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강-YouTube강의(이방인)130321-이 근호 목사
27강-YouTube강의(이방인)130321-이 근호 목사
이름 : 유일자(IP:116.33.234.248)
27강-YouTube강의(이방인)130321-이 근호 목사
27강 제목은 “이방인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방인이 나오는데 유대인 말고 일반 사람들은 상당히 이상히 여깁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만들 때 공평하게 만들었다고 생각 하는데 어떻게 이방인이라는 말 따로, 그리고 이스라엘 따로, 따로 따로 구별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공평하면 이 공평이 모든 인간에게도 공평해야 되는데, 왜 공평 하신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을 마치 내놓은 자식처럼 같은 인간인데 왜 그렇게 간주하느냐 이렇게 생각이 드실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은 만들어 놓은 것 자체가 전부다 공평하게 처리 하실 것 같지만 인간을 만들어 놓은 분이 하나님이잖아요.
만드신 분이 만들어 놨을때는 똑같이 취급하겠다고 우리 만들어진 입장에서 생각했지만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 때 그냥 만든 것이 아니고 누구를 보여주기 위해서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을 보여주기 위해서 만들어졌습니다. 이 말을 달리 얘기하면 예수님이 하신일이 중요하다고 해서 우리를 만들어 놨습니다.
이걸 달리 얘기하면 피조물의 운명이라 하는 것은 예수님이 하신 일을 보여주기 위해서 우리는 따로 따로 운명이 나누어져야 되는 겁니다. 공평한, 동일한 운명 같으면 예수님이 하신일의 취지가 살아나질 않아요.
이걸 어렵게 하나님은 언약을 통해서 일하신다. 더 어렵게 얘기하면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다. 달리 얘기하면 우리 위주가 아니고 하나님 자신이 던져준 언약을 실현시키는 와중에서 우리를 집어 넣는다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 언약으로 유명한 것이 창세기12장에 나오는 “나는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 저주를 내린다.” 해서 축복과 저주를 아예 취소시키고 할 수 있는 권한은 아예 우리한테 없습니다.
그렇다면 언약이 언약대로 이뤄질려면 반드시 저주 받는 쪽이 필히 나타나야 되고 축복받는 쪽이 필히 나타나야 됩니다. 그 저주 받는 쪽에 역할을 구약에서는 이방인이라는 사람들이 담당을 한 겁니다. 그리고 축복받는 것은 바로 이스라엘인이 보여주기 위해서 담당한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축복과 저주가 인간의 행함에 의해서 결정 되는 것이 아니고 이미 하나님의 언약대로 움직이는 활동에 의해서 축복받을 자는 축복받고 저주 받은 자는 저주 받도록 확정돼 있습니다.
누가 저주 받는가! 그건 이방인들이 저주받는 역할을 해야 되는 겁니다. 바로 구약에서 저주 받는 사람은 언약에서 배제 됐기 때문에 저주받는 거예요. 그러한 이방인의 입장이 신약에 와서도 계속 되는데요. 문제는 하나님의 축복받기로 작정된 그 이스라엘 사람한테 축복과 저주를 결정질 하나님이 도리어 매 맞고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여져 버립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일때 “자기는 어떻게 하든지 축복받는 백성이기 때문에 예수당신도 우리 의견에 동조해야 된다.” 라고 억지를 부렸기 때문에 예수님은 살해당한 거예요. 예수님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누가 축복받는 사람 받는거 맞습니다. 저주 받는거 따로 있는거 맞습니다. 어떤 인간도 그 기준에 대해서는 몰랐던 겁니다. 하나의 비밀로 감추어진 거예요. 그런데 유대인들은 축복받고 저주받는 다는 것은 이미 저거들이 알아챘다고 주장했던 겁니다. 제가 아까 처음에 얘기 했듯이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사람은 축복받을 사람이고 언약을 받지 못한 이방인들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저들은 장담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언약의 내용에 대해서는 그들은 만나 본 적이 없어요. 일방적으로 자기들은 유대인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이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받는다고 문자적으로 해석한 겁니다. 그런데 그 해석이 틀렸습니다.
마태복음6장 31~32절에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이렇게 했습니다.
참 재미있는 말씀이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를 염려 하는 것은 이방인들, 저주받은 자들, 지옥 갈 사람들이나 이런 생각으로 평소에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그 당시에 복 받은 사람이라고 자처하는 유대인들에게 들이 될 때에 그들은 이 말씀을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는 분명히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간주했는데, 자기는 어떤 경우라도 이방인은 아니라고 오직 아브라함 자손이라고 혈통적으로 보장 받는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예수님께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그런 것은 저주받을 지옥 갈 이방인들이 하는 짖이다.라고 했을 때 누가 이방인이 아니라고 할 자신 만만하게 얘기할 사람 어디 있습니까?
세상에 어느 인간치고 아침에 눈뜨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않는 사람 누가 있습니까? 세상에 나가 보세요. 인간들의 자랑거리가 뭡니까? 각 집안에 명예가 뭡니까? 남들보다 더욱더 많이 마시고, 먹고, 입고 한 그것이 기준이잖아요. 이방인아닌 사람이 누가 어디 있습니까. 지옥 안 갈 사람, 저주 안 받을 사람 누가 있습니까.
자~ 이런 얘기를 그 당시 유대인보고 하니까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여 버린 겁니다. 왜! 우리는 유대인들인데 언약을 아는, 하나님을 아는 축복받은 백성인데 당신이 그렇게 얘기해버리면 우리는 졸지에 지옥 갈 이방인처럼 취급 받잖아.라고 화가 나서 예수님을 죽인 겁니다. 그렇다면 모든 인간이 이방인이라고 주장하든, 아니라고 주장하든 결국은 주의 말씀에 입각해보면 이방인이 아닌 자가 한명도 없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누가 구원받고 누가진짜 언약 사람이 될까요? 에베소서2장에 보면 십자가가 나옵니다. 십자가는 그 당시에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지상에서 지평으로 둘로 나눔을 십자가지신 예수님이 하늘에 승천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속한 자와 지상에 남아서 망해야 될 사람과 수직적으로 구분하는 기준으로 십자가가 주어지는 겁니다.
에베소서2장 13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예수의 피안에 있는 자들과 예수의 피 밖에 있는 자들을 새롭게 결정적으로 규정하는 언약의 결정판이 이제는 마지막으로 등장 했다는 이야깁니다.
예수님의 피 안에 있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모든 언약을 다 이루었기 때문에 모든 언약을 다 이룸 그 안에 있다는 겁니다. 피안에 있다는 것은 그냥 찍어 바른다는 뜻이 아니고 예수의 피안에 있다면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 위해서 작정하신 참 이스라엘 되는데 하등의 조금도 하자가 없고 완벽한 조건이 다 갖춰져 졌다는 이야깁니다.
이 안에서는 더 이상 지상에서 구분하는 너는 혈통적으로 유대인이다. 나는 혈통적으로 이방인이다. 남의 백성이다 라는 구분이 지어지고 수직적인 구분만 새롭게 개시를 하고 시작을 하는 그러한 시점에 우리가 드디어 놓여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4장 3절에 보면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쫒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이렇게 해서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십자가 피안에 있는 사람은 이제는 이방인의 때에 저촉을 받지 않는다고 분명히 얘기 합니다.
너희들은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방인들이 하는짖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숭배. 이러한 것에 구애 받을 필요 없다. 이런 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언약이 이런 저런 짖들 한 것에 더 이상 의미를 두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에 대해서 우리가 지켰냐 안지켰냐에 대해서 더 이상 신경 쓸 필요가 없을 정도로 우리는 예수님 피안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새삼스럽게 음란 하냐 안하느냐를 따져서 음란안하기 때문에 지옥 간다 천국 간다를 우리가 새삼스럽게 새로운 기준으로 행함을 결정내릴 그럴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이방에게 저촉시킬 그런 때는 이미 지나간 거예요. 왜! 우리는 하나님의 참된 이스라엘 십자가 용서 안에 놓여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첨부파일 : 27강-YouTube강의(이방인)130321-이 근호 목사.hwp (22.5K), Down: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