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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유튜브(24,25강) 하나님이란, 마술의 오류 130314강의[신학]

유튜브(24,25강) 하나님이란, 마술의 오류 130314

이름 : 이근호(IP:119.18.69.144)

24강

25강

유일자(IP:116.♡.234.248)

13-03-16 15:29

24강-YouTube강의(하나님이란)130314-이 근호 목사

오늘은 제24강 제목은 하나님이란 누구신가 여기에 대해서 해보겠습니다. 전도서 12장 1~2절에서 보면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신가에 대해서 성경은 하나님은 이런 분이다 하고 그냥 학문적으로 이야기해 주면 되는데 성경에서 하나님이라 할 때는, 그냥 하나님이 나 이런 분이다, 가 아니라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 우리 자신이 이렇게 달라지고 이렇게 변해간다는 그것과 이렇게 엮어서 그걸 결부시켜서, 하나님은 이런 분이다 라고 소개 하십니다.

객관적으로 하나의 대상처럼 여기 시계가 있다, 칠판이 있다, 저기는 건물이 있다 우리는 어떠한 변화 없이 보는 대로 아~ 저것이 건물이구나. 또는 저것이 구름이구나. 이렇게 파악하듯이 그렇게 하면 좋겠는데 하나님께서 나는 이렇다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냐 알기 이전부터 우리가 그런 질문을 하기 이전부터 이미 하나님은 우리를 다루고 있는 입장에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다루어지면서 우리는 질문하기를 하나님이 어떤 분이냐 라고 한다는 것은 질문하는 자체가 문제가 생기죠.

이렇게 해야 되죠. 살아계신 하나님이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변화를 일으키면서 ‘하나님은 누구십니까’ 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까? 이렇게 애기가 되죠. 복잡하지만... 그렇게 얘기 하는게 옳죠? 우리가 질문하기도 전에 우리가 태어나기도 이전에 우리가 ‘나는 이렇게 인생을 살련다’ 하는 계획과 전혀 무관하게 일방적으로 하나님께서 내리는 조치가 이미 우리에게 도달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말은 뭐냐 하면은 하나님께 질문하나, 안하나 관계없이 이미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 관여하고 있고 내가 하나님을 믿어야지, 안 믿어야지 우리가 자유로운 선택을 하기 이전부터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로 하여금 그런 고백을 하게 했으니까 사실상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질문한다는 것 조차가 어떤 오류가 가진 질문을 할 가능성이 굉장히 많죠? 그렇다면 우리가 이런 하나님은 누구십니까? 하는 질문부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떻게 이끄시는가!

전도서 아까 읽었던 대목을 다시 요약해보면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다시 말해서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너희 창조자를 기억하라. 이 말씀은 우리라는 인간이 하나님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을 기억 하겠습니다. 하는 그 순간에 이미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서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죽고 싶어서 환장한게 아니고 우리는 죽기 싫은데 우리가 보고 싶고, 우리가 찾고 싶고 우리가 궁금해 하는 그 하나님께서 우리가 궁금하다는 그 말하기 이전부터 이미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 세우고 있는 그런 실제적인 일들을 하시는 분이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을, 창조자를 기억하라는 말은 단지 만들어 졌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이 아니고, 그 만들어진 나는 하나님에 의해서 서서히 또는, 갑작스럽게 예상외로, 돌발적으로 교통사고라든지, 안전사고라든지 갑자기 내 인생을 끊어 버릴 수 있는 그런 권한자로서 이미 충실하게 우리 안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하나님 이십니다.

그렇게 볼 때 하나님이 누구시냐고 물을 때 우리는 이미 ‘하나님에 의해서 같이 움직이는 하나의 그림자다’ 이렇게 볼 수 있고 ‘하나님은 몸통이다’ 이렇게 보는 겁니다. 더 알기 쉽게 말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내가 여기 있는 것처럼 하나님도 거기 계시다. 뭐 이정도로 하나님에 대한 신앙 기초는 어느 정도 닦았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 하는데 막상 우리 원하지도 않은데 우리에게 죽음을 몰아 넣듯이 그 죽음의 이유도 함께 우리에게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게 뭐냐? 성경에 전도서 이후에 계속 나가보면 우리가 죽는 것이 이유 없이 그냥 죽는 것이 아니고, 죄 때문에 죽게 돼 있다는 겁니다. 이 말은 이 세상에 안 죽는 위인이 없거든요. 석가모니나, 소크라테스나, 테레사수녀나, 훌륭하다고 애기하는 법정스님이나, 김수환 추기경이나 이 세상에 안 죽는 사람이 없다는 말은 하나님 보시기에 자기 죄값으로 안 죽는 인간이 없다는 뜻이예요.

모든 인간은 자기 죄 값을 하면서 이 세상을 보내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창조자를 기억해서 하나님을 잘 믿어서 뭔가 자기 좋은 미래를 생각할려고 하는 이런 질문을 하기 이전부터 우리는 이미 하나님이 생각해놓은 죄가 무엇인가를 들추어내는 용도로서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난 셈이 돼버립니다.

하나님 잘 믿겠습니다. 예 잘 믿겠습니다. 하고 우리 쪽에서 온갖 성의를 다하고 정성을 다한다 할지라도 그 이전부터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방적인 조치가 이미 취해진 거예요. 그것이 죄로 말미암아 죽었다는 그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그 구체적인것, 그 구체적인 사실은 어디 나와 있느냐!

마태복음 16장 23절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우리 교회 다니시는 사람들은 상식적으로 예수님을 하나님이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누구나 알죠? 그렇다면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발언은 단순히 사람의 발언이 아니고 아까 전도서에서 말한 “창조자를 기억하라” 하는 그 창조자의 발언입니다.

우리는 창조자가 궁금해요. 창조자를 잘 알고 있으면 우리 미래가 뭔가 보장이 될 것이라는 그런 기대를 가진고 창조자를 기억하고자 하는데 그건 우리 일방적인 생각이고 하나님 쪽에서 우리한테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봐야 됩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예수께서 제자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쫒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아! 이거 충격 아닙니까? 우리는 새삼스럽게 하나님을 찾는다. 늦으막에 연세 많아서 이제는 교회나 다니면서 죽음을 한번 준비 해볼까? 하는 우리에게 주님은 뭐라고 하시느냐 하면 그렇게 해서 네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느냐? 그러면 ‘필히 그것은 실패 할 것이다’ 고 이야기 하십니다.

우리는 좋은 호의에 의해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진정성을 가지고 하나님하고, 창조자하고 잘 대화를 해보려고 시도 했는데 막상 우리 앞에 나타난 하나님께서는 네가 뭔가 구원하고자 한다면 오히려 네 목숨을 잃어 버릴 것이라고 언급을 해 주십니다.

그래서 제가 제일 먼저 이야기한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할 때 예! 우리는 그 창조자를 기억합니다. 쉽게 덜렁 그것을 수용하고자 했는데 막상 창조자께서 하시는 말씀은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시도한다면 필히 실패 할 것이다. 잃어 버릴 것이다.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이런 쪽으로 애기해 버릴때 우리는 거기서 다시한번 우리가 생각했던 하나님이 과연 어떤 분이냐를 되새겨 봐야 될 그러한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교회에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다니고 있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창조자를 기억한다고 자신 만만 합니다. 그럼 그들에게 물어 보세요. 그 창조자가 여러분들의 구원 노력에 대해서 뭐라고 이야기 했는지 물어 보세요. 많은 사람들이 얘기 할 거예요. 창조자 하나님은 열심히 하면 구원 받는다. 정성을 다하면 복준다. 네가 믿음으로 성의를 다한다면 너는 필히 구원 받을 것이다. 라는 식으로 답변 하지만 막상 진짜 진짜로 이 땅에 오신 진짜 하나님의 음성을 통해서는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어 버릴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이 강의에서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그러면 어떻게 하늘나라에 구원된 사람이 있습니까? 마태복음 16장 25절 말씀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그러니까 우리가 잃은 목숨이라는 것. 우리가 스스로 잃은 목숨이기 때문에, 잃은 목숨 값을 한다고 우리는 잃은 목숨이라는 것을 자꾸만 감추고, 우리 식으로 우리 힘으로 자기의 여지로서 안 잃어 볼려고 애쓰는것... 그건 여전히 잃어버린 목숨입니다.

하지만 주님 앞에서 우리 자신이 잃어버린 목숨인 것을 주님 앞에서 자인하게 되면은 그 다음에 구원되고 안 되고는 누구 몫이냐 하면 바로 너는 잃은 목숨이라는 것을 지목했던 그 예수님의 몫으로 넘겨가서 그 분이 우리를 찾는 식으로 구원받게 되면 그것이 전도서에서 얘기하는 창조자를 기억하는 겁니다.

유일자(IP:116.♡.234.248)

13-03-16 15:31

25강-YouTube강의(마술의 오류)130314-이 근호 목사

이번에는 제25강 “마술의 오류“라는 제목으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TV에서 세계적인 유명한 마술사. 또 한국의 마술사들이 마술하는 것을 누구나 흔하게 봤을 것입니다. 참 신기하죠! 왜냐하면 평범한 인간들이 해내지 못하는 초인의 능력을 소지한 것 같은 느낌도 들고, 그리고 어떻게 평범하지 않는 그런 결과물을 내는지 참 궁금하기도 하고, 그래서 사람들이 그걸 보게 되면 주목하게 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마태복음이나 마가, 누가 보면 사람들에게 처음에는 굉장히 주목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활동 하시고 나서 3년 뒤에 가서는 주목을 받았으면 그냥 거창한 조직이라든지, 권력체라든지 사람들이 기대할만한 실적 같은게 있어야 되는데 나중에 흐지부지 돼버립니다.

예수님께서 12제자 뽑아서 활동 할 때는 상당히 대중적이고 공공으로 볼 수 있고, 누구나 가신 곳은 만날 수 있고 공적으로 일을 하셨는데, 나중에 예수님은 점점 가면 갈수록 용두사미처럼 느껴져서 예수님이 부활해서 나타나도 그건 밀폐된 사적인 공간, 자기만의 은밀한 그러한 현장, 대중들에게 자기를 다 드러 내지 아니하고 몇 몇 택한 자들에게만 나타나시는 그러한 유명하지 않은 존재로서 사라져 버린다 할까요? 소리 소문 없이 그만 역할 속에서 빼버리죠.

처음에 예수님께서 기적을 베풀 때 호감을 가진 것은 우리가 하지 못한 것을 예수님이 해내신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병도 고친다. 병도 인간들이 민간요법으로 고칠병 같으면 찾아오지 않았겠죠?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있어서 사람의 힘을 넘어선 사람이 손댈 수 없는 이거는 진짜 하나님의 기적만 맡길 그럴 병들도 예수님은 낫게 하시고 그리고 귀신이라는 영물,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 인간밖에 있는 영물도 “사단아 물러가라“ 하면 그냥 나간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예수님뿐만 아니라 예수님 열두제자에게도 동일한 권세가 있다는 것도 소문을 통해 들었습니다.

자! 이를 볼 때에 사람들이 몰려 든 것은 예수님으로부터 깊이 있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듣고자 온게 아니고 어떤 의미에서 자신이 하지 못하는 것을 예수님이 해주길 바라는 기대심리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사람들은 뭐냐 하면 신이란 분명히 계신데, 하나님은 계신데 내가 하지 못한 것을 해줄 수 있는 것은 신 밖에 없으니 신과 인간이 만나든지, 접촉이 된다든지 연결이 되는 것은 하나님 쪽에서 내가 못한 일을 고걸 마져 채워 줄때 비로소 하나님과 나는 정상적인 관계가 이루어졌다 그렇게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방금 한 이 말에서 우리가 새겨 볼 것은 이겁니다. 내가 못하는데 하나님은 하신다 할 때 이거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고 이거는 내가 못하는 것이라고 그 구분을 누가 내립니까?

큰일이죠. 하나님이 내리십니까? 그거는 본인이 결정하는 겁니다. 이것까지는 내가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이것까지는 하나님 안도와 줘도 되는데 요것은 내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리되는 거예요.

엘리야 시대에 땅이 가물었습니다. 엘리야가 과부한테 빈 그릇 가져오라 했습니다. 그럴 때 과부는 빈 그릇을 가져왔습니다. 엘리사도 마찬가지였고... 자~ 빈 그릇을 가져오는 그것까지는 또는 빈 그릇 통 그것까지는 인간이 할 수 있지만, 그 다음에 그걸 채우는 것은 하나님 몫이다. 라는 것이 구약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에도 이미 구약이 먼저 있고 신약이 나중이니까 예수님 당시에 구약에서 하나님이 우리 이 땅에 우리 민족이 얼마나 엄청난 기적들을 베풀었는가를 기적들만 모아서 기억했다 할 정도로 기적의 하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간주한 거예요. ‘옛날 그때 그 화려했던 기적을 다시 한번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면 우리는 다시 한번 하나님의 말씀과 법을 순종할 용의가 돼있습니다.’ 라는 식으로 한거예요.

예를 들어서 오늘날 우리가 교회 갔을 때 ‘하나님 법 지키겠습니다’ 하고 온게 아니고 하나님 나는 이것 때문에 답답하고 괴롭습니다. 하지만 이 괴롭고 답답한 것은 내손을 벗어난 능력이기 때문에 이것을 주께서 해주신다면, 그 다음에 주님께서 추가적으로 우리한테 요구하는 어떠한 계명과, 율법과, 명령도 제가 순종할 용의가 돼있습니다.

왜! 기적을 통해서 하나님과 우리사이는 정상적인 관계로 회복되기 때문에 라는 생각을 마찬가지로 가질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렇게 얘기 했습니다. 사도행전 8장에 보면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난 뒤에 예수님의 능력이 사도들에게 주어 졌습니다.

예수님 하는 일 또는 사도들이 하는 것이 사람들의 능력이상을 행하니까 사람들은 예수님 자체가 예수님은 뭐 때매 돌아가신다는 것은 관심이 없고, 어떻게 능력을 빼먹을 것인가에 먼저 관심이 가서 교회나 사도의 말을 순종하는 척하고 다가오게 되는 거예요. 예수님이 죽으셨다는 사실을 빼놓고 그걸 우회해서 거치지 않고, 다른 길로 예수님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 할려고 하는 겁니다.

‘먼저 하나님 쪽에서 저한테 뭔가 보여 주시면 그 다음에 우리는 거기에 대해서 보답할 용의가 돼있습니다.’ 하는 식으로 흥정과 협상 같은 그런 태도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나오는 이 마술사들의 특징을 본다면 그 사람은 신기한 마술을 행할 때가 언제냐 하면 바로 무대 위 였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마술쇼를 끝내고 다시 무대아래 내려오게 되면 어떻습니까? 그 마술사가 살아있습니까? 죽어있습니까? 당연히 살아있죠! 살아있어 가지고 보통 우리 사람들과 같이 일상에 섞이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 보세요. 예수님은 뭔가 우리 보기에 신기한 일이라고 벌려 놓고는 그 무대에 내려오면서 예수님이 죽어 버리십니다. 이게 바로 마술사와 성령 받은 사람의 차이점입니다.

사도행전 8장에 보면 거기에 사도들이 그야말로 요새 말하면 신기한 일을 행하니까, 여기에 시몬이라는 사람이 이 사람이 마술사인데요. 사도들이 안수하니까 성령을 받았다 말이죠. 그런 마술을 이 시몬이라는 사람은 해내지 못 할 것 같고 너무 신기해 보이니까 돈을 주겠다는 겁니다. 돈을 주고 사람으로 하여금 내가 안수하게 되면 자동적으로 그 사람에게 ‘성령이 임하게 해주세요’ 라고 하니깐 20절에 베드로가 하는 말이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찌어다.” 라고 했습니다.

자~ 들어 보세요. 내가 저 성령이 행할 때, 여기서 굉장히 중요 한데요. 사도가 성령을 줄 현장은 단순히 사도와 성령 받은 사람의 관계로서 끝나는 현장이 아니고 평소에 망해야 될 인간들이, 지옥갈 인간들이 그 모습을 보면서 자기의 숨겨져있는 자기 이익만을 챙기는 본색이 드러나는 현장으로서 하나님이 사도들을 사용했다는 사실입니다.

성령을 줌으로서 어떤 사람은 성령세례 받아서 구원 받았다. 단순히 이야기가 이렇게 끝나는 것이 아니고 어떤 자들은 지옥 갈 수 밖에 없는가도 함께 들추어내는 현장으로 보는 거예요. 그건 뭐냐 하면 저 사람이 성령 받았으니까 이쪽에서는 성령을 소유했다고 착각하는 거예요. 성령은 소유용이 아니고 오히려 성령이 그 사람을 앞으로 지배할 거예요.
그런데 이쪽에 시몬이라는 사람은 사도처럼 나도 성령을 소유했으면 좋겠다. 그런 능력을 소지했으면 좋겠다. 귀한 돈을 주고서라도 성령을 획득했으면 좋겠다고 나서는 그것은 바로 주님 보시기에 그것이 망해야 될 사람들의 숨어있는 본색이었다는 겁니다.

구원은 선물입니다. 그런데 선물을 선물로 생각하지 않고, 내 힘으로 획득하고 소지할 수 있는 용도로 생각한거, 이거 지옥 가야될 마땅한 사람입니다.

그럼 왜 시몬은 그런 생각을 했을까요? 그것은 예수를 하나의 자기 있는 것을 더욱더 추구할 수 있는 마술사로 왔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도는 성령이 임하면 내가 죽어 마땅한거, 주님이 십자가 돌아가신 것은 내 죄 때문 이라는거, 그냥 능력을 소지 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주님한테 모든걸 빼앗겨도 괜찮다는 그러한 입장에서 살아가는데 남들 보기에는 현재 나는 안 빼앗기고 있는 것에다가 더 추가적으로 희안한 능력까지 받는 것으로 그래서 자기를 더 멋들어진 존재처럼 그렇게 오해하는 가운데서 예수님을 생각하고 교회 다니는 거라고... 그거는 지옥가기 위해서 그런 짖을 하는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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