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강-YouTube강의(그림자 인생)130117-이 근호 목사
18강-YouTube강의(그림자 인생)130117-이 근호 목사
이름 : 이한례(IP:203.90.42.222)
18강-YouTube강의(그림자 인생)130117-이 근호 목사
오늘은 18강 해봅시다. 18강의 제목의 ‘그림자 인생’이란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목에 인생이란 말이 들어가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든지 자기 인생이 어떤 인생인지 상당히 궁금하죠? 하나님 보시기에 남들 보기에 내 인생이 어떨까? 하고 관심을 갖는데 이건 관심을 안 가져도 사람들은 누구나 수시로 나라는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 늘 속으로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점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성경을 펼쳐서 인생은 이렇다. 또는 인간이란 이렇다. 이렇게 성경을 펼쳐서 그렇게 언급하는 것과, 우리가 평소에 주변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직장에서 또는 가정교육 받아가면서 ‘야, 인생은 이런 거야.’하는 그 두 개념 차이는 참 엄청납니다.
사회에서 상식적으로 인간은 이렇고 인생은 이렇다. 그런 식으로 만약에 생각을 먹고 성경을 펼쳐서 ‘아마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도 나처럼 인간이란, 인생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하겠지.‘ 라고 생각하신다면 그건 엄청난 오산입니다. 우리 일반 사회에서 인생에 대해서 인간에 대해서 논하는 것, 다른 종교나 윤리 철학에서 논하는 것, 그거 성경 책 펴면 정죄 받습니다. 저주받을 인생관입니다. 아무리 남들 보기에 고상해 보이고 아름답게 보여도 그것은 하나님 앞에 인정받지 못하는 인생관을 갖고 있는 게 되죠.
그렇다면 우리가 성경에서 말하는 성도로서의 인생관은 성경에서 엄청나게 이야기합니다마는 아주 단출하게 알기 쉽게 언급을 한다면, 요한복음 17장 14절에 나오는 말씀을 하나의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7장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돌아가시기 직전에 겟세마네에서 기도한 그 기도내용을 적어놓은 거예요.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무슨 내용으로 기도했는지 궁금하죠? 오늘날 교회들이 많은 기도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 기도의 내용과 예수님께서 아버지에게 은밀하게 기도한 내용과 일치되는지, 어떤 점에서 일치되지 않는지 우리는 피해갈 수가 없습니다. 그중에 한 대목이 우리 인생에 대해서, 인간에 대해서 언급한 내용이 나오는데 그 대목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요한복음 17장 14절에 보면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했다 했습니다. 어떻습니까?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세상에 안 속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그런 모습들이 보입니까? 전혀 안 보이죠. 그런데 성경에 예수님께서 너무 일방적으로 때리듯이 언급해 버립니다. “저희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평소에 세상 사람에 부합되기 위해서 애쓰고 노력했던 모든 수고는 그리고 거기에 부수되는 모든 기대의 내용은 사실은 변칙이었고 엉뚱한 것에 마음 팔려서 기도한 것뿐입니다. 아마 대부분 사람들이 이렇게 기도를 못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제가 이 세상에서 속하지 아니함 같이 생활하게 하옵소서’ 사도바울도 그런 이야기했죠. ‘아내 있는 자는 없는 자 같이 하고 재물 있거든 다 쓰지 못하는 것처럼 살아라.’ 왜, 세상은 사라지니까.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아주 유명한 말씀이 나오죠? 이건 교회 조금 다닌 사람도 다 아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건 뭐냐 하면 11장 13절에 보면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 하였으니” 성도라는 것이 증거 하는데 남들 앞에 ‘나는 이런 사람이다.’ 라고 증거 하는데 그 증거의 주된 내용이 뭐냐, 나는 이 세상을 떠나는 나그네입니다.‘라는 식으로 증거를 했다는 거죠.
이것이 자신의 평소의 마음이 아니라 믿음이 임했을 때만 나오는 특이현상입니다. ‘하나님, 저는 이 세상 떴습니다.’라는 조로 또 ‘이 세상에서는 우리는 외국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의 모든 일상과 평소의 사고방식과 세상 보는 관점도 그저 남의 나라다, 이렇게 생각하고 그저 살아갑니다.‘라고 했던 것이 믿음의 증인들, 우리보다 앞선 선배들이 살아갔던 모습입니다.
제가 아까 언급했던 요한복음 17장 14절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사람으로 지금 만들어 내고 있다는 뜻이고, 히브리서 11장은 그렇게 만들어진 사람이 믿음을 가졌을 때 자기들도 서슴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이 세상 떠나는 재미로 삽니다.’라고 고백하더라 이 말이죠.
예수님의 누가복음 말씀에 이런 게 있어요. 어떤 동생이 예수님 찾아와서 형이 자기한테 잘못한 것을 고자질합니다. 아버지께서 유산을 남겼는데 형이 몽땅 유산을 다 가져갔어요. 너무너무 억울해서 그 사람은 예수님한테 하소연을 합니다. 예수님, 형이 내 유산 다 가져갔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의 답변은 상당히 엉뚱했습니다. “생명은 소유의 넉넉함에서 오는 게 아니다. 어떻게 지상의 소유문제 가지고 나한테 상의하느냐.” 이런 말씀 하셨어요. 자기 딴아 되게 억울하고 그게 없으면 죽을 것 같은 그런 답답하고 다급한 문제를 가지고 정의로운 예수님의 정의로운 판단을 기대했는데, 막상 예수님의 이에 대한 답변은 간단합니다. 생명은 소유하고 무관하다는 거예요.
고린도전서에 봐도 “너희들이 사기를 당했느냐, 차라리 사기를 당해라. 그런 것 가지고 같은 성도를 고소하지 마라. 천사를 재판할 권한이 너희에게 있는데 그런 세상 문제 가지고 네가 신경 쓴다는 것은 네가 과연 예수의 증인으로 합당하냐, 이렇게 따지고 나섭니다. 그래서 성경에 제가 아까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육의 본성을, 육의 본성에서 나오는 세상 관, 인생관, 그것 가지고 성경에서 어떤 합당한 호응을 얻을까 싶어서 성경을 보면 성경에서 아예 정죄 받아요.
성경에서는 인생, 인간이라 하는 것은 그렇게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가 마땅하다고 알고 있는 그것을 부정해 버립니다. 저는 이것을 오늘 강의 제목처럼 ‘그림자 인생’이라 이렇게 표현하고 싶네요. 그림자 인생이라 하는 것은 제가 어릴 때 보면 신기했던 것이 하늘에 구름이 떠 있으면 구름의 그림자가 밑에 있는 마을, 초가집, 기와집, 지붕을 빠른 속도로 스쳐지나갑니다. 어린 나로서 뭐가 신기하고 부러웠냐 하면 그 지붕의 꺼칠꺼칠한 거, 그 철조망의 따가운 가시, 거기에 대해서 이 그림자라는 이것은 전혀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그걸 계속해서 아무 탈 없이 휘젓고 가고 싶은 대로 가더라 이 말이죠. 그림자가 담장에 가시가 있다고 그림자가 ‘아야’ 하는 법은 없잖아요. 그리고 그림자 특징은 한 곳에 머물지를 않았습니다.
거기서 저는 어린 마음이지만 자유라는 게 저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 내 인생도 저렇게 자유로우면 참 좋을 거라 이렇게 생각했는데 요한복음 17장 14절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했다” 그리고 제가 제목에서 그랬던 우리는 그림자 인생이다. 뭔가 통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히브리서 11장 13절에 나오는 “우리는 나그네요. 객이요. 여기서 우리는 외국인이라.” 뭔가 통하지 않습니까? 그림자!! 이 세상에 누가 쑤시고 누가 약 올려도 거기에 감정의 흔들림이 없이 찔러도 아프지 않고 욕해도 화내지 않고 그냥 우리는 구경삼아 예수님처럼, 예수님도 이끌려 살았거든요. 빨리빨리 뭔가 이 땅에서 철수하듯이 사는 인생, 머무르지 않는 인생, 그리고 그 방향은 우리의 고향이라고 하는 주께서 친히 마련하신 그 나라! 이게 성도 아니겠어요? 이게 신앙 아니겠습니까? 뭣 때문에 교회 와서 울고불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자기 자신을 다시 한 번 성경에서 찾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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