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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Re..마 15:32-39 (7병 2어)우리교회마태복음

Re..마 15:32-39 (7병 2어)

이름 : 이근호(IP:)

칠병이어
2004년 5월 23일
본문 말씀: 마태복음 15:32-39

15:32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가라사대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저희가 나와 함께 있은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15:33 제자들이 가로되 광야에 있어 우리가 어디서 이런 무리의 배부를 만큼 떡을 얻으리이까
15:34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 가로되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나이다 하거늘
15:35 예수께서 무리를 명하사 땅에 앉게 하시고
15:36 떡 일곱 개와 그 생선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매
15:37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차게 거두었으며
15:38 먹은 자는 여자와 아이 외에 사천 명이었더라
15:39 예수께서 무리를 흩어 보내시고 배에 오르사 마가단 지경에 가시니라

사람이 일관한 하나님의 뜻을 모르게 되면 주위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살게 됩니다. 이것은 자신의 불안심리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됩니다. 이런 식으로 자기를 방어하면서 살아가 봤자 천국에서는 안 받아주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구원될까요? 예수님에 대해서 알면 됩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하신 행하심을 추적해 보면 되겠지요. 하늘에 계신 분이 그냥 하늘에 계시지 않고 이 땅으로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뭔가를 우리 곁에서 하시다가 다시 구름 타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바로 이러한 경로를 우리가 잊어버리면 안 된다는 겁니다. 이런 경로의 의미를 알아야 예수님을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이러한 일관된 예수님의 경로를 놓치게 되면 남는 것은 다시 '자기 관심사'입니다. 즉 남이 보기에 내가 어떻게 보이느냐를 자꾸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체면과 위신과 자존심이 극대로 축적이 되고 부풀어지게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은 예수님으로부터 인도함을 받지 못한 자입니다. 예수님께서 일관되게 일하시는 취지의 하나로 남기신 일 중의 하나가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약 4000명이 넘는 군중들에게 떡을 주셔서 배불리 먹였다는 대목입니다. 이들은 모두 예수님의 말씀이 좋아 예수님의 뒤를 계속 따라왔던 무리들입니다. 그러나 어느 새 광야에 들어선 지 사흘이나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기진 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다보니 그렇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놀랍게 먹이셨다는 사실에 이르기 전에 먼저 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광야로 유도하고 사흘 동안이나 굶게 하셨는가가 중요합니다. 그것은 그들을 죽음 쪽으로 이끌어내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은 늘 사는 것만 생각합니다. 죽은 길은 아예 피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반대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죽음 쪽으로 확 당겨버리십니다. 왜 그렇게 하실까요? 요한계시록 3:1-2에 보면,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의 주목을 끄는 말씀은, '그 남은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라는 겁니다. 즉 죽어가는 그 남은 자들에게는 '네가 죽어가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두라'는 겁니다. 우리는 늘 살고자하는 식으로 인생을 살아왔기 때문에 자신의 근본을 모릅니다.

고린도후서 1:5에 보면,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것 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 도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일관성을 가지고 하나님은 우리 성도를 향하여 일을 개시하셨습니다.

즉 예수님 자신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치도록 조치하시는 그 작업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힘으로 도저히 감당치 못하는 고난을 우리에게 주시는데 그것도 '넘치게' 안겨 주십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입으로 기어이, "정말이지 예수님 없이는 나는 못살겠다"라는 고백이 터져 나오게 하십니다. 인간은 자신이 자꾸 살아보겠다고 우기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죽어있기에 예수님도 이 점을 확실히 나타내 보여주겠다는 취지로 일하시는데도 말입니다.

허허벌판 한가운데서의 배고픔이란 곧 죽음의 실제화를 뜻합니다. 배고픔이란 곧 죽음의 기운이 우리 속에서 피어나는 현상을 말합니다. 때 되면 먹어야 하고 다시 시간이 흐르면 배고픔을 느낍니다. 곧 죽음을 감지하게 됩니다.

죽음은 우리 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죽음의 깊이'를 맛보게 해주려는 의지에서 나온 조치입니다. 사람이 자기 죽음을 모른다는 것은 곧 자신을 모른다는 말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죽은목숨을 연장시켜 주는 식으로 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다른 식으로 '넉넉함' 속에 놓이게 하시는데 까지가 일하심의 목표입니다. 즉 예수님은 자기 백성들이 '스스로 자신을 살리는 식'으로 사는 것을 용납하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원래의 목적한 바가 따로 있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그 목적이 무엇일까요? 에베소서 1:9-10에 보면,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모든 것이 기어이 예수님 안에서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뿐만 아니라 골로새서 1:15-16에 보면,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우리는 본디 예수님을 위하여 지음을 받은 자입니다. 그동안 자기를 위하여 살던 자가 이제는 예수님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 그런 목적이 함유된 자만이 참 성도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시고 다시 승천하시는 경로를 밟으신 것입니다.

이 작업의 도중에서 "아, 나는 정말이지 예수님 없이는 못살겠다"라는 통렬한 자백이 튀어나오는 겁니다. 물론 스스로 자신을 살려보겠다는 인간이 고집도 대단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황소고집이라도 예수님의 열심 앞에서는 무용지물입니다.

예수님은 기어이 우리를 우리의 전부를 죽이는 쪽으로 이끄십니다. 어떻게 그렇게 됩니까? 우리들 자력으로 그것이 가능할까요? 그렇지 못합니다. 우리는 자신을 구원해 낼 수 없습니다.

로마서 8:26-27에 보면,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성도 하나를 놓고 성부, 성자, 성령께서 열성적으로 달라붙어서 기어이 미리 아신 자들을 불러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시므로 서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게 하십니다. 인간의 황소고집으로도 하나님의 이 지독한 열심을 당해낼 수가 없습니다. 이게 바로 고린도후서 1:5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위로'입니다.

즉 성도는 하나님에 의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 자신 이유가 있는 상황 안으로 끌려오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성도로 하여금 온전히 하나님의 열성적인 사랑에만 눈 돌리게 하시는 겁니다. 과연 이 사랑이 어느 정도로 대단할까요?

단순히 원상복귀 정도일까요? 아닙니다. 참으로 넉넉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7개의 보리떡으로 시작한 '배고픔 해결책'이 나중에는 '일곱 광주리'로 남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일곱 광주리'란 인간의 모든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입니다.

인간들은 기껏 해서 자신이 스스로 버틸만한 능력만 안겨주면 족하다고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들로 하여금 스스로 일어설 희망을 주게 되면 그 인간은 역시 옛날 자기에게 묶인 생활을 하게 됩니다. 즉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나를 늘 염두에 두면서 살아가는 방식이 되는 겁니다.

반대로 참으로 신자라면, 자신의 능력 챙기기에 급급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세계의 풍족성에 안도감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만이 줄 수 있는 위롭니다. 그렇다면 이 예수님 세계의 넉넉함은 무엇으로 나타납니까?

마태복음 6:31-33에 보면,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맨 날 무엇을 입을까 먹을까 마실까만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의 넉넉함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부자청년이 돈 좀 가졌다고 해서 예수님이 주는 영생에서 돌아선 것을 우리가 기억하고 있어야만 합니다.

떡 7광주리의 풍족함은 우리에게 위기가 주어진 그 상황 안에서 발견됩니다. 우리의 뿌리는 원래 '죽음'입니다. 그것을 예수님은 십자가로서 다 보여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우리가 죽은 것입니다.

그 죽음 안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매일 무엇을 입을까 먹을까를 생각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가져다 주신 영생의 넉넉함에 위로 받읍시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자신에게 그만 갇혀 있게 하옵소서. 자신에게 그만 속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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