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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13 대구강의 2] - [피 88] - 율법 속의 군밤강의[피]

[13 대구강의 2] - [피 88] - 율법 속의 군밤

이름 : 구득영(IP:203.223.97.152)

[13 대구강의 2] - [피 88] - 율법 속의 군밤

13,02,04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오늘은 교재 266페이지부터 살펴보자.

** 그래서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할 육체가 없다. 이는 율법은 항상 우리를 죽게 함을 뜻한다.

(갈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 율법과 언약 공동체 !!

오늘은 여기에 나오는 율법에 대해서 하겠는데, 그러면 이 율법이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나님은 사람을 향해서 율법을 주셨는데, 즉 하나님은 모세에게 율법을 주셨고, 모세는 그것을 백성들에게 전달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생긴 것이 바로 언약 공동체인데, 즉 언약의 백성들이 생겨났다는 말이다.

그게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만들어지는데,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셨고, 그 말씀으로 인해서 언약이 체결되었고, 그 언약이 체결된 나라가 곧 천국이라는 것이다. 불교나 이슬람교나 힌두교에서 말하는 천국은 허구인데, 그건 인간들이 만들어낸 나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천국은 반드시 언약이 확립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 근거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데, 사도요한이 하늘을 보니 거기에 무엇이 있는고 하니, 하늘나라에 언약궤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늘나라에 언약궤가 있다는 것은, 이제 땅에 있던 언약궤가 하늘에 안치되면서 하늘나라는 완성이 되고, 그리고 땅에 있는 자들 중에서 생명책의 명단에 기록된 자들은 거기에 들어갈 날만 기다리면 된다는 것이다.

(빌 4: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위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 !!

여기에 보면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라고 하는데, 제자들이 주님과 함께 다니면서 자기들이 권세를 행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귀신들이 항복을 한다고 하면서 말이다. 예수님도 귀신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고 하셨고 말이다. 하지만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뭐라고 하셨는가?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눅 10:17) 칠십 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눅 10:18)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눅 10: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눅 10: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그러니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생명책을 근거로 해서 작업에 나서시는데, 하지만 그 생명책은 우리 인간으로서는 모른다는 것이다. 본 적도 없고 알 수도 없다는 말이다. 요한계시록 20장에 보면 뭐라고 하는가? 마지막 심판에 있어서, 누구든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으면 유황불을 면치 못한다는 것이다.

(계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 생명은 주셔야만 !!

이렇게 예수님께서 자꾸만 생명책을 거론하시는 것은, 우리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의 후손인 이상 생명나무의 과실은 주어야 먹는 것이지, 인간들이 원한다고 해서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막아놓았기 때문에 말이다. 즉 생명나무에는 다가오지 말라는 것인데, 주어야만 먹을 수 있다는 말이다.

종교라는 것은 자기가 애써서 쟁취하는 것이라면, 물론 그 종교에는 기독교도 포함이 되는데, 반면에 복음은 그것이 아니라 줘서 먹는다는 것이다. 흔히 교회에서 말하는 바자회나 구제가 무엇인가? 이게 복음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바리새인들도 뭔가 오해가 있었기 때문에 구제와 기도에 열심을 내었는데 말이다.

◈ 바리새인들은 왜 그런 성경해석을 !!

바리새인들이 성전에서 기도를 할 때,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하고, 그 다음에 들어간 것이 무엇인가? 구제를 했다고 하는데(?), 그런데 심판주이신 예수님께서는 "너는 불합격이다. 재수를 해도 소용이 없어"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눅 18: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눅 18: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그러면 바리새인들이 성경을 도대체 어떻게 해석했기에, "구제를 하고 십일조를 하고 안식일을 지키면 천국에 간다" 라고 하는 해석이 나올 수 있었느냐는 말이다. 요즘 말로 하면, "십일조를 하고 주일성수를 하면, 그리고 목사를 잘 섬기면 구원을 받는다" 라는 것과 분명히 공통점이 있는데, 그게 무엇인고 하니, 뭔가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은 티를 팍팍 내고 있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이나 이방인들이나 다 선악과를 따먹었는데, 그런 본성을 숨길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눈치만 슬쩍 줘도 다 알아서 할 수 있다는 것인데,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가지고 잘 지켜서 하면 된다는 말이다. 그런 것은 다 안다고 하면서 까부는데, 즉 "하나님, 알겠습니다. 그게 정답이죠? 분명합니다. 제가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 하지만, '법' 이란 것은?

하지만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이 '법' 이라는 것은, 법이라는 말이 더 좋기는 하지만 말이다. 성경의 표현대로 율법이라고 하면, 이 율법이 무엇과 만나는고 하니까, 강의처음에 이야기를 했듯이 율법이 사람과 만난다고 했는데, 그것은 구약에 그대로 나오니 누구나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말씀은 사람들에게 준 것인데, 그 당시에는 율법이 곧 말씀이니 말이다. 그런데 신약에 오면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시는고 하니, "이 법은 십자가와 만나기 위해서 주었다"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인간들은 비키라는 것인데, 십자가와 만다는 말이다. 하지만 율법은 인간이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율법은 자꾸만 요구를 하는데, 일점 일획이라고 다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된다는 것인가? 이런 것이 참 어려운데 말이다.

계속해서 교재를 보자.

**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다 완성된다는 말씀은, 에누리없이 율법의 저주성을 적용시키는 단계에 돌입된다는 말이다.

(마 5: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
(마 5:25)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마 5: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다 지키지 못하면?

이렇게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이루지 못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하는데, 여기서 일단은 제가 질문을 하나 던지면서 시작하겠는데 말이다.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지키지 못하면 그게 곧 율법을 어긴 것인지, 그게 아니면 어겼다고 저주를 한 것이 곧 어긴 것이냐는 말이다. 지금 제가 "율법은 일점 일획이라도 지키지 못한 것이 과연 어긴 것이 성립되는가?" 라는 것을 묻고 있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십계명을 지켜야 되는데 못 지켰구나" 라고 하면, 율법이 "아잉, 짜증나. 이 율법을 그렇게 허비하면 어떻게 해?" 라고 하면서 율법이 짜증을 낼지, 아니면 "그래, 율법을 못 지켰다는 말이지? 그러면 율법대로 저주를 해야지" 라고 했을 때, 과연 율법이 훼손된 경우가 있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물론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율법이 아니라 자기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자기가 율법을 어겼으니까 다른 대안을 달라고 한다는 것이다. 자기가 율법을 지키지 못했으면 그냥 쭈그려 앉아있으면 되는데, 그런데 그게 아니고 "하나님, 제가 연약한 죄인이라서 율법을 어겼습니다. 이왕 어긴 것이니 불쌍히 여겨주시고, 율법 말고 다른 것을 좀 주세요" 라고 한다는 것이다. 자기도 로마서 3장을 좀 봤다는 것인데, 거기에 '율법 외에 다른 의' 라고 되어있으니 말이다.

◈ 율법 폐기론인가? 율법 완성론인가?

이렇게 되고 나니까, 그때부터는 그만 신학적인 논쟁이 되고 말았는데, 즉 "율법 폐기론인가? 아니면 율법 완성론인가?" 라고 말이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의 본래 취지에는 전혀 근처에도 가지 않고, 자기들끼리 그렇게 논쟁을 벌리고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율법을 주었는데 지키지를 못해서 십자가를 주었는가? 그렇다면 성령을 받았으면 십자가를 아는 것이니, 이제는 율법을 제대로 지켜야 한다" 라는 쪽이 있는 반면에,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뻔한데, 그래서 십자가를 주었으니, 율법은 이제 없어도 된다" 라고 하는 쪽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면 그쪽에서는 "당신은 율법 폐기론자이다" 라고 하는데, 그러면 그들은 무엇인가? 그들은 율법 완성론자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양쪽에서 지금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가? 율법이 우리 사람과 만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모세가 백성들에게 율법을 준 것은 그들에게 준 것이 아니라, 그 백성들 속에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데, 그분이 백성들과 동행하는 말이다. 율법은 바로 그분을 겨냥해서 주어졌다는 것이다.

◈ 신데렐라님, 저와 결혼해주세요 !!

예를 들어서, 어떤 재벌 3세가 장미꽃 백 송이를 들고서 여성 전용 나이트클럽에 가서 "음악을 잠시 멈추세요. 이 시간에 제가 사랑하는 여인에게 무릎을 꿇고 프로포즈를 할 것입니다" 라고 하면서 꽃을 들고 가는데, 만약에 그 꽃이 율법이고 언약이라고 하면, 거기 나이트클럽에 모인 200여명의 젊은 아가씨들은 "재벌 3세가 나에게 줄 것이다" 라고 하는데, 그런데 그 꽃이 계속 그냥 지나가서, 신발도 한 짝이 없는 허름한 여자에게 가서 "저와 결혼해주세요" 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때는 나이트클럽의 음악도 멈추고, 요란하게 돌아가던 조명도 멈추었는데, 바로 그 적막함, 그게 곧 묵시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 묵시는 시간정지를 말하는데, 하지만 인간의 의식 속에는 시간이 정지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살아있는 이상, 항상 그때그때마다 과거 현재 미래에 도달해야하기 때문에 말이다.

울산에서 그런 강의를 했었는데, 인간이 제 아무리 과거 현재 미래가 어떻고 저떻고 해도 지성소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이 세상이 변하더라도, 그리고 이순신 장군이 "내 이름을 알리지 마라" 라고 하든, 그 무슨 소리를 하든 간에 지성소의 효과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그게 곧 묵시라는 말이다.

◈ 포항제철의 용광로가 끓고 있는 한 !!

이 지성소를 이야기하면 포항제철의 그 커다란 고로가 연상되는데, 그 고로는 비가 오든 눈이 오든 항상 펄펄 끓고 있는데, 그 어떤 시간적 변화에도 상관없이 그 고로는 끊임없이 철광석이 공급되면서 끓고 있다는 것이다. 그게 과거 60년대 경제성장의 모델이었는데, 그 당시에 무슨 말이 있었는고 하니, "포항제철의 용광로가 끓고 있는 한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은 멈추지 않는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게 마치 지성소와도 같은데, 즉 우리 인간이 죄를 짓든 그 무슨 짓을 하든지 간에, 하나님의 언약의 용광로는 항상 불타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 다니엘의 세 친구가 그 속에 들어갔지 싶은데 말이다. 아닌가요?

◈ 돌판을 가지고 내려오는 모세 !!

이렇게 묵시는 시간이 정지되었다는 것인데, 알다시피 언약이 모세를 통해서 시내산에서 주어졌는데, 그래서 모세가 시내산에서 언약을 가지고 내려온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때 모세의 주변에는 새도 울었을 것이고, 자갈도 굴렀을 것이고, 바람도 불었을 것인데, 그런데 성령께서는 그런 주변의 것들은 모두 다 정지화면으로 바꾸어놓고, 오직 모세가 돌판을 가지고 내려오는 장면만 동영상으로 생생하게 집중적으로 촬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누구를 만나는고 하니,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는 줄 알았는데, 그런데 중간에 그만 어떻게 되었는가?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고 있었는데, 그래서 모세가 그만 돌판을 던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돌이 돌에 맞아서 돌판이 깨어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 깨어진 돌판, 그러나 !!

그렇다면 돌판이 깨어지면 괜히 올라간 것인가? 성과가 있어야 하는데, 들고 온 돌판도 깨어졌으니 결국 빈손으로 온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렇게 빈 것이라고 하면, 하나님과도 빠이빠이를 해야하는데,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고 뭐라고 하시는가? "모세야, 니가 다시 돌판을 만들라"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은 모두 다 우상 숭배자가 되어있는데, 모세는 지상에서 혼자서 돌판을 뚝딱 뚝딱 만들었다는 말이다. 그게 바로 정지화면이고, 지성소라는 것이다.

(출 34: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깍아 만들라 네가 깨뜨린 바 처음 것과 같이 깎아 만들라 네가 깨뜨린 바 처음 판에 있던 말을 내가 그 판에 쓰리니

◈ 아들은, 아버지를 제대로 알 때만 !!

단 예수님이 오셨을 때 예수님의 생각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하지만 그 가운데 예수님은 묵묵히 자기 일을 하셨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아들의 기능' 인데, 아들이란 말은, 아버지를 제대로 알 때만 아들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도 모르면서 아들이라고 하면 안 되는데, 아버지를 유일하게 아시는 분이 아들인데, 그래서 그 아들의 기능은 매우 독특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이 신의 아들을 흉내내는 것과는 전혀 다른데, 진짜로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아서, 진짜 하나님을 알기 때문에 말이다. 옛날 모세처럼 말이다. 모세는 어떻게 했는가? 진짜 하나님을 만나서 진짜 돌판을 가지고 왔다가, 깨어져버린 그 돌판을 대신해서 다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세의 경우는, "(1) 돌판이 깨어짐, (2) 돌판을 다시 만들어냄, (3) 만들어진 돌판에 말씀을 새기기" 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데, 모세는 비록 글자는 없지만 돌판 두개를 자기가 다시 만들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지시대로 말이다.

모세는 시내산에 몇 번 올라갔는고 하니까, 십계명을 외울 때 처음 올라갔고, 돌판을 받아서 내려올 때가 두 번째이고, 그리고 직접 돌판을 만들어 올라간 것이 세 번째라는 말이다. 그렇게 해서, 깨어진 돌판을 대신한 돌판이 하나님의 지성소인 법궤 안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 과거를 지닌 돌판 !!

그러니 여기에 배치되고 잠자고(?) 있는 돌판은 무슨 과거를 가지고 있는가? 아무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 없다고 하는, 즉 주께서 건져주지 않으면 아무도 주께로 나올 수 없다고 하는 증거를 품고 있는 돌판으로서 백성들 사이에 안치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런 돌판에다가 모세에게 준 율법에 따라서 피를 뿌리게 되면, 하나님의 진노가 그 피를 보고 만족스럽다고 해서 화목제로 전환이 되면서, 이 화목제에 초대를 받은 사람만 하나님의 용서하심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데, 그게 곧 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동행을 하시는데, 단절된 상태, 즉 깨어진 상태에서 말이다. 그때 모세가 "하나님, 어떻게 하면 됩니까?" 라고 하니, "내가 직접 나의 사자를 너희 속에 투입시켜서 인도하겠다'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그 사자인 천사가 백성들을 어디로 데리고 가는고 하니, 즉 무엇을 중심으로 해서, 중앙거점을 삼아서 움직이는고 하니, 그것은 바로 '주의 이름' 인데, 사실 이 주의 이름은 후대에 나온 것이고, 하나님의 이름이라고 하면 되는데, 하나님의 이름과 주의 이름을 설명하려면 너무 길어지니, 아무튼 하나님의 이름이 오는 곳으로 전부다 한 곳으로 모으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 곳이 곧 깨어진 언약이 갱신되는 곳인데, 이 갱신이란 말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는 않는데 말이다. 이 갱신은 그 앞에 깨어졌다는 것을 전제로 한 표현인데, 자칫 잘못하면 이 갱신은 하나님이 봐주는 것밖에 안 될 수가 있으니 그리 좋은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다.

◈ 언약의 갱신 !!

아무튼 갱신, 즉 회복된 언약인데, 하나님의 이름은 무엇과 만나는고 하니, 그게 곧 회복된 언약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인간을 구원해서 회복해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구원이 아닌 어디에 관심이 있다는 말인가? 하나님은 초지일관 하나님의 언약에만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너희들이 깨어버린 언약을, 내가 나의 이름을 앞세워서 세우겠다" 라는 것인데, 그러면 하나님의 이름이 하시는 일이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밖에 없는데, 즉 인간에 의해서 깨어진 언약을 다시 세우는 것, 하나님은 바로 그 작업만 하신다는 말이다.

◈ 우리는 안 됩니다 !!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여, 주여!" 라고 한다면, 그 '주여' 라는 속에는 무슨 내용이 들어있어야 하는가? "주여, 주께서 정하신 언약을 회복케 하옵소서" 라고 하는, 즉 "우리를 재료로 사용을 하든지, 어떻게 하든지 간에, 우리의 소원은 언약이 회복입니다" 라는 것이 들어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렇게 기도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자기들에게는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말인가? 없다는 말인가?

어제 주일 낮시간에 뭐라고 했는가? "행함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는 없다" 라는 부분을 설교하면서, 교인들에게 "저는 그것이 '인간은 그 누구도 의인이 아니다' 라는 것으로 보이는데, 여러분도 그렇게 보이십니까?" 라고 물었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까, "행함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는 없다" 라는 것은, 그 전제가 무엇인고 하니, 인간은 아무리 용을 써도 하늘나라에 갈만한 의를 생산할 수 없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 인간은 행함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먼저 행함으로 의롭다고 실시한 내용이 무엇인지, 그것을 우리가 충실하게 알아야 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롬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 법은 십자가와 만나도록 !!

하나님의 이름은 언약과 관련이 되어있는데, 그래서 법은 십자가와 만나도록 되어있는데, 그런데 왜 인간들이 엉뚱하게 거기에 끼어 드느냐는 것이다. 인간들이 그렇게 끼어 드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인데, 그러니 율법을 좀 완화시켜달라고, 지킬만한 언약으로 어떻게 해달라고 융통성을 발휘해달라고, 그렇게 자기 구원에 목말라서 요구할 입장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하나님은 인간의 구원에는 관심이 없는데, 하나님은 오직 인간에 의해서 깨어진 언약에만, 물론 그 인간의 배후에는 악마가 있지만 말이다. 하나님은 그 깨어진 언약이 어떻게 회복되는지, 오직 거기에만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법이 십자가와 만난다는 것이다.

◈ 율법의 폐기인가? 세우심인가?

그러면 그 다음의 문제는 무엇인고 하니, 그렇게 되면 율법을 폐기한다는 것과 율법을 세운다는 것이 그만 동일한 말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혼자 폐기하시고 또 세우시기 때문에 말이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거기서 빠져야 하는데, 인간이 관여할 문제가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율법이 폐기되었다는 것은, 쉽게 말해서 율법이 사라졌다는 것인데, 그렇게 율법이 사라졌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만나서 율법이 그 십자가로 그만 들어가 버리니, 마치 비행기가 구름 속으로 그만 들어가 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 눈에는 비행기는 보이지를 않고 구름만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때는 "어, 율법이 없어졌네. 폐기가 되었잖아" 라고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구름 안으로 들어가 보니까 어떠한가? "어, 여기 있네" 라고 하는데, 비행기가 분명히 구름 속에 잘 있다는 것이다. 즉 율법이 더욱 더 영광스럽게 빛난다는 말이다.

바로 이렇게 인간중심이 아닌, 하나님의 이름이 율법의 갱신입장에서 일을 한다는 생각을 우리가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고 "인간이 무엇을 지켜야 구원을 받습니까?" 라고 한다면, 그것은 선악과를 따먹어놓고 새삼스럽게 천국에 가겠다고 버티는 꼴밖에 되지 않는데, 그것은 말도 안 된다는 것이다.

◈ 왜 마지막에 율법이 강조되는가?

하지만 그런 사고방식이 교회사 속에, 신학사 속에 계속해서 있어왔는데, 그러다가 보니 어떤 난점이 있는고 하니, 분명히 구약에서 신약으로 오게 되면 점차 율법은 희미해지고 십자가가 분명하게 드러나야 하는데, 그런데 말라기서에 보면 율법에 대해서 엄청나게 강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게 대략 BC 400년경인데 말이다.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에도 율법에 대해서 또 강조하고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참 이상하다. 시간이 지나가면 율법은 점차 사라져야 하는데, 그래야 성경해석이 일관성이 있는데, 우리 자존심도 살고, 역시 우리의 일관된 성경해석은 합당해" 라고 할 수 있는데, 그래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에 보면 뭐라고 하는가? 철저하게 이방여인과는 결혼도 못하게 하고, 십일조와 제사에 충실하라고 하는데, 그리고 말라기서에 보면 "모세율법은 영원하다" 라고 해서, 폐기처분은커녕 끄덕도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누가 율법을 건드려?" 라는 식이란 말이다. 특히 마태복음 5장에 보면,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룬다" 라고 하고 말이다.

◈ 인간들의 꿍꿍이는?

그러면 왜 그런 말씀이 있겠는가? 그것은 바로 사람의 꿍꿍이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을 입증한다는 것이다. 우리 속에 말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나타나도, 그 예수님을 이용해서 구원을 받겠다고 하는 욕심이 우리 속에 살아서 꿈틀거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율법 앞에서 "저는 죄인입니다" 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속으로 웃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가? "내가 그렇게 말하면, 그 다음에 나에게 무슨 혜택이 있겠지" 라고 뭔가 노리는 것이 노림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잠시 동안만 쑤그리고 있으면 된다고 하는, 그런 장사 속이 또 있다는 것이다.

◈ 하나님의 아픔에는 관심이 없어 !!

그러니 성령을 받지 않은 사람에게는 아무리 설득을 해도, 기어이 마지막에는 무엇인고 하니, "내만 살면 그만이다"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자기만 구원을 받으면 그것으로 '땡' 인데, 다른 것은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그런 식으로 해서 구원을 받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을 보고 주님께서 "너는 지옥에 간다" 라고 하면, 그 사람이 회개를 하겠는가? "지옥에 가서 재미나게 살면 되지" 라고 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지옥을 왜 만드셨는지, 거기에는 관심이 없고, 어느 쪽이 더 자기 몸이 편한지, 즉 자기 육체가 즐길 행복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지,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가슴아파하시는지, 즉 언약이 깨어졌다고 아파하고 언약이 회복되었다고 기뻐하는, 그런 하나님의 기쁨에 동참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성령을 받지 못한 자들의 특징이라는 말이다.

그저 교회부흥, 가정행복, 마치 절에서 하듯이 교회에서 빌고 하는데, 그러니 교회에 와서도 "주님을 믿어서 이익을 본 것이 무엇인가?" 라고 하면서 손가락으로 세고 있는데, 그래서 새해가 되면 "올해도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하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러한 심보자체가 저주인데 어떻게 복을 받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주님의 언약파괴와 갱신에는 관심이 없는데 말이다. 즉 자기가 바로 하나님의 언약을 깨었고, 그래서 주님이 아파하신다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지금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기 직전인 AD 30년이라고 하면, 예수님은 곧 십자가를 지셔야 하는데, 그런 예수님에게 "올해도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한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이겠는가? "예수 당신이나 나나 동일한 인간이니 같이 놀자" 라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아버지를 아는 유일한 분인데, "그래, 올해는 내가 복을 많이 받을게" 라고 하시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그때 정말로 복을 제대로 받는 것은 십자가에 달린 강도인데, 그날 밤에 낙원에 갔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율법을 하나 생각하더라도 이 율법이 십자가와 만나서 사라졌기 때문에 폐기가 된 것으로 보이고, 그런데 십자가에 보니 율법이 우뚝 서있으니, 예수님께서 "내가 율법을 폐하러 온 게 아니라 세우려고 왔다" 라는 것도 맞는 말씀이라는 것이다.

◈ 내가 지킬 수 있는 법이 어디에 있지?

그런데 이렇게 "율법이 폐했다, 세웠다" 라고 하는 것은 왜 그런가? 사람들은 예수님과 같은 마음은 없고, 성령을 받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저 자기가 살 수 있도록 법이 어디 있는지, 그런 것만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율법보다는 법이 더 적합한데 말이다.

그렇게 "법이 어디에 있는가?" 라고 하면서 법을 찾다가, "어, 율법이 없어졌네. 아니지, 그게 아니야. 하나님이 장난을 쳤을 거야. 율법이 없어진 것처럼 보이게 해놓고, 그것을 지키지 않는 놈들을 찾아낼 거야. 그럼 그렇지. 하지만 나는 그런 하나님의 트릭에 넘어가지 않을 거야. 용서를 받았으니 율법은 필요가 없지만, 하지만 성령을 받고 난 다음에는 율법을 지켜야지" 라고, 그렇게 자꾸만 율법만 따라간다는 것이다.

◈ 어느 경찰간부의 파쇄된 인생 !!

골로새서 2장에 보면 아예 율법을 파쇄해버렸는데, 이 파쇄에 대해서는 지난 울산강의에서 해양경찰간부 이야기를 하면서 했는데 말이다. 기억이 나지 않나요? 나라에서 수고했다고 하면서 금일봉을 하사했는데, 그래서 간부가 그것을 가지고 회의를 해서 회식비에 쓰려고 했는데, 부하직원들이 이번에 퇴직하는 분에게 주자고 하니, 간부가 그만 화가 나서 그 돈을 파쇄기에 넣어버렸다고 하는데, 50만원이나 되는 거금을 말이다.

아마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다 아쉬워했지 싶은데, 자기에게 주면 다시 풀로 붙이려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파쇄기에 넣으면 그야말로 작살이 나는데, 골로새서 2장에서는 무엇인고 하니,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서 율법에 있는 것을 파쇄했다고 하는데, 즉 율법파쇄인데, 문자로 해석하는 문자적 율법해석의 파쇄라는 것이다.

(골 2:14)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골 2:15)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골 2: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 파쇄기에 들어간 율법 !!

그렇게 문자로 율법을 해석하는 것이 파쇄가 되었다면 무엇이 파쇄된 것인가? 현찰 만원짜리가 파쇄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의 몸이, 우리 육체가 파쇄기에 들어가서 박살이 나는 것과도 똑같다는 것이다. 그러니 안식일이든, 절기든, 그 어떤 법이든 간에, 그런 것을 가지고 누구든지 비난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게 갈라디아서 4장에도 나오는데, 사도바울이 뭐라고 하는가? 자기가 그렇게 복음을 전했지만,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듣지 못하고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지키니, 자기의 그 수고한 것이 헛될까 싶어서 두려워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갈 4:10)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갈 4:11)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왜 그런 현상이 생기는가? 율법을 주었지만, 율법은 어려우니 법이라고 하면, 즉 법을 주었는데 우리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말미암아서, "그런 법이라고 하면 우리가 지킨다" 라고 하는 것이 이미 우리 속에 자생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이다. 선악과를 따먹기에 말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나와라, 법. 주여, 주께서 하라고 하면 하고, 말라고 하면 말겠습니다" 라는 것이 이미 준비가 되어있는 상태에서 율법을 주었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그것을 지키면 하나님 앞에서도 큰소리를 칠 수 있다고 보았다는 말이다.

그래서 자기 이름을 쓰고 열심히 수능문제를 풀고 있는데, 그런데 주님께서 그만 피 묻은 손으로 그 시험지를 빼앗아가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 아직 문제를 다 풀지 못했는데" 라고 하고 있는데, 주님께서는 그만 그 시험지를 파쇄기에 넣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인가? 주님께서 왜 그렇게 하셨느냐는 말이다. 그것은 바로 법을 지켜서 구원을 받겠다고 하는 우리의 구원욕구, 즉 그런 종교적인 욕심이 모두 파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생명책 명단에 있는 자들만 !!

그러면 남는 결과가 무엇인고 하니, 모든 구원을 우리 인간을 배제하고, 누구와 누구의 상의한 결과로 이미 종결되었다는 것인데, 그게 누구인가? 하나님과 예수님, 두 분이 이미 합의가 끝났는데, 그런데 그 근거가 있다는 말이다. 그게 바로 생명책의 명단에 있는 자들만 어떻게 건질 것인지, 그것의 합의이지, 추가적으로 더 보태고 하는 합의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에베소서 1장 4절에서 무엇이라고 했는가?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라고 했는데, 바로 그러한 의미라는 것이다. 하여튼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온갖 것을 다 알았다는 것이다. 질투가 날 정도로 말이다(ㅋㅋ).

(엡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물론 사도바울은 그것을 자기가 안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깊은 진리를 알게 해주셨다고 고백하는데, 그러니 같은 성령을 받은 사람이라고 하면 자기가 하는 말이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자기가 잘나서 그 말씀이 이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아는 것이니, 같은 성령을 받았다면 마찬가지가 아니겠느냐는 말이다. 하지만 이것을 문자로 풀려고 하면 계속해서 성령께서 가리워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 씨뿌리는 비유 !!

지난 대전강의에서 마태복음의 '씨뿌리는 비유'를 했는데, 그것이 보여주는 것은 우리 인간이 어떻게 구원을 받는지, 그런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고, 다만 말씀 자체가 가지고 있는 4가지 기능이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말씀이 마귀가 들린 사람에게는 길가에 떨어진 모습으로 드러나게 하는 자체적 기능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말씀은, 고난을 이기지 못한 사람에게는 결국 열매가 없음을 드러나게 하는 기능이 있고, 또한 말씀에는 어떤 기능이 있는고 하니, 이 세상의 유혹에 푹 젖은 사람에게는 절대로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는 기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예수님의 이런 모든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느냐가 아니고, 말씀이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그 기능이 얼마나 깊고 풍성한지, 그것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하늘나라에 언약궤가 있는데, 즉 거기에 말씀이 있으니 말이다.

하늘나라에 있는 그 말씀이, 지상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어떻게 되었는가? 깨어져야만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말씀이 깨어지는 곳이 지상이고, 말씀의 효과를 보는 곳이 곧 하늘나라라는 것이다. 그게 바로 천국과 지옥이란 말이다. 언약의 있고 없음에 따라서 말이다.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께서 다 하셨습니다" 라고 하면 천국이고, "나도 조금 했습니다" 라고 하면 지옥이라는 것이다.

◈ 거지 나사로를 조져도 너~무 조졌어 !!

거지 나사로를 하나님께서 얼마나 조져놓았는지, 그는 아무 것도 할 게 없었다는 것이다. 거지 나사로가 돈이 있었으면 얼마든지 십일조를 할 양반인데, 그런데 십일조고 뭐고 간에 자기 몸도 하나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왜 그렇게 사람을 완전히 짓밟아놓느냐는 말이다.

그것은 바로 "구원은 바로 그런 식이다" 라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단 한 사람도 예외가 없는데, 자기가 조금이라도 꿈적거릴 수 있다는 것을, 즉 "예수를 믿고 나도 조금 무엇을 해봐?" 라는 식으로는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아무리 귀신을 쫓아내고 물위를 걸었지만, 예수님의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무엇인고 하니, 그게 예수님이 기도하시는 순간인데, 그때는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었는데, 그때는 예수님 본인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순간이라는 말이다. 그렇게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뭐라고 하셨는가?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마 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

그렇게 예수님께서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라고 하신 것은, "이 순간부터 나는 나를 어떻게 할 수가 없고, 전적으로 아버지의 뜻에 일임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 있다" 라는 의미인데, 그래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이 '내 뜻' 이라는 것이, "그동안 내 뜻대로 행해왔지만, 지금부터는 내 뜻을 접는 시점에 들어왔다" 라는, 그런 의미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라는 것이 곧 죽음의 상태인데, 그것을 어제 낮에는 '잠잔다' 라고 표현을 했는데, 개인적으로 이것을 참 기쁘게 정리했는데 말이다. 왜냐하면, 잠을 자다보니 그런 생각이 드는데, 사람이 그렇게 잘났다고 뽐내고, 인수위원장이 어떻고 해도, 잠을 잘 때보니 모두가 입을 다물더라는 것이다. 입을 벌리고 자는 분도 있지만 말이다(ㅋㅋ).

그렇게 말썽을 피우고, 술 먹고 담배를 피우고, 또 욕을 하고 해도, 그런 자식놈도 잠을 잘 때는 입을 다물고 조용히 자는데, 그야말로 천사라는 것이다. 사형수도 잘 때는 사형수가 아닌데, 깨니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괴팍한 성질이 튀어나오고 말이다. 잠을 잘 때는 부자나 노숙자나 다 똑같은데, 그러니 인간은 처음부터 동일했다는 것이다. 깨어나서 설치는 게 문제가 아니고, 처음부터 인간은 그렇게 죽은 존재라는 말이다.

어제 과장되게 표현을 해서, 목사님들이 아무 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다고 하는데, 사실을 가지고 왔다는 것이다. 잠시 설교를 위해서 다른 사람들은 아무 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다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음을 양해해주셨으면 하는데, 물론 안 해주면 할 수 없고 말이다. 그래도 인삼은 식사용은 아니었지 싶은데 말이다. (아니, 무슨 일?)

◈ 왜 율법은 잠시 등장했다가 사라지는가?

그건 그렇고, 아무튼 율법이 폐기가 되던 되지 않던, 그건 우리가 걱정할 문제가 아닌데, 단지 우리가 생각해야하는 것은, 왜 주님께서는 잠시 율법을 보여주고 사라지게 하시는지, 그것은 바로 우리가 얼마나 법적인 인식을 가지고, 선악과를 따먹은 주제에 감히 어떻게 하는가? 하나님이 오지 말라고 한 그 생명나무에 겁도 없이 다가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말도 지지리도 안 듣는데, 먼저 따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따먹었고, 그 다음에는 막아놓은 생명나무에 덤벼드는 것도 역시나 말을 듣지 않는 것이고, 하여튼 인간은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설치는 것이 무엇을 가리는고 하니, 진짜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훼방놓고자 하는 예수님의 원수가 인간 배후에서 조종하는데 말이다.

그 원수가 무엇이라고 하는가? "이제 알았지? 예수는 시시하다. 중요한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바로 너 자신이다" 라고 하는데, 바로 그렇게 매일같이 예수님의 원수가 우리에게 장난치고 있다는 것을 들추어내기 위해서, 그래서 잠시동안 율법을 보여주었다가 사라지게 했다는 것이다. 원수를 들추어내기 위해서 말이다.

빌립보서 3장 18절에 보면 아주 유명한 말씀이 나오는데,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저에게는 그러한데, 거기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는 것이다. 사도바울이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라고 하면서, 그런 다음에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라고 한다는 것이다.

(빌 3: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

제가 신학교를 졸업하고 이 말씀을 참 좋아했는데, 왜 그런고 하니, '그리스도의 원수' 라는 것을 흔히 하는 이야기인데, 예수님을 반대하는 자가 그리스도의 원수라고 말이다. 그것은 누구나 다 그렇게 말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을 반대한다고 해서 원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핵심 엔진부분을 반대하는 자가 곧 원수인데, 그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십자가라는 것이다.

그러니 십자가의 원수가 진짜 이단인지 아닌지, 예수님의 원수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예수님의 존재가 아닌,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곧 기준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십자가도 모르면서도 성령을 받았다는 소리를 하면, 그런 인간은 진짜 나쁜 사람이라는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십자가를 모르면 성령을 받았다고 할 수 없고, 성령을 받게 되어서 진짜 십자가를 안다면, 그런 사람은 십자가 외에 다른 것을 전혀 이야기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마지막에는 뭐라고 하는고 하니,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을 배제하고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체결된 새언약, 즉 '내 살과 내 피를 먹고 마시지 아니하면 안 된다' 라고 하는 그 새언약으로만, 즉 십자가로만 구원을 받습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 앗, 저의 실수 !!

그게 나와야 하는데, 아까 여담으로 박영선 목사가 예배시간에 헌금을 하라고 강조한 것을 이야기했는데, 그런 것을 예배시간 처음에 했던, 중간에 했던, 마지막 부분에 했던 상관없이, 항상 결론 부분에서는 정말 성령을 받은 사람이라고 하면 그것을 뒤엎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제가 예배중간에 엉뚱한 소리를 했는데, 헌금을 하라는 것은 저의 욕심이고, 주님께서는 그 따위 소리는 하지 않을 겁니다" 라고 말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교회가 어렵습니다. 운영이 전혀 안 됩니다. 지금 저의 생활비도 없습니다. 그러니 헌금을 좀 해주세요" 라고 하면서 시작을 하더라도, 그것은 이해가 되는데, 왜냐하면 설교자는 솔직해야하니 말이다. 그런데 말씀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아하, 제가 그만 마귀의 꾐에 넘어가서 실수를 했습니다. 제가 능력이 없어서 괜히 헛소리를 했습니다. 그러니 니 맘대로 사세요" 라고, 그렇게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 신 라면은 덤으로 !!

주님은 우리와 이야기를 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그냥 덤으로 붙어있다는 것이다. TV 홈쇼핑을 보면 그런 것이 나오는데, "주방기구를 사시면 신라면 한 박스를 그냥 드립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물론 6개가 든 박스인데 말이다.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저는 TV를 거의 안 보는데, 이상하게도 틀면 그런 것이 눈에 띤다는 말이다.

그건 그렇고, 여기서 아무튼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신 라면이 라면 중에서 최고 매출액을 자랑하고 아무리 맛있어도, 여기서는 어디까지나 주방기구가 주인공인데, 그런데 신 라면이 분위기 파악도 하지 못하고, "앞으로 나의 운명이 어떻게 될까?" 라고 고민을 하고 거기에 신경을 쓴다면, 그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 것은 라면을 파는 김밥천국이나 라면 전문점에 가서 할 야이기이지, 여기는 주방기구를 전문적으로 파는 곳이기에, 다만 여기서는 라면이 덤으로 끼어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 덤이 우리 자신인데, 우리는 이방인이기에 말이다. (녹취자 - 그러면 유대인들은 덤이 아닌가요?)

우리는 애초에 언약 바깥에 있는 인간들인데, 그런데 주님께서 일을 대신해서 다 치르고 나서 우리는 그냥 오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축의금은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예복은 입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혼인잔치에서 쫓겨나니 말이다. 주님의 피 묻은 예복은 요한계시록에 나오고, 또한 혼인잔치는 마태복음에 나오는 이야기이라는 것이다.

◈ 성도는, 영원한 박수부대로서 !!

그러니 성경전체가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고 하니, 우리를 오라고 하는 이유는 천국잔치에 들러리가 되어달라는 것인데, 언약백성이 중요하니 말이다. 즉 우리의 구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는 천국잔치에서 박수를 칠 '박수부대' 라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 구원을 향한 박수가 아니라, 주님을 향해서 "주님, 축하드려요. 잘 하셨습니다" 라는 의미의 박수라는 말이다. 자기가 세운 개척교회가 잘 되라고 박수를 치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지금도 하나의 묵시적 지성소로서, 영원한 예수님의 피와 살로 세운 그 언약을 위하여 박수를 치고 찬양하면, 그런 박수소리가 시작이 되었다면, 그 시작이 곧 천국의 시작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천국에 가도 우리는 박수를 치고 있을 것이니 말이다. 이 지상에서는 박수를 치다가, 천국에 가서는 "이제 천국에 왔으니 그만두자" 라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천사가 날갯짓을 할 때 1분에 얼마나 하겠는가? 물론 그것은 우리가 모르는데, 하지만 중요한 것은 천사가 날갯짓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찬양을 해야할 천사는 영원히 찬양을 해야하는데, 그런데 천사가 자기 어깨를 툭툭 치면서 "아이쿠, 오십견이 왔나? 왜 이렇게 어깨가 아프지. 좀 쉬자" 라고 하는 것은 없다는 말이다.

◈ 그냥 즐겨라 !!

주께서 그렇게 하게 하시는데, 우리가 생명을 가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찬양하라고 우리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영원히 생명나무가 있는 곳에서 헤엄을 치고 또 생명나무의 과일을 따먹은 것은, 우리가 그것을 목적으로 삼아서 천국에 온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누리라는 것이다.

주님이 손수 준비해놓은 그 잔치집에 가서, 그 아들의 혼인잔치에 가서 마음껏 먹고 즐기면 되는데,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 "갈비는 60점, 잡채는 70점, 돈까스는 80점, 그리고 이것은 뭐지?" 라고 하면서 심사를 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냥 배가 터지도록 먹으면 된다는 말이다. 그것이 전부 다 생명나무라는 것이다.

과거 에덴동산에서 조건이 무엇이었는가? 전부를 다 먹어도 되는데, 단 한 가지만 안 먹으면 된다는 것이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인 선악과만 안 먹으면 되는데, 에덴동산의 즐거움은 무엇인고 하니, "그런 너의 선악과는 무관하게 하나님과 아들의 결정에 의해서 그냥 공짜로 준 것이기에, 니가 거기서 선악을 따질 이유도 필요도 없다" 라는 것이다.

◈ 법을 알았는데, 그 법이 사라지게 되면 !!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셨는데, 그런데 조상을 잘못 둔 덕분에(?), 아담이 그만 따먹는 바람에 그의 후손인 우리가 법을 알아서, 법적으로 착한 일을 많이 하고 악한 일을 적게 해서 천당에 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만 우리 눈에 보이는 그 법이 없어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법이 없어지는 그 과도기에는 어떤 현상이 일어나야 하겠는가?

여기서 교재 266페이지를 보자.

** 심령이 가난한 자가 천국이 저희 것이 되기 위해서도 율법은 사라져야 한다. 예수님은 산상설교에서 율법이 사라져야 함을 다음과 같이 암시하셨다.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것을 염려하지 말라" 라는 지시는 구약율법에 명시된 바가 없는 조항이다.

(마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
(마 6: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 랍비여 !!

여기에 보면 "심령이 가난한 자가 천국이 저희 것이 되기 위해서도 율법은 사라져야 한다" 라고 되어있는데,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이 구약율법에 있는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것을 염려하지 말라" 라는 지시도 역시 구약율법에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바리새인들이 미치는데, 바리새인들은 율법에 명시된 것만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데,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리새인들이 오해한 것인데, 그래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보고 "랍비여!" 라고 했다는 것이다.

랍비의 의미가 스승이라는 것인데, 그 당시의 스승의 역할은 무엇인고 하니, 구약의 율법원판이 이렇게 있으면 주석이나 해석을 해서 그것을 끄집어내는데, 그 역할을 랍비들이 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곧 서기관들이고 바리새인들이라는 말이다.

여기에 이렇게 십계명이 있고, 또 백성들이 있다고 하면, 이 십계명을 백성들이 지킬만한 것으로 이어주게 되면, 그렇게 사다리를 만들어주면 밑에, 있는 사람들은 조금 무식해도 쉽게 알려준 그 사다리를 타고 가면 십계명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한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랍비가 바로 그러한 역할을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구약의 율법에도 없는 말씀을 하니까, 그들은 예수님을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는 것이다. "아하, 저 양반도 랍비들이 하는 것처럼 율법을 우리가 쉽게 지킬 수 있도록 해주는구나" 라고, 그렇게 예수님을 오해했다는 말이다.

그들에게는 평소에 십계명을 지켜온 틀이 있는데, 예를 들어, "안식일에는 담요를 들고 가면 안 된다" 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한 법이 있다는 것은, 그 법이 문제가 아니라, "안식일을 지켜라" 라고 하는 4계명의 보조법으로서 사람들이 만들어놓았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의도자체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즉 "법을 지켜야만 천국에 간다" 라는 것은 그 당시의 만고불변의 진리인데, 이러한 이야기를 오늘날 교회에서 하면 뭐라고 하겠는가? "그게 진리가 맞지. 법은 지키라고 있는데, 법을 지킨다고 문제를 삼는 당신이 나쁘지, 그것이 뭐가 나빠?" 라고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가 하는 꼴이 말이다.

◈ 예수님과 바리새인들 !!

그들의 주장은 "안식일을 지킴으로서 구원에 이를 수 있다" 라는 것인데, 그것을 제일 잘 지킨 자들이 바리새인들이라는 것인데, 그래서 예수님이 어떻게 하셨는가?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모두 다 지켜야한다" 라고 먼저 토를 달아놓고, 그 맞은 편에는 "너희들의 의가 바리새인들의 의보다 더 낫지 않으면 천국에 가지 못한다" 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니 율법의 원판은 반드시 다 지켜야 한다는 것은 전혀 양보가 없는데, 그런데 인간들이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 라고 하는 발상에서 나온 그 최고수준의 법을 누가 만들어놓았는가? 바리새인들이 만들어놓았는데, 그러니 바리새인들이 그 최고의 고수로 있다는 것이다. 뭐든지 만든 놈이 최고수준인데, 신당동 떡뽁기도 만든 양반이 최고로 잘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원조싸움을 한다는 말이다.

아무튼 바리새인들이 법을 만들어놓았기에, 자기들이 지키지 못할 법은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에 자기들이 지키지 못할 법을 만들게 되면 자기들도 천국에 가지 못하니 말이다. 어디까지나 자기가 중요하니 말이다. 그러니 먼저 자기가 제일 앞에 서고, 그 뒤에 줄줄이 백성들이 줄을 서게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목사들이 이런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데, 그래서 교인들이 목사가 모르는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잘리는데, 오야붕이 둘이 될 수는 없으니 말이다.

◈ 예수님의 '공성퇴' 작전 !!

그렇게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일점 일획을 먼저 말씀하시고, 그 맞은 편에 바리새인들의 의를 배치를 해놓으셨다는 것이다. 혹시 '공성퇴(攻城槌)' 라고 아는지 모르겠는데, 옛날에는 성을 높이 쌓는데, 왜냐하면 높은 곳에 있으면 전투에서 유리하니 말이다. 물론 요즘같이 비행기가 있으면 소용이 없지만 말이다. 그래서 앗수르나 바벨론이 이스라엘을 칠 때는 공정퇴를 만들어서 공격을 하는데, 우리나라의 고구려 시대에도 보면 나오는데 말이다.

이렇게 성이 있으면 그 주위에 '해자' 라는 것을 만드는데, 적들이 쉽게 건너오지 못하게 하는 일종의 수로인데, 폭이 15미터이고 깊이는 3미터 정도가 되는데 말이다. 그래서 적들이 어떻게 공격을 하는고 하니, 그 성의 맞은 편에다 흙으로 탑을 쌓는데, 기존의 성 높이 이상으로 말이다. 그렇게 탑을 높이 쌓아서 거기 더 높은 곳에서 성을 공격한다는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보면 참으로 무지막지하고 우악스러운데, 그런데 이런 모든 전투형태를 무엇이 종결시켰는가?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가 만들어짐으로서 의미가 없게 되었는데, 이게 바로 묵시라는 것이다. 즉 율법을 지켜서 올라가겠다는 것인데, 그런데 세례요한이 뭐라고 했는가? "위에서 주지 않으면 아무도 갈 수 없다" 라고 했는데, 즉 구원을 받은 것은 다 위에서 주었기에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위에서 받은 것이 없으면 어쩔 수 없이 공정퇴를 쌓을 수밖에 없는데, 그게 바로 '천로역정' 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한 걸음 한 걸음씩 올라간다는 것이다. 너무 속도를 내었다 싶으면 죄를 조금 지어서 미끄러지고 말이다. 그러면 또 다시 성경을 보고 기도하고 금식을 하면서 한 걸음 올라가고 말이다. 그러다가 금식을 너무 심하게 했다 싶으면 야동을 보고 또 미끄러지고 말이다.

주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망 !!

그러니 이것이 무슨 장난을 치는 것도 아니고, 생명책에 자기 이름이 없다고 아예 꼴통짓을 한다는 것이다. 생명책에 자기 이름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신이, 즉 주의 이름이 자기 속에 성령을 통해서 들어오게 되는데, 그러면 자기 이름은 이제 삭제가 되는데, 그러니 기도를 해도 주의 이름으로 하고, 헌금을 하고 봉사를 해도 주의 이름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두고 '주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망' 이라고 하는데, 그러니 이것은 '나' 라는 몸이 일으키는 욕정과 욕망은 그대로 있어서 엄청 피곤한데, 자기 자존심도 그대로 있고 말이다. 그래서 매일같이 내부적으로 책망을 받는다는 것이다. 주께서 살려주니 자기가 살았다고 하고 말이다.

이야기를 계속해서 해보겠는데, 이렇게 예수님께서 율법을 일점 일획이라고 어기면 안 된다고 하는 성을 먼저 쌓으시고, 그 맞은 편에 바리새인들의 의를 가지고서 공정퇴를 만들어놓으셨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고 하니, 그것이 마태복음 5장 25절과 26절에 나오는 말씀이라는 것이다.

(마 5:25)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마 5: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 극단적 율법주의자, 예수 그리스도 !!

그러니 당연히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기 위해서 이런 엄포를(?) 놓는지 궁금해할 수 있는데, 그 다음에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앞에서는 "누구든지 형제를 보고 욕하는 것도 살인죄다" 라고 하셨고 말이다.

(마 5:27)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 5: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그러니 이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믿음을 지키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하시는 모든 말씀들은 기존에 알고 있던 율법의 강도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세도 더욱 세고, 강해도 너~무 강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 나오는 말씀은 더욱 더 절정에 이르는데, 즉 "만일 오른 눈이 실족케 하거든 빼서 내버려라"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마 5:29)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마 5:30)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 내 눈알을 빼시오 !!

교회사를 살펴보면 실제로 자기 오른 눈을 뺀 사람도 있는데, 자기 오른 눈이 범죄하게 했다고 해서 말이다. 그러한 또라이도 있는데, 지금이라면 굳이 오른 눈을 빼지 않고 그 오른 눈과 관련된 시신경을 제거하면 되는데, 왜냐하면 눈은 그냥 하나의 창문에 불과하고 실제로 그것을 관리하는 것은 두뇌에서 하니 말이다.

그러니 오른 눈과 연결된 신경을 찾아서 끊으면 되는데, 마치 전선을 자르듯이 자르면 되는데, 그러면 불이 안 들어온다는 말이다. 그렇게 해서 눈알을 빼지 않게 되면 인물도 살도 좋은데, 그런데 그들이 2000년을 기다리지 못해서 그런 안타까운 짓을 했다는 말이다.

그것은 아주 극단적인 율법주의자리고 할 수 있는데, 누가 말인가? 눈알을 뺀 인간이 아니라 예수님이 그렇다는 말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율법 폐기론자가 아니고 극단적인 율법주의자인데, 왜냐하면 그러한 극단적인 율법을 퍼트리는 분이 우리 안에 이미 점령군으로서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말이다.

그러니 그 어떤 짓을 하더라도 잘했다는 것이 있을 수가 없는데, 율법은 일점 일획이라고 어기면 안 되니 말이다. 그렇게 율법은 전혀 양보가 없는데, 그런 양보가 없는 덩어리에 입각해서 우리는 무엇을 깨닫게 되는고 하니, 모든 것에 대해서 주님이 계시지 않으면, 우리는 마땅히 처음부터 지옥에 가야만 했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 성령을 받으면, '그 다음에는' 라는 게 없어 !!

언젠가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사람이 제일 행복한 순간이 언제인고 하니, 물론 불과 2초나 3초에 불과하지만, 그것은 바로 자기가 죄인임을 깨닫는 순간인데, 그때는 그야말로 상상도 못할 정도로 엔돌핀이 솟아나면서 행복해진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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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356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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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