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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13 대구강의 3] - [피 89] - 역사의 단면강의[피]

[13 대구강의 3] - [피 89] - 역사의 단면

이름 : 구득영(IP:203.223.97.152)

[13 대구강의 3] - [피 89] - 역사의 단면

13,02,18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오늘은 교재 267페이지부터 살펴보자.

** 히브리서 7장에서는 이것을 '허리' 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히 7:9)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 할 수 있나니
(히 7:10)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아직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니라
(히 7:11)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좇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별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뇨

◈ 율법이 어떻게 복음과 연결이 되는가?

지난 시간에 이 부분을 조금 하다가 마쳤는데, 그러면 이 히브리서 7장에서 무엇에 대해서 허리라고 설명하는고 하니, 율법에 대해서 허리라고 한다는 것이다. 율법에 대해서 말이다. 율법, 즉 법이라고 하면,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헌법이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지키면 그만이지 굳이 허리라고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 허리는 대나무로 말하면 마디에 해당되는데, 잘 흐르는 것이 왜 마디가 필요한고 하니까, 이것은 "율법이 어떻게 복음과 연결이 되는가?" 라는 문제인데, 율법에서 복음으로 연결된다는 것은, "어떻게 땅에서 하늘로 갈 수 있는가?" 라는 것인데, 그것은 원래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우리가 땅에서 아무리 폴짝 뛰어봐야, 그것은 마치 구름에 사다리를 매다는 것과도 같은데, 그러니 땅에서 아무리 뛰어도, 설령 하늘에는 올라가도 하늘나라에는 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땅은 영원히 땅이고, 하늘은 영원히 하늘인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창세기 3장 2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막아놓았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그 생명나무가 있었던 곳에 가봐도, 거기가 현재 이라크 지역인데, 그곳은 땅의 일부가 되었지 생명나무는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창 3: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그러면 지금 생명나무는 어디에 있는고 하니, 제가 분명히 알려드리겠는데, 생명나무는 주님의 보좌가 있는 곳에 있다는 말이다. 그러면 주님의 보좌는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땅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땅에 없다는 것을 당신은 어떻게 확정할 수 있는가?" 라고 하면, 그것이 골로새서 3장에 보면 나오는데 말이다.

◈ 생명나무는 그 어디에?

거기에 보면 "너는 땅에 대해서는 죽었으니, 하늘을 바라보라" 라고 한다는 것이다. 즉 주님께서 이 땅에서 철수한 이상, 이 땅에는 처소도 없고, 거처도 없고, 그렇게 이 땅에는 더 이상 아무 것도 전혀 만들지 않는다는 말이다.

(골 3: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골 3:2)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골 3: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그러면 우리 몸은 어떠한가? 우리 몸이 성전인데, 그런데 이 육에 속한 몸도 나중에 흙이 되는데, 즉 없애버린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없애버리는데, 그러니 영원한 하나님의 처소는 어디에 있는고 하니, 숨겨져 있다는 말이다. 하늘에 있다는 것은 맞은 말인데, 그것을 달리 말하면 땅으로부터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 다시 정리하면 !!

다시 정리하면, 주님의 보좌가 있는 곳에 그렇게 따먹고 싶어하는 생명나무가 있는데, 그러면 "주님의 보좌는 어디에 있습니까?" 라고 하면, 그 '어디에' 라는 것은 공간개념인데, 왜 그것을 묻는고 하니까, 있은 곳을 알면 찾아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즉 "어디에 있습니까? 그 장소를 알면 찾아가고 싶습니다" 라는 의미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 보좌가 어디에 있는고 하니, 숨겨져 있는데, 그러면 꽁꽁 숨겨져 있는가? 그것은 아니고, 우발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바로 그렇게 공간 속의 우발적 나타남, 그것을 두고 요한복음 14장에서는 성령이 만들어내는 처소, 즉 성령의 임재라고 한다는 것이다.

(요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요 14: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요 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 처소, 곧 성령의 임재 !!

우리 몸을 성전이라고 하는데, 하지만 자동적으로 우리 몸이 성전은 아니라는 것이다. 성령이 나타날 때만 성전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성전에 대한 주도권을 우리 몸에 두는 것이 아니라 성령에 두어야 하는데, 그래서 성령께서 우리 몸을 사용하시면 우리 몸은 성전으로서 사용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한번 성전이 되었다고 해서 영원한 성전이라고 우기면 곤란한데, 물론 한번 성령은 영원한 성령이지만 말이다.

◈ 율법의 마디는, 방향을 틀어 !!

이렇게 율법을 허리라고 이야기할 때, 그것을 제가 마디라고 했는데, 물론 대나무는 마디가 있더라도 삐뚤어지지 않는데, 그런데 율법에 마디가 있게 되면 방향을 틀게 되는데, 그러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고 하니까, 기존의 내려오던 율법은 새로운 율법에 의해서 부정을 당하게 되고, 폐기처분이 되고, 그래서 완성의 의미를 가지고 다시 미래의 완성을 향해서 진격해나간다는 것이다.

바로 그 마디에 해당되는 것이 바로 언약인데, 즉 노아 언약, 아브라함 언약, 이삭 언약, 야곱 언약, 모세언약, 다윗 언약, 예레미야 언약이나 에스겔 언약과 같은 선지자 언약, 그리고 새 언약인데, 그렇게 마디가 있어서 그 마디가 하늘과 연결이 된다는 것이다.

◈ 하늘에 속한 분이 오셔야 !!

그런데 구약에 있는 노아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제 아무리 마디가 있어서 자체적인 갱신이 일어나고 혁신이 일어난다고 해도, 그것은 그냥 땅에서 땅으로 수평이동을 하는 것이라고 하면, 속도를 내어서 마지막에 활주로에서 비약하는 것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등등, 그 어떤 인간도 안 되고 오직 위에서부터 누군가가 오셔야 한다는 것이다. 즉 하늘에 속한 분이 말이다. 하늘에 속했다는 것은 숨겨진 분이란 말인데, 그 숨겨진 분이 오셔야 땅에 있는 자들도 하늘로 비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셨을 때 세례요한이 뭐라고 했는고 하니, 세례요한은 예수님께서 오셨다는 것을 다르게 표현했는데,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라고 말이다. 이렇게 "가까이 왔다" 라고 하면, 그 말이 어렵기 때문에, 이 '가까이' 라는 것을 빼게 되면, "하늘나라가 왔다" 라고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하늘나라는 가는 나라가 아니고, 하늘나라는 저쪽에서 이쪽으로 오는 속성을 가진 나라라는 것이다.

◈ 니고데모의 경우에 !!

니고데모가 오해한 것이 바로 이러한 점인데, 니고데모는 갈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어떻게 하면 하늘나라에 갈 수 있습니까?" 라고 했는데, 예수님은 "그것은 니가 가는 나라가 아니다" 라고 하셨다는 말이다. 그것을 다른 말로 하면, "육으로 난 것을 육이다" 라는 것인데, 즉 활주로에서 비행기가 뜨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다" 라고 하셨다는 말이다.

그러자 니고데모는 "어떻게 하면 영을 포착할 수 있습니까?" 라고 하니, 예수님께서는 바람을 비유로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바람이 불기는 부는데 어떻게 분다는 말인가? 임의로 분다는 것이다. 즉 바람이 "니 마음대로 부세요" 라는 것인데, 그건 무슨 의미인고 하니, 우리가 바람을 관리하고 장악할 입장이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내가 바람을 얻고 싶어요" 라고, 그런 소망을 아무리 가지고 있어도, 바람이 거기에 호응해서 "그래, 내가 찾아갈게. 찾아가지 않으면 후회할 것만 같아" 라고 하면서 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바람을 주관하는 것이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다른 말로 하면, 바람을 주관하시는 분은 따로 오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이 바람처럼 오기 전에, 성령을 바람처럼 잡아서 주관하시는 분이 먼저 오시는데, 예수님과 니고데모와의 대화를 보면 말이다. 니고데모는 "바람이 어떻게 옵니까?" 라고 물었는데, 예수님은 "바람을 주관하는 분이 먼저 오신다" 라고 했고, 그분이 누구인고 하니, 즉 "모세가 놋뱀을 들 듯이 내가 이 땅에서 들려서 죽어야, 그때 바람이, 즉 성령이 온다" 라는 것이다.

(요 3:1)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요 3: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요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 3:4)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요 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 3: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요 3: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요 3: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요 3:9)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요 3:10)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요 3: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도다
(요 3: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요 3: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요 3: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요 3:15)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역사를 잘라보면 !!

이러한 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구약의 흐름을 말씀하신 것인데, 지금부터 살짝 어려운 것을 이야기해보면, 여기서 살짝 어렵다고 하는 것은, 왜 지하철 공사를 하는 곳에 가보면 땅을 따고 하는데, 거기에 무슨 관들이 그렇게 많이 묻혀 있는지 모른다는 말이다.

그렇게 우리도 공사를 한번 해보자는 것인데, 즉 율법을 단면으로 끊어보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소시지를 잘라보면 단면이 나오는데, 소시지는 육질을 하나로 뭉쳐서 만든 것으로서, 자르면 거의가 동일한 단면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세상의 역사를 끊어보면, 관 속에 관이 있고, 또 관 속에 관이 있고, 그렇게 삼중관이 흘러 내려오고 있다는 것이다. 제일 바깥에 있는 관이 일반적인 역사관인데, 그리고 두 번째의 관이 이스라엘의 역사인데, 그것은 곧 율법의 역사라는 것이다.

모세의 율법이 그것인데, 그 이전에는 왜 율법이 없었는고 하니, 율법은 국가의 발생과 관련이 있는데, "죄인이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라는 것과는 관련이 없고 말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생각한 국가, 즉 백성개념이 제일 먼저 등장한 것이 이스라엘의 성립인데, 바로 그렇게 이스라엘을 성립하도록 하기 위해서 법을 주셨다는 것이다.

그러니 모세율법은 무엇인고 하니, "이렇게 만들어져야 하나님이 생각한 거룩한 제사장 나라가 된다" 라는 것이다. 그래서 모세에게 율법을 주셨는데, 하지만 아브라함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아브라함에게는 사적인 약속을 이야기한 것인데, 즉 혈통을 이야기한 것인데, "너의 혈통 끝에 메시야가 올 것이다" 라는 것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취지라는 말이다. 아브라함의 혈통 끝 부분에 이 세상을 구원할 구원자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 왜 굳이 율법을 주셔서 국가를 따로 만들어야 하는가?

그러면 우리는 생각하기를, 이렇게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주시고 그 약속을 통해서 메시야가 오신다고 하면, 그 아브라함의 언약으로 족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것으로 되는데, 그런데 왜 그 중간에 모세율법이 굳이 주셔서 나라를 따로 만들어야 하느냐는 것이다.

개인이 국가를 낳고, 그 국가가 붕괴해서 개인으로 되는데, 그러면 처음에도 개인이고 끝에도 개인이라고 하면, 중간에 있는 국가의 붕괴는 굳이 주님이 삽입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즉 "아브라함아, 니가 나를 믿으면 복을 받아서 구원을 받는다. 장차 메시야가 와도 그렇게 구원을 받는다" 라고 하면, 아브라함은 "그렇습니까? 감사합니다" 라고 하면 끝나는 문제인데, 그런데 왜 굳이 국가가 등장해서 멸망을 해야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이 개인이 우리 생각에는 그냥 개인만 덜렁 있는 것 같지만, 개인은 국가에 소속이 된 개인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이번 대전 겨울수련회에서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강의하면서 했다는 말이다. 물론 집에서 들으나 가서 들으나 내용은 같은데, 물론 분위기는 좀 다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인간은 국가에서는 개인은 없고 주체가 되는데, 벌써 슬슬 어려워지는데, 이렇게 개인이 아닌 주체라는 것이다. 개인은 자기 몸뚱아리 하나만 있으면 되는데, 그런데 주체라는 것은 "이 나라에서 나는 무엇인가?" 라고 하는, 즉 자기 위상은 무엇이고, 남들이 자기를 어떻게 부르는지, 그렇게 자기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외부에 빗대어서 자기가 그 외부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바라 본다는 말이다.

◈ 너거들은 악마의 집단생활을 하고 있어 !!

하나님께서 이렇게 국가를 만들고 그 국가를 붕괴시킴으로 말미암아서, "너거들은 악마의 집단생활을 하고 있다" 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꾸만 개인을 우기지만, 그러나 주님은 개인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는 마귀의 사주를 받으면서 이 대한민국 땅에 태어나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악마의 사주를 받은 취지가 무엇인고 하니까,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것인데, 그렇게 싫어해야만 한다는 말이다. 또한 주님을 사랑하지 않아야 되고, 주님을 핍박해야 되고, 복음을 무시하고 모독해야만 된다는 것이다. 오직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거리에 만끽하도록, 그렇게 장착된 정신과 혼과 영혼을 품고서 우리는 이 땅에 주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는 것이다.

(요일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 주체는 마치 액체와도 같아서, 흐물흐물 !!

그것을 총괄해서 하나님께서는 하나의 악마의 나라로, 즉 악마가 지배하는 국가로 보신다는 것이다. 그런 나라를 사랑해서 노래까지 부른다고 하는 것은 악마의 하수인이 아니라면 무엇이냐는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어디에 소속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마치 팥죽의 경우에, 이미 죽이 되었다면 그 가운에서 팥을 끄집어낼 수가 없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 주체를 무엇이라고 하는고 하니까, 액체와도 같은 주체라고 했는데, 즉 이미 죽처럼 묽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국가가 없는 '나'를 생각할 수가 없는데, 왜냐하면 팥죽이 국가라고 하면, '나' 라는 팥은 이미 묽어져서 형체를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 증거가 무엇인고 하니까, 나이가 20살이 되어서 본인이 자원입대를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무조건 논산 훈련소에 소집을 하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아니, 자기 마누라를 자기가 때리겠다고 하는데 굳이 경찰이 왜 오는가? 자기 육신이 즐겁고 상대방 육신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둘이 모텔에 가서 멋있게 바람을 피우는데, 언제부터 국가가 각 개인의 몸을 관리했는가? 물론 지금은 간통죄가 없지만 말이다. 자기 자식을 자기가 때리는데 왜 경찰이 들이닥쳐서 잡아가느냐는 말이다.

◈ 국가는 가족 집합체 !!

그것은 바로 아브라함 때부터 국가가 발생함으로서, 이 국가라고 하는 것이, 즉 인간의 주체가 마귀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그것은 바로 가족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국가는 가족의 집합체이니 말이다.

보모가, 특히 엄마의 경우에는 왜 사는고 하니, 자식 때문에 산다는 것이다. 자식이 아무리 애를 먹이고 해도, 비록 남에게는 원수일지 몰라도 엄마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보석과 같은 존재라는 말이다. 심지어 예수님과도 바꿀 수가 없는데, 하나님과도 안 된다는 것이다. 제 아무리 하나님께서 그 자식을 만들었다고 해도, 그것은 귀에 들어오지 않고, 자기 자식은 무조건 자기 것이고, 자기 자식이 있음으로서 '나' 라는 존재도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혈육끼리 뭉치고 모여서, 서로 싸우면서도 양보하고 타협해서 자기 배에서 나온 자기 새끼를 지키고, 자기 몸처럼 보호하기 위해서는 국가에 기댈 수밖에 없고, 물론 군대에 오라고 해서 자식이 고생은 하지만, 결국 그것은 자기와 자기 가족을 지킬 수 있는 국가를 지키는 근간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북한이 함부로 핵폭탄을 만들어서 쏘면 안 되니 열심히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기 자식이 2년 동안 고생을 하면 그 다음에 다른 젊은 자식들이 가서 지키고 말이다. 그것은 곧 국가를 지킨다는 것보다도, 자기 몸에서 나온 자기 새끼를 지키고 자기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국가를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국가는 그것을 이용하는데, 즉 악마는 그런 국가를 가지고 개인을 주체로서 활용한다는 것이다.

◈ 잠시 겨울 수련회를 !!

지난 수련회 때 강의한 것을 잠시 핵심부분만 언급하면, "나는 국가도 싫고, 내 몸에서 나온 내 새끼밖에 모른다" 라고 하면서 태백산 깊은 속에서 그 누구로부터도 아무런 간섭도 받지를 않고 감자만 캐면서 촛불을 밝히며 살아가는, 물론 세금도 전혀 내지를 않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산다고 해도 문제는 무엇인고 하니, 그 양초 값을 누가 인상시키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신고 있는 고무신 값도 말이다.

자기는 가만히 있어도 양초 값이 올라가고 신발값이 올라가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까, 서울에 있는 증권거래소에서 증권투기가 일어나기 때문에 올라간다는 것이다. 우리는 국가가 찬양하고, 자기 새끼와 죽을 때까지 같이 살아보겠다고 하지만, 거기에 드는 모든 비용은, 즉 장날이 되어서 장에 가기 위해서 차비를 내려고 해도 이미 올라있다는 것이다. 그 차비를 누가 올렸는가? 자기가 올린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제가 자본주의 사회를 언급하면서 '빚 불변의 원칙'을 말했는데, 즉 다른 누군가가 망해주어야 자기 사업이 잘 된다는 것이다. 물론 성경에는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라고 되어있지만,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것이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이웃이 망해주어야 자기가 산다는 말이다. 그러니 우리 인간에게 무슨 이웃사랑이 있을 수 있는가? 자기가 망하는 것이 곧 이웃사랑이라면 사랑인데 말이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립학교에 자기가 교사로 봉직하면서 자기는 그냥 월급만 잘 받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다른 학교보다도 서울대학에 학생들을 더 많이 넣어야 하는데, 그렇게 서로 경쟁을 해야한다는 말이다.

◈ 내가 잘 되려면 남에게 양보해야 !!

우리 인간은 근원적으로 자기 몸만 챙기게 되어있는데, 그런데 그렇게 자기 몸만 챙기면 된다는 것이 오히려 빌미가 되어서, 우리는 그렇게 자기 몸만 챙기는 것을 달성하기 위해서 거대한 힘에게 맹종하고 복종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모순을 자꾸만 자기 집안에 스스로 불러들인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자기가 잘 되기 위해서 남에게 양보해야하는, 그렇게 서로 앞뒤가 맞지 않는 짓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보통은 우리가 양보를 하면 자기에게 손해가 된다고 여기는데, 그런데 이 사회에서는 양보를 해야만 자기가 살아남을 수가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양보를 한다면, 도대체 어디까지 양보를 해야하느냐는 것이다.

◈ 심지어 투표도 눈치를 보면서 !!

심지어 대통령 투표를 하는 것도 상사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데, 말은 "자유로운 민주주의 선거방식에 의해서 박근혜를 찍었습니다" 라고 하지만, 나중에 젊은 벤처기업의 모임에 가면 완전히 찍히고 마는데, "저 놈은 무슨 촌놈도 아니고, 그래도 특별시에 살면서 말이야" 라고 하면서 그 모임에서 잘리는 수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대기업은 그 반대이고 말이다.

그러니 자기가 찍고 싶은 사람이 있어도 다른 사람을 찍어야 하는데, 이것이 무엇인고 하니까, 과연 누구 잘되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는 말인가? 결국은 상사나 다른 사람이 아니고, 자기가 잘되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양보에 양보를 거듭한다는 것이다.

자기는 자기 자식을 사랑해서 자기 품에서 키우고 싶은데, 그 자식은 또 사회에 나가서 사회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명절이 되면 당연히 부모를 찾아와서 효도를 해야하는데, 그때도 직장 상사나 마누라에게 더 신경을 써야하니, 부모는 얼마나 섭섭하겠느냐는 말이다. 물론 부모가 겉으로는 "그래, 그래도 니가 잘되어야지" 라고 하겠지만 말이다.

자기는 절대적 자아가 되고 싶은데, 사회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고 그 사회에 필요한 주체로서 말을 잘 듣는 사람을, 그 사회에, 그 집단에, 그 직장에, 그 장소에, 그 동호회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을, 그런 말을 잘 듣는 주체를 원한다는 것이다.

◈ 당연히, 교회에서는 목사의 말을 잘 들어야 !!

그것은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자기는 예수님을 잘 믿고 싶은데, 교회에서는 목사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집사로, 장로로 승진이 되지 않으니 말이다. 물론 악마가 그런 교회를 만들어서 그런 짓거리를 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 교회에서 나오고 싶어도 그것에 걸려서 나오지도 못하고 말이다.

아무튼 이렇게 하나님께서 개인에게 율법을 주어서 국가를 만들고, 그 국가를 망하게 하시는데, 이렇게 국가가 망하게 되면 앞에 있는 개인은 없다는 것이다. 그 개인은 없어지면서 숨겨진 개인이 등장하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말이다. 즉 첫째 아담은 죽고 둘째, 혹은 마지막 아담이 등장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될 때, 그냥 두 번째 아담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거론해서, 그 국가를 결국은 망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고 하니, 그 어떤 인간도 악마의 나라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였음을 까밝히면서 예수님께서 등장하신다는 것이다.

(고전 15: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
(고전 15:46)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
(고전 15: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 국가적으로 예수님을 미워해 !!

그럴 때 예수님을 몇 몇 사람이 싫어한 정도가 아니고, 국가적으로 예수님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특히 유대 국가의 경우에는, 이 국가가 무엇인고 하니까, 유대교는 국가종교인데, 즉 국가 전체가 완전히 유대교로 종교화가 되어서, 율법이 법이 되어서, 만약에 그 법을 어기게 되면 돌로 쳐죽이는,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국가가 집단화가 되어서 예수님을 공격하고 결국은 예수님을 죽인다는 것이다.

그럴 때 예수님은 그런 유대인들을 보고 "너거 애비는 악마니라" 라고 해서, 그 국가자체를 전형적인 악마의 나라로, 즉 경건하게 여호와 종교를 믿는 나라를 가장 악마적인 나라로, 거기에 가장 합당한 나라로 보신다는 것이다. 그것을 오늘날 교회를 보고 "교회, 너거 애비는 악마니라" 라는 표현과 동일하다는 말이다.

그렇게 국가의 실체는 종교로 나타나는데, 근래에도 보면 북한의 경우에는 그러한데, 북한은 김일성을 섬기는 종교화가 된 국가라는 것이다. 죽은 귀신을 섬기는 말이다. 그런 것은 말릴 수도 없는데, 참으로 특이하다고 한다는 말이다. (녹취자 - 그러면 박정희 탄신일을 기념하는 것은 어떤가요? 남유진 구미시장은 기념사에서 박정희를 두고 '반인반신(半人半神)' 이라고 했는데 말입니다.)

그것은 이슬람교도 마찬가지인데, 우리나라의 선교사들이 이슬람권에서 활동하기가 굉장히 힘들다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데, 하지만 그들이 왜 굳이 거기까지 가서 그렇게 선교를 하는지 모르겠는데, 그냥 가까운 자기 집에서, 자기 동네에서 하면 되는데 말이다.

◈ 선교는, 자기 자신에게 먼저 !!

선교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를 하면, "저는 선교가 안 될 줄 알았는데, 그런데 후원하는 사람이 기도를 열심히 해서 정말 어려운 가운데 되었습니다" 라고 선교사들이 간증으로 이야기들을 하는데, 하지만 정말로 제대로 된 선교가 무엇인고 하니, 선교를 하는 자기 자신이 바로 죄인인 줄 깨닫게 되었을 때, 그것이 진짜 선교라는 말이다. 그것이 성령께서 선교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렇게 "저는 전했을 뿐이고, 다같이 합심해서 기도한 것밖에 없는데, 그 기도의 응답인지는 몰라도 16세의 이슬람 소년이 성경말씀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라고 하는데, 하지만 그런 자기의 업적을 끄집어내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저를 선교하시기 위해서 지금도 이런 식으로 저를 다루고 있습니다" 라고, 그렇게 주님의 선교를 이야기해야지, 자기 선교를 정당화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게 자기 의가 되니 말이다.

◈ 성경인가? 고고학인가?

아무튼 구약에서는 개인에서 국가로 가는데, 그것이 우리가 흔히 아는 역사라는 커다란 관, 즉 파이프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역사는 성경으로 검증되는 것이 아니고 고고학으로 되는데 말이다. 지금도 시중에 나가보면 "성경은 의미가 없다. 예수는 과연 생존인물인가? 예수는 마리아와 결혼했다" 라는 등등, 온갖 이야기들이 난무하고 그런 책들이 수천 권이 나와있는데 말이다.

"예수는 마리아와 결혼해서 어디서 살았고, 또 예수가 인도에 가서 고승에서 한 수 배워서 나온 것이 마태, 마가, 누가복음이다" 라고 하고 말이다. 그리고 "예수가 결혼해서 낳은 자식이 프랑스 어느 가문의 혈통이 되어서 왕족이 되었다" 라고 하는데, 그게 소위 '다빈치 코드' 라는 것인데, 영화로도 만들어지고 말이다.

그리고 "예수가 한 이이야기는, 사실은 400년 이전의 '디오니소스라' 라는 그리스 철학자와 인도철학이 복합적으로 된 것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신의 아들의 계시로 착각했는데, 이제는 그런 신화는 벗겨야 한다. 정작 카톨릭이 진짜 예수 후손을 종교재판을 해서 다 죽여놓고, 그리고 카톨릭이 자기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신의 계시로 위장해서, 도마복음서나 영지주의는 다 잘라버리고, 현재 자기들 말을 들어야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정통 로마 카톨릭만을 고수하다가보니, 현재 성경만 성경이고 나머지는 성경이 아니라고 하는 오류를 범한다" 라는, 그런 것들이 전부 다 역사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역사를 성경에서는 이방나라의 우상을 섬기는 역사라고 하는데, 우상의 나라는 그 출발점이 하나님이 주신 계시가 아니라, 자신의 인식능력에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그냥 넘어가면 안 되는데, 여기서 역사를 조금 더 이야기해보자는 것이다.

◈ 역사, 그것이 알고 싶다 !!

인간의 인식능력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조금 전에 이야기한 공간, 즉 "어디에 있는지 알면 내가 찾아가겠다" 라는 것인데, 그것은 바로 "나는 지금 이 지점에 있다" 라고 하는 공간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시간의식인데, 즉 "오늘은 몇 월 몇 일이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 '시간의식' 이라는 것은, 인간의 기억 속에는 과거가 기억되고, 또 미래를 미리 내다보고 예상하는 그 선이 우리의 시간이 된다는 것이다. 즉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다" 라는 것이 자기의 기억이 되고, "앞으로 나는 이렇게 하고 싶다" 라고 하는 것이 하나의 예상이 되어서, 그것을 뭉쳐보면 시간이 된다는 말이다.

인간의 인식능력은 바로 이러한 시간에다가 무엇을 채우는고 하니, 자기가 경험한 사건들을 채운다는 것이다. 자기가 경험한 사건들을 말이다. 그게 바로 역사가 되는데, 그러니 역사라는 것이 대한민국의 역사만이 역사가 아니고, 개인의 역사도 여기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일기장과도 같은 것인데, 그 일기장을 들추면 곧 역사가 된다는 말이다. 그러면 일기를 쓰지 않으면 역사가 없는가? 그게 아닌데, 일기를 쓰지 않아도 우리는 작년 12월에 눈에 많이 왔음을, 즉 "눈이 왜 이렇게 많이 오지?" 라고 하는데, 그게 다 역사라는 것이다.

◈ 역사는, '나'와 관련된 사항 !!

그러니 이 역사를 간단하게 말하면 무엇인고 하니, "나와 관련된 사항이 곧 역사이다" 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자기가 환경 미화원이라고 하면, "올 겨울에는 눈이 너무 많이 와서 힘들었다" 라고 하면, 그 사람에게는 눈에 많이 온 겨울로 기억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 역사로 말이다.

그런데 작년 11월에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에 두 달을 입원한 사람에게는, 눈이 많이 온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에게 이번 겨울은 병원생활을 한 기억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눈이 많이 온 것은 맞지만, 그것은 자기와 관련성이 적다는 말이다. 그래서 역사가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자기를 경유해야만 자기만의 역사가 된다는 것이다.

남자나 여자들이 모임을 할 때, 주로 무슨 이야기를 끄집어내는가? 각자가 자기만의 역사를 끄집어내는데, 강남 스타일로 살아가는 강남 아줌마들이 "요즘 죽겠다. 명품 값이 너무 올랐어" 라고 하는데, 그런데 명품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시골 고령에 사는 아줌마들은, 물론 요즘은 알겠지만 말이다(ㅋㅋ). 그런 고령 아줌마들은 명품 값이 오르고 하는 것은 자기 역사 속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 개인 정체성을 국가 정체성으로 !!

그러니 역사라고 하는 것은 개인마다 다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악마가 국가의 역사에 자진해서 반납하라고 하는데, 즉 악마는 개인의 역사를 가만히 두지 않고 그것을 국가의 역사로 가지고 가서, 개인의 정체성을 국가 정체성으로 대신하기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은 처음에는 개인만 생각하다가, 나중에 크면 국가를 생각하게 되는데, 즉 "이 국가가 나에게 어떤 취직자리를 제공할까? 그래서 대통령을 누구로 뽑지?" 라고, 국가와 더불어서 자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면 국가고 뭐고 간에, 자기 몸이 아픈 것이 우선인데, 그렇게 개인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는 나이가 들수록 투표율이 높지만 말이다.

그래서 역사도 개인역사에서 국가를 알게 되면, '나'의 역사라는 것은 나이가 80 정도가 되면, "인생은 아무 소용이 없는 기라. 그냥 내 자식만 잘 되면 되지. 나는 거기에 밑거름만 되면 된다" 라고 하면서 보증도 써주고 하는데, 즉 자기 인생을 자기 자식에게 넘겨준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기 역사는 포기하고 뒤로 물러나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명절이 되면 돈을 다 가지고 와서 5만원을 내놓고 말이다(ㅋㅋ). 세배를 하면 "야야, 너거들은 돈이 없지? 내가 돈을 줄게" 라고 하는데, 우리 집만 그런 것이 아니고 다른 집도 마찬가지인데, 그렇게 자기 역사를 포기하고 자식의 역사의 모든 것을 다 기댄다는 것이다.

마귀가 바로 그렇게 해서 국가에 소속된 하나의 개인으로서, 그것을 제가 '주체' 라고 했는데, 그러니 외부에 큰 덩치가 없으면 주체가 확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냥 개인만 있을 뿐인데, 즉 "나는 이 덩치에서, 이 국가에서, 이 교회에서 무엇인가?" 라고 해야 주체라는 것이 성립된다는 것이다.

◈ 국가간의 전쟁을 통해서 !!

그것이 바로 방금 이야기한 역사인데, 이 역사는 결국 각 나라마다 우상과 우상의 역사가 다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시작하는가? 즉 하나님께서는 역사를 어떻게 관리하시는고 하니, 각 나라 나라마다 서로 싸움을 붙이시는데, 그렇게 해서 둘 다 똑같은 짐승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신다는 것이다.

◈ 로마는, 모든 나라의 표준모델 !!

다니엘서에 4가지 짐승이 나오는데, 바벨론, 그리고 바벨론을 멸망시킨 메데와 바사, 이것은 나중에 바사가 되는데, 즉 페르시아라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가 바사를 멸망시킨 헬라 나라인데, 이 헬라의 출발점은 일반적으로 마케도니아라고 해서, 지금도 그리스 북쪽에 가면 알바니아와 마케도니아가 실제로 있다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네 번째가 이들을 멸망시킨 로마인데, 그렇다면 로마 이후에는 또 다른 나라가 있는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로마 나라는 앞으로 주님이 재림할 때까지의 모든 나라의 표준 모델이 된다는 것이다. 즉 로마가 통치하는 그 원리가 아직도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이 로마에서 최초로 공화정이 생기는데, 이것은 특별한 어느 누가 고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의지에 의해서 나라를 이루는 것인데, 바로 여기서 민주주의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물론 민주주의의 태동은 헬라이지만, 그것을 국가로 현실화를 시킨 것은 로마라는 말이다. 그러니 지금 220개국의 모든 나라들이 이 로마 나라의 하나의 퍼즐이라고 보면 된다는 것이다. 로마의 특징을 한 마디로 말하면, "민족들 위에 국가가 있다" 라는 것을 보여준다는 말이다.

◈ 국가는, 마귀가 복음을 훼방하기 위해서 !!

요한계시록을 보면, 네 번째 짐승의 특징으로서 '열 뿔'이 나오는데, 이게 무슨 의미인가? 옛날에는 한 민족에 한 나라였는데, 그런데 이제 열 민족이 한 나라가 된다는 것은, 혈통보다도 추상적인 국가가 혈통을 지배하는 통치개념이 곧 악마가 이 세상을 다스리는 개념이란 말이다. 그리고 그 짐승은 바다에서 온 짐승인데, 그 혈통의 중심이 국가라는 것은, 그 목적이 이 땅에서 예수님의 복음을 훼방하기 위해서 나라를 만들었다고 요한계시록에서는 보고 있다는 것이다.

(계 17:3)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계 17:4) 그 여자는 자주빛과 붉은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다시 말씀을 드리겠는데, 세례요한이 예수님께서 오실 때 뭐라고 했는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라고 했는데, 여기에서 '가까이' 라는 것을 빼면, "하나님의 나라가 왔다" 라고 되는데 말이다. 그렇게 하늘나라가 왔다고 하면, 그게 무슨 뉘앙스인고 하니, "지금 하늘나라가 왔대. 그러면 과연 내 소속이 어디지? 하늘나라일까? 아니면 땅의 나라일까?" 라고 하면서, "바로 그 경계선에서 회개하라" 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그러니 "니가 저리로 건너가는 방법은 물 속에 빠져죽어야 한다" 라는 것이 세례요한의 아이디어인데, 그것은 실제로 물에 빠져죽어야만 육의 나라에서 하늘나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물에 빠져죽는 것을 물세례라고 하는데, 이렇게 세례요한은 물로 죽이지만, 장차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주면 우리를 성령으로 죽인다는 말이다.

◈ 안내자와 함께 죽어야만 !!

그게 로마서 6장에 나오는데, "성령으로 연합하여 함께 죽고" 라고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그냥 죽으면 안 되고, 안내자가 있어서 그 안내자와 함께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과 더불어 함께 죽은 자만이 예수님과 함께 살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곧 연합인데, 즉 예수님의 물귀신 작전이라는 말이다. 세례요한이 하나님 나라를 그렇게 죽음을 매개로 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롬 6: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롬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 세상 나라와 이스라엘 !!

그러니 기존의 역사는 국가와 국가를 서로 전쟁을 붙여서, 그 전쟁에서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잡아먹는 방식으로, 그렇게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이끌어내신다는 것이다. 그것이 곧 이 세상의 역사인데, 그러한 큰 파이프 속에 두 번째의 작은 역사가 들어있는데,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까, '이스라엘 역사' 라는 것이다.

이 이스라엘은 율법으로 만든 나라인데, 이런 율법으로 만든 나라를 누가 핍박한다는 말인가? 기존의 바깥에 있는 역사, 즉 우상을 믿는 나라, 자기 역사를 믿는 나라, 그런 마귀의 나라가 율법의 나라인 이스라엘을 공격하게 된다는 것이다.

◈ 만군의 하나님 !!

이스라엘은 언약궤가 있는데, 이 언약궤는 전쟁을 하는 만군의 하나님의 무기인데, 이 언약궤를 앞장세워서 한다는 것이다. 만군의 하나님, 전쟁의 총사령관인 하나님, 그래서 여호수아가 나왔을 때, 천사가 와서 "이 전쟁은 우리에게 맡겨라" 라고 한다는 것이다.

어제 낮에도 그런 설교를 했지만, 여리고 성에서 전쟁은 천사가 했는데, 아간은 자기가 한 것도 없으면서 물건을 훔쳤다는 것이다. 보는 사람이 없다고 말이다. 꼭 우리의 모습 같은데, 아무리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해도, 보는 사람이 없으면 하나님도 보지 않는 것으로 여기니 말이다.

시편의 말씀대로, 눈을 만드신 자가 어떻게 보지 못하고 귀를 지으신 자가 어떻게 듣지 못하겠느냐는 것인데, 그렇게 우리의 눈과 귀를 만드신 것은 그것을 지으신 하나님을 보라는 것인데, 그런데 우리는 보이지 않는다고 우기는 것으로 눈과 귀를 따지고 있다는 것이다. "시력도 좋지 않게 만들어놓고 보라고 하시는가?" 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것은 바로 율법이 완성되어야 주님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시 94:9) 귀를 지으신 자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자가 보지 아니하시랴

그렇게 바깥에 있는 기존 역사가 안에 있는 이스라엘 역사를 공격하게 되는데, 그러면 여기서 누가 이기겠는가? 당연히 역사는 바깥의 역사는 힘이 센 나라가 힘이 약한 나라를 잡아먹는 식인데,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시는가?

예를 들어서, 핫도그의 경우에, 밀가루는 바깥에 있고 그 안에는 무엇이 자리잡고 있는가? 소시지가 마치 터널과 같이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 바깥에 있는 밀가루가 세상 나라이고, 그 안에 들어있는 소시지가 이스라엘이란 말이다.

◈ 작은 이스라엘의 승리 !!

그러면 여기서 누가 더 센가? 당연히 바깥 나라가 더 센데, 그러니 바깥나라가 안에 있는 작은 나라를 잡아먹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이스라엘 역사의 초반을 살펴보면 누가 전쟁에서 이기는가? 세상적인 관점에서 보면 힘이 세고 무기가 좋은 나라가 이기게 되어있는데, 칼과 창이 있는 나라가 말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런 것이 없는데, 그냥 율법만 있고 언약궤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전쟁에서 승리는 누가 차지하는가? 이스라엘이 하는데, 그것은 바로 그 바깥에 있는 세 번째의 크다란 관조차도 누가 관리한다는 말인가? 그 속에 들어있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 바깥에 있는 크다란 관을 관리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는 바깥에 있는 크다란 첫 번째, 혹은 그 이상의 바깥 관으로 오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작아 보이고 왜소해 보이는, 그렇게 무시를 당할만한 모습으로, 즉 세 번째 품에 앉기는 두 번째의 관으로 오신다는 것이다. 이스라엘로 말이다. 즉 "무시해라. 하지만 물리면 끝이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초라한 모습으로 오셨을 때, 그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저주가 있고, 믿는 자들에게는 영생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기존의 인간들이 생각하는, 그런 고고학적인 역사관과는 정반대인데, 바로 그런 식으로 주께서 일을 하신다는 말이다.

◈ 율법으로 하늘과 맞닿아 !!

그러니 율법이라는 것은, 즉 바깥 세상은 하늘과 닿아있지 않지만, 안에 있는 이스라엘은 하늘과 닿아있는데, 어떻게 말인가? 언약으로, 즉 율법으로 닿아있다는 것이다. 모세언약이 곧 율법인데, 그러므로 율법이 하늘과 닿아있는데, 이 율법의 완성이 되는 순간이 오면 정말로 하늘과 땅은 '지지직' 하면서 서로 연결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초창기에는 이스라엘이 이방나라를 이겼는데, 그런데 후반부에 가면 주변나라들에게, 즉 밀가루 덩어리에게 지고 만다는 것이다. 소시지가 주위의 밀가루에게 그만 포위가 다 되어서 지고 만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니 소시지는 어떻게 되는가? 이미 먹을 수가 없는, 그런 쓸모가 없는 소시지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소시지 안에는 세 번째 관이 있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선지자들이 이 세 번째 관에 있다는 것이다. 마치 전선 안에 구리선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관통하고 있는 이 세 번째 관, 그렇게 숨겨져 있는 선이 바깥에 있는 율법에게 마디를 주어서 방향을 틀게 만다는 것이다.

◈ 예수님은 최종적인 허리 !!

그렇게 되면 율법은 나중에 예수님의 십자가에 오게 되면 하늘나라와 연결이 되는데, 그때 예수님은 마지막 최종적인 허리로서 하늘과 땅이 연결된다는 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율법의 개념은, 자기가 율법을 지키면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사적개념이지만, 여기서 말하는 허리라는 것은 하나의 구조적 개념으로서, 그렇게 전체 구조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 다시 정리를 해보면 !!

다시 정리를 해보면, 세례요한은 예수님이 오셨을 때 "예수님이 왔다" 라고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왔다" 라고 이야기를 함으로서, 그 뉘앙스가 무엇인고 하니, "너희들이 개인적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회개한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너희들의 나라가 이미 악마에게 속해있는 것처럼, 너희들도 너희들이 속한 하나님의 나라에 의해서, 그 결과로, 즉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에 해당되시는 예수님이 행하신 결과에 의해서 너희들은 아무런 대가도 없이 공짜로 천국에 간다" 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이것이 조금 어렵기 때문에 다시 이야기를 해보면, "하나님 나라가 왔다" 라고 하면 우리는 개인의 자율성이 있어서, 자기 새끼, 자기 가족은 자기가 챙긴다고 하지만, 하지만 주님이 보시기에는 그것이 무엇인가? 우리는 자기와 자기 가족이 살기 위해서 양보를 하고 복종을 한다고 했는데, 즉 악마의 나라에 복종하지 않으면 살지 못하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이 세상의 구조가 그렇다는 말이다.

우리는 물가가 올라가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가만히 있어도 물가는 올라가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짜장면 한 그릇에 40원을 할 때가 좋은데, 그런데 지금은 4천원이라는 것이다. 즉 우리는 우리 자신만 생각하면서 살고 싶은데, 그런데 우리는 일종의 액체와 같은 주체가 되어서, 주변의 흐름에 같이 휩쓸려서 흘러가니, 따라가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한복을 입고 살아가고 싶어도, 그런데 이런 곳에서 한복을 입고 폼을 잡으면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는데, 병원에 가면 청학동에서 막 내려온 사이비 훈장님 쯤으로 알고 그냥 쫓아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방송국에서 인터뷰를 할 수 있는데,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맛이 갔습니까?" 라고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 세상이 만들어주는 대로 만들어질 뿐인데, 즉 "엄마, 나 공부를 잘하지? 엄마 밑에서 공부만 할거야" 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공부를 잘하면 시험을 쳐야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험을 친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 아이를 이 세상에 내어놓고 실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 그래서 과연 어느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지, 그런 것을 한번 찾아서 나서보라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가 "엄마, 나는 시험을 치지 않을 거야. 그냥 엄마에게 칭찬만 받을 거야" 라고 한다면, 그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어릴 때 자기 새끼가 천재가 아닌 부모가 없는데, 그런데 그런 천재들을 모아서 비교해보니 천재가 아닌 것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아이를 보고 "제발이지 공부를 좀 해라. 내가 너에게 속은 것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져" 라고 한다는 것이다. 자기가 속아놓고는 말이다.

그러니 이 세상에서 우리는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구원을 받지 못하는데, 그런데 하나님 나라가 와서, 그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이 되시는 분에 의해서, 그분이 우리가 하지 못하는 일을 대신해서 해주셔야만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이 말이다.

◈ 주님의 이벤트만이 !!

그렇게 그분이 벌인 이벤트에 의해서, 그 이벤트가 무엇인고 하니까, 악마의 나라의 실체를 드러내고 나서 이기는 것인데, 즉 우리가 그동안 악마의 나라에서 살았다는 것을 까밝히고 난 다음에 그대로 있으면 안 되고 이기셔야 하는데, 그렇게 이기고 부활하심으로서 그 승리를 드러내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승리한 그 업적이 성령의 이름으로 우리를 지배하게 되면, 우리는 바람같이 오는 성령에 의해서 개인 자격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일원이라는 이유로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곧 새로운 주체,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말이다.

◈ 마귀의 것에서, 주님의 것으로 !!

그래서 사도바울은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라고 했는데, 즉 주의 소유라는 말이다. 그러니 처음부터 자기 것은 없고, 우리는 처음에는 마귀의 것이었는데, 이제 주님의 것이 되었다는 말이다. 즉 "내 것이었는데 주님의 것이 되었다" 라는 것이 아니라, "마귀의 것이었는데 주님의 것이 되었다" 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롬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와서 동전을 하나 내밀면서 "우리가 세금을 누구에게 내는 것이 옳습니까?" 라고 말이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 동전의 누구인가? 니 입으로 말해봐라" 라고 하시는데, 그 동전에는 로마황제의 그림이 있었는데, 그래서 예수님은 "그 양반에게 주어라"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쳐라" 라고 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그들의 질문자체가 이미 마귀에게 매여있는 질문을 했다는 말이다.

(눅 20:22)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하니
(눅 20:23) 예수께서 그 간계를 아시고 가라사대
(눅 20:24) 데나리온 하나를 내게 보이라 뉘 화상과 글이 여기 있느냐 대답하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눅 20:25) 가라사대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어제 오후시간에 어린아이의 질문을 언급했는데, 즉 "내가 기도를 했는데 하나님이 들어주지 않았다" 라고 했을 때, 그것을 답변해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질문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도록, 그렇게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즉 "다른 아이가 너보다 빨리 기도해서 다 빼앗아간다. 남겨둘 리가 없다" 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그 아이는 다음부터는 더 빨리 다 깊숙이 기도하려고 하는데, 그러면 도대체 어느 정도로 더 빨리 더 깊숙이 해야하느냐는 것이다. 마치 명절에 기차표를 예매하듯이 시간이 되자마자 곧 바로 달려가야 하는지 말이다. 그렇게 자기 질문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하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멸망시킨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게 되면, 그러면 그 아이는 다음부터는 기도하지 않는다고 나온다는 것이다. 물론 헌금도 하지 않고 말이다. 왜냐하면,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여기니 말이다. 진짜 무할례자를 자랑하는 것 같은데 말이다.

◈ 주님만의 독특한 레시피로 !!

아무튼 우리가 생각하는 그 생각자체가 문제를 품고 있는데, 왜냐하면 '나' 라는 인간자체가 문제투성이이니 말이다. 그래서 어느 강의에서 제가 "성도는 폐기물이다" 라고 했는데, 하나님 언약의 폐기물이라고 말이다. 그런 폐기물을 가지고 하나님은 성도로 만드시는데, 해골을 가지고서 말이다. 괜찮은 재료가 아니고, 음식 쓰레기를 가지고 최고급 요리를 만드신다는 것이다. 하나님만의 레시피로 말이다.

말을 하고 나니 섬뜩한데, 하늘나라에 가면 사람 고기가 나오니 말이다. 무익한 종을 가지고 유익한 아들을 생산해내는 레시피는, 그런 요리법은 주님만이 아시는 비법인데, 그런데 우리는 건전한 자기를 건전하게 사용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자기가 쓰레기인 줄도 모르고 말이다. 폐기물을 폐기물로 처리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데, 이 세상이 고생스럽다고 그런 고생하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따지면 안 된다는 것이다.

◈ 어디서, 감히 폐기물이 !!

예수님에게 어떤 동생이 와서 "형이 내 재산을 다 빼앗아갑니다" 라고 불평을 하니,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는가? "생명은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 라고 하셨는데, 즉 "어디 감히 폐기물이 와서 계속해서 폐기물로 유지하려고 나에게 덤벼드는가?" 라는 식이란 말이다. 그러니 "주님, 나는 나입니다. 계속 나답게 해주세요" 라고 하면, 주님은 그런 소원은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내가 나답게 하기 위해서 열심히 기도했는데, 왜 그 기도를 들어주지 않습니까?" 라고 하는 것은, 계속해서 자기 자신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어린아이의 요청은, 사실은 어른들이 다 품고 있는 것인데, 어린아이는 순진하니 그것을 밖으로 다 드러내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제가 "인간은 자기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범죄이다" 라는 글을 쓰기도 했는데 말이다. 아무튼 우리는 개인 자격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에 소속된 자격으로서만 살아가고, 그렇게 해서 우리가 구원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십일조 받기'와 '십일조 드리기' !!

그렇다면 이 율법 안에, 이 율법에서 어떻게, 즉 율법 속에 들어있는 마지막 전선, 마지막 핵심부분인 예수님의 노선에 어떻게 다가가는지 살펴보자는 것이다. 일단 율법을 시행하게 되는데, 그 시행자가 바로 레위지파라는 것이다.

그 레위지파가 율법을 시행했는데, 그것이 곧 '십일조 받기'와 '십일조 드리기' 인데, 즉 이 레위지파는 백성들로부터 십일조를 받았고, 그 십일조를 제사장에게 드리면, 제사장은 그것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십일조' 라는 율법은, 율법 안에 또 하나의 율법을 시행하는 주체를 등장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율법 이전에는 율법이 없던 시절인데, 그때는 아브라함과 멜기세덱이 만났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시절에는 율법이 없이, 어떻게 행한 것도 없이, 즉 율법을 실천에 옮길 어떤 시행자도 없이, 그냥 아브라함 자체가 하나의 터널이 된다는 것이다.

현재 2017년을 완공목표로 세계에서 제일 긴 터널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무려 57km나 되는 말이다. 이탈리아 북쪽에서 스위스 남쪽로 가는, 그 험한 알프스 산맥을 관통하는 대공사인데 말이다. 그런데 이런 터널의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까, 바깥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터널을 통과한 사람은 "알프산이 참 아름답더라" 라는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응, 그냥 시커멓더라" 라고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터널만 통과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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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프스 산맥을 관통하는 세계에서 가장 긴 터널을 뚫고있는 스위스
현지시간으로 10월15일 오후2시, 스위스 알프스 산맥 지하에서 새 터널의 마지막 1.8미터를 뚫는 행사가 열린다고 합니다. 스위스는 지난 14년간 (공사 중 8명 사망) 루체른 호수 끝자락 인근에 위치한 Erstfeld에서 알프스 산맥을 관통해서 Bodio까지 이르는 총57킬로에 이르는 새 Gotthard 터널을 뚫고있었다고 하는데요. 길이로 따지면 완공 후에는 53.85킬로의 일본 세이칸 터널을 제치고 세계에서 제일 긴 터널이 된답니다. 참고로 영국과 프랑스를 잇는 해저터널은 50,45킬로로 2위고 작년에 완공한 새 Loetscheberg 터널이(현 스위스에서 제일 긴 터널) 34.58킬로로 3위라고 하네요. 현재 밀라노에서 취리히에 기차로 갈때 지나가는 St. Gotthard 터널이 있긴 하지만 지금 새로 뚫는 터널과는 길이가 비교가 되지 않죠. 이것 말고도 취리히 남쪽에서 Zug 북쪽까지 이르는 20킬로 Zimmerberg 터널은 반정도가 완공되었고 루가노 북쪽에서 Bellizona 남쪽까지 이르는 15킬로 Ceneri 터널도 공사중입니다 (약 30% 정도 완료). 만약 이 터널들이 다 완공된다면 고속열차가 250km/h까지 속력을 낼 수 있고 취리히-밀라노 구간을 지금 EC에 비해 약 한 시간 정도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새 터널이 완공돼서 첫 기차 운행은 2017년 12월쯤이나 가능할거라고 하네요. - 네이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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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러한 터널부분, 즉 역사를 꿰뚫어서 천국과 이어지는 부분에 아브라함과 멜기세덱이 있다는 것이다. 이 터널을 성경의 표현으로 하면 '중보자' 라고 할 수 있는데, 조금 더 철학적으로 표현하면 '매개자' 라고 할 수 있고 말이다.

◈ 중보자, 매개자, 뚫는다 !!

이 '중보자' 라는 것보다도 매개자가 우리에게는 더 이해하기 쉬운데, 이 '매개(媒介)' 라는 것은 "너와 내가 만날 수 없는데, 서로 통하도록 중매를 한다" 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이 중매는 고린도후서 11장에 나오는데, "내가 너희를 신부로서 그리스도께 중매함이로다" 라고 말이다. 맞습니까? (딩동댕!)

(고후 11: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렇게 만나도록 접선을 해주시는데, 북한의 꽃제비들을 탈북시키는 일을 우리나라의 백수 목사들이 중국에 넘어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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