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대구강의 5] - [피 91] - 가짜와의 싸움
[13 대구강의 5] - [피 91] - 가짜와의 싸움
이름 : 구득영(IP:203.223.97.152)
[13 대구강의 5] - [피 91] - 가짜와의 싸움
13,03,18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오늘은 교재 275페이지부터 살펴보자.
** 이 세상과 반대로 살지 아니하면 복음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미신을 믿는 자이다. 무엇이 미신이냐 하는 것은, 예수님이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느냐에 달려있다. 문이란 차단의 구실을 한다.
◈ 나는 양의 문이요 !!
예수님께서 자신을 "나는 양의 문이다" 라고 했을 때, 그 문은 차단의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여기에서 말하는 문은 들락날락하기 위함이 아니라, 들어올 수 없다고 하는, 즉 "들여보내지 않겠다" 라고 하는 의미가 강한 표현이 바로 '문(門)' 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을 목자라고 하는 표현은 우리가 성경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그런데 예수님이 자신을 양의 문이라고 했을 때는, 그것은 그 당시에도 이미 "천국에 들어올 수 없는 자들마저도 들어오려고 한다" 라는, 그런 현상들이 많이 퍼져있음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그게 요한복음 10장에 나오는데, 제가 7절부터 읽어보겠습니다.
(요 10: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요
(요 10: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요 10: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이 말씀이 의미하는 것은, 문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이미 문이 있었다는 것이다. 앞에서 문은 단절의 역할을 한다고 했는데, 그러니 "내 말을 들으면 천국에 가고, 듣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 라는 문의 기능을 이미 유포시킨 세력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세력들을 주님이 보지 못한 척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충분히 인식시키면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셨다는 말이다.
만약에 예수님이 말을 하지 못하는 우상이라고 하면, 예수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을 필요가 없고, 그냥 우리가 믿고 싶은 데로 예수님을 믿으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 쪽에서 뭔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뭔가 멘트를 날렸다는 것은, 우리가 미리 전제를 하면서 생각했던 예수님과, 예수님 쪽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다르다는 말이다.
왜 다른고 하니, 우리는 마치 개가 먹이를 덥석 물 듯이 '믿습니다' 라고 하면서 다가가려고 하는데, 하지만 그렇게 다가가게 되면 무엇을 놓치는고 하니, 예수님 쪽에서 우리에게 던져준 말씀들이 있는데, 그게 8절에 나오는데,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다" 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사기꾼들인데, 그것을 아주 고운 우리말로 고치면 '가짜' 라는 것이다.
◈ 가짜와의 전쟁 !!
그러니 예수님이 오셨다는 것은 무엇과의 전쟁을 의미하는가? 가짜와의 전쟁인데, 그러면 성령을 받아서 예수님을 제대로 믿었다고 하는 것은, 무슨 전쟁이 같이 뛰어들겠다는 것인가? "가짜에 대해서는 예수님과 더불어서 우리는 용납할 수 없다" 라고 하는 것을 이미 마음에 품고서 예수님을 믿기로 했다는 말이다. 그러면 성도는 무엇을 분명히 알아야 하는가? 무엇이 가짜인지, 거기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구멍가게를 운영한다고 하면, 요즘은 경기가 어려워서 힘든데, 아슬아슬하고 말이다. 3년 이내에 문을 닫는 곳이 10군데 가운데 7곳이나 된다고 하는데, 이런 시기에 영세자영업자로 뛰어들었다는 것은 항상 마음이 불안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새벽마다 교회에 가고 하는데, 뭔가 하나라도 붙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들이 가짜 예수를 믿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그런 가짜라도 믿지 않으면 자기가 그만 미치지 싶어서 믿는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아무 것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교회에 가고 말고 하는 것이 별로 대수롭지 않지만, 하지만 믿었던 사람들에게는 금단현상과 같은 것이 있어서, 가짜라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자기가 믿고 있는 예수님이 누구인지, 거기에는 관심이 없고, 아무튼 무엇이든지 믿고 의지하지 않으면 누가 미친다는 것인가? 자기가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자기 쪽에서 예수님에게 다가가기 때문에, '가짜' 라는 의식이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자기가 좋아서 믿겠다고 하는데 말이다.
◈ 내가 좋다고 하는데, 당신이 왜?
좀 쉽게 말해보면, 백화점에서 물건을 사려고 하는데 분명히 짝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아주머니가 오더니만 자꾸 그런 가짜만을 고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줌마, 그것은 가짜입니다" 라고 하면, 그 아줌마는 "내가 좋다고 하는데, 당신이 왜?" 라고 나온다는 말이다. 자기가 좋다는 것이다. 색깔도 예쁘고 값도 저렴하고 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런 예수는 가짜입니다.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예수가 아닙니다" 라고 하면 뭐라고 나오겠는가? "내가 좋다고 하는데, 당신이 왜?"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자기가 좋으면 그만인 것이지, 그런 골치 아픈 이야기는 하지 말라는 것이다.
◈ 진짜 예수와 가짜 예수의 차이점은?
진짜 예수와 가짜 예수의 차이점이 무엇인고 하니, 진짜 예수님은 가짜에 대해서 분명하게 이야기해주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짜 예수는 뭐라고 하는가? "당신만 좋으면 그만이지, 진짜와 가짜의 문제는 목사에게 맡기고, 당신은 목사가 시키는 데로만 하면 된다" 라고 나온다는 말이다. 즉 "당신에게 편리하게, 과거 조상을 섬기듯이 믿으면 된다" 라는 것이다.
그래서 교인들에게 "무엇이 이단이지 아십니까? 뭐가 비복음이고, 비언약인지 아십니까?" 라고 하면, 아예 그런 것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기도를 했더니만 은혜를 받았다" 라고 하면서, 그저 받은 것만 챙기려고 하지, 무엇이 가짜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 신천지와 인터뷰를 !!
신천지에서 저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요한계시록에 대해서 해석을 해달라는 것이다. 물론 저는 '오케이' 라고 했는데, 아직까지는 질문이 들어오지 않았는데, 만약에 들어오면 질문과 답변을 그대로 십자가 마을에 올리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천지에 부탁을 할 것인데, 한 글자라도 편집하거니 왜곡하면 답변을 보내지 않겠다고 말이다.
물론 그렇게 되면 신천지와 성사가 되지 않지 싶은데,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저에게 요한계시록에 대해서 질문을 했다는 것을 그냥 놓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천지에서 한 질문을 그대로 십자가 마을 사이트에 올리려고 한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가짜니까 말이다.
그런 가짜를 알려줄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을 감사해야 하는데, 그런데 그게 아니고 "나만 잘 믿으면 그만이지, 가짜까지 신경을 왜 쓰는가?" 라고 한다면, 그건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는 '나' 자신이 가짜일 수 있다는 것이다.
◈ 나도 가짜일 수 있다 !!
어제도 그런 설교를 했지만, 형사가 범인을 찾을 때, 그 범인이 자기를 빼놓고 다른 사람을 의심하면 안 되고, "나도 범인일 수 있다" 라고, 자기를 포함해서 수사를 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제대로 믿고, 다른 사람은 못 믿고" 라고 하지 말고, 자기도 제대로 믿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성경말씀을 펼쳐보라는 것이다.
하지만 신천지의 경우에는 그게 안 되는데, 자기들이 가짜일 수 있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짜임을 말이다. 물론 그것은 기존 교회도 마찬가지인데, 제 아무리 순복음이라고 해도 순수 가짜복음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은가요?
우리교회의 경우도 10년이 넘었는데, 처음에는 아무리 좋은 취지로 개척을 했다고 하더라도, 10년이 넘어가면 가짜일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10년이나 되었으니 진짜겠지" 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누구 마음대로 진짜냐는 말이다. 교회의 머리가 누구인지, 어떻게 자기 마음대로 그렇게 결정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 다시 시작하면 !!
늦게 오신 분이 있어서 다시 시작하겠는데, "예수님은 양의 목자다" 라고 하는 것은 유명한데, 그런데 "예수님은 양의 문이다" 라는 것은, 요한복음 10장 7절에서 말이다. 요한계시록 3장에도 나오는데 말이다.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 라고 말이다.
(계 3: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이 문이다" 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허락이 없이는 아무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내 허락이 없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라고 하는 예수님의 방식을, 예수님보다 먼저 온 가짜가 그런 짓을 했다는 것이다. 그게 곧 도적이고 강도이고 사기꾼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수님인 나를 믿는다고 하는 제자들아, 어떤 놈들이 사기꾼인지를, 내가 그것부터 이야기해줄게" 라고 하는 것이 요한복음 10장의 내용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예수님의 제자들의 경우에는, "사기꾼은 사기꾼이고, 우리는 우리끼리 합시다" 라는 것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끼리도 사기꾼일 수 있으니, 그런 것은 안 된다는 말이다.
◈ 피할 수 없는 곁눈질 !!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 마을을 들락거렸는가? 처음에 올 때는 전부가 다 '우리끼리' 라고 했는데, 과연 그러한가? 지금은 다른 곳에 정신에 팔려있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저는 그것을 '곁눈질' 이라고 하는데,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꾸만 눈길을 옆으로 돌린다는 것이다. "내가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이게 잘 될까? 안 될까?" 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니 예수님을 믿으면서 늘 긴장하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예수님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자기 것이 다칠까 싶어서, 그래서 긴장을 한다는 것이다. 제가 너무 정곡을 찔렀습니까? 목사의 경우에는 그것이 곧 교회인데 말이다.
자기가 이렇게 믿다가도, 자기 신상에 좋지 않다는 느낌이 들면 철야기도라도 하겠다고 하면, 하지만 그것은 한번도 예수님을 믿어본 적이 없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에게 올인을 해야하는데, 그렇게 하는 척을 하면서 한 쪽 발을 슬쩍 뺀다는 것이다. 믿어서 재수가 좋으면 계속해서 발을 넣어서 믿겠다는 말이다. 그렇게 계속 곁눈질을 하고 긴장을 하는데, 혹시 자기 것을 다칠까 싶어서 말이다. 즉 예수님을 생각한다고 하면서도 다른 마음을 품는다는 것이다.
◈ 왜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긴장하는가?
만화에 보면, 이렇게 앞으로 바라보면서도 뽀글뽀글하면서 다른 생각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렇게 예수님을 바라보면서도 다른 생각을 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모여서 성경공부를 하면서도 "부동산이 잘 되야 할텐데" 라고 말이다. 그게 긴장이 되어서 나타나는 현상인데,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긴장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을 철회할 가능성이 있는데, 즉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 라는 것은, 그 가능성을 언젠가는 철회할 수 있음을, 그런 결심을 자기가 할 수 있다는 것인데, 그런 사람은 단 한번도 예수님을 믿어본 적이 없고, 그것을 성경에서는 '행함' 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마치 음식의 간을 보는 것과도 같은데, 맛이 있는지 없는지 말이다. 그냥 먹으면 되는데, 일단 먼저 간을 보고 맛이 있으면 먹겠다는 것이다. 아예 살아계신 예수님을 가지고 노는데, 죽은 예수라고 하면 가지고 놀아도 될지 몰라도, 하지만 예수님은 죽은 게 결코 아니라는 말이다.
◈ 이것이 가짜다 !!
그러니 '양의 문' 이란 것은,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가짜가 무엇인지 먼저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예수님 쪽에서 말이다. 그렇게 함으로서 "내가 이렇게 가짜와 전쟁을 벌리는데, 너희들도 예외가 될 수 없고, 동참하게 되었다" 라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도 이제부터는 가짜에 대해서 누군가가 물으면, "이것이 가짜이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분명한 답변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답변이 무엇인고 하니, 그 답변이 곧 우리의 삶 자체인데, 우리의 삶 자체가 곁눈질을 하고 바짝 긴장을 해서 예수님을 믿는데, 그렇게 긴장하는 것이 무슨 삶이냐고 할지 몰라도, 물론 사랑은 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흥정은 긴장하지만 말이다. 즉 "내가 저 사람을 사랑한다고 하면, 저 사람도 나를 사랑해줄까?" 라고 말이다.
◈ 현숙씨, 내 사랑을 받아주오 !!
남자들이 처음에 프로포즈를 할 때 굉장히 긴장이 되는데, 여자의 마음을 모르니까 말이다. "현숙씨, 사랑합니다. 결혼해주세요" 라고 했을 때, "저는 좋은 친구로 생각했어요" 라고 한다면 그것은 차인 것인데, 그렇게 되면 결혼이 안 되니 말이다. 나름대로 아이스크림 속에 반지를 넣어서 준비를 하고, 중세의 기사들처럼 무릎을 꿇고 폼을 잡을 때는 떨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긴장이 되는 것이 무슨 사랑이냐는 말이다. 정말 사랑했다고 하면, 비록 자기가 차여도 괜찮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남자와 데이트를 해도 즐겁게 바라보아야 하고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사랑이 우리 인간에게 있다는 말인가? 없다는 말인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인간은 주님을 사랑한 적이 없는데, 이용할 요량으로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다녔지 말이다.
◈ 신, 자연, 인간 !!
그것을 그림으로 그려보면, 인간이 이렇게 있으면, 인간은 자기 자신을 키우기 위해서 신을 믿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믿지 않으면 미치니 말이다. 그것이 신이든, 부처이든, 조상이든, 친구이든 괜찮은데, 아무튼 자기에게 절대적인 것을 믿는다는 말이다.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서는 그 이상의 '미지의 X'를 말이다.
그 다음에 인간은 또 자연을 공부하는데, 그렇게 해서 과학기술이 있어야 농사를 지어도 잘 짓는다는 것이다. 즉 기술이 있어야 밥도 먹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인간과 자연과 신은, 과거 동양철학에도 나오는데,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인간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땅이 곧 자연인데, 거기에 인간이 살고 있고, 그리고 신이 하늘에서 적당히 비를 내려주어야 하는데, 인간이 아무리 열심히 해도 비가 오지 않으면 전혀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항상 인간보다 우등한 존재를 생각하게 되어있고, 또한 눈에 보이는 자연을 믿게 되어있고, 그리고 인간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세 가지가 결합된 것이 곧 '향락' 인데, 즉 즐거움이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짜릿한 것, 성공했을 때의 그 쾌감, 그런 것이란 말이다.
◈ 향락, 즐거움, 짜릿함 !!
상대방에게 "나와 결혼해주시겠습니까?" 라고 했을 때, "예, 결혼을 하겠습니다" 라고 나오면, 남자는 "앗싸!"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알 수 없는 짜릿함이란 말이다. 아무리 신을 말하고, 자연을 말하고, 과학을 말하고, 인문학을 말해도, 아무리 그런 지식을 이야기해도, 결국 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무엇인고 하니, 뭔가 지금보다 더 짜릿하게 느껴지는 그 쾌감, 즉 '향락' 이란 말이다.
그것을 '조이너스' 라고 하는데,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고 하니, 인간이 정신을 바짝 차릴 때는 이성적이 되고 양심적이 되는데, 하지만 꿈속에서는 어떠한가? 그야말로 가관이라는 것이다. 그게 자기의 본성인데, 낮에는 그것을 자제하니 말이다.
어린아이들은 자기 집이든 남의 집이든 마구 뛰어다니면서 논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게 즐거우니 말이다. 그냥 즐거우면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른들까지 그렇게 하게 되면 피해가 발생하고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이 사회 윤리적으로 숙달이 되어서 스스로를 자제하게 되는데, 그럴 뿐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누구든지 자기 말을 듣지 않고 싫은 소리를 하게 되면, "아저씨는 참 점잖지 못해요" 라고, 겉으로는 그렇게 말하지만 속으로는 무엇인가? "저놈을 그만 때려죽여 버릴까?" 라고 한다는 것이다.
◈ 옥이가 내 집을 팔아먹었다 !!
저는 어제 아내로부터 어떤 이야기를 듣고 속으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르는데, "옥이가 내 집을 팔아먹었다(??)" 라는 것인데 말이다. 그러니 부모가 결국 자식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본성으로 돌아가니까 "누구야, 나의 기쁨을 가지고 간 놈이!"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 자기 사수, 자기 방어, 그것은 부모와 자식간도 없다는 말이다.
평소에 정신이 온전할 때는 그게 자제가 되는데, 그런데 정신 줄을 놓게 되면 자기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다 적이 된다는 것이다. 자기의 것을 건들게 되면 욕이고 뭐고 간에 마구 튀어나온다는 것이다. 이게 전혀 남의 이야기가 아닌데, 우리에게도 얼마든지 닥칠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 것을 건드리면 자식이고 뭐고 없다는 말이다.
◈ 다만, 나는 그렇게 해야 즐겁습니다 !!
그렇게 인간은 모두가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데, 가면을 말이다. 그것을 '향락' 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하지만 인간이 왜 그렇게 하는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왜 그렇게 했습니까?" 라고 하면, "나는 모릅니다. 다만 나는 그렇게 해야만 즐겁기 때문입니다" 라는 것이 가장 솔직한 대답이고 정답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왜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까?" 라고 하면, 그 정답은 "저는 교회에 나가지 않는 것이 즐겁기 때문입니다" 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 즐거움을 자제하면 안 됩니까?" 라고 하면, "제가 미쳤습니까? 그런 즐거움을 자제하게요. 저는 그것 때문에 살아갑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인간은 그 즐거움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자제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향락, 즉 즐거움 때문에 살아가고 있는데, 그렇다면 이 즐거움의 배후에는 누가 있겠는가? 인간이 그렇게 되도록 만든 배후에는 말이다.
◈ 가지기 전에는 항상 즐거움이 !!
그것은 바로 보암직도 하고 탐스럽기도 한, 물론 그렇게 느끼는 것은 아직까지 인간이 그것을 가지기 이전인데, 그렇게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향락이 생긴다는 말이다. 이미 가지게 되면 그 결과는 인간이 예상하기 힘든 비참한 결과가 되는데, 하지만 아무리 비참한 결과가 된다고 해도, 가지기 전에는 항상 즐거움의 거리가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아이에게 "이것은 고추장이니 매워서 먹으면 안 된다. 먹지마" 라고 하는 순간 그 아이에게는 무엇이 생기는가? '먹지마' 라고 하는 순간부터 매운 맛이 뭔지 궁금하고 먹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매운 것을 맛보지 못했다가, 매운 것마저도 맛보게 되는 향락, 그것에 아이는 미친다는 말이다.
◈ 율법과 탐심 !!
로마서 7장에 보면 뭐라고 하는가? '탐내지 마라' 라는 것을 듣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그게 선악과가 되어서, 즉 "도대체 하나님은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혼자서 즐거워하려고 그 즐거움에서 우리를 빼돌렸는가? 나도 하나님의 즐거움에 동참하자" 라고 해서, 언젠가는 거기에 참여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롬 7:7)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그렇게 탐을 내게 되면, 그 자리가 마치 거울과 같아서, 거울을 반사시키면 어떻게 되는가? 계속해서 거울이 무한정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탐을 내게 되면, 자기가 처음에 생각하던 탐심은 저만치 물러가 있는데, 마치 밤에 달을 쫓아가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달이 저기에 있어서 가보면, 달은 또 저만치 가있다는 것이다. 산을 넘으면 그 산 다음에 또 산이 있고 말이다.
노사연의 님그림자인지 달그림자인지 하는 노래가 있는데, 그 노래가사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는데, "저만치 앞서 가는 님 뒤로" 라고 말이다. 분명히 저만치 가는데, 가서 보면 또 저만치 가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여전히 간격이 남아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향락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는 것이다.
도박의 경우에도, 우리교회도 그런 분이 있는데, 도박을 하는 사람은 "내가 얼마큼 따면 도박을 하지 않겠다" 라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도박은 판이 클수록 향락의 깊이가 깊어지기 때문에, 기존의 향락은 새로운 향락 앞에서 향락 축에도 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요즘 프로포폴인지 뭔지 하는 것 때문에 난리인데, 특히 연예인들이 말이다. 우리는 처음에 그녀들이 서너 차례 맞은 것으로 생각했는데, 여자의 몸이니 말이다. 그런데 무려 150번, 180번,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왜 그렇게 될까요? 아마 수사를 하지 않았으면 1500번, 1800번, 그렇게 되었지 싶은데 말이다. 그게 마약이니 그렇다는 말이다.
◈ 아이 원티드 !!
그런데 우리의 인생자체가 그런 마약을 이미 먹었다는 것이다. 눈에 띄면 무조건 갖고 싶은데, 물론 가지면 향락이 아니고 "나는 가지고 싶다" 라고 하는 것을 계속해서 우리 주변에 만들어내면 향락이 생기고, 그 향락이 자기 삶의 목표가 되면서, 그 향락을 달성하기 위해서 우리는 아낌없이 예수님을 믿을 만반의 준비가 다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에 나가서 기도하고 전도하고 헌금하고 봉사하고 충성을 다 할 용의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의 기쁨은 따로 있기 때문에 말이다. 환난 중에 기뻐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소망하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항상 긴장하고, 또한 곁눈질을 한다는 것이다.
서울 서머나 교회의 경우에, 이번 3월에 김성수 목사님이 죽고 난 다음에 그 교회가 얼마나 향락의 대상이 되었겠는가? "저 많은 교인들을 내가 흡수해봐?" 라고 나오는데, 그러니 우리 인생을 하나님이 이렇게 이 세상에 살게 하신 이유가 다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오직 예수님만이 양의 문이라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살게 하신 것이지, 우리의 구원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강도와 도적은 향락을 통해서 너희들을 꼬시지만,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나의 죽음뿐이다" 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 베드로의 빗나간 자살충동 !!
베드로는 이런 예수님이 죽는다는 이야기를 예수님에게 듣고, 자기도 새로운 자기 나름대로의 향락을 생각하는데, 즉 "죽고 난 뒤에 주님과 합류하는 그 세계는 어떠할까?" 라고 하는, 그런 마음에 자기도 예수님을 따라서 죽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베드로가 예수님에게 자기 목숨을 바치겠다고 하는 것도 일종의 향락인데, 즉 "더 큰 기쁨이 있다면 나는 죽어도 좋아" 라는 것이다.
그러니 일종의 자살 느낌인데, 하지만 주님의 뜻은 그게 아니라는 말이다. "너는 죽어도 안 돼" 라는 것이다. 그렇게 죽어도 안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이렇게 보이는 인간은 모두 껍데기이고, 진짜 모습은 이렇게 향락에 놀아나고 있는데, 그런 놀아남에 대해서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인가? 없다는 것인가?
우리 인간은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안 된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마귀가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한 욕심에 의해서, 그런 밧줄을 가지고 꽁꽁 묶어놓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묶어놓은 것이 욕심이라는 것은 율법이 주어져야 발각이 되는데, 말씀이 주어져야 말이다.
◈ 여인아, 지금은 6번째이지?
어제 오후시간에 뭐라고 했는고 하니, 하늘의 성전에 있는 보좌에서 무엇이 쏟아진다고 했는가? 율법인데, 그 율법이 먼저 쏟아지고 그 뒤에 미끄럼을 타고 누가 내려오시는고 하니까,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것이다. 율법이 먼저 오고, 그 다음에 예수님이 오신다는 말이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수님께서 "내가 메시야다" 라는 이야기를 먼저 하기 전에 무슨 이야기를 먼저 하시는가? "니가 남자를 5명을 사귀었고, 지금은 6번째이지?" 라는 것을 왜 끄집어내셨는가? 그 여인은 아무리 하나님을 이야기해도, 자기는 어디에 얽매여 사는가? 남자와의 그 향락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가 남자를 찾는 것과, 그리고 우물가에서 물을 긷는 것은 우리가 보기에는 다른 행위인데, 예수님이 보시기에는 똑같이 향락을 채우는 행위라는 것이다. 자기의 목마름을 해결하려고 하는 말이다.
그래서 오전설교에서 인간을 '통'으로 이야기를 했는데, 즉 인간에게 개별자는 없고 모두가 다 통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이렇게 예수님이 있으면, 그 맞은 편에는 모두가 다 하나같이 '통'과 같은 인간이라는 것이다. 김 통, 이 통, 박 통, 그렇다는 말이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예수님을 위해서 우리가 있는데, 우리의 즐거움, 향락, 기쁨은, 우리가 그것을 즐길 수 있는 권한이 있어서 즐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즐기는데 있어서, 그것마저도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이 하신 일을 증거하게 하기 위해서 거기에 묶이게 하신다는 것이다. 마귀에게 꼼짝도 못하게 말이다.
◈ 탐심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선악과 !!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에덴동산에다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게 심어놓으셨다는 것이다. 탐심을 유도하기 위해서, 즉 탐심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선악과를 말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전혀 먹음직도 않고 보암직도 않은 못생긴 과일나무를 심어놓으면 되는데 말이다.
뚱뚱하고 못생긴 여자들은 남자들이 쳐다보지도 않는데, 하지만 예쁜 여자라고 하면 남자들이 운전을 하다가도 차를 들이박고 난리라는 것이다. 학력도 신앙도 성령을 받음도 소용이 없고, 인간은 그렇게 향락에 쫓겨서 살아간다는 말이다.
이미 즐긴 것은 재미가 없고, 그러니 사냥꾼처럼 새로운 먹이감을 찾아 나서는데,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그렇다는 말이다. 일종의 도박인데, 돈을 바라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처음에 사업을 할 때는 돈을 벌기 위해서 하지만, 사업이 좀 된다 싶으면 나중에는 그 짜릿함을 즐기기 위해서 하게 된다는 것이다. 마치 번지점프를 하듯이 말이다.
그러니 성공자체가 자기에게 곧 마약이 되는데, 직장에서 승진하는 것도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모두가 쾌락을 위해서 한다는 것이다. 교사는 교사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교감이 되고, 또 교장이 되어야 하고 말이다. 물론 요즘 말이 많은 그 장학사가 되려고 하는 것도 하나의 향락이고 말이다.
◈ '피' - 아버지, 죄인, 세상 !!
그렇다면 예수님의 경우에, 예수님은 이렇게 아버지가 계시고, 또한 죄인을 생각했고, 그리고 죄인이 속해있는 세상이 있는데, 요한복음 1장에 의하면 어둠인데 말이다. 그 중간에 예수님의 피가 있다는 것이다. 즉 아버지, 죄인, 세상이 다같이 겹치는 중앙에 예수님의 피가 있다는 말이다. 공통분모라고 할까요? 아무튼 그렇게 되어있다는 말이다.
◈ '향락' - 신, 인간, 땅 !!
그런데 그 이전에는 어떠한고 하니, 이렇게 신이 있고, 인간이 있고, 땅이 있다고 하면, 그 중앙에는 향락이 있다는 것이다. 선악과를 따먹은 티를 팍팍 내면서 향락으로 이 모든 것을 생각하면서 살아간다는 말이다. 즉 "신이시여, 이것을 얻으려고 합니다. 도와주소서" 라는 식으로, 향락 그 자체를 위해 살아간다는 말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무엇을 위해서 사셨는가? 자신의 피 흘림과 죄 사함, 즉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 아버지와 죄인과 어둠으로, 그렇게 구성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 앞에서는 인간보다는 인간 내부에 자리를 잡은 악마가 유혹하는 이 향락이 인간을 우선하듯이, 여기에서는 아버지, 죄인, 어둠, 이렇게 되어있으면 항상 십자가의 피가 우선한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아버지의 진정한 뜻인데, 우주를 만드시고 존재하시는 이유가 된다는 말이다. 십자가의 피가 말이다.
하나님이 목적이 되면, 그것은 인간들도 익히 아는 것인데, 인간들이 하나님을 알고 찾아가는 종교는 일종의 향락이라는 것이다. 종교라는 이름의 향락, 쾌락, 즐거움이라는 말이다. 이번에 교황이 된 프란시스코도 그런 경우인데, 종교가 곧 자기의 즐거움이라는 것이다.
기도를 열심히 하는 사람을 보면, 그런 사람에게 가짜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뺨을 맞는다는 것이다. "예수님도 요한복음 10장에서 가짜를 언급했는데, 혹시 가짜에 대해서 아십니까?" 라고 하면, "나는 그런 지식이 아닌 기도빨로 살아갑니다" 라고 하는데, 그 기도빨이 곧 향락이란 말이다. 교회에 와서 충성을 하고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즐거움인데, 자기를 위한 즐거움 말이다.
심지어 그 즐거움을 위해서 누구를 희생시킬 수 있는고 하니, 자기를 학대하고 자기를 희생시킬 수 있는 그 미지의 X를 향해서, 즉 향락이 솟아 올라오는 우물에 우리는 얽매여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게 인간이라는 말이다. 그 어떤 인간도 다 그렇다는 말이다.
◈ 예수님 자신을 드러내려고, 구원이란 방식을 적용해 !!
그런데 예수님의 피가 그 위에 덮치게 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아니하고 모두 용서가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의 범죄함을 인해서 스스로 죽으시고, 우리의 의롭다함을 인해서 스스로 살아났기 때문에 말이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살아난 것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의 자신됨을 드러내기 위해서 구원이란 방식을 우리에게 적용시켰다는 것이다.
(롬 4:25)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 하청업체의 비애 !!
이것이 참 쉽지 않은 내용인데, 예를 들어서, 삼성전자에서 중소기업에 하청을 주었을 때, 그런데 그 하청기업에 처음 입사한 스무 살의 신입생의 경우에는, 자기는 삼성이 어떻고 하는 것은 모르고 자기 회사만 다니는데, 그래서 자기 회사 때문에, 자기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 이런 물건을 만드는 줄 안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우리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참, 삼성이 고맙네. 우리 회사를 위해서 이렇게 물건을 다 만들라고 하네. 그러니 나는 여기서 열심히 일해서 촌에 있는 아픔 엄마에게 약값이라고 부쳐야겠다" 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경우에, 삼성이 고맙다고 하는 것은 자기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자기 회사가 잘되라고 도와주니 삼성이 고맙다고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막상 삼성전의 경우에는 무엇인가? 하청업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당연히 삼성전자를 위해서인데, 그 회사는 그냥 하나의 하청업체라는 말이다. 그래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잘라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아가씨는 졸지에 월급도 제대로 안 나오고, 촌에 약값도 제대로 부쳐주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노래방에 가서 알바를 하는데, 그러다가 졸지에 단속에 걸려서 경찰서에 가게 되는데, "엄마 약값 때문에 그랬으니, 한번 봐주세요" 라고 울고불고 한다는 것이다.
◈ 우리 인생은, 예수님에게 말려드는 구조 !!
그러니 이 세상을 구조적으로 보게 되면,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면 "참 좋습니다" 라고 할지 몰라도, 이 세상에서 좋으신 분은 하나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말려든 것인데, 예수님에게 말이다. 그러면 데모라도 해야하는가? 주님은 우리를 철저히 이용하셨다는 말이다.
인간은 자기에게 유리한 곳에 자기 감각이 충족되면 "참 고마우셔라. 우리 하나님!" 이라고 헛소리를 하는 줄 하나님은 뻔히 알면서도, 때로는 우리를 기쁘게 하고 때로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놓고는 나중에 "너는 안개야" 라고 엉뚱한(?) 소리를 하는데, 즉 "이제 써먹을 대로 다 써먹었다" 라는 것이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우리를 비하하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렇게 무서워하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주님 앞에서는 별 볼일이 없는, 대단치 않은 자들이라는 것이다. 자식이 집을 팔아먹어도 할 수 없는데, 우리도 나중에 치매가 걸리게 되면 자식을 보고는 "니가 왜 내 집을 팔아먹노?" 라고 할 것이고, 그러니 모든 인간은 주님의 작업에 말려들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우리를 붙잡고 있던 악마까지도 말이다.
◈ 잠잠함의 여유를 !!
욥이 마지막에 그것을 알았는데, 욥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했는가? 그것이 오후설교였는데 말이다. 욥은 잠잠했다는 것이다. 그 잠잠함의 여유, 즉 "이제 알았습니다" 라는 것인데, 황무지에 비가 오지 않는 이유도 알았고, 별을 만들 때 자기가 가담하지 않은 이유도 알았고 말이다.
만약에 별을 만들 때 우리가 가담했다고 하면, 아마 우리는 그 별을 이용하려고 했지 싶은데, 그 정도로 우리는 자기 중심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가담한 것이 아니니, 그러니 별의 움직임에 대해서, 즉 별이 자기 집에 떨어지게 되어도 우리가 하나님을 원망할 자격이 있는가? 없는가? 없다는 것이다. 자기 집에 떨어진 그 별의 잔해를 만드신 분도 하나님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사에 감사함으로 잠잠하면 되는데, 그게 곧 경배이고, 예배라는 것이다. 사마리아 여인이 나중에 권사가 되었는지 모르겠는데, 굳이 권사가 안 되어도 괜찮다는 것이다. 우리의 목적은 교회가 아니라,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기에 말이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복음이지 교회가 아닌데, 교회는 일종의 향락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친목을 도모하고 한다는 것이다.
진짜 우리에게 덮쳐진 것은 무엇인가? 복음의 능력으로 덮쳐진 것인데, 그런데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 기쁨을 위해서 복음을 뒷전으로 돌리고, 복음을 이야기하면서도 곁눈질을 하는데 말이다. 그러니 그러한 가짜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언급해주신다는 것에 대해서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도 가짜일 수 있고 말이다.
◈ 가짜 문과 진짜 문 !!
그렇다면 이런 가짜와 진짜를 구별할 때에 문이 있는데, 즉 가짜 문이 있고 진짜 문이 있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10장에 보면 진짜 문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고 하니, 예수님의 피, 즉 예수님의 죽음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음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고, 만약에 살아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거기에는 마귀가 우리를 꼬시기 위해서 가짜 예수를 설치해놓고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예수님은 죽은 분이다" 라는 것에 의미를 두어야 하는데, 그게 아니고 "예수님은 잠시 죽었지만 사흘만에 살아났다. 그러니 이제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에게 별 의미가 없다" 라고 나온다면, 그건 가짜에 속아넘어간 것이란 말이다.
예수님의 그 죽음의 문을 열 때 그냥 열 수 없는데, 그 문을 닫는 순간 우리도 이미 우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까, '나'가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서 '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음을 통과하게 되면 이 '나'는 없어져 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 예수님을 위한 새로운 '나'의 등장 !!
아까 '신, 인간, 자연' 이라고 했는데, 인간을 대신해서 '자아'를 넣어도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나'가 예수님을 통과하게 되면, 그 '나'는 예수님과 더불어 죽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위한 새로운 '나'가 등장하게 되는데, 그것을 두고 '믿는 나'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게 갈라디아서 2장 20절인데 말이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여기에 보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라고 한 다음에는 뭐라고 하는가?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라고 하면서, 그 이유가 뭐라고 하는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나', 즉 예수님에 의해서 만들어진 '나', 바로 그렇다는 말이다. 어린양을 증거하기 위한 용도로서의 '나', 그러니 누구 인생을 증거하면 안 된다는 말인가? 자기 인생을 증거하라고 있는, 그런 '나'가 아니라는 말이다.
◈ 어린양의 삶을 보여주는 용도로서의 '나' !!
오전에 그런 설교를 했는데, 어린양이 '나' 대신에 돌아가심으로서, 그 다음부터 '나'도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바뀌는데, 그 이전에는 '내'가 어린양을 소유했는데, 그런데 어린양이 죽고 난 다음부터는 어린양이 '나'를 소유하게 되어서, 이제는 '내' 인생은 없고, 어린양이 어떻게 살다가 가셨는지, 그것을 보여주는, 그런 용도로서 '내' 인생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성령을 받게 되면, 누구든지 주(主)가 생기게 되는데, 즉 "성령으로 아니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라고 할 수 없다" 라는 것은, 시험을 칠 때만 거기에 정답을 매기라는 의미가 아니고, 평소의 생활전체를 다 합치게 되면, 그 정답에 준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즉 "예수님은 나의 주시다" 라는 것이 준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말이다. 그 모든 것이 "오직 예수님은 주시다" 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런 저런 사건들을 부딪치게 만들고 계신다는 것이다.
(고전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그래서 어제 오전시간에 뭐라고 했는가? "천국은 '잘했다, 못했다' 라는 것을 기준으로 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가는 곳이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는데, 가지 않으래야 가지 않을 수가 없다는 말이다.
이제 교재 276페이지를 살펴보자.
** 예를 들면, 수녀는 빛이요 창녀는 어두움이다. 그러나 문이 열리고 빛이 내려오자 창녀와 수녀의 차이는 사라졌다. 모든 어두움뿐이었으며, 오직 빛을 받은 자만이 빛의 자녀가 된다.
◈ 수녀와 창녀 !!
여기에 보면 수녀와 창녀가 등장하는데, 이렇게 두 사람만 비교해보면, 한 쪽은 가난한 자를 도와주고 노인네들의 수발도 들고 하는데, 그리고 돈도 없이 가난하고 청빈한 삶을 살아가는데, 물론 틈이 나면 기타를 치면서 찬양을 하고 말이다. 그렇게 살아가는데, 자기들만의 고립된 생활, 그런 정결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창녀는 어떠한가? 아침도 아닌 12시가 지나서 늦게 일어나자마자 담배를 한 개비 입에 물고, 손님이 오는 안 오는지 화투장을 꺼내서 점이나 치고 하는데, 그러니 어떻게 서로 같을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서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방식이 그렇게나 다른데 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것을 뭐라고 했는가? 둘 다 향락이라고 말이다. 수녀는 그것이 즐거워서 하고, 또 창녀는 이것이 즐거워서 한다는 것이다. 돈보다도 향락이 우선인데, 제 아무리 돈을 잘 버는 의사라고 해도, 의대도 나오지 않은 사람에게 수술을 하라고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엄청 괴로운데, 뭘 알아야 수술을 하든지 말든지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돈을 아무리 잘 벌어도, 모르는 사람이 하려고 한다면 그것 자체가 지옥이란 말이다. 자기 적성에 맞는 것을 하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 빛 앞에서는, 모든 것이 다 어두움 !!
그런데 빛 앞에 오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모든 것이 다 어두움뿐이고, 오직 빛을 받은 자만이 빛의 자녀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곧 에베소서 5장에 나오는,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라는, 그 말씀의 의미라는 것이다. 마태복음 5장의 말씀도 그렇고 말이다.
(마 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엡 5:8)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이것이 무슨 의미인가? "너희들이 알아서 '나는 빛이다' 라고 우기지를 말라" 라는 것이다. 즉 "주여, 나는 빛이 되고 싶어요. 그러니 빛이 되게 해주세요" 라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게 나대는 것은 그야말로 반칙이라는 말이다.
계속해서 교재를 보자.
** 마치 쓰레기 더미에서 괜찮은 쓰레기와 썩어빠진 쓰레기를 구분했는데, 막상 지난 밤 내내 폭설이 쓰레기장 전체에 내리면서 아침 외관을 말갛게 닦아내었다. 모두가 하얗다. 자신의 자질을 기준으로 세상을 판단하는 것이 바로 미신이다. 예수님의 공로를 무용지물로 만들기 때문이다.
눈 내리는 풍경이 왜 아름다운고 하니까, 꼴 보기 싫은 것들을 그야말로 모두 다 하얗게 만들어주니 아름답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오후에 눈이 녹기 시작하면 모두들 불평을 터트린다는 것이다. 걸어다니기도 불편하고, 신발은 물론이고 자빠지기 일 수라는 말이다. 그러니 우리의 기준으로 이 세상을 판단하면 안 되는데, 왜냐하면 예수님의 공로를 잊어버리면, 그 순간 모든 것이 다 미신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교재를 보자.
** 인간이 자신에게 여전히 빛이 남아 있다고 여기는 한, 인간은 '자기 믿기'를 포기하지를 못한다. 이것을 자존심이라고 말한다. 왜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가? 그것은 예수님을 믿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 앞에서 자기를 자랑하기 위해서다.
인간이 얼마나 얍삽한지 모르는데, 향락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를 하겠는데 말이다. 이렇게 자기가 있는데, "예수님은 빛이다" 라고 하니까, 그 빛을 자기에게 가지고 와서 심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고 하니, 그 심겨진 빛을 가지고, 예수님만 빛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빛이 들어있는 나도 빛이다" 라고 주장한다는 말이다.
◈ '너희는 빛이다' 라는 의미는?
이것을 조금 더 길게 말해보면,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장에서 "너희는 빛이다" 라고 하셨는데, 그런데 이것을 우리가 받아서 "고로 나도 빛이다" 라고 하면, 그것이 과연 맞는가? 틀리는가? 물론 틀렸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너희는 빛이다" 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그것을 우리가 가지고 오려고 손을 대면, 주님이 우리의 손을 그만 치신다는 것이다. "노터치!" 라고 하면서 말이다.
왜 그런고 하니까, "너희는 빛이다" 라는 말씀은 우리가 얼른 받을 문장이 아니고, "너희는 빛이다" 라는 그 말씀과, "우리는 빛이다" 라는 것의 사이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개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그 십자가를 믿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라고 할지 몰라도, 그 십자가를 믿게 되면 "나는 빛이고 싶다" 라고 하는 그 향락이, 그 쾌락이 십자가를 통과하면서 그만 죽어버린다는 것이다. 저주를 받아서 말이다.
그 과정을 우리가 이해해야 하는데, 예수님은 분명히 "너희는 빛이다" 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그래서 우리가 "나는 빛이 맞아" 라고 한다면, 그 두 문장 사이에는 전혀 연결고리가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보고 "너희는 빛이다" 라고 하신 다음에 그냥 가버리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십자가를 중간에 넣게 되면, "우리는 빛이다" 라는 것이 십자가의 열매로서만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존재하는 우리가 예수님의 "너희는 빛이다" 라는 소리를 들었으니, 그래서 "나는 빛이 맞아" 라고 하면서 나서면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그렇게 하려면 십자가를 통과해야 하는데, 그런데 십자가를 통과하게 되면 무엇만 남는고 하니, "내가 그것을 접수해서 빛이 되어야지" 라고 하는 향락, 그런 즐거움이 같이 녹아져내려 버린다는 것이다.
◈ 그리아니하실지라도 !!
예를 들어서, 다니엘의 세 친구가 불 속에 들어갔는데, 사실 그들의 믿음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그리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절하지 않겠다" 라는 것이 보통 믿음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런 믿음을 가지고 불 속에 들어갔는데, 마침 다행스럽게도 예수님이 함께 계셔서 살려주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느부갓네살 왕이 "내가 잘못했다" 라고 하면서 다시 나오도록 했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이것을 세상적으로 보면, 그들이 얼마나 의기양양하고 우쭐거리겠느냐는 말이다. "이것들이 어디서 까불고 있어? 저리 꺼지란 말이야. 우리는 주님과 함께 있었어" 라고 하는데, 이게 바로 부흥사들이 하는 행태라는 것이다. 왜 그런가? 부흥사들은 전혀 주님을 만난 적이 없는데, 그래서 까분다는 것이다. 잠잠하지 못하고 말이다.
하지만 진짜로 불 속에 들어간 그 세 친구들은 "우리는 죽어도 당연합니다" 라는 것만 알뿐이라는 것이다. "오직 주님의 공로로 살았지, 내 믿음으로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 라고. 그것을 불 속에서 뿐만이 아니라, 불이 꺼져도 여전히 그러한 마음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 덤으로 사는 겁니다. 우리는 이미 죽었습니다" 라고 말이다. 그게 갈라디아서 2장 20절이 아니냐는 것이다.
우리가 성령을 받게 되면, 마치 그건 불 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과 동일한 것인데, 그러니 "이제는 내 인생은 없습니다. 주님을 드러내기 위해서 매일같이 나를 살려내시는 주님의 인생뿐입니다" 라는 고백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콩이든 팥이든 내놓으라고 할 입장에 못된다는 말이다.
계속해서 교재를 보자.
** 마태복음 22장과 누가복음 14장에서 예수님은 이런 비유를 말씀하셨다. 어떤 임금이 혼인잔치를 마련했지만, 초대받은 자들이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참석을 거부했다.
◈ 비유와 상징은 달라요 !!
알다시피 비유의 말씀이 참 어려운데 말이다. 비유를 상징이라고 하는 분도 있는데, 비유와 상징은 다르다는 것이다. 종종 "태극기가 무엇을 상징한다" 라는 말을 우리가 하는데, 이 상징도 어렵기 때문에 쉽게 이야기하면 다음과 같은데 말이다.
예를 들어서, "태극기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라고 했을 때, 천 조각인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면 빨간색과 파란색인가? 역시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인가? "태극기는 대한민국을 상징한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조그마한 천 조각의 태극기를 보면 대한민국이 생각난다는 말이다.
김연아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다음에 캐나다 합창단이 무엇을 불렀는가? 애국가를 불렀는데, 그것도 우리나라 말로 말이다. 그래서 그것을 본 대한민국 사람들은 눈물이 쏟아지고 말이다. 하지만 일본 사람들이라면 눈물이 나오겠는가? 그건 일본 사람들이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일본 국가가 나오면 우리도 역시 그들처럼 눈물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어디에 속해있는가? "나는 나밖에 모른다" 라고 하면서도 어느새 어디에 젖어있다는 말인가? '대한민국' 이란 것에 젖어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애국가가 나오니 눈물을 흘려야 하겠다고 해서 흘린 것이 아니라, 자기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기 소속감이 드러난다는 말이다.
◈ 라캉 - '인간의 주체는 상징물로 표현된다' !!
그것을 두고 라캉은 뭐라고 했는고 하니, "인간의 주체는 상징물로 표현된다" 라고 했는데, 즉 상징계 안에서 인간의 주체가 나온다는 것이다. 이러한 어려운 말이, 이렇게 예를 들게 되면 아주 쉬운 말이 된다는 것이다. 간단하게 정리가 된다는 말이다. "내가 지금 어디에 소속된다" 라는 것은, 어떤 상징이 와야 비로소 발견되는데, 그러니 자기가 자기를 다 모르는데, 그냥 알아 가는 중이라는 말이다.
예를 들어서, 어떤 아가씨가 결혼의 조건으로, "키는 180이고, 직장은 은행원이고, 종교는 기독교여야 한다" 라고 하는데, 그런데 우연히 길을 가다가 그만 반해서 "엄마, 이 남자가 너무 너무 좋아" 라고 하면서 결혼을 시켜달라고 한다는 말이다. 키는 160이고, 백수이고, 불교신자인데 말이다. 그래서 엄마가 "어디가 좋은데?" 라고 하니까, "뻐드렁니가 너무 좋아" 라고 한다는 것이다(ㅋㅋ).
그럴 때 그 딸이 가지고 있는 주체는 본인도 몰랐고, 물론 엄마도 몰랐다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어떤 상징물이 왔을 때, 그것을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고는 "아하, 내가 이런 존재구나" 라고 하면서, 자기에 대해서 알아 가게 된다는 말이다.
◈ 비유는, 상징이 허구임을 !!
그렇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이러한 상징이 허구임을 보여주게 되는데, 그것이 곧 '비유' 라는 말이다. 하다가 보니 진짜 어려운데, 즉 인간은 자기가 진짜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진짜가 아니고 가짜인데, 그 가짜임을 감추기 위해서 인간은 무엇을 동원하는고 하니, 상징들을 동원시킨다는 말이다.
"나는 김연아와 같은 대한민국 국민이다. 그래서 애국가를 들으면 눈물이 난다" 라고 함으로서, "대한민국이 가짜가 아니고, 또 김연아도 가짜가 아니고, 전부가 다 중요하다" 라고 우기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은 "나는 중요한 사람이다" 라는 것을 우기고 싶은 것과 똑같다는 말이다.
◈ 베리 디피컬트, 어게인 !!
너무 어려워서 다시 반복하면, 모든 것은 상징으로 포장이 되어있는데, 또한 우리가 어느 정도로 상징인지는 살아보면 아는데, 물론 산다고 다 아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아무튼 알아 가는 중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상징은 상징에 불과한데, 즉 헛방이라는 것이다.
만약에 자기가 대한민국 사람에게 그만 사기를 당해서 자살을 하려고 했는데, 미국 사람이 도와줘서 살았다고 하면, 그 다음부터 자기에는 대한민국은 나쁜 상징으로 자리를 잡고, 미국이 좋은 상징으로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렇게 모든 것은 상징 덩어리에 불과한데, 그것이 허구임을 예수님께서는 비유로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 예수님의 비유는, 하늘나라의 상징을 포함 !!
그러니 예수님의 비유에는 하늘나라의 상징이 포함되는데, 즉 상징과 상징의 만남이란 것이다. 그런데 인간들은 이 상징과 상징의 만남에서, 땅의 상징과 하늘의 상징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땅의 상징과 거기에 덧붙일 수 있는 또 다른 땅의 상징으로 봐서는, 그만 잘못된 해석을 해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씨 뿌리는 비유를 비롯한 모든 비유들을 다 말이다.
씨를 뿌리되 옥토에 뿌려서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었다고 하면, 그게 분명히 성경에 나오고 비유인데, 그런데 목사들이 뭐라고 하는가? "그러니 정신을 차리고 바르게 살면 하늘나라의 알곡이 될 수 있습니다.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전혀 비유가 무엇인지 모르고, 평소에 자기가 가지고 있는, 즉 "내가 잘 되어야 한다" 라는 상징에다가, 예수님이 주신 것도 역시 땅의 상징인줄 알고 덧붙여서, 그런 엉터리 해석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참 어려운 내용인데, 자칫 잘못하면 소화불량에 걸릴 수고 있고 말이다(ㅋㅋ).
◈ 예수님만이 진짜다 !!
아무튼 예수님의 비유의 핵심은 무엇인고 하니까, "예수님만이 진짜다" 라고 여기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인간들은 인간도 아니고 흙에 불과한데, 그런데 인간들이 인간이란 상징물을 자기에게 입혀서 "나는 인간이다" 라고 하면서 우기고, 그것도 그냥 우기는 것이 아니라, "나는 인간이기 때문에 살아야한다. 그러니 복을 달라" 라고 하면서 하나님께 우긴다는 말이다.
그게 곧 가인의 모습인데, 즉 "나도 인간이니, 내가 드린 제상에 대한 대가를 받아야 돼" 라고 가인이 우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님은 뭐라고 하시는가? "너 때문에 죽은 아벨이 진짜 인간이다" 라고 나오신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아벨과 사라의 계통이니 말이다.
그러니 예수님의 비유는 제자들도 처음에는 몰랐는데, 나중에 성령이 오고 난 다음에 알았지 말이다. 제가 여러 번 이야기를 했지만,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을 보고 "이 건물을 46년 동안 너희들이 지었지. 하지만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삼일만에 짓겠다" 라고 했을 때, 이게 요한복음 2장에 나오는데 말이다.
(요 2:1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요 2:20)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요 2: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
그런데 제자들은 '삼일만에' 라는 것도 금시초문이고, '짓겠다' 라는 것도 역시 금시초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이 삼일만에 짓겠다는 것은 건축물이 아니고, 예수님 자신의 부활한 몸을 이야기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땅에서 사용하던 일반적인 상징들을 그대로 사용하셨다는 것이다. "삼일만에 짓겠다" 라고 말이다. 그러니 예수님의 말씀을 곧이곧대로 들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문자적으로, 성경대로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문자대로 하자면, 히브리인들이 홍해를 건너올 때는 독수리 날개로 업어서 온다고 했는데, 그런데 도대체 독수리의 날개가 얼마나 큰가? 50만이 넘으니 최소한 수십 만 평은 되어야 하지 싶은데 말이다. 즉 인간의 힘으로는 건널 수 없다는 것이다.
독수리는 땅의 상징물인데, 사실 독수리는 없는데, 인간이 그런 이름을 붙였을 뿐이지 말이다. 독수리에게 물어보라는 것이다. 자기가 독수리가 맞는지 말이다. 그냥 "꽤액, 꽤액" 이라고 할뿐이란 것이다. 그러니 상징은 인간들끼리 편리하기 위해서 붙인 것이지, 독수리에게 허가를 받고 붙인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 '십자가 비유'를 증거하기 위해서 !!
아무튼 인간은 흙이면서도 자기가 인간이라고 계속해서 우기고 있는데, 그런데 주님은 그것을 어떻게 하시는가? 허용하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비유를, 즉 '십자가 비유(?)'를 증거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그런 헛빵 상징이 필요하고, 또한 허용하신다는 것이다.
이제 결론적으로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도 헛빵인데 감사한 것이 무엇인고 하니까,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심으로 말미암아서, 우리가 헛빵이라고 하든, 헛빵이 아니라고 우기든 간에,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서 우리를 지금도 굴리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게 곧 믿음이란 말이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모든 것이 주님의 이끄심대로 되는 줄로 압니다. 이 세상의 가짜들은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기의 즐거움대로 사는 줄 압니다. 하지만 그것을 분간하지 못하고 있는데, 물론 우리도 그렇고 말입니다. 하지만 성령께서 오셔서 가짜일 수밖에 없는 우리를 진짜로 바꾸어주시니, 그 은혜를 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