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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강림의 의미 130215강의다니엘

강림의 의미 130215

이름 : 이근호(IP:119.18.69.144)

김창길(IP:210.♡.60.74)

13-03-01 11:24

서울 의존교회130215a (강림의 의미)―이 근호 목사

데살로니가 후서 1장 5절에 보면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로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나라에 합당한 자로’되어 있지요. 하늘나라가 있느냐? 아니면 거짓말이냐? 하나님이 있으면 하늘나라를 보여 달라고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하지요. 그런데 하늘나라를 보여 달라고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보여주는 것은 성도입니다.

성도를 보여주면서 하늘나라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늘나라가 너무 영광스럽기 때문에 그 광채 나는 영광스러움을 이 세상에 사람들이 감당을 할 수가 없어요. 예수님이 오셨을 때 이미 하늘나라가 왔다고 했거든요. 세례요한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했는데 실제로 가까이 온 것은 천국이라는 환경변화가 아니고 예수님이 가까이 왔어요.

너희들이 천국이 그립지? 보고 싶지? 알고 싶지? 그리워했지? 그래 내가 보여주마! 하고 나타난 것이 초라한 행색에 어떤 인물, 어떤 사람이 등장한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을 신봉하는 그 유대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하늘나라는 이러이러해야 한다고 하는 생각이 이미 갖고 있었어요. 다윗이 예언한 예언서에 보면 하늘나라에서는 하나님이 풀코스로 강림해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처단하고 불태워 버리고 심판하시고 구름타고 오셔서 다니엘에 의하면 자기 백성을 건지시고 무덤이 열려서 자기 백성을 살려내는 그런 획기적인 것, 깜짝 놀랄만한 이벤트 그런 것들을 은근히 기대 했겠죠.

하나님이여 우리가 놀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놀랄 일만 일으키면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기꺼이 주저하지 않고 그 놀랄 일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저는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렇게 철썩 같이 믿었는데 심지어 사도 요한도 놀라운 획기적인 일이 안 벌어지니까 의심했어요. 진짜 오실분이 당신이 맞기는 맞습니까? 라고 할 정도였지요.

사람들이 하늘나라에 오게 되면 놀랍다, 영광스럽다, 광채난다, 이 광채난다는 것은 이사야6장에 이사야가 성전에 갔을 때 눈이 부셨잖아요. 그게 보고 싶다는 거예요. 그 이사야만 보여 주지 말고 우리도 보여 달라는 거예요. 놀랍다, 광채난다, 번쩍인다, 하여튼 신기한 것의 모든 것들의 모든 것들은 모여라. 깜짝 우리를 놀라게 하라 그리고 우리는 놀란 기분에 우리는 안 믿을 수가 없지 아니한가? 라고 한 겁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런 것들을 가지고 온다고 했는데 예수님께서 오신 흔적은 바로 환란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당하는 고난, 외로움 또는 서러움, 무시당함, 천대받음, 배척 받음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놀랍다, 광채난다, 번쩍이다, 환란, 환란이 있다는 말은 예수님이 가만히 있는데 환난 있는 게 아니거든요. 누가 환란을 줬잖아요. 핍박, 고난, 외로움, 서러움, 아픔, 무시당함 등 이런 거란 말이죠.

앞에 있는 놀랍다, 광채난다, 번쩍인다 하는 것의 그 의중에는 우리 몸은 그대로 있고 우리 눈으로 그냥 목격만하면 돼요. 보기만 하면 된다는 거예요. ‘어, 저기에 뭐가 떴네. 가보자’이런 식으로 보기만 하면 되는데 여기에 환란, 핍박, 고난, 외로움, 서러움이라 하는 것은 보는 것이 아니에요. 앞에 놀랍다, 광채난다, 번쩍이다 이런 것은 마치 축국경기하고 야구 경기할 때 관람석에 앉아서 경기 관람하는 거예요. 관람석에 앉은 사람은 야구 경기에 뛰어들 필요 없지요. 그냥 잘하면 박수치고 홈런 치면 박수치고 축구 한골 넣으면 같이 기도 해 주면 되는 거예요.

환란, 핍박, 고난, 외로움, 서러움, 아픔, 무시당함 이런 것은 레슬링이죠. 이것은 뭔가 같이 붙어야 되는 거예요. 빌라에 사는데 위층에서 시끄럽다 이 말이죠. 그러면 아래층에 있는 사람이 아, 시끄럽구나! 많이 시끄럽네! 그런데 뭐가 발생이 안 됩니까? 환란과 핍박과 고난과 외로움, 서러움 이런 것은 없지요? 그런 것은 없는 거예요. 없는데 총이나 칼 들고 가서 ‘너 한번 죽어볼래? 잘못했다고 해 잘 못 안했어? 그럼 죽인다!’고 해서 형제 둘을 죽였을 때 이것은 거기서 뭡니까? 환란, 핍박, 아픔, 죽음이 거기서 인생이겠죠.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늘나라 왔다. 증거를 대라! 아픔, 외로움, 핍박, 고난, 서러움, 죽음 이런 거다 할 때는 하나님의 나라를 놀이동산의 관람하고 영화 구경하듯이 목격하고 우리는 전혀 다치지 않고 우리는 곱게 우리가 보전하는 것은 그대로 유지된 채 우리는 손을 내 밀어서 박수만 쳐주면 하늘나라가 그저 내 품에 쑥 들어오는 저 쪽에서 일방적으로 멋진 이벤트를 보여주는 식으로 하늘나라가 오는 것이 아니고 일종의 마술사가 마술을 할 때 야, 신기하다 어떻게 미녀가 공중을 나느냐?

마술사가 그냥 마술을 하면 되는데 짓궂은 상황이 있어요. 뭐냐 하면 저 앞자리에 있는 아저씨 한번 나와 보실래요. 불러댑니다. 나 구경만 할래요. 잠깐만 나와 보시기 바랍니다. 자 이 카드 중에서 원하는 카드하나 집어주시고 모퉁이를 찢어 주시기 바랍니다. 모서리를 찢어주니까 나머지를 어디서 찾나 보세요. 하고 귤을 나눠주고 귤을 까보니까 모서리 찢은 카드가 나오면 어떻게 여기서 살아있는 귤 속에 내가 찢은 카드 모서리가 나왔을까? 자 한번 붙여보자 하면서 붙여보니까 찢은 카드하고 귤 속에서 나온 쪼가리하고 맞혀보니까 딱 맞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관람용 이벤트가 아니고 우리가 죄를 품고 있다는 것을 소재로 해서 하늘나라를 그려내는 겁니다. 소재가 뭐냐 하면 우리는 엉터리 하늘나라, 엉터리 하나님, 엉터리 세상을 엉터리 천국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재료로 해서 엉터리가 아니라 그 죄인을 진짜천국에 넣어주는 작업을 예수님께서 하셨습니다. 천국은 우리 눈앞에만 멈추는 것이 아니고 우리도 미처 모르는 우리 죄 속까지 깊숙이 들어와서 우리 안에서 천국작업을 개시한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천국 비유 중에서 제일 중요한 비유 중에 씨 뿌리는 비유를 보면 씨를 마음 밭에 뿌렸다고 나오죠. 우리의 마음이 바로 천국을 천국답게 보여 주는 그런 장, 공간이 된다는 겁니다. 우리는 그냥 구경만하고 박수친 사람에게 천국 보내줄게 하는 식으로 쇼하는 식으로 가려고 있는데 주께서는 그냥 두지 아니하시고 너 잠깐만 나와봐 하고 죄 많은 우리 속에서 주의 성령을 침투시켜서 천국을 이루어 나가시는 겁니다.

다시 한 번 정리하면 천국이 왔다 천국을 보여 달라할 때에 성도를 보여 주는 것으로 이미 하늘나라가 이미 왔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데살로니가에 있는 교인, 성도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그것이 하늘나라를 부정할 수 없는 확실한 증거다 이 말입니다. 왜냐 하면 그들이 무엇을 보여 주느냐 하면 바로 그들이 환란을 보여 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5절 끝에 보면 ‘너희가 고난을 받느니라. 다른 말로 하면 하늘나라가 여기에 벌어지고 있느니라. 이런 말이에요. ‘너희로 환난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라고 되어 있어요. 이 말을 쉽게 이야기하면 여기 비타500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비타500을 줄 때 아하 이거 마시라는 모양이구나! 예, 감사히 먹겠습니다. 이것을 드니까 주님께서 아니야 비타500은 뚜껑 열고 입으로 마시라는 게 아니고 이렇게 손으로 주둥이를 쥐고 뒤통수를 때리는 용도야! 이런 비타500봤습니까? 피로회복 하라고 비타500을 준거지 주둥이 손으로 쥐고 거꾸로 딱딱한 곳으로 사람의 뒤통수를 갑자기 후려치라고 누가 그렇게 주장을 해요? 말이 안 되잖아요.

‘하나님, 비타500이 마시는 용도 아니었어요?’ ‘네가 맞아야 될 용도다’해서 패버립니다. 패니까 뒤통수에 구멍 나서 피가 줄줄 흐르거든요. 그럴 때 ‘피가 흐르나?’ ‘피가 흐릅니다.’ ‘아프냐?’ ‘많이 아픕니다.’ ‘그래? 내가 안식으로 갚아주마!’그럴 때 그게 천국이에요. 이천국의 효험은 거기서 드러나는 겁니다. 우리는 누구도 환란 받는 것을 원치 않아요. 사람은 누구도 서러움 당하는 것을 외로움 당하는 것을 특히 무시당하는 것을 사람들은 원치 않습니다.

층간 소음으로 사람 죽인 것은 자기가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욱하는 성질로 사람을 죽였듯이 세상의 모든 범죄는 이유가 딱 하나밖에 없어요. 나를 무시하지 마라. 무시하면 보복한다. 그래서 범죄가 생기는 거예요. 그러면 여기서 문제 하나 내지요. 거지 나사로가 사람한테 무시당했습니까? 개한테 무시당했습니까? 마지막에 거지 나사로에게 개가 핥았거든요. 그러면 누구한테 무시당한 거예요? 개한테 무시당했죠. 개한테 무시당한 거지 나사로가 죽을 때 개를 잡아먹었다, 개를 팼다, 개에게 발길질을 했다, 뭐를 했습니까? 아무 것도 안했죠? 아무 것도 안 했어요. 사람에게 무시당한 정도가 아니에요. 사람보다 못한 개한테 무시당한 겁니다.

그런데 그 앞집에 살던 부자를 보세요. 그 부자는 지옥 가서라도 기어이 자기 자존심 지킨다고 심부름을 감히 시켜요. 천국 간 거지 나사로에게 심부름 시켜서 손가락에 물을 찍어서 내 입을 적셔주게 해 주세요. 세상에서 하던 행세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잖아요. 그래서 제 글에 보면 이런 글이 있잖아요. 지옥이 보고 싶으면 이 세상이 하는 모든 곧 지옥이다. 천국, 이 세상에서 환란 받거든 그것이 천국이다. 지옥을 갈 수 없기에 무시당한 사람만이 모여서 천국 갑니다. 천국가기 참 쉽지요. 개한테 무시당할 일이 없습니다. 개가 사람 취급도 안 해요. 우리는 복수를 하고 싶어 할 때 그 복수하는 그 마음이 바로 예수님에게 환란을 안기는 지옥 같은 마음으로 보강이 되는 겁니다. 주님은 그 찬스를 놓치지 아니하고 우리로 하여금 무시당하는 상황으로 일부로 몰아넣는 거예요. 몰아놓으면 우리는 날 무시하지 말라고 고래고래 고함으로 칩니다. 그때를 주께서 놓치지 않으세요. 그렇지 그게 네가 몰랐던 그 본심이었어!

네가 나한테 무시당할 마음이 있어? 없어? 없습니다. 무시하면 어떻게 할 거야? 마음속으로도 복수합니다. 그 마음 고칠 수 있나, 없나? 전혀 없습니다. 그렇지 전혀 없는 그것을 되게 하시는 겁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불가능한 것은 내가 하늘을 날지 못하고 구름타려니 몸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하는 그런 류의 그런 물리적 법칙 같은 게 불가능하다고 하는데 하나님은 그런 불가능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마음가짐을 스스로 고쳐서 천국 가는 마음으로 고치는 것, 그 점에 대해서 불가능한 거예요.

왜? 우리는 내가 절대자이기 때문에 절대자라는 그 속성을 우리는 스스로 자기 힘으로 포기 할 수가 없어요. 그것을 누구한테 양도 할 수도 있어요. 내가 남한테 무시당하면 결국 그 사람 속에 나는 없는 존재잖아요. 없는 존재된다는 것이 우리가 속성상, 근원적으로 용납할 수가 없어요. 내가 여기 있는데 나는 내가 여기 있다고 주장을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내가 없다고 이야기를 해요. 얼마나 기분 나쁘겠습니까? 만약에 저나 여러분들이 전부 다 투명인간이 되었다고 상상해 보세요. 어떤 게 가장 기분 나쁘겠어요? 여기 김목사님 왜 안 오셨지? 이거 얼마나 기분 나쁘겠어요? 투명인간이니까 안 보이는 거예요. 왜 안 보이는 사람처럼 이야기를 하지? 여기 있어! 여기 있단 말이야! 무시하지 마! 나 여기 있어! 마음만은 특별시야, 날 무시하지 마!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있어도 없는 걸로 하죠. 한윤범 매스 미디목사님이 투명 인간이라면 여기 몇 명 왔나 세어보자! 한목사님이 나는 왜 빼는데? 어디서 모기 소리가 나는데 뭐라하노? 나는 왜 빼는데? 어디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있어도 없는 존재, 바로 그것이 예수님이 우리한테 환란당하는 이유였습니다. 있어도 없는 존재니까 있어서 일을 할 때 그 일 조차도 없던 일로 간주되는 존재, 예를 들어 아주 영특한 개가 있어서 주인이 자고 있는데 가스관 타고 도둑이 들어왔어요. 영특한 개가 도둑이 들어오기 전에 너무 영특해서 스마트 폰으로 112에 전화를 했어요. 멍멍, 지금 여기는 신월동 몇 번지인데 도둑이 들었어요. 주인은 까맣게 모르고 112에 신고 받은 사람은 사람이 신고한 줄 착각했어요. 도둑은 설마 개가 신고 할리 없다고 생각하고 마음 놓고 들어 와서 그래서 주인 묶어놓고 물건을 훔쳐 가는데 누가 신고했는지 벌써 밖에서 너희는 완전히 포위됐다 항복해라! 경찰이 왔을 때 도대체 신고는 누가 했느냐? 바로 거기서 나오는 유명한 영화가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때 마다 틀어주는 영화, ‘나 홀로 집에’입니다.

나 홀로 집에 있는 이 어린 아이는 그 식구들이 프랑스 파리로 여행갈 때 분명히 식구들은 온 식구가 다 동원됐다고 여겼어요. 집에는 아무도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도둑 두 사람은 전화도청에 의하면 온 식구가 다 파리로 크리스마스 여행하는 것으로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도둑이 주인공 되는 소년의 집을 갈 때는 아무도 없는 집이 되는 거예요.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갔을 때 환란은 누가 받습니까? 아무도 없다고 여김을 받는 그 소년이 공포와 두려움과 환란을 받게 됩니다.

개구리가 있는데 키가 큰 거인이 와서 집안에 돌아다니다가 그 개구리를 밟았다고 합시다. 개구리가 찍하고 소리 치고 죽었다고 치면 거인이 키가 크니까 비명소리를 듣지를 못했었어요. 누가 이야기했지 아이 무시하자. 이게 무시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하늘나라가 침투했는데 어디로 침투했느냐 하면 사람이 예수님을 유대인들은 하늘나라를 무시 안 해요. 소원이 하늘나라 오는 거예요. 그런데 정작 하늘나라에 오는 것은 무시당할 만한 사람 편에 하늘나라를 시작하다 보니까 그들은 계속해서 예수님을 무시할 수밖에 없고 그 무시당한 예수님에 의해서 사람들이 생각했던 세상 자체는 전혀 하늘나라를 내다 볼 수 있는 그런 능력이 없다는 것을 분명해 했죠.

예수님 당시에는 예수님만 무시당하고 제자들도 엉뚱한 생각했어요. 예수님이 제자들을 데리고 간 것은 이런 것들이 신앙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려고 끌고 간 거예요. 제자들이 코앞에 예수님 말씀을 들으면서 전혀 신앙이 아닌 멘트를 보여 주는 겁니다. 제자들이라고 해서 인센티브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자라는 이름 때문에 천국에 넣어주는 그런 법은 하늘나라에 통하지 않는 겁니다. 결국은 예수님은 아무도 천국갈 수 없고, 아니 사람들이 예수님 자체를 무시해요.

데살로니가후서 1장10절에 그날에 강림한다고 했죠. 그날에 강림은 예수님의 재림을 말하는데 예수님이 강림한다는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너희들이 아무리 인생을 살아도 그것은 산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것은 인생 살았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는 거예요. 왜냐 하면 예수님의 구원 작업에는 강림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가 이렇게 구원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는 속에는 강림이 포함되어 있습니까? 안 되어 있습니까? 강림이 포함이 안 되어 있어요. 왜 포함이 안 되어 있느냐 하면 우리는 환란 자체를 구원의 요소라고 넣고 싶지를 않기 때문에 환란을 피해서 행복이 넘치고 웃음이 넘치는 식으로 구원을 받고 싶기 때문에 하나님 우리를 구원 한다면 우리는 늘 행복합니다. 하는 감사로 계속 이어지고 감사로 연결되어야 되는데 굳이 새삼스럽게 강림할 이유가 없다 말이죠.

하나 예를 들면 나 홀로 집에 소년의 집에 도둑이 들었잖아요. 가족들은 전부 다 파리로 가고 소년은 나 홀로 집을 지키는데 도둑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고 침범했다가 소년하고 맞다드린 거예요. 어른 도둑은 장정은 두 명이고 소년은 한명이고 게임이 안 되지요. 그런데 도둑도 무시하잖아요. 그런데 소년은 계속 파리로 전화를 시도해요. 전화해서 제발 강림해 달라고 하지요. 그런데 파리로 여행간 사람은 자기 집에 도둑이 없다고 생각하지요. 도둑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파리로 휴가를 안 가잖아요. 도둑이 없다고 생각한 거예요.

따라서 인간들은 이 세상에 메시야가 올 필요도 없고 메시야가 와서 십자가 질 필요도 없고 그냥 편지로‘ 내가 하늘나라 갈 테니까 믿어라’ ‘예 믿겠습니다.’통보해 주면 그때 하늘나라 믿어주면 된다고 생각한 거예요. 우리 집에는 도둑이라는 것은 있을 리도 없고 들어갈 하등에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보는 겁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구원 속에는 강림이라는 게 필요치 않는 거예요. 정말 성령 받은 사람은 강림 때문에 사는 거예요. 왜? 누구하고 싸운다고? 도둑놈 두 사람하고 싸운다고요. 우리가 악한 영들과 싸우잖아요. 그런데 나는 착해 나는 지금 하자가 없어 나는 지금 하나님이 찾아와도 나는 문제없이 구원받는 거야! 이런 사람한테는 원수라는 게 없어요. 그리고 누구한테 공격받는다는 생각도 없지요.

삼성전자에 과장으로 취업을 했다면 삼성전자의 과장은 누구하고 싸웁니까? 라이벌 경쟁업체, 애플이나 엘지하고 싸울 것 아닙니까? 그런데 삼성전자 과장이 하는 말이 주여, 오늘도 적 싸움에서지지 않게 하옵소서. 하면 옆 사람이 뭐라 하겠습니까? 과장님 미쳤어요? 주여, 마귀 이 세상 악한 신을 이기게 하옵소서. 지금 과장님이 싸울 대상은 애플과 엘지와 모토로라같은 경쟁 전자업체입니다. 지금 정신 차리십시오. 그러면 그 과장이 아니야 나는 나빠, 나빠도 너무 나빠, 나는 주님이 오시지 않으면 희망이 없는 거야.

내 구원에는 주의 강림이 포함이 되어 있어. 그러면 옆에서 나도 어릴 때부터 교회 다녔는데 예수 십자가 믿으면 구원된다는데 걱정하지 마세요. 그 사람은 십자가 달라고 한 뒤부터는 경쟁업체와 싸우는 거예요. 정말 성령 받은 사람은 지금 경쟁업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서 주님이 와야 된다는 거예요. 보너스 날이 오는 것이 아니고 나중에 부장으로 진급되는 그날이 오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빨리 예수님이 나타나야 돼요. 왜? 내가 이 지경으로 고난 받고 외롭고 서럽고 무시당하는 것은 누가 일을 저질러서 그래요? 예수님이 어느 마음 바탕에 왔기 때문에? 예수님이 내 마음 밭에 쳐들어 왔기때문에 누님이 책이며 지라는 거예요.

거지 나사로가 개한테 핥음을 당하고 무시당해서 사람한테 무시당하면 말도 안 해요. 개한테 무시를 당한 거예요. 그러면 개한테는 거지 나사로는 없는 존재에요. 거지 나사로가 개한테 무시당하고 사람한테는 있으나 마나한 존재라면 이 세상에서 소위 없는 존재로 알고 있는 존재는 누구입니까? 그 맞은편에 있는 부자가 있는 존재입니다. 부자가 있으면 뭐합니까? 그 속에는 예수님의 강림 소식이 없는데? 그러면 그것은 없는 거예요. 부자가 없는 것이고 거지 나사로가 있는 자가 되는 거예요.

지금 데살로니가후서에서 참 기이하고 신기한 것은 지난 강의 시간에 강의 제목이 뭐였지요? ‘사는 것이 우선’이다. 이게 당연한 것 아닙니까? 사는 것이 우선이지 죽는 것이 우선이겠습니까? 사는 것 외에 더 심각한 문제가 어디 있다는 말입니까? 만날 성경공부하려고 앉아있지 않잖아요? 후딱 하고 가서 또 살아야지요. 왜? 사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에 그렇지요.

그런데 희한한 일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사는 것이 우선이 아니고 주님이 오셔야 된다는 그것이 우선이라는 거예요. 뭐 그런 희한한 인간들이 다 있습니까? 약을 잘못 먹었나? 아파보면 사는 것이 우선이 아닌 것을 알아요. 주와 만나는 것이 우선이 되겠지요. 같은 인간인데 왜 우리들은 사는 것이 우선이 되고 왜 데살로니가 성도는 주의 강림이 우선이 되는 겁니까? 그것은 데살로니가 성도 자체가 하늘나라가 여기 있다는 증거하는 표시가 되기 때문에 그래요.

‘잔디밭에 들어 가지마세요!’푯말이 있다고 합시다. 잔디밭에 푯말보고 물어봅시다. 어이 푯말아, 네가 인생을 무슨 낙으로 나느냐? 이렇게 물어 봅시다. 그러면 여기 적혀 있는 글자 때문에 난다 이렇게 합니다. 이게 뭐냐? ‘잔디밭에 들어 가지마세요!’그것 때문에 사는 겁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왜 삽니까? 하늘나라를 푯말 하는 푯말이기 때문에 하늘나라가 여기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사는 겁니다. 그러면 하늘나라 스케줄에 마지막 스케줄이 뭡니까? 주의 강림이잖아요. 주의 강림이 있는 것과 주의 강림이 들어 있지 않는 사람의 차이점이 들어 있는 사람은 천국의 표시이고 들어 있지 않는 사람은 지옥의 표시입니다.

푯말 싸움이에요. 푯대에 뭐가 적혀 있는가? 그 싸움이에요. 뭐가 담겨 있는가? 그 싸움을 하고 있는 겁니다. 세상은 돈 있고 없고의 싸움입니다. 넌 얼마 벌었어? 너 몇 평짜리 집에 사는 거야? 차는 뭐고? 이런 싸움이잖아요. 그러면 데살로니가후서에서 주께서 오실 때 마지막 때에 차 사가지고 온다. 이런 것은 없잖아요.

그냥 예수님만 오십니다. 우리가 원하는 넓은 아파트 들고 오시는 게 아니라 그냥 예수님만 오십니다. ‘예수님만 오시면 좋습니다.’ 해야 그 사람이 바로 자기 구원받기 위해서 예수님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이 구원을 보여 주기 위해서 본인을 이용한 거예요. 주님한테 이용당한 거예요.

다시 나 홀로 집으로 가봅시다. 나 홀로 집에 파리로 여행간 가족들은 절대 자기 집에는 도둑이 안 들어 올꺼라고 장담했어요. 보통 사고 블랙박스에 들어 있는 것을 보면 내가 블랙박스에 나올 정도의 그런 사고가 날줄은 나는 몰랐습니다. 이런 일이 나에게도 일어나다니 이렇게 말합니다.

그게 구원이에요. 어떻게 예수님이 나 같은 인간에게 들이닥칩니까? 내가 뭘 볼 것이 있다고? 이것은 볼 것이 있다고 들이 닥치는 것이 아니고 무조건 ‘잔디밭에 들어가지 마세요.’라는 푯말 하나만 보고 들어가는 겁니다. 그렇게 들어가게 되면 거기에 뭐가 들어오는가? 환란과 안식이라는 두 개의 상반된 내용을 우리 몸을 통해서 드디어 연출을 시작하는 거예요. 환란은 무엇이며 안식은 무엇인가를 우리의 몸을 가지고 마음껏 요리해서 우리를 레시피(recipe)로, 요리하는 방법을 가지고 우리를 재료로 한 쟁반에 하늘나라의 표라고 내 놓는 겁니다. 막상 먹어보니까 환란과 안식, 안식과 환란이라는 그런 내용을 주제로 레시피가 형성된 겁니다.

환란 받는 자여! 너희들이 하늘나라를 증거하는 이유 때문에 친히 환란을 받느냐? 그렇다면 너의 자기는 이미 안식이 보장된 자리이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내가 자리를 만드는 게 아니고 자리가 나를 만들어 가요. 육군사관학교에서 식사할 때 직각으로 한다고 하는데 그게 재미있어서 그렇게 합니까? 그게 뭐가 재미있습니까? 재미하나도 없잖아요. 직각으로 식사하는 것과 일반적으로 먹는 것과 어느 쪽이 환란이 많습니까? 직각으로 먹는 것이 환란이 많은 거죠. 나중에 어깨 아파오겠죠. 하지만 육군사관학교 졸업하면 곧바로 취직이 됩니다. 본봉 120만원에 년 보너스 800%의 취직이 된다 말이죠. 일반대학생은 편하게 먹어도 취직도 안 된다 말이죠.

이미 취직됐기 때문에 직각으로 밥을 먹는 겁니다. 이게 천국의 레시피입니다. 레시피보고 싶으냐? 천국이 보고 싶으냐? 바로 이겁니다. 환란을 받는 겁니다. 그렇다면 천국이라 하는 것은 우리 혼자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고 환란을 제공해야 될 환란을 가져야 될 옛날 예수님을 죽였던 그 인식, 그 사고방식이 그 악마적인 사고방식, 비 복음적인 사고방식이 흐르고 넘치고 풍성하고 충만해야 되지요.

마귀가 여러분 뒤에 충만하게 하는 겁니다. 악마가 여러분 가정에 충만하기를 원합니다. 귀신이 7마리가 아니라 12마리에 일흔일곱 마리가 넘치게 뱀이 왔다가 너무 많아 비좁아서 자리가 없어 싸움 하게 합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무시했던 그 거지 나사로를 무시했던 그 부자, 전부 다 자기 빼놓고 부자 되기를 원합니다. 부자가 되면 무시를 당하지 않습니다. 만약에 태권도 5단에 유도 8단에 권총 국가대표팀의 선수였고 검도까지 다 한 사람, 현관문에 태권도 8단, 동생은 유도 5단, 검도 몇 단 유도 몇 단 써놓고 보고 싶다 도둑아! 이러면 누가 들어옵니까? 도둑이 그것 보고 들어옵니까?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지요. 그리고 거기에 삼촌은 경찰경사, 부부 경찰, 누가 들어옵니까?

도둑이 들끓고 귀신이 찾아오려면 세상적인 무기 가지고 버티는 그런 식으로 살아서는 안돼요. 세상적인 무기는 이 세상에 남한테 지지 않으려는 무기는 뭡니까? 돈과 권력과 이런 거잖아요.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이 이 세상이다. 돌이 떡 되게 하고 인기 얻고 세상 권력 쥐는 것 이런 무기를 가지고 우리는 이 세상에서 안 지려고 바동바동 애를 쓰는 겁니다.

너 칼 몇 cm야? 나는 2cm, 나는 5cm 더 긴 칼이 승리하잖아요. 스타워즈 보세요. 루카스가 감독한 영화 있잖아요. 광선총하고 시커먼 이상한 가면 쓰고 했던 영화 기억나지요? 그런데 나 홀로 집에는 애 하나 있어요. 도둑이 조사 해 보니까 꼬마 하나있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가 마음대로 털어도 된다. 그때 있는 도둑이 다 들어오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쌍권총 차고 모자 눌러 쓰고 입에 담배 물고 수염은 기르고 망토를 쓰고 뒤에 무덤 질질 끌고 이렇게 왔습니까? 그래서 망토 확 펼치니까 기관총이 연발 나오고 하는 그런 겁니까? 세상에서 자기를 지키고 자기를 승자로 성공자로 버틸 수 있는 무기들이 있어요. 돈 없으면 인간 무시당한다. 취직 못하면 무시당한다. 권력이 없으면 무시당한다. 이런 것 가지고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싸움을 벌이고 있는 그 세상에서 마귀를 이기는 우리는 뭐냐? 복음입니다. 마귀를 이기는 십자가 복음입니다.

교회가 커지려면 십자가 이야기하면 안 되고 인간들이 할 수 있는 무기가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원하는 무기를 제공하십니다. 이런 소리해야 교회가 사람들이 들끓고 모이는 겁니다. 그래 내가 갖고 싶은데 능력 없는 것 주께서 채워주겠지. 그래서 오는 거예요. 그러나 정작 주께서 주시는 무기는 아무 것도 일한 것도 없이 일을 아니하실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 그야 말로 구원의 3종세트 아닙니까?

일을 아니하실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 일한 것도 없이 이렇게 될 때 주의 축복이 눈에 들어오는 겁니다. 바로 이런 식으로 진짜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 거예요. 그런데 교회는 뭐라고 합니까? 이렇게 해야 여러분들이 원하는 돈을 주십니다. 이렇게 나온다 말입니다. 그 돈 가지고 뭐하는데요? 부자 되겠지. 좋다고 소고기 사먹겠죠. 그러면 그것이 지옥 가서 사먹어라 지옥 가서 소고기를 사먹든지 뭘해라 말이죠.

거지 나사로의 무기가 뭡니까? 거지 나사로, 물어봅시다. 당신 자랑이 뭡니까? 무시당하는 거예요. 개가 와서 나를 핥는 것, 아이고 꼴좋다 그것도 자랑이라고 나 갈란다. 이렇게 나옵니다. 앞에 있는 부자한테 가서 당신은 어떻게 해서 자랑스런 한국인이 되었습니까? 이렇게 이야기한다 말이죠. 자랑스러운 한국인, 어떻게 남들이 부러워하는 부자가 되었습니까? 어릴 때부터 고생 많이 했고 교회 와서 십일조 꼬박꼬박했습니다. 이런 소리 할 것 아니냐 말이죠.

그러니까 그게 바로 사람들은 자기가 천국을 지옥이라 여기고 지옥을 천국이라고 여기는 반대가 되는 사고방식 속에서 예수님은 그들과의 생각과 반대되는 그런 메시야가 오시는 거예요. 거창하게 플랜카드 걸어놓고 대 환영인사를 하려고 했는데 막상 오신 메시야는 그것을 이리 저리 다 피해 버리고 세리와 창기와 그리고 죄인들의 친구로서 왔습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님의 당시에 마태, 마가, 누가, 요한 그때 그 시절에만 국한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놀랍게도 데살로니가에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고 부활하시고 성령이 왔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성령이 뭔지 보이지 않는 판국에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놀라운 기이한 일들이 벌어진 겁니다. 환란과 안식이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갈 이유입니다. 라고 믿는 사람이 등장했으니까 사도 바울이 놀래서 편지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늘나라의 표시가 푯말이 바로 너희들이다. 인간들은 아직도 멋들어진 이벤트를 원하고 있어요. 지금 하늘나라가 어떤 식으로 일을 진행하는지 전혀 모르고 정반대하는 식으로 하늘나라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만날 남한테 무시 안 당하려고 싸워요. 무시 안 당하는 방법은 뭡니까? 돈 많이 벌었다는 소리 들으면 무시 안 당하겠죠.

만날 그것만 집중해서 하는 겁니다. 애들 공부 시키는 것도 다 돈 많이 벌기 위한 수단을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 공부시키고 모든 것이 그렇게 집중하니까 이것은 무슨 예수님 때문에 받는 환란이라든지 환란이 없다 보니까 주님의 안식도 전혀 좋아지지가 않아요. 안식이 좋아지지 않으니까 주께서 강림하신다니까 오기는 왜 옵니까? 이런 식으로 나옵니다. 오기는 왜 옵니까? 십자가만 지시면 돼지 오긴 왜 옵니까? 뭐 원한 있습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고 있네. 이렇게 된다니까요. 우리가 달라는 돈은 안 주고 쓸데없이 와서 뭐할 건데? 빚 받으러 오나? 이런 식입니다.

주님의 강림을 안 기다려요. 왜 안 기다리느냐? 나의 구원은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일방적으로 엉터리로 만들어 냈기 때문에 정작 주께서 집어넣으시는 그 구원의 요소가 우리한테는 없는 거예요. 주님께서는 십자가 지시고 부활하시고 강림하신다는 것이 포함이 되어 있는데 우리한테는 십자가는 믿겠는데 강림은 쓸데없이 강림은 왜 오나? 강림이 빠졌어요. 그것은 뭐냐? 나만 십자가 믿고 나만 구원받으면 그만 이야 그야말로 홱 돌아서서 주님도 나중에 봅시다. 하고 자기는 자기 사업, 영적 싸움이 아닌 자기 육적인 자기 자신의 육적인 가치를 위해서 그 싸움에 전력을 다해요. 달려가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 목사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합니까? 가만히 있어 봐요. 가만히 있으면 영적 싸움을 하라고 주변의 사람들이 갔다 옵니다. 어떻게? 너 얼마 벌었니? 이런 식으로 너 얼마 벌었어? 그런 것부터 해서 사소한 것, 아이고 머리 잘 나왔네. 이런 것, 머리 잘 나오는 것이 기쁨이 되어 버리면 그 다음부터는 짧은 순간이지만 주의 강림이 안 기다려져요. 뭐가 기다려지느냐 하면 ‘미장원 바꿔야 되겠어. 머리 잘 안 나와’좋은 미장원을 기다린다니까요. 주의 강림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고요. 그러니까 가만있어도 주변에서 자꾸 나불나불 이야기를 해 줘요. 복음과 전혀 상관 없는 이야기로서 관계 맺자는 사람들이 주변에 계속 찾아옵니다.

꼭 얻어맞아야 환란이 아니에요. 말이 통하지 않아서 오는 서러움 같은 것, 그게 환란입니다. 환란이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당했던 그 환란을 말하는 것이지 우리가 환란이라고 여기는 그 환란을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시면서 말이 안 통해서 받는 환란이 있잖아요. 그 환란을 우리에게 레시피로 구원받은 정보를 우리 마음속에 집어넣은 거예요. 집어넣으니까 예수님만 받은 그 환란을 황공스럽게도 감히 우리도 주님이 당했던 환란을 우리도 지금 받는 축복을 받은 겁니다.

주님만 환란 받는 것이 아니고 똑같은 시험과 미움과 밉상을 우리도 똑같이 받도록 주께서 조치를 하시면서 그래 그러니까 너희는 푯말이지. ‘잔디밭에 들어가지 마세요.’하면서 이 하늘나라가 바로 이런 것이다. 푯말로서 제대로 증거 하도록 쓰이는 겁니다. 우리는 돈이 좋은데 당신은 뭐가 좋아요? 안식이 좋아요. 미쳤구나! 환란을 더 줘야 되겠다! 이런 식으로 이제는 인생을 살게 된다 말이죠.

명절날 어른들이 모였잖아요. ‘야야 그래 대학은?’ ‘대학은 뭐 믿음 좋은 신학대학에 들어갔습니다.’ ‘아이고 야 그래 공부하라 할 때 공부안 하니까 그런 곳 갔지.’ 이게 뭐 되지도 않는 환란입니까? 이런 환란, 듣는 사람 얼마나 기분 나쁘겠어요? 진짜 마음난 사람은 그것도 웬 떡인가 싶은데 주변에는 그렇게 보지 않고 ‘참, 서울대학 놔두고 그런 데를 가는지 모르겠다.’이렇게 나올 때 ‘우리 아는 동생들은 전부 다 서울 대학에 가고 어떻게 된 건지 서울 대학에 씨를 뿌려놨는지 뭐 전부 다 서울 대학이라’가만히 있어서 환란 받는 거예요.

그러면 이렇게 합니다. 뭐 우리 집안은 전부 다 천국이다. 전부 다 환란 받고 전부 다 복음을 알고 안식을 기뻐하고.... 그 다음부터 이야기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안 되지요. 명절날 세배 하는데 ‘그래 올해는 시집가야지 나이가 서른셋인데 안가면 되겠나? 올해는 가야지 기도 많이 해라’어떤 아는 사람인데 서른여섯인데 아직도 시집가게 해 달라고 기도를 열심히 한답니다. 순복음교회 다니는데 그런 답니다. 주변에서 그 여자는 시집 못해서 환란 받는 거예요. 그저 기도 많이 해 주세요. 외삼촌 나, 시집 가도록 기도 많이 해 주세요.

그런데 성도 같으면 절하고 나면 그래도 올해는 시집가야지? 뭐 안식 얻는데 꼭 시집이라는 걸 가야합니까? 안식 얻는데 꼭 시집을 가야되겠습니까? 고린도전서에 보면 장가가는 것도 죄가 아니고 시집가는 것도 죄가 아니지만 결혼한 사람은 육체의 고난이 있으리라 결혼식 날 대성통곡하면서 통성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했지요. 아이고,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아이고 죽으러 가는구나! 이게 결혼식의 풍경이어야 된다는 이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너무나 기이하고 사람들이 기대하는 멋들어진 하늘나라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예수님이 말하는 천국이라 하는 것은 천국은 이렇게 되어 있고 저렇게 되어 있다는 그런 이야기를 해 주는 것이 아니고 천국은 너희 엉터리 같은 것 때문에 환란당한 자가 울고 있을 거야! 그 사람을 찾아가 봐라 그 사람이 바로 이미 천국가기로 안식 얻기로 작정된 사람이다.

너희들이 세상을 추구하고 세상에 남한테 지지 않으려고 하는 그런 기준과 그런 근거들 때문에 그것을 자랑하기 때문에 그것에 바쳐서 미움 받고 괴롬 받는 개한테 무시당하고 사람한테 무시당하는 그런 사람들이 네 발길에 차였을 거다 너는 차는 쪽이고 차이는 쪽, 그쪽이 바로 주님이 거기에 계시다. 쓸데없는 세상 승부의 기준, 그 기준이 우리를 지옥으로 끌어당긴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우리는 그런 식으로 하면 천국가리라 생각하는 겁니다.

강림이라 하는 것은 강림이라는 자체가 우리마음속에 없다는 것은 반대로 이야기해서 강림하신 주님보시기에 너희들은 없는 존재에요. 강림이 없으면 인간이 태어나서 대통령이 되도 없는 존재에요. 주님 보시기에 강림이 없고 십자가 없으면 그것은 없는 존재인 반면에 이쪽 인간들이 보면 주의 강림이던 십자가든 그것은 역시 있으나 마나 지금은 고요한 세상, 그것이 빠져도 세상에 아무 지장이 없는 있으나 마나 없는 그런 사건으로 취급될 때 서로 다른 인식이 충돌되는 현장에 환란 받는 성도가 거기서 천국의 푯말로서 거기에 우뚝 서 있는 겁니다.

김창길(IP:210.♡.60.74)

13-03-01 11:24

서울 의존교회130215b (강림의 의미)―이 근호 목사

진짜 하나님을 대적하는 도둑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사실은 도둑하고 한패이지요. 도둑이 보이지 않으니까 하나님 나라 때문에 환란 받을 일이 없지요. 환란 받을 일이 없다는 말은 주님께서 생각하는 구원은 환란 있는 구원이고 예수님도 이 땅에서 환란을 받았는데 어, 나는 환란이 없는 구원이 있다? 성령을 통해서 구원이 오는데 제대로 전달이 안 된 엉터리 구원이 전달된 샘이 돼버려요.

구원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하고 예수님만 알아요. 다른 사람은 몰라요. 오늘 두 번째 강의에서 제일 난해 한 것이 뭐냐 하면 ‘사적이다.’다른 말로 하면 ‘개인적이다’구원은 개인적입니다. 이 말은 여기서 개인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고 누구를 두고 이야기하느냐 하면 예수님 홀로 개인적이에요.

그런데 구원을 기다리는 사람은 많아요. 주께서 거기에 동조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구원받고자하는 사람이 집결되어 있다고 해도 이 전체를 전부 다 결속해서 인정하지 않습니다. 너희들 구원받고 싶나? 받고 싶습니다. 안 해줘. 이렇게 되는 겁니다. 구원이란 예수님이 이 땅에 와서 설정하는 사적인 경로로만 국한 돼요. 그것으로만 한정돼요.

저 구원받고 싶은데 구원해 주세요. 구원해 줄게 하는 이런 것은 없어요. 인간들이 집결했잖아요. 그러면 인간의 다수의 의견이고 공통된 의견입니다. 거기에 주님께서는 편들지 않습니다. 완전히 무시해 버려요. 그냥 개인이 와서 환란 받고 핍박하고 개인이 올라가 버리면 그게 구원이에요.

그 근거가 뭐냐 하면 예수님의 강림이 개인적인 일이란 말입니다. 어떤 개인적인 일? 자신의 영광을 마음껏 보여 주는 사적인 일입니다. 내 그럴 줄 알았어. 하는 그런 기대는 우리한테 있을 수 없어요. 왜 그렇게 되냐 하면 나 홀로 집에를 보면 어린 애가 있는데 도둑이 들어 왔다 말이죠. 그러면 그 도둑은 누구만 공격하느냐 하면 그 아이만 공격했고 다른 사람들은 몰라요? 알아요? 식구들은 파리로 여행가서 아무도 그 도둑놈을 구경 못하는 거예요. 사람들은 인간들의 의지를 모아서 하나로 만들다 보니까 거기에 예수님의 눈에 띄는 악마가 그들 집에서 눈에 띌까요? 안 띌까요? 눈에 띠지를 않아요.

에베소서 6장에 보면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이 아니고 공중 권세 잡은 악한 영들이라고 했잖아요. 세상주관자들 그게 사람들의 눈에 띕니까? 안 띕니까? 사람들 평소 일상 속에 그런 게 없어요. 예수님의 적은 예수님에게만 사적으로 적이에요. 개인적인 적이에요.

아침에 tv에서 인간극장을 하는데 거기에 콩고에 왕족이 한국에 난민으로 와서 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여기 가까운 인천에 살고 있어요. 보증금을 받고 세를 살았는데 집에 악취가 올라오는 집을 수리를 해 달라고 몇 번이고 했는데 해 주지 않고 이사를 하면 보증금을 주기로 해 놓고 이사하고 난 뒤에 보증금을 받기 위해 전화를 했는데 전화도 안 되고 집주소도 찾을 수 없고 그 콩고 왕족이 돈도 없는 그 사람이 안 그래도 돈이 없는데 완전히 보증금을 떼였어요. 가슴 아프죠. 하지만 내 일입니까? 내 돈 떼인 것 아니잖아요. 그러면 그 보증금 떼어 먹은 사람이 우리들의 적은 아니고 누구의 적입니까? 그 콩고 왕족, 그 사람의 적이란 말이죠. 콩고에서 내란이 일어나 왕족에서 쫓겨나 가족들은 밀림에 있고 혼자 한국에 와 있다가 나중에 가족들도 오게 되었습니다.

어쨌든 그 보증금 떼어먹고 도망간 그 인간은 그 콩고 흑인 가족의 원수이지 나의 원수는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그 원수가 우리 눈에는 안 보인다니까요. 예수님의 원수가 우리한테는 보이지가 않으니까 우리는 주의 강림을 기다릴 이유가 없다니까요. 우리는 우리 돈 떼어먹은 놈만 나타나기만 바라지 그것만 강림해서 찾아오길 바라지 주님의 원수를 우리가 왜 기다리는데? 주님은 이야기합니다. 내 원수를 안 기다리면 너는 제대로 구원받은 게 아니라는 거예요.

구원이라는 것을 쉽게 이야기하면 아버지와 아들만 아는 그 내용이 우리에게 들이 닥치는 것이 구원이에요. 구원받고 싶어요. 천국 보고 싶어요. 이것은 구원이 아닙니다. 왜냐 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아들은 이 세상에 한분밖에 없습니다.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한 것은 예수님 밖에 없거든요.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그 관계가 성령을 통해서 내가 알고 싶지도 않고 알 필요도 없다고 여겼던 예수님의 사적인 이야기가 우리 속에 쳐들어 올 때 그게 하늘나라의 지배받고 통치 받는 거예요. 왜냐 하면 앞으로 천국 가서 살 때는 예수님만 섬기면서 살아야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주님께 우리가 나중에 천국가면 면류관을 제가 쓰는 게 합당치 않습니다. 하고 받치잖아요. 우리 생각은 이래요. 아예 주지를 말지 줘 놓고 뺏는 게 어디 있어? 디모데후서 4장에 보면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예비되었지요?

딤후 4:7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딤후 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주면 뭐합니까? 요한계시록에 도로 반납했는데 그런데 바로 하나님은 그것을 원하는 거예요. 일단 주고 그것이 어떻게 반납되는 과정을 살펴서 하나님께서 마음껏 영관을 받으시는 거예요.

앵벌이 하는 것 있죠. 부모가 시켜서 애들 돈벌이 하는 것 있잖아요. 설되면 하는 것 많죠. 애를 안고 애가 절하는 게 아니고 엄마가 절하는 거예요. 엄마가 아이를 안고 삼촌이다 절해라 하고 5만원 이렇게 내놓는 거예요. 6살만 되도 아이고 잘한다. 내 손자 하면 할아버지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하면 6살이니까 만원! 줍니다. 쭉 받잖아요. 애들 받고 난 뒤에 그 뒤에 서 있는 엄마한테 ‘엄마, 내 통장에 저금해 줘요’ 하면 ‘그래’ 그게 기쁜 거예요.

그런데 9살만 되었다 하면 영특하죠. 절하고 돈 만원 받았습니다. 엄마가 웃으면서 다른 사람이 보니까 웃으면서 이야기해야 돼요. 돈 줘 하면 앵벌이 하는 게 다 들통 나니까 ‘얘야 엄마가 저축해 줄게’ ‘엄마, 이거 내가 노동해서 버는 건데 엄마가 왜 갖고 가? 엄마, 앵벌이 해? 그리고 지금까지 엄마가 가져간 거 저축 안하고 놀러갈 때 다 썼잖아요.’지금까지 가져간 것, 한 살 때부터 한 살 때는 엄마가 안고 했으니까 자기가 노동한 게 아닌데 적어도 두 살만 되도 한복 입히고 절하잖아요. 그 돈은 엄마가 어디로 갔는지 없어요. 계약서 쓴 것도 아니고, 엄마가 대학가면 등록금으로 줄게 그거 녹음 한 것도 아니고 공증 받아놨습니까? 내가 알아서 쓸 거야 하면 그때 엄마는 야야, 지금 엄마의 구원에 참여하지 못하는 구나!

주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된다는 것은 예수님만 아들이에요. 지금 구원이라 하는 것은 아들 될 수 없는 우리가 양자로 들어가는 겁니다. 들어가려면 나 양자할게요. 하고 손든다고 보여주는 게 아니고 예수님과 아버지만 아시는 그 구원이 우리에게 덮쳐야 돼요. 그 덮치기 전에 뭐가 있느냐 하면 예수님을 공격했던 하나님의 원수가 거기에 눈에 들어오게 되면 도둑놈이 들어 온 거예요. 예수님의 눈에만 보이는 도둑이 우리 눈에도 보인다는 말이에요. 그것들을 벌하기 위해서 마지막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내용이니까 강림을 손꼽아 기다릴 수밖에 없는 거예요.

내 구원이 아니고 나에게 임한 주님의 구원이 구원답게 마무리 짓기 위해서는 이것은 내가 오라고 해서 오는 것이 아니고 필히 그 분은 강림하시는데 사적으로 와요. 너도 구원해 줄게 가 아니라 나는 네게 구원자라고 오는 거예요. 주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셨으니까 주님하고 나하고 같이 기뻐합시다. 이게 아니고 주님 스스로만 기뻐 하는 거예요. 우리는 거기에 참여할 뿐입니다.

주님 아니었으면 우리는 탈락했습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예수님의 제자들의 기능이 뭐라 했습니까? 이런 것들이 믿음이 아니라 그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12제자를 뽑았다고 했지요. 그중에 오야 봉이 베드로 아닙니까?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베드로야, 너 기도 좀 하나?’ ‘기도 했어요.’내 눈에 보이는 내 원수는 말하기를 지금 마귀가 베드로를 제발 지옥가게 해 달라고 청구서를 자꾸 내는 거예요. 결재, 베드로 지옥가게 해 주세요. 사인 악마! 이렇게 자꾸 베드로만큼은 지옥가게 해 달라고 청구를 하는 거예요. 베드로가 그것을 알아요? 몰라요? 아무것도 몰라요. 자기는 주님한테 붙어있으니까 수제자소리 들었으니까 자동 구원된 줄 알고 있어요. 얼마나 까부는지 몰라요.

그럴 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야 지금 너는 모르는데 마귀가 너의 영혼을 데려가려고 그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널을 위하여 기도했기 때문에 그 청구서를 기각했다는 거예요. 베드로는 그것도 모르고 내가 주님을 죽기까지 절대로 버리지 않겠나이다. 하니까 주님께서 네가 닭이 울기 전에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울고불고 하면서 내가 생각했던 식으로 구원방식으로 내가 구원받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오직 예수님과 하나님아버지만 알고 있는 그 내용이 덮칠 때 이미 우리는 나의 자리가 아니고 주님이 구원해야 될 하나에 레시피가 있는 쟁반에 불과한 겁니다. 접이의 요리는 우리가 요리하는 게 아니고 주께서 요리해서 나라는 접시에 그냥 담아서 그냥 천국에 들어가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의 싸움은 나를 힘들게 하는 돈 갖고 도망치는 그런 자의 싸움이 아니라 나의 원수는 의미가 없고 주님의 원수만이 우리에게 의미가 있어요. 그런데 주님의 원수를 우리의 힘으로 이길 수 있어요? 없어요? 절대로 못 이겨요. 왜 못 이기느냐? 그 원수가 우리가 평소에 보고 싶고 얻고 싶고 누리고 싶고 사귀고 싶고 내가 의지 하고 싶은 그런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이기기는커녕 반갑다 친구야! 하고 손잡고 있을 거예요.

그 원수라는 것은 다른 것은 다 가졌지만 오직 한 가지만 없는 거예요. 뭐냐 하면 구원이 되지 않는 게 그것이 원수에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어요. 돌이 떡 되게 하고 인기도 많고 부귀영화 다 가지고 있는데 단지 없는 것이 구원 안 된다는 것뿐이고 우리는 모든 것을 가지지 못했는데 단지 가진 것이 있다면 내 자리는 주께서 구원을 이루어 내시는 그 자리에 덜렁 앉아 있다는 것뿐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원수가 왔을 때 우리는 주님의 원수로 보지 않고 착각하기를 나의 천사여! 이렇게 본단 말입니다.

천사가 천사답다 하는 뜻이 착하다, 도와준다. 산타크로스 할아버지 같다, 어질다, 예쁘다. 귀엽다 이렇게 보잖아요. 천사는 오직 주님만 쳐다보는 거예요. 주님만 쳐다보는 것이 천사이지 착하고 예쁘고 없어요. 성질 더러워요. 우리한테는 성격 더러워요. 오직 주님만 쳐다보고 있는 거예요. 주님만 섬기는 것이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이야기에요.

그래서 데살로니가 교회를 볼 때 사도 바울이 너희들이 참 돈을 많이 벌었구나, 복 많이 받았지? 이런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어떻게 환란가운데서도 안식을 내다보는 눈이 열렸냐? 그것 가지고 놀래서 편지 한 겁니다. 그것은 너희들 개인적인 사적인 구원이 문제가 아니고 예수님의 사적인 구원을 보여 주기 위해서 너희들이 동원되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해 주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 강림한 의미가 왜 있어야 되는가를 지금부터 이야기하겠습니다. 강림이 없으면 왜 구원이 안 되는지, 십자가로 다 이루었다 했으면 십자가면 충분한데 강림은 왜 있는지? 제가 지금까지 이야기했지만 잠깐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십자가라 하는 것은 어느 누가 교통사고가 났다 그래서 안됐다. 돌아서면 다 잊어버려요. 십자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죽을 때 뭐라 했습니까?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했죠. 그런데 그것을 매일같이 생각하는 사람은 이런 사람밖에 없습니다. 죽은 이순신 귀신 영을 받은 박수무당만 그것을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돈 벌어야 되니까 그렇습니다. 이순신 영이 왔다. 나는 이순신 영이다. 그래 뭐 때문에 왔느냐? 사업을 그렇게 하면 안 돼지, 이사 날짜를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이렇게 돈 벌려고 하는 사람 빼놓고 이순신 생각하는 사람 누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이순신 장군 종친회도 그렇게 생각 안해요. 족보 만들어 돈벌이 만들기 바쁘지 생각 안 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십자가 늘 생각 안 해요 왜? 그것은 역사 속에 한번 일어난 사건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강림이 오신다는 말은 주님의 강림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십자가라는 것이 너희들에게는 일어나도 전혀 그런 일이 있었나? 그런 일로서 너희들은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 이야기를 해도 들을 때뿐이지 십자가는 마치 바닷물이 배지나갈 때 잠시 찰랑거렸다가 배가 떠나고 나면 다시 고요하잖아요. 그것처럼 한번 일이 있다 해도 뒤돌아서면 뭐 다시 원상복귀 되었네. 그래 세상에 아무 일이 없는 거예요. 강림의 의미는 뭐냐 하면 강림이라는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십자가 사건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십자가 그때 잠시 아야 했을 뿐이고 그 다음부터 이 세상은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그래서 강림이 온다는 것은 정말 아무 것도 안 일어났는지 정말 일어났는지를 마지막으로 결정타를 날려버립니다. 세상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말은 십자가가 아무리 일어나도 세상은 별 이상이 없고 문제가 없다는 것이 분명해 졌다는 거예요. 문제없는 세상에 우리는 문제없이 살아가고 있고 그 세상의 일부인 나도 아무 문제가 없는 거예요. 병원에 가면 건강? 아무 문제없네요. 잘 먹고 잘 사세요. 이상 없습니다. 이게 바로 오늘날 이 세상이란 말입니다.

마치 십자가 들으면 세상 끝난 것 같고 주의 강림 들으면 하늘에서 우수수 떨어지는 것 같지만 떨어지기 직전에도 세상은 아무 일도 마치 없는 것처럼 정상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바로 이 세상입니다. 왜냐 하면 세상은 인간들의 세상집합체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까 이야기 했지요. 인간들의 집결된 사상, 거기에 비해서 예수님의 사적인 이야기는 인간들의 집결된 사상 속에 섞이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이 뭐라고 이야기해도 인간들은 거기에 동의를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거예요.

예수님이 강림한다고? 아무 일 없지? 아무 일 없지? 아무 일 없는 거야! 예수님이 그렇게 해도 그것은 아무 일 없는 거야. 이런 식으로 반드시 세상은 그런 세상으로 흘러갈 것이라고 확실하게 해 주는 겁니다. 십자가로 아야! 했는데 그것뿐이에요. 아무 아픈 것도 없고 상처도 없어요.

그렇다면 강림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아무 일도 없는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야겠죠. 여기서 바로 흠집, 세상 자체에 문제가 있음을 알려주는 흠집, 상처, 사람이 만들어 낸 끌어서 낸 상처가 아니라 주님의 성령에 의해서 글킨 자국, 상처, 그 상처에 해당되는 사람이 바로 사도 바울이 편지하기를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이라는 말입니다.

너희들은 강림과 연결되어 있고 세상 사람들은 강림과 연결 안 되어서 아무 일없어! 오기는 뭐가 와, 안 와. 날씨 일기예보 봐, 오늘 약간 춥다 뿐이지 눈 안와 비 안와 하늘에서 아무 일 없어. 그렇게 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12제자를 데리고 갔을 때 그들에게 흠집을 냈죠.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뭔가 세례요한도 외치고 했는데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 때 무슨 큰 사건이 났지요? 그 순간만큼 사람들이 사울은 천천이고 다윗은 만만이라고 해서 뭔가 혁명이 일어날 것 같지요?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무 일도 없어요. 그리고 사울은 정권을 계속 잡고 있고 다윗은 쫓겨 다니는 신세가 되었어요.

모세가 자기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 내겠다고 애굽 사람을 쳐 죽이고 했잖아요. 그런데 무슨 효와 있던가요? 아무 일이 없지요. 김구가 나라 구하겠다고 그렇게 했지만 김구는 암살당했잖아요. 그 뒤에 김구의 뜻대로 나라가 되어 가던가요? 이승만이란 사기꾼이 대통령이 되고 없지요? 이승만 사기꾼입니다. 하와이서 놀다온 사람이에요. 그것이 알고 싶다. 이제 알아들으시네요. 정신군대와 결탁한 사기꾼이에요. 그게 역사라는 거예요.

역사의 정리는 정권 잡은 자에 한해서 쓰이게 되어 있어요. 패배자는 역사를 쓸 자격조차며 부여하지 않는 것이 역사입니다. 만약에 김목사님께서 한국교회의 역사를 쓰신다고 하면 다른 사람이 와서 ‘목사님, 교인 몇 명입니까?’ 이렇게 묻습니다. 적어도 수만 명될 때 야 하나님이 역사하는 목사다 하지 두세 명 있는 교회의 목사는 목사 취급도 안해요. 패배자로 간주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역사는 유명하지 않아요.

그래서 갈수록 십자가가 전혀 유명하지 않을수록 하나님은 더욱 커지고 그럴수록 그 환란 받은 상처 입은 사람에게는 강림이라는 것이 더욱더 생생하게 나오게 돼요. 주님의 강림이 희미하게 느껴지는 것은 여유 있다는 말이고 여유 있다는 말은 세상은 가만보니 내가 세상을 보니 정상이야 문제없어. 라고 생각이 들때 역시 강림도 내 눈에서 사라지는 겁니다. 정상인데 왜 와요. 모든 게 잘되어 가는데 문제가 없는데 왜 옵니까?

그래서 주님의 강림을 언급한다는 것은 세상은 아무 일 없다고 그렇게 굳게 믿고 있습니다.
할 때 강림을 비교시켜서 강림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주의 강림을 기다려라 하는 이 말은 너희들이 세상을 잘못 읽고 있다 이 말이에요. 주의 강림을 기다려라. 하는 그 말 자체는 하등 상처도 아픔도 아닙니다. 주께서 곧 오신다 할 때 어떤 의견을 제시하는 것을 가지고 잡아가고 이런 것은 아니에요.

그런데 주께서 강림하십니다. 말만 하는 것이 아니고 주의 강림에 전혀 관심이 없는 너희들이 지옥 간다고 하면 가만있지 않지요. 주의 강림은 강림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이 세상 스스로 자체를 잘못 읽고 있다는 겸해서 주의 강림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환란을 많이 받고 있는 거예요. 그래 믿지마라! 나 혼자 믿을게 이게 아니고 너희들은 문제가 크다. 왜? 강림이 안 믿어지다니 이거 문제 있어! 강림이 안 믿어진다는 말은 이 땅에 십자가라는 상처가 이제는 시시하게 보이고 그런 일 있었나? 그래도 정상인데 십자가가 있으나 마나 한 사건으로 전락했다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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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355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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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