돈을 사랑하게 되어 있다는 뜻이에요. 먹는 거 입는 거 족한 줄로 알라, 하는 것은 어느 인간도 먹는 걸로 족한 줄 아는 인간이 없다는 뜻이에요. 항상 십자가를 경유하세요. 왜 죽었는가? 왜? 이 잘난 나를 왜 죽었느냐, 남자 앞에서 손거울 보지 말고 십자가를 손거울 삼아서 보란 말이에요. 결국은 피 앞에 올 겁니다. 어린양의 피 앞에. 천국가도 천국가면 십자가 보좌가 전부에요. 피 앞에 전부 둘러 싸여 있을 뿐이에요. 요한계시록에 나온 대로 천국은 뭐냐, 예수님 섬긴다고 둘둘 돌아서 12장로가 빙 둘러서 심지어 4천사부터해서 어린양의 보좌만 뱅뱅 둘러서 우리는 생명나무로 누리는 거예요. 천국입니다. 누구 공로로? 예수님 공로로.
그 앞에 둘러 쌀 때, “주님이여, 꿇어앉아서 둘러쌀까요? 손들까요?” 이런 소리하지 마세요. 그거 주님께서는 보지도 않습니다. 꿇어앉아 있던지, 그렇다면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까요? 라는 말은 이미 천국이라는 주님 보좌를 생각한 이상 우리한테는 고민거리가 될 수가 없지요. “나, 어떻게 살까요?” 어떻게 해도 죄인도 어떻게 살아. 니가 어떻게 산다고 해서 어떻게 살아봤자 그게 또 죄가 될 건데. 그냥 니가 내키는 대로 한 번 살아봐라. 그 때가서 찾아와서 십자가 드리댈 거니까. ‘아, 내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최선이 아니고 최악이었구나!’ 하는 것을 깨닫는 식으로 하는 거예요.
요거하고 마치겠습니다. 어떤 친구가 와서 내 돈을 사기해 갔습니다. 주님한테 “나 이제 주님믿고 못 살겠습니다.” 할 때 수요일날 했지요. 성도는 뭐가 없다 했습니까? 처음부터 이스라엘 나라는 없었습니다. 건져주면 다 고맙다고 해야지. 처음부터 이름이 없었던 거예요. 이걸 알려주기 위해서 광야라고 해버립니다. 광야는 소유할 게 아무것도 없어요. 물이 있습니까? 양식이 있습니까? 자기들 기억 속에는 무슨 기억밖에 없어요? 애굽에서 먹고 씹었던 기억밖에 없어요. 피자 같은 거 햄버거 밖에 없어요. 광야에는 피자집도 안 보여요. 시원한 호프집도 안 보여요. 헤즐럿 커피집도 안 보이고. 이건 뭘 의미하지요? 니가 지금 가는 세계는 니가 기억 속에 경험했던 세계의 조합이 아니라는 거예요. 상상도 못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들은 그 말을 좋아하지 않고 다만 느끼는 것은 뭐냐, 죽음을 느끼는 거예요. 결국 이것은 뭐냐, 애굽의 죽음에 참여해야 돼요. 애굽은 죽은 것으로 여겨라. 니가 생각한 상상한 모든 세계는 이미 죽은 걸로 여겨라, 라고 하면서 계속 이야기하지만 그들은 계속 그것에 동조합니까? 안 합니까? 미쳤나 동조하게. 원망만 하지요. 얼마나 모세가 답답했으면 자기도 주님의 지시 안 받고 성질나가지고 지팡이 두 번 치다가 자기도 약속의 땅 목전에 두고 야, 아깝잖아요. 99.9% 다 왔는데 그 땅을 못 가봅니다.
질문, 모세 천국 갔을까요? 지옥 갔을까요? 천국 갔어요. 어떻게 압니까? 변화산에서 봤지요. 그러니까 모세가 눈에 보이는 세계는 못 들어갔지만 어디 가있어요? 천국 갔잖아요. 왜? 모세가 자기가 하는 모든 것이 십자가로 졌다는 것을 변화산에서 이야기하면서 알기 때문에. “주님이여, 제 죄 때문에 언제 돌아가십니까?” 이야기했다고요. 그 이야기를 미리 하자는 말입니다. 우리가.
교회 다니든 안 다니든 간에 십자가이야기 하는 것이 그게 성도거든요. 그 십자가를 해보자말입니다. 해보게 되면 그 십자가에 일어나는 모든 효과는 바로 누룩의 서 말이 저절로 부풀어 지는 것이고 관리 안 해도. 그리고 겨자씨가 저절로 커지는 거예요.
마지막 한 마디, 겨자씨가 작습니까? 커집니까? 작지요. 작으니까 무시할 만하지요. 나무는 큽니까? 작습니까? 크잖아요. 나무는 무시 안 하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무시 안 할 만한 것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고 누가 봐도 무시할 만한 것을 가지고 하늘나라는 시작되는 겁니다. 누가 봐도.
“에이, 겨자씨야, 겨자씨야.” 하지만 나중에 나무만큼 크지요. 그런데 이 이야기를 했을 때, 이걸 믿음 없는 사람은 뭐로 봅니까? “아이고, 그 이야기를 내가 했으면, 내가 믿을 건데.” 왜? 원래 겨자씨가 크면 나무가 되거든요. 그것은 자기가 눈으로 봤고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잖아요. 그게 주님의 함정이라니까요.
농부가 씨를 뿌리면 어떤 것은 옥토에 떨어지고, 어떤 것은 길에 던져지고, 참~ 쉽네. 그거 모르는 사람 누가 있나, 이렇게 하거든요. 제자들이 그걸 몰라서 다 도망간 거예요. 씨 뿌리는 비유는 그들이 안다고 생각한 거예요. 왜? 농부가 씨 뿌려서 어떤 데는 옥토에 떨어지고 이거는 주께서 너무 쉽게 이야기하니까. 만만하니? 만만하게 본 거예요. 뒤에 나옵니다. 어떤 장수가 귀한 보물을 어떻게 사고, 또 어떤 농부가 밭을 갈다가 보물을 숨겨두고. 이거요? 하늘나라 귀한 거니까 나중에 캐내시오. 그런 해석은 다 엉터리해석이에요. 십자가를 경유해야 이해되는 겁니다.
“주여, 주의 말씀 백날해도 못 알아듣겠습니다. 십자가 영이 오니까 결국은 십자가 피만이 이 무식한 우리마저 구원해 내는군요.” 그것이 앞으로 비유 나가면서 계속 이야기할 겁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우리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우리는 모른다, 불가능하다, 주께서 다 하셨습니다. 라는 그런 고백이외에는 할 소리가 없습니다. 어떻게 했는지, 말씀을 통해서 생각하는 가운데서 늘 성령께서 깨닫게 하셔서 정말 주께서 홀로 다하셔서 주로부터 와서 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주께로 돌아간다는 그 복음이 우리 안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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