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화면

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유튜브 강의(12강, 13강) 하나님의 일, 축복과 저주강의요한복음

유튜브 강의(12강, 13강) 하나님의 일, 축복과 저주

이름 : 관리자(IP:119.18.69.144)

12강

13강

관리자(IP:119.♡.69.144)

13-03-23 02:38

12강-YouTube강의(하나님의 일)121213-이 근호 목사

오늘 열두 번째 강의에서는 역사와 묵시가 어떻게 연결되고 어떻게 이해해야 되는가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요한복음 6장에 보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좋아해서 따라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맛보고 어떤 자기의 희망을 거기서 발견해서 예수님을 통해서 자기의 소망을 달성하고자 따라 왔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의 생각과 자기의 생각이 아마 같을 것이라고 따라 왔는데 예수님께서 따라온 사람에게 상당히 난처하고 당황스럽고 질문을 먼저 하십니다.

요한복음 6장 26절에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그 다음에 나온 말씀이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썩는 양식이라는 것은 이 앞에서 언급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고자 하는 그 의도, 그 노림수, 예수를 믿어서 새로운 기적을 얻겠다 하는 그 내용, 그런 것은 영생하고는 상관없습니다. 썩을 수밖에 없는 양식과 관련돼 있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 이야기를 딱 들을 때 사람들은 예수님께 분명히 떡은 얻어먹었지만 그 얻어먹은 떡을 계속해서 추구하라고 예수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는 그들은 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으로부터 새로운 제안을 받은 걸로 이해하는데, 그게 뭐냐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이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사람들은 거기에 대해서 구미를 느꼈습니다.

떡보다 중요한 것이 영생하도록 받는 양식이다. 정말 멋진 호기심 아닙니까? 먹기만 하면 영생을 얻는다. 얼마나 이게 필요합니까? 아침 점심 저녁 세 끼 식사를 먹어서 우리 몸에 에너지를 제공하는 것이 아주 멋진 일이듯이 마치 그와 같이 영생이라는 것도 먹기만 하면 영원히 저주받지 않고 영원히 쇠하지 않고 멸망당하지 않고 영원한 영생 축복을 누리는 그런 양식이 있다면 이건 횡재한 거죠.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의 그 제안에 호감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뭐를 해야 그 영생을 얻는 양식을 먹을 수 있습니까?’ 라고 했습니다. 자, 여기서 우리가 역사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걸 다시 한 번 정리를 해야 됩니다. 역사라 하는 것은 돌이켜 볼 때에 우리가 기억할 만한 것들, 그런 사건들의 나열이 역사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할 만한 그런 모든 것들 속에는 방금 이 사람들이 예수님께 물은 것처럼 ‘우리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의 떡을 먹을 수 있습니까?’ 라고 해서 인간의 역사는 다 이렇게 결국은 우리가 이런, 이런 일을 행했다 하는 것들에 이렇게 줄지어져 있는 겁니다.

여기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을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다고 간주하고, 우리가 예상하는 ‘예수님, 저희가 무슨 일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또는 교회 목사님 보고 ’제가 오늘 교회 처음 나왔는데 어떤 일을 해야 우리가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을 했을 때 우리가 그 목사님의 입에서, 또 예수님의 입에서 은근히 기대하고 있는 답변들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영생을 얻으려면 이쪽에서 ’이런, 이런 일을 해야 된다.‘라는 답변을 우리는 기대하게 됩니다. ’주일성수 해야 되고, 십일조를 해야 되고, 그 다음에 교회 봉사를 해야 되고, 그리고 남은여생을 선교하든지, 아니면 선교를 못하면 선교 비를 내든지, 선교하는 사람을 후원해서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널리 확장하는데 보탬이 되는 것이 마귀와 싸워 이겨서 우리가 승리자로 구원받는 성도의 바른 삶입니다.‘라는 답변을 질문을 하는 쪽에서 이미 은근히 그런 답변이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런 질문을 교회 온 초자가 했을 때 그 옆에 교회 오랫동안 다녔던 중직들, 서리 집사나 장립집사나 장로님이나 이런 분들이 같이 그 질문을 듣고 있다면, 아마 그들은 목사님 답변보다 예수님 답변보다도 자기가 먼저 나서서 답변하고 싶은 그런 마음 충동을 느낄 겁니다. ‘우리 교회 처음 나오신 분도 그게 궁금한데 저도 처음 나올 때 궁금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 교회 15년 나오고 20년 다니면서 이런, 이런 일은 이러했고, 그래서 천막으로 시작했던 교회가 이제는 버젖하게 500평짜리 고딕체 건물로 해서 이렇게 훌륭한 교회가 세워져서 하나님의 은혜로 세워져서 주차장도 넓히고 이 지역사회 모범이 되고 빛과 소금이 되어서 복음전파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데, 그 전에 많은 성도들이 새벽제단에 나와서 기도하고 자기의 살던 집도 전세로 바꿔서 전셋돈을 바쳐서 그렇게 헌신해서 교회가 오늘날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끄는 하나님의 영생을 얻게 하는 모습들입니다.’라고 그런 답변을 하고 싶어서 마음이 굴뚝같은 심정일 거예요. 또는 그런 답변을 할 때 교회 처음 나온 사람은 ‘아, 내가 처음 나왔지만 발걸음을 새로 시작했기 때문에 천국 갈 때까지 꾸준히 이 교회에 봉사하면서 목사님 시키는 대로 성경말씀 대로 주의 말씀에 잘 순종하고 교회 질서에 순종하면서 그러니까 세례 받고 학습 받고 해서 내가 살던 시대에 복음 전파에 내가 조금이라고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그게 영생 얻는 하나님의 일이구나.’ 라고 은근히 그런 대답이 나올 거라고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들을 겁니다.

그런데 막상 예수님의 말씀은 이거였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까?
‘ 할 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우리는 행함을 내놓으려는 만반의 마음준비, 겸손한 마음준비, 순전하고 경건하게 살 마음 자세, 진정성 있는 그런 마음 자세로 어떤 교회 일이나 주의 일을 하려면 덤벼들 마음 자세, 헌금할 마음자세, 선교에 보탬이 될 간접적으로 보탬이 될 그런 마음 자세도 돼 있는데, 거기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너무나 엉뚱했습니다. “하나님이 보낸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같으면 ‘네가 행하는 중에서 하나님이 보낸 자를 믿는 일을 행하라.’고 이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는데, 여기서 예수님께서 언급하시는 이 하나님의 일, 하나님이 보내신 이라는 것은 그 뒤에 나오는 “내 살과 내 피를 마시라‘는 언급을 여기서 나중에 더 붙이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앞서서 언급한 게 뭐냐 하면 바로 ”누구든지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고 44절에 나와 있습니다.

왜 사람들이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몸을 투신할 만반의 준비가 돼 있는 그런 대화의 분위기에서 어떻게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내게 올 수 없다.”는 부정적인 답변이 왜 거기 나오고 바로 그것을 믿으라는 거예요.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내게 올 수 없다.” 그리고 그 뒤에 나오는 53절에 나오는 “내 살과 내 피를 마셔라.” 그리고 난 뒤에 예상대로 사람들은 다 떠나버리고 한명도 다시는 예수님과 함께 아니했더라.“ 66절에 나와 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 앞에서의 일련의 모습은 인간이 예수님 앞에 나올 때는, 이미 그전에 인간들은 행함을 근거로 해서 이미 자기 역사란 게 있었습니다. 그 역사에다가 예수님을 끌어당겨서 찬란한 자기 역사, 훌륭한 자기 역사에다가 예수 믿는다는 그 사건 하나를 거기다 같이 결합할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한 겁니다.

그러나 영생의 양식, 묵시의 세계, 천국의 세계는 우리가 지금까지 행했다고 하는 것, ‘내가 이렇게 행해서 오늘날 이거까지 끌어왔습니다.’ 라는 걸 일체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가 받아들여야 됩니다. 이것은 노선이 다릅니다. 지금까지 행했던 나의 역사에다 예수님까지 실어서 그 화물열차가 내가 기대했던 소망의 나라 천국 같다는 그 노선 자체에서 주님께서는 완전히 그 노선을 부정해 버리고, 그걸 배격해 버리고 아버지가 날마다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도 예수님만 쳐다볼 수 없다는, 예수님만 사랑하고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이 하신 일로만 우리가 지금 살아있다는, 그 앞에서 자기의 행함의 모든 것이 부정당하는 그러한 영생의 역사, 영생 주시는 그 기적은 아무도 거기에 합류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결국 주님께서 보여주는 것은 십자가입니다. 너희들이 나를 믿고자 하지만 그것은 실패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십자가 지고 다시 성령을 보내서 너희들을 묵시의 세계로, 역사 아닌 세계로 이끈다면 그 안에는 오직 주님의 십자가 공로로만이 우리에게 영생이 주어지니까, 아버지가 보내신 자 곧 예수님의 행하심만이 우리의 구원의 근거가 된다는 것, 그리고 그 앞에서 우리의 행함은 부정되어 마땅하다는 사실을 우리가 비로소 성령 안에서 깨닫게 될 것입니다

관리자(IP:119.♡.69.144)

13-03-23 02:38

13강-YouTube강의(축복과 저주)121213-이 근호 목사

이번에는 제 13강 축복과 저주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축복이라 하는 것, 복이라 하는 것이 염두 될 때는 에덴동산이 먼저 있었다는 것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에덴동산은 인간을 위해서 있었던 에덴동산이었나를 생각해 봅시다. 인간을 위한 에덴동산이었다면 인간이 있는 이상은 에덴동산은 함께 있어야 됩니다. 에덴동산의 뜻은 희락의 동산입니다. 축복이죠. 그리고 기쁨이고 즐거움이 가득한 동산!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서 에덴동산을 만들어 놨다면, 인간이 어떤 일을 저질러도 에덴동산만큼은 인간 곁을 떠나지 말아야 일관된 축복이 계속해서 ‘나는 너를 위해서 에덴동산이 있지, 에덴동산을 위해서 네가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분명히 언급했을 겁니다.

사람을 만드시고 그 사람이 너무 예뻐서 에덴동산을 보냈기 때문에 에덴동산은 절대로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해야 앞 뒤 맞는 이야기일 겁니다. 더구나 더 중요한 사실은 에덴동산 한가운데 인간의 주택이나 거주지나 맨션이나 빌라가 자리 잡고 있는 게 아닙니다. 에덴동산 한가운데 거기는 인간의 자리가 아니에요. 인간은 그 중앙 자리를 차지할 수 없습니다. 그럼 에덴동산의 중앙을 차지하는 게 뭐냐, 두 그루의 나무였습니다. 하나는 생명나무요, 하나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선악과나무가 심겨져 있었습니다.

만약에 에덴동산이 사람을 위해서라면 사람에게 그 어떠한 제안을 철폐해야 됩니다. 사람들이 자유를 맘대로 누릴 때 비로소 인간도 기쁘고 그런 자유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것이 인간이거든요. 따라서 인간에게 어떤 제안을 가한다든지, 딴 거는 따먹되 이건 따먹지 마라, 하는 것은 에덴동산 자체가 최종적으로 결국 전적으로 인간 위주로 인간을 위해서 주어진 동산이 아니라는 그런 낌새를 우리에게 암시하고 있습니다.

에덴동산에 생명나무와 선악과나무가 중앙에 자리 잡았고 인간은 거기 살고 있었는데, 그 악마가 뱀을 통해서 인간에게 이야기할 때 어떤 하나님에 대한 험담을 놓는다든지, ‘너 에덴동산에 살기 싫지’ 그런 이야기를 한 게 아니고, 마귀가 어떤 특정 나무에 시선이 가도록, 인간에게 뱀, 악마가 선악과나무에 신경을 쓰도록 그렇게 유인하고 유혹했습니다. 그게 뭐냐, 하나님의 계명이었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과실을 따먹지 말라, 하는 계명을 유독 마귀가 거기다가 주목을 시킨 겁니다.

그리고 그것을 따먹게 함으로 말미암아 드디어 죽음이라는 것, 약속대로 죽음이 찾아오는데, 우리가 여기서 한번 생각해 봅시다. 사람이 에덴동산에서 죽더라도 에덴동산 안에서 죽을 수도 있는 문제인데, 그 선악과 따먹음과 동시에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떠나게 되는 겁니다. 뭔가 에덴동산의 가치가 선악을 알게 된 인간이 끼어들어서는 안 되는 조건하에서 처음부터 에덴동산이 주어졌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는 겁니다. 선악을 아는 인간이 계속해서 에덴동산에서 살아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에덴동산 안에 있었던 겁니다.

그러면 진정한 축복은 뭐냐, 진정한 축복은 에덴동산이 무엇을 위하여, 인간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그렇다면 그 에덴동산, 천국 같은 에덴동산, 기쁨이 충만한 에덴동산은 도대체 누구를 위해서 에덴동산도 있었고, 그리고 인간도 거기에 살았어야만 했던가를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진정한 축복이라는 것은 인간이 얼마나 챙기는 것이 축복이 아니고 인간은 누굴 위해서 존재하고 누굴 위해서 이 땅에서 만들어져야 하는가, 그 내막을 아는 인간 되는 것이 그게 축복 노선에 포함된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 인간이 그대로 살지 않도록 만들고 거기서 추방을 시켜버립니다. 추방을 시켜놓음으로써 이제 인간이 추방된 상태에서의 원래 에덴동산을 축복되게 만든 그 근거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하나님께서 실타래 풀듯이 하나, 둘 씩 풀기 시작합니다. 그 푸는 작업에 인간은 어떤 역할을 하느냐, 그냥 지켜보는 역할만 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은 뱀과 더불어서 이 땅에서 딴 살림을 차려야 됩니다. 딴 살림을 차리면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든 인간이 그 형상 속에서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하나님에 대해서 어떠한 반대되는 성향을 인간에서 완전히 유출하고 있는가를 철저히 그 죄를 드러내는 그러한 중요한 역할을 인간의 역사를 통해서 다 펼쳐보여야 됩니다.

그 중에 하나 예를 예레미야 44장 17절, 18절에 보면 거기에 나옵니다. 예레미야의 하나님의 예언을 들었던 백성들이 이렇게 반발합니다. “우리가 하늘 여신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서 전제를 드리고 그 때는 우리가 음식물이 풍부하고 복을 받고 재앙을 만나지 아니하였더니” 그러니까 하늘 여신께 제사 드리고 잘 섬길 때는 우리는 뭐든지 소유가 풍부하고 축복을 받고 재앙을 만나지 아니하였더니 우리가 하늘 여신을 분향을 그 앞에 전제 드리는 것을 철폐하고 폐지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와서 그렇게 사니까 오히려 핍절하고 칼과 기근과 멸망을 당했다는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얼마나 인간의 본심을, 얼마나 솔직하게 보여주는 겁니까? 성경에서 인간의 본심을 가장 솔직하게 보여주는 대목이 이 대목 같아요.

예수 안 믿을 때는 모든 게 잘 됐는데 예수 믿고 난 뒤에는 완전히 집구석이 망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때는 복을 받았는데 예수 믿고 난 뒤에 오히려 저주받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이미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인간들이 어떤 죄악 된 성향을 보여주느냐 하면 저주를 마치 축복이라고 해석하고, 축복을 저주라고 해석하는 꼭 진짜 축복과 진짜 저주를 꼭 반대로 보여주는 성향을 원 없이 펼치면서 한평생을 살아간다는 그 이야기를 제가 지금 드리고 있는 겁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구절을 해석할 때 그냥 해석하는 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이미 자기가 이것은 축복이고 이것은 저주라는 것이 이미 자기 가정생활 일상에서 딱 이미 정립이 돼 있습니다. ‘신이시여, 이럴 때는 이걸 축복이라 간주하겠고, 신이시여, 이럴 때는 나를 사랑한다고 간주하겠고, 신이시여, 만약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저주라고 간주하겠고, 신이시여,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하나님이 나를 미워한다고 간주하겠습니다.’라는 이미 자기만의 조직신학과 철학과 인생관이 이미 정립된 상태에서 우리는 성경을 해석하게 되고 목사의 설교를 듣게 되고 그 교회에 출석하게 됩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러한 본성을 오늘 본문처럼 숨기지 말고 그대로 다 노출을 해야 된다는 겁니다. 교회 봉사하고 충성하면 그 복으로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했던 그 복으로 진짜 내가 정말 내가 원하는 내가 기대하고 소망했던 그 축복이라는 것, 소유가 풍부하고 가정이 만사가 형통하고 이런 걸 설마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면 주시겠지, 라는 진짜 간곡한 진짜 심보는 그건 아주 들키지 않으려고 곱게 숨겨놓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온갖 희생과 봉사를 다 하면서 그런 내가 기대한 축복을 위해서 인내하면서 참는 거예요.

그런데 그 심보가 언제까지 가는지, 그 왜곡된 축복 관, 그 악마적인 저주 관, 이런 거꾸로 된 축복 관, 저주 관이 언제까지 숨길 수 있는지, 결국은 우리 입에서 예수님을 욕하고 하나님을 욕하는 노골적은 아니지만 속으로 하나님 앞에 원망하고 불평하는 그 순간순간들이 우리 인간의 역사를 꿈꾸고 있고 그런 식으로 인생을 살아오고 있습니다. 모든 인간이 다 그렇습니다. 교회 10년 다니고 20년 다니고 목사가 됐던 신학을 했던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다 그래요.

왜 그렇게 하시는가, 진짜 구원이라는 것은 오직 예수님께서 바로 우리를 더욱 더 죄인 되게 만들어서 우리로 하여금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게 만드는 그 작업을 경유해야 오직 예수님만이 축복이고 예수님 자체가 축복이고 하나님 있는 그걸로 더 이상 아무 필요 없는 우리가 하나님이 계시다. 그걸로 그만 만족하는, 주님이 계시다는 그 자체로서 그동안 세상에서 기대했던 그 모든 행복과 축복을 그걸 대신한다는 그러한 성령의 은사, 열매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바탕을 하나님께서는 그런 식으로 만드시는 겁니다. 우리가 실컷 죄인 됨을 내가 기대했던 축복과 저주는 사실은 딴 데 있는데 그걸 안 들키는 척 하면서 열심히 교회 나와서 봉사하는 척하는 이 모든 그릇된 죄악 됨을 그대로 주께서는 다 아시고 오직 십자가 피, 예수님의 피만이 영생이고 축복인 것을 나는 죽어도 좋으니 주님 계신 그 자체로 감사하는 그러한 성령의 역사를 우리에게 그 죄라는 바탕 위에서 우리에게 기적으로 부어주시는 겁니다

◁ 이전글

다음글 ▷

목록으로

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351 페이지

번호 구분 제목 분류 날짜
12,392 자유게시판 가락교회-70이레 논문(언약과 주체)130314-15강b -이 근호 목사 레위기 최고관리자 13-03-26
12,391 자유게시판 26강-롬5장 5-8(죄인으로서의 인간)130324-이 근호 목사 로마서 최고관리자 13-03-26
12,390 자유게시판 서울 의존교회130308a,b(독생자의 영광)―이 근호 목사 데살로니가후서 최고관리자 13-03-25
12,389 자유게시판 8강-합3장1-6(부흥)130324-이 근호 목사 하박국 최고관리자 13-03-25
12,388 자유게시판 27강-YouTube강의(이방인)130321-이 근호 목사 - 최고관리자 13-03-24
12,387 자유게시판 26강-YouTube강의(교회의 할 일)130321-이 근호 목사 요한계시록 최고관리자 13-03-24
12,386 우리교회 부흥 130324 미가 최고관리자 13-03-24
12,385 묻고답하기 화목 로마서 최고관리자 13-03-24
12,384 우리교회 바울의 손수건 130324 - 최고관리자 13-03-24
12,383 설교 죄인으로서의 인간(롬 5:5-8) 로마서 최고관리자 13-03-24
12,382 우리교회 죄인으로서의 인간 130324 로마서 최고관리자 13-03-24
열람 ➜ 강의 유튜브 강의(12강, 13강) 하나님의 일, 축복과 저주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3-03-23
12,380 강의 경계와 한계 130322 요한계시록 최고관리자 13-03-23
12,379 강의 옛사람과 말씀 130321 레위기 최고관리자 13-03-22
12,378 강의 유튜브(26강, 27강) 교회의 할 일, 이방인 130321 요한계시록 최고관리자 13-03-22
12,377 자유게시판 32강-에스겔12장 8-13(패역)130320-이 근호목사 에스겔 최고관리자 13-03-21
12,376 우리교회 패역 130320 에스겔 최고관리자 13-03-20
12,375 자유게시판 가락교회-70이레 논문(언약과 주체)130314-15강a -이 근호 목사 고린도전서 최고관리자 13-03-19
12,374 우리교회 [일반] 감당 못할 비밀 [일반] 최고관리자 13-03-19
12,373 묻고답하기 감당 못할 비밀 요한복음 최고관리자 13-03-19
12,372 자유게시판 7강-합2장18-20(잠잠하라)130317-이 근호 목사 하박국 최고관리자 13-03-18
12,371 자유게시판 25강-롬5장 1-4(환란 중에 즐거움)130317-이 근호 목사 로마서 최고관리자 13-03-18
12,370 묻고답하기 죄인으로서의 인간 - 최고관리자 13-03-17
12,369 우리교회 잠잠하라 130317 미가 최고관리자 13-03-17
12,368 우리교회 씨뿌리는 비유 130317 - 최고관리자 13-03-17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