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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유튜브(20강, 21강) 영적싸움, 일없이 구원 130214강의[신학]

유튜브(20강, 21강) 영적싸움, 일없이 구원 130214

이름 : 이근호(IP:119.18.69.144)

20강

21강

유일자(IP:116.♡.234.248)

13-02-17 18:25

20강-YouTube강의(영적싸움)130214-이 근호 목사

네 이번시간에는 20강으로 에베소서6장에 나오는 말씀, 아주 특이한 말씀을 우리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6장10절~12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오죠.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관한 것이 아니요”라는 말이 나옵니다. 10절에 보면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 마귀의 궤계를 대적하라. 마귀라 하는 것은 우리가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인간의 모습이 아니겠죠. 인간이 아니죠. 12절에는 혈과 육에 관한 것이 아니요 라고 했고 그 뒤에 나온 게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정사와 권세 그리고 이 어두움의 주관자들 이걸 하나로 보고 있습니다.

그 뒤에 나오는 말이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우리가 있는 악한 영들에 있어 싸움을 할 때 축구로 판정을 낼까요, 야구할까요, 안 그러면 레슬링을 할까요 권투를 해서 게임의 판정을 내릴 수 있습니까. 상당히 따지고 보면 난해하고 곤란한 이야기를 사도바울이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말씀을 이해하고 해석하면서 그 출발점을 이렇게 보시면 되는 겁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관한 것이요’라고 우리 성도에게 당부했다면 성도는 이 말씀을 듣고 단박에 이렇게 정리해야 됩니다. 성도가 성도 말고 일반 사람들이 흔히 싸우고 있는 혈과 육에 관한 싸움은 뭐냐. 그것을 우선 우리가 정립을 하게 되면 혈과 육에 관한 싸움은 아니라는 것도 우리가 짐작을 할 수가 있습니다.

혈과 육으로 싸운다는 것은 이것은 세계사의 모든 전쟁의 역사, 그리고 시장통에서 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또는 학교에서 자녀들이 시험가지고 하는 모든 다툼, 논쟁, 경쟁, 게임 그런 것을 이야기 하겠죠.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이 아니요 라고 했으니 이것은 우리의 혈과 육으로 이걸 무기로 삼아서 이겨 낼 것은 이기고 힘에 부치면 지고 하는 그러한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싸움입니다.

우리는 이 싸움에 대해서 모른다 할 수가 없어요. 우리는 어릴 때 부터 비교와 경쟁 속에서 지금도 계속해서 산다는 자체가 투쟁과 경쟁에서 지내기 때문에 좋은 자리는 하나지만 찾는 사람이 많을 때는 자연적으로 여기는 경쟁 비율이 세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혈과 육에 싸움이라 하는 것은 우리가 모른다는 것이 아니고 매일 일상적인 생활 전부가 혈과 육에 관한
거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이 본문에 의하면 그러한 이 세상에서 우리가 생존 경쟁에서 싸우고 이기고 하는 그것이 아무리 애쓴다 할지라도 마귀는 거기에 대해서 끔쩍도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우리가 이 땅에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았다고 해서 마귀가 우리보고 장하다, 훌륭하다 그런 식으로 우리의 가치를 높여주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이 아니요 라고 한다면 그러면 결국은 성도됨이라 하는 것은 혈과 육의 싸움 말고 다른 식으로 인생을 살아가야 된다는 것을 우리한테 요구해 주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혈과 육에 관한 싸움을 하라 이 말이죠. 경쟁에서 이기고 좋은 대학가고 좋은데 취직하고 돈 많이 벌고 그런 식으로 살아가라 이 말이죠.

그러나 사도는 지금 성도보고 이야기 하는 겁니다. 성도들아 세상 사람들이 싸우는 그런 싸움을 우리가 그런 싸움을 하려고 이 땅에 살아가는건 아니다. 우리가 싸움을 하긴 하는데 이것은 다른 종류의 전혀 세상 사람들이 상상치도 못한 다른 전쟁 뒤에 우리가 불려 나왔다고 이야기 할 수가 있습니다. 그게 뭐냐.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관한 것이 아니고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에서의 싸움이다 했습니다.

자 우리 손에 칼이 있고 총이 있다고 합시다. 악마는 총을 몇 방 맞아야 죽습니까. 칼을 얼마나 맞아야 그들이 기절하겠습니까. 이 질문 자체가 아주 우스운 질문이죠. 악한 영들이 총이나 칼에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질문을 다시 하겠습니다. 악마한테 돈을 몇 천억을 주면 악마가 우리 몸에서 떨어져 나가겠습니까. 악마에게 얼마나 많은 기도를 하게 되면 악마가 떨어져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에게 더 이상 달려들지 않고 우리를 곱게 천국 보내게 할 수 있겠습니까. 기도하는 것, 돈 주고 보내는 것 안그러면 전도란 업적을 쌓으면 악마가 거기에 기죽어서 아 내가 전도 이만큼 많이 했구나. 내가 다시는 찾아오지 않으마. 그래서 악마가 떨어집니까?

악마가 겁내는 것은 우리가 혈과 육으로 할 수 있는 그래서 얻을 수 있는 실적과 업적에 절대로 겁내지 않습니다. 악마와 싸우는 무기는 흔히 종교계에서 세상 사람들이 부럽다 하는 그런 종류의 무기는 도저히 악마에게는 통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과 싸우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그런 식의 무기 체제를 완전히 도회시 하고 다른 무기를 제시하는 겁니다.

그것은 우리가 가진 재력과 능력과 우리의 종교력과 기도 솜씨와 전도 실적 이런 것 가지고 악마가 물리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말씀을 통해서 우리한테 새겨 넣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가 악한 마귀와 대적을 하게 될 때에 하나님의 뜻은 이렇습니다. 악한 영들과 세상 주관자들 그리고 어두움의 권세자들을 의도적으로 성도 주변에 깔아 놓은 이유는 성도로 하여금 ‘나는 뭐 예수 구원 받았으니까 내 사업이나 전념해볼까’ 라는 식으로 자기 구원 챙긴 것으로 자기의 소득을 얻었다 여기고 그렇게 뒷걸음치지 않도록 하시는 겁니다.

마귀가 악한 영들이 끊임없이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얼쩡거리는 이유는 우리가 항상 자기 구원만 챙기면 마치 하나님 믿고 예수 믿는 그 소규의 목적을 다 달성해서 ‘이제는 뭐 오늘 죽어도 구원 받으니까 이제는 자기 일에 열심히 몰두 해볼까’ 라는 자기 위주의 사고방식을 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신 조치입니다.

그러면 악한 영들을 배치시켜놓고 그 다음에 우리한테는 뭘 애기하느냐. 우리로서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능력 살아가는 혈과 육은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무기라고 단정 지으시고 그렇다면 우리는 악한 영들에 배치 시켜준 하나님의 취지에 우리는 어떻게 부흥돼야 되는가.14절에 보면 그런즉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리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진리란 말 나오고, 의의 흉배란 말 나오고, 복음이란 말이 나옵니다. 믿음의 방패란 말이 나오고 그 다음에 17절에 구원의 투구가 나오고, 성령의 검이 나오고 하나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그 다음에 18절에 기도와 간구가 나오고 그다음에 결정적인 것이 무시로 성령안에서 기도하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방금 제가 언급했던 단어들을 한 바구니에 담아 봅시다. 담아 보게 되면 여기에 제가 언급한 악마를 이기는 무기체제로서 동원된 그 모든 것은 어느 것 하나 우리가 만들어 내거나 우리가 열심해서 제작한거나 우리가 창조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것은 전부다 예수님께서 다 만들어 주신 것 속에 풍덩 집어넣어 버리죠. 그렇다면 우리는 악마와 둘러 싸여 있으면서 무엇을 느끼느냐 하면 우리가 예수님께서 만들어 주신 것에 그
풀장에 풍덩 빠져서 매일같이 우리는 거기에 허우적거리면서 우리는 그 입장에서 악한 영이 무엇이며 세상에 공중 받은 권세자들의 정체가 무엇인가를 비로소 발견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런 자리를 마련하신 겁니다.

쉽게 말해서 세상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것 속에 안주해서 자기가 가진 권력이나 이런 것 가지고 세상을 뽐내듯이 그리고 세상을 대항하듯이 게임에서 지지않고 경쟁에서 버티기 위해서 무기로 삼는데 성도는 아주 특이해 가지고 자기가 만들지도 못하고 자기가 생산하지도 못한 복음이라는 것, 진리라는 것, 구원이라는 것, 믿음이라는 것, 성경이라는 그런 풀장에 풍덩 빠져가지고 매일같이 우리가 같이 거기에 동석하고 같이 늘 함께 있는 것이 뭐냐. 복음이요, 성령이요, 믿음의 방패요, 의의 흉배고 그런 것들입니다.

우리는 세상살이 하다보면 이런 것은 자꾸 놓치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우리 가진 것 가지고 이기지 못하는 악한 영들 악마와 그의 세력을 늘상 맞닥뜨리게해서 정작 우리가 성도로 살아가는 힘을 세상 사람들이 아닌 예수님이 거저 주신 진짜 귀하게 거저주신 이 복음과 의와 믿음과 성령이 있음을 우리로 하여금 다시한번 늘상 깨닫게 하는 겁니다.

유일자(IP:116.♡.234.248)

13-02-17 18:26

21강-YouTube강의(일없이 구원)130214-이 근호 목사

이번에는 로마서4장에 나오는 말씀에 대해서 해보겠습니다. 로마서4장에 보면은 예수님께서 사도바울에게 계시를 전하면서 두 사람을 등장시켰습니다. 한 사람은 아브라함 또 한 사람은 다윗을 등장시켰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을 등장시킨 이유는 이 구원문제에 대해서 하나님 계시고 내가 있으니까 하나님과 내 사이에서 좋게 지내면 구원이 되지 않겠는가.

구원방식에서 우리 인간들이 나름대로의 하나님 앞에 이런 식으로 구원 하십니까. 또는 이런 식으로 구원됩니까 물을 수가 있거든요.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제시하고 다윗을 제시함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과 다윗 같은 방식으로만 구원한다는 것을 로마서4장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과 다윗을 거론 할 때에 우리가 로마서4장을 모른다고 치면 아마 이런 생각을 상식적으로 갖게 될 것입니다. 아~ 아브라함은 일 많이 했구나. 아~ 다윗도 참 훌륭하게 했구나. 그래 아무라도 아브라함과 다윗은 참 우리인간의 모범적으로 신앙적으로 산 사람이기 때문에 나도 ‘아브라함처럼 다윗처럼 그들이 일한 것 만큼 나도 이리해야지’ 라고
이렇게 안일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로마서4장에 나오는 아브라함과 다윗을 언급하게 된 그 이유가 상당히 낯설고
아주 엉뚱한 내용으로 되어 있어요. 로마서 4장 5절에 보면 “일을 하지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 라고 되어 있습니다. 6절에 보면 “일한 것도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았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에 5절에 보면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 그 다음에 6절에 일한 것도 없이 어떻게 보면 구원의 3종 세트라 하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우리의 상식은 일한 만큼 복 받고 구원 받는다는 것! 결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이죠. 일을 아니할지라는 그런 생각을 우리가 하나님께 구원받고자하는 이 엄청난 축복을 얻어 내면서 일을 아니해도 구원 받는다는 그런 생각을 우리 인간들이 잘 갖지 않길 바라는 거예요.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 뭔가 그런 엄청난 복을 받으면서 일을 안 할 수가 있겠어‘ 라는 것이 교회나 세상이나 통상적으로 그렇게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로마서 4장에서는 일을 아니할지라도 그 다음에 두 번째 보통 우리가 경건해야 구원 받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보면, 출발점이 뭐냐하면 일을 아니한 자 또 경건치 아니한 자 6절에 보면 일한 것도 없는 자. 그런데 이러한 3종 세트 요건에 부합되어 있다고 하나님께서 제시한 사람이 아브라함과 다윗입니다.

그러니까 성경 말씀은 구약을 보면서 무엇을 우리한테 요구하느냐 하면은, 아브라함을 읽어라! 예. 읽겠습니다. 거봐! 일 안했잖아. 이번에는 다윗을 읽어라! 예 읽겠습니다. 읽어봤나? 거봐! 경건하지 않잖아. ‘일도 안했고 또 일한 것도 없잖아’ 라는 식의 해석이 하나님 쪽에서 제시할 때 우리가 거기에서 선뜻 아~ 과연 그렇네요. 정말 아브라함과 다윗은 일한 것도 없이 경건치 않네요. 라고 여기에 대해서 동의 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평소에 교회에서 아브라함과 다윗을 이해하면서 그런 식으로 이해해 봤었습니까? 아브라함! ‘아~ 일한 것도 없어’ 다윗! 경건치 않은 자. 라는 식으로 그 분들을 신앙의 선배라고, 신앙의 조상이라고, 신앙의 믿음의 포배라고 여기는 사람을 건방지게 우리 쪽에서 아브라함과 다윗은 아무것도 일한 것이 없이 전혀 경건치 않으며 일을 하지도 안했다고 그런 식으로 그런류의 사람이라고 우리가 그렇게 단정 지었습니까?

단정 짓기가 힘들죠! 그 분들이 아브라함과 다윗에 대해서 경건치 않고 일한 것도 없다고 우리가 그런 식으로 이해하기가 힘들다는 말은 우리는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는 구원관이 하나님 생각하는 구원관과 다른 구원관을 지금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앞에 구원을 받는데 대해서 하나님의 방식을 우리가 볼 생각하지 않고 ‘아마 하나님은 이런 것을 좋아할거야’ 라고 지레짐작 우리 생각의 터전을 너무 많이 닦았습니다.

그러다보니까 로마서4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구원 방법과 어쩌면 그리도 정반대되는 식으로 구원을 생각하는 겁니다. 경건해야 되고, 일도 해야 되고, 일한 것도 많이 남겨야 되고, 열심히 해야되고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구원도 주고, 상급도 주고, 남보다 더 많은 보너스도 주고 그러한 인식을 가지고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에 접근해서 마치 그것이 하나님의 옳은 구원관이라고 안심 푹 놓고 하는 가운데서 안일하게 살아 왔습니다.

만약 그렇게 인식하는 그 사람은 아브라함 노선 아닙니다. 그리고 다윗 노선도 아니고.. 결국 구원받는 노선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로마서 4장에서 우리 주님께서 이렇게 아브라함과 다윗을 가지고 많은 일을 시켰는데 그 많은 일을 시킨 이유가 아브라함은 구원 받았다 다윗은 구원 받았다. 라는 이야기를 할려고 많은 일을 시킨 것이 아니고, 아브라함과 다윗조차도 하나님이 정해놓은 구원의 방식을 위하여 그들을 채택했다는 취지가 강렬합니다.

무슨 말이냐하면 로마서4장 4절에 보면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구원받기 위해서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많은 일은 시키면서도 그 모든 일이 자기 구원 받는데 보탬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그들이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들이 정작 구원 받는 것은 그들이 일함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았다는 것을 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많은 일을 시킨 겁니다.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라고 하는 말씀을 성립케 하기 위해서 다윗과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무엇이 경건하지 않는 삶인가를 그 두 사람의 평생을 통해서 다 까발려 보여 주었습니다.

우리 보기에는 경건해 보이지만 주님 보시기는 그것이 경건치 않다는 것을 계속해서 강조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의롭게 되는 것은 자신의 경건하지 않음을 분명히 두고서 뭔가 내 경건으로 구원되지 않기에 뭔가 하나님 약속에 의하면 어떤 다른 분이 또 나를 위해서 오실거야. 그 오실 분을 기다리는 믿음으로 아브라함과 다윗은 의인이 되었습니다.

7절에 보면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 받는 자는 복이 있고” 라고 되어 있거든요.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죄를 가리우심을 받기 위해서 그 말씀 자체를 이루기 위해서 아브라함과 다윗을 불법적인 사람으로 등장해야 하고 죄를 짓는 사람으로 거기에 가담하게 하시는 겁니다. 자력으로 그 불법을 용서받은 적이 없고 자기 노력으로 죄를 가리워지지 않는 상태에서 아브라함과 다윗을 계속 이끄시는 겁니다.

그렇다면 불법적이고 죄를 짓는 아브라함과 다윗이 그러면 누구 덕분에 용서받고 죄 가리움을 받고 구원을 받았느냐. 그거는 그 숨어 있는 장차오실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 그 불법의 사하심을 받고 죄 가리움을 받는 자는 복이 있다는 이복을 성취하기 위해서 주체자로 오시기 위해서 앞당겨서 아브라함과 다윗을 주의 일에 참여 시키고 동참시킨 겁니다. 오늘날 똑같은 방식으로 예수님에 의해서 성도가 다루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드린 3종 세트..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않은 자.. 일한 것도 없이 매일같이 우리는 우리자신이 우리 자신에게 여기에 해당되는 이야기라는 것을 즐겁고 감사하고 감격하는 마음으로 우리 자신에게 적용해야 합니다. 주여 우리는 ‘일한 것도 없고 경건치 않고 아무것도 일을 안하고 있습니다’ 라고 하는 그것이 우리를 통한 하나님의 일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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