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강-합1장1-4(하박국의 등장)130203-이 근호 목사
1강-합1장1-4(하박국의 등장)130203-이 근호 목사
이름 : 이한례(IP:203.90.42.222)
1강-합1장1-4(하박국의 등장)130203-이 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 하박국 1장 1절에서 4절까지입니다. 구약성경1302페이지입니다.
하박국 1:1-4
“선지자 하박국의 묵시로 받은 경고라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를 인하여 외쳐도 주께서 구원치 아니하시나이다 어찌하여 나로 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목도하게 하시나이까 대저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공의가 아주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공의가 굽게 행함이니이다“
하박국이라는 이 선지자 이름 자체가 우리 한국 사람한테는 상당히 외우기 쉽습니다. 선지 국이라든지 국 종류가 돼서 잘 잊어버리지 않는데 특히 하박국이 좀 유명하게 된 것은 하박국 2장 4절에 보면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을 먼저 봤던 사람들은 구약성경에 인용돼 있으니까 구약성경에도 의인은 믿음으로만 살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하박국으로 돌아와 버립니다.
그런데 하박국에 와 보면 이런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국속의 이 건더기가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서는 부각이 되지를 않아요.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오늘 읽었던 2절입니다.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 한다” 이 말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해도 듣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가 구원을 하기 위해서 뭔가 기도한다는 이 자체가 하나님의 뜻하고는 다르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여, 저 구원받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기도할 테니까 제 기도 들으시고 구원해 주소서.’ 라고 이렇게 나오는 자체가 하나님의 의도했던 뜻하고는 안 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해 달라고 부르짖으면 응답해서 구원한다. 이러면 어디에 어긋나느냐 하면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의 원칙에 어긋나게 돼 있어요. 쉽게 말해서 의인이라 하는 것은 ‘나 의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내 의인 기도 들어주세요.’라는 것은 의인이 아니고, ‘의인은 내가 만들어낼게.’ 의인은 하나님 쪽에서 만드는 겁니다. ‘저 의인 할래요.’ 한다고 의인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의인을 만들어 내는데 그 만드는 장소가 뭐냐, 그게 지난 주 낮 설교 ‘도가니’입니다. 이게 ‘종말’입니다. 끝이 돼야 돼요.
군인이 유격 훈련할 때 외줄 타거든요. 아직도 저는 기억이 생생합니다. 외줄 타는데 줄이 끊어지면 그냥 떨어지는 거예요. 외줄 타러 가면서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이거 줄 끊어지면 안 됩니다. 살려주세요. 하나님.’ 하면 ‘그래, 너 기도 응답됐어. 내가 줄 안 끊어지게 할게. 그래서 너 살려줄게.’ 이렇게 나오는 게 아니에요. ‘줄이 안 끊어지면 그 줄에 있는 나는 줄이 안 끊어졌기 때문에 산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짜낸 우리의 지혜입니다.
그런 것이 모아서 ‘나 이런 거 안 하니까 의인 맞아.’ 라고 했을 때, 주께서 구원 방법은 그 방법을 수용하는 게 아니고, 아예 줄을 끊어버립니다. 줄을 끊어버리면 ‘안 돼, 이건 안 돼.’라는 그 외침, 그 외침을 주께서는 사용하사, ‘하나님 이건 아닙니다.’가 되게 하시는 방법으로 구원을 해내게 되면, 그 사람은 자랑할 게 아무것도 없어요. 나는 내가 구원 받고자 하는 자체가 하나님의 구원을 오해했고 방해 했던 것이 되는 거예요. ‘하나님, 이런 방법이 어떻습니까? 괜찮죠? 그럼 내 방법대로 하나님 결재해 주시고 이 방법으로 구원해 주시면 전 고맙다고 천 번 만 번 하겠습니다.’ 라고 우리 쪽에서 나오는데 하나님은 그런 방법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 줄을 끊어버립니다.
그러면 이게 뭐냐 죽어야 될 존재가 되는 거예요. 그런데 줄을 끊는데 우연히 줄이 끊어지는 것이 아니고 안 믿는 자가 와서 우리 구원받는 사람을 약 올리면서 안 믿는 자가 줄을 끊게 하는 방법을 하나님께서 사용했어요. 이게 하박국 상태인데, 여기 하박국에 보면 갈대아 인들 해서 6절에 나옵니다. “보라 내가 사납고 성급한 백성 곧 땅의 넓은 곳으로 다니며 자기의 소유 아닌 거할 곳들을 점령하는 갈대아 사람을 일으켰나니” 라고 했는데, 이 갈대아 사람은 또 뭡니까? 갈대가 많이 나서 갈대아 사람입니까? 그게 아닙니다. 이 갈대아라 하는 것은 지금은 어느 지방이냐 하면 이라크 지역 이예요. 이라크는 강 두 개가 만나서 만든 나라예요. 위의 강을 티그리스 강이라 하고 아래쪽을 유프라테스 강이라 해요. 유프라테스 강 근처에 바그다드란 지금 수도가 있습니다. 그 강의 원천이 뭐냐 아라랏 산에서 터키 쪽에서 높은 산에서 비가 오면 흘러내려서 쭉 내려와서 현재 이란 남쪽에 있는 바다 페르샤 만 그쪽으로 흘러가요. 이라크하고 이란 사이에 갈라진 바다, 그게 페르샤 만인데 그쪽은 물이 바다로 빠지죠. 그 빠지는 그 사이에 강 두 줄기가 벌어졌다가 만나는, 그 벌어진 거기에 농사가 잘 돼서 옛날부터 거기, 지금부터 BC 4천 년 전부터 수메르라는 최초의 문명국가가 거기서 만들어졌어요.
그러니까 거기 땅이 좋다 보니까 원래 땅 좋은 데는 누구나 탐내잖아요. 그래서 그 땅을 노리고 계속해서 전쟁이 일어나면서 거기서 수메르, 그다음에 옛날 바벨론 나오고 그 중에 지명 이름이 갈대아 라는 지명이 있어요. 갈대아 이름이 바벨론, 옛날 바벨론 있고 새로운 바벨론이 있는데 그 새로운 바벨론은 앗수르라는 제국을 무너뜨리고 605년에 만들어서 539년에 멸망한 나라, 나보이드스란 왕을 최후로 해서 멸망을 해버려요. 그런데 그 나라는 잘살아도 너무 잘사는 나라입니다. 그 나라는 무슨 신을 섬기느냐, 마르둑 신을 섬겨요. 마르둑, 외우기 쉽죠. 둑 세우는 거 있죠, 마르둑. 마르둑 사람이 회장님이고 그 밑의 전문 경영인이 뭐냐, 성경에 나오는 바알이라는 신입니다. 그걸 수련회 때 CEO라 했죠. 신도 회장님 있고 전문인이 있고. 서구에 보면 대통령 따로 있고 총리 따로 있고. 독일 대통령이 따로 있고 독일 총리가 따로 있거든요. 실무 담당하는 신이 뭐냐, 바알신이고 그 바알신보다 높은 신이 마르둑 신이고. 그 마르둑 신을 섬기고 그 밑에 보면 바알도 있지만 이스타라라는 전쟁하는 신도 섬기고, 하여튼 이 갈대아 인은 우상이라는 좋은 신들은 다 끌어 모아서 섬기는 그 나라가 이 유다나라를 먹습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는 나라를 먹어요.
그러니 방금 제가 이렇게 설명했지만 그 유다나라 입장에서는 하박국이 멸망직전이거든요. 멸망되기 전 BC 610년 쯤 되는데 유다나라가 하나님을 섬기는데 하나님께 기도를 했더니만 하나님께서 외줄 타는데 그 마지막 외줄도 끊어버리더란 말이죠. 끊는데 누가 끊느냐, 율법도 모르고 다른 신을 섬기는 나라한테 끊어버리면 소위 하나님 믿는 자존심을 도대체 챙길 게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말은 뭐냐 하면 ‘하나님을 믿습니다.’라는 말 속에는 ‘하나님 믿으니까 하나님도 내 자존심 키워주세요.‘라는 은근히 노리고 있던 그 모든 것도 다 잘라버리는 겁니다.
하박국 3절에 보면 “ 어찌하여 나로 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목도하게 하시나이까 대저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이렇게 돼 있어요. 이건 뭐냐 하면 우리 하나님 믿는 사람은 의인, 그리고 유다 나라 중에서도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실천에 옮기는 사람은 의인이고, 같이 하나님, 하나님 하지만 하나님 말씀에 관심 없는 사람은 악인, 그런데 누가 우세하냐 하면 악인이 우세하고 의인은 지금 곤경에 빠져 있다 이 말이죠. 그러니까 ‘하나님이여, 의인들을 위하여 어떻게 악인들을 척결해 주셔서 이 땅에 하나님이 살아있고 하나님의 율법이 살아있고 이것을 좀 보여주세요.’라고 기도를 시작한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악인과 의인이라고 여긴 자를 악인에 의해서 없애버립니다. ‘의인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이걸 완전히 없애 버려요. 그러면 까딱까딱하게 ‘참아야 하느니라. 참아야 하느니라. 그래, 세상은 악해도 우리는 말씀대로 복음대로 살아야지.’ 겨우겨우 그냥 모기소리 만큼 내면서 겨우겨우 신앙생활 한답시고 겨우 시간 내서 신앙생활 하는데 세상에 그것마저 허락지 아니해요. 신앙생활 하라는 건지, 말라 하는 건지, 여기서 우리가 제가 이 시간 하고 싶은 것은 그동안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오해를 너무 심하게 오해를 하고 있던 거예요.
이스라엘 나라에서 제일 믿음 좋았던 왕 이름이 요시야입니다. 요시야 왕의 아들이 세 명 있어요. 원래 아버지가 믿음 좋으면 자식도 믿음이 좋으리라고 기대하겠죠. 그런데 아들, 자식 세 명 다 믿음이 엉망진창입니다. 첫째 아들이 여호야김, 둘째 아들이 여호아하스, 셋째 아들이 시드기야, 이 세 사람 다 믿음생활이라는 것은 전혀 상관이 없는 거예요. 그중에서 엘리아 김은 폭정을 해서 나중에 여호야김으로 바뀌는데요. 애굽 나라가 자기 맘대로 이름까지 바꿨어요. 예를 들면 김삼순이를 김희진이라고 바꾸는 것처럼. 이름을 자기 맘대로 바꿔서 이름을 여호야김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사람들이 믿음을 뭐로 오해하느냐 하면, 개인적으로 믿음 좋은 것은 그건 사실은 믿음이 안 좋기 때문에 ‘하나님, 믿음 좋습니다.’라는 말이 하나님 보시기에 나오더라 말입니다. ‘하나님, 저 믿음 좋습니다. 저 바르고 착하게 삽니다.’ 라고 하면 하나님께서 ‘그러니까 네가 지금 믿음이 없는 거야.’ 믿음이 전혀 좋은 게 아니라고 보는 거예요.
왜 그러냐 하면 진짜 믿는 자는 자기를 바라보는 게 아닙니다. 왜냐 하면 자기를 바라보게 되면 신앙 좋아지려는 부담만 자꾸 가중될 뿐 이예요. ‘하나님이여, 제가 이 흰밥 먹는 것도 혹시 제가 죄 짓는 거 아닙니까? 아프리카는 천 원 한 장만 있어도 사흘을 산다고 하는데, 동대구에 보니까 ’천원 도와주세요. 천원만 도와주세요. 천원이면 아프리카 어린이를 살릴 수 있다고 하는데.‘ 그걸 바라볼 때마다 천원 안 줬지만 아이고, 내가 밥을 너무 많이 먹는 것도 찬밥 남기는 이것도 죄 짓는 거지, 아니야, 그러니까 밥을 조금 먹어야 돼.’ 이렇게 자기 때문에 늘 조마조마 떨면서 이러는 거, 우리는 그것을 좋은 믿음이라 생각하고, 그걸 좋은 믿음이라고 여기는 이유는 이렇게 긴장된 가운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이러한 믿음 좋아지려는 애씀을 제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이걸 지켜봐 달라는 거예요. 칭찬을 해달라는 겁니다.
학교 다닐 때 선생님 때문에 기분 상하는 중에 하나가 분명히 선생님께서 숙제 내고 숙제 검사 한다고 했는데 나중에 그 다음날 간만에 숙제해서 숙제 검사하기를 기다렸는데, 아니 선생님께서 오셔서 ‘오늘 숙제 검사 없다.’ 이럴 때 얼마나 화가 나겠습니까? 그러니까 숙제 안 해오고 농땡이 친 애들은 좋은 선생님이라고 하고, 숙제 해온 애들은 부르짖기를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입니까?‘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믿음이 좋지 않다고 주께서 이렇게 단정하시는 것은 이미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이미 목에 힘이 들어갔다는 겁니다. 자기 자신을 지금 관찰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건 믿음 좋은 게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볼 필요도 없고요. 인간은 자기를 봐도 볼 것도 없어요.
그러면 믿음 좋은 게 뭐냐, 바깥 환경에 대해서 내가 얼마나 많이 젖어들었는가, 그 관계를 파악하는 게 믿음 좋은 겁니다. 오랜만에 어려운 것 나왔으니까 적으세요. 믿음이 좋다는 것은 ‘내가 이렇게 악한 세계에서 내가 버텼습니다.‘가 믿음 좋은 게 아니고, 니나 네나 같은 세상에서 같이 돌아가는 거예요. 레미콘 차, 그 뒤에 시멘트 콘크리트, 물이 같이 돌아가잖아요. 우리는 같이 돌아가면서, 같이 돌아간다는 것을 애써 부인하면서 ’돌아가도 나는 약간 덜 돌아갔습니다.‘ 맨날 이런 짓 하고 있는 거예요. 세상이 이렇게 같이 돌아가게 되면 우리는 버텨야 버틸 수가 없는 거예요.
일본에 유학 갔는데 어떤 일본의 술 취한 남자가 지하철 기다리다가 비틀거리다가 떨어졌다. 그때에 한국의 유학생이 가서 건졌는데 마침 그때 주께서 합력하여 지하철이 들어와서 그 사람이 치어 죽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착한 사람이다. 그 사람을 착한 사람이라고 할 때에 우리는 뭐를 놓치게 됩니까? 그것은 바로 평소에 신앙생활 안 하고 있다는 것이 들통 나는 순간입니다. 왜냐 하면 뭘 감추고 있느냐 하면 원망을, 저렇게 술 취한 사람을 건져 줄 사람 같으면 하나님이 저 사람을 살리게도 하실 수 있었잖습니까? 라고 원망하는 수가 생기는 거예요. 아이고, 유학 보냈는데 애가 죽어서 마음이 아프죠? 그래도 부모는 그걸 의젓하게 견디네요. 뭘 잘 견뎌요? ‘하필 그 많은 유학생들, 그 많은 일본 사람들이 있는데, 왜 하필 신이시여, 내 애가 뛰어들게 합니까? 그리고 그 술 먹은 사람이 그 자리에 안 왔으면 내 애가 지금도 공부해서 박사학위 따서 한국에 와서 교수해서 내 아들 교수라고 자랑 질 하면서 이렇게 살 건데, 왜 그 기쁨을 하나님, 니가 뭔데 데려갑니까? 그걸 억누르면서 ’예, 우리 애 참 훌륭하죠. 예, 자식 어릴 때부터 그렇게 교육시켰습니다.‘ 이런 빈말은 하지 맙시다. 정말 이런 빈말을 하지 맙시다.
하나님께서 믿음 좋은 요시야 왕, 그 밑의 세 명의 아들, 완전히 개판 같은 아들, 그렇게 두시는 것은 아무리 믿음이 좋더라도 하나님의 계획은 함께 전부 다 넘어가는 거예요. 어떻게? 아무것도 의인은 없고 아무것도 잘난 사람이 없는 가운데서 진짜 의인은 오직 메시아만 의인으로 등장하는 그 역할과 그 기능을 유대인들아, 여호와 믿거든, 좀 감당을 해라 이 말입니다. 감당을 해야 돼요.
자, 그걸 실제적으로 예를 들겠습니다. 베드로를 예를 들겠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처음 만날 때 고기 잡는 어부였습니다. 분명히 고기 잡는 어부예요. 사람이 우리가 고기 잡는 어부라고 할 때 내가 직접 어부라고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내가 할 줄 아는 것은 컴퓨터도 아니고 버스 운전도 아닙니다. 지금 나는 고기 잡는 어부입니다. 파도치면 바다에 나가지도 못하고 굶어죽을 판 이예요. 왜, 고기 잡는 것밖에 못하니까. 그래서 자기는 고기 잡는 것밖에 못한다. 나무 캐는 것도 못한다. 고기 잡는 것밖에 못한다. 고기 잡는 것만 내 천직이다. 천직이라 했는데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야, 너 고기 잡는 것이 천직이지? 그래 고기 잡으면서 주께 영광 돌리자.’ 이렇게 하지 않습니다. 고기 잡는 것밖에 못하는 사람에게 주님께서 그 자체를 허물어 버리고 ‘이제부터는 사람 낚는 어부가 돼라’ 했거든요. 무슨 수로 됩니까?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은 고기 낚는 것밖에 못하는데.
하나님께서 고기 낚는 것밖에 못하는 이에게, 고기만 잡던 사람에게, 고기가 안 잡히는 사건을 만들어 줘버려요. 고기가 안 잡히는 사건이 있다는 말은 내가 나는 분명히 어부인데 어부 값을 못하는 겁니다. 어부 값을 못하게 만든 분이 누구냐? 바로 예수님이 찾아올 때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거예요. 세상이 뭐라 해도 나는 고기 잡는 것은 하자가 없고 이건 죄가 아니야, 라고 여겼는데 이것마저, 나의 위신을 챙겨주는 이것마저 주께서 못하게 해버리면 그 다음부터는 맹탕 이예요. 그 다음부터는 주님께서 그 인간을 만들어갑니다. ‘니는 사람 낚는 어부가 돼라’ 그때부터 자기는 또 나름대로의 사람 낚는 어부가 되고자 하죠. 결국 베드로는 사람 낚는 어부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도 없고 결국은 뭐라고 하느냐 하면 자기 옆에 서 있는 사도요한 보고 ‘저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라고 요한복음 마지막에 보면 지금 관심사가 자기 살 길이 바쁘지, 주의 일 관계없어요. ‘저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묻는 거예요.
그런데 주께서는 성령을 주셔서 기어이 베드로를 가지고 사람 낚은 어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아무것도 한 것도 없는데 무조건 자기들에 의해 사람들이 낚인 거예요. 천국으로. 그러니까 여기서 그 이전에 하박국이 있는 거예요. 하박국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먼저 어떻게 하느냐 하면 ‘나는 의인이고, 나는 바르게 살고 세상은 악해도 저는 견딜만큼 견뎌서 끝내 저는 이겨 내었습니다.’라는 그 생각이 그게 불신의 생각이었고 그것도 같이 레미콘 속에서 같이 돌아가서 그런 결심도 나중에는 그냥 하나의 우기는 것밖에 안 된다는 것이 들통 날 때 여러분 복 받으신 줄 아시기 바랍니다. ‘아, 나한테는 어떤 미련 같은 것이 있을 필요가 없도록 구원하시는구나.’ 구원을 하시는데 ‘니 나한테 미련 있었지? 니 나한테 사랑했지?’ 그런 걸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구원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생각하기를 ‘내가 예수님을 많이 사랑하고 하나님을 많이 사랑하게 되면 내 구원에 많은 보탬이 된다는 생각을 계속 어떤 집착 같은 게 계속 있는 거예요. 그거 우리 손으로 놔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주변에서 고맙게도 불신자들이 그걸 도와줍니다. 집에 물이 안 나온다. 기도합니다. ’주여 물이 나오게 하옵소서.‘ 안 나와요. ’우리 교인들이 와서 물 나오게 도와주옵소서.‘ 아무 교인도 찾아오지 않습니다. 생중계 되나 마나 그것도 관심도 없는데, 그런데 여호와증인, 그런데 이단들이 와서 ’아저씨 물 없죠? 공짜로 쓰시오‘ 할 때 그 이단 구원받습니까? 아니죠.
우리가 아무리 믿음 좋아도 물이 안 나올 때는 이단이고 삼단이고 불교신자 가리지 않고 우선 살고보자 하는 게 인간의 마음이다 말이죠. 그런 마음을 갖고 있으면서 믿는 척 했고 남은 탈락해도 지는 안 탈락했던 척 했다는 것, 이거 아직까지 세상 물정 몰라서 그렇습니다.
여자분들 임신할 때 보니까 그냥 애 배 불렀다가 제가 젊을 때는 몰랐어요. 배불렀다가 애 낳으면 배가 정상으로 된다 이렇게 생각했거든요. 나중에 이렇게 보니까 피부의 근육이 틀어져요. 피부의 근육이 쥐포처럼 찍찍 갈라져요. 그럼 애 낳고 난 뒤에 그걸 꿰맵니까? 할 수가 없잖아요. 애 낳고 완전히 망가져 버린 거예요. 아빠는 모르죠. 그러니 여자가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이 그런 뜻이구나. 완전히 망가져 버려요. 구원을 받는다는 말은 원래 나는 착한데 거기다 구원까지 얹어서 더 착했다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한다고 본인은 완전히 망가져 버린 거예요. 남는 것은 예수님밖에 없어요. 우리 잘남의 근육이 다 터져서 실핏줄 터지듯이 다 터졌어요. 그걸 완전히 찢어버린다 하죠. 대전서 강의할 때 우리 봉투는 적고 예수님은 오니까 봉투가 다 찢어버린 거예요. 덜렁 예수님을 받아놨는데 다시 내 것을 봉합할 어떤 기회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을 스카치테이프를 한 테이프를 찢어서 하나씩 붙여서 메우는데 해봐야 얼마 안 가서 다 뜯어집니다. 실리콘 총으로 쏴서 묶어봐야 다 풀어져요.
그냥 그리스도가 덮치면 ‘아! 세상만 악한 것이 아니고 나도 한 악함 하는구나.’ 그런데 이것이 하늘의 유성처럼 턱 터져서 몸 안에 툭 들어오니, 우리는 오히려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이 행함일 수가 없다는 이 말이죠. 아! 이렇게 들이닥치니까 비로소 남 욕 하고 누구 욕할 게 아니고 그저 ‘고맙습니다.’라는 말 이외는 우리가 못한 거, 우리가 숨긴 거, 다 들통 내면서도 기어이 우리를 건져내시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 구원만이 진짜 하나님만이 알고 있는 구원이었는데 우리는 그걸 잠간 오해를 했어요. 예수 믿어주면 잘나서 훌륭해지는 줄 아는데 막상 덮치니까 우리는 다 산산조각 찢어지는 것을, 그것이 바로 마지막 때 유다나라를 다 찢어버립니다. 그리고 디아스포라, 유다나라가 흩어진 백성을 뭐냐, 디아스포라, 뜻은 흩어지다. 그 디아스포라가 오늘날 유대인들, 미국에 맨하탄에도 가 있거든요. 다 흩어져 있어요. 다 찢어버려요. 이스라엘, 유다나라를 전부 다 찢어버립니다.
그리고 진짜 이스라엘은 성령 받은 사람만 다시 모아서 하나님의 이스라엘로 만드는 그 일관된 작업, 벌써 하박국이 그 작업을 벌써 시작했습니다. 앞으로는 이 작업을 한번 따라가 봅시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기도가 나름대로 간절하고 진정성 있고 진지하고 누가 들어도 경건스럽고 본인이 생각해도 훌륭한 기도 같은데, 그 속에도 교만이 들어있고 자만이 들어있고 불신이 작용할 줄 전혀 몰랐습니다. 항상 주신 것에 대해서 잊지 않고 늘 감사하면서 우리가 예수님만 자랑하고 예수님 십자가 앞에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은혜를 받는 이 감격을 우리가 잊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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