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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20130201b 울산강의-출애굽기 25장 : 흔적자유게시판출애굽기

20130201b 울산강의-출애굽기 25장 : 흔적

이름 : 한윤범(IP:14.39.134.60)

20130201b 울산강의-출애굽기 25장 : 흔적

(강의:이근호) 목사

지난 시간에 이스라엘은 망했다. 율법을 아는데 왜 망했느냐? 하나님 아는데 왜 망했느냐? 망하라고 이스라엘 나라에 찾아온 거예요. 망하라고 율법 준 거예요. 왜? 믿음으로 의인이 되기 위해서. 믿었다고 여기는 것이 오해라는 거예요. 믿었다는 것이 사실은 그들이 아는 세계관에서 조립한 거예요. “믿는 것 다 가져와. 믿음으로 의롭게 된데.” 네가 알고 있는 믿음은 사실은 모든 것에 대한 오해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은 선물로 줘야 알지 인간이 믿음, 소망, 사랑 눈치 챌 수가 없어요.

그렇다면 지성소에 대해서 역시 그들은 오해하고. 심지어 언약궤로 승리한다하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편에 서서 승리하는 줄 알고 언약궤 들고 홉니와 비느하스가 블레셋과 전쟁에 나섰다가, 블레셋은 지금의 가자지역, 팔레스타인. 가자지역은 현재 포위되어 있어요. 가자지역을 원래 이스라엘이 점령했거든요. 그런데 유엔에서 풀어주라고 해서 풀어줄 때 자치권을 주는 대신 통로를 막아버렸어요. 물자를 배로 운반해야 되는데 여기까지 막아버렸어요. 이게 가자지역.

이스라엘 자기는 여호와 하나님이 믿고 블레셋은 이방나라니까 언약이 아니고 비 언약. 이스라엘이 언약대로 구원받을 나라라고 증명하기 위해서 철저하게 이쪽나라는 비 언약임을 증명해야 돼요. 블레셋은 우리한테 멸망당해야 될 전쟁을 해야 될 이유가 그게 뭘 증명하는 겁니까? 우리 이스라엘만큼은 하나님이 함께 있고 우리는 진짜 언약백성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방법이 이쪽을 점령하는 방법 외에는 없다니까요. 문자적으로 그러니까. 율법 해석이 그렇게 나온다니까. 이 땅은 약속의 땅이고, 약속의 땅에 이방민족이 있을 때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물리치는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일하심이라니까요.

그러니까 구약성경을 떠나서 이스라엘을 이해를 못해요. 그럼 이스라엘을 이해 못하면 안 하면 그만이지. 천만에 말씀. 이스라엘을 이해해야 오늘날 기독교라는 새로운 이스라엘이 얼마나 성경을 왜곡되게 이해하고 있는가를 선배한테 배워야지. 현재 이스라엘이 성경을 어느 정도로 오해하고 있는가를 우리가 알아야 될 이유가, 지금 교회가 바로 그런 식으로 성경을 오해하고 있음을 그들이 미리 앞서서 보여줬잖아요. 바리새인, 사두개인 해석법 알아야 될 이유가, 그들이 바로 메시아를 죽였잖아요.

그런데 그들의 죽인 메시아를 십자가를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놓고 바리새인 털어내고, 사두개인 털어내고 예수님만 믿는다고 붙들었단 말이죠. 예수님을 알려면 바리새인 붙이고, 사두개인 붙여서 그들한테 죽임을 당한 예수를 믿어야 될 건데 바리새인 이 사람들 나쁜 사람들, 사두개인 이 사람들 오해한 사람들이라고 툴툴 털어내고 예수 믿는다고 하니까 옛날 바리새인들 믿는 식으로 똑같이 믿는 거예요. 오늘날 한국교회가.

그래서 첫째 시간 정리하게 되면, 간단합니다. 이스라엘은 망했다. 망하게 된 이유는 망한 그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 아니고 흔적이라는 하늘과 땅이 만나는 어떤 만남의 바닥, 공간을 이들을 망하게 함으로써 만들어낸 거예요. 그들에 의해서 메시아가 물 속에 들어가서 죽음으로써 거기서 메시아 출현할 수 있는 장을 형성한 겁니다.

[전설의 고향]에 보면, 시집 온 아가씨가 시어머니의 강박에 못 이겨서 목 매 자살했다. 자살한 장소가 집 근처 연못이었다. 나중에 과거 보러 갔던 아들이 뒤늦게 왔는데 이미 사랑했던 아내는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면 그 아내 만나러 어디 가야 됩니까? 연못 아닙니까. 그게 바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었나니. 사울 나를 위해서 대신 죽었던 그분의 자리를 이제는 내가 영원히 살 자리로 받아들이는 거예요.

선악과 따먹은 것은 어쩔 수 없고 선악과 따먹은 것이 곧 죽음의 자리라는 것을 깨닫게 만드는 그 자리가 생명을 부여받는 자리가 돼버린 거예요. 그래서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 지라는 말은 위에서 보는 안목과 네가 널 보는 안목과 다르다는 겁니다. 성경 많이 안다고 천당하고, 착하게 산다고 천당 가는 게 아니에요. 주님의 안목으로 십자가에서 같이 체험하게 되면 그것이 주님과 함께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기능은 책망이에요.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서라고 돼있지요. 따져보세요. 같은 말이에요. 심판을 알려면 죄와 의를 알아야 되죠. 의를 알려면 무엇이 죄인지 알아야 의가 나오죠. 죄를 알려면 무엇이 의이기에 이것은 죄라는 걸 알아야 되겠죠. 전부다 같은 이야기에요. 심판 행위 함으로써 의와 죄가 한꺼번에 다 튀어나오죠.

성령께서 오신 것은 십자가 재판 안 끝났다는 뜻이에요. 그 단회성이 너희들 역사 속에서 반복하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그런 식으로만 건져내는 거예요. “죄인 맞지? 천국 와.” 이런 식으로 건져내는 거예요.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게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왔는데 그것은 자기가 아는 죄인은 소용없어요. 주께서 난데없이 우발적으로 알려줄 때 원인도 이유도 따지지도 묻지 않고 죄인 맞습니다. 이순재 죄인. 이것은 무조건 죄인이라 할 때만 상한 심령이라 할 때만 구원받은 사람이에요. 내가 사람을 죽이다니 나쁜 죄인이야. 이것 말고. 사람을 죽이든, 안 죽이든 상관없어요. 간음하든 관계없어요. 무조건 죄인이라.

그러면 지성소에 있는 이 장치가 뭐로 변성하느냐?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성소에는 소나 염소의 피를 바릅니다. 평소에는 성소까지는 양의 피를 잡거든요. 그 양을 자기들이 제공했잖아요. 그걸 잡는 사람은 제사장이고. 제공한 사람도 인간이고 제사장도 다만 구별될 뿐이지 나와 똑같은 인간이고.

20절 봅시다. “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룹이 나오지요. 그룹은 사람이 아닙니다. 이거는 천사지요. 수요 설교지요. 천사가 성전에서 활동한다. 그러면 제사장들, 레위인들, 인간은 뭐냐 말이죠. 자기들이 담당할 것을 천사가 와서 하나님의 보좌에 둘러싸여서 일을 벌인다. 그 말은 이제는 인간 쪽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기능은 끝났어요. 섬기지 마세요. 해도 소용없어요. 인간이 하나님을 섬기는 기능은 전에도 안 받았지만 더 이상 안 받는다는 점이 완전히 들통 난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 것을 안 받는구나.

그게 사도행전 17장에 나오지요. 하나님은 사람의 손에 지은 전에 계시지 않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말씀이 뒤에 나오죠. 무엇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분도 아니고, 그 뒤에 나오는 말씀, 친히 주시는 자시다. 사람이 만든 집에도 안 계시고, 사람이 제사 드리는 바치는 것도 안 받고. 그럼 뭐야? 뭐하는 하나님입니까? 친히 주시는 분이다. 주시는데 뭘 주느냐? 결정적인 것을 주죠.

이걸 대전강의에서 했는데 여기서 해봅시다. 재래시장에 가면 노란 고무줄이 있을 거예요. 고무줄에 매듭이 있지요. 인간의 역사가 이렇게 가는데 결국 매듭이 있는 거예요. 이게 심판 날이죠. 사도행전 17장에 나오는 이야기에요. 제 이야기가 아니고. 하나님께서는 지으신 집에 계시지 않고 받으시지도 않는데 친히 주시는 게 있는데 뭘 주시느냐? 심판을 주셔요. 심판을 주신다고 하면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정한 날 심판을 주시는 거예요. 그러면 정한 날이 언젠데? 모르잖아요. 모르는 날 줬다고 해봐야 그 소리는 하나마나한 소리. 알아야 대비할 것 아닙니까. 12월 22일이라든지 마야 달력처럼 그렇게 와야 되는데 그냥 온다는 거예요. 그 날짜를 모르는 이상은 헛소리에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심판 날 주시고 미리 앞당겨서 심판이 있음의 증거를 보여줬어요. 그게 뭐냐? 지정된 사람이 있어서 아버지에 의해서 심판의 속성을 그대로 앞서서 한 분에게 다 뒤집어씌워요. 이 분이 죽었습니다. 그러면 모든 인간은 심판 아래 있는 것 맞지요.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인간들이 계획한 것도 아니고 바친 것도 없는데 분명히 죽었는데 사흘 만에 살아난 거예요.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주신 것은 죽었다 살아난 이 사실을 우리에게 최종적인 축복으로 제공하신 겁니다. 그리고 그걸 사도 바울에게 담아서 온 세상에 널리 전파하라고 했습니다.

끝을 몰라? 끝이 돼봐야 안다고? 날짜 계산해야 된다고? 그럴 필요 없다는 거예요. 날짜 계산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날짜 계산하려는 인간도 사실은 죽어 마땅하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걸 미리 알면 돼요.

하나님의 아들은 죄가 없습니다. 우리가 죄 있는 인간이 날짜 계산한다고 기득하게 보는 게 아니에요. 주님은 죄가 없는데 아버지의 저주를 받았어요. 죄가 없는 분도 저주받는다면 하나님 잘 믿는 것도 날짜 계산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예쁘게 보겠어요? 안 보지요. 죄 없는 분도 죽이는데. 날짜 계산한다고 봐주고, 이런 것 없어요. 예수님 죽을 때 모든 인간이 다 죽었다고 고린도후서 5장에 나오잖아요. 사람들은 그게 뭔 뜻인지 모를 거야. 한 분 죽은 것은 모든 게 다 죽은 거예요. 살려고 몸부림친다고 봐주는 것 없어요.

진짜 살 수 있는 것은 그런 성령이 오면 살아나요. 다른 건 안 돼요. 율법 지켜도 안 되고. 누가 너희로 안식일 지키라고 사기 치더냐? 안식일이고, 절기고, 율법이고 다 십자가로 말미암아 파쇄, 파쇄기 아시죠. 어떤 해경 간부가 성질난다고 정부에서 준 위로금을 파쇄기에 집어넣어서 돈이 완전히 조각조각 나버렸어요. 그 이야기 압니까? 위로금이 오십만 원 나왔어요. 간부가 회식하자고 했는데 부하직원들이 그러지 말고 나가시는 분들 생활도 어려운데 전별금으로 주자니까 충돌이 일어나서 파쇄기에 넣은 거예요.

돈 파쇄 해봐야 돈 있잖아요. 그런데 주께서 파쇄기, 십자가에 집어넣은 게 그동안 우리를 죄라고 지목했던 율법을 파쇄기에 집어넣은 거예요. 그러면 이제부터 율법으로 죄를 아는 게 아니고 파쇄기가 있다는 걸 믿지 않으면 죄가 되는 거예요. 우리가 살려고 애쓰는 게 죄가 된다 이 말이죠.

로마서 8장 11절에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적어볼게요. “너희 몸” 저와 여러분 몸입니다. 너희 몸 앞에 뭐가 붙어있습니까? “죽을” 이걸 믿어야 돼. 우리 몸은 그냥 몸이 아니고 죽을 몸이에요. 결혼 20주년이라고 기념사진 찍을 때 죽을 몸, 김치. 그런 사진 필요 없어요.

지금 정익이 죽을 몸으로 포항 가 있어요. 우리 애는 죽을 몸으로 멀리 가 있어요. 집사님 가정은 죽을 몸으로 영주 가 있다니까. 왜 성경이 붙인 용어를 누구 마음대로 뗍니까? 건강해서 살아있다고. 그것은 우리 역사의 안목이고 그건 이스라엘이 망할 수밖에 없는 역사의 몸이고 지만 살아있으면 살아있다는 오해하는 그것. 그러나 예수님이 죽었으면 우리도 죽은 거예요. 사도 바울은 고맙게도 그리스도가 죽을 때 이상하게 믿어지는 거예요. 주님만 죽은 게 아니고 다시 살아야 될 택한 백성도 십자가에 같이 죽게 됐다는 사실을 믿게 된 것은 행위로 된 것이 아니고 성령이 오니까 믿게 됐다고 갈라디아서 3장에 3절에 나오는 거예요. 십자가가 죽은 게 아니에요. 십자가는 살아있는 거예요.

참 어렵다. 또 어려워. 십자가는 죽음의 십자가지요. 죽음의 십자가가 이게 안 죽고 살아있어요. 이 세상에 십자가만 살아있고 나머지는 다 죽었어요. 이걸 다른 말로 하면, 예수님만 살아있고 나머지는 다 죽었어요. 이걸 광주강의에서 이렇게 했습니다. 예수님에게만 ‘있다’가 되고 나머지에는 있다를 쓰면 안 된다는 거예요. 왜? 있다가 없어지면 있음이 아니에요. 있다가 없어지는 것이죠. 그럴 때는 안개라고 이야기해요. 잠시 있다가 없어지는. 있었네. 없어졌네. 그냥 흔적만 남겨요. 태초부터 영원토록 함께 계시는 것은 예수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그 있음을 잠시인 안개에 집어넣으니까 찢어지지요. 찢어지면 고마운 줄 알아야 돼요.

주님은 우리 몸에 안 맞아요. 그래서 주님의 몸에 맞추기 위해서 주님이 죽었던 십자가 사건을 우리한테 발생시켜서 이제 맞아요. 우리 안 흔적을 가졌다. 예수의 흔적. 그러면 주님과 살 수 있어요. 안 죽으면 천국 못 가요. 그냥 목숨 끊어지는 것 말고 진짜 주님에 의해서 죽임을 미리 당할 때 그 사람만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라. 로마서 6장 이야기입니다. 세례 받아서 죽은 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라. 다른 말로 하면, 나와 함께 죽지 아니한 자는 나와 함께 사는 법도 있다, 없다? 없다.

진짜 사도 바울이 말을 어렵게 하려고 한 게 아니고 그렇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어요. 설명을. 사도 바울이 복음을 설명할 때 육에 속한 사람이 얼마나 어렵던지 이렇게 오해했습니다. “그러면 은혜를 더하기 위해서 죄를 더 지어야 되겠네.”라는 그런 오해가 나는 이유가 이미 복음 자체가 안 믿는 사람한테는, 성령이 없는 사람에게는 어리석은 것이고, 어리석은 것이 너무 어려워서 어리석어요.

너무 어려워서 온통 철학과 지식을 동원해도 이제 무슨 말인지 모르는 거예요. 도올 김용옥처럼. 그 사람이 하버드 대학을 나와도 복음이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 거예요. 그래서 기껏 한국교회를 공격하지 복음에 대해서 무슨 소리인지, 무슨 뜻인지 몰라요. 요한복음을 연구하고 도마복음을 연구해도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 거예요. 이게 허락이 안 되면 안 돼요.

지금 이야기 들어보면 성경에 그런 게 있었네. 하지만 막상 복음이 뭐지? 뭘 설명하지? 대략 난감. 복음을 어떻게 설명하지? 복음이란 기쁜 소식인데 뭐가 기쁜데? 망했던 사람, 예를 들면, 세리나 창기나 막달라 마리아, 강도, 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 38년 된 병자, 용서받은 중풍병자 이런 망했던 사람 입장에서는 전혀 어렵지가 않아요. 탕자 입장에서 전혀 어렵지 않아요. 이 복음이. 그러나 탕자 안 된 사람은 어려워도 너~무 어려워요.

어떤 사람이 공금을 횡령했다는 들켰어요. 그 사람을 불러서 “이번 2월 말까지 사표 내.” 그때부터 이 사람이 바쁜 거예요. 담당자 전권으로 자기만 아는 정보를 이용해서 “하청업체 아저씨. 잘렸습니다. 우리 조작한 것 당신 때문에 한 것이니까 아직까지는 봐줄 테니까 잘리면 취직시켜주겠습니까?” 그걸 주님이 본 거예요. 누구십니까? “잘 했어. 자식아. 네가 세상의 신학자보다 낫구나.” 이게 이해가 됩니까? “이 불의한 청지기야. 아이고. 지혜로운 자야.”

십자가는 이해되지 말라고 진 사건이에요. 왜? 그냥 흔적이니까. 악하고 음란한 세대인 걸을 들추기 위해서 끝난 거예요. 너희들은 마귀에 속했다는 것을 알려주면 임무 끝난 거예요. 바람 같이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면 그만이어요. 나머지 세상은 불로써 심판 받고.

기흥에 있는 삼성에서 불산이 유출 됐다. 불산, 황산, 질산. 만약에 불산에 유출 되어서 한 사람이 죽었다면, 그 사람이 평소에 식성이 좋아서 개고기도 잘 먹고, 순대도 잘 먹고, 뱀탕도 잘 먹고, 뭐든지 잘 먹었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사람이 불산을 마셨어요. 죽었어요. 사람들이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만 먹고 자기는 건강하고 정상이라고 본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암모니아나 불산을 먹게 한 것은 인간은 뭐든지 잘 먹는다는 것을 성립이 안 되지요. 그러니까 그 사람은 진정 자기가 뭐든지 잘 먹는다는 말이 엉터리라는 것을 불산 마시고 죽어가면서 알게 아닙니까. 이게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알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지요.

이걸 성경에서는 사랑이라 합니다. 사랑은 상대방을 위로하는 게 사랑이 아니고 진짜 자기 모습을 알려주는 게 사랑이에요. 어떤 분이 카톡을 해서 “사모님, 이웃 사랑해야 됩니다.” 하고 보냈데요. 예수님께서 이웃 사랑을 어떻게 했습니까? 너는 죄인 중에 괴수라는 걸 알려주는 게 이웃 사랑이죠. 그것 말고 다른 사랑 있습니까? 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 성령을 보내셔서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우리를 책망하는 게 미움입니까, 사랑입니까? 땡 잡은 거예요. 사랑 중에 사랑을 받은 거예요.

부부가 서로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 주제 파악이 안 되서 그래요. 수요일에 기도 제목으로 사랑은 굴복하는 것이라 했어요. 사랑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굴복하는 거예요. 연애할 때 남자가 여자가 너무나 마음에 든다. 그럴 때 여자의 집안, 가진 재산, 성격, 요리솜씨, 전혀 그런 것 안 봐요. 지금 자기가 여자한테 굴복하는데 바쁘기 때문에 자기가 어떻게 굴복할 것인가 그것만 신경 썼지 따지고 알아서 굴복하겠다는 그런 조건부가 전혀 없단 말이죠.

여러분, 결혼할 때 남의 이야기가 아니죠. 순간이지만 흔적으로 있지만 그런 경험들 했지요. 너무 좋아서 저 사람과 함께 살 수만 있다면 내 눈이라도 빼 줄 시늉이라도 하겠다고 하잖아요. 너무 사랑할 때는. 사랑은 상대방에게 자기를 맞추는 게 아니고 굴복하는 거예요. 굴복하는 걸 제삼자가 보면, 그 사람 앞에서 자기 주제를 제대로 파악했다고 보는 거예요. 막달라 마리아가 울면서 귀한 향수를 다 부으면서 예수님의 발을 씻겼잖아요. 이것은 너무너무 사랑해서 그런 거예요. 그걸 옆에서 바리새인이 보고 비아냥거렸죠. 주님께서 많이 용서받은 자가 많이 사랑한다는 거예요. 나는 죽어도 좋아요. 내가 죽든지 살든지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게 사랑이란 말이죠.

주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심으로서 우리 안에 주님의 사랑이 우리 속에 있기 때문에, 정말 어렵다.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사랑해서 죽기까지 복종했잖아요. 이 복종한 것이 성령을 통해서 우리 속에 들어오면 우리 마음은 예수님의 마음 천지잖아요. 그러니까 아버지를 알고 예수님을 알았더라면 나는 팔다리 다 잘라지고 눈 없어져도 괜찮아요. 그까짓 것 없어질 눈이고, 없어질 팔이고 나는 주님을 알고 예수님 알았으면 그것도 고마워요. 그런 심정, 이게 자기 주제 파악하는 겁니다.

그래서 지성소의 장치는 뭐냐? 죽이는 장치입니다. 이 간단한 말하려고 이렇게 길다. 이스라엘 내부에 뭔가 모셨는데 거기는 아무나 못 들어가고 7월 10일에 제사장만 들어가는데 그 안에 무슨 짓을 하느냐? 제대로 된 죽음, 사람들이 반복적으로 죽는 죽음 말고 사람들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이유를 댈 수 있는 죽음, 그 죽음은 바로 소와 염소 피, 그러니까 대속할 제물, 화목제물, 또는 번제, 속죄, 속건제 그 모든 제사의 완성으로서 우리 대신 죽으시는 그 죽음 사건이 일년마다 그 안에서 퍼지는 공간이 지성소입니다.

거기에 천사가 지키고 마중 나오지요. 그룹들이. 이것은 인간 속에 있으면서 인간에 속하지 않는 낯선 세계가, 낯선 영역이 만들어진 거예요. 사람들과 함께 다니면서도 사람 손에 붙잡히지 않고 오히려 이스라엘을 장악하고 지배하는 그런 하늘의 천사들 묵시적 세계가 역사적 세계에 함께 놓여있는 겁니다. 어떤 방법이냐? 누가 죽어야 동행이 가능하지 죽지 아니하면 동행이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죽음의 자리에 날마다 나오란 말이죠. 사는 자리에 나오지 말고 죽어 마땅하다는 마음으로 나오면, 그것이 주님과 함께 한 성도의 삶이 되는 거예요.

“저 진짜 죽어도 되지요? 오늘 살고 그만 살아도 되지요?” 이 내용이 주기도문에 나옵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하루치 살려주신다면 하루치 일용할 양식을 주시지요. 이 말은 내일은 내 소관이 아닙니다. 내일이 내 소관 같으면, “주여, 이틀 치 아시지요? 또는 삼일 치 아시지요?” 이렇게 되는데 하루치만 달라는 것은 내일이고 모레고 내 소관이 아닙니다. 광야생활이 되풀이, 반복입니다. 그때 만나가 하루치만 왔어요. 안식일만 이틀 치고 나머지는 하루치만 왔잖아요.

이 말은 산다는 것은 하나님이 살아있기에 우리가 살지 내가 살아있기에 사는 게 아니에요. 내가 살아있다는 것은 죽은 것이고 하나님이 살아있을 때 우리는 사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과 우리의 만남의 증거는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 죽는 죽음의 사건이 되풀이 될 때 그게 바로 살아있다는 증거가 되는 겁니다. 십자가가 눈앞에 보이는데 누가 너를 꾀더냐?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십자가, 내일도 십자가, 십자가가 있는 이상 우리는 영원히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겁니다.

그 이야기를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리 알지 못했어요. 지성소가 있으니까 천사라는 걸 모형으로 만들고. 두 번째 시간에 살짝 어려운 것 나옵니다. 여러분이 견디셔야 돼요. 속죄소란 법궤 뚜껑입니다. 속죄소 안에는 지상에서 만든 깨진 돌 판, 그러니까 이것도 흔적이죠. 깨졌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지상에서 만들어진 돌판, 그 돌 판을 볼 때다 뭘 느낍니까? 깨졌어, 깨졌어. 왜 깨졌는가? 우리가 죄 졌는데 하나님께서 안 놓는다고 깼어. 깨어진 것을 돌 판으로 했기 때문에 그것은 돌 판이 멀쩡해도 깨어진 흔적을 담고 있는 돌 판이죠.

우리는 분명히 살아있다고 하지만 예수님의 죽은 흔적이 있다면 죽은 자죠. 내 안에 사는 것은, 내가 살아서 사는 게 아니고 나를 죽은 자로 만드는 그리스도가 살아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살아있기 때문에 우리가 덩달아 살아있는 걸로 쳐주는 겁니다. 말씀에 의하면 우리는 죄인이에요. 그런데 주께서 살아있기 때문에 우리를 의인되게 해줬기 때문에 의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이게 흔적 때문에 그래요.

지금 제가 어렵다고 하는 건 그걸 이야기하는 게 아니고 속죄소인데 천사가 날개, 김연아가 타고 다니는 스케이트 날이 있잖아요. 발이 두 개니까 날이 두 개잖아요. 천사 상을 사람이 만들었지요. 브살렐과 오홀리압이 성신이 임해서 만들었잖아요. 사람이 만들었잖아요. 얼마나 어려운지 봅시다. 이걸 형상이라고 해요.

그런데 인간은 뭘 제조하게 되면, 예를 들어서 피아노를 만든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내가 만든 피아노네.” 피아노와 만든 사람이 시간적으로 엮이게 돼있어요. 이 사람이 사흘 동안 주물럭거리다 피아노가 생겼다. 그렇다면 피아노를 만든 사람은 시간적으로 떨어질 수 없지요. 이 사람이 먼저 있고 피아노가 나중에 있죠. 이건 안 어렵지요.

그런데 천사를 누가 만들었습니까? 인간이 만들었지요. 천사 형상은 브살렐과 오홀리압이 없으면 천사 상도 없단 말이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용하는가? 천사 상이 먼저 있고 나중에 만들었다는 거예요. 내가 천사를 만들었으면 천사가 아무리 멋지고 기묘하고 날고 기고 해도 내 손 안에 있어요. 내가 만들었기 때문에. 피노키오 아버지는 어떤 목각하는 아저씨죠. 피노키오가 나쁜 짓하면 누구한테 만드신 아버지한테 꾸중 들어야 될 것 아닙니까.

그러면 천사는 누구한테 꾸중 들어야 합니까? 만든 사람이 해야 되는데 주님께서는 천사가 먼저 있고 인간을 통해서 천사를 만들라하면, 누가 누구한테 꾸중 들어야 합니까? 천사한테 오히려 만든 사람이 꾸중 들어야 하는 거예요. 그건 이해가 되는데 문제는 뭐냐 하면, 내가 만들어놓고 뭐라고 해야 되느냐 하면, 그 만듦을 통해서 하나님이 일을 하실 때 내가 만들었다는 것을 계속해서 밀쳐버리고 배척하고 잘라버리는 작업을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만들라고 한 거예요.

피아노를 누구에게 만들라고 해놓고 하나님께서 찾아가서 “여기 피아노 만든 사람?” “저요.” “너, 손 안 내려.” “제가 만들었는데요.” “손 내려. 네가 만든 게 아니야. 다시 묻는다. 이 중에 피아노 만든 사람?” “저요.” “손 내리라고 했지.” “네 자식은 누가 낳았지?” “제가 부모니까 제가 낳았어요.” “손 내리라고 했지.”

만들어놓고 만들지 않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돼요. 그리고 만들지 않았다고 말만 해서는 안 돼요. 우리는 만들지 못할 이유도 알아야 돼요. 자기가 만들어놓고 자기가 만들지 않은 이유는,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그래요. 따라서 죄인임을 알기 위해서 우리로 하여금 만들게 하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만들어놓고 왜 못 만드는가? 이 그룹이 어디에 올라타 있습니까? 죽음이 올라타 있지요. 밑에는 피가 있으니까. 7월 10일에 피가 일년 치. 그러면 인간이 자기 죽음을 만들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인간은 그냥 죽어가고 있지 내가 죽을 수도 있고, 안 죽을 수도 있고 내가 결정할 문제는 아니잖아요. 이게 바로 진짜 진실이에요. 다른 건 다 내가 할 수 있어도 죽음은 내가 어쩔 수 없어요. 아까 고무줄 이야기했지요. 고무줄 따라가 보면 결국은 한 곳에 묶여있지요. 심판. 다른 건 인간이 변경할 수 있어도 심판을 마음대로 변경하거나 뺄 수 없는 거예요.

어떤 분이 그런 질문했어요. 목사님, 생명책 명단이 지워진다는데 어쩌면 좋겠어요? 무서워서 신앙생활 못하겠어요. 혹시 해도 제 명단 지워지면 너무 무서워요. 해결책 제시해주세요. 문자가 왔어요. 뭔 뜻입니까? 문자로 답 달라 이 말이에요. 전화로 왔으면 전화로 할 건데. “생명책 명단이 지워진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정말 두려워요.” 짧은 두 문장이에요. 문자로 왔다는 것은 나처럼 두 문장으로 답변해달라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답변했습니다. 생명책의 명단 문제는 우리 소관 아닙니다. 끝. 그걸 믿어야 돼요. 지워지면 지워지는 거지 우리가 착해진다고 안 지워지는 게 아니잖아요. 우리는 믿을 건만 골라서 믿지 말고 전적으로 맡겨야 돼요. 그래서 제 답변이, “생명책의 명단은 우리가 변경할 사항이 아닙니다.” 그 다음 한 문장이, “그냥 주님께 맡기시면 됩니다.” 이게 답변인데 어떻게 만족하십니까? 주의 일을 내 일처럼 너무 잡아 당겼어. 종이 종으로 살면 되는데 너무 주인의 일에 관여 많이 했어요.

이번엔 이렇게 답변했어요. 시계는 보여주면 돼요. 시계가, “내가 지금 몇 시지?” 이렇게 볼 필요 없단 말이죠. 지는 그냥 돌아가기만 하면 지금 9시 45분. 주님만 보시면 되는데. 자기가 목을 빼서 몇 시인지 보려면 기형적인 시계, 시계 따로 있고 시계 모가지 따라 있는 시계, 이건 괴물입니다. 시계가 아닙니다. 우리는 왜 자꾸 괴물이 되려고 해요. 믿으시면 주께서 약속하신 대로 그냥 말씀대로 그럭저럭 삽니다. 우리는 주께서 말씀대로 만들어지고 있어요. 안 믿어지면 할 수 없는 거고.

버스 타고 있으면서도 자꾸 기차 타고 있다고 우기면 사람, 어쩌란 말입니까? 지금 버스입니다. 창문이 있고 가다가 서잖아요. 아닙니다. 기차입니다. 이러면 어쩌겠어요. 버스를 기차라고 하는데.

지성소, 속죄소는 우리 죽음을 말하는 게 아니고 우리 대신 죽었던 하나님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하나님도 죽이는데 자꾸 그 앞에서 살려고 하지 마세요. 하나님의 뜻은 몽땅 다 죽이는 거예요. 심지어 누구도 포함시켜서? 로마서 8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자기 아들도 아끼지 아니하시고 죽였다니까요.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에요. 우리와 율법으로 거래하시는 분이 아니고 자기 아들도 죽이는 분이에요.

죽는데 놀라운 사실은 사흘 만에 살아난다. 그게 알짜배기라. 그래서 대신 죽었기 때문에 지성소 안에서만 죽음이 이뤄지고 그 바깥에서는 죄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멀쩡하게 젖과 꿀이 흘러요. 횡재한 것 아닙니까? 언약궤, 죽음이죠. 죽음의 상자를 지고 여리고 성을 돌았더니만 여리고가 무너지네. 그 성을 누가 차지합니까? 사실은 같이 죽어야 될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접수한 거예요. 물론 기생 라합만 살았지만. 이것 횡재한 겁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뭐라고 합니까? 저들은 죽는데 너는 왜 안 죽었지? 하면, 정답은 뭐가 돼요? 저들도 죽이고 이것도 죽이는 게 뜻인데 하나님의 언약이란 걸 드러내가 위해서 언약은 죽음만 있어도 안 드러나거든요. 죽어도 사흘 만에 부활해야 그것도 포함해서 언약 아닙니까. 저쪽은 죽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완전히 죽여서 지옥으로 보내버리고, 이쪽은 죽어야 마땅한데 사랑과 은혜로 살렸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천국을 만들어놓은 거예요. 그 천국의 모형으로서 보여준 것이 여리고 성 돌았을 때 승리했던 무슨 나라? 이스라엘. 오늘날 하나밖에 없는 천국 백성, 교회입니다. 우리가 이런 실정에 있습니다.

그저 아무것도 한 것도 없이, 어떤 분이 죽었다가 사흘 만에 살았다. 그것만 믿을 뿐인데 그게 아다리가 되어서 사나 죽으나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우리는 지옥 가고 싶어도 못 가고 죽고 싶어도 영원히 살아야 될 그러한 백성으로 성령이 우리 안에 와주시는 겁니다. 증거하는데 자꾸 거치적거리니까 성령을 통해서 우리를 책망하지요. “행함은 아니지. 행함으로 구원받는 건 아니야. 그건 아니야. 그건 니 자랑이지. 그건 예수님만 자랑해야지.” 이걸 매일같이 말씀을 통해서 사랑의 매로, 사랑의 책망을 하는 거예요. “그건 니 과시하는 거야. 알지? 과시는 것, 그러면 안 돼.” 하고 징계하시고. 징계가 없으면 사생아라 했으니까.

총정리 해보겠습니다. 지성소에서는 천사가 있었다. 천사는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묵시세계다. 묵시세계가 감히 하나님과 함께 있었던 것은 죽음이 끼어들었다. 이 죽음은 죄인이 죽는 죽음이 아니고 흠 없는 제물이 우리 대신 죽는 죽음이 끼어들어서 하나님과 함께 있으면서도 죄인들을 살려내는 방식으로 이스라엘이 있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힘도 없고 아무것도 무기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주변의 나라를 점령해서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게 했다는 말이죠.

그리고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뭘 만들라했을 때 만들기는 사람이 만들어놓고 다른 건 만들 수 있는 인간은 자기 죽음을 자기가 만들 수는 없지요. 죽은 인간이 뭘 만들어요. 그런데 죽어가는 인간을 통해서 뭘 만들게 해놓고 그걸 만들었다고 사는 게 아니고 오히려 이걸 만들어도 죽어 마땅하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만들게 하신 거예요.

그리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우리가 끼어들면 안 되고 예수님이 그 모형대로 오셔서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거래할 문제고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이미 확정되고 결정 난 문제에요. 거기에 예수님께서 우리에 끼어들어서 이걸 살려주시는 겁니다.

출애굽기 25장 23절 봅시다. “너는 조각목으로 상을 만들되 장이 이 규빗, 광이 일 규빗, 고가 일 규빗 반이 되게 하고” 그리고 26장 1절에 “너는 성막을 만들되 앙장 열 폭을 가늘게 곤 베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로 그룹을 공교히 수놓아 만들지니” 27장 봅시다. “너는 조각목으로 장이 오 규빗, 광이 오 규빗의 단을 만들되 네모반듯하게 하며 고는 삼 규빗으로 하고” 했지요.

이 모든 것의 중심이 뭡니까? 이건 주변장치죠. 그럼 핵심부품, 엔진 부분이 뭡니까? 제일 먼저 나왔던 지성소지요. 죽음을 죽음답게 보여주고 지키기 위해서 다른 사람은 근접하지 마라. 오직 차단막을 만들고 지키고 하나님의 죽음을 사람의 죽음과 섞이지 않도록 따로 보관하고 따로 옹립하고. 그건 천사가 지키는 거예요. 사람이 만든 천사 상이지만 실제로 천사가 지키는 거예요.

그래서 모형, 형상이란 것은 지시에 의한 것이 아니고 지시 이상의 잉여분, 이런 게 어려운 거예요. 잉여분의 의미가 여기서 드러나는 겁니다. 인간은 지시까지만 멈추고 그 이하는 들어갈 수 없어요. 잉여고 여분의 것은 실제로 천사, 실제로 하나님께서 이걸 채워줘야 비로소 기능이 발휘됩니다. 그러니까 천사 상 만들고 양 잡고 이걸 우리가 반복하게 되면 성전이 잘 돌아갑니까? 아니지요. 그래서 제사 잘 드리고 성전 섬겨서 이스라엘 성전이 나중에 어떻게 돼요? 불타버리지요.

하나님께서 사람이 만들지만 사람이 제사 드리지만 그걸 받고 안 받고 가동시키고 의미 주는 것은 인간은 지시물까지에서 멈추고 나머지 잉여분은 누가 채워져야 돼요? 이걸 모형이라고 간주하시는 실체되신 분이 우리에게 그걸 이야기해줘야 모형은 모형으로 드디어 드러나게 되거든요. 우리는 모형이거든요. 실체는 예수님이고.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머리되시고 우리는 그분의 지체가 되는 거예요. 성령 안에서 우리는 하나로 조인트, 조립된 거예요.

그럴 때 네가 말할 때 네가 말하는 것이 아니고 네 속에 성령이 말한다는 말이, 우리가 보기에는 되도 않은 인간이지만 되도 않는 인간 맞아요. 맨날 죄만 짓지만 주님 보시기에 성령이 임한 이상은 우리는 죄를 짓되 그 죄는 십자가를 증거하는 용도로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미처 모르는 죄를 평생 다니면서 짓게 하시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아무것도 모르는 이스라엘을 죽이고 살리고 하는 것이 다 하나님의 언약을 증거하기 위함이며 오늘도 우리도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를 살리시고 복음을 듣게 하시고 십자가 알게 하시고 믿게 하시는 모든 것 주님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조치인 것을 우리가 그냥 수용하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첨부파일 : 20130201b 울산강의.hwp (51.0K), Down: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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