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질문 130224
세 가지 질문 130224
이름 : 이근호(IP:119.18.69.144)
세 가지 질문 (합 2:1-3)
이근호
13-02-24 15:52
세 가지 질문
2013년 2월 24일 본문 말씀: 하박국 2:1-3
(합 2:1, 개역)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그리하였더니』
(합 2:2, 개역)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합 2:3, 개역)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하박국은 하나님에게 세 가지 질문을 합니다. 인간들이 질문을 하는 것은 하나님과 자기와는 이제 막연한 사이라고 간주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생각은 다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질문을 유도하셔서 그 질문으로 인하여 질문자의 문제성과 한계를 도출하시려고 합니다.
사람들의 질문은, 그 질문을 통해서 해답을 얻고 그 얻어진 해답은 이미 자신이 확보한 진리창고에 모순없이 추가될 수 있는 정보라고 간주하고 싶어합니다. 많이 알고 그만큼 더 현명해지리라는 희망을 안고서 말입니다. 하지만 고린도전서 1:18-21에 보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 나옵니다.
즉 질문자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질문자가 스스로 똑똑해지려는 모든 것을 무산시키는 식으로 답변해버리십니다. “제발 어리석은 자가 되어라”는 겁니다. 하지만 이러한 응답이 얻기 위해 질문자는 자신의 똑똑함과 총기 있음을 버리지를 못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박국은 다음 세 가지를 질문입니다.
1. 왜 유대나라를 심판하는 심판자들이 유대나라보다 악한 자를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가?
2. 왜 그토록 잔인하게 심판하시고 유대나라에 남아있는 의인마저 그 혹독한 처우를 받아야 하는가?
3. 언제까지 이런 수모와 수난을 받아야 하는가? 언제 이 환란의 날이 끝나는가? 라는 질문입니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은, 하나님이 더 이상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이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하십니다. 인간들의 권력이란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가 선택하고 결정짓는 그 경로들을 집합시킨 흔적으로의 권력입니다. 그러니까 자기만을 위한 권력체 안에 자신이 놓여있고 싶어합니다.
이스라엘도 예외가 아닙니다. 자신이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한 일에 억지로 하나님을 자기 편으로 끌어드릴려고 시도하게 됩니다. 그래놓고서 질문해댑니다. “하나님, 어찌 우리보다 못한 나라가 우리를 공격하게 만드십니까?”라고 말입니다. 일반 재판에서 피고보다 더 악한 자가 판사가 되어 판결하면 권위가 안 서겠지요. 정의 사회가 마련되지 않겠지요. 그 원리를 하박국이 거론하는 겁니다.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너희들과 따로 일하시겠다”는 겁니다.
두 번째 질문은 “비록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렸다 치더라도 여전히 이스라엘 내부에 의인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 의인들을 특별 취급해야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속성에 합당하지 않습니까?”라는 투로 말하는 겁니다.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은 답변하시기를 “잔혹함을 이해하고 감수하는 자가 의인이다”는 겁니다.
한 예를 들면, 의로운 욥이 심한 고난을 받습니다. 욥은 참다 못해 하나님에게 질문을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저에게 악인들이나 받아야 될 심판을 안겨주십니까?”라고 나옵니다.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의 답변은 간단합니다. “네가 별 만들 때 무엇했지?”라고 말입니다.
“네가 묘성을 매어 떨기 되게 하겠느냐 삼성의 띠를 풀겠느냐 네가 열두 궁성을 때를 따라 이끌어 내겠느냐 북두성과 그 속한 별들을 인도하겠느냐”(욥 38:31-32) 즉 평소에 욥이 자신을 따지면서 별의 존재와 연관해서 따지지 못했던 것입니다. 오로지 자신을 위해 자신이 선택하고 결정하면서 그 주변에 자기를 모시기 위한 권력의 장을 형성해온 것입니다.
세 번째 질문은, “언제 이 고난을 끝나겠는가?”합니다. 그런데 이 질문의 문제점은, 그 고난의 시기가 끝났다고 해서 과연 본인의 뜻이 그 때에도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고 여기는데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일하심에는 원인보다 결과가 더 크게 작용하시는 겁니다. 인간들이 자기 예상을 의해서 준비된 그 원인보다도 엉뚱하게 전혀 다른 결과로서 마중나오시면서 그 원인을 삼켜버리시고 삭제시켜 버리시는 겁니다.
그 이유는 인간에게 그 어떤 주도권을 안겨주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하면 된다”를 못 발설하게 하시는 겁니다. ‘된다, 아니된다’는 연관에서 인간들이 배제시켜버리시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의 원인성을 인정해주면 인간들은 천국에 가서도 자기 주도권을 포기하지 않게 됩니다.
따라서 그렇게 되면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사람의 나라 연장이 되는 겁니다. 욥은 별을 생각하면서 자신이 그동안 세상을 보면서 형성한 세상관이 너무 자기 위주였음을 하나님께서는 깨닫게 만드시는 겁니다. 마태복음 26:1-6에 보면,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밤 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본문에서 우리는 ‘모든 처녀들이 다 잠을 잤다’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신랑은 갑자기 왔고 신랑은, 자기 신부가 구원받을 수 있는 근거를 ‘기름 준비’로 간주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미리 마련하신 바에 대해서 인간이 주도권을 쥘 수 없다는 점을 지혜로운 처녀들은 미리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반면에 어리석은 처녀들은 신랑이 올 때 기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기름을 미리 준비하면 기껏 어리석은 짓이 된다는 겁니다. 바로 이런 발상이 구원의 근거에다 자신의 똑똑함을 미리 집어넣어 계속 주도권을 쥐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고난의 시기란 인간의 모든 주도권이 박탈되는 작용과 더불어 발생되면서 그 마지막에 이르게 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제발 어리석은 심정으로 십자가만 쳐다 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이근호
13-02-26 13:09
4강-합2장1-3(세 가지 질문)130224-이 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 하박국 2장 1절에서 3절까지입니다. 구약성경1303페이지입니다.
하박국 2:1-3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그리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하박국이 우리 인간을 대표해서 우리가 평소에 질문하고 싶은 것을 세 가지를 질문을 합니다. 첫 번 질문이 뭐냐 하면 왜 하필이면 악한 갈대아 사람들을 심판자로 내세우느냐 하는 겁니다. 피고보다 판사가 깨끗해야 되잖아요? 깨끗한 사람을 내세워서 죄 진 사람을 판정을 해야 법이 권위가 서게 돼 있는데 심판할 자로 나서는 그 인간들의 몰골이 심판 받는 이스라엘보다 더 더러우니까 이게 납득이 안 되는 거예요. 이게 반대가 돼야 되는데, 우리가 저쪽을 쳐는 것이 정의로운 하나님의 정의로운 성품이 맞는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저 더러운 갈대아인으로 하여금 심판자로 나서서 우리가 심판을 받느냐.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은 응답을 하셨죠.
이스라엘 자체를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를 수정하라. 질문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질문에 대답을 한 게 아니고 질문하면서 드러날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잘못된 생각을 교정해 주시는 겁니다. 질문을 통해서 그 질문을 잡아서 그 속에 잘못된 생각 때문에 이런 질문이 생겼으니까 요런, 요런 질문을 바꾸라고 하시는 겁니다.
한 예를 들면 가정에 우환이 있고 경제사정이 좋지 않을 때 그럴 때 ‘하나님이여, 왜 이렇게 인생을 힘들게 살아갑니까?’ 했을 때 성경에 나온 답변은 이거예요. 욥에게 그런 이야기 했거든요. 욥이 ‘이유 없이 왜 내가 고난을 받게 하십니까?’ 할 때 하나님께서 욥에게 ‘하늘에 별이 몇 개지?’ 이렇게 나옵니다. ‘하늘에 별을 누가 만들었지?’ 이렇게 나온다 이 말이죠.
우리는 내 사정을 가지고 질문을 만들어서 질문을 하고 싶어 하는 거예요. 그러면 그 답변을 우리가 기대한 답변은 날마다 내가 나를 선택하듯이 결국은 내가 소중하다는 느낌을 갖듯이 하나님도 좀 내편이 돼서 ‘역시 네가 소중해.’ 라는 식으로 그런 쪽으로 답변을 유도하고 싶은데 ‘별을 누가 만들었어? 별 만들 때 네가 있었어?’하고 한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들은 내가 지금 형편이 어려운 것하고 저 별이 있는 것하고 평소에 연관을 시킬 수가 없이 살아왔습니다. 빠트리고 살아온 거예요. 달이 밝은 것하고, 오늘 보름입니다. 달이 밝은 것하고 내가 인생사는 것하고 관련시키지 않고 일방적으로 그걸 끊어놓고 원망하면서 질문들을 쏟아낸 겁니다.
어떻게 그런 하나님께서는 그 해와 달과 별이 있는 이유를 가지고 우리 속에 질문 속에 쏟아 넣어버리죠. 그러면 별이 있는 이유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있다면 내가 여기서 고난 받는 것도 결국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고난 받아야 하기에 받는다고 생각해 버리면, 그것은 바로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동안 사람들은 평소에 별이 있는 것과 내 인생을 연관시키지 못한 것은 이게 바로 우리가 전에 습득했던 권력의 속성이 그래요. 권력의 속성이라 하는 것은 결국은 자기가 자기만 선택하는 경로의 자국, 흔적, 그게 모이면 권력이 돼요.
아까 식사할 때 그런 이야기했습니다마는 이상규 집사님이 저보고 깜짝 놀라서 이야기해요. ‘목사님, 한 5년 간 자기가 편하게 됐습니다.’ 해서 ‘5년간? 이상하다. 가게 처분하고 장사 안 하고 서울 가서 장사 하나?’ 이런 식으로 염려 걱정을 해서, ‘생방송 안 되면 누가 고치지?’ 해서 걱정을 했는데 그 놀랐던 이유가 하여튼 박근혜가 지목하는 사람은 전부 다 후보에서 결격사유가 있으니 지금 후보 검증위원회에서 하는 게 뭐냐 하면 자식들 군대문제하고 부동산 축적문제, 그리고 과도하게 정관예우, 그리고 cia 앞잡이 노릇한 것, 그런 거잖아요. 이것저것 그런 거 해당 안 되는 사람은 이 상규 집사님이 보니까 본인밖에 없는 거예요. ‘아니 경산에서 장사하는 나는 놔두고 왜 쓸데없는 그런 사람들을 뽑아서 하다가 안 되고 또 뽑아서 안 되고 왜 그러느냐 말이죠. 여기 많은데, 왜 안 되느냐 하면 평소에 박근혜씨하고 박근혜씨는 박근혜를 원하는 쪽으로 선택을 해왔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한 집사님도 걸려야 되는데, 아직 소식이 없습니까?
측근에서 박근혜를 권력자로 만드는데 그 권력에 이바지했다는 말은 뭐냐 하면 박근혜씨가 선택하는 그 선택에 자기가 주저 없이 거기다 자기를 포기하고 박근혜 선택에 자기 선택을 포기했기 때문에 그게 하나의 권력의 장이 되는 겁니다. 이렇게 권력의 장이 될 때 그것은 바로 우리나라 우리집단이 되는 겁니다. 그게 바로 이스라엘 이예요. 그 대표자가 누구냐, 하박국이었습니다. 질문하는 겁니다. ‘하나님 아버지, 왜 우리나라 건설하는데 우리나라 인은 괜찮은데 왜 우리보다 악한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의 심판주로 합니까?’ 할 때 하나님께서는 ‘너는 너를 선택하듯이 똑같은 심정으로 하나님이 사실은 네 편 인양 일방적으로 선택해 놓고 하나님이 우리 속에 함께 있다고 그렇게 권력화 시키는 그 권력 속에서 하나님 나는 빠지겠다 이 말입니다.
두 번째 질문이 뭐냐 하면 이왕 심판하는 거 왜 잔인하게 심판하십니까? 하는 질문을 하박국 1장에서 했어요. 왜 그렇게 잔인하게 의인까지 심판해 버리면 모순되지 않습니까? 왜 그렇게 심판할 때 좀 정신 차리도록 사랑의 매? 그 정도로 하는데 이건 사랑의 매가 아니라 사랑의 야구방망이 돼 버렸어요. 인간되라고 때리는 게 아니고 아주 죽으라고 때려요.
이 두 번째 개념은 첫 번째는 이스라엘의 개념은 ‘하나님은 우리 편이잖아요? 하나님하고 우리 서로 모르는 사이 아니잖아요?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하나님인데 왜 우리 편인데 왜 우리 편을 옹호하지 않습니까? 라는 질문에 대한 것은 이스라엘 자체를 나는 여기서 빠져있다는 것과 거기에 대한 답변이고.
두 번째 질문은 왜 의인까지 같이 잔인하게 치면 의인이 어떤 희망이 없이 낙심하지 않습니까? 예수 잘 믿는 사람이 하는 일이 안 돼 버리면 예수 믿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의인이라는 것이 과연 뭔데, 네가 의인이라고 여겼던, 이스라엘이 엉망인 것은 우리가 동의합니다만 그래도 이스라엘 속에 몇몇은 의인이 있잖아요? 라고 여길 때 그 의인을 어떻게 다른 이스라엘과 같이 매 맞게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선생님이 숙제를 안 해온 애만 때려야지, 숙제 안 했다고 숙제 해온 아이까지 때려버리면 그 다음부터는 숙제할 정당성이 없지 않습니까? 하는 거예요.
제가 예배 마치고 이 집사님이 책을 하나 읽어보라고 주셨어요. ‘헬라인에 대한 권면’이라는 책을 주셨는데 누가 지었는가 보니까 클레멘스가 졌는데 이번 수련회 때 잠깐 언급했는데 앞으로 아마 부산강의에서 할 겁니다. 이 사람의 책을 이렇게 보니까 이 사람이 옛날 초대교회를 변증하는 사람입니다. 왜 기독교는 옳고 왜 기독교의 하나님을 믿어야 진짜 하나님이고, 다른 하나님은 가짜라는 것을 변증하는 거거든요. 변호해서 설득해서 반드시 믿게 하는 그 책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이미 클레멘스란 사람이 이런 책을 이야기하고 난 뒤에 수백 년 동안 이 책보다 수백 배 많이 나온 책들이 무슨 책이냐 하면, 왜 기독교는 기독교 교주인 예수는 왜 성경에서 말하는 대로 그런 예수가 아니고 그냥 평범한 철학가에 불과하냐는 책이 수백 권 이상 나왔어요.
그러니까 기독교는 예수님이 하나님이고 하나님이 이 땅에 와서 사람들을 구원해서 이 땅에 있는 인간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어서 천국 보낸다는 그 이론이 예수님한테 나온 처음 이론이 아니고 이미 헬라사람들의 철학 속에 여기저기서 짜깁기해서 끌어 모아서 거기다가 예수 부활했다는 그런 헛된 소문, 사도바울과 제자들의 헛된 소문과 이게 결탁을 해서 뭔가 가슴의 응어리를 풀 수 있는 종교로서 한번 만들어 볼까하고 시도한 그러한 짓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책이 수백 권 나왔어요.
예수는 인도 가서 석가모니 제자한테 한수 배웠고 뭐 어떻고, 하는 그걸 고고학적으로 증거를 대면서 하고 디오니소스의 철학에서 나오는 예수님의 부활 이야기도 이미 그 전에 있고 살과 떡과 잔을 해서 내 살과 내 피라 하는 것도 그 전에 있었고 부활, 십자가 죽는 것은 그 당시 그 전부터 장차 십자가 죽는다는 그 예언도 예수 이전에 많이 나왔다하는 그것도 하고 예수 모르는 바른 영혼은 예수님이 원수를 사랑하라 하는 그런 이야기도 이미 예수 이전에 유대인의 교훈 집에 다 들어있고 산상설교에서 이야기한 그것도 이미 다른 책에 있다는 그런 것을 모아 모아서 된 책이 수백 권이 넘는다니까요.
지금 바로 그러한 영적인 싸움이 이게 체험 싸움이고 그 체험에서 굳어진 것이 인간의 똑똑함, 이성입니다. 십자가는 뭐냐 하면 계속해서 예수 믿는 것이 어리석음이 돼야 돼요.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이 어리석음으로 돼야 되는데 자기 자신을 무시해야 되는데, 다시 말해서 자기를 선택하지 않아야 되는데 뭔가 안 어리석고 뭔가 밀리지 않고 계속 똑똑하고 현명해야 된다는 의식을 가져버리면 이것은 꿀리지 않으려고 하게 되면 이것은 그 자체가 바로 나 중심의 하나의 권력의 장이 형성되는 거예요.
오늘 본문에 하박국이 질문한 게 그거예요. ‘하나님이여, 하나님은 제 편이고 저는 하나님 편에 있잖아요. 하나님이 제가 기도하면 응답했고 하나님이 나 있을 때 하나님이 계셔 주셨잖아요. 그러면 우리 사이는 소통하고 통하는 사이고 같은 편인데 왜 같은 편인데 하나님의 내막을 안 알려주고 우리가 난처하게 만들고 당황스러운 일만 생겨버리면 내가 계속 하나님과 같은 편일까? 의심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것을 자기뿐만 아니고 자기를 믿고 있는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도 그런 오해가 있으니까 자기가 대표해서 기도한 거예요.
하나님이여, 왜 이런 일이 벌어집니까? 처음에는 왜 우리보다 못한 자를 심판자로 세웁니까? 두 번째는 왜 잔인합니까? 세 번째 질문이 오늘 본문입니다. 하나님이여, 언제까지? 언제까지 이 어려움이 계속 될 것입니까? 라는 질문. 요 질문을 성경을 본 사람들은 대번 압니다. 이게 사도행전 1장에 나오는데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 붙들고 물었던 질문이죠. ‘예수님, 하나님의 나라가 이때니이까?’ 라는 질문이 나옵니다. 그 질문에 제가 답변을 해드리겠습니다. 하늘나라가 언제입니까? 언제 세상이 불 심판 온다는데 그게 몇 월 며칠입니까? 2012년 12월 21일은 마야 민족이 있는데 그건 이미 지나갔어요. 아무 일 없어요. 그러니까 또 다시 종말 날짜를 언제로 잡으면 대충 맞아 떨어지겠습니까? 사람들이 숫자를 만들어 놓고 지 숫자에 지가 속아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요. 교회사를 보면 끝에 9가 달리면 굉장히 사람들은 자기가 달력을 만들어 놓고 699년, 799년, 899년, 사람들이 9에 약해요. 그때마다 서유럽에서 종말론이 퍼졌어요. 1099년, 1999년, 9자가 3개가 아닙니까? 666도 마찬가지고요. 어떤 노래 보니까 99.9라는 노래도 있어요. 내 남자는 99.9라고 하는, 99에 왜 그리 약합니까? 지가 숫자를 만들어 놓고 지가 넘어가는 거예요. 13일의 금요일, 왜 13일이냐? 예수님의 제자가 12명인데 뭔가 시커먼 엉뚱한 게 차고 들어와서 악마를 몰고 들어와서 하필 예수님이 죽은 날이 금요일이니까 13일과 금요일이 마주 치면 왠지 기분 나쁘더라.
그걸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면 사람들이 ‘주님 이런 게 언제 끝납니까?’ 하죠. 광주의 오 목사님이 애 둘이 대학 들어가는데 신경 많이 썼어요. 공부가 항상 어디를 집어넣어도 다 될 그런 성적이 아니라서 참 기분 나쁘잖아요. 여러분들이 현금 출납 기 할 때 카드 집어넣으면 툭 튀어나오고 얼마나 기분 나쁘냐고요. 집어넣으면 툭 튀어나오고, 그런데 둘 다 대학에 들어갔어요. 끝난 줄 알았다는데 끝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언제 끝납니까?’가문제가 되는 거예요.
그러면 그 문제가 뭐냐, 뜸들이지 않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결과는 원인보다 큽니다. 인간은 자기가 출발점이 돼요. ‘하나님, 제가 요렇게 원인들을 요런 결과를 유발할 멋진 원인들을 모아놓고 바칩니다. 요기에 합당한 참한 결과를 주시옵소서. 언제 끝납니까? 언제 심판이 끝납니까? 언제 이 심판 자체가 나쁘다는 인간 자체를 들통 냅니까?’ 물었는데 주님께서 주시는 결과는 우리 원인 노선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왜, 우리가 원인은 우리 스스로 나를 권력의 주도권, 권력의 주인공으로 삼고 출발한 원인이기 때문에 거기에 주님께서 동조하지 않습니다. 결과는 원인보다 클 경우에는 원인을 이야기한 질문자를 주께서는 삭제시켜 버립니다. ‘너 질문한 거 취소해.’ 너 질문한 것이 질문할 쨉도 못 된다는 것을 깨닫는 것, ‘질문한 내가 나쁜 놈입니다.‘를 깨닫게 하는 결과가 조만간 주어질 것이다. 기다려라.
우리는 하나님하고 같이 멋진 결과를 기다리는데 주님께서는 같이 기다리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조바심 있게 기다렸던 너도 전혀 이런 결과를 예상도 못했다는 겁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기름 준비한 처녀 이야기 나오죠. 결과적으로 다섯 처녀는 신랑을 맞이했고 다섯 처녀는 탈락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기름을 준비했다 이 말이죠. 기름을 준비했는데 문제는 기름을 준비하면 뭐합니까? 다 잤는데. 다섯 처녀가 기름준비하고 밤샘을 한 게 아니고 기름을 준비해도 다 자버렸어요. 다 잤는데 신랑이 왔거든요.
그러니까 이 말은 뭐냐, 결과로 오신 신랑이 진짜 구원될지 안 될지, 다 자고 있으니까 기름 준비 한 것을 그 결과에 합당한 원인으로 새롭게 채택을 한 거예요. 어렵죠? 제가 만약에 박근혜 당선자라면 이렇게 합니다. 미리 조사해서 뭐하는 게 아니고 일단 그 사람을 지목해 놓고 그 다음에 ‘그 사람을 어떻게 해서 국무총리로 했습니까?’ 물으면 새삼스럽게 그 사람을 불러요. ‘당신 지금 어느 대학 나왔어요?’ ‘성균관대학 나왔어요.’ ‘아, 나는 처음부터 성균관대학 안 나오면 국무총리 안 시키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리고 또 집에서 빨간 넥타이?’ ‘알았어요. 집에서 빨간 넥타이 안 맨 사람은 난 국무총리 안 시키겠습니다.’ 이렇게 새삼 정해버리는 거예요. 왜 그래야 결과가 원인마저 점령할 수 있기 때문에. 주도권을 계속 결과가 지고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정작 기다릴 것은 딴 게 아니고 우리보다 더 악한 심판주가 등장했다. 그리고 우리는 잔인하게 심판 주한테 당하기만 한다. 세 번째는 우리는 미래가 모든 걸 해결해 줄줄을 기다린다. 하는 이 세 가지의 질문 자체가 막상 주님을 만나버리면 그건 질문을 할 것도 아닌, 불신에 관한 믿음도 아닌 그런 내용들 가지고 입을 나불나불 거리고 온 거예요.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하지 못하고 자꾸 자기가 평소의 버릇이 자기가 자기에 대해서 본인이 선택하고 본인이 결정하는 그 버릇이 남아있기 때문에 그 버릇에 예수님마저 걸려들기를 원했던 거예요. ‘예수님, 내일 좀 오게 해 주시옵소서.’ 이렇게 나온 거예요. 그러면 주님께서는 네 결정을 일체 인정하지 않는 방향으로 결과를 주시는 겁니다.
이번에 가락교회 강의하면서 칠판에다 그런 글을 썼어요. 둘 중에 하나 어느 쪽이 맞습니까? 한 건데, ➀내게 대한 하나님의 조치는 다 합법적이다. ➁내가 행하는 모든 것은 합법적이다. 어느 것이 맞습니까? 같은 말이 아니에요. 얼른 보면 같은 말로 들리는데 내가 하는 모든 것은 다 정당하고 옳습니다. 라는 그 말과 내게 내린 하나님의 조치는 전부 다 정당하다는 말과 이게 서로 반대말입니다. 내가 어떤 질문을 하든 어떻게 철없는 질문을 하고 나는 나만 선택하고 ‘나는 내 나름대로의 나의 권력의 장만 있으면 돼, 나만 알아주면 돼.‘라고 하면서도 그런 조치가 그렇게 네가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일부러 너를 하게 하셨다는 그 조치만큼은 정당하게 하는 날이 올 거예요. 그 날이 결과보다 나라는 원인보다 결과가 더 주인공답다가 들통 나는 그날입니다.
그런데 그걸 예수님 안 믿는 사람은 하나님이 내게 한 조치가 다 옳다면 그렇다면 그 말이나 하나님에 대한 조치가 됐으니까 나는 뭐든지 해도 죄 없다. 같은 뜻이 아닌가.‘라고 생각해 버리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죄로 드러나게 만들 겁니다. 원인에서 이미 결과로 옮겨갔으면 결과 속에 우리가 풍덩 잠겨야 되는데 요 인간들이 얼마나 못됐는지 원인에서 이미 결과를 옮겨갔다는 사실을 알았으니까 나는 그럼 내 원인을 계속 고수하겠습니다. 이렇게 아직도 자기주장을 펼치려고 시도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나보다 못한 자가 나보다 더 잘돼야 되고 그 잘 된 자 때문에 내가 시달려야 되고 그래서 언제까지 입니까? 하면 자꾸 지루해지고 나중에 인내성이 바닥이 나서 에이, 때려 쳐라. 하는 이런 식으로 우리가 자기 자신을 늘 상 돌아보죠. 교회서 말씀 들을 때는 참 믿는 자 같은데 막상 돌아서게 되면 다시 원인이 나한테 돌아와서 그럼 하나님, 어쩌란 말입니까? 이래도 안 돼, 저래도 안 돼, 그럼 신앙생활 하란 말입니까? 하지 말란 말입니까? 이렇게 되는 거예요.
다시 한 번 이 책에 대해서 언급하게 되면 헬라인의 권면을 쭉 보게 되면 사람들을 그렇게 내용이 설득을 시켜요. ‘여러분,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철학이고 우리는 신앙입니다.‘ 라고 분리해서 이야기하는데 우리가 이렇게 함으로서 결국 우리가 얻은 게 뭐냐, 자기 자신의 노력을 스스로 믿는바가 되는 겁니다.
그러면 주님 기다리는 것이 지루해져요. 이렇게 합시다. 우리끼리의 약속입니다. 그냥 잡시다. 그냥 잤는데, 좀 말을 어렵게 하겠습니다. 우리교인들이 잠을 잤어요. 기름도 없고 없이 잤는데 우리교인이 공통점을 하나 주님이 찾아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자꾸 잠을 잘 때 코를 크게 고는 게 있더라는 말이죠. 그러니까 주님께서는 ‘나는 지혜로운 처녀를 찾으러 왔다.’ 하니까 구원받지 못한 처녀가 ‘뭐, 뭐?’ ‘잘 때 너희들은 코를 안 골았지만 우리교인들은 다 코를 골았잖아.’ 하고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요소를 끄집어내서 그걸 하나로 단결시키는 거예요.
또 이 설교 들으면 o목사님은 논리는 맞지만 취지는 이해되지만 너무 억지다 하겠지만. 하여튼 우리가 제공하는 원인 가지고는 안 하고 결과를 가지고 결과를 합법화 시키는 원인을 다시 우리에게 이미 집어넣고 있다는 사실! 그럴 때 우리는 나중에 주님 만나게 되면 ‘아! 내가 죄인이란 이것이 바로 주님을 주님 되게, 구원되도록 하는 하나의 토대로서 작용 했군요.’ 하고 깨닫게 되는 겁니다. 코 고는 것이 뭐가 잘한 겁니까? 우리가 잘 한 것은 따로 있거든요. 기름 준비 했다. 그런데 ‘주께서는 코 고는 것은 하나님 못 본 척 해주세요.’ 우리가 못 본체 하도록 갖다 버린 것, 이건 하나님 좋은 결과가 될 수 없습니다. 하고 빼낸 이것들을, 이런 쓰레기들을 뒤져서 오히려 우리를 구원하는 방침을 사용하는 겁니다.
그래서 다음 주에 이야기하겠지만 그래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가 이러한 배경을 깔고 그 말씀 나온 겁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는 것은 의인은 의인의 행위로 구원받지 못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진정 이스라엘은 의인이고 진정 이스라엘은 하나님 아는 나라고 진정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만드신 나라인데 그 원인을 이스라엘 내부에서 스스로 만들어냈기 때문에 문제였던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장차 주께서 오시면 우리가 예상 못한 다른 원인으로 인하여 우리가 값없이 구원됐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미리 믿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