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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13 대구강의 2] - [피 87] - 구원피로감강의[피]

[13 대구강의 2] - [피 87] - 구원피로감

이름 : 구득영(IP:203.223.97.152)

[13 대구강의 2] - [피 87] - 구원피로감

13,01,21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오늘은 교재 262페이지부터 살펴보자.

** 이것은 인간들이 독자적인 성향을 유지하는 것이 구원의 목적이 아님을 말하는 것이다.

(요 6: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요 6: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요 6: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요 6: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요 6: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요 6:58)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 단체로 움직이는 이스라엘 !!

구약성경을 보면 항상 단체로 움직이는데, 하지만 현대인에게 단체는 지겹고 짜증나는 일인데, 우리는 무엇을 해도 혼자 있고 싶고 혼자 하고 싶고 혼자 과시하고 싶다는 것이다. 하지만 구약의 이스라엘은 개인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에게 주신 언약 자체가 개인에게 준 것이 아니라, 단체를 형성하라고 준 것이기에 말이다. 즉 혼자 있지 말고 단체로 움직이라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무엇인고 하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함락할 때, 아간이 개인행동을 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여호와 전쟁을 할 때, 자기 혼자서 금과 은과 외투를 따로 챙겼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의 개인적인 행동으로 말미암아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이성을 칠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패배하도록 하셨다는 것이다.

여기에 이렇게 아이성이 있다면, 그게 '적다' 라는 의미인데, 우리말과도 느낌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단체로 이 성에 입성하기를 원하시는데, 그런데 여기에 볼록하게 혹과 같은 것이 이렇게 튀어나와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단체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이성을 접수하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부적으로 배신자를 찾게 되는데, 배신자는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으로 접수하게 되면, 만약에 단체로 접수하게 되면, 이렇게 여리고성과 아이성을 점령하신 분은 언약이 되고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방인들만 전부 접수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점령한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하나님은 계속해서 점령자가 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 계속 점령자가 되고픈 하나님 !!

그러니 이 아이성을 빼앗아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는, 그런 차원이 아니라, 이 아이성을 빼앗아서 하나님께서 가지시고, 그리고 그 아이성을 대신해서 차지한 이스라엘에게도 하나님은 계속해서 자기 자신이 그들 가운데서 점령자가 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누군가가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면, 이 아이성을 이스라엘이라는 단체에게 제공할 필요가 없고, 제공해줄 수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가 따로 떨어져 나갔기 때문에 말이다. '아간' 이라는 자가 말이다. 그렇게 떨어져 나간 상태에서 억지로 아이성에 집어넣게 되면, 하나님은 계속해서 아이성에 있는 이스라엘의 지배자 역할을 하는 현상이 일어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 아간, 그리고 아나니아와 삽비라 !!

이런 경우가 신약에서 사도행전 5장에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이다. 교회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그 부부가 헌금을 하면서 절반을 감추고 했더니만 가만히 죽이는 것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죽여버린다는 것이다. 여기서 '공개적' 이라는 것이 중요한데, 개인적으로 죽고 말고 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고, 공개적으로 죽인다는 것이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행 5: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 아내 삽비라로 더불어 소유를 팔아
(행 5: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를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행 5:3)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행 5: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행 5:5)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 교회는 '개인생각'이 수용불가 !!

왜 그렇게 하시는가? 교회는 사도의 소유도 아니고, 베드로가 죽인 것이 아니기에 말이다. 누가 죽이고 누가 살리고 할 입장도 못되는데, 그런데 교회에는 성령께서 계셔서, 그래서 베드로가 "당신들은 나를 속이게 아니라 성령을 속였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게 무슨 뜻인가? "지금 당신들 눈에는 사도만 보이고 이 베드로만 보일지 몰라도, 성령이 아니면 교회가 세워지지를 않는다" 라는 것이다. 즉 성령이 아니면 교회가 세워지지 않는다는 것이나, 아이성을 점령할 때 아간이 배신해서 접수하지 못하는 것이나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옛날이나 지금이나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것은, 현재 우리 생각과는 다르다는 말이다.

그러면 무엇이 다른가?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공개적으로 부부를 죽임으로서, '하나님의 교회 만들기'에 있어서 조금이라도 이질적인 것은 가미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 이질적인 것이 바로 '개인생각' 이라는 것이다. 현재 우리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 말이다.

◈ 1+1+1≠3 !!

여기서 조금 어려운 것을 생각해보면, 우리가 보통 '개인' 이라고 할 때는, 여기 '3' 이라는 것이 있다고 하면, 그것을 '1+1+1' 이라고 하는 것이 상식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문제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산법은 그렇지 않은데, 이것을 1로 보지 않고 3분의 1로 보는데, 즉 여기에는 1만 달랑 있는 것이 아니라 3이란 요소를 염두고 두고 있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여기에 이렇게 아간이 있고 가룟 유다가 있으면, 하나님은 아간이나 가룟 유다를 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 하나, 이것을 철학에서는 '일자(一者)' 라고 하는데, 그렇게 전체 하나에 속한 아간이 되고 가룟 유다가 된다는 것이다. 물론 베드로도 그렇고 말이다.

◈ 모든 인간에게는 아담이 깔려있어 !!

그러니 이미 우리의 밑바닥에는 무엇인가 깔렸다는 것인데, 그게 무엇인고 하니, 아담이 깔려있다는 것이다. 아담에 소속되었다는 말이다. 이것은 이해가 되지요? 전체의 속성이 밑에 깔린 1이지, 즉 3과 관련된 1이지, 단독적인 1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이 3이 없는데,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는 것이다. 즉 태어날 때부터 불교신자라는 말이다.

그냥 '1+1+1' 인데, 그러니 자기 혼자 교회에 나오지 않으면 그만이고, 자기 혼자 천국에 가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로 시작해서 '나'로 끝나기 때문에 말이다. 즉 "나는 나다" 라는 것인데, 그러니 자기 밑바닥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도 말했지만, 하나님은 모든 인간에게 아담을 깔아놓았는데, 그 아담은 인간이 아닌 죄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아담의 죄 속에 우리 모든 인간이 다 포함되어있다는 말이다. 즉 "아담의 죄가 곧 내 죄 이고, 내 죄가 아담의 죄에서 흘러나온다" 라는 것이다.

시편 51편에서 다윗은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라고 했는데, 그리고 로마서 5장에 보면 아담이 죄를 지어서 죽음이 찾아왔다는 것이다. 그러면 간단한데, 우리 인간 밑에는 죽음이 깔려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죽음은 3분의 1이 아닌 그냥 1로 보게 되면, 이 죽음이라는 것은 숨이 끊어지는 것인데, 의학계에서는 활성산소가 어떻고, 또 DNA 복제가 안 되어서 그렇다는 말도 있고 말이다.

(시 51:5)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롬 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숨이 끊어지는 죽음을 말하는 게 아니라, 아담을 죽게 한 바로 그 죽음을 이야기하신다는 것이다.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위배해서 죽었는데, 그런 아담의 성질을 우리가 가지고 있으니, 우리는 항상 아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위배하는 성질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오고 있다는 것이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계속해서 말이다.

◈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

인간이 서너 명 모이면 지혜가 모아진다는 말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인간들이 모이고 모여서 한 덩어리가 된 적이 있었는데, 그게 창세기 11장에 나오는데 말이다. 인간들이 바벨에 모여서 탑을 쌓았다는 것이다. 거기서 인간들이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한 결과, 그 방향성이 무엇인가? 그 목적이 말이다.

인간들이 모여서 하나가 되었을 때, 그렇게 해서 교회 만들기를 했을 때, 그게 노리고 있는 방향성, 즉 그것이 어디를 지향하고 있다는 말인가? 4절에 보면,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라고 했다는 것이다.

(창 11:1) 온 땅의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창 11:2)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고
(창 11:3)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창 11:4)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그러니 인간들이 아무리 모여서 지혜를 끄집어 내봐야 하나님에게 벌받는 짓밖에 안 되는데, 그리고 그것이 개인으로 흩어지면 어떻게 되겠는가? 저기 전라도 담양에 가면, 아주 대나무로 유명한 아늑한 동네인데 말이다. 대나무 박물관도 있고, 죽순도 구경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바벨탑 파편이 대나무 죽순처럼 !!

그 죽순들이 여기 저기에서 올라오는 모습이, 그것이 마치 하나님께서 바벨탑을 발로 차서 흩어지게 하시니, 그 성격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즉 "저희들이 잘못했습니다" 라는 것이 아니라, 양 사방에 그 파편들이 튀어서 이제는 온 세상 천지에서 바벨탑이 솟아 나온다는 것이다. '교회' 라는 이름으로, 혹은 '국가' 라는 이름으로, 마치 대나무 밭에 죽순이 여기 저기에서 올라오듯이 말이다. 샤프 심처럼 시커먼 것이 올라온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아담의 죽음은 병원에서 숨을 거두는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죽는 죽음인데, 그 죽음이 우리 밑에 깔려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신 것은, 우리보고 지키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들통나게 하시는데,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너와 너 밑에 깔아놓은 그 관계가, 너는 죽어야 마땅하다" 라는 것이고, 또한 그렇게 말씀에 의해서 죽는다는 것을 연결해서 우리에게 보여준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자꾸만 3분의 1에서 그 3을 지워버리고 개인행동을 나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개인행동으로 나가면서 인간들이 노리게 있는데, 그게 바로 "구원은 필요 없다" 라는 것인데, 우리 인간을 보고 구원을 받으라고 하는 것은 참 좋은 것이고 사랑의 메시지이지만, 그런 구원받을 상태조차도 필요가 없다고 하면 그 좋을 것이 아니냐는 말이다.

◈ 개인행동에 집착하는 인간들 !!

구원을 받으려고 하면 계속해서 하나님에게 빌붙든지 의지해야 하는데, 그건 인간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자기보다도 더 높은 분이 있으면 자기 자유가 방해를 받는다고 여기는데, 그러니 차라리 구원자체를 무시해버리면 어떻겠느냐는, 그런 아이디어라는 말이다.

오늘날 세상이 바로 그렇게 더 이상 구원이 필요치 않는 분위기로, 모든 교회마다 그러한 분위기의 쓰나미가 밀려왔다는 것이다. 주님의 구원을 시답지 않게 여기는 풍토, 즉 구원을 받지 않겠다고 하는 사회적 분위기, 교계의 분위기, 즉 "처음부터 나는 나였고, 지금도 나고, 또한 죽는 것도 내가 책임을 지겠다" 라는, 바로 그 자만이란 말이다.

여기서 고린도전서 15장 2절의 말씀을 보자.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라고 하는데, 이 말씀을 보면, 과거의 일들이 생각나서 가슴이 참으로 아려오는 것을 느낀다는 것이다.

(고전 15:2)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 주체할 수 없는 '구원 피로감' !!

왜 이 말씀을 보면 마음이 쓰린고 하니까, 사람들이 전혀 자기가 정상이 아닌데, 마치 정상인 것처럼 행사하는 그 꼬라지를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는 말이다. 계속 구원을 받아야 하는데, 중간에 구원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교회에 다니지 못하겠다는 것인데, 교회에 나오는 시간이 아깝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구원받기를 포기하는데, 즉 "에이, 더러워서 구원을 안 받고 말겠어" 라고 한다는 것이다. 마치 헬스클럽에 3개월 티켓을 끊어놓고, 3일을 다니니 귀찮고 힘이 드니까, "에이, 그만 갈란다" 라고 하는 것과 똑같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교회에는 나가지 않고 복음은 듣겠다고 하다가, 나중에는 그 복음을 듣는 것마저도 귀찮아한다는 것이다. 구태여 구원에 매달리지 않아도 살 수 있는데, 아니 말을 잘못했다는 것이다. 구원에 매달리지 않아야 돈을 더욱 더 잘 벌 수가 있는데, 왜 그런 귀찮은 복음에 매달려야 하느냐는 것이다. 나중에 죽을 때 잠시 복음을 듣고 천당에 가면 되는데, 굳이 지금부터 매달릴 이유가 뭐냐는 말이다.

지금 젊은 사람들이 다 그러한데, 믿는 집의 아이들도 물론 그렇고 말이다. 그런데 이게 점점 더 확산이 되어서, 마치 몸에 멍이 퍼지듯 말이다. 이제는 나이가 많은 사람들까지도 "구원은 이제 식상하다. 남은 인생을 즐기자" 라는 쪽으로 나간다는 것이다.

그것을 두고 '구원의 피로감' 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데, 신앙의 피로감 말이다. 간 때문인가? 하지만 우루사를 먹어도 해결이 안 된다는 것이다. 교회에 다니는 것이 지루한데, 6년을 다니니 7년째는 그만 쉬고 싶다는 것이다. 무슨 안식년인가?

하지만 여기 고린도전서 15장 2절에서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라는 것은, "너는 지금 지옥에 가고 있다" 라는 의미인데, 그러니 "너는 구원의 대상이고, 구원받지 못하면 끝나는, 그러니 너는 인간도 아냐" 라는, 그런 뜻이라는 말이다.

◈ 말씀은, 지식이 아닌 존재의 밑바닥에 !!

그러니 우리가 말씀을 받을 때, 그 말씀을 귀로 받아서 두뇌에 저장하지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밑바닥에 저장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 그냥 귀로 듣고 지식으로 가버리니, 그 자체가 곧 독자적인 존재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 라는 하셨는데, 사람들은 이 말씀에 대해서 자기들이 납득을 했다고 여기는데, 그래서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 교회에도 안 나오고 돈벌이를 하는 것을 보면, "저래서 천당에 갈 수 있나? 차라리 지옥에나 가라" 라고 했는데, 정작 자기들이 그만 수입이 줄고 형편이 어려워지니, "교회라는 이름의 학원을 이제 좀 쉴까?" 라고 하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구원? 한 때 나도 거기에 빠진 적이 있었지"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마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한글을 배울 때는 주로 시청각 교재를 가지고 배우는데, 예를 들어서, '가' 라는 글자를 배운다고 하면 '가자미' 라고 해놓고서 '가'를 가르친다는 말이다. 그런데 나중에 어른이 되면, 그런 것들이 하나도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이미 다 아는 것이니, 즉 숙달이 되었다는 말이다.

◈ 이제 구원은, 저리가 !!

그것을 구원에 적용시켜보면, 우리 인간은 "옛날에 구원을 받았으니, 지금은 계속해서 구원받을 필요는 없다" 라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고방식이 정당화되려고 하면, 지금은 본인이 죽음의 힘에서 벗어나, 그 죽음이 멈추었을 때나 합당하다는 된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까, 옛날에 자기가 죽으려고 할 때는 구원이 필요가 없겠지만(필요가 있었겠지만?), 하나님의 은혜인지 몰라도 지금은 그 죽음이 멈추어졌다고 하면, 물론 죽지 않을 때는 신앙생활도 필요가 없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우리에게 몸이 있는 이상은 어떠한가?

그 육으로 인해서 계속해서 우리로 하여금 구원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다급해지게 되는데, 즉 가면 갈수록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복음을 가리우는 세력들이 우리 속에서 끊임없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말씀에 입각해보면 말이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는 쓰레기통이 버려라. 신앙생활을 20년이나 다녀보니, 역시 교회보다 돈이 낫지? 역시 돈을 버는 게 최고야. 니가 아무리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도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 하지만 돈을 벌어봐라. 성공했다고 다들 칭찬해주고 난리지. 너는 어느 쪽을 택할래?" 라는 생각들이 말이다.

이런 이야기가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계속해서 밀려오는데, 그것이 파도와 같아서 바닷가의 소년이 "파도야, 저리 가라" 라고 한다고 해서 "미안해, 그만 갈게" 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것은 하나의 세파인데, 그것을 요한복음에서는 '어둠의 세력' 이라고, 어둠이라는 것이다. 그 어둠이 우리보다도 더 큰데, 우리는 작고 그 어둠이 우리를 완전히 뒤덮고 있다는 말이다. 즉 우리는 어둠이 휩쓸려 있다는 것이다.

◈ 구원욕망이 아닌, 구원의 절실함 !!

히브리서 5장에 보면,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셔서 그냥 배뿔랑하게 다니신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없는 탄식과 통곡으로, 그렇게 어려운 가운데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게 해달라고, 자기의 임무를 완성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고 하는 것이다.

(히 5: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러니 기도라는 것이 언제 필요한가? 자기 주변의 정체를 파악했을 때나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기 몸과 자기 주변은 복음을 대적하는, 즉 복음을 시시하게 여기고 짓밟는 세력에 의해서 자기의 몸과 그 주변은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가 느끼는 것은, 주님의 "구원을 받아라" 라는 소식이 매일같이 진짜 기쁜 소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그래, 나는 구원을 받아야해. 1월 21일, 오늘도 구원을 받아야지"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자기와 자기 주변이 어둡기 때문에 말이다. 그러니 지금도 자기가 자기 자신이 구원을 방해하고 있는데, "고마했다 아이가, 마이무라" 라고 하면서 말이다. (마이무따 아이가, 고마해라 인데, ㅋㅋ)

◈ 우리의 소원은 '천국' !!

어제 낮 시간에도 그런 설교를 했지만, "차라리 나를 잊었으면 좋겠다" 라고 사도바울이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자기 몸이 이 땅에서 좀 꺼져주었으면 하고 말이다. 그렇게 자기 몸은 없어지고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자기 소원이라고 했는데, 자기 몸이 분리되어서 하늘의 영광스러운 새로운 옷을 입고 주님과 함께 살고 싶다는 것이다. 낡아빠진 헌옷을 걸치는 게 아니고 말이다. 빌립보서나 고린도전후서에 보면 그런 내용들이 나온다는 것이다.

(고후 5: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니라

사도바울은 그만큼 이 세상에서 시달렸다는 것인데, 복음으로 많은 사람을 구원하고, 손수건으로 죽은 사람을 살리고, 멜리데 섬의 추장도 낫게 하고, 그리고 독사에 물려도 그냥 멀쩡한, 그런 능력을 가졌지만, 그러나 어둠은 여전히 자기보다 더욱 더 세다는 것이다. 자기가 아무리 귀신을 쫓아내고 내고, 근원적으로 자기보다 더 세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자기의 그 몸은 아담의 몸이고, 흙에 속한 몸이기 때문에 말이다.

흙의 자질과 그 속성은 그냥 방치하게 되면 매일같이 우리를 덮치는데, 돌이 떡이 될 때까지 말이다. 마귀가 예수님에게 그런 유혹을 했는데, 그러면 오늘날 우리에게는 뭐라고 하겠는가? "니가 믿음이 좋잖아. 그 믿음이 돈이 되게 하라" 라고 말이다. 기도를 해도 그런 식으로 해야한다고, 자꾸만 우리를 유혹하고, 오늘날 교회들도 다 그렇게 가르치고 있고, 또한 그게 옳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 진짜가 가짜에게 밀릴 수는 없어 !!

하지만 정말로 성령을 받은 사람이라고 하면 다음과 같은 점을 양보할 수 없는데, 즉 "진짜가 가짜에게 밀릴 수는 없다" 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진짜는 가짜를 겁내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밀어도 밀릴 이유가 전혀 없다는 말이다. 제 아무리 밀어도 말이다.

만약에 진짜인 척을 하면서 다른 노림수가 있다고 하면, 즉 "복음을 전하면 교회가 안 된다고 하니, 좀 자중해야 되겠다" 라고 나오겠는데, 하지만 정말 성령을 받아서, 자기 속에서 성령이 말씀을 하게 한다면, 우겨쌈을 당하든, 독사에 물리든, 가정형편이 어렵든, 주변에서 아무리 그런 환난이 닥쳐와도 진짜는 진짜가 아니냐는 것이다.

◈ 제가 가수 박상민입니다 ??

'박상민' 이라는 가수가 있는데, 그런데 자기가 어떤 술집에 갔는데, 거기에서 자기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자기를 '박상민' 이라고 소개하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검은 안경을 쓰고 수염을 길러도 그 사람은 분명히 박상민이 아닌데, 진짜가 보면 분명히 안다는 말이다. 자기를 '박성민' 이라고 이미테이션 가수라고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거기에 진짜 박상민이 쫄 필요가 있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진짜가 아니니 말이다.

사실 우리는 십자가 앞에서 죽은 자인데, 그것을 다르게 표현하면, "예수님만이 진짜 살아있다" 라고 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현재 이근호가 살아있고, 저근호가 살아있다" 라는 것은 '살아있다' 라고 하는 원래 개념에는 부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죽어있다는 말이다.

진짜로 살아있는 분은 예수님이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에 붙어있기 때문에, 그 주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만 예수님의 생명과 우리의 생명이 하나로 연결되어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로마서 6장에서는 '연합' 이라고 하는데, 즉 예수님의 죽으심과 함께 죽고, 예수님의 부활하심과 우리도 함께 살았다는 것이다.

(롬 6: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살았다는 것을 이야기할 때는, 반드시 예수님과 관련해서 살아있다고 해야지, 그냥 자기 혼자서 살았다고 해버리면, 그것을 다른 말로 하면 "예수 안에서 살아있다" 라고 할 수 있는데, 즉 '그리스도의 것'이 된다는 말이다. 그렇게 예수님과 연합해서 살아있는 사람은 독자적으로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복음이 아닌 복음인 척을 하면서 외치는 인간들을 보면, 마치 진짜 박상민이 가짜 박상민을 보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아무리 그렇게 해서 수천 수만 명을 보아도, 두 날개로 모으든 세 날개로 모으든 간에 말이다. 그러한 곳은 일종의 술집인데, 그런 곳에 가서 앉아있으면 "저게 무슨 짓이야? 저건 아니잖아" 라고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외면할 수 없는 주님의 말씀 !!

아담은 죄인인데, 그 죄에서 우리도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3분의 1로서 1이니 말이다. 그러면 구원을 받는 것은 무엇인가? 고린도전서 12장 5절의 말씀처럼, "너희가 나의 전한 말을 굳게 지키고 믿었으면 구원을 얻으리라" 라는 것인데, 그러니 우리가 주의 말씀을 티켓을 끊어서 3일만 다니는 것이 아니라, 주의 말씀을 전혀 외면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이제 주의 말씀은 그만하고, 교회를 한번 키워봅시다" 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내가 재산이 얼마인데, 교회는 차츰 다니죠" 라고 하든지, "우리교회가 이만하면 큰데, 설마 이 많은 사람들이 다 지옥에 가겠나?" 라고 하든지, 그런 말씀이 아닌 다른 엉뚱한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 집안의 신앙내력이 나오고, 또 자기 교회가 나오고 하는 것은, 말씀이 귀찮아서 말씀을 떠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까지도 포섭하기 위해서 말씀이 아닌, 다른 가짜를 전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 가짜에게 진짜를 전하게 되면, 가짜인 본인들이 더 이상 견딜 수가 없다는 것이다. 가짜는 말씀에 관심도 없는데, 그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교회에 나온 덕으로 내가 얼마나 더 잘 먹고 잘 사는가?" 라는 것인데 말이다.

그런 자들에게 "아닙니다. 그런 것은 죄입니다" 라고 쑤시게 되면, 당연히 견디지 못하고 나갈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렇게 해서 다나가고 남는 사람이 없다고 하면 교회가 안 되는데, 그래도 갈 때가지 가야 한다는 것이다. 정말 성령을 받았는지, 아니면 받은 척을 하는지, 그것을 밝혀내야 하니 말이다.

◈ 저는 토마토주스 거품으로 만족합니다 !!

그래서 저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는데, 즉 "우리 자신을 아예 남기지 않으려고 하면, 예수님이 복음의 믹서기로 아예 우리를 갈아버린다" 라고 말이다. 토마토를 넣어서 갈면 벌건 토마토 주스가 되는데, 거품이 낀 말이다. 그러면 우리는 그런 거품으로 만족해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주께서 갈아버리는데, 주께서 쓰시기 좋도록 말이다. 우리 모두를 다 집어넣어서 갈면, 우리는 거품이 되어서 주님을 전하면 되고 말이다.

하지만 복음을 아는 척을 하는 인간들은 이렇게 갈리까 싶어서 겁이 나서 미리 선수를 치고 나와서 당당하게 독자적으로 서있고, 복음을 아는 자들은 다 갈려서 가루가 되어있고 말이다. 그러니 독자와 가루의 싸움이라는 것이다. "나는 신앙생활을 몇 년을 했고, 신학을 했고, 복음을 안다" 라고 하면서 독자적으로 주장하는 것과, 아예 그런 것조차도 모두가 다 가루가 되어서 박살이 나버린 것, 바로 그것의 대결이라는 말이다.

우리가 사도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하는데,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그런 말을 하느냐는 것이다. 우리 같으면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고 신이 났겠는데 말이다. 인기도 얻고 말이다. 하지만 사도가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제발 저로 하여금 이 흙에 속한 몸에서 벗어나 새로운 옷을 입게 해주세요" 라고 했겠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말씀은 전혀 관심이 없으면서 옷만 새 것으로 갈아입으려고 하면, 그만 쫓겨난다는 것이다.

어제 낮에 마지막 부분에서 그런 설교를 했는데, 그냥 흙에 속한 옛 것을 버리고 하늘에 속한 새로운 것만 바라지 말고, 우리 속에서부터 거기에 부합하도록 새 사람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거기에 우리가 주목을 해야한다는 말이다.

아무튼 우리에게 독자적인 것은 없는데, 우리에게 일어난 모든 현상들은 복음을 위해서 반드시 일어나야만 되고, 그것 때문에 속이 상한다고 하면, 속이 상하는 그것조차도 믹서기에 마구 갈림을 당해야하는 우리의 일개 심정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

사도바울이 로마서 15장에서 무엇이라고 했는가?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다" 라고 했는데, 바로 그것이란 말이다. 14장인가요? 그러니 죽을 때가 다 되었다는 것이다(ㅋㅋ).

(롬 14: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롬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이러한 이야기가 듣기 싫어서 도망을 치게 되면, 그들에게 가서 뭐라고 하면 됩니까? "그런 이야기는 몰라도 되니, 그냥 교회에 나오세요" 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찾아가서 또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 멀리 도망치면 할 수 없고 말이다. 결국은 모든 사람들이 다 죽게 되면 주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는데, 우리는 그 주님의 음성을 미리 앞당겨서 지금 여기서 같이 보고 있다는 것이다.

◈ 목사님, 기도할 게 없어요 !!

다시 강조하지만, 이스라엘 내부에서는 단체로 움직인 것이지 개인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허용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설날이 되면 또 달을 보면서 빌고 하는데, 가정의 행복과 남편의 사업번창을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런 개인적인 요청은 주님에게 허용되지 않는데, 그르면 주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주님께서 내려준 언약이 우리를 재료로 사용해서, 마음껏 그 말씀이 살아있는 말씀으로 증거되기를 원합니다" 라는 기도만 주께서 원하신다는 것이다. 즉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만 되게 하옵소서" 라는 예수님의 기도만이 하나님께 응답이 된다는 말이다.

이렇게 기도에 대해서 강조해도, 매일같이 "목사님, 기도할 것이 없습니다" 라고 하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인데, 자기의 개인적인 기도만 생각하다보니 그렇다는 말이다. 그런 개인적인 기도는 하지 말라고 하니, 당연히 기도할 게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독자적인 것은 없는데, 우리는 어디까지나 3분의 1의 1이라는 것이다. 즉 단체에 속한 부분으로서 다루어진다는 말이다.

계속해서 교재 262페이지를 보자.

** 인간들이 자립성을 원하는 것은 고정적으로 소유하기 위함이다. 그러니 이 고정성은 하나님만을 보고 먹고 마실 때까지 늘 유동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나만의 것'이 형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교회', '나의 가정', '나의 사업체'와 같은 인식은 마귀적이다.

(암 5:21) 내가 너희 절기를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암 5:22)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암 5:23)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암 5:24) 오직 공법을 물 같이, 정의를 하수 같이 흘릴지로다

◈ '나의 교회'는 마귀적 발상 !!

'나의 교회' 라는 것이 있는가? 없다는 것이다. '나의 교회'가 아니라, 교회 안에 '내'가 포함되어있는데, 즉 하나밖에 없는 교회라는 것이다. 그래서 "주도 하나요, 몸도 하나이다" 라는 말이다. 그런데 '나의 교회'가 있다는 것은 되도 안한 기대감을 부풀게 해서, 우리로 하여금 건방지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면 '나의 가정'이 있는가? 마누라도 여호와께서 붙여주셨다는 것이다. 자식도 주께서 주신 열매이고 말이다. 성경을 도대체 어디로 어떻게 읽는지 모르겠는데, 아무리 백 독을 하고 백 번을 쓰면 무엇을 하겠는가? 성경을 아무리 봐도 독자적인 생각을 가지고 자기가 복을 받으려고 보니, 자기가 없다는 것을 모르는 상태에서 보게 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자기가 말씀의 재료가 되어야 하는데, 그래서 완전히 갈려야 하는데, 그냥 알갱이로 남으려고 하니, 그렇게 자기 자신이 살아있으니 어떻게 말씀을 제대로 볼 수 있느냐는 말이다. 그러니 '나의 사업체'와 같은 인식은 마귀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 아모스 5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 절기를 미워하여" 라고 하는데, 그렇게 개인적인 것을 주장하다가보니, 나중에 이스라엘 속에 사회적인 차등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즉 계급이 생겨났다는 말이다. 개인적으로 하다보니 말이다.

처음에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할 때는 모두가 노예였는데, 과부였고 종이었다는 것이다. 그러한 노예인 자들을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서 어떤 사람들은 자기 소유의 땅을 가지게 되었는데, 사실은 자기 소유가 아니라, 그것을 기업, 혹은 유산이라고 하는데, 즉 등기부를 보면 하나님이 그 소유주가 되어있고, 그래서 매년 하나님에게 세금을 내야한다는 것이다.

◈ 세금으로 '제사' 라는 원자로를 가동시키면 !!

그 세금이 곧 십일조인데, 그러면 하나님이 보이지 않으니 그 세금을 어떻게 내면 되는가? 나무 밑에 숨겨놓으면 되는가? 그게 아니고, 세금을 거두어서 '제사' 라는 원자로를 가동시킨다는 것이다. 그렇게 고리원자력 발전소를 가동시키면 그게 센터가, 즉 중심지가 된다는 말이다. 그렇게 그 발전소에서 나오는 전기로 인해서 약속의 땅이 생명이 넘치는 땅이 된다는 것이다.

그것을 제가 '할례'에 대해서 설교하면서, 에덴동산의 중심부에서 생명이 발현되어서 아래로 내려온다고 했다는 것이다. 생명나무가 유지되고 선악과가 훼손되지 않으면 낙원은 말 그대로 기쁨의 장소가 되고, 천국처럼 꽃피워지게 된다는 것이다.

◈ 그런데, 원자로를 마귀가 와서 !!

그런데 원자로 부분을 마귀가 와서 손을 대서 고장이 나게 만드는데, 즉 선악과에 문제가 생기니 그 짝이 되는 생명나무도 의미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선악과를 떠먹지 않는 조건아래에서 생명나무인데, 그런데 선악과가 그만 훼손이 되고 나니 생명나무는 이제 보호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마지막 천국에는 생명나무가 있기 때문에 말이다.

그렇게 천국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시커먼 심보를 가지고 있는 인간들은 들어오면 안 된다는 것이다. 깨끗한 천국이니 말이다. 그런데 더러운 상태에서 생명나무를 따먹게 되면 영원히 어떻게 되겠는가? 천국이 그만 더러운 천국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은 자기의 성품대로 자기가 만든 거룩을 유지하게 위해서 그 어떤 짓도 마다하지 않으신다는 말이다. 자기가 만든 인간도 차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아닌 생명이니 말이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생명이 가동되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인데, 즉 하나님의 피가 곧 생명의 피라는 것이 나중에 요한계시록 22장에서 드러난다는 것이다. 즉 어리양의 보좌에서 나오는 샘물을 통해서 파악이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창세기 2장에서는 그게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계 22:1)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계 22: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아무튼 중심지에서 주어지는 그 생명이, 약속의 땅에서도 계속해서 유지되기 위해서는, 성막에서 제사가 계속해서 원활하게 돌아가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려면 십일조가 제대로 공급이 되어주어야 하는데, 그래야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을 그것으로 양식으로 삼고, 또한 그것을 가지고 제사제도에 전념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어떻게 되었는가? 분명히 자기가 중심지에서는 오는 것에 의해서 구원을 받고 생명을 얻는데, 신약의 표현대로 하면 십자가로 인해서 구원을 받는데,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만 십자가를 잊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것을 좀 설명해야하는데 말이다.

◈ 솔로몬과 산당제도 !!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는 성전이 중심지를 차지했는데, 그런데 다윗이후에 솔로몬이 독재를 해서 세금을 너무 많이 거두니, 백성들로부터 원성이 높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솔로몬이 그 원성이 높은 것을 달래기 위해서, 이들이 원하는 그 주변에 있는 종교를 용납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세금을 너무 많이 거두어서 그렇게 된 것을, 그만 정책을 잘못해서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솔로몬 자신도 이방종교에 대해서 그렇게 배척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시범조로 결혼을 할 때, 주변에서 이방종교를 챙기고 있는 나라의 공주들과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라전체가 그만 개판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성전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세금으로 돌아가니 말이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고 하니, 그 다음부터는 전통이 무엇인고 하니, 제사를 드릴 때 중심부로 오는 것이 아니라, 거기는 월급을 받고 전문적으로 제사를 드리는 기능인들만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나중에 사두개인들이 되는데, 그 당시에는 제사장이고 말이다.

그리고 이제는 중심부가 아니라 각 지역에서 '산당' 이라는 것이 생겨나서, 이 산당에서 제사를 지내고 만다는 것이다. 중심부에는 오지 않는데, 괜히 고생해서 오면 잔소리만 들으니 말이다. 즉 "우리는 다윗의 혈통으로서 메시야가 어쩌고저쩌고" 라고 하면서, 그동안 늘 들어왔던, 즉 십자가 이야기밖에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십자가를 대체하는 '바알종교' !!

그러니 이제는 십자가 말고, 그 십자가를 대체할 수 있는, 자기 생활을 윤택하게 해줄 수 있는 종교가 무엇인고 하니, 곧 '바알종교' 라는 것이다. 이번 대전 겨울수련회에서 제가 이 바알종교를 'CEO' 라고 했는데, 그것은 회장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전문 경영인' 이라는 것이다. 회장님은 마르둑 신이고 말이다.

신도 기능상 그 역할이 분배되어있는데, 이 회장님의 특징은 무엇인고 하니, 젊어서 고생하고 나이가 들어서 놀러 다니고, 젊은 전문 경영인은 미국이나 유럽에서 학위를 받고 와서, 이 국제화시대에 어떻게 살아남을지, 그것에 대해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코피를 흘려가면서 수고를 한다는 것이다. 실적 그래프를 좀 올려보려고 말이다.

그게 곧 바알신인데, 반면에 회장님은 어떠한가? "아들아, 앞으로 니가 어떻게 하는지를 지켜보겠다. 능력이 안 되면 다른 놈에게 회사를 물려줄 것이다" 라고 하고 말이다. 그러니 사람들은 마르둑 신도 믿지만, 실제적으로 효과를 주는 것은 바알종교라는 것이다.

이 바알과 결혼한 여자가 곧 '아세라' 인데, 이렇게 옛날에는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도 있었다는 것이다. 비단 안상홍만 그런 게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는 신을 결혼시키지 못해서 환장하는 모습이 있다는 말이다. 현경이란 여자 신학자도 그렇고 말이다.

이번 수련회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인간의 역사 속에는 거울이 있어서, 그 거울에 자기 모습을 되비쳐서, 그것을 신으로 여긴다고 말이다. 그러니 자기가 곧 신이라는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되어서, 온 나라에 산당을 지으니 그만 나라꼴이 개판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 더 이상 십일조가 들어오지 않아 !!

그러면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십일조가 들어오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이 걸식에 나서는데, 무슨 스님도 아니고 말이다. 그런데 그들은 고상한 꽃거지이기 때문에 무슨 짓을 하는고 하니, 사적으로 개인에게 축복을 해주는 축복 전문가로 바뀐다는 것이다.

그게 요즘 말하는, 교목, 군목, 원목들인데, 이들은 재단이나 그 속한 단체에 결코 싫은 소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새벽부터 기도하기를, 자기 병원에 손님이 많이 오게 해달라고 하고 말이다. 자기 학교에서 서울대학교에 많이 가게 해주시고, 또한 대한민국을 잘 지켜달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군목들은 특히 여호수아를 좋아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중에서 가장 악질적인 것이 '회목' 인데, 즉 교회 지킴이라는 것이다. 나이가 든 장로들이 돈을 모아서 지은 그 부동산을, 젊은 목사가 와서 잘 키워달라고 월급을 주고 데리고 온다는 것이다. 교육관도 짓고, 공동묘지도 새로 조성하고 말이다. 즉 훌륭한 CEO가 되어달라는 것이다.

◈ 천상회의에 끌려갔다가 온 '선지자' !!

그러니 이런 모든 것들이 다 일종의 밥벌이인데, 여기에 대해서 감히 비판하면서 외친 자들을 '선지자' 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선지자들은 무엇을 보고 배워서 바른 소리를 하는가? 무엇을 보고 배운 것이 아니라, 어디로 끌려갔다가 온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게 바로 하늘인데, 하늘에 끌려가서 천상회의에 참석하고는, 이 지상의 것들은 다 속임수임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달을 보고 해를 보고 비는 것이나, 교회를 보고 비는 것이다 똑같다는 말이다. 개혁주의 신학이고 뭐고 간에 다 속임수라는 말이다.

(렘 23:16)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의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
(렘 23:17) 항상 그들이 나를 멸시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평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며 또 자기 마음의 강퍅한 대로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르기를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느니라
(렘 23:18) 누가 여호와의 회의에 참여하여 그 말을 알아들었으며 누가 귀를 기울여 그 말을 들었느뇨

왕이라고 하면, 백성들을 하나로 모아서 자기 말을 잘 듣도록 하는 것이 최고인데, 그래서 솔로몬의 경우에, 자기 부인들의 종교를 가지고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서 세금만 잘 내도록 하면, 그게 좋은 신하이고 백성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선지자들은 진짜인데, 이 진짜는 가짜로 둘러 쌓여도 전혀 기죽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엘리야와 같은 경우에는 겁이 나서 현상수배가 걸리니 도망을 가고 했는데, 또한 엘리사도 아하시야 왕이 뭐라고 했는가? "이 사기꾼, 걸리기만 하면 내가 죽인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람 나라의 군대가 자기 사마리아를 둘러싸서 모두가 굶어죽게 생겼는데, 그것은 선지자가 제대로 자기 역할을 못해서, 즉 선지자가 되어서 제대로 기도를 했으면 어떻게 이렇게 남의 나라가 우리를 괴롭힐 수 있느냐는 말이다. 그런 식으로 공격을 하니 엘리사도 목숨이 위태롭다는 것이다.

◈ 내 증인이 되리라 !!

지금 나라꼴이 이러한 지경인데, 세상이 돌아가는 게 말이다. 모두가 개판인데, 교회가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전부가 자기 교회밖에 없는데 말이다. 하지만 분명히 성경에는 뭐라고 하는가? "마지막 때에 성령이 임하면 예수의 증인이 되리라" 라고 한다는 것이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그렇게 성령이 임하니 그것이 곧 천상회의에 참석한 자가 되는데,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베드로전서 2장에 보면,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라고 하는데, 분명히 그런 자들이 있기 때문에 읽어보라고 편지를 보냈다는 것이다.

(벧전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 이놈들, 내가 가만히 두지 않겠다 !!

빌립보 교회의 경우에 환난이 심했는데, 많은 고난과 능욕을 당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린도 교회의 경우에도 완전히 맛이 갔다는 것이다. 거짓 사도들이 판을 쳤는데, 그런데도 교인들이 거기에 다들 엎드려 있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뭐라고 했는가?

자기가 가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했는데, 어떻게 다른 복음과 다른 예수도 구분하지 못하고 그렇게 하고 있느냐는 말이다. 얻어맞아도 좋다고 하고 말이다. 자기는 이 땅에서 고난을 받았는데, 그러나 그 거짓 목사들은 갉아먹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가짜 목사들만 원하느냐는 말이다. 하지만 본인들이 성령을 받지 않으면, 결국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아무리 전부가 다 가짜라고 해도, 진짜는 가짜를 두고 가짜라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거기에 대해서 부정적 인식이 어떻고 저떻고 하는데,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가짜를 이야기하려면 사람들이 듣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렇게 해서 교회가 되겠나? 몇 명이나 모이는데? 그런 소리를 해서 다 가버리면 아무도 없는데 말이야" 라는 소리나 하고 말이다.

◈ 성령을 받았으면 멈출 수가 없어 !!

하지만 교회는 사람이 몇 명이 모이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성령이 있는 한 주님이 알아서 만들어내신다는 것이다. 두 명이 되든, 세 명이 되든 말이다. 즉 인간이 만든다고 해서 교회가 되고, 안 만든다고 해서 없어지는 게 교회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일은 성령을 받았으면 멈출 수가 없다는 말이다. 어차피 인생은 안개인데, 물론 촉촉한 면은 있지만 금방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 세상을 없는 것으로 여겨야 하는데, 그 속에서 성령을 받았다는 것이 얼마나 큰복인지 모르는데,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아무리 신학박사가 와서 우겨도 하늘나라의 정문에서 받아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니 말이다. 그리스도의 사람은 어떠한가? 비록 지금 받는 환난은 힘들고 어렵지만, 그건 장차 올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이 땅에서 미움을 받은 것처럼, 너희들도 미움을 받게 되어있다" 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마 24: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렇게 이 세상은 우리들을 미워할 수밖에 없는 세상으로 숙성되게 되어있는데, 그것을 우리가 고치거나 변경할 수는 없고, 다만 우리는 외칠 뿐이란 것이다. 물론 그들이 오지 않는다고 해서 입을 다무는 것도 아닌데, 성령께서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시니 말이다.

그것을 보면, 모세와 엘리야가 걸어갔던 길, 그리고 사도들이 걸어갔던 길, 그렇게 선지자들이 돌에 맞아서 죽었던 것을 생각하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실감나는데, 예수님께서 "아벨과 사가랴의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라고 하셨는데, 그들 속에 주님께서 함께 하셨다는 것이다.

(마 23: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 나다나엘은, 외로울 틈도 없어 !!

비록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혼자 있었지만, 주님께서는 그것을 다 아셨다는 것이다. 그것을 나다나엘이 믿었고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외로울 틈도 없는데, 그러니 우리는 이 세상에서 '구원의 여정' 속에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요 1: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요 1:48) 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요 1: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요 1:5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이제 교재 263페이지를 보자.

** 그렇게 성도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는, 예수님과 동일한 인식구조를 지니는 자가 되는 것이다.

왜 그런가?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게 되면, 예수님이 이 세상을 보는 것처럼 성도도 이 세상을 보는 눈이 열린다는 것이다. 성경을 연구한다고 해서 열리는 게 아니고 말이다. 물론 안과에 가도 안 되고, 누가 뭐라고 해도 예수님의 영을 받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 윗동네가 덮치게 되면 !!

이번 수련회에 참석하지 못한 분들을 위해서 핵심만 20초 동안만 간추려보면,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역사는 끝나버리고, 여기 마지막에는 그만 위에서 성령이 와버린다는 것이다. 역사를 계속해서 끌고 가는 게 아니고 말이다. 이렇게 성령이 내려왔다는 것은 위의 세계가 덮쳤다는 의미인데, 그러니 역사를 제 아무리 끌고 가도 위에서 덮치게 되면, 그 끌고 가는 게 삼킴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진짜 20초네. ㅋㅋ)

제가 이것을 보자기를 가지고 강의한 적이 있었는데, 보자기에 그림을 그려서, 초가집도 있고 말이다. 가락교회에서 한 강의이지 싶은데, 그런데 그 보자기를 도화지처럼 말아버리면 그 그림은 말려버리고 없다는 것이다. 자기가 그 안에 있었다면, 역시 말려서 들어가 버린다는 것이다. 즉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만 없다는 말이다. 그렇게 역사 속에 우리도 포함되어있는데, 우리도 역시 아담의 자손으로서 역사 속에 말리는데, 그런데 단지 다른 점은 성령에 위에서 내려왔다는 것이다.

◈ 달라져도, 너~무 달라져 !!

그래서 사도행전을 보면, 항상 모든 일의 시작은 무엇으로부터 하는가? 성령이 온다는 것이다. 사도바울도 성령이 오게 되면 달라지는데, 그때부터는 사람을 봐도 육신으로 본다는 말이다. "이런 육신아, 육신아!" 라고, 즉 "너는 없어질 흙덩어리야" 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예수님도 우리를 볼 때, "너는 공부를 얼마나 잘했어?" 라고 보는 것이 아니라, "육신아, 너는 내 영이 아니었으면 죽었어" 라고 하는 인식으로 보듯이, 우리도 다른 사람을 볼 때 그렇게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이고 말이다. 그러니 남편을 봐도 "이런 육신아, 그래도 꼴에 콩나물은 좋아해 가지고 잘도 먹네. 말씀을 그렇게 좋아하면 얼마나 좋겠니?" 라고 해야한다는 말이다(ㅋㅋ).

그렇게 하다가 나중에 죽게 되면, 그 관속에 있는 것이 진짜로 육신이 맞는데, 성경말씀대로 흙에 속하고 티끌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티끌로 돌아가도 우리의 속 사람은 성령을 통해서 날마다 새롭게 되는데, 겉사람은 후패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후패해서 떨어지는 것에 병행해서 속에서 자라나는 것이 있는데, 그게 우리의 속 사람이라는 말이다.

(고후 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계속해서 교재를 보자.

** 아나운서와 청취자를 연결해주는 전자파가 아나운서와 말소리의 공간 - 시간구조와 청취자가 듣는 소리의 공간 - 시간 구조를 동일하게 가져가지 아니하면 청취자들은 아나운서의 말소리를 알아들을 수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성도로 하여금 예수님이 지니신 인식구조와 동일한 인식구조를 심어서 새로운 피조물을 만들어내신다.

◈ 서로 주파수가 맞아야 !!

무슨 말인가? 서로 주파수가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령을 받은 사람도 24시간 거의가 세상 사람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아침에 눈만 뜨면 "이놈의 돈이 다 어디로 갔노?" 라고 하면서 하루를 시작하는데, "언제 자식놈이 용돈을 갖다주겠노? 집에 와서는 한 바퀴 둘러보고, 등기소에 가서 어디 저당을 잡히지 않았는지 확인이나 하지 말고, '엄마, 돈을 많이 벌었어' 라고 하면서 집이나 새로 지어주지" 라고 상상이나 하고 말이다.

왜 그렇게 하는가? 그러한 상상조차도 하지 많으면 견디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몸만 바짝바짝 말라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가운데 낯선 음성이 들리는데, "에이, 믹서기로 갈아버려야지"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니 바로 그렇게 이 세상전체를 돌아가게 하는 것도, 사실은 복음이 귀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주님께서 의도적으로 그런 돌아가는 장치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죄 속에 들어있지 않으면 하나님의 의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는 것이다. 자기가 천하의 의인인 줄 알고 시건방이나 떨지 말이다. 그러니 주님께서는 항상 우리를 죄 가운데 반복해서 있게 함으로서, 성령을 받은 사람은 주님의 십자가의 그 용서하심이 얼마나 고마운지 매일매일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교재 264페이지를 보자.

**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질 수밖에 없는, 그런 세상에 대한 관점을 가지고 계셨다고 한다면, 성도도 또한 그 십자가의 발자취를 밟아보면서 예수님의 새상보기와 동일한 관점을 가져야만 한다. 천국은 이런 자들만의 세상이다. 다른 관점을 가진 자는 배제된다.

(벧전 2: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 새롭게 듣는 '헨델과 그레텔' !!

'헨델과 그레텔' 이라는 독일동화를 보면, 계모가 와서 아이 둘을 그만 쫓아내어 버리는데, 밥 해주는 것 자체가 아예 싫다는 것이다. 즉 남의 여자에게서 태어난 자식은 보기만 해도 미운데, 여자가 그렇다는 말이다. 자기 남자가 남의 여자를 통해서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에게 기쁘게 밥을 해줄 여자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편 몰래(?) 쫓아내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쫓아내도 기어 들어오고, 또 쫓아내도 기어 들어온다는 것이다. 물론 기지 않고 걸어서 들어오는데,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집에서 쫓겨갈 때에 돌맹이를 가지고 가서 떨어뜨려 놓았다가 그것을 보고는 숲에서 집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독일에는 숲이 많은데, 이 점만은 제가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가 있는데 말이다(ㅋㅋ). 처음에는 떡 조각을 가지고 갔다가 새가 와서 다 먹어버려서 안 되니 다음부터는 돌맹이를 가지고 간다는 것이다.

읽어본 적이 하도 오래되어서 동화가 조금 헷깔리는데, 아무튼 그렇다는 말이다. (녹취자 - 처음에는 돌맹이를 가지고 무사히 귀환하는데, 그런데 나중에는 빵 부스러기를 가지고 갔다가 새가 먹어버리는 바람에 못 돌아오고 마녀에게 붙잡히죠. 아직은 저의 젊음이, ㅋㅋ)

◈ 돌맹이를 보고 따라와라 !!

하여튼 예수님은 이 캄캄한 세상에 홀로 오셔서 혼자 떠나시고 말았는데, 그런데 우리에게 돌맹이를 남겨주셨다는 것이다. 그러니 여기서 "너희에게 본을 끼쳐" 라고 하시는 것은, 예수님이 남겨주신 그 십자가가 길이 되어서 우리를 따라오게 하는데, 그것은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받은 사람에게만 해당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강의를 하면서 처음에 이야기했지만, 헬스클럽에 3일을 잘 다니다가 나중에 다니지 않는 것처럼, 처음에는 십자가가 어떻고 저떻고 하다가도 나중에는 어떻게 나오는가? 십자가고 구원이고 간에 모든 것이 다 식상하고 지겹다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을 보고 따라오는가? 큰 교회인가? 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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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