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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8강-합3장1-6(부흥)130324-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하박국

8강-합3장1-6(부흥)130324-이 근호 목사

이름 : 이한례(IP:203.90.42.222)

8강-합3장1-6(부흥)130324-이 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 하박국 3장 1절부터 6절까지입니다. 구약성경 1304페이지입니다.

하박국 3:1-6

“시기오놋에 맞춘바 선지자 하박국의 기도라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하나님이 데만에서부터 오시며 거룩한 자가 바란 산에서부터 오시도다 (셀라) 그 영광이 하늘을 덮었고 그 찬송이 세계에 가득하도다 그 광명이 햇빛 같고 광선이 그 손에서 나오니 그 권능이 그 속에 감취었도다 온역이 그 앞에서 행하며 불덩이가 그 발밑에서 나오도다 그가 서신즉 땅이 진동하며 그가 보신즉 열국이 전률하며 영원한 산이 무너지며 무궁한 작은 산이 엎드러지나니 그 행하심이 예로부터 그러하시도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오는데 그 능력의 성질이 어떤 경우에는 용서가 나오고 어떤 장소에는 하나님의 무서운 분노가 나오는 겁니다. 분노와 용서가 같은 지점에서 나온다는 거예요. 참 신기한 일이죠? 우리 인간하고 다르죠. 사람은 성낼 때는 성내고 화낼 때는 화내고 좋을 때는 좋은데, 같이 나온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화를 내시는 동시에 저쪽에서 온정을 베풀어 주시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한쪽은 저주하고 한쪽은 심판하는 것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그런 식으로 일하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원래 계획했던 것이 있어요. 원래 하나님이 계획했던 것은 사람 위주가 아니고 하나님의 약속을 스스로 이루어내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겁니다.

거기에 대해서 2절에 보면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부흥이란 말, 이 말만 들어도 사람들은, 교인들은 흥분에 휩싸입니다. 이 말은 뭔 뜻이냐 하면 ‘주여, 우리를 어느 때에 부흥케 해 주시겠습니까?’ 이렇게 하는 거예요. 이름도 그냥 교회 이름도 아니에요. 부흥교회가 있고 그리고 또 교회가 되겠다 싶으면 자기 가게 할 때 부흥 신발, 부흥 커피샵, 부흥 커피샵은 거의 없어요. 촌스럽기 때문에. 부흥 옷가게, 그리고 사업체도 주식회사 부흥 이런 거. 부흥에 환장을 했어요. 커지는데.

그런데 이 부흥이란 말이 성경에 딱 한군데 나오는데 이 하박국 오늘 본문 3장 2절에 딱 아다리 됐어요. 여기 나오는 내용의 부흥이라 하는 것은 우리가 가진 것의 부흥이 아니고 예수님의 말씀이 활발해 지는 것을 부흥이라 하는 거예요. ‘주여 내 마음 속에 내 영혼 속에 주의 말씀이 이렇게 활발하게 활동해 주시옵소서.’ 이럴 때 쓰는 게 부흥 이예요.

어떤 옷가게가 이름을 간판을 부흥이라 했다면 그 다음부터 그 옷가게는 옷이 잘 팔리고 안 팔리고 문제가 아니고 옷이 얼마나 팔리나가 부흥이 아니라 몇 명이 오든 간에 ‘말씀이 그 안에서 살아 역사하는 그런 가게가 되게 하옵소서.‘ 그런 취지로 간판을 부흥이라고 한 가게는 아마 없을 겁니다. 한의사도 부흥한의원, 손님 많이 오라는 그런 거겠죠.

이걸 어렵게 이야기하면 이렇습니다. 질적으로 우리와 같은 질로서 주께서는 일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왜냐 하면 우리가 같은 질을 하나님께 요구한다면 우리는 여기 5절에 “온역이 그 앞에서 행하며 불덩이가 그 발밑에서 나오도다” 온역은 전염병이죠. 이런 것을 우리는 아예 기도 속에 내용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여 우리 집을 부흥케 하옵소서. 부흥을 불타게 하고 TV 다 홀랑 불타게 하옵소서.’ 이런 기도 안 하잖아요. 사람들이 질적으로 현재 내가 기대하고 있는 질과 동일한 성질로서 계속해서 확장되게 하옵소서, 라고 할 때 부흥이란 말을 쓰는 거예요.

그런데 막상 하나님의 말씀이 부흥될 때는 양쪽 다 서로 저주와 축복, 축복과 저주가 다 나오는 겁니다. 다 나오는 이유가 뭐냐 하면 저주 받는 걸 봐서 주님의 축복이라는 것이 저주를 봐서 진노 속에서 ‘아, 그러니까 우리가 행복하구나.’ 라는 것을 우리가 깨닫는 거예요. 그냥 맹탕으로 복 받는다고 복이 아니고 어려움 가운데서 힘든 가운데서 그걸 뽑아내는 겁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부흥케 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가? 그러면 이스라엘은 망하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선지자들이 이스라엘을 망하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하나님이여, 이스라엘이 망해도 좋습니다. 제발 우리 속에 말씀만 일어난다면 이까짓 거 껍데기 같은 이스라엘이 망해도 괜찮습니다.’라는 기도를 지금 하박국이 하고 있는 거예요.

17절에 보면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게 하옵소서” 라는 것이 부흥이다 이 말이죠. 그게 부흥이거든요.

그러면 그 소리를 남들이 들으면 어떻게 듣겠습니까? ‘그럼 외양간은 왜 지었는데? 그럼 포도나무 묘목은 봄에 왜 심었는데? 무화과나무는 왜 심었는데? 니가 앞뒤가 모순되잖아. 앞뒤가 안 맞잖아. 하나님이여.’ ‘우리 농장을 부흥케 하옵소서. 감나무는 왜 심었는데? 비파나무는 왜 심었는데?’ 추워서 말라죽으라고 해야죠.

이게 뭐냐 하면 이런 거예요. 성경 요한복음에 보면 “육으로 난 것은 육이고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다.” 이 말이죠. 그러니까 육을 알아야 영을 알아요. 사람들이 오해하기를 육을 모르면 육도 모르면서 영을 오해하게 돼요. 육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마 더욱 더 멋있게 고상하게 되면 영이 아닐까? 자꾸 오해하는 겁니다. 전혀 엉뚱한 거거든요.

제가 아침에도 언급했지만 “니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질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육으로 한번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내가 어떤 여자하고 관계해서 아이를 낳으면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하갈은 아니야, 아기를 못 낳는 여자하고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아라. 이 말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이야깁니까? 얼굴 못 생긴 여자하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라. 이건 이해가 되는데 애기를 못 낳는 여자하고 결혼해서 애기를 낳아라. 말하는 제가 부끄러워요. 이게 말이 되는 소립니까? 그런데 그것이 뭐냐, 육과 영, 영과 육은 중간에 연결점이 끊어져 있다는 겁니다. 이게 연결되지 않아요. 오직 말씀이 부흥할 때만 연결로 부흥 된다 이야깁니다.

그러니까 말씀이 딱 주어지게 되면 우리는 대번 그걸 육으로 해석을 해요. 모든 인간의 버릇이고 우리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방금 육이란 말을 했지만 그걸 좀 더 어렵게 이야기하면 육이라 하지 말고 역사라 보면 돼요. 우리는 어떤 주어진 것에 대해서 성경 말씀을 뭐로 대체하느냐 하면 나의 신앙 연조로 대체해요. 연륜, 교회 몇 년 나와서 교회에 어떤 기여를 했다. 봉사를 했다. 이런 걸로 그걸 연결의 길이고 하나님의 일로 대체해 버립니다. 부흥회 할 때 주로 메뉴가 그런 거잖아요. 자기가 얼마나 봉사했더니만 이제 와서 낙을 본다고.

그러나 하박국 같은 경우는 하박국이 봉사했더니만 낙이 뭐냐 하면 “무화과나무에 소출이 없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고 밭에 식물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는 것“ 이게 결과예요. 그래도 ”나는 구원의 하나님을 기뻐한다.” 이게 육에서 영으로 이미 말씀의 연결고리로 해서 이미 넘어선 사람의 특징입니다.

같은 질을 추구하게 되면 그것은 이미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이해 못한 게 돼요. 왜 부흥이란 말을 써도 잘못 쓴 겁니다. 제가 우리 어머니하고 이야기하면서 참 많은 걸 깨달았어요. 어머니하고 제가 이사 가는 집을 제 아내가 소개해서 우리 집 근처에 가서 분명히 봤어요. 어머니 이사 갈 집을 앞에 죽 봤어요. 보고 난 뒤에 1시간 지나고 제가 물었어요. ‘어머니, 이사 갈 집 봤습니까?’ ‘어데?’ 그래서 제가 설명했죠. ‘어머니가 아까 어떤 집을 봤는데 신발 신고 가서 거실을 봤죠?’ ‘봤지.’ ‘베란다 봤죠?’ ‘봤지.’ ‘화장실 봤죠?’ ‘봤지.’ ‘부엌도 봤죠?’ ‘그래, 봤어.’ 그런데 어머니가 집은 안 봤다는 거예요. 바로 그런 거예요.

내 질문이 잘못된 질문이었습니다. 육적으로 질문한 거예요. 역사적으로. 역사적으로 베란다 본 적이 있고 방을 본 적이 있는데 집은 본 적이 없는 거예요. 우리 어머니가 집 보려고 하면 여기 오셔서 몇 년 더 사셔야 돼요. 이제 집에 있을 거예요. 우리는 실컷 이 땅에 살았는데 뭔가 교회 와서 복잡하고 싸우고 웃고 했는데 정작 하나님의 일을 맛 봤다는 느낌을 가질 수가 없어요. 그건 왜냐 하면 역사적으로 해석을 다 해치웠기 때문에 그래요. 교회 왔다. 예배 드렸다. 뭐 했다, 했다, 했다, 했다 했는데 한 번도 믿은 적은 없습니다. 전부 다 내 행함이죠. 내가 다 행한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어떻게 하느냐 하면, 우리가 한 것을 삭제 시켰어요. 완전히 농협에 있던 IP와 똑같은 겁니다. 컴퓨터 악성코드하고 똑같아요. 치면 지워져 버리고 치면 지워져 버리고. 그래서 우리는 어떤 상태냐, 제발 우리가 늘 살아있지만 늘 죽어있다고 간주하시기 바랍니다. 죽어있다고 간주하게 되면 매일같이 우리가 살려내는 것을 내 역사로 간주하지 않고 주님의 말씀의 공로로 넘어갈 수 있는 바탕으로서의 우리 인생이 되시기 바랍니다. 내가 이렇게 살아가는 이것도 성경 말씀 보니까 이것도 주의 말씀 성취한 열매, 저것도 주의 말씀 성취한 열매, 구체적으로 말하면 ‘내가 머리카락도 세고 발걸음도 세신다.’ 할 때 그 말씀을 모르고 그냥 걸어버리면 내가 내 발을 움직인다 하지만, 그 말씀 듣고 난 뒤에 보니까 ‘아! 발걸음과 머리카락이 빠지는 이 모든 것도 주께서 뽑아줘서 뽑히고 심는 것도 주께서 심어준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낍니다.’ 뭐 한 3초갑니까? 3초도 안 가지만, 하여튼 어쨌든 간에 우리로 하여금 주의 뜻은 자꾸 우리 역사, 육으로 된 것을 날마다 영으로 전환시키는 그 작업에 우리가 이미 놓여 있다는 사실, 이게 영적인 인간 아닙니까? 여러분 완전함을 추구하지 맙시다. 완전함은 완벽함을 추방시킵니다. 나의 완전함과 나의 완벽함은 항상 진짜 주님이 주시는 완전함과 완벽함을 미워하게 돼 있어요. 배척하게 돼 있습니다. 지가 완전한테 뭐하려고 완전한 사람을 믿습니까? 믿기는 뭘 믿어요. 행하면 되지.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모방해서 자기 역사를 만들려고 해요. 아침에도 이야기했지만 신데렐라 신발 안 맞는데 억지로 끼어 넣다가 십자가 마을 튀어나간 사람 한둘이 아닙니다. 신발이 안 맞아요. 지는 맞추려고 구두가 찢어지려고 해. 어떤 때는 밑에 깔창을 3개 깔아 봐도 안 맞아. ‘오직 우리는 죄인이다. 오직 피로만 구원받는다.’ 이게 분명히 맞기는 맞는 이야긴데 온 몸으로 느껴지지를 않아요. 그러니까 하는 이야기가 ‘우리가 몇 년 전부터 그거 알고 있었다.’ 몇 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이거 역사 아닙니까? 이게 육이거든요. 아! 인력으로 안 되는 거예요. 나 부엌 봤다. 베란다 봤다. 봤는데 내가 봤다는 것만 기억나고 나머지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요. ‘하나님이여, 내 인생 이렇게 삽니다. 멋있죠?’ 그거만 기억나는 거예요. 전혀 한 번도 믿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면 육에서 영을 어떻게 하는가, 그것은 바로 그들이 지켰다는 그 법을 예수님이 어겨버립니다. 제가 갑자가 어려운 말 했는데 쉬운 말로 이렇습니다. 성경에 마음속으로 간음하는 것도 간음이라 했잖아요. 마음속으로 간음하는 것도 간음이라 하니까 그 유대인들이 삐쳐서 예수님을 죽여 버렸다 이 말이죠. 그런데 우리는 뭐라 하느냐 ‘우리는 예수님 사랑합니다.’ 하거든요.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말을 하면서도 우리는 뭘 구분하느냐 하면 마음속으로 간음한 그 간음과 신체적 접촉에 의한 그런 간음을 구분해서 ‘주여 마음속으로 간음했지만 신체적인 간음은 아직 안했습니다.’ 이래서 지 잘난 맛에 사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을 죽일 수밖에 없는 유대인하고 똑같은 사고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예수 믿는다고 자기는 유대인이 아니라고 우기는 거예요.

그런데 만약에 주께서 심판할 때 '니가 몇 날 몇 시에 니가 마음속으로 간음했잖아. 그러니까 간음한 거 맞잖아.‘ 하고 죄를 지적하게 되면 ’그래도 신체적인 간음은 안 했잖아요.‘ 이렇게 나온다니까요. 그걸 마지막 때 심판 때 그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니고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게 되면 저보고 화를 낸다 이 말이죠. 성경에 있는 말인데. 그런데 여기도 문제가 있어요.

그러면 ‘마음속으로 간음조차 안하면 되잖아.‘ 이렇게 나오잖아요. 자, 그렇다면 마음속으로 간음 안했다는 것은 어떤 거냐 하면 어떤 예쁜 여자, 제가 젊었을 때 아직도 예쁜 여자는 누구냐 하면 정윤희가 예쁜데 요새 제 2의 정윤희가 나타났어요. 수애라고 똑 닮았어요. 자 살아있는 수애라고 정윤희 닮은 사람을 마음속으로 손잡았다. 이게 간음에 해당될까? 손만 잡았는데, 아니 손잡을 뻔했는데, 마음속으로. 마음속으로 손만 잡을 뻔했는데 이게 간음이 되느냐 하는 문제를 내가 측정해요. 손은 안 잡았으니까 간음이 아니다. 내가 측정을 해요. 왜 그렇게 법을 만듭니까? 완벽하기 위해서. 내가 스스로 완벽하고 완전하고 뭔가 주님 앞에서 할 소리 한번 만들어 보려고 하는 거예요. 이건 나의 역사를 만들어 보려는 겁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만든 모든 법에 주님은 위반자가 돼 버려요. 법을 어겨 버립니다. 그러면 우리는 잘난 사람 되려고 시도하는 그 방향과 정 반대 방향으로 주님은 그 모든 법을 어긴 사람이 돼서 상종을 못할 분으로 만들어 버려요. 제사 하면 받는다. 이거 우리가 만든 법입니다. 하나님은 ‘제사하면 받아주실 거죠?’ 주님께서는 ‘나 니 제사 안 받아.’ 이게 가인의 제사거든요. 우리는 제사는 신이 되면 받아야지, 하는 건 우리가 만든 법이예요. 왜, 그래야 내가 정당하고 내가 완벽하고 적합한 존재기 때문에. 오늘 죽어도 천당 갈 존재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법을 내가 만들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주님은 그 법을 법으로 간주하지 않고 그 법을 위반해 버립니다. 위반해 버리니까 주님이 내가 만든 그 기준에 주님이 삐졌다는 것이 몹시 우리로서는 불쾌해서 두 번 다시 그 주님은 안 믿겠다고 우리는 선언해 버립니다.

복음을 전하면 사람들이 교회에서 뛰쳐나가는 이유가 복음을 전할 때는 타협적으로 오는 거예요. ‘목사님 이정도 믿어줄 테니까 신자라고 간주해 주세요.’라고 나와요. ‘저는 이 정도 믿는 것을 신자라고 간주 못합니다.‘라고 나오니까 삐진 거예요. ’내가 이정도 믿었으니까 그러니까 신자라고 해주세요.‘라는 말보다도 ’예수님이 우리의 어떤 죄라도 예수님이 용서해 준다는 예수님의 피를 바라보면 저건 누가 뭐래도 그건 신자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 사람은 예수님 그 이야기 아니까 하지 말고 내 이야기, ‘내가 신자 맞죠?’ 라고 자기 자신을 보라는 거예요. 볼 것 없습니다. 여러분, 바바리 맨 벗어봐야 볼 거 없어요. 볼 거 없는데 자꾸 바바리로 감추니까 있는 것처럼 보이죠. 나는 ‘패 까라’ 이 말이죠. 그들은 ‘못 까겠다.’ 바바리 입고 교회 안 나오는 거예요. 그 다음부터는. 전부 다 어느 교회에 가는가, 바바리 입은 사람들만 집결된 모임이 있어요. 서울에 있어요. 거기는 전부 다 바바리 맨만 오는 거예요. 전부 다 신자라고 우기고 오는 거예요.

이 세상에서 교회는 한 군데밖에 없습니다. 내가 교회를 옮기든 안 옮기든 십자가 마을에 있든 안 있든 관계없이 오직 우리는 죄인이고 구원은 오직 피 값으로만 구원받는 거예요.

광주 강의에서도 그런 이야기했습니다마는 다윗 이야기 했습니다마는 아침에도 그런 이야기했어요.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했을 때 그때 죄인 된 게 아니고 그 순간에 이미 나는 죄인으로 살아왔고 날 때부터 죄인이라는 것을 점검하는 확인된 순간이잖아요. 그렇다면 그걸 그대로 적용시켜 봅시다. 그때 마침 귤을 까고 있었어요. 지금 귤을 까고 있는데 귤 까는 게 주의 일입니까? 주의 일이 아닙니까? 라고 물으면 나는 날 때부터 죄인이기 때문에 귤을 안 까는 게 아니라 까면서도 울면서 까는 거예요. ‘주여 죄인입니다.’라고.

그러니까 그냥 사시면 된다니까요. 그냥 살면서 그 사는 것 모두를 통해서 우리는 그야말로 ‘내가 심은 무화과나무가 무성하고 외양간에 소가 넘치는 것을 원하는 그래야 복입니다.‘라고 우기면서 그걸 느끼는 거예요. 사실은 내가 장사 했으면 돈 벌어야지, 하는 생각을 우리는 지울 게 없다는 걸 느끼게 만들면서 말씀만 부흥케 하옵소서. 그것이 바로 왜 내 힘으로 내 완벽함으로 구원받지 못하는 그것이 뭐냐, 귤 까는 거예요. ’귤 3개 깠습니다. 구원해 주세요.’ 이건 안 되잖아요.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왜 2개가 한꺼번에 나오느냐, 왕은 모든 규칙을 다시 정리합니다. 우리가 왕이 아니잖아요. 왕은 따로 계시거든요. 구원하시는 왕은 인간들이 하는 역사를 보면서 규칙을 본인이 정해버려요. 본인이 정하기 때문에 왕보고 삿대질하면서 ‘왜 이렇게 해놓고 자기 맘대로 규칙을 바꿉니까?’라고 삿대질 할 수 있는 권한이 우리에겐 없습니다. 이 말을 다른 말로 하면 우리는 그냥 주께서 만든 우리가 모르는 법이지만 법에 의해서 얻어먹는 식으로 살아가는 거예요. 가난한 자나 부자나 다 주께서 만드셨다. 이 말은 모든 운명과 팔자는 우리 선에서 결정된 것이 아니고 윗선에서, 왕 되시는 분에 의해서 결정돼서 우리에게 쏟아지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짜증나죠. 다 부자 되고 싶은데 어려우니까. 그럴 때 짜증을 하나님께 내면서 뭐하느냐 하면 왕의 자리와 우리 사이에 연결시키는 것이 말씀의 부흥입니다. 말씀이 부흥이 안 될 때는 짜증만 났는데 말씀이 부흥이 돼서 딱 연결시켜 보니까 ‘아! 내가 가난해야만 주를 알 수밖에 없는 식으로 주께서 나를 이렇게 만드셨구나. 내가 부자가 됐다면 구원받지 못한 상태에 있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겁니다.

이게 바로 씨 뿌리는 비유인데 씨를 밭에 뿌렸는데 어떤 사람은 마귀가 와서 쪼아 먹어 버리고 어떤 사람은 뿌리니까 좋다 하다가 환란이 일어나니까 넘어져서 예수고 뭐고 끝나버리고 어떤 사람은 일이 너무 잘돼, 부자 되고 모든 일이 범사에 형통하니까 예수 믿을 이유가 없었어요. 건성으로, 건성으로 믿는 거죠. 그리고 어떤 씨는 옥토에 열매 맺혔다. 이 이야기가 무슨 이야깁니까? 모든 일은 주께서 알아서 다 하신다는 이야기잖아요.

하나님께서 이렇게 여기 “전률하며 땅이 진동하며” 이렇게 나온다는 것은 현재 말씀을 깔아버리면, 세상은 지옥 갈사람 따로 있고 천국 갈사람 따로 있다가 눈에 보이는 거예요. 그런데 말씀이 안 오게 되면 ‘왜 저 사람은 잘 사는데 나는 왜 힘들게 살아가나’ 이것만 보인다니까요. 그런데 말씀이 오게 되면 ‘야! 우리가 구원받은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이건 돈 주고도 못 살 영역이다. 이건 아이큐 높고 이건희처럼 부자 돼도 이건 우리 이 세계는 못 들어온다.’라고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겁니다.

그럴 때 누가 했습니까? 하면 뭐라 합니까? 왕인 내가 일방적으로 정해놓고 내가 정해놓은 규칙이 말씀을 통해서 나한테 덮쳐버리니까 그전까지는 내 규칙, 내 규칙하면서 잘난 체 하다가 주님의 규칙이 왔을 때 주님의 규칙이 이렇게 고바울 줄이야, 비로소 우리는 그 짧은 순간이지만 깨닫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바라기는 여러분 일생이 늘 말씀이 부흥되게 하옵소서. 그저 올 한해도 저주 받는 가운데서 말씀만 그냥 부흥되어서 모든 범사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의 일을 우리가 오해했었습니다. 내 규칙이 주 앞에 통하는 줄 알았습니다. 내 규칙은 사실은 내 역사고 내 잘남의 역사인데 자기 부인이 안 된 상태에서 하나님 믿고 천당 가려고 시도했던 그것이 잘못이었습니다. 왜 저 사람은 지옥 갈 수밖에 없는가를 볼 때마다 왜 우리는 천국에 가야 되는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감사할 수밖에 없는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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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