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십자가마을겨울수련회(1~10강)(에스라,느헤미아)(녹취)
2013십자가마을겨울수련회(1~10강)(에스라,느헤미아)(녹취)
이름 : 구득영(IP:203.223.97.152)
2013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 제10강 (셋날 오전1) - 에스라, 느헤미야
강의 : 이근호, 녹취 : 한윤범
히브리서 1장 1절에 보면,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라고 되어있고, 또한 히브리서 8장에 보면, "구약에 있는 것은 모형이고 그림자이다" 라고 되어있어요.
(히 1:1)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히 1:2)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
(히 8:5)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가라사대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지으라 하셨느니라
◈ 흐르는 시간을 냉동건조 !!
그러면 우리가 이번에 공부했던 에스라와 느헤미야도 모형이고 그림자입니다. 모형이고 그림자인데, 이게 곧 역사거든요. 여러분은 이해가 잘 안 될 거예요. 우리는 역사는 흐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모형은, 설계사무소에 가면 모형이 있는데, 고정이 되어있어요. 하나님께서 흐르는 시간을 어떻게 고정된 모형으로 잡았는고 하니, 시간을 동결을 시켜버립니다. 시간을 그렇게 해야만 세 토막으로 나눌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 동결시키는 방법이 느헤미야 13장에 보면 나오는데, 즉 "그 날에 모세의 책을 낭독하여" 라고 되어있지요. 그러니 냉동동결을 시키는 방법이 바로 역사에 모세언약을 주입하는 것인데, 그러면 역사가 그만 얼음이 되어버려요. 딱딱한 고체로 말입니다.
왜냐하면, 율법 안에서는 모든 것이 갇혀있기 때문이죠. 분명히 흐르는 시간인데 모세율법 안에서 단단해진다는 겁니다. 왜 부산(영천?) 사람들은 '돔배기' 라고 하죠. 상어고기를 끊어서 팔잖아요. 그렇게 시간을 얼려놓고서 동결시켜서 끊어버리는데, 그 동결하는 방법이 곧 모세언약이라는 겁니다.
(느 13:1) 그 날에 모세의 책을 낭독하여 기록하기를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영영히 하나님의 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 할례, 안식일, 십일조 !!
그래서 다음과 같이 보시면 되요. 이스라엘에 흘러오는 모든 역사를, 즉 하나님께서 바사 왕을 통해서 느헤미야를 보내주고 하시는데, 이러한 시스템, 즉 "모세언약에 의해서 나라가 만들어진다면 이렇게 만들어진다" 라고 하는 결정체를 만들어버려요. 그게 세 가지 조건인데, 할례, 안식일, 그리고 십일조라는 말입니다.
여기 할례 안에는 제사장 중심의 제사장 제도인데, 성전이 있어야 제사장이 할 일이 있잖아요. 그러니 성전과 제사장인데, 신체에서는 할례를 행하고, 그리고 안식일과 십일조인데, 이러한 것들을 가지고 모세언약으로서 국가 시스템을 유지하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왕이 빠졌죠. 왜냐하면, 왕은 모세언약의 완성형으로서 다윗자손이 여기에다가 채워야 되기 때문에 비워놓는다는 겁니다. 그러니 모세언약은 다윗언약에 비해서 대비하는 것이고, 준비하는 것인데, 즉 동결된 상태에서 그 다음에 진짜 하나님이 왕으로 오셔서 이 율법에다 마저 채워주시면, 진짜 하나님 나라, 즉 하나님이 그리워하시던(?) 나라가 된다는 겁니다.
◈ '14-14-14'로 세 토막을 !!
그렇게 되면, 이것이 냉동동결이 되는데 역사를 냉동동결을 시키고, 그 다음에는 14-14-14로 토막을 내는 거죠. 그 토막낸 기준이 뭐냐 하면, 바로 다윗언약에 준해서 토막을 냅니다. 토막을 낸다는 것은, 어떤 댐을 세워놓고 모든 이스라엘 역사를 집어넣습니다. 그렇게 집어넣은 상태에서 냉동동결을 시켜놓고, 그것을 '묵시' 라는 칼로 토막을 낸다는 겁니다.
묵시라고 해서 천사가 와서 잘라내는 것이 아니고, "이제는 완료되었다. 완성되었다" 라는 티를 내는 것이에요. 이제는 충분하기에 역사가 더 이상 진척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역사가 완성의 상태에 도달했기 때문에 말이죠. 즉 다윗의 자손이 오면 완성의 상태에 도달되는 겁니다.
◈ 로마서에서 말하는 복음이란?
이것을 토막내보니까, 여기에 다윗도 죽었으니까, 다윗자손은 개인적으로 비어있고, 나중에 다윗에 속했던 모든 이스라엘도 통째로 흔적도 없이 흩어져버리고 만다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나머지 마지막 14대는 역사에 나타나지 않는 케이블을 깔아서, 나중에 성령과 마리아의 만남을 통해서 드디어 다윗의 자손, 즉 진짜 왕이 등장합니다. 그것을 로마서 1장에서 복음이라고 했는데, 즉 "다윗의 혈통에서 십자가의 죽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났다" 라는 겁니다.
(롬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롬 1: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롬 1:3)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롬 1: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 역사에 등장하지 않는 역사 !!
역사에 등장하지 않는 역사가 무슨 말이냐 하면, 이걸 아셔야 되요. 역사의 주인공은, 즉 주체는 항상 인간들입니다. 인간들의 수고와 행함으로 역사를 일구어나가는 거예요. 그런데 전혀 역사의 눈에 띠지 않고, 역사에서 사라진 것처럼, 모든 게 끊어진 것처럼 하면서도, 결국은 지하 케이블을 통해서 불쑥 솟아오르면서 난데없이 묵시적인 칼질을 해버리는 그 연결고리, 바로 그것이란 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역사 속에 숨어있는 모습으로 오셨는가? 그것을 벨라스케스의 1656년작 '시녀들' 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제가 앞에서 다 이야기를 했지요. 그런데 이 역사라고 하는 것은, 인간들이 역사라고 납득이 되기 때문에 역사가 되는 거예요. 그러면 납득이 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인간들은 자기 행위를 다시 되받아서 "내가 역사의 주인공이다" 라고 생각하도록 거울을 장착한다고 했지요. 거울 그 자체는 어떠한 영상이 보이지 않지만, 거기에 비추는 반사되는 인간은 자기의 모습으로서, 그렇게 자기 자신에게 환상을 꿈꾸고 희망을 갖고 살아간다는 겁니다.
◈ 역사의 주인공은 곧 '나' !!
제가 어린아이 이야기를 하면서, 즉 "엄마, 나는 태어나기 전에 어디 있었어?", "응, 너는 하늘나라에 있었어" 라고 하는데, 질문은 누가 한 거예요? 어린아이가 질문한 것이고, 어린아이가 그런 질문을 할 때는, "나는 여기 분명히 있다. 그 있음을 키워서 나의 역사로 확장시키겠다" 라는 나름대로 노림수가 있다는 거예요. 어린아이의 노림수가 말이죠.
어느 정도로 확장을 시키느냐 하면, 마치 자기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있을 것처럼, 마치 자기는 없었던 적이 없는 것처럼, 그렇게 지금도 우리는 계획을 꾸며나가는 겁니다. 만약에 오늘 자기가 없어진다면, 지금 있는 은행통장이라든지, 이런 것, 저런 것 등등, 그런 모든 것들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죠. 절벽의 나락에 떨어지니까 말이죠.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할 때는, "내일도 내가 있고, 모레도 내가 있고, 또 한 달 뒤에도 내가 있다" 라고 간주하고 지금의 계획을 시도하는 겁니다. 무슨 소리냐 하면, 그게 곧 강남 스타일이에요. "갈 때까지 가볼까~" 라고, 계속해서 자기는 살아있을 것이고, 살아있는 한 역사의 주인공이라는 겁니다. 즉 "나는 포기하지 못한다" 라는 것이죠. 그래서 "갈 때까지 가볼까~, 옵빤 지옥 스타일~" 라는 겁니다(ㅋㅋ).
◈ 무엇을 회개하라는 것인가?
이렇게 율법으로 우리를 동결시켜놨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아무리 날아봐야 죄 안에 갇혀있고, 심판아래에 있다는 겁니다. 냉동상태예요. 더 이상 역사의 진척이란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늘나라가 왔다. 마지막 심판의 나라가 왔다. 이제는 교체될 나라가 등장했다. 회개하라" 라고 하시는데, 무엇을 회개하라는 말입니까?
"내가 역사의 주인공 노릇을 했습니다" 라고 하는 것 자체는, 말씀의 위력을 모독하고, 또 모세언약을 모독하고, 자기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더 중요하고, 그것을 이용하려고 했던, 즉 자기가 역사의 주인공 된 그 자체에 대해서 회개하는 겁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물 속에 들어감으로써 모든 것이 깜깜해지고, 즉 죽음 속에 들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절망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물 속에 같이 들어오신 분이 계시죠? 예수님도 같이 요단강에 들어왔는데, 그런데 예수님에게는 하늘의 문이 열리고 비둘기 같이 은혜가 내려왔습니다. 물론 우리에겐 비둘기가 없어요. 독수리 똥만 있을 뿐이지, 다른 것은 없어요.
그렇게 비둘기 같이 성령이 오니까, 이제는 하늘과 땅이 유일하게 내통하고 소통하는 창구가 드디어 생겼다는 겁니다. 이것을 마가복음에서 복음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즉 모든 것이 꽉 막혔다가, 그렇게 숨이 막혔는데 숨이 트이는 거예요. 하늘이 열리면서 말이죠. 성경은 그런 스토리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모든 역사는 에스라와 느헤미야에서 스톱인데, 물론 스톱할 때 그냥 스톱하면 안 되고, 스톱을 해야될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모세언약의 효과는 여기까지" 라는 겁니다. 더 이상은 효과가 없어요. 그 효과를 보여주기 위해서 느헤미야 10장을 보겠는데, 오늘까지 참석해야 마무리가 되는데, 드라마의 끝도 안 보고 나가버리면 안 되는데 말이죠.
◈ '인쳤다' 라는 의미는?
느헤미야 10장에 보면, "그 인친 자가" 라고 나오죠. 여기서 '인쳤다' 라는 의미가 성경에 여러 군데 나오는데, 구약에는 드물게 나오고 신약에는 역사가 끝난 시점이기 때문에 많이 나옵니다. 고린도후서에도 성령이 '인쳤다' 라고 나오는데, 제가 소개하려는 것은 고린도전서 9장 2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느 10:1) 그 인친 자는 하가랴의 아들 방백 느헤미야와 시드기야
(고전 9:2)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니 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이렇게 '인쳤다' 라고 할 때, 느헤미야 10장에선 모세언약의 완료로서 인친 것이죠. 그런데 고린도전서 9장 2절에 나오는 인친 것은, 예수 안에서 인친 것이죠. 느헤미야 10장에서는, 역사의 마지막 대기상태에서, 즉 역사적 입장에서 인친 것이고, 그 다음에 고린도전서 9장에 나오는 것은 이미 묵시 안에서 인친 것이란 말입니다.
◈ 중요한 것은, 그 관계성 !!
그러면 어느 것이 더 효과가 있겠습니까? 대기상태에 있는 것은 아직 메시아가 안 왔으니까 미흡함이 있잖아요. 하지만 '예수 안' 이라는 것은 종결된, 즉 다윗언약의 완성 또는 다윗의 자손 왕으로 오신 안에 인친 것이죠. 즉 인친 시스템이 어떠한 '관계성'을 보여주는지, 그게 중요하다는 겁니다. 도장을 찍는 게 문제가 아니고, 인을 치고 인을 받는 사이에 어떤 연줄이 있어서 끊어지지 않느냐는 겁니다.
그래서 이 '인쳤다' 라는 것을 현재 상황 속에서 설명하기 위해서 제가 이런 예를 들겠습니다. 촌집에 가면 대청마루가 있잖아요. 거기 걸려있는 액자에 보면 사진들이 들어있는데, 물론 요즘 젊은 사람들은 크게 확대해서 하나만 걸어놓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그때는 그게 아닌데, 특히 아이들이 많을 때는 보기가 혼잡해요. 그 애가 그 애 같고, 나중에는 중력에 의해서 밑에 내려앉아 있고 말이죠.
옛날 교복을 입고 찍은 사진도 있고, 까까머리로 찍은 사진도 있고, 가끔은 육군사관생도복과 비슷한 교복을 입고 찍은 것도 있어요. 그냥 학교교복인데 말이죠. 그리고 자식들이 다섯 명이라면, 거기에 빛 바랜 사진 속에 모두 다 있는데, 그게 곧 인친 것이란 말이죠.
◈ 누가 뭐라고 해도, 너는 내 자식 !!
무슨 뜻이냐 하면, 지금 대청마루에 걸려있는 사진 속의 둘째 아들이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서있다고 하면, 하지만 지금 부모가 보는 그 순간에 둘째 아들이 서울에 다니는 직장에서 교복을 입고 서있는 겁니까? 그건 아니지요. 벌써 세월이 지났고, 고향의 부모님 집에 걸려있는 사진이 어떤 자세로 찍혔는지 관계없이, 자기는 서울에서 애인하고 마음대로 까불고 놀고 있잖아요.
그러면 움직이지 않는 사진 속의 아들은 같은 아들이 아니라는 말입니까? 그건 가짜입니까? 분명히 동일인물이 맞죠. 둘 다 아들이 맞아요. 서울에서 까불고 있는 것은 움직이는 것이고, 반면에 고향의 늙은 아버지 집에 걸려있는 것은 동결된 상태라는 겁니다.
그러니 '인쳤다' 라는 것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아무리 까불어도 주님은 고정된 것으로 보는 거예요. 즉 "도장이 찍혔다" 라는 것은, "네가 어떤 활동을 하든 관계없이, 너는 결국 내 앞에서는 이 상태로 나의 자식이다" 라는 겁니다.
◈ 느헤미야, 시드기야, 스라야, 아사랴, 예레미야, 바스훌 !!
느헤미야 10장에 "그 인친 자는 하가랴의 아들 방백 느헤미야와 시드기야, 스라야, 아사랴, 예레미야, 바스훌" 라고 되어있는데, 저는 이런 구절을 볼 때마다 무슨 생각이 드는고 하니까, 아나운서 시험을 칠 때 다른 시험문제는 필요가 없고, 이런 구절을 빨리 읽어보라고 하면 되지 싶어요. 이름만 나오면 참 곤란해지는데, 십자가 마을이나 우리교회 교인들의 이름도 다 못 외우니 말이죠.
아무튼 이렇게 이들이 인을 쳤다는 것은, 이들 입장에서는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최고의 축복을 받은 겁니다. 왜냐하면,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면서 어떻게 까불고 그 무슨 행동을 해도, 주님께서는 예수 안에서는 얼음이고 채널고정이다" 라고, 그렇게 되잖아요. 우리는 얼음이라는 말이죠.
◈ 예수 안과 성령 안 !!
예수 안에 있는 것을 신약성경에는 성령 안에 있다고 하는데, 마지막 시간이지만 약간 어려운 것을 해봅시다. 갈라디아서 3장 2절에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라고 하는데, 이것은 "너희가 성령을 받았구나. 그럼 끝" 이라고 하는 게 아니고, "너희는 성령을 받았는가? 받았으면, 혹시 율법의 행위로 받았는가?" 라고 묻는 거예요.
(갈 3:2)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율법이란 거룩한 것이고 선한 겁니다. 결코 무시할 수 없어요. 하나님 주신 거니까 말이죠. 그래서 "혹시 하나님이 주신 것을 잘 지켜서 성령을 받았어요?" 라고 사도바울이 묻는 거예요. 무슨 답변을 기대하면 묻는 겁니까? "아닙니다. 결코 아닙니다. 절대로 그럴 수는 없습니다. 충성!!" 이라는 것을 기대하면서 말이죠.
다시 말해서, 지금 십자가라는 완성의 효과와, 율법이라는 미완성의 효과 사이의 차이를 가지고 십자가를 믿고 있는지, 그것을 점검하는 거예요. "혹시 성경말씀을 지켜서 구원받고 천국에 가는 거예요?", "아닙니다", "그러면?", "십자가에서 나온 성령을 믿게 되어서 갑니다", "그렇지요. 앞으로 제군은 뭘 자랑하겠습니까?", "십자가만을 자랑하겠습니다" 라고, 그렇게 인친 거예요. 예수 안에서 말이죠.
그러나 사도바울의 측정, 그리고 하나님의 측정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사도바울의 권면과 명령이 많거든요. 여기서 눈속임으로 성령을 받았다고 우기는 사람들은, 사도바울의 명령과 훈계에서 전부다 넘어집니다. 가짜가 색출이 되요. 인침을 받지 않고도 인침을 받은 것처럼 행세했던 모든 이단들이 다 색출이 된다는 겁니다.
◈ 다시 정리하면, '역사는 여기까지, 끝' !!
다시 이야기합니다. "지금 성령을 받았다. 하늘나라가 왔다" 라고 하면, 그런데 에스라 이후에는 무엇이 의미가 없어요? 역사가 의미가 없는데, 역사 속에 주님께서 거울을 박아놨기 때문에, 그 역사에서 우리 인간이 찾고자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내가 역사의 주인공으로서, 이 역사를 만드는데 얼마나 기여했고, 내 행함이 얼마나 보태서 이런 역사란 찬란한 실적을 남겼는가?" 라는 것에 관심이 있지요.
그런데 그것이 모세율법에 의하면,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율법을 지킨 것이 아니고 율법 앞에서 모든 것을 발각을 당할 준비를, 즉 노출되어있는 상태죠. 즉 자기 것이 없는 거예요. 율법에 의해서, 말씀에 의해서, 즉 "70년만에 돌아오리라" 라는 예레미야에게 준 약속 때문에, 결국 율법에 밀려서, 그런 율법에서 우린 벗어날 수 없는 입장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는 것이 곧 에스라와 느헤미야에요.
우리는 모세는 과거 이야기이고 거기에서 도망쳤다고 여겼는데, 그런데 그 율법이 끝까지 따라와서, 우리보다 먼저 앞장서서 우리를 가로막은 겁니다. "헤이, 이봐" 라고 하면서 율법이 호명한 거예요. "너희들은 빼도 박도 못해. 안 돼. 율법 안에서 못 빠져 나와" 라고 하면서 가로막은 거예요.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말이죠.
성전도 역시 마찬가지인데, "성전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구나. 십일조도 다 무의미한 게 아니다" 라는 것을 통해서, 그들을 가로막은 거예요. 물론 그들은 완벽하게 지키지는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들에게 말썽이 일어나니까 말이죠. 어쨌든 간에 그것이 취지가 아니고, 에스라와 느헤미야에서 중요한 것은 "역사는 여기까지, 끝!" 이라는 겁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에서, 그들이 귀환할 때 그래도 만약에 자기들 힘으로 독립한 것 같으면, 그들에게 역사의 주인공이라고 해주겠는데, 하지만 다시 돌아오게 된 것이 누구 덕분입니까? 여호와를 모르는 하나님께 벌을 받아야 될 짐승과도 같은 제국인 바벨론과 그 이후의 바사 나라, 그 바라 나라를 누가 지배했습니까?
다윗언약을 이루기 위해서 모든 것을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서, 전혀 자기들의 적이라고 여겼던 바사 나라의 지도자인 다리오 왕에게 모든 지원금을 받아가면서, 즉 타인의 도움으로 성전을 지었잖아요. 그러니 자랑할 게 뭐가 있어요?
그러니 귀환된 그들은 역사의 주인공에서 사실은 빠져야 되요. 빠지고 그 빈자리에는 다윗언약의 완성자, 미지의 어떤 누구, 거울을 남겨놓고 떠나간 사람, 인간이 역사에 갇히게 된 것을 두고 나중에 "내가 그렇게 갇히게 했다" 라고 하면서 자기 정체를 드러낼 마지막 때의 메시아, 바로 그분의 자리가 있음을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대비했다는 말이죠.
◈ 냉동인간은 어디로?
그런데 "역사의 주인공은 우리가 아니다. 이미 우리는 끝났다. 그러니 십자가를 믿는다" 라고 해놓고, 막상 사도바울의 권면과 지시와 명령이 나오니까 인간들이 어떻게 합니까? 이래서 인간들이 숨으려고 해도 숨을 수가 없는데, 슬슬 인간들이 "이 말씀은 내가 지켰습니다" 라고 하면서 등장하는 거예요.
율법 안에는 무엇이든 심판했다고 분명히 했고, 그래서 우리는 율법에 의해서 죽은 자라고 분명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사도바울이 명령과 지시를 주니까, "이것은 예수를 믿고 난 뒤에 지켜야 되겠구나" 라고 하게 되면서, 그 말씀에 대한 행함으로 구원을 받고자 하는 새로운 자기만의 신앙역사가 드디어 개시가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얼음은 어디로 갔어요? 그 냉동인간은 어디로 갔습니까? "살인하지 말라" 라고 하니까, "저는 아직 살인하지 않았습니다" 라고 나오는데, 하지만 "니가 살인자야" 라는 겁니다. "도적질하지 마라" 라는 것이 로마서에 나오는데, "저는 아직까지 도적질을 안 했습니다", "니가 도둑놈이야", "간음하지 마라", "저는 간음하지 않았습니다", "니가 간음자야" 라고 하는데, 즉 산상설교와 똑같다는 겁니다.
그러니 제 아무리 "복음을 안다. 십자가를 안다. 성령을 받았다" 라고 해도, 믿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고린도전서 3장에 나오죠.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라고 말이죠. 그게 무슨 의미입니까? "모든 것들이 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배치된 것이니, 오직 그리스도만 자랑할 뿐이지, 이 세상의 부동산이나 주식이 얼마고, 그런 것을 자랑하지 말라. 그런 것은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니까, 너도 그 줄기를 타라" 라는, 그런 뜻이에요.
(고전 3:21)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나도 복음을 안다. 십자가를 안다. 성령을 안다. 우리는 같은 형제인데, 왜 같은 형제를 내치는가?" 라고 하면서 온갖 소리들이 다 들리는데, 그런데 막상 사도바울의 명령과 지시에 대해서 이야기하니, "막 살면 안 된다" 라고 나온다는 겁니다.
◈ 저는 레슬링을 하다가 죽었습니다 !!
그러면 갈라디아서를 다시 해봅시다. "네가 성령을 받은 것이 십자가에서 나온 것인가? 아니면 네가 수고했다고 성령을 주었는가? 혹시 네가 말씀을 잘 지켜서 성령을 받아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닌가?", "아닙니다. 결코 아닙니다", "그러면 네가 구원받는 것은 뭔데?", "십자가의 공로입니다", "그러면 너는 어떻게 되는 거야?", "저는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레슬링을 하다가 죽었습니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이제 사는 것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다" 라는 의미인데, 이것이 곧 성령을 받은 것인데, 그런데도 인간들은 성령을 안 받은 상태에서 성령을 받았다는 티를 내면서 스쳐 지나가는 거예요.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부딪쳤는가? 스치고 지나갔는가?
얼마 전에 지구에 혹성이 다가온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나사에서 그냥 스쳐지나간다고 했지요. 그러니 십자가에 부딪칠 뻔하다가 그냥 스쳐지나간 거예요. 접촉사고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그것은 블랙박스에 보면 다 찍혀 나와요. 부딪치지도 않고 그냥 스쳐지나가 놓고는 십자가를 안다고 하는 겁니다.
그 증거로 남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자기가 자기 구원의 역사에 주인공이 되는 겁니다. 자기 부인이 안 되는 것이죠. 집에 있는 부인 말고 말이죠(ㅋㅋ). 즉 "내가 십자가를 알았으니, 이제는 말씀대로 살아서 영광을 돌려야지" 라고 하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그리고 개혁주의 신학, 가고 싶으면 그쪽으로 다 가라는 겁니다. 하지만 그래놓고 복음을 안다고 하지 말라는 겁니다. 알기는 뭘 알아요?
사도바울의 명령을 던져보면 들통납니다. 그런데도 복음을 안다고 우기니 환장하는 거죠. 제가 얼마나 답답했으면, 안양공부에서 그 내용으로 20분을 보냈습니다. "이근호 목사의 문제점은 인간을 전적으로 죄인으로만 보더라. 왜 사람이 믿고 난 뒤에 행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느냐?" 라고 하는 겁니다.
하지만 누가 역사의 주인공입니까? 자기가 행해서 남을 구원시켜 줍니까? 자기가 행한 것이 곧 자기 구원에 보탬이 된다고 하는 짓이에요. 즉 마일리지를 쌓는다는 겁니다. 그런 마일리지는 왜 쌓습니까? 아직까지 냉동동결이 안 됐어요. 자기 역사는 백 날을 해봐야 율법 안에 갇혀있어서 죄밖에 안 되는, 그런 역사라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겁니다.
그 이유는 간단해요. 믿을 수가 없기 때문에(ㅋㅋ), 믿음이 없기 때문에, 믿을 수가 없으니까 대체로 무엇을 합니까? "우리의 착한 행함으로 영광을 돌리자" 라고 나오는데, 그 문장만 딱 따내어 가지고는 로마서에서(?) 기어이 찾아내어서, "봐라, 사도바울도 착한 행함으로 영광을 돌리자고 했잖아. 그러니 사도바울의 이야기나 내 이야기나 똑같잖아" 라고 나오는 거예요.
◈ 예수님의 행동도 계시인가?
'이영욱' 이란 분이 참 좋은 질문을 했는데, 즉 "사도바울은 '나' 라는 이야기를 자주 했는데, 그런데 왜 십자가 마을은 자제를 합니까?" 라고 말이죠. 목사님들은 신학교에 가면 조직신학이란 과목에서 이런 것을 배워요. 거기에 "성경에 나타나지 않는 예수님의 행동도 계시인가?" 라는 대목이 나와요. "사도바울이 쓴 편지도 많고, 요한도 쓴 편지가 많은데, 그런 것도 다 하나님의 계시에 들어가느냐? 안 들어가느냐?" 라는 것을 가지고 토론하는 거예요.
이런 것이 왜 중요한 문제냐 하면, "성령께서 일할 때 성령께서 친히 쓰신 성경책으로만 일하시는가? 아니면 성경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사도바울의 다른 편지나 예수님의 다른 말씀으로도 성령께서 앞장서서 일하시는가?" 라는 것인데, 이게 보통 어려운 문제가 아니죠. 이런 것을 배우기 때문에 목사가 어깨에 힘이 들어가요. "아마추어는 저리가. 니들은 몰라" 라고 하는데, 하지만 배우면 뭐합니까?
성경을 친히 성령께서 쓰셨을 때, 성경에 만약에 "예수님이 곧 계시다. 그리고 사도바울 본받자" 라고 하면, 성경이 계속해서 추가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이 기록된 의미가 없어져버려요. 부록이 있어야만 되고, 업그레이드를 해야하는데, 계속해서 제4판, 제5판 등등, 추가가 되어야 하는 겁니다.
그러면 이제 고고학자들이 빛을 발하지요. "여러분, 사도행전 28장 그 뒤가 궁금하지 않습니까?" 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여러분, 마가복음이 뒤에 어떻게 끝났는지 모르죠. 드디어 고고학적인 발굴을 했습니다. 추가합시다. 성경이 정경으로 인정된 것은 325년 회의이기 때문에, 우리도 지금 회의해서 정하면 됩니다" 라는 식으로 막 나오는 거예요.
◈ 예수님을 핍박할 만한 역사가 숙성되어야 !!
그것은 인간들이 교회라는 시스템, 정치적 시스템을 만들 때는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진짜 부록을 넣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교회나 주교단에서 하는 게 아니고, 즉 노회에서 목사들이 결정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주님께서는 넣어줄 생각도 안 하고 있는데 자기들끼리 김칫국을 마시고 있는 거예요. 성령께서 넣어줄 때는 반드시 얼음, 즉 역사의 냉동동결을 전제로 하는 겁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동결해서, 그 다음부터는 계시가 없어요. 나중에 세례요한이 오기까지, 그게 400년 뒤에 떨어지거든요.
그 중간은 뭐냐 하면, 예수님을 핍박할 만한 역사가 숙성되어야 됩니다. 바리새인의 등장이 그러한데, 그렇게 해서 예수님을 죽여줘야만 됩니다. 그냥 죽이는 것이 아니고 "역사라는 것이 이렇게 더러운 질이구나" 라는 것을 드러내면서, 그리고 역사의 주인공을 자기들끼리 신앙의 이름으로, 즉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름으로 역사를 만드는 것이 오히려 예수님의 피를 내야되는 겁니다.
◈ 나랑 같이 죽자 !!
그러므로 사도바울의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라는 말을 요한복음 식으로 하면, "나랑 같이 죽으면, 나랑 같이 산다" 라는, 그런 원리라는 겁니다. 그러니 "구원이 다름이 아니고, 내 살과 내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에게 영생이 없다" 라는 것이죠.
그러면 우리는 "죽으려니 아까운데요" 라고 하잖아요. 하지만 주님께서 "너는 이미 죽은 자야. 네가 목숨을 끊는 것을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의 2차원적인 해석이지만, 3차원적인 하나님 입장에서 죽었다는 말은, 율법에 갇혔으면 빼도 박도 못하고 이미 그 안에서 모든 자가 다 죽은 것이야" 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죽을 때 모든 자는 이미 죽었다고, 그게 고린도후서 5장 14절에 나오죠.
(고후 5: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미 죽은 자로 보는데, 우리가 자꾸만 역사의 주인공으로 주체자로 등장하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신전에서 신을 보지 못하고 거울에 자꾸만 자기 모습을 되비추면서, 자기 역사를 자기가 경배하기 위해서 오늘도 성경책을 들고 교회에 나오고 설교를 듣는 거예요.
◈ 모든 인간은, 자기가 곧 거룩한 성전 !!
그러니까 모든 인간은 자기가 곧 거룩한 성전이 되어버려요. 누구를 신봉하는 겁니까? 태양과 같은 어버이가 곧 자기 자신이라는 말이죠. 자기를 섬기는 신전, 그것을 두고 성경에서는 "탐심이 곧 우상숭배니라" 라고 하는데, 탐심이 어느 기업체에서 생산됩니까? 어느 공장에 주문하면 됩니까? 탐심은 자동적으로 우리 속에서 나오게 되어있어요. 계속해서 나오죠.
(골 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 성도는, 탐심과 더불어서 !!
성도의 특징은 탐심이 안 나오는 것이 아니고, 그 탐심과 더불어서 성령이 나오면서, "내가 율법을 통해서 탐심을 의도적으로 유도해냈다" 라고 속삭여주는 분이 있다는 겁니다. 즉 동행이죠. "누가 나와 함께 할까♪" 라는 최성수의 동행이 생각나는데 말이죠. 엠마오 내려가는 제자들과 주님께서 동행하시면서, "집에 왜 가는데? 가서 무엇을 할건데?" 라고 물으시는 것, 바로 그것이란 말이죠.
그러므로 성도는 탐심이 없는 사람이 아니고, 탐내지 말라는 그 순간 우리의 의사는 물어보지 않고, 우리 속에 잠자고 있던 욕심이 등장하면서 "이제 들켰네" 라는 거예요. 고린도전후서에 나오는 모든 것, 특히 고린도전서 7장의 한 대목을 읽어드릴 테니까, 우리 또 다시 부끄러워합시다.
◈ 왕자와 결혼하려고 한 것이 곧 죄 !!
7장 36절에 보면, "누가 자기의 처녀 딸에 대한 일이 이치에 합당치 못한 줄로 생각할 때에, 혼기도 지나고 그같이 할 필요가 있거든 마음대로 하라. 이것은 죄짓는 것이 아니니 혼인하게 하라" 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혼인이 무엇에 해당되는 겁니까? 방금 읽었어도 무슨 뜻인지 몰라요? 성경이 그만큼 어려운가요?
"혼인이 죄짓는 것이다. 그런데 너는 혼인하고 싶어서 환장했지. 그래서 숨어있는 죄성을 이 말씀을 성령을 통해서 하게 하니까 들통이 났다" 라는 겁니다. 즉 "예수고 하나님이고 다 치우고, 나는 결혼이나 하겠다고 벌써 세 살 때부터 했지. 여섯 살 때부터 엄마 화장품을 찍어 바르면서, 왕자님과 결혼하겠다고 했잖아. 천사가 와서 12시에 무도회에 참석시켜줄까 싶어서 신발도 잘 관리하고, 그 신발을 신고 왕자와 결혼하려고 했잖아" 라는 겁니다(ㅋㅋ).
그 왕자가 곧 재벌 3세가 아닙니까? 드라마에 다 나오잖아요. 그 드라마가 남의 이야기 같으면 그런 드라마를 사람들이 보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은 "저 드라마가 곧 나의 거울이다. 내 생각과 똑같네" 라고 하는데, 다들 그러니까 설마 그게 죄일 줄은 몰랐겠지요. 하지만 성경말씀은 뭐라고 합니까? "결혼했어요? 죄 지었다고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이미 결혼했는데 어쩌겠어요" 라고 한다는 말입니다.
◈ 아이고, 아이고 !!
혹시나 우리 딸이 결혼식을 할 때 누가 할지는 모르겠지만, 서경수 목사님한테 부탁하고 싶은 것이 고린도전서 7장 28절입니다. "장가가도 죄짓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가도 죄짓는 것이 아니로되 이런 이들은 육신의 고난이 있으리니" 라는 말씀을 주례사로 좀 해달라는 겁니다.
그래서 결혼식에서 "아이고, 아이고" 라고 하면서 우는 거예요. "아이고 자식아, 니가 이러한 불행을 자초하다니, 우리 집안에 이런 비극이, 니가 결혼을 하다니 니가 제 정신이야? 우리 다같이 통성기도합시다" 라고, 그런 결혼식을 거행하자는 말이죠(ㅋㅋ).
'샌더스'를 비롯해서 신학자들은, 사도바울이 결혼을 안 해서, 결혼재미를 몰라서 그런 소리를 한다고 했어요. 신학자들이 도대체 정신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는데, 박사학위를 딴다고 들인 돈이 아까워요. 완전히 마귀의 앞잡인데, 그 인간들은 말이죠. 역사의 동결을 전혀 몰라요. 우리가 있다는 것은 죄에 발각되기 위해서 있는 것인데, 그런 죄 중의 하나가 결혼하는 것이 포함이 되어있단 말이죠.
그것보다도 자기가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서 천국에 들어가겠다는, 그런 천국시험을 치려고 사전에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 그것이 곧 십자가를 모독하는 겁니다. 죽은 자가 시험을 쳐봐야 무슨 소용 있느냐는 겁니다. 죽은 자는 시험지를 들고 가다가 죽으면 되는데, 자기 이름도 제대로 못 쓰고 말이죠.
◈ 엘리제를 위하여 ♬
하지만 이 '인치심' 이란 것은 바로 지게차에서 나온 두 개의 날카로운 발판이 있다는 거예요. 제가 강의하면서 큰 실수를 했어요. 지게차 노래가 영구송이 아니라 '엘리제를 위하여' 라는 것인데(ㅋㅋ), 그런 지게차에서 자기가 만든 노래소라가 나오는 것을 알면 아마 베토벤이 기절을 했을 거예요. 그게 곧 십자가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입니다. "너를 위해서 바친다" 라는, 즉 엘리제에게 바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냉동된 동태니까 말이죠.
우리는 우리 나름의 역사가 있어요. 이런저런 죄들이 그동안 스펙을 쌓았다는 긴 꼬리, 그게 곧 우리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등에 보면 신나는 것이 한두 개가 아닌데, 고린도전서 6장 10절에 보면, 저는 신나는데 함부로 보지 마세요. 또 우는 수가 있습니다.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라는 겁니다.
(고전 6:10)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 술 먹는 놈들은 다 지옥에 가라 !!
다른 것은 몰라도 여기에 술 취한 자가 나오는데, 술은 취하라고 먹는 것이지, 맹숭맹숭하라고 술을 먹습니까? 이 대목에서 제가 왜 신이 나느냐 하면, 저는 예수님을 믿고 술 안 먹었거든요. 그러니까 저의 역사는 아주 멋있는 역사잖아요. 왠지 뿌듯하고, 뭔가 보람이 있다는 말이죠. 그것과 더불어서 생각나는 것이, "술 먹는 놈들은 다 지옥에 가라" 라는 즐거움이고 말이죠.
제가 지난 주일날 설교에 '다미앵' 이란 사람이 처형되는 장면을 거론했지요. 그게 미셀 푸코의 책에 나오는데, 유황불로 지지니까 덜 죽어서 다른 부위인 허벅지를 45센티미터나 걷어서 찔러서 죽인다는 겁니다. 옛날에는 사형이 축제였는데, 춘향전에 보면 춘향을 몰래 타작하는 것이 아니고, 변 사또가 자기 생일에 춘향을 타작함으로 생일축하노래를 대신하잖아요,
그게 왜 축제가 되느냐 하면, 사람은 이런 게 있어요. 악이 자기 손에 의해서 처단되는 즐거움, 그렇게 자기가 미워하는 악이 자기 눈앞에서 작살나고 저주받을 때, 모든 한이 다 풀립니다. 한이 왜 생기는고 하니, 복수를 제때 못해서 생겨요. 정녕 복수가 안 되면 결국 자살을 해버리지요.
최진실과 결혼했던 조성민의 마지막 유서에 보면, "자식들아, 나를 용서하지 마라" 라고 하는데, 이게 무슨 객기예요. 끝까지 자기 역사를 찬란하게 빛내려고 하는, 죽어가면서 말이죠. "아들아, 못난 아비를 용서하지 마라" 라는 것이 어디서 많이 듣던 멘트 같기도 한데 말이죠.
◈ 구석방이라도 좀 넣어주세요 !!
인간은 왜 끝까지 자기 역사를 포기하지 못합니까? 그것이 자살로 이어진 거예요. 쑤그리면 되고 쭈그리면 되는데, 즉 세리와 창기가 되면 되는데 말이죠. 하지만 밑에서 나오는 성령이란 발판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합니까? 그동안 자기가 살아온 것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자기 속에 있는 욕망과 악을, 또 자기 속에서 끄집어낸 선으로, 그것을 대결구조로 이어가서, 어쨌든 간에 악은 숫자를 죽이고 선은 많이 행하는, 그러한 스펙을 쌓아서 나중에 청산할 때, 대차대조표를 가지고 빼기를 할 때, 나머지 이익 분을 가지고, "그래도 구석방이라도 좀 넣어주세요" 라고 들이밀려고 하는 겁니다. 그런 자기 선을 쌓는 행위 중의 하나가 교회 다니기, 예수 믿기였다는 것이죠.
그래서 조성민의 장례식을 할 때도, 성도라고 해서 그런 모습이 있잖아요. 십자가를 그려 넣고 말이죠. 아무튼 제 눈에는 그런 것만 보이는데, 하지만 성도는 자꾸 감추면 안 되요. 감추면 자신이 마치 의인인 것처럼 행세하게 되죠. 그런 의인이 되어버리면 "내 살과 내 피를 마시라" 라고 하는 주님의 십자가가, 주님이 그 순간만큼은 쓸데없는 짓을 한 거예요.
우리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내가 십자가를 졌다. 그 다음부터 니가 알아서 착한 일을 해라. 내 영광을 가리지 말고" 라고 하면, 우리는 "네, 고맙습니다. 알아서 잘하겠습니다. 이렇게 십자가가 있고, 또한 내 안에 성령이 있으면 성령과 더불어서 협의해서 착한 일을 하겠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열매를 많이 거두겠습니다" 라고 나오더란 말이죠.
◈ 천국은, 달라도 너~무 달라요 !!
그것은 결국 역사의 주인공은 성령이 아니고 자기가 주인공 노릇을 하면서, 그 노림수가 뭐냐 하면, "나는 성령의 힘으로 합니다" 라고 하면서 성령이 주인공이라고 또 다시 위선을 떠는 겁니다. 그렇게 성령이 주인공이라고 하는 사람들을 한번 건드려보세요. 왈칵하는데, 성령이 화내는 법도 있습니까?
그래서 "과연 당신이 하는 행동이 성경에 합당한가 보자" 라고 하면, 그만 입이 쑥 들어가 버려요. "당신, 이런 행동을 했지. 먹는 것과 입는 걸로 족한 줄 알라고 했는데, 당신은 하루에 몇 번을 그렇게 알았나?" 라고 하면 말을 못하죠.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다. 그것을 어떻게 했나?" 라고 하면 말을 못하는 겁니다. "마지막 때 미워하지 말라고 했는데, 당신은 미워한 적이 없어?" 라고 하면, 말을 못하는 겁니다. 결국 나오는 말이 "그래도 예수를 믿는 사람답게 최선을 다했다"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 사람은 뭘 모르느냐 하면, '반대'와 '다르다' 라는 것을 구별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에요. 선과 악은 반대죠. 그러나 하늘나라는 선과 악을 합쳐서 달라요. 달라도 너~무 달라요. 악이고 선이고 간에 선한 분은 예수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진짜 그분은 선한 분으로 종결해버렸어요. 다 이루었으니까 말이죠. 더 이상 그분 앞에서 선하다는 이야기를 하지 말란 말이죠.
◈ 사도바울의 권면은?
그렇다면 "사도바울의 권면을 어떻게 하는가?" 라는 문제는, 주께서 그렇게 되도록, 주께서 우리를 재료로 사용해서 말씀으로 덮쳐버립니다. 즉 "나는 말씀을 못 지키는데, 주께서 강제로 지키게 하셔서, 그러니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나는 오히려 내가 잘났다고 우기는 인간이고, 오직 예수님만이 여전히 모든 것의 주인공이고, 구원받는 것도 주께서 시작해서 주로 말미암아 주께서 다 하신다" 라는 것을 고백하기 위해서 말이죠.
그래서 지금도 주님은 계속해서 우리가 욕망을 생산토록 하시는 겁니다. 그러니 그것을 우리의 선한 의지로서 가로막지 말란 말이죠. 가로막지 말라는 말을 다른 말로 하면, "막 살라" 라고 하는 겁니다. 인간들이 막 산다는 것을 뻔히 다 아는데, 그것을 가로막는다고 해서 거기에서 무슨 새로운 역사가 나올 수 있느냐는 말이죠.
그러면 그쪽에서 하는 말이, "성경에 보면 사도바울 자신은 막 사는 것이 아닌데, 그런데 당신은 왜 막 살라고 하는가?" 라고 하는데, 사도바울의 모든 말이나 행동이 다 성경이 아닙니다. 성경을 사도바울의 말로 보면 안 되요. 성령께서 하신 이야기라는 말입니다.
◈ 목사님, 사도바울은 '나' 라고 많이 했는데요?
그래서 아까 그분이, "사도바울은 '나' 라고 했는데, 왜 십자가 마을은 그런 소리를 안 하는가?" 라고 질문한 자체가 뭐냐 하면, 사도바울과 비슷하게 하기만 하면 우리도 성령을 받은 사람이라고, 그렇게 얼추 따라간다고 생각한 겁니다. 뭔가 성경에서 인간을 따로 뽑아내요. "너도 인간, 나도 인간, 에브리바디 인간, 그러면 같이 비슷하게 가면 나도 성령을 받은 사람이 맞지?" 라고 확인하고 싶은 거예요.
그러니까 출발점이 전혀 자기 쪽인데, 하지만 그렇게 자기 쪽에서 출발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것은 모두 역사가 되어버리는 겁니다. 왜 십자가는 밀어내는 힘이 있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하늘나라에서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나온 것을 자꾸만 밀어내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포도원과 품군을 비유로 말씀하신 겁니다.
◈ 가짜는 바꿔라 !!
아침 10시에 포도원에 온 사람들, 12시에 포도원에 온 사람들, 오후 3시에 온 사람들, 그리고 마지막 오후 5시에 온 사람들, 그런데 주인이 품삯을 줄 때에 오후 5시부터 온 사람부터 먼저 줌으로 말미암아서, 10시에 온 사람들, 12시에 온 사람들, 오후 3시에 온 사람들이 아마 자기들은 착하다고 여겼을 겁니다. 하지만 주인의 그 말을 듣는 순간 "우리는 뭐냐? 에이씨, 이용만 당했네" 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지요. 그게 곧 색출작업인데, 즉 "가짜는 바꿔라!" 라는 겁니다. 그래도 바꿔주지 않으면 물어버리는데(ㅋㅋ), 가짜는 결코 못 들어온다는 말입니다.
(마 20:1)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 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마 20:2) 저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 보내고
(마 20:3) 또 제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마 20:4)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저희가 가고
(마 20:5) 제 육 시와 제 구 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마 20:6) 제 십일 시에도 나가 보니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마 20:7) 가로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섰느뇨 가로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가로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마 20:8)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마 20:9) 제 십일 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마 20:10)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저희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마 20:11)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가로되
(마 20:12)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마 20:13)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마 20:14)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마 20: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마 20: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물론 목사님들은 이것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걱정이 좀 되겠죠. 진짜만 있는 교회가 좋기는 좋겠지만, 장사가 안 되잖아요. 장사가 안 되면 교회 역사가 끊어지고 말이죠. 왜냐하면, 가짜가 와서 흥부의 그 제비처럼 돈을 물고 와서 흔들어줘야, 자기 마음대로 놀이를 하든, 바자회를 하든, 하나님 뜻이라고 하면서 어디를 놀러가든지 해야, 그래야지 교회가 운영된다는 겁니다. 목사가 지옥과 천당에 보내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 인간은, 망해야 !!
그렇게 되어야 되는데, 그런데 자꾸 이런 소리도 한두 번이지, 가짜가 문만 열고 예배에 참석하다가 뿔이 나서 나가버리고, 또 나가버리고, 조금만 더 버티면 되는데 말이죠. 바로 그러한 생각이 들도록 하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목사를 시키는 겁니다. 목사로 망하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결국 인간은 자기 하는 일로 인해서 다 망해요. 치과의사는 치과의사를 하면서 망하고, 그렇게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이 "나는 망하는 것이 마땅하다" 라는 것을 깨닫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캘빈은 틀린 겁니다. 자기가 하는 일이 하나님이 주신 소명이 아니고, 그것은 바로 각자의 자리에서 망해야, "나는 역사의 주인공이 아니고, 얼음입니다" 라고 하게 되는 겁니다. 자기는 율법 안에 갇혀있는 죄인밖에 안 되는데, 그런 식으로 자기를 동결시킨 것은 전혀 자신의 능력이 아니고 묵시의 능력이라는 말입니다.
요단강에서 비둘기 같이 오신 성령께서 수직적으로 내려오게 되면, 죽은 자도 밧줄을 타고 내려오신 예수님의 우리를 대신해서 해준 그 대가로 말미암아서, 우리의 죄를 대신 몽땅 가져가신 그 공로로 인해서, 우리는 그 연줄로 인해서, 끊어지지 않는 주님의 일방적인 '띠리리 띠리리' 라는 발판사랑으로, 성령의 주심으로, 선물로 준 믿음으로 말미암아서, 우리는 예수 안에서 정죄함이 없다는 말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자신의 역사를 잘 가꾸기 위해서, 우리 인생을 찬란하게 빛내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건성으로 "죄인 중의 괴수입니다" 라고 빈말만 남발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주님께서는 우리의 헛소리를 듣지 아니하시고, 실질적으로 죄인이 되게 하시는 묵시의 칼, 그 동결작용을 우리들이 감히 성령의 역사로 알고, 항상 우리 자신을 부인하는 가운데, 우리를 통해서 성령의 열매, 주님이 원하시는 열매가 마음껏 맺어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13,1.30 오후 7시에 재정리 마침 - 구
안 그래도 날씨가 추워서 동태가 다 되었는데,
말씀으로 제대로 얼리고 나니 더 정신이 없네요.
하지만 지금도 들려오는 지게차의 음악소리에
절로 두 손이 모아집니다.
기념사진 한 장 찍으려고 내려온 이 세상,
그 빛 바랜 사진 속에 주님의 모습이 보이네요.
돌아가면 만나고 싶은 분이 참 많은데,
느헤미야, 시드기야, 스라야, 아사랴, 예레미야, 바스훌 …
이름 부르기 힘들어 그냥 주님의 이름만 불러보렵니다.
예수, 그리스도 !!
첨부파일 : 2013십자가마을겨울수련회(1~10강)(에스라,느헤미아)(녹취).zip (622.7K), Down:36
구득영(IP:203.♡.97.152)
13-01-30 21:32
전체강의는첨부파일에 있습니다.
덕분에 냉동고 속에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수고하신 분들과 함께, 충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