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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광주 강의(2013. 1. 25) 1강 녹취록자유게시판에스겔

광주 강의(2013. 1. 25) 1강 녹취록

이름 : 서경수(IP:121.176.190.236)

광주 강의(2013. 1. 25) 38-1

에스겔 36장 26절을 봅시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라고 되어 있지요.

여기에 ‘육신’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하나님은 사람이 있어도 그것을 ‘사람이 있다’고 간주하지 않습니다. ‘있음’은 우리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만 해당됩니다. 우리는 있다가도 없어지는 역할을 합니다.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흙’입니다.

흙의 특징이 뭐냐 하면, 지구에 사람이 산다는 것은 지구 위에서 사람이 뛰고 노래하고 춤추고 하는데, 성경은 그렇게 보는 것이 아니고 흙의 일부가 돌출되어 있는 것인데, 움직여도 움직이는 게 아닙니다. 사람들이 설치고 활동하고 해도 이것은 흙덩어리 일뿐입니다. 여기에 말씀을 주면 변화가 일어나겠어요? 아니지요.

만약 우리가 흙으로 같이 붙어있지 않고 독립되어 있다면 하나님이 말씀을 주시면 그 말씀에 순종하고 따르는 것이 되는데, 이것이 아니고 인간 자체가 흙에서 돌출한 것으로 흙의 일부라면 말씀을 주셔도 어떤 변화도 보일 수가 없습니다.

말씀을 주셨다는 것은 “너는 뭘 해도 네 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흙에서 벗어나서 독자적인 인간으로 말씀에 순종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이런 안목이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이 뭔가 계획하고 사업을 추진하면서 스스로 살아 움직인다고 여기는데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전혀 움직이는 게 아니에요. 바람이 불면 나뭇잎이 흔들리듯 잠시 흔들릴 뿐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간다면 새롭게 환경이 바뀐 것으로 여기잖아요.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약간 늙은 흙, 여전히 땅의 기운만 냄새 맡고 사는 존재, 땅에서 뿌리가 뽑힌 적이 없는 자로 봅니다. 대통령도 그렇고 노숙자도 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흙에 속해 있으면서 벗어날 마음도 없고, 고생을 해도 이 세상이 좋고 그렇습니다. 주의 말씀을 따라 천국 가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마음이 끌리지 않고 관심도 없어요.

성경 말씀은 우리가 흙과 결별하고 여기서 탈출해서 천국으로 오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흙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 즉 육체로 봅니다. 에스겔 37장에 보면, 에스겔을 데리고 골짜기로 가는데 그곳에 뼈들이 있어요. 인간은 살아있다고 여기지만 세월 지나면 하나의 해골이고 흙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창세기 3장 말씀 “흙으로 지음 받아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흙에서 벗어나지 않았어요. 말씀은 우리를 이렇게 보는 겁니다.

그러기에 “나는 말씀 듣고 새사람 되었다.”고 하지 마세요. 그것은 뭔가 오해하고 있는 겁니다. ‘내가 있고 세계가 있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현대철학에서도 이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합니다. 현대철학에서는 ‘내가 여기 하나의 개성으로 있다는 것은 잘못이고, 나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중에 존재한다.’고 하지요. 그러면 나는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이미 세계 속에 포함이 되어 있지요.

내가 세상 분위기에서 독립해서 독야청청 홀로 있을 수 있습니까? 어림도 없지요. 세상이 요동치면 같이 흔들리게 되어 있어요. 세상은 나와 같이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현대철학에서는 나를 없애버리라고 합니다. 나는 액체입니다. 간호학과 졸업생이 취직이 잘 되니까 많은 학생들이 간호학과로 몰려듭니다.

세상이 가는 데로 우리는 출렁거리면서 따라 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있고 세계가 있는 것이 아니고, 그냥 세계만 달랑 있고 나는 거기에 담겨 흘러가는 것뿐입니다. 이 세상 자체가 흙이라면 우리는 흙의 돌기(돌출)부분입니다. 성경은 이런 상태에 있는 인간을 ‘육신(육)’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흙에서 왔기에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확실합니다.

그러면 육이 아닌 자가 있는가? 그런 자는 없습니다. 인간은 다 육입니다. 그러기에 말씀을 준 것은 지키라고 준 것이 아니고, 우리가 주재 파악을 못하니까 주재 파악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겔36:26)을 보면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준다”고 합니다. 이게 뭔가 하면, 나는 나의 세계만 있는 줄 알았는데 새로운 영역, 새로운 세계가 들어오는데 이것이 바로 영의 세계입니다.

그러면 영의 세계가 들어온 것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는가? 여기에 모델이 된 자가 인자, 에스겔입니다. 에스겔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게 되고, 새로운 세계가 임하게 되면 우리 자신을 나로 보는 안목에서 육신으로 보면서 영과 마주할 준비가 갖춰져요. 나라고 여겼던 것이 육신으로 개념 자체가 바뀌는데, 하나님이 나를 인간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육으로 보는 이유는 영과 접목을 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순간접착제(5초 본드)를 바를 때 어떻게 합니까? 접착 면을 사포로 닦고 난 후에 본드를 바르고 5초 후에 붙이면 됩니다. 이처럼 준비 단계, 즉 사포로 닦아서 우리의 면상이 깎여 나가게 만들지요. 이렇게 보면 됩니다. 우리 자아의 피부 층을 뜯어내면 뭐가 보일까요? 육이 보이지요. 고상하게 자기를 치장하는 것을 강제로 뜯어내는 거예요.

고상하고 아름답고 훌륭한 것으로 꾸민 것을 뜯어내면 그 안에는 온갖 더러운 것들이 다 드러납니다.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더러운 것이 아니고 속에서 나오는 것이 더럽다”고 했지요. 그래서 예수님도 “마음속으로 음행하는 것도 간음이고, 형제에게 욕하는 것도 살인”이라고 하셨어요. 이것이 강제로 피부 층을 뜯어내는 작업입니다.

제가 설교시간에 어떤 선교사 이야기했지요. 하나님을 알고 난 뒤 “내 손을 잘라버리세요. 제 눈을 뽑아주세요. 이제 하나님을 알게 된 이상은 이런 것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그 정도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거예요. 주께서 우리의 피부 층을 뜯어냅니다. 진짜 뜯어내면 병원에 가야 하지만, 성령이 말씀으로 우리에게 덮쳐오면 우리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치장해 놓은 모든 것들을 뜯어버립니다.

이렇게 되면 나는 사라지고 육신이 드러납니다. 그동안 우리는 육신을 감추면서 살아왔는데 성령이 와서 우리의 피부 층을 뜯어내니 더러운 육신이 노출되는데, 이 모습은 내세울 것도 자랑할 것도 없는 더러운 상태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과의 마주침 현상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다 나라의 피부 층을 뜯어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자부했는데 전혀 그게 아니었습니다. 지금 유다는 바벨론에 포로 잡혀 가 있습니다. 이방 나라에 유다가 사로잡혀 갔다는 것은, 유다 나라도 이방 나라 못지않게 이방화 되었다는 것입니다.

유다는 그동안 이방 나라 바벨론의 부귀영화를 많이 사모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유다를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가도록 했습니다. “바벨론이 그렇게 부러우면 그곳에 가서 살아라.” 이렇게 된 것이지요. 입으로는 하나님을 찾지만 사실은 하나님께 관심이 없고 세상이 부럽고 좋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나라로 가도록 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사실은 하나님께 관심이 없고 세상 나라를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원수의 나라에 유다 나라를 집어넣어 버립니다. 그렇게 되니 둘 다 원수의 나라지요. 그런데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뭔가 하면, 포로 잡혀간 그들에게 새 영을 주시는 거예요. 그리고 제 2의 출애굽이 시작됩니다. 제 1의 출애굽은 애굽에서 히브리인들이 나온 것이고, 제 2의 출애굽은 바벨론에 포로 잡혀 갔다가 돌아오는 것입니다.

제 1출애굽은 영이 아니고 율법으로 왔지요. 율법으로 와서 율법의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이었고, 제 2출애굽은 하나님의 영을 집어넣습니다. 26절을 봅시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27절에는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라고 했어요. 이것이 바로 기존의 모든 기독교 신앙은 엉터리고 반 복음적이고 개혁주의도 전부 엉터리임이 드러나지요. 누가 행하게 합니까? 주께서 행하게 하시는 거예요.

술에 취하는 자는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가 없어요(고전 6:10). 술 마시는 이유가 취하려고 먹지 안 취하려면 음료수를 마시지 왜 술을 마시겠습니까? 그런데 술 취하는 자는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단 말이지요. 그런데 나는 예수 믿고 난 뒤에는 지금까지 술을 안 먹었다면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습니까?

이것은 지옥 갈 이야기입니다. 뭐가 문제입니까? 술 먹는 자는 지옥 가고, 나는 술 안 먹었으니까 천국 간다고 생각하는 내가 바로 지옥 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어디에 위반되어서 그렇습니까? 새 영의 작용을 무용지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술 안 먹었다는 내가 방해하고 있어요. 하나님의 원수 노릇을 하고 있는 거지요.

내가 그동안 술을 안 먹은 것은 주가 안 먹게 하신 것뿐인데, 그것을 우리는 ‘내가 굳은 결심을 해서 안 먹었다.’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성령이 아니면 나는 술을 먹어도 천 번도 더 먹었다. 지금이라도 성령이 떠나시면 지금도 술에 끌린다.’는 것입니다.

술을 취미로 마시는 사람도 있지만 정말 마시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대학 시험에서 떨어졌을 때 마음껏 마시고 취하고 싶지요. 정말 마시고 싶은 상황에 있어요. 그러나 성령께서 못 먹게 막으시는 환경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설사 술을 먹었다 하더라도 “주여, 이것은 성령이 하신 것이 아니고 내가 좋아서 먹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뜻에 어긋납니다.”라는 마음으로 먹는다면 이것은 자신의 육신 됨이 드러나는 거예요.

이래도 하나님께서 나를 건지신다는 믿음의 바탕 위에서 하는 짓이에요. 참는다는 것은 부질없는 짓입니다. 참아봐야 점점 더 오기만 생기는 거예요.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어떤 아버지가 인쇄소를 운영하다 세상을 떠났는데 타지에서 사업을 하든 아들이 아버지 사업을 잇기 위해 귀향해서 인쇄소에 갔는데, “절대 열지 마세요.” 라는 봉투를 발견했어요.

아들은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야겠다는 의미에서 열지 않았어요. 3년을 버텼습니다. 피부 층은 내가 뜯는 게 아닙니다. 주께서 뜯어줄 때만 영이 임합니다. 3년을 버텼는데 점점 열고 싶은 욕망이 강렬해 집니다. 결국은 열어봤어요. 200장 정도의 인쇄물이 있는데 전부 “절대 열지 마세요.”라고 쓰여 있었어요.

손님이 부탁한 거예요. “절대 열지 마세요.”라고 인쇄해 달라고. 그런데 아버지가 그것을 전달하지 못한 상태에서 돌아가신 거예요. 그러니까 봉투에 쓰인 “절대 열지 마세요.”라는 것은 안의 내용물을 겉에 표기한 것뿐인데, 아들은 아버지가 중요한 무엇을 숨겼다고 생각하고 참다 참다 더 이상 못 참고 열어본 것이지요. 이게 인간의 모습입니다.

인간은 뜯어봐야 피부 층만 있어요. 아무리 뜯어도 계속 육만 있을 뿐입니다. “나는 말씀 열심히 지켰다.” 또 뜯어보면 “나는 말씀 열심히 지켰다.” 이것뿐입니다. 100년을 살아도 하루 산 그 인간의 반복일 뿐입니다. 봉투 안에 있는 종이처럼 똑같은 육신입니다. 육신이 이틀 산다고 육신에서 천사로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육신이 다음날 자고 일어나도 그 육신입니다.

모든 주의 일은 하나님이 나서서 천국으로 보내지 우리가 개과천선해서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말씀은 성령을 통해서 실어서 우리에게 그냥 집어넣어 줍니다. 어떻게 집어넣는가? TV드라마 [마의]가 있어요. 중국의 황후가 골수에 문제가 생겨서 구멍을 뚫어서 그 통로로 약재를 넣습니다. 하나님도 이처럼 우리에게 성령으로 말씀을 주십니다.

육신에게 백날 잔소리를 해봐야 우리는 고상한 껍데기만 달라붙어요.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구멍을 뚫습니다. 이것을 ‘사건’이라고 합니다. 구멍을 뚫어서 약재를 넣어버립니다. 예수님의 피를 넣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이 들어가면 죽을 너희 몸도 그 영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여기서 개혁주의 신학은 엉터리임이 드러납니다. 분명히 성령으로 말미암아 구원하는데, 그들은 “성령으로 구원한다면 말씀은 왜 주셨는가?” 라고 나옵니다. 성령을 받고, 그 다음에 말씀을 지켜야 되지, 성령은 받았는데 말씀을 안 지키면 줬던 성령도 회수한다는 겁니다. 이건 뭐냐 하면, 중국의 황후가 마취되어 엎어졌는데 의사가 “황후님, 앞으로 착하게 살래요, 안 살래요? 착하게 안 산다면 약재 확 뽑아갑니다.” 이런 식으로 치료합니까? 아니죠.

지금 엎어져 있는 황후가 앞으로 착하게 살지 어떨지 그것을 묻는 것이 아니고 그냥 환자이기에 치료를 하는 것입니다. 황후가 엎어져 있는 것을 가지고 ‘육’이라고 하는데, 육은 육밖에 안 나와요. 육은 어둠을 좋아하고 세상을 좋아하고 이 세상이 전부입니다. 성경에서는 세상이 악하다고 아무리 말해도 우리 귀에는 들어오지 않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환영받고, 인정받으면서 살고 싶지 세상을 떠날 마음이 없어요. 이게 육입니다. 그래서 육은 죽은 거예요. “선악과를 따 먹으면 정녕 네가 죽으리라.” 이것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고 이미 죽었어요. 그리고 진짜 살아계신 분은 예수님뿐입니다. 우리는 잠시 있다 사라지는 안개입니다. 안개는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육은 죽은 것인데, 죽은 인간에다 주께서 성령을 집어넣었어요. 마치 골수염 걸린 왕후에게 구멍을 뚫어 약을 투입한 것처럼. 그래서 낫게 된 황후는 “감사합니다. 제가 앞으로 도울 일 있으면 말씀하세요. 힘껏 도와드리겠습니다.” 이런 반응을 하는 것이 열매라면 황후는 무슨 열매를 맺은 거예요? 성령의 열매입니다.

그래서 말하고 웃고 걷고 하는 모든 것이 약기운 때문이니까 결국 이것은 약의 효과, 즉 성령의 효과지요. 성령 본인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요한복음 16장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의 완성을 집어넣었지요. 예수님이지요. 예수님의 다 이루심을. 다 이루심을 집어넣으니까 그때부터 성령에 속한 사람들은 말씀이 어떤 식으로 나에게 다 이루셨는지 확인하고 증거하는 삶이 됩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내 증이이 되리라.”고 하셨지요.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거예요. 자기 증인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약이 들어있다는 것. 그래서 “인간도 아닌 내가 예수님 때문에” 이런 말을 계속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우리는 육이니까 결국 죽지요. 육은 육으로 가야 되는 거예요.

이러한 변화 자체가 성령의 열매입니다. 이런 변화 자체를 주께서 뒤집을 수 있겠어요? 죽은 사람 등에 구멍을 뚫어서 약물을 투여해놓고 말 안 듣는다고 해서 약물을 다시 빼내느냔 말이지요? 그렇게 하실 경우가 있어요. 성령이 온 게 아니고 율법이 왔을 때는 그렇게 돼요. 율법은 우리 마음까지는 안 오고 마음 앞까지 와요.

“십계명 지켜! 못 지키면 철수한다.” 이것은 우리 앞까지 왔고 우리 마음속으로 안 들어왔기 때문에 얼마든지 철수가 가능해요. 그러나 성령이 온다는 것은 구멍을 뚫어 우리 안에 들어와 우리를 점령해 버린 거예요. 골수와 뼛속까지 성령이 임했는데 이것을 ‘성령의 보증’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절대 다시 털어내고 무효화 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신학에서는 무엇이 정리가 안 되는가 하면 “성령에 의한 예수님 피로 구원 받는다.”는 것이 정리가 안 돼요. “그렇다면 신약 성경은 그 이야기만 반복해야 될 텐데 왜 범사에 감사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이게 서로 융합이 안 되는 거예요. 왜 그럴까요?

성경에는 십자가 이야기도 있고,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도 있는데 둘 다를 이야기해야지 십자가만 이야기하면 다른 말씀은 기록할 필요도 없는데 왜 기록해 놓았는가? 이것이 이해가 안 되는 겁니다. 왜 이해가 안 될까요? 성령을 안 받았기에 그렇습니다.

성령을 안 받았으면 그 사람은 그냥 육신입니다. 그런데 사단이 이런 육을 인간으로 둔갑시킵니다. 새로운 인간이라고. 이것은 육이 원래 기대했던 바입니다. “사람이 고생하는 것은 죄에 대한 벌이다. 따라서 생로병사의 고생만 있는 세상에서 행복으로 가려면 외부로부터 축복을 받아야 한다.” 그 축복을 받게 되면 생로병사를 느끼는 이 가치가 소멸될까요, 유지될까요?

육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 부인이 안 되잖아요. 그러면 이게 문제 아닙니까? 내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나를 버림이 아니고, 나를 더욱 위대한 나로 거듭나기 위해서 하나님의 힘을 잠시 빌려오는 거잖아요. 교회 가는 이유가 자기 좋으라고 가지 남 좋으라고 가는 것은 아니잖아요.

“공부해서 남 주나?” 하는 것처럼, 예수 믿어도 내 잘 되려고 하지 남을 위한 것은 아니란 말이지요. 성령을 받지 않은 사람은 자기 자신을 절대 포기 못하는 거예요. 이것은 결국 ‘영웅주의’입니다. ‘힘들고 어렵지만 언젠가는 보란 듯이 성공할 때가 있을 것이다.’ 이게 바로 영웅을 지향하는 자들의 마음입니다.

“지금 나는 영웅은 아니지만 내 속에 영웅이 될 요소가 있다. 이것이 발현되기만 하면 너희들은 결국 내 앞에 다 무릎 꿇을 거야.”라는 것이 육의 본성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니에요. 그들이 할례는 행했지만 결코 마음속에 할례를 행한 적이 없어요.

진화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문제가 뭔가 하면, 라마르크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은 다윈 이전 사람인데 용불용설과 획득형질이 있어요. 용불용설은 쓰는 것은 발달하고 안 쓰는 것은 퇴화한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해서 환경에 적응된 획득했던, 자기에게 습관화 되어서 굳어진 것은 다음 후손에 가서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장기가 그대로 자식에게 나온다는 것이 획득형질입니다.

그 후 다윈이 나왔어요. 이 사람은 적자생존을 주장해요. 환경이 자연선택에 의해서 될 놈은 되고, 안 될 놈은 안 된다고 했어요. 그런데 둘 다 노린 게 뭐냐 하면, 언젠가는 내가 반드시 빛 볼 날이 올 거라는 거지요. 그러니까 나에게는 내 출세에 지장되는 것도 있고 도움 되는 것도 있는데, 내가 어릴 때부터 내 속에 있는 것들을 잘 활용해서 위대한 나를 만들려는 생각이 현대의 진화론입니다.

이게 모든 인간의 의식입니다. 그러면 문제가 뭔가? 유대인들이 할례를 한 두 세대에만 한 게 아니고 대대로 할례를 행했습니다. 이것은 라마르크에 의하면 획득형질이지요. 그러면 자식을 낳으면 할례 행할 필요 없이 출생 때부터 할례 된 채 나와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아이가 태어나지 않아요.

라마르크의 주장이 옳은가, 엉터리인가 하는 문제를 따지기 전에 사람들이 이런 주장을 좋아했다는 게 문제입니다. 왜 좋아했지요? 자기 마음에 맞아떨어지는 소리를 했기에 그래요. 주의 말씀은 안 좋아해요. 다윈이나 라마르크처럼 인간이 긍정할 수 있는 주장을 듣고 싶어서 환장한 것이 우리들입니다.

누가 그런 소리를 안 해주면 스스로 자신한테 그런 식으로 자신을 격려합니다. 이게 바벨론인데 이스라엘도 이것을 좋아했어요. 좋아할 수밖에 없지요. 바벨론이나 유다나 둘 다 육이니까. 똑같은 인간인데 이스라엘에는 십계명이 왔다가 가버린 거예요. “십계명 지킬 거야? 탐내지 말고, 살인하지 말고, 부모공경 할 거야?” “예이 죄인들!” 하고 가버린 거예요.

[개그콘서트]에 보면 인형 ‘브라우니’한테 명령합니다. “물어! 물어!” “뛰어! 높이 뛰어!” “못 뛰어?” “평발이네.” 이것과 똑같은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를 죽은 자로 봅니다. 죽은 자가 과연 죽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율법을 주신 거예요. “율법이 말하는 바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롬3:19).”

이스라엘이 이방 나라에 포로 잡혔다는 성경 말씀은 진짜 현실입니다. 이게 소설이 아니고 실재입니다. 실재로 율법은 왔다가 가버렸고, 성령이 실재로 우리한테 임하면, 우리에게 구멍을 뚫어 성령을 통해 예수님 피를 투입하면 그 다음부터는 우리가 뭘 해도 자기 자랑 안 하고, 내가 잘라서 구원 받았다는 소리 안 하고--

“목사라서 술을 안 먹지 집구석 꼴 보면 흠뻑 취하고 싶다. ‘참이슬’인지 ‘처음처럼’인지 닥치는 대로 실컷 마시고 세상만사 다 잊고 싶다.” 이런 순간이 올해에도 많이 올 거예요. 이런 마음이 들 때, 우리는 인간이 아니고 흙의 돌출부분, 그냥 세상 사람과 똑같은데, 여기에 성령이 임합니다.

모든 사건은 한 곳에서 나온 것입니다. 천지창조, 홍해 사건, 노아 사건, 마지막 심판. 이 모든 사건은 하나님이 십자가 지신 사건에 종속된 사건입니다. 여기 ‘사건’에는 너와 나는 없는 거예요. 왜 나는 없습니까? 나는 안개입니다. 그냥 육입니다.

제가 지금 말하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하자는 것이 아니고,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건(당나귀가 말하고, 앉은뱅이가 걷고 등등)들은 하나의 사건(십자가 지심)을 보여주기 위한 사건입니다. 이것이 요한계시록 22장에 보면, 어린양의 보좌가 있는 곳에서 생명수가 흘러나와서 위에서 아래로 흘러 아래쪽이 생명으로 가득 찹니다.

유리창 청소할 때 위에 물을 부으면 아래쪽으로 물이 흘러내리지요. 이처럼 어린양의 피가 옵니다. 그런데 어려운 것은 사건은 1회성입니다. 한 번입니다. 십자가 사건은 한 번인데 왜 종속된 사건은 다양하게 많이 일어납니까? 동일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차이나는 사건을 제공하는 겁니다.

동일하다는 것은 같다는 뜻이고, 차이는 다르다는 뜻인데 어떻게 동일성과 차이가 같은 문장에 섞일 수 있는가? 좀 의아하지요. 차이나는 사건들을 통해서 이 사건을 이보다 한 단계 높은 최종 단계에 있는 사건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이 사건 자체의 자리에서 떠나게 만드는 겁니다.

예를 들면, 학교에서 급식을 위해 식권을 나눠주는데 어떤 학생을 빨간 색, 어떤 학생은 노란 색, 어떤 학생은 파란 색의 식권을 나눠 줬어요. 빨간 색, 노란 색, 파란 색이 차이가 나잖아요. 그러니까 학생들은 상상을 해요. “1학년은 빨간 색, 2학년은 노란 색, 3학년은 파란 색으로 구분해서 1학년은 조금 주고 3학년은 좀 더 주려고 하는 것 아닌가?”하는 온갖 가설을 만든단 말이지요. 어쨌든 식권이 차이가 나니까요.

식권은 차이가 나는데 막상 식권 들고 식당에 가서 밥을 받는데 똑같아요. 그러니까 학생들이 의심을 합니다. “똑같은 밥이라면 같은 색깔의 식권을 줘야 되는데 왜 식권이 다를까?” 여기에서 머리 좋은 학생들은 알아요. “식권을 마땅히 받아야 할 권리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또 식권을 보고 따질 권리도 없고, 이 식당에 있는 모든 밥과 반찬은 우리 교장선생님의 특별한 은혜와 사랑으로 제공될 뿐이다.”라는 것을.

일체 우리의 모든 가설들은 다 쓸모없는, 그냥 우리 입장만 생각했던 죄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더 높은 차원의 사건이 있는데, 그 차원에서 기다리는 것이 뭐냐? 이게 바로 죽음입니다. 결국 높은 차원의 사건이 우리가 제일 싫어하는 죽음 사건인데, 이 죽음에서 생명이 나옵니다. 어떻게 생명이 나오는가 하는 것은 좀 쉬었다 합시다.

10분 쉬겠습니다.

(2013. 2. 8. 09:42 녹취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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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52 묻고답하기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 로마서 최고관리자 13-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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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50 우리교회 엠마오의 두 제자 130203 - 최고관리자 13-02-03
12,249 설교 행위냐 믿음이냐 (롬 3:27-31) 로마서 최고관리자 13-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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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