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강-에스겔9장 3-7(이마에 표)130123-이 근호목사
24강-에스겔9장 3-7(이마에 표)130123-이 근호목사
이름 : 오용익(IP:183.105.195.249)
24강-에스겔9장 3-7(이마에 표)130123-이 근호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에스겔 9장 3절에서 7절까지입니다. 구약성경 1160페이지입니다.
에스겔 9:3-7
“그룹에 머물러 있던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올라 성전 문지방에 이르더니 여호와께서 그 가는 베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 사람을 불러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 하시고 나의 듣는데 또 그 남은 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그 뒤를 좇아 성읍 중에 순행하며 아껴 보지도 말며 긍휼을 베풀지도 말고 쳐서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 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찌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 그가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성전을 더럽혀 시체로 모든 뜰에 채우라 너희는 나가라 하시매 그들이 나가서 성읍 중에서 치더라.”
하나님을 섬겼던 나라가 하나님에 의해서 심판과 저주를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장면이 그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고 오늘날 우리에게도 역시 해당되겠지요. 그들은 이렇게 자기가 믿던 하나님으로부터의 저주와 심판을 받는 겁니다. 그들은 이전에 “하나님은 살아계시다.”고 얼마나 입버릇처럼 이야기했습니까? 맞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그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이 살아 있다, 고 할 때 그 하나님은 자기들은 살리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죽인다는 식으로 자기편에서 서서 하나님이 살아 있다고 외쳐대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하나님의 속마음은 알지 못한 채 그저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생각에서 그런 성급한 결론을 내린 겁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은 맞는데 그 살아계신 하나님이 살아 있다고 믿는 그들을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처단하는 그 일로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예외 없이 그대로 적용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천사들에게 임하니 천사에게 지시를 내립니다. 그 지시를 할 때 철저하게 심판해라, 하는 겁니다. 심판을 철저하게 하려면 그 전에 철저한 조사가 먼저 따라야 하겠지요. 철저한 조사와 심판을 베풀어라, 그렇게 되는 겁니다.
여기서 사람들은 우리가 하나님을 부르면 하나님이 우리 편에 서는 줄로 오해를 한 거지요. 하나님은 그 누구편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냥 자기 하나님 편이에요.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이 계시다는 그것은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신개념이고 진짜 하나님은 인간을 위하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피조물을 위하는 하나님이 어디 있겠어요?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을 드러내기 위해서 추가적으로 피조물이 만들어진 것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정말 피조물이라고 인정한다면 더 이상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 산다는 것이 창조주를 모독하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가 항상 잊지 말아야 되겠지요.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이렇게 일을 벌일 때 여기에 철저한 하나님의 사전조사가 선행되는 겁니다. 4절과 5절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어요. 예루살렘에서 천사들이 다니면서 천사가 이마에 표시를 하는데 어떤 사람에게 표시를 하느냐하면, 예루살렘을 다니면서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보고 울며 다니는 사람입니다. 인간들은 전부 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기 보다는 자기 영광이 우선인 분위기, 이런 세상편승을 보고 안타까워하고 애타하고 이것은 아니다, 이것은 진리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산다고 할지라도, 사람들이 전부다 그런 식으로 산다고 할지라도 어쨌든지 간에 그것은 아니고 그것은 저주받을 짓이라고 애달아하면서 가슴 아파하는 사람에게는 천사가 이마에 표시를 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겔 9:4)
그 다음에 그렇지 않고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는데 우리도 같이 휩쓸려 가면 그것이 사는 것이지.’ 이렇게 대수롭지 않게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는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 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마에 표 있는 자” 빼놓고는 다 죽이라고 합니다. 특히 지난 대선도 비롯해서 최근에 계속 부르짖는 것이 복지 아닙니까? 어린아이, 부녀자, 늙은이들을 공경하는 복지정책을 펼치는데 하나님한테는 이 복지가 전혀 통하지를 않습니다. 여기에 단지 이마에 표시가 없다는 이유 때문에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 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라는 말입니다.
융통성도 없는 이 천사,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만 하는 이 천사, 오직 하나님이 지시하는 것에 대해서만 로봇처럼 움직이는 천사는 사람이 재산이 얼마인지, 아이큐가 얼마인지,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를 보는 것이 아니고 이마에 표식이 있는지만 쳐다보고 살아가는 거예요. 이런 모습을 보게 되면 성경을 좀 안다는 사람은 어떤 느낌이 드느냐하면, 출애굽 하는 그 첫 번째 유월절 때, 히브리인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하나님의 지시에 의해서 하나님의 사자가 온 집마다 돌아다니면서 하나님과 자기 백성과 사전에 약속한 그 언약, 그 언약의 표시가 없는 집안의 맏이를 다 죽였습니다.
심지어 애굽나라의 왕자도 죽이고 애굽의 옥에 갇혀서 옥살이 하고 있는 집 맏이까지 죽였습니다. 이 얼마나 철저한 조사입니까? 인구센서스정도가 아닙니다. 이런 완벽한 조사가 또 없어요. 전혀 빈틈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역사부터 오늘날 신약에 이르기까지 성경전체를 보게 되면 그 느낌이 뭐냐, “탈출해라.” 그겁니다. 대탈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도망쳐라. 여기 있으면 죽는다. 이 세상은 물로써 망했듯이 이제 불로써 무너지는데 너는 처자식, 가족, 그런 것이 우선이 아니고 어떻게 되었든지 탈출해야 된다.”
터널 속에 갇혔는데 터널 속에서 화재가 일어났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연기가 차기 전에 밖으로 도망쳐 나오는 것이지요. 그냥 무작정 도망쳐 나오는 수밖에 없어요. 소돔과 고모라에서 롯이 살아난 것은 그냥 도망친 겁니다. 아무 미련 없이 도망친 거예요. 성경 창세기부터 끝까지 보게 되면 도망쳐서 성공한 사람은 천국 가고 도망 못간 사람은 그냥 그 자리에서 지옥가고, 그것뿐이에요. 하나님께서 인간을 이 세상과 더불어서 만들어놓고 이야기하십니다. “탈출하라!” 이게 뭡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을 이 세상에 만들어 놓았으면 “어찌되었거나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아야 한다. 네가 살 곳은 여기뿐이야. 다른 데 생각하지 말고 이 땅에서 행복하게 살아라.”
우리 생각은 하나님께서 이러한 덕담을 해줄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고 이 땅에 태어나게 해놓고, “몇 년 도? 1972년도 출생이라고? 도망쳐라! 1985년? 그래 알았다. 도망쳐라! 1936년? 알았어. 도망쳐! 빨리 도망쳐!” 그런데 문제가 있어요. 도망을 치기는 해야 되는데 도망칠 방안이 없습니다. 도망칠 수가 없어요. 왜냐, 도망칠 수가 없도록 이미 율법으로 가두어놓았기에 하나님의 법에서 100점 만점에 100점을 맞아야 의인되어서 이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은 이미 하나님에 의해서 죄로 처벌 받도록 되어 있어요. 하나님이 모순을 일으키지 않으려면 의인을 죄인과 더불어 처벌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창세기 18장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에게 기도할 때 그 문제를 거론했습니다.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창 18:23)는 것은 안 되지 않느냐고 했어요. 그런 기도를 한 것을 봐서 하나님께서는 의인과 죄인을 함께 처벌하시는 분은 아니에요. 그러면 의인이 되어야만 벗어날 수 있어요. 시험 문제 100개 낸다면 100개 다 맞아야 돼요. 그런데 100점 100점이든지 아니면 0점이든지 둘 중에 하나지 100점 만점에 99.5, 이런 것은 없습니다. 하나를 어기면 전부 다 어긴 것이 돼요.
하나님이 내는 시험문제가 지식에 관한 것이라면 합격이나 불합격 처분을 하면 되겠는데 하나님의 율법을 지식으로 아느냐고 묻는 것이 아니고 이것을 지켰느냐고 묻는 거거든요. “이것을 지켰는가? 그것도 하나도 빠짐없이.” 더 놀라운 사실은 “그것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아니하고 매일 항상 모든 말씀을 지켰느냐?”라고 묻거든요. 그렇게 물을 때 우리가 죄를 안 지은 상태 같으면 행여 그 상태에서 이 법을 지킬 수 있겠지만 이미 우리는 우리 속에 율법에 대해서 대항하고 율법을 거슬리고 싶은 그 힘이 내가 율법 지켜서 의인이 되어서 탈출을 시도해서 성공시키겠다는 그것보다 더 세요.
더 세기에 우리는 이 율법에 갇혀 있는 여기서 우리 힘으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벗어날 수가 없는데 탈출을 또 해야겠고, 이것은 시급한 문제고 다급한 문제에요. 이것은 정부차원에서 해결해 줄 수가 없습니다. 펀드 넣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거든요. 사업을 일으키고 교회를 부흥시켰다는 것 가지고 천국가라는 것은 없습니다. 마태복음 7장에 주님께서 무슨 이야기를 했습니까?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마 7:22) 할 때에 주님께서 이렇게 했어요. ‘내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치 않으면 그 나라에 갈 수 없다.’고 했어요.
몇 사람을 꾀어서 건졌다는 식은 전혀 실적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인간들은 이 땅에서 죄 짓고 난 뒤에 내 놓는 구원받는 원리라는 게 이렇습니다. ‘나는 자유가 있다. 자유가 있는 나에게 어떤 힘만 더해지게 되면, 즉 자유+힘=실적(천국), 자유에 힘만 보태지면 실적을 올려서 그 실적을 근거로 천국에 갈 수 있다, 이게 인간들의 구원방법입니다. 그 방법을 누가 사용했느냐, 이 저주받고 있는 유대나라가 그 방법을 그대로 사용한 거예요. 복을 받아서 옆의 나라, 큰 나라처럼 잘 먹고 잘 살면 설마 하나님이 주신 복을 하나님 스스로 철회할리는 없겠지, 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기도했다, 그러니 병 낫게 해주옵소서. 이것은 실제로 예수님 당시에 있었던 일이에요. 예수님 당시에 문둥병자 열 명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 문둥병자가 예수님을 향하여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낫게 해 주세요.’ 해서 다 나았어요. 다 나았는데 그 중 아홉은 병 낫고 지옥 간 사람들입니다. 병 낫게 하신 것도 예수님이시고 병 낫게 한 그들을 지옥 보내시는 분도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니까 병 나았다는 간증, 내가 어떤 신앙으로 큰 실적을 올렸다는 그 실적들이 전혀 자기가 이 땅에서 탈출하는데 보탬이 되지를 못해요.
내가 강의를 얼마나 했고 설교를 얼마나 했고, 그런 것이 전혀 자기 구원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겁니다. 본문에 보면 “모든 가증한 일로”라고 4절에 되어 있거든요.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 여기서 가증한 일이 뭐냐 하면, 성전을 뭘 로 만드느냐 하면, 자기들이 하나님께 기도해서 복을 받는 중심센터로 삼은 거예요. 설마 하나님이 이 성전을 통해서 성전에서 섬기는 우리 자신을 저주 하겠는가,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성전까지 만들어 놓았는데 이 성전 만든 우리를 설마 하나님께서 저주할 리가 있겠는가, 이렇게 생각한 거예요.
그러니까 이 성전이 있다는 이것을 인간들의 업적과 자신의 공과, 열심, 그런 것들의 결과로 성전을 붙잡고 있었던 겁니다. 다시 이야기할게요. 인간에게 자유를 줘서 그 자유를 성사시킬 힘만 주시면, 우리가 그 자유에 힘을 보태서 실적을 이루고 그 실적을 가지고 들이대면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다는 이것이 인간들의 생각이거든요. 그러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하나님의 구원방법이 뭐냐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이 이마에 도장을 찍어요. 도장을 찍어서 그 이마에 도장 박힌 사람만 건지고 나머지는 다 지옥 보내는 방식으로 사용을 하십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도장을 찍는다, 는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요한계시록 9장 4절에 보면 “저희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라고 합니다. 이 대목만 보면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사람의 이마에 도장을 찍어놓고 그 사람에게만 하나님께서 친히 보호하시고 나머지는 멸망하신다는 뜻을 가지겠지요. 그게 전부라고 알고 있는데 사실은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666이 나오는 대목이거든요.
요한계시록 13장 16절, 17절에 보면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라고 되어 있어요. 참 이상하지요? 아까 제가 요한계시록 9장을 이야기할 때는 오직 구원받는 사람에게만 하나님의 인이 박혀 있다, 이렇게 알고 있었는데 요한계시록 13장 16절에 보니 구원받는 사람만 하나님의 인이 박혀 있는 것이 아니고 지옥 갈사람, 저주받을 사람에게는 짐승의 인이 필히 찍혀 있다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요한계시록 20장 4절에 보면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마와 손에 짐승의 표를 받지 아니한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서 천년동안 왕 노릇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생중계가 되지 않는 관계로 정리를 잘 하면서 가야할 필요가 있기에 다시 정리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실 때 “너는 탈출을 해야 된다.” 하는 거예요. 탈출을 해야 된다면 탈출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우리한테 허락이 되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상식이거든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탈출을 해야 된다고 하면서 전혀 탈출이 불가능하도록 율법으로 완전히 가두어 놓았습니다. 그러면 탈출하라는 말씀과 탈출 할 수가 없네, 이 둘 다를 다 알아듣는 사람에게만 하나님께서 구원받는 사람으로서 이마에 도장을 찍어놓았다는 말입니다. 이 뜻은 뭐냐 하면, 사람이라 하는 것은 자력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구원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계획서가 아예 그 사람 속에 삽입되어 있는 거예요.
쉽게 말해서 우리가 이마에 받는다는 그 도장이 그냥 도장이 아니고 어린양의 피로 도장 찍었다고 보시면 굉장히 알기 쉬운 거예요. 출애굽 이야기를 다시 합니다. 출애굽 때에 하나님께서 히브리인들을 건지고 애굽나라 백성들을 심판합니다. 그럴 때 히브리인들의 문지방에 어떤 표시가 있는데 장차 구원될 이스라엘은 그 표시를 잊어버리면 안돼요. “그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건졌지. 좋구나. 이제는 잊자.” 이렇게 잊으면 안 되고 그 표시를 내내 달고 살아야 돼요. 앞으로 계속해서, 광야 때도 그렇고 앞으로 영원토록, 천국 갈 때까지, 그리고 천국 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계속 달고 살아야 돼요.
성도는 인주가 아니라 도장으로 새기기 위한 상아 뿔, 그런 역할이 바로 성도의 역할입니다. 성도란 뭔가 추가적인 하나님의 도장이 없는 채로 있는 상아조각 가지고는 구원이 안 된다고 외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구원의 표시, 노아 때는 방주였죠,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겠다는 그 언약의 표시가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고,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아예 우리 몸 자체에 도장으로 새겨져버리면 이제는 하나님의 그 구원의 설계도가 우리 자체를 점령해서 우리는 그 설계도 따라 살아가면서 그 설계도의 원리원칙이 그냥 뿜어져 나오는 존재, 그런 존재가 되는 거예요.
마태복음 5장 11절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아까 살핀 오늘 본문에서 성전에서 파탄 난 세상을 보고 울고불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마에 도장을 찍으라고 되어 있잖아요. 이것이 마태복음 5장에도 있습니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에스겔 9장의 성전에 있던 사람들은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고 “아, 세상 더럽다. 세상이 이러면 안 되는데, 이러면 벌 받는데.”라고 했던 사람이라면 마태복음 5장에서는 예수님이 어떻게 살다가 어떤 대우를 받고 어떻게 처참하게 돌아가셨는가, 그것을 통해서 현재 우리가 포함되어 있는 이 세상이 얼마나 저주를 불러일으키는, 저주를 유발케 하는 세력, 아까 이야기한 악마의 세력이지요, 악마 투성이 세력이라는 것, 악마가 지배하는 세상이라는 것을 파악하는 사람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 사람만 구원 받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종합해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신경 쓸 하등의 이유가 없어요. 왜냐하면 사람들의 주장은 사실도 아니고 진실도 아니고 진리가 아니기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길이요, 예수님이 진리요, 예수님이 생명이거든요. 그러면 성도라는 존재는 아주 희한한 존재가 되어서 예수님 말만 들어요. 변화 산에서 구름 속에서 들린 하나님의 소리가 “너희는 저의 말만 들어라.”라는 것처럼 예수님의 말만 듣는, 그것만 진실이고 나머지는 진실이 아니라고 여기는, 어떤 의미에서는 독선적이고 독불장군이라고 할 수도 있는, 하여튼 뭐라고 욕을 해도 괜찮아요.
이것은 본인 자신도 저항할 수 없어요. 이런 느낌을 본인 자신이 밀칠 수가 없어요. “난 그냥 세상 사람들처럼 편하게 살래요. 난 다른 사람하고 그냥 어울려서 살래요.”라고 하고 싶어도 그 세계에 대해서 그렇게 실망을 하면서 ‘아이고, 세상이 이 정도 밖에 안 돼.’ 하게 되면 그것은 천사가 따로 철저하게 심사해서 분류시킨 구원받은, 하나님의 도장을 받은 사람입니다. 더 알기 쉽게 할게요. 천사는 융통성이 하나도 없어요. 천사는 이것저것 보지를 않습니다. 천사는 하나님의 도장, 그러니까 어린양의 피지요. 어린양의 피가 찍혔느냐, 그것만 보는 거예요. 어린양의 피가 찍히기만 하는 것이 아니에요. 어린양의 피가 찍히는 정도가 아니고 우리 속에 활동하고 작동하고 활동하게 되어 있는 것을 가지고 어린양의 피로 도장 받았다고 이야기하거든요.
돼지도축장에서 도장 찍듯이 피부에 프린트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예 어린양의 피가 활활 작동을 하는 사람에게는 남들이 안 알아줘도……, 남들이 그런 것을 뭘 알아주겠어요, 돈 벌기 바쁜데, 남들은 안 알아주는데 천사는 그것을 한 사람도 놓치지 않고 빈틈없이 다 찾아낸다는 거예요. 그게 오늘 본문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천사에게 지시했다. “세상이 악하다고 울고불고 하는 사람에게 도장, 이 먹물로 표를 해라. 그 사람만 남기고 그 나머지, 어린아이든 노인이든 처자든 병자든 관계없이 다 죽여 버려라.” 이것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지속적인, 계속되는 일관적인 하나님의 구원 방식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 속에 말씀이 들어와서 계속, 아침에도 점심에도 계속 살아 있는 거예요. 이게 살아 있는 사람의 특징이 뭐냐 하면, 도무지 사람 말을 듣지를 않습니다. 사람에게 신경 쓰지도 않아요. 왜, 그것은 현실이 아니고 사실이 아니기에. 그래서 마태복음 5장에서 “나를 인하여 핍박을 받을 때는 오히려 기뻐해라. 선지자들도 그렇게 살아 왔다.”라는 이야기와 서로 상통되는 겁니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 5:11-12)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모든 성경은 이거예요. “탈출해라. 어찌되었든 탈출해야 된다.” 그런데 탈출하는 방법은 우리 힘으로서는 탈출이 안 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아까 장로님이 나사못 이야기를 했어요. 나사못의 특징이 꽉꽉 조이는 거거든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두 종류의 도장으로서 빈틈없이 꽉꽉 조여 놓았어요. 그래서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서 구원받고자 해도 구원이 안 되지요. 마귀의 인이라는 나사못으로 꽉 조여 놓은 사람, 마귀의 인이 박혀 있으니 마귀에게 매여 있는 거예요.
반대쪽, 하나님의 나사못에 박힌 사람은 역시 자기 맘대로 못 살아요. 하나님의 구원 스케줄이 막 나오도록 살아야 돼요.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빈틈없이 이쪽도 꽉 조이고 저쪽도 꽉 조여서 양쪽 다 자력으로 지옥 간다든지 자력으로 천국 간다는 것을 허용을 안 했습니다. 그래놓고 “네가 탈출하라.”고 이야기할 때 “우리가 탈출이 안 됩니다.”하는 것을 고백하게 하는 겁니다. 신약에 와서 어린양의 피로 예수님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는, 하나님의 인이 박힌 사람은 자기 힘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그 인이 스스로 그 사람에게 나사못 역할을 해서 기어이 그 사람만 철저한 심사와 철저한 조사를 거쳐서 아주 융통성도 없고 뇌물도 안 받고 빈틈도 없이 하자와 실수를 모르는 하나님의 천사가 와서 하나님의 약속대로 따로 그들만 분류해서 데려가는 겁니다.
마치 애굽 첫 유월절에 다른 것 보지 않았어요. 아무것도 안 봤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에요. 아무것도 안보고 문설주에, 그리고 문지방에 어린양의 피를 발랐나, 하나님의 약속대로 피 발랐느냐, 그것만 살펴서 하나님의 사자들이 다 죽이고 그 사람들만 따로 살려내듯이 똑같은 방법으로 구원은 오직 예수의 피 밖에 없습니다, 그 것만 박혀서 매일 같이 그것만 생각하고 인간의 어떤 주장과 철학과 사상, 신학을 생각지 않는 사람만 기어이 일체 융통성 없게 골라내서 주께서는 건지는 겁니다. 이렇게 에스겔에 미리 천사를 통해서 이러한 계시를 내려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자신의 실적과 업적으로 신앙생활 했던 여러 가지, 그런 성과를 들이밀면서 우리가 주의 영광을 위해서 살았다고 하는 이 모든 것, 그것이 다 헛수고 인 것을 알게 해주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찾아와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지 않으면 안 되게 그렇게 조이는 식으로 인도하시는 그 하나님의 능력을 저희들이 믿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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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원(IP:180.♡.82.67)
13-01-27 23:28
결국 나는 아무것도 할수 없고, 주님공 되신 주님 맘대로 이리 저리, 이렇게 저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