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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Re..마 16: 1- 4 (세상 분별)우리교회마태복음

Re..마 16: 1- 4 (세상 분별)

이름 : 이근호(IP:)

세상 분별
2004년 5월 30일
본문 말씀: 마태복음 16:1-4

16:1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16: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16:3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16:4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 가시다

눈만 뜨면 보이는 세상, 그 세상과 더불어 우리는 매일 같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천기에 대해서도 제법 맞출 줄 압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보이는 대로 살려는 마음에서 나왔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믿음이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입니다. 즉 사람들이 도저히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세계에 대해서 안목을 가진 자만이 신앙 인인 것입니다.

보이는 대로 살아가는 유대인들에 대해서 흔히 '나쁜 자'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보기 마련이지만 실제로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나도 솔직한 현대인의 모습이 아닐까요? 아침에 눈을 뜨면 보이는 세상이 마중 나와주게 됩니다.

그 보이는 세계 속으로 뛰어 열심히 살다가 해가 지면 집에 돌아 와서 씻고 자는 것이 우리네 일상이라면 과연 이래도 보이는 대로 사는 것이 나쁜 짓이라고 몰아붙일 수 있을까요? 모든 인간들이 이런 식으로 줄기차게 살아갑니다.

따라서 모든 보이는 것들은 기껏해야 같이 보이는 것들 안에서 조립된 것들입니다. 절간도 마찬가지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절에 가봤자 보이는 대로 살고 잠시 움집한 자들을 보고되고 교회에 가봤자 평소에 보이는 대로 살다가 잠시 예배당으로 움집한 자들을 잠시 대면할 정도입니다.

모든 것이 보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보이는 것으로 종결됩니다. 그 외 다른 가치가 없다는 점에 다들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길 가다가 절이 보여도, 혹은 교회가 보여도 양심에 주눅드는 일은 없습니다.

심지어 불신자들이라도 그 종교 단체의 내막에 대해서 알고 다음과 같이 한 마디 하면서 쏘아붙이곤 합니다. "그래, 종교 사업 벌려서 연보 모아 잘 먹고 잘 살아라!"라고 말입니다. 오늘날 사회에서 종교 단체가 즐비한 것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합니다. 그저 나름대로 생계와 생존을 목적으로 몸부림치는 일개 장사치로 간주해 버리고 맙니다.

그런데 문제는 절이 아니고 교회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실제로 계셨다는 점에 있습니다. 절에서 뭐 하는지, 교회에서 뭐 하는지는 하등 겁날 것이 없습니다만 예수님 입에서 무슨 말씀이 나오는지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로마서 9:33에 보면, "기록된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예수님은 만인에 대해서 거추장스러운 돌로 등장했다는 겁니다.

모든 인간은 예수님 앞에서는 걸려 자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잘날 척 하는 자들은 자빠뜨리는 분이십니다. 마치 큰 소리 치는 사람들의 뒤통수를 힘껏 내리쳐서 땅 바닥에 "퍽!" 엎어지게 하시는 분입니다.

절도 무섭지 않고 교회도 무섭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두들 눈에 보이는 대로 살고자 다짐한 형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를 떠오르게 된다면 왠지 우리의 일상적 삶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합니다. 여기서 '시험'이라는 말을 잘 새겨들어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 쪽에서 볼 때, 적의 감을 지니고 달려드는 공격을 뜻합니다.

즉 시험을 실시하는 자신들은 정당하고 시험을 받아야 될 예수는 옳지 않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실시하는 시험입니다. 자신의 정당성을 더욱 빛나게 하기 위한 공개 테스트입니다. 그래서 '시험'이라는 말속에는 항상 정당성이 담겨 있습니다.

즉 "나는 옳고 당신은 옳지 못하니, 옳은 내가 그른 당신을 검사하겠다"는 겁니다. 이런 예수님에 대한 시험은 결코 그 당시 유대인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소위 신자라는 작자들도 매일 아침에 눈만 뜨면 개시가 됩니다.

즉 "제가 기도한 대로 착착 이루어진다면 그제야 비로소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겠나이다"라는 의식으로 하나님을 시험하고자 합니다. 예수님이나 하나님을 시험하려는 자는, 이미 자기 존재는 어떻게 하든 너무나도 정당하니 손 댈 필요조차 없다고 장담하는 가운데 실시하게 됩니다.

계속 매일같이 하나님을 시험, 즉 공격하므로 서 자신의 정당함을 계속 지켜나가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그동안 유대인들의 의식 속에는 하나님께서 친히 행하시는 기적의 혜택자라는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22-23에 보면,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유대인들은 기적의 있음을 가지고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심을 확인 받고 싶어합니다. 이러한 심리는 오늘날 현대인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즉 '하나님이 계시다→그냥 계시는 것이 아니라 일하시면 계신다→그 일은 오직 하나님을 믿고 위한다는 무리에게만 제공된다→하나님은 인간의 힘을 능가하시는 분이시다→인간은 어디까지나 피조물에 불과하기에 한계가 있다→하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꼭 인간 한계를 넘어서시는 일로서 계시하신다→그 대표적인 예들은.

홍해의 갈라짐이요, 요단강의 갈라짐이요, 여리고성 무너짐 광야에서 '만나'라는 양식이 뿌려짐 등이다→진정한 메시야는 하나님이시다→이 땅에 오신다면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이적을 베풀 주어야 마땅하다→과연 예수라는 자에게 이런 기적이 있는지 없는지를 검사하겠다→이로소 예수를 검사하는 자신들은 정당하고 예수라는 자의 옳고 그름은 바리새인들이나 사도개인들의 심사하는 권위에 의해서 결정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바로 이런 의식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대꾸하셨습니다. "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서 나 예수가 너희에게 보여줄 표적은 '요나의 표적' 밖에는 없다"는 겁니다. 요나의 표적이란 요나가 기적을 행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베푼 기적 안에 놓여진 존재였다는 겁니다.

그가 보여줄 기적이란 자신이 행한 기적이 아니라 자기에게 베풀어진 기적입니다. 거기서 요나는 무엇을 체험했습니다. 그는 '참 죽음'을 체험했습니다. '참 죽음'이란 단순히 목숨이 멈추는 식이 아니라 '왜 나는 죽어야 하며 왜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받아야 당연한가?'를 파악하게 된 죽음을 말합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그것을 체험했습니다. 거기에 비해서 눈에 보이는 대로 아는 죽음이란 가짜 죽음입니다. 즉 힘 빠져서 심장 멈춰, 그래서 시신을 무덤 안으로 밀어 넣어 묻었더니만 나중에 흙이 되어 있다는 겁니다.

이 정도 죽음이라면 살만큼 살다가 힘 빠져서 흙으로 환원될 용기가 날 만도 한 죽음일 것입니다. "에이 세상 살기 싫은 그냥 팍 죽어버리지"라고 결심에 큰 결심이 필요치 않을 성 싶습니다. 그런 가짜 죽음은 인간도 얼마든지 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나가 경험한 '참 죽음'은 그 누구도 자의에 의해서 경험될 수 없는 죽음입니다. 왜냐하면 직접 하나님과 대면하는 죽음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바로 이러한 '요나의 죽음' 속으로 예수님께서 뛰어 드시려고 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적만이 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서 예수님이 보여주고자 하는 참 기적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십자가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는 참 생명을 얻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즉 참 생명은 참 죽음을 경과해야 한다는 겁니다.

요한복음 16:33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즉 예수님께서는 오직 자기 자녀에게 이 요나의 기적 속으로 초빙하려고 합니다. 자신이 왜 당연히 죽어야 하며 자신이 사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공로에만 근거함을 알게 하는 기적을 체험해 주고자 합니다.

마치 이사야가 경험했던 것과 같습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구나. 망하는 백성들 중에 내가 속했구나!"라고 하면서 이사야는 하나님의 면전에 참 죽음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더불어 이사야는 제단에서 나오는 숯불로 용서함을 받는 참 생명도 경험했습니다.

따라서 '참 죽음'을 경험한 진짜 신자라면 결코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기적을 요청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는 이 세상이 얼마나 큰 지옥인가를 알았기에 차라리 하나님의 심판이 반드시 주어진다는 사실에 대해서 너무나 고마워하고 반가워할 것입니다.

시험이라는 것은 시험을 실시하는 자신을 정당하다고 여기고 실시하는 겁니다. 따라서 우리가 잘 아는 주기도문에 봐도 늘 시험에 들지 말게 해달라고 기도하라고 한 것입니다. 즉 우리는 그만큼 정당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사는 자들이 지옥백성들입니다. 그것이 옳지 않음을 알았다면 우리는 더 이상 세상을 것을 희망하는 기도보다는 예수님만으로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자신이 죄인 중의 괴수인 것을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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