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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가락교회-70이레 논문(공동체의 죽음)130214-13강a -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다니엘

가락교회-70이레 논문(공동체의 죽음)130214-13강a -이 근호 목사

이름 : 이한례(IP:203.90.42.222)

가락교회-70이레 논문(공동체의 죽음)130214-13강a -이 근호 목사

제 13강a

지난 시간에는 다니엘 8장을 했고 이번 시간에는 다니엘 9장을 할 차례인데 다니엘 9장의 그 내용은 이스라엘 전체 역사가 어떻게 흘러가는가를 다 알아야 다니엘 9장이 설명될 수 있기 때문에[다니엘 70이레에 대한 비역사적 해석]이라고 『복음이냐 교회냐』란 이 책에 부록으로 있는 논문을 통해서 다니엘 9장에 접근해 보겠습니다.

다니엘 9장에 나오는 이 내용은 이스라엘 전체 역사의 흐름을 알아야 된다고 제가 이야기했잖아요. 그 흐름이 뭐냐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이 친히 만드신 나라가 하나님에 의해서 망했다는 이야깁니다.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서 만든 이스라엘이 남의 다른 신에 의해서가 아니고 하나님에 의해서 망하게 하신 거예요. 그러면 그 말을 다시 한 번 정리하게 되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세우신 이유가 망하게 하려고 만든 거예요. 하나님이 교회를 만든 이유는? 망하라고 교회를 한 거예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교회에 미련두면 안 됩니다. 망하라고 준 거예요. 방금 중요한 거 했는데 다시 해봅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만든 것은 망하라고 만든 거거든요. 그런데 하나님에 의해서 새로 세워진 이스라엘 당사자가, 우리 대한민국 단군의 자손 말고, 이스라엘 당사자가 ‘그래 우리나라는 망해야 돼’ 라고 생각을 하겠습니까? 안 하겠습니까? 할 리가 없죠.

우리나라 애국가 보세요.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영원토록 계속 보호해 달라는 이야기 아닙니까? 영국도 마찬가지고 모든 나라 애국가가 나라 잘 되라고 애국가지, ‘속히 망하게 하옵소서’ 그런 국가는 없잖아요. 여기서부터 하나님 생각하고 우리 인간 생각하고 차이나도 너~무 차이가 나는 겁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다니엘도 처음에는 몰랐습니다. 포로 잡혀가기 전에는 몰랐고 하나님 계시 받기 전에는 몰랐는데 막상 포로 잡혀서 나라 없죠. 돌아갈 땅이 없죠. 옛날에는 농경시대기 때문에 땅이 없으면 이건 사람 취급 못 받습니다. 땅이 없으면 생산물이 없기 때문에 일체 모든 권리는 박탈당하죠. 그래서 땅이 있어도 생산물이 나와야 됩니다. 그러니까 옛날 사람들이 우상을 그렇게 많이 즐겨 찾은 거예요.

땅은 하늘이 도와주지 않으면 이게 농사가 안 되게 돼 있어요. 비 안 온다? 끝난 이야깁니다. 비가 너무 많이 온다? 이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20%는 사람이 하더라도 80%는 누구 손에 달렸겠습니까? 보이지 않는 어떤 초월적인 존재에 달려있으니까 이건 여호와를 믿던 다른 신이든 이건 무조건 믿어야 돼요. 왕이라는 것도 민중들의 요구 사항을 들어주는 게 왕입니다. 안 그러면 쿠데타 일으켜요.

대중들이 바알 신을 찾고 있으면 임금들도 그걸 동조해서 격려해야 돼요. 대표적인 사람이 누구냐 하면 바로 솔로몬입니다. 솔로몬은 자기 영토를 계속해서 견제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요새 같으면 사회 간접자본 같은 거, 국가의 건축 사업을 계속 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벌리는 가운데 세금을 많이 걷어야 되고 그 다음에 노역을 많이 해야 돼요. 노역과 세금을 걷는데 있어서의 불만 요소가 있어버리면 나라가 자체적으로 붕괴합니다.

그러면 백성들을 하나로 단결하기 위해서는 백성들의 요구 조건을 들어줘야 됩니다. 백성들의 요구 조건은 바로 자기들이 믿고 싶은 신들을 믿는데 주로 장소가 어디냐 하면 높은 산입니다. 산 위에 효험 있는 지리산 꼭대기, 태백산 꼭대기, 산 속에 있는 그걸 산당이라고 합니다. 그 산당을 누가 허락하느냐, 솔로몬 왕이 그걸 허락을 해요. 그럼 다윗 때는 허락을 했느냐? 안 했습니다. 왜 안 했느냐 하면 다윗 때는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이, 그때는 성전이 안 만들어졌지만, 예루살렘에 있는 다윗의 요새, 그걸 시온이라 해요. 시온이란 요새는 하나님에 의해서 여러 산당들이 여러 지역들을 정복해서 나온 기념적인 장소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이미 정복을 했는데 산당에서 가만히 다른 신을 섬긴다? 이건 다윗한테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나와서는 혼인제도와 더불어서 외교정책을 해서 주변에 있는 나라들에 의해서 국가가 힘들어지지 않도록 사전에 하나의 인질을 잡는다 할까, 혼인 작전을 써서 큰 나라, 대국의 위신을 떠는 겁니다. 중국 같은 경우도 옛날 조선이나 각 나라에 자기 왕의 친척이나 공주하고 결혼시켜서, 하나의 인질이죠. 만약 까불면 너희 왕족 씨가 날라 간다는 식으로, 마찬가지로 솔로몬도 했습니다. 그것이 백성들 속에 각인되었어요. 아! 왕은 우리들의 소원을 들어주게 되면 왕하고 우리 사이는 괜찮게 된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솔로몬 죽고 난 뒤에 그 다음 왕이 르호보암이잖아요. 르호보암이 두 종류한테 물었죠. 하나는 자기 동기들한테 물은 적이 있고 처음에는 솔로몬 시대에 신하들에게 물었습니다. 신하들이 뭐라고 했느냐 하면 ‘왕이 먼저 백성들의 종이 돼 주면 그러면 백성들도 자진해서 왕을 섬길 테니까 백성들의 소리, 민중의 소리에 귀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완전히 박근혜 당선자와 똑같죠. 민중의 소리를 들어야 나라가 됩니다. 전혀 신앙적 이야기가 아니에요. 그 점을 이야기 나왔으니까, 이건 우리는 진도 나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뭐라고 하나 알아야 돼요.

인간이 있잖아요. 인간은 자연과 속에 더불어 삽니다. 인간이 자연을 장악하는 게 뭐냐, 이걸 어려운 말로 매개체가 뭐냐, 이게 바로 국가예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나는 종교가 없어. 나는 예수 안 믿어. 하지만 모든 인간들은 다 중보자 개념을 갖고 있어요. 그게 뭐냐 눈에 보이는 국가입니다. 요걸 지금 잘 보여주는 나라가 휴전선 위쪽에 있는 나라, 무슨 나라입니까? 북한이죠. 국가가 자연을 통제하는 매개체가 되는 겁니다.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고 싶어 하고 그 지배하는 그 중간에 있는 체제 시스템이 국가 시스템 이예요. 그러면 이것이 처음에는 국가가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왕이 나왔고 귀족이 나왔죠. 이걸 가지고 봉건사회라 하거든요. 왕과 귀족이 나왔을 때 왕과 귀족은 민중들을 다루면서 그때는 자연이라 했지만 중세 때는 이게 자연이 아니고 신, 하나님 이예요. 이 하나님을 다루게 되면 자기 나라는 무슨 나라가 되겠습니까? 신의 왕국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나온 천년 왕국설이 뭐냐, 후천 년 설이라는 거예요. 후천 년 설 들어봤습니까? 이미 여기가 천년 왕국이라는 거예요. 요한계시록 20장에 나오는 천년 동안 왕 노릇 하는 거 있죠? 현재 지금 교황이 있고 주교 있고 왕이 있고 귀족이 있는 거, 이게 바로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만들고자 하는 그 나라 의라는 거예요. 왜 그런 소리를 했겠습니까? 그렇게 될 때 각 나라가 뭐가 되겠습니까?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 이름으로 질서 체제가 쫙 잡혀있는 거예요.

이왕 하는 거 여러분이 알든지 모르든지 계속해보겠습니다. 개인과 가족, 이걸 유기체적 공동체라 합니다. 개인과 가족, 요걸 헤겔에 의하면 1차 공동체라 해요. 개인과 가족이라 하는 것은 인간의 토대입니다. 사람이 가족 없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국가니 뭐니 해도 군대를 왜 보냅니까? 국가를 위하여 국가를 지키기 위해서 보냅니까? 나라에서 오라 해서 갑니까? 오라 하지 않으면 아무도 군대가 취미라 하는 사람 빼놓고 아무도 안 가죠. 요새 장교야 10 대 1이고 20 대 1이니까 그건 좋은 공무원이기 때문에 가지만 그거 말고 자진해서 가라 하면 아무도 안 가잖아요. 그러니까 논산 훈련소 갈 때 울고불고 하잖아요. 왜 웁니까? 1차 공동체에서 어디로 가기 때문에? 2차 공동체로 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2차 공동체에 가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사적인 것에서 뭐로 바뀌느냐 하면 공적으로 바뀌어요. 공적으로 바뀌면 여기는 뭐냐 하면 수련회 때 했는데 여기는 강제입니다. 강제!

이렇게 강제가 될 때 이걸 중세 때는 무슨 나라? 신의 왕국, 천년 왕국 이예요. 그러면 사적인 1차 공동체에서는 그저 내 새끼 내 자식이 최고잖아요. 내 새끼, 내 자식이 최고일 거 같으면 그건 도덕적이긴 하지만 윤리적인 건 아니에요. 도덕이라는 건 개인적인 양심을 도덕이라 하고 윤리라 하는 것은 타인과의 연관성, 질서, 사회 체제를 말하거든요. 그러면 학교에서 애가 다른 애를 폭력 했다. 그래서 선생님이 학부형 오라 해서 왔다. ‘당신 애가 얘를 때렸습니다.’ 그러면 학부모가 ‘잘못됐습니다.’ 하게 되면 이건 제 1 공동체에서 제 2 공동체 통제 기능을 인정해주는 거죠. 그런데 ‘맞는 놈이 바보지. 우리 애가 집에서는 얼마나 착한데.’ 이러면 뭐를 강조하는 거예요? 1차 공동체죠. 그럼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뭐냐 개인적인 양심은 되는데 뭐가 다 깨져버립니까? 윤리가 다 깨지죠. 윤리가 다 깨져버리면 그게 천년 왕국입니까? 지옥이죠. 왜? 힘센 자가, 사기 치는 자가 돈을 다 먹고 이건 완전히 약한 자는 짐승 취급도 안 되잖아요.

KBS 인간극장에 나온 콩고 사람이 나왔잖아요. 콩고 그 사람이 전쟁이 일어나서 한국에 왔잖아요. 콩고 왕족인데 왜 콩고에 못 갑니까? 1차는 돼요. 자기 자식이고 자기 아내인데 얼마나 사랑스럽습니까? 그런데 뭐가 안 돼요? 내란이 일어나서 2차가 안 되니까 콩고에서 자기는 현상수배 돼서 도망치고 자기 가족은 정글에서 6일 동안 고생했어요. 그래서 제가 이야기 들어보니까 내 자식, 내 새끼 내 아내가 최고다. 이래 가지고는 못 살죠. 뭐가 있어야 산다는 말입니까? 1차만 있으면 안 되고 2차가 있어 줘서 2차는 국가라 했죠? 처음의 국가는 왕과 귀족 국가인데 이것이 개인 사회가 개인의 자유, 부르조아라 합니다. 개인의 상공업체가 발달하면서 개인주의가 발달하니까 왕과 귀족이 누리던 문화, 그게 로코코 문화, 바로크 문화예요. 그 귀족은 돈 가진 사람이 귀족 이예요. 점점 더 무역이 발달하게 되면, 옛날 중세 때는 후추가 그렇게 비쌌답니다. 후추 값이 금값보다 무게 상 더 비싸요. 그런데 나중에 후추가 들어오니까 나중에 후추는 민중들은 안 먹고 귀족들 왕만 먹던 건데, 돈을 버니까 소비를 ‘니만 귀족이야? 나도 귀족이야.’ 해서 다하는 거예요. 중산층이 늘어나는 거예요.

그럴 경우에는 돈 있는 사람이 행세하기 때문에 왕과 귀족이 했던 횡포를 이젠 돈 가진 자들이 횡포를 부리기 때문에 그때는 법이 들어가서 모든 인간은 뭐 앞에 평등하다? 법 앞에 평등하다는 근대 법치주의 국가가 등장하는 겁니다. 처음에는 왕과 귀족으로 했던 국가가 무너지고 점차 뭐로 바뀐다? 개인주의가 하니까 개인주의는 1차 자기 자식, 자기 가족밖에 모르잖아요. 이러면 다른 나라 쳐들어오면 누가 지킵니까? 내 자식해서 도망가기 바쁘지, 누가 지키겠어요? 안 되잖아요. 여기가 내가 법을 이야기했는데 원래 법이라 하는 것은 최초의 법은 상법입니다.

BC 4천 년경에 수메르란 나라가 있었는데 그 나라는 현재 이라크, 메소포타미아에서 처음에 발달한 문명이거든요. 원래 시기는 황하 문명과 비슷하지만 최고 발달한 문명은 수메르 문명인데 거기서 처음에 나온 법이 뭐냐, 그게 상법 이예요. 당신 이거 할 때 얼마 갚아라든지, 우리 계산 똑바로 하자라든지, 상법에 의해서 그 다음에 나온 것이 함무라비 법전, 상법을 하려면 상법을 집행해야 될 높은 경찰력이 있어야 될 게 아닙니까? 그러면 그것이 국가관 기틀이 돼요. 그러면 국가의 권위는 개인이 침범한다? 침범 못한다? 못 침범한다고 동의를 해줘야 경찰이 나서서 해줘야 할 권한을 갖는 거예요. ‘니 뭐고? 당신 왜 남의 집 살아?’ 이러면 안 되잖아요. 경찰한테는 특별한 권한을 주잖아요. 그러면 그게 뭐예요? 강제가 돼요.

이렇게 강제가 될 때 자연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여기서 이 법에 의해서 그 다음에 경제발달에 의해서 분업이 되거든요. 분업이 되면서 생산을 하는데 자급자족에서 하는 생산보다 많이 나오는 생산을 뭐라 하느냐 하면 잉여 생산물이라 합니다. 잉여 생산물은 무역이 되는데 무역이 되면 무역을 할 때 가게 되면 그것을 훔치려는 도둑이 있을 게 아닙니까? 그걸 지켜주는 것이 바로 국가가 해야 될 일이예요. 국가는 경제적 기반위에서 무역으로 돈을 많이 벌게 되면 그 대신 장사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게 되면 무엇이 나온다? 세금이 나온다.

그렇다면 분업이 되고 그러면 나라가 잘 살잖아요. 나라가 잘 살게 되면 개인이 못하는 관개 사업을 해서 농사에 물 대겠죠. 그러면 그 나라는 어떤 나라가 되겠습니까? 바로 바벨론 되는 거예요. 앗수르, 바벨론. 이스라엘이 이게 부러운 거예요. 자연, 옛날에 자연은 이게 신이거든요. 하나님의 축복과 하나님의 은덕을 우리가 획득하기 위해서는 중간에 뭐가 필요하다? 바로 이상적인 매개체, 국가가 필요한 거예요. 그런데 왜 우리는 여호와 믿었는데 왜 이스라엘은 주변나라보다 못 사느냐 이 말이죠. 블레셋보다 못 살고 암몬보다 못 살고 모압보다 못 살고 앗수르보다 못 살고 북쪽 이스라엘은 앗수르가 부러워 미쳐요. 그리고 바벨론보다 못 살고, 앗수르를 부러워 미치니까 에스겔에 보면 ‘이스라엘아 너희들이 창녀다.’ 창녀가 돼서 외부 남정네들의 그 성적 매력에 빠져서 그게 부러워서 너희가 부끄러움을 모르고 치마를 들치면서 니가 온갖 간사한 짓을 다하는구나. 나는 너를 애굽에서 광야에서 너희들을 친히 너희 부끄러운 것을 가려줬건만 너희들은 너희들이 부러워하는, 부러워하는 건 초콜릿 복근에다 키는 커서 185센티에다 재벌 3세에다 그게 부러워서 거기에 한 많은 이스라엘은 촌놈 이예요. 촌놈인데 주변에 있는 미국이나 영국이나 프랑스가 부러운 겁니다. 그들의 루비똥인가 그런 가방들이 부러운 거예요.

그러니까 신앙이란 게 뭡니까? 신앙은 지가 얻고 싶은 것을 얻는데 여호와는 별 재주를 못 부리더라 이 말입니다. 잘 사는 나라가 여호와 섬길 것 같으면 왜 여호와를 안 섬겼겠습니까? 주변에 잘 사는 나라가 여호와를 섬긴 게 아니고, 마르둑 신을 섬기고 바알 신을 섬기고 이스타나를 섬기고 이집트 같은 나라는 그때는 참 잘 살았어요.

그러니까 선지자가 나서서 ‘애굽을 부러워하지 마라. 바벨론 부러워하지 마라. 앗수르 부러워하지 마라. 너희들이 부러워하는 그 나라가 너희들을 섬길 것이다.’라고 이야기한 겁니다. 그래서 성경을 이해하고 해석하면서 성경 문자 가지고 ‘신앙생활 잘 합시다.’ 해서는 성경이 해석이 안 돼요. 왜, 이중 위선자가 돼 버려요. 교회 가서 목사 설교 듣고 ‘예, 그럼 기도 많이 하면 복 받죠?’ 이렇게 할 때 정작 그들이 노리고 있는 것이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그러지 마라. 그런 것을 원하지 마라." 고 거부한 것을 그들은 교회 와서 그것을 얻고자 하는 거예요. 그리고 목사들은 뭡니까? 설교하면서 이 설교를 하게 되면 저 사람이 복을 받아버리면 지가 염치가 있으면 복 받았으니까 헌금을 자기가 얼마 먹고 하나님께 내겠지. 그러니까 목사가 집중적으로 기도하는 게 뭐냐 하면 ‘아무개 집사 부자 되게 하옵소서. 아무개 장로 돈 많이 벌게 하옵소서.’ 왜, 십일조만 계산해 봐도 딱 계산이 나오잖아요. 그것이 교회에 나오면 자기 노후자금은 챙길 수 있다 말이죠.

그런데 방금 이야기한 그 예가 오늘날 교회만 그런 게 아니고 구약에도 그걸 되풀이해 왔다는 거예요. 그걸 무슨 선지자? 거짓 선지자. 그리고 제사장. 돈 안 주면 재판도 제대로 안 하는 선지자, 관원들, 장로들, 미가 2장에 나오고 하박국에 나오죠. 성경이 전부 다 그 이야기예요. 여호와를 찾는데 그 목적이 수상하다 이 말입니다. 하나님을 부르짖는데 그 목적이 굉장히 수상한 거예요.

그런데 물어봅시다. 이렇게 수상하게 신을 찾는 것이 이스라엘만 그렇습니까? 다른 나라도 그렇습니까?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죠.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사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는 거예요. 이제 아시겠죠? 다시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만드신 것은 멸망시키기 위해서! 이제 아시겠죠? 하나님께서 교회를 만든 것은 교회를 멸망시키기 위해서! 개인을 만든 것도 개인을 죽이기 위해서!

왜냐 하면 개인은 개인이 장악하지 못합니다. 욕망이 개인의 욕심은 지금은 우리가 만약에 참다 참다 싶으면 ‘그래, 감자 잘 됐구나. 하나님 너무 행복합니다.’ 이렇게 돼요. 아무도 없고 오늘따라 축복 주셔서 장작이 왜 잘 패지?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그런데 그 사람을 서울의 강남에 보내버리자. 그러면 ‘우리 집에는 명품 있다.’ 이러는데 ‘우리 집에는 장작 있다.’ 이러면 말이 안 되잖아요. ‘우리 집에는 장작이 잘 핀다. 우리 집에는 보일러 잘 돌아가.’ 이러면 말이 안 되거든요. 그 말은 내가 어느 정도까지 죄 짓는지를 본인이 감 잡을 수가 없습니다. 나의 죄가 어디까지 뿌리가 뻗어있는지, 그리고 나라는 근본이 내가 장악하거나 관리할 대상이 아니에요.

십자가마을에서 어떤 사람이 좋은 질문을 했잖아요. 아웃사이더라는 분이 인간은 가면 밑에 자기 얼굴이 있다. 이렇게 했잖아요. 제가 답변하기를 인간은 가면 뒤에 자기 얼굴이 있는 게 아니고 가면이 지 얼굴 이예요. 날마다 가면을 만들어요. 자기 얼굴을 몰라요. 인간은 자아라는 게 없습니다. 그냥 몸이 추후 적으로 만들어 놓은 게 자아예요. 그래서 한참 어떤 일에 몰두하게 되면 뭣을 잊어버립니까? 자아를 잊어버려요. 어떤 변강쇠가 장작을 팰 때는 그 순간 내가 여기 있다는 게 없어요. 다 패고 난 뒤에 누가 물어요. ‘이 장작 누가 팼죠?’라고 물으면 ‘내가 팼다.’ 라고 그때 내가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학자들은 말합니다. ‘나는 밥을 먹는다.’ 이 말이 성립이 안 됩니다. 제가 수요일 날 했죠? ‘나는 예수님을 사랑한다.’라는 말을 했잖아요. 그게 틀렸다고. ‘나는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말은 있을 수가 없어요. 진짜 사랑을 하는 사람은 뭐냐 ‘나는 모른다.’고 해야 돼요. ‘나는 당신을 어떻게 사랑할 줄을 모르겠습니다.’ 이게 사랑받은 사람 이예요. 남녀 간에 사랑할 때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건 사랑이 안 되니까 지금 자기 위선 떠는 거예요. 말로 때우려 하는 거예요. 그런데 진짜 사랑받은 사람은 ‘아이쿠, 내가 이 사랑을 어떻게 감당할지.’ 이럴 때 받은 게 있어요. 진짜 사랑 받은 거예요. 받아본지가 하도 오래돼서…^^

‘나는 밥을 먹는다.’는 말은 말이 성립이 안 돼요. ‘밥을 먹고 있다.’는 동사에서 시작 하는 겁니다. ‘밥을 먹고 있다. 그런데 그게 누구지? 나구나. 나라는 것은 뭐냐 내가 밥을 먹는 것이 아니고 밥을 먹는 그 당사자가 차후에 뒤 쪽에 나를 집어넣는 겁니다. 이 말이 맞아요. 이 말이 어디 나오느냐 하면 빌립보서 한번 봅시다. 빌립보서 2장 13절에 보면 “너희 안에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그러면 우리 안에 행하시는 것이 하나님이라면, 그럼 내가 예수 믿는다고 하는 것은 누구 작품 이예요? 내가 한 거예요? 주님이 하신 거예요? 주님이 하신 거잖아요. 그러니까 이 성경 말씀이 맞잖아요. 이 말이 맞죠? 우리는 내가 믿는다는 것은 내가 믿을 때만 믿는 게 아니고 믿어지게 하니까 나중에 보니까 나로 하여금 믿게 하신 거예요.

그럼 그중에서 뭐만 쏙 빼야 됩니까? 내가 열심히 해서 내가 믿었습니다. 나는 건 빠져야 돼요? 안 빠져야 돼요? 당연히 빠져야 되죠. 그런데 그걸 뺀다고 그렇게 사람들이 싫어하는 거예요. 왜 빼느냐, 그걸 빼버리면 사람들이 목사들이 잔소리 안 하면 아무 일도 안 한다는 거예요. 목사가 잔소리해서 하게 되면 그건 이방종교입니다. 우상 이예요. 목사가 잔소리해서 움직일 거 같으면 여기 지금 누가 안 살아있는 것이 되는 거예요? 예수님이 살아있지 않은 경우라면 목사라도 잔소리해야 돼요. 그런데 목사가 잔소리해서 해버리면 어떤 문제가 생기느냐 하면 내가 주일 낮에 분명히 했습니다. 일을 하는 당사자와 그 일을 잘했다 못했다 하는 평가하는 평가자가 동일인이 되면, 같은 사람이 되면 안 되잖아요.

그거 생각해 본 적 있어요? 자기가 일해 놓고 평가를 자기가 내려버리면 그게 온전한 평가입니까? 시험 자기가 문제 내놓고 자기가 채점하면 점수가 그게 옳은 점수예요? 축구할 때 선수가 심판하면 그게 축구가 됩니까? 인간은 맨날 그런 식이라. ‘하나님 저 헌금하고 있습니다. 헌금하고 있습니다. 헌금 했습니다. 잘했죠?’ 맨날 자기가 생중계를 하고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1차 공동체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 거예요. 현재 있는 국가나 매개는 결국 따지고 보면 국가 안에 있는 가족과 가족, 가정과 가정의 행복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 박근혜는 당선된 거예요. 대통령이라 하는 것은 뭐냐 국가의 안정과 각자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국가의 안정만 하면 북한 돼 버려요. 북한은 뭐가 없습니까? 사유재산이 없죠. 그런데 근대 국가는 상법부터 출발했죠. 근대국가는 국가를 위해서 존재 하는 게 아닙니다. 내가 노동해서 내가 벌어 놓은 이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 내 힘으로 안 되니까 전쟁에서도 보호할 건 있지만 가뭄이라든지 자연적인 재앙 이런 것들을 위해서도 국가라는 게 있는 겁니다.

알기 쉽게 해서 이렇습니다. 성경에 보면 구제하라 했죠? 예레미야나 이사야에 보면 이스라엘이 망한 이유가 뭐라 했습니까? 너희들이 이웃을 사랑 안 하고 너희들 배만 채우고 성전에 와서 ‘하나님 제사 받으소서.’ 할 때 예레미야 7장에 보면 너희들이 가난한 사람, 고아, 어려운 사람을 억울하게 해놓고 이제 와서 성전에 와서 제사 드리면 그걸 받겠느냐, 네 손에 피가 있는데, 이사야 1장 같은 경우에 피 묻는 손으로 기도하는데 네가 듣겠느냐, 했다고요. 그걸 유대인들은 어떻게 이해했느냐 하면 ‘아하, 구제하고 이웃 봉사하게 되면 다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우리에게 주실 수 있다. 그걸 희망 삼아서 그 땅을 내다보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근대국가가 등장하면서 근대국가가 기독교 국가 아닙니까? 그때 1400년경에는 아프리카에는 나라도 없었어요. 우리가 지금 대한민국 살고 중국 있고 일본 있으니까 이게 옛날부터 있는 줄 아는데 옛날부터 없었어요. 고대국가 고대국가가 아닙니다. 경계선도 없어요. 고대국가의 왕과 귀족은 요새 말로 조폭입니다. 왕건, 이성계 있잖아요. 조폭 이예요. 양아치입니다. 우리가 역사에서 고려에서 조선으로 바뀌었다 하잖아요. 성삼문이하고 세종대왕하고 저희끼리 바꿨지 대중들은 하나도 안 바뀌었어요. 역사교육의 맹점이라. 인간은 조선 나라가 국호가 바뀌었다고 시골에 있는 백성들 살기 편해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정치하는 저희들끼리 하나의 자기 정권 잡았다는 자기 정당화, 빌미 그런 겁니다.

왜냐 하면 인간은 2차 공동체하고 관심 없어요. 1차 공동체인 자기 가족, 내가 아파서 낳은 내 새끼, 요거 보호해주면 그게 공산당이든 자본주이든 전부 다 좋아해요. 가장 중요한 것은 육입니다. 성경에 나온 말씀대로. 내 자식, 내 처자식, 이건 만고의 진리예요. 누구든지 처나 자식이나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어느 나라에 합당치 않다? 하늘나라에 합당치 않다 할 때 그 말씀은 법인데요. 법은 우리보고 지키라는 게 아니고 니가 하지 못하는 것을 행하라는 뜻입니다. 왜냐 정답은 법이 응시하기 때문에! 응시는 뭐예요? 쫙 째려보는 거 아닙니까?

예수님의 말씀은 아까 행한 자하고 판단하는 자, 잘했나 못했느냐를 판단 자가 동일하죠. 자기가 행해 놓고 변명하고 핑계하는 게 그러니까 ‘하나님 잘못했습니다.’라는 말 자체가 이게 얼마나 나쁜 말인지 몰라요. ‘하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죄인입니다.’ 하면 주께서 ‘아이쿠, 착하구나.’ 하지 않고 ‘그 입 다물라.’ 합니다. 그것도 교만 이예요. 왜냐 하면 잘못 했다 하기 위해서는 판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판정을 누가 내려야 합니까? 자기 행동의 판정을 누가 내려요? 자기가 내려놓고 잘못했다 하는 거예요. 그럴 경우에는 어떤 의로움이 등장하느냐 하면 ‘반성했잖아요.’ 라는 자기 의가 그 반성하는 과정에서 자기 의가 만들어 집니다. 그걸 누가 했느냐 하면 마태복음 9장에서 바리새인들이 그 짓 했어요. 고난주일 만들었어요. 그날 회개하고 금식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회개하고 금식을 철저히 했으면 그 자기 고난주일 날 밥 먹고 술 먹고 돌아다니는 그 예수님 집단을 보고 얼마나 나무랐겠어요? 우리는 다 같이 고난 받고 지금 회개해서 빨리 메시야가 이 약속의 땅에 오기를 기다리는데 너희 집단은 어떻게 해서 회개도 금식도 안 하느냐, 심지어 세례요한도 했어요. 고난주간을. 그런데 너희들은 왜 안 하느냐 할 때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게 아니다.”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가슴 치는 이 작업이 결국은 나로 하여금 나를 뭐로 만든다? 의인 만드는 작업의 일환 이예요.

그래서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구원은 행함으로 가는 게 아니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이 되는 겁니다. 인간이 아무리 애써도 노력해도 기껏 해봐야 ‘나 잘못 했습니다.’ 이거 밖에 안 돼요. 이건 도 닦는 거라니까요. 이건 불교예요. 이래서 자기를 부인해서 ‘나를 부인해야 돼, 나는 부인합니다.’ 니 부인하는 니는 누고? 거기에 대한 건 대책이 없어요. 부인도 점점 더 과격하게 돼요. 어떤 사람은 60미터 나무에 올라가는 사람도 있어요. 회개한다고. 아주 쇼를 벌려요. 사막에 가기도 하고.

이스라엘이 자꾸 망했다고 할 때 남의 이야기로 듣지 마세요.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호와가 옛날 우리를 애굽에서 꺼냈다는 것을 철석같이 믿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진짜 사랑하고 믿던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고 메시아도 아니에요. 뭡니까? 1차 공동체! 유기체 공동체1 이거예요. 내 몸 내 새끼예요. 그거 보호해주면 믿고, 만약에 여호와 믿었는데 앗수르 잘살고 바벨론 잘살고 이집트 잘살면 거기로 이민 가버려요. 그래서 이스라엘 역사, 수련회 할 때 했잖아요. 이스라엘이 580년에 망하고 난 뒤에 전부 다 바벨론에 포로 잡혀 갔잖아요. 그 뒤에 어떻게 됐는가, 바벨론에 머물러 있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어디로 갔느냐 하면 같은 바벨론 자리지만 수사 성인가 그거 말고 터키로 갔어요. 터키에서 보스포러스해협 지나서 지금의 그리스 쪽으로 간 사람도 있고 많은 사람들은 최고로 잘사는 나라 이집트로 갔어요. 이스라엘이 이웃나라 이집트를 의지하는 이유가 있어요. 모든 면에서 선진국입니다. 철기 문화가 발달했고, 요새 같으면 미국, 캐나다, 호주 같아요.

그러니까 왜 그렇게 했겠어요? 잘사는 것이 복이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잘사는 것은 내 자식, 내 새끼 잘사는 거예요. 사람들에게 이 진리 말고 다른 진리 없습니다. 다른 진리 생각하기도 싫어요. 있으면 귀찮아요. 왜, 지금 갖고 있는 이 진리가 변경된다는 자체가 위기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교회 오나 성경을 보나 기도를 하나 항상 생각은 그저 올 한해도 장사 잘되고 우리 아들 건강하고 그게 마지막에 있어요.

그런데 이스라엘은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 잘 믿어 줄 테니까 하나님께서 우리가 원하는 거 채워주세요.’라는 식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리라고 생각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게 바로 인간이 갖고 있던 근본적인 죄였다는 것을 망하게 하심으로서 기어이 하나님의 하나님 됨을 드러내는 겁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언약인데 언약을 너희 좋으라는 언약이 아니고 장차 오실 어떤 미지의 X, 누가 있어요. 사실은 그분이 우주를 다 만들었다는 사실, 그분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 인간들이 만들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 이스라엘이라는 더러운 인간을 대표적으로 관통하고 있는 겁니다.

그럼 이스라엘이 망했다는 말은 어떤 말입니까? 다른 나라도 이건 자동적으로 다 망하게 돼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이민 가지 마세요. 어느 나라 가나 지 자식, 지 새끼밖에 모르고 걸어서 세계여행, 버스 타고 가는 여행, 테마 여행, 백날 사진 찍어서 TV나오는 사람들 보세요. 전부 다 누가 좋은 겁니까? 1차 공동체! 자기 친척, 식구, 그것만 좋으면 돼요. 탈북 하는 사람들은 뭡니까? 대한민국이 좋아서 온 게 아니에요. 자기들 새끼 밥이나 먹일까 싶어서 온 겁니다.

그러니까 이 구약이라는 것을 우리가 그런 입장에서 봐야 된다 이 말이죠. 그러니까 다니엘 9장이 이렇게 어렵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망하고 난 뒤에 하나님께서 70년 만에 회복한다 했잖아요. 회복할 때 회복된 나라가 옛날에 쫓겨났던 그 나라라면 그것은 회복일 수가 없습니다. 그럼 또 망하는 나라밖에 안돼요.

다니엘은 뭘 알았느냐 하면 70년 만에 다시 돌아온다는 그 나라는 옛날에 우리가 쫓겨날 때 꿈도 꾸지 못한 새로운 나라가 된다는 거예요. 어느 정도로 새로운 나라가 되느냐 하면 70년이라는 이 시간 개념마저 공중폭파 돼야 될 정도로 새로운 나라. 그러니까 언젠가는 메시아가 오겠지, 하는 시간적 희망이 있잖아요. 어느 장소? 감람산에 오겠지. 감람이라는 공간. 시온 산에 오시겠지. 라는 그거. 그 모든 시간과 공간이라는 그 틀마저 어김이 없이 폭파돼야 될 그 나라. 하늘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저기 있다, 여기 있다가 아니다.

그 말은 뭔 뜻입니까? 하늘나라 생각할 때 공간적인 개념 가지고 접근하지 마. 그런 뜻이거든요. 또 언제입니까? 이때다. 저때다. 하지 마라. 시간적 개념도 하지 마라. 인간 쪽에서 하늘나라 생각한다는 것은 안 돼요. 왜 인간은 항상 시간과 공간을 둘러싸서 만사를 생각하기 때문에 생각하는 그 자체가 문제가 있어요.

어제 수요일 날 제가 그런 이야기했잖아요. 어제 내가 이런 잘못을 했으니까 오늘 내가 회개하겠다는 말 자체는 그것은 결국 예수님께 대한 모독입니다. 회개 안 했기 때문에 용서 안 됐는데 회개하니까 어제 죄를 오늘 용서해 준 게 아니고, 주님께서 성도한테는 늘 용서를 했다 이 말이죠. 이미 용서를 했는데 자기가 용서가 안 돼서 ‘어제 이런 잘못을 했으니까 용서해주세요. 하는 것은 결국 뭐를 모독하는 거예요? 십자가 피를 모독하는 거예요. 주님의 복음을 모르기 때문에 자꾸 ’아! 3년 전에 이런 죄를 졌는데 제대로 반성 못했는데 이제는 제대로 반성합니다.‘ 주께서 ’그 입 다물라.‘ 네가 반성했기 때문에 용서받은 게 아니거든요. 예수님의 피 때문에 용서 받은 거지, 예수님의 피의 용서를 받을 사람이기 때문에 용서한 거지, 네가 회개를 제대로 했기 때문에 용서한 게 아니에요. 회개를 제대로 하는 게 어떤 거예요? 2시간 꿇어앉아 하는 거예요? 3시간 꿇어앉아 할까요? 그럼 2시간 꿇어 앉아 있고 3시간 꿇어앉아 있으면 회개를 빡세게 한 겁니까? 그럼 용서가 잘 되겠네요.

모든 악마는 하나만 노립니다. 예수님의 피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거, 그거만 하면 악마는 성공한 거예요. 그 모독하는 방법은 뭐냐 하면 자꾸 자기가 자기 관리하게 만들어요. ‘아, 내가 성령 받아놓고 성령의 열매도 안 맺으면 되겠나, 올해는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지.’ 이런 것들이 뭐냐 하면 바로 주님의 십자가 피를 훼방하고 모독하고 방해하는 짓 이예요. 성령의 열매는 우리 자신이 성령의 열매예요. 우리가 맺어서 인민군 훈장 달듯이 이렇게 죽죽 다는 게 아니고 마일리지로 쌓이는 게 아니고 우리의 어설픈 우리 자체가 이미 주님의 작품 이예요. 왜, 그만큼 십자가는 대단해요!! 십자가는 그 정도로 대단한 겁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구약 다니엘 9장 해석에 들어가는데 9장 해석하면서 반드시 기본으로 이스라엘은 망했다는 거. 지금까지 한 거를 정리하게 되면 성경을 볼 때는 반드시 성경은 종교적인 방법을 끄집어내면 안 된다 했죠? 인간이라 하는 것은 사회, 경제 문화 전부 다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그 경제 사회 문화를 찾는 것은 바로 내 새끼, 내 가족 내 몸둥아리 그거를 살리기 위해서 중간에 내 대신 뭔가 해줄 수 있는 중간 매체를 구하는 거예요. 이 대자연을 바로 알아서 나한테 이익을 줄 수 있는 어떤 것을 기대하면서 그 매체를 찾게 돼 있죠.

그런데 그 방패, 나를 지켜주는 방패가 국가인데 국가가 망해버립니다. 국가가 망했을 때 나를 위한 국가가 망했죠. 그럼 다시 회복될 나라는 무슨 나라? 또 다시 나를 위한 국가가 회복되면 안 되겠죠. 또 망해야 되겠죠. 그래서 나를 위한 국가가 바뀝니다. 누굴 위한 국가냐 하면 우리나라를 망하게 하신 주님을 위한 국가로 바뀝니다. 이게 핵심입니다. 예수의 나라지. 더 이상 나의 나라는 없습니다. 예수를 빙자해서 나의 욕망을 채우는 그런 나라는 천국이 아닙니다. 그런 나라를 다른 말로 하면 지옥이라 합니다. 지옥 가서 자기 이익 챙긴 사람 있죠? 누굽니까? 그렇죠. 나사로 옆에 있던 부자 아닙니까? 지옥 가서 무슨 일 했습니까? 물심부름 시켰잖아요. 물심부름 왜 시켰을까요? 1차 공동체, 누가 목마르기 때문에? 내가 목마르기 때문에. 내가 목마르기 때문에 하나님의 종 보고 오라고 한 거예요. 그것이 뭐냐 하면 지옥 불에 가서 그런 짓 하잖아요.

그럼 지옥 불을 미리 보고 싶다. 미리 볼 거 없어요. 우리는 지금 매일같이 봅니다. 오늘 2월 14일이죠? 오늘도 많이 만났을걸요. 세상의 모든 세상은 누굴 위해 삽니까? 나를 위해서 사는 거예요. 그게 지옥 이예요. 그런데 천국은 면류관을 누구한테 반납해요? 처음부터 면류관 안 준 게 아니고 면류관 줘요. 디모데후서 4장 8절에 보면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준다 했거든요. 주께서 보세요. 처음부터 안 주고 안 갖기가 아니라 줘 놓고 ‘이 놈이 어떻게 하는가 보자.’ 자진해서 기뻐서 ‘이건 제가 쓸 모자가 아닙니다.’ 하고 갖다 주는 거예요. 요 과정에 주께서는 기뻐하시는 거예요. 요 영광을 감격하시는 거예요.

돌아온 탕자에게 소고기 사주고 가락지 끼우고 하는 이유가 뭡니까? 탕자로 하여금 요 손에 있는 가락지, 외투에다 잔치, 소고기, 이건 전부 다 ‘이건 다 나한테 합당치 않습니다. 이건 아버지의 은혜입니다.’ 이게 바로 늘 상 아버지와 함께 있었던 큰아들과의 차이점입니다. 그래서 큰아들은 밉상 받은 겁니다. 무엇을 위해서? 천국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인간들이 아는 그 상식을 완전히 반전, 뒤집어버려요. 우리가 사는 모든 게 지옥세계가 되니까 아주 반대가 돼야 돼요. 성경을 그렇게 거꾸로 읽으시면 됩니다.

그래서 제가 답변에 이렇게 했잖아요. 그래서 불의한 청지기가 그렇게 지혜롭다 한 거예요. 청지가가 불의한데 주님이 봐도 불의하고 누가 봐도 불의한 건 맞는데 불의한 자가 이 세상보다 더 지혜롭다는 겁니다. 왜, 이 세상을 포기하고 자기 장래를 생각해서. 이 세상 사람들은 자기 장래를 모르잖아요. 이 세상의 장래라 하는 것은 천국이라 하는 것은, 자기가 지금 하는 행세를 그대로 용인하고 허용하는 나라가 천국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다들 그렇게 생각하죠. 완전히 바꿔야 되는데 안 바꾸잖아요.

주일 오후 설교 들어보세요. 우리 어머니 예를 들어서 완전히 바꿔야 된다고 했죠. 다 바꿀 때 주일 오후에 ‘운다.’ 했죠? 인간은 철칙 앞에서 운다. 변하지 않는 요지부동의 법 앞에서 울어야 돼요. 우리 하는 행세가 지옥 행세기 때문에 진짜 주님의 냉혹한 십자가 앞에서 우리는 너무 분통해서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내 고집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너무 화가 나서 울어야 돼요. 주께서 안 달래줍니다. 더 울어라.

요 다니엘 9장을 설명한 논문이 바로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다니엘 70이레에 대한 비역사적 해석]입니다. 그래서 다니엘 9장을 진도를 빨리 나가는 것이 아니고 요 책(복음이냐 교회냐)을 가지고 죽 설명하면서 다니엘 9장을 설명할 겁니다. 다니엘 9장에 210페이지에 보시면 서론 부분에 보면 여기 한줄, 한줄 다 하다 보면 5년, 10년도 더 걸리기 때문에 뛰고 나갑니다.

여기 보면 『전통적으로 70이레에 대해서 역사적 해석을 고집하는 자들의 의도』가 나오죠. 역사적 해석을 고집이란 말이 나왔기 때문에 역사적 해석은 맞다 틀렸다? 이게 틀린 거예요. 역사적 해석이 틀린다는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은 망하지만, 그래도 이스라엘에 남은 자가 있고 그 남은 자들이 꾸준히 자기 역사를 버리지 않고 유지하게 되면 메시아가 ‘어이쿠, 네가 수고했다. 그동안 네가 근근이 그 정신을 잇는구나.’ 이런 게 있죠? 전통 문예나 예술을 전수하는 사람. 살아있는 인간 문화제, 그런 쪽의 사람들은 국가에서 약간의 수당이 나오잖아요. 전통 예술 전수하라고. 사람들이 유대나라를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거예요. ‘아이쿠, 그렇게 로마의 압제를 받아서 고생도 많이 하고 저 봐라, 저 정신 봐라. 여호와 섬긴다는 정신 한번 봐라. 율법 지키려고 애쓰는 걸 봐라. 저 얼마나 훌륭하냐. 우리도 저들을 본받아야 돼. 당신들 아니었으면 메시아 못 올 뻔 했습니다.’라는 식으로 해석을 하는데.

성경은 뭡니까? 너희 애비는 누구다? 악마다. 마귀다, 같은 말이거든요. 그러니까 사람들은 굉장히 장해 보이는데 참 애썼다고 성전이 없는 상태에서 율법을 지키려고 애썼는데 주님 보시기에는 너희들은 나를 죽이기 위한 가장 근접한 거리에서 나를 죽여서 악마가 결국 노리는 게 뭐냐를 까발려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역할을 하라고 하나님께서 유대나라를 만든 거예요. 율법 주고, 동방박사 왔을 때 핍박했고, 예수님 태어났다는 소문 듣고 두 살밑의 애들 다 죽이고 광야에 있을 때 마귀가 찾아왔고 십자가 달릴 때 끝까지 당신이 메시아거든 메시아인지 아닌지 계속해서 시험케 하고, 심지어 죽고 난 뒤에 부활했다 할까 시체를 지키기 위해 무덤을 지키는 그 모든 것, 그게 바로 가장 예수님과 근접한 그 관계 속에서 진짜 악마가 노리는 것을 우리에게 계시로 보여주는 그 역할을 유다나라가 한 거예요.

10분 쉬고 합시다.

첨부파일 : 가락교회-70이레 논문(공동체의 죽음)130214-13강a -이 근호 목사.hwp (80.0K), Down: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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