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강-YouTube강의(교회의 할 일)130321-이 근호 목사
26강-YouTube강의(교회의 할 일)130321-이 근호 목사
이름 : 유일자(IP:116.33.234.248)
26강-YouTube강의(교회의 할 일)130321-이 근호 목사
26강으로 “교회의 할 일”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성경에 보면 교회라는 것이 외부적으로 사람들이 모여 있는걸 가지고 교회라고 하거든요. 사람들이 모이게 되면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모이는 그 숫자를 세게 되고 그러한 위임 자체가 흩어 질까봐 걱정을 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혼자 있는것 보다도 여럿이 모이게 되면 힘이 나는 것입니다. 여럿이 모여서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이 더 잘 믿어지고 또 하나님께서 우리를 팍팍 도와 준다는 느낌도 받게 되는데 문제는 교회가 형성되면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예수님이나 하나님을 믿는게 아니고 교회를 믿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믿음의 대상, 다시 말해서 “저는 교회를 믿었으니까 구원해 주세요” 하는 식으로 마음이 갈 수 있습니다. 결국은 교회라는 것이 우리의 구원을 훼방하고 방해한다는 사실을 한번 생각해 보신 적 있습니까? 교회라는 것이 서로 모였으니까, 간판 걸었으니까 교회라고 우길 것이 아니고 항상 성경으로 돌아가 봐야 돼요.
성경에 보면 요한 계시록에 7교회가 망했다는 것은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요한계시록 보면서 7교회가 망했다는 생각을 잘 안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영원하다. 한번 교회는 영원한 교회다.” 자꾸 이런 식으로 고집을 부리는데 실제 성경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따라서 교회가 영원한게 아니고,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교회는 믿음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영원은 것은 따로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라는 것은 없어야 되는가! 교회 원래 핵심은 구약의 이스라엘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뭉쳐져 있으니까 오늘날 교인들이 교회를 믿는 것처럼 그들도 그들의 뭉쳐진 이스라엘 나라를 믿는 그런 오류를 범했습니다.
그럴때 하나님께서 만약 관여하지 않고 개입하지 않으면 그들도 불신자하고 똑같겠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끊임없이 개입을 했습니다. 너희들이 소속되어 있는 이스라엘 나라 자체를 믿는다는 것은 얼마나 잘못된 길로 나타날 수 밖에 없는가를 깨우쳐 주는 식으로 개입을 했죠.
오늘날 교회에 설교시간이 있고 목사님들이 설교를 할 때 반드시 이점을 언급해야 돼요.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스라엘 자체를 믿다가 망한 것처럼, “여러분들이 교회에 오셨습니까? 그러면 교회를 믿지 마세요. 교회에서 손을 놓으셔야 합니다. 인간의 모임에 대해서 손을 놓으셔야 합니다.” 라는 얘기를 반드시 해줘야 됩니다.
사실은 그런 식으로 해주는게 아니고 오히려 교회에서 손을 놓을까봐 우리를 더 닦달하고 있죠? 구약 이스라엘에서 교회 이스라엘 됨이라고 결정 하는 것은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서 광야 간다고 이스라엘이 아니고 거기에 주님이 함께 동행 했다는 점이 이스라엘이냐, 아니냐를 결정지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계속 이스라엘 사람으로 남아 있으려면 눈에 안 보이는 분이 우리와 함께 있으면서 벌려 놓은 일, 그 자체에 대해서 믿어야 되는 거예요.
한번 정리하면 이스라엘의 믿음의 대상은 눈에 보이는 이스라엘이 믿음의 대상이 아니고 눈에 보이지 않는 분이 우리와 함께 동행 하고 있다는 그 사실이 믿어질 때 비로소 그러한 상황이 이스라엘로 이스라엘 되게 하시는 겁니다.
출애굽기 33장에 보면 모세하고 하나님하고 산 위에서 이야기 하면서 모세가 이렇게 합니다. 하나님 저 혼자 내려갈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니까 14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로 편케 하리라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이렇게 돼있어요.
시내산 위에서 하나님과 모세 사이에 대화가 뭐냐 하면, 하나님이 직접 친히 우리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는 그 이야기였어요. 이 말은 하나님이 친히 가면 이스라엘이 되고 하나님이 친히 우리 속에 들어오지 않으면 이스라엘이 되질 않습니다. 그 이야기를 하나님과 모세 사이에 이미 거론한 것입니다.
만약에 이스라엘에서 하나님이 빠져 버리고 사람들만 모여 있다면 그 이스라엘은 일종의 사업이 되고 맙니다. 인간들이 인간의 단체를 운영하고 경영하는 바가 되는 거죠. 그러면 한 교인 한 교인이 아쉽고 그게 필요하고 또 그들이 교회 오면서 갇고 오는 돈 이라는 것, 헌금이라는 것이 더 아쉽고 중요한 거예요.
아! 오늘 교회 오셨네요. 반갑습니다. 근데 돈 가지고 오셨습니까? 뭐 빈손으로 왔다구요! 그럼 교회 왜 와요. 이게 목사들의 솔직한 고백입니다. 노숙자가 그냥 들어오면 짜증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 점심 먹으려면 돈 나가고 그 사람 행패 부리면 교회라는 사업체가 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소위 돈 많은 부자들이 질 낮다고 안 오게 되고, 돈이 교회에 안 떨어지게 되면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회는 무슨 자금으로 운영이 되겠습니까? 안 되거든요.
그래서 어떡하든지 인간을 닦달 내게 되고, 인간의 마음을 돈 낼 수 있도록 겁을 주든지, 협박을 하든지, 천국을 팔아먹든지, 예수를 팔아먹든지, 축복을 난무하든지 돈만 떨어지면 그 사업은 성공한 거예요.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사업이 다 그렇잖아요.
그럴 때 그 교회는 아직도 버티고 있다고 내세울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성경에 구약 이스라엘은 그게 아니예요. 예수님도 말씀 했습니다. 두 세 사람이 나와 있다면 그게 교회예요. 두 세 사람이라도 주님이 함께 있다면 그게 바로 교회다 이 말이죠.
두 세 사람이 있을 때는 기분 안 좋았다가 삼천명, 오천명 함께 있다고 기분 좋게 되버리면 그것은 이미 기분 좋은 그 믿음의 내용이 주님과 함께 있음이 아니예요. 사람들이 함께 있음을 기쁨의 이유로 삼는 겁니다. 야~ 두 세 사람이 있다니... 차라리 죽는게 낫지. 이러다가 갑자기 삼천명 몰려오면 그래! 이 기분이야. 자! 이 기분으로 목회 하는 거야. 이렇게 돼버리면 이미 그 사람이 믿는 믿음의 대상은 주와 함께 있는게 아닙니다. 사기꾼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다 사기꾼 같은, 다같이 사기치는 그런 집회를 내심 원하고 있는건 아닌지요.
외롭게 믿으니까, 너무 성급하니까 수천명 함께 믿을때 왠지 그 집회에 끌리고 있다는 것은 실지로 우리가 믿음 있다고 하지만, 어쩌면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안 믿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합니다.
민수기23장 21절에 보면“여호와는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패역을 보지 아니 하시는도다 여호와 그의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시니 왕을 부르는 소리가 그 중에 있도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함께 있다는 이유가 있어요. 그건 뭐냐. 그들의 패역을 용서해 준다는 겁니다. 그들의 죄를 용서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교회는 뭡니까?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는 분만 있다면 우리는 그것으로 족하지 않습니까? 수천명 모인 그것이 우리 죄를 용서 합니까? 교회 목사만 해도 10명이 넘고 장로가 100명이 넘는 그 교회가 우릴 용서해 주십니까?
결국 용서해 줄 수도 없는 인간들의 집회를, 집단을 우리가 즐거워 한다는 것은 우리의 평소 마음가짐이 죄 용서라는, 죄 사함 이라는 주님의 사랑보다도 어떤 권력을 내가 큰 권력에 속해있는 또 하나의 작은 권력자로서의 행세하고 싶은 이러한 욕망의 충족 아니겠습니까. 어찌 그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까?
교회는 열두제자가 시작할 때 교회는 없었습니다. 베드로보고 교회를 세우리라고 했지만 그 자체는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교회는 뭐냐? 모두가 한분만 바라보는 거예요. 서로가 바라보는게 교회가 아니고 보이지 않는 예수님의 십자가 용서를 바라보는게 교회입니다. 그 열두제자가 열두명 모여서 예수님과 함께 다닐 때 교회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성령을 보내 주니까 그 성령에 의해서 오직 동일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외칠 때 그것이 바로 교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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