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사] - 이 근호 목사
[중간사] - 이 근호 목사
이름 : 이한례(IP:203.90.42.222)
가락교회-다니엘 7장18(중간사)130117-12강a -이 근호 목사
제 11강a
오늘은 다니엘 7장 18절에 보면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들이 나라를 얻으리니” 성도가 어느 나라에 속한데 그 나라 이름이 ‘지극히 높으신 자’에 해당되고, 지극히 높으신 자에 해당된 성도기 때문에 그럼 뭣과 대비를 해야 되느냐 하면 기존의 인간 나라 대통령과 인간들의 관과는 관만 다를 뿐만 아니라 그 백성들도 필히 속성이 다르겠죠.
요한복음 17장 14절에 “이 세상에 내가 속하지 아니함 같이 너희들도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했다.” 그 말씀은요 현재 너희들이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 내가 개입하겠다는 뜻 이예요. 주님께서! 이건 뭐냐 하면 ‘우리가 열심히 살아서 천국 갈게요.’가 아니라 그래봤자 소용없어요. 우리가 이 땅에서 아무리 해봐야 우리의 관심사는 이 세상뿐입니다. 너희들이 알아서 성도답게 살아서 내가 온다는 말이 아니고 내가 친히 개입할게. 그런데 그 기도를 누가 했습니까? 예수님이 했죠. 기도하신 분이 기도하신 내용대로 개입을 하는 거예요. 그 개입에 대해서 우리가 태만하다, 우리가 좀 미리 부족하다. 그런다고 해서 일에 차질이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없어요. 왜냐 하면 아버지와 아들 기도가 끝난 문제예요. 이미 기도 응답이 돼 버렸어요. 아버지께서 개입 하겠다 하는데, 아들이 개입하는데 말릴 장사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 인생은 이겁니다. 간단해요. 우리는 이 세상의 사람이고 싶어요. 남들한테 잘나 보이고 그런데 여기에 강제로 개입합니다. 강제로 해보면 우리의 뜻 아니고 아버지의 뜻에 의해서 우리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사람으로 다뤄집니다. 그게 우리한테 참 힘들어요. 낯서니까. 우리는 이 세상 삶이 참 친숙해 있었는데 그걸 이번 수련회 때는 숙달해서 적응한다. 숙달이라는 것은 교육 효과. 숙달 또는 학습. 숙달하는 이유는 이 세상에 딱 들어맞는 사람 되기 위해서 훈련과 교육을 하거든요. 우리는 숙달해서 적응해요.
그런데 주님께서는 너는 그런 숙달과 적응은 네 마음대로 하고, 나는 그것과 상관없이 너로 하여금 숙달되지도 않은 적응되지도 않은 다른 낯선 하늘나라 백성으로서 내가 개입해서 너로 하여금 새롭게 만들어내겠다는 거예요. 그러면 중간에 누가 괴롭습니까? 바로 우리 자신이 참 괴롭죠. 괴로우면서도 다행스럽죠. 개입 안 했으면 우리는 저 지옥에 같이 우루루루 히히덕 거리며 잡담해가면서 지옥에 자연스럽게 갑니다. 그런데 뒤에서 귀를 쥐죠. ‘너 나와, 너 나와.’ ‘아야야, 이거 놓고 이야기합시다.’ 그냥 강제로 잡아당겨 버리면 세상 사람들은 주님의 십자가가 안 보입니다. 그런데 귀 잡아당기는 순간 갑자기 홀연히 십자가가 딱 보이면서 ‘너는 저쪽 동네 사람이 아니고 이쪽 동네 사람이다.’라는 것을 우리 인생 가운데서 그걸 개입시킵니다.
이 다니엘이 여기 나왔을 때 이제 본격적으로 들어가는데, 그렇다면 그걸 가만히 방치할 이 세상이 또 아니에요. 이 세상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걸 두 자로 짐승이라고 이야기해요. 짐승의 일은 하나님이 개입해서 자기 백성 끄집어 가는 이걸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그렇게 되지 못하도록 적극 나서서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서 그쪽 나라 백성 안 만들어지도록 방해하는 그런 세력, 힘, 그건 짐승입니다. 여기 죽 짐승이 나오잖아요.
그래서 이번에 수련회 했을 때 에스라, 느헤미야 내용 말고 에스라, 느헤미야 그 다음에 나오는 신약까지 그것이 성경에 안 나오는데 그걸 뭐라고 하느냐 하면 중간의 역사라 해서 ‘중간 사‘라고 보통 이야기합니다. 중간 사는 성경에 안 나옵니다. 말라기로 끝나요. 말라기 끝나고 449년 후에 예수님 오시거든요. 그 중간 그냥 한두 달도 아니고 400년이 붕 날라 가 버리잖아요. 뭔가 세상 역사로서는 끊어진 겁니다.
여기서 좀 어렵습니다. 시간이 끊어짐, 이게 말이 됩니까? 안 됩니까? 말이 안 돼요. 다리가 끊어지는 것은 이해 돼요. 그런데 시간이 끊어진다는 것이 이게 말이 안 됩니다. 어제 일을 잊었다. 그건 이해가 되는데 시간 자체가 끊어진다는 것은 말이 안 돼요.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제가 강조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이유가 에스라, 느헤미야가 율법 공동체를 만들었어요. 율법 공동체란 뭔 뜻이냐 하면 왕(王)이 없습니다. 왕이 없어서 이걸 역사에서 ‘속령’이라 해요. 속령이라 하는 것은 자치적인 어떤 권한을 주되, 로마가 통치하는 방법이죠. 각각 민족들의 자치는 허락하되 세금은 야무지게 거둡니다. 그게 로마의 입장에서는 그게 통치하기가 좋아요. 왜 반란할 여지를 사전에 요소를 없애버리기 때문에 그래요. 세금을 너무 과중하게 안하면 되거든요. 세금은 형평성 있게 차별 없이 해주면 ‘너희 얼마 내?’ ‘우리는 얼마 내.’ 이러면 별 말썽이 없거든요.
그런데 쓸데없이 남의 종교를 건드리게 되면 이건 정신적인 문제로 반란이 일어나거든요. 그만큼 군사 유지비가 많이 들어요. 그래서 로마에서는 될 수 있는 대로 속령을 주되 세금 거둠과 반란을 약간 관계할 수 있는 그런 정도의 총독을 둬서 하는 겁니다. 이것은 로마 선대 때는 바벨론도 그렇고 바사 나라도 그렇고 그 다음에 헬라 나라도 그렇고, 전부 다 이런 정책을 썼습니다.
율법 공동체가 만들어진 에스라, 느헤미야에서 만들어졌는데 뭐가 없다 했습니까? 왕이 없습니다. 왕은 누가 차지하느냐? 이미 바사 나라 왕이 이미 하고, 그럼 이쪽에는 뭐냐, 총독을 보내는 거예요. 총독을 보냈는데 이 바사 나라가 597년 바벨론이 예루살렘 칠 때 많은 성전의 귀중품들을 가져갔잖아요. 바벨론이 유다 나라 치면서 4 차례 공격했습니다. 605년에는 다니엘과 왕족과 귀족들을 데려갔습니다. 597년에서 598년에는 일반 백성들과 군사들과 기술자와 에스겔 선지자도 잡아 갔어요. 이때는 성전을 불 지르지 않고 값나가는 것들과 금을 벗겨 갔습니다. 586년에는 시드기야와 놋 기구를 가져갔고 아예 성전을 불태워버렸습니다. 그 다음에는 581년 니부갓네살 시위 대장인 느부사라단이 마지막 남은 유대인들을 사로잡아 갔습니다. 그런데 이제 바사 나라가 세워지면서 친절하게도 배려를 해줘서 ‘너희들이 가서 종교생활 하는데 이런 거 없으면 아쉬울 때 필요하다.’ 해서 창고에 그들이 가져왔던 그 성전 기구들을 고맙게도 돌려줍니다. 그리고 성전 짓는 데는 품삯도 필요하고 건축자재도 필요한데 그것도 후원을 해줘요. 그래서 이사야에서 고레스를 여호와의 종이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식으로 이스라엘 나라가 돌아오는데 어디 돌아오는 기분이 만족스럽습니까? 아니면 기분이 더럽습니까? 더럽죠. 왜냐 하면 안중근 의사나 김구 선생이나 자기 힘으로 하면 얼마나 기분 좋아요? 그런데 타의에 의해서 그것도 자기를 잡아먹은 나라에 의해서 하나님도 모르는 인간들이 ‘아이쿠, 교회 어렵죠? 절에 가지만 이거 애들 과자라도 사 주세요.’ 하면 받아놓고 기분 더럽죠. 그런 경우를 저는 많이 경험해요. 실컷 욕해놓으니까 욕한 사람이 도와주고, 한두 번이 아니에요. 이단이라고 했는데. 그런 재미로 더 이단이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돌아와서 율법 세우겠다고 성전, 간이 성전, 조그만 성전, 도와준다고 솔로몬처럼 많이 도와주지는 못하니까, 있는 살림 끌어 모아서 했는데 처음에 성전 지을 때 516년이거든요. 586년에 포로 잡혀서 539년에 돌아와서 516년에 성전을 건축했는데 이때까지는 좋았어요. 건축하고 난 뒤에 할 일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우리는 왕은 없고 왕의 빈자리에 뭐가 오느냐, 나중에 메시야가 오는 거예요. 다윗의 자손이 오게 되면 이 딴 거 벗어나고 진짜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대로 다윗의 혈통의 약속하신 바 그 왕이 오게 되면 그 나라는 완전한 거죠. 하늘에서 왕 오겠다. 우리는 다윗의 자손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약속에 의하면 전 백성들은 여기에 무릎 꿇는다. 이 멋진 힘 아닙니까?
그런데 성전 짓고 난 뒤에는 하나님 찬양하고 했죠. 끝나고 난 뒤에는 사람이 할 일 없으면 슬슬 본성이 나오게 돼 있어요. 그때부터 율법 공동체는 말이 율법 공동체지, 빈부 격차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이게 왜 그러느냐 하면 이런 이야기하는 게 재밌기도 하지만 서글프기도 한데요. 재밌는 건 뭐고 서글픈 건 뭐냐, 이게 지중해고 여기가 예루살렘이잖아요. 예루살렘에서 바사나라에서 이렇게 건너와서 정예 소수(4만 2000명 쯤)가 와서 귀환했어요.
사람이 하나님이 우선입니까? 밥 먹고 사는 게 우선입니까? 역시 돈의 유혹을 사람은 이길 수가 없어요. 이미 여기 이스라엘 북쪽 사마리아 땅에 산발랏이라는 총독이 역시 이 총독도 바사나라에서 파견된 거죠. 이 사람들이 이 지역민, 이 사람들이 혼혈아입니다. 어떤 혼혈아이냐 하면 옛날 앗수르 왕 때 이걸 지배하면서 다시는 반란하지 못하도록 이방 여인들과 이방 남자들과 서로 종교가 다른 사람을 부부로 맞기도 했지만 또 이주를 많이 시켜서 자연적으로 잡 족을 만들었어요. 이런 사람들이 산발랏 중심으로 해서 상당히 재산을 모았어요. 그러니까 예루살렘 사람들이 처음에 올 때는 ‘우리는 재산이고 뭐고 돌아온 걸 감사합니다.’라고 처음에는 그랬어요. 처음에는 성전이 있어 좋았는데 가만히 보니 다른 사람들이 잘 살잖아요. 슬슬 부아가 나죠. 그래서 ‘너희들은 어떻게 해서 돈 벌었느냐?’ 이렇게 나온다 말이죠. 돈 버니까 농민들이 가뭄이 들면 고리 업을 한다든지, 품삯을 안 준다든지, 그리고 사람이 지적 능력이 동일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못 배운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배운 사람들은 못 배운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면서 나중에 뭐를 간파합니까? ‘쟤는 어떻게 손보면 갖고 놀 수 있겠다.’ 하는 그런 생각이 들거든요. 그러면 그때부터 같은 돈을 나눠줘도 차이가 나고 도박을 할 때도…, 결국은 빈부 격차가 생기더란 말이죠. 이건 생겨나니까 그 다음에는 돈 있으면 이왕이면 예쁜 여자.
돈을 벌다 보니까 안식일, 이것도 시시해, 처음에는 교인들이 처음에 교회 나와서 안식일을 안 지킬 때 공포에 질립니다. ‘아이쿠, 죽었어, 죽었어, 안식일도 안 지키고, 차가 펑크가 나서 못 갔는데 요번에 벌 받을 준비해야 돼.’ 그런데 한주, 토요일이 다 지나도 벌은커녕 날씨만 좋더라. 아무 일도 없는 거예요. 야, 안식일 어겨도 아무렇지 않아. 괜히 쫄았네. 그 다음에 과감하게 도전한 것이 뭐냐 하면 십일조입니다. 처음에 십일조 어길 때 저주 받는다고 너 아니면 네 자식이 다리 부러진다고 해서 아들 다리 부러지나 싶어서 많이 졸았죠. 십일조 안 하면 저주 받는다고. 그런데 십일조 한번 빼먹고 두 번 빼먹고 해도 돈만 더 벌더라. 장사는 더 잘돼, 아~, 괜히 쫄았잖아, 이거. 괜히 쫄은 거예요.
그리고 예쁜 여자는 종교는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이건 예쁜 여자하고 그리고 자기의 사업에 유리한 여자하고 결혼했고, 십일조, 안식일, 전부 다 하고 뭐를 닮았습니까? 거기 이미 잘 살고 있던 사마리아의 이쪽 지역의 주변을 모방하기 시작한 겁니다. 여기에 바로 에스라, 느헤미야가 뜬 거예요. 성전 짓고 60년 뒤에 에스라가 오고 14년 뒤에 느헤미야가 옵니다. ‘너희는 이제 죽었어.’ 하고.
그 다음부터는 우리가 왜 망했으며 왜 다 빼앗겼으며 지금 누구 덕분에 이렇게 왔는데 너희들은 사는 것 자체가 사명이 아니라는 사실을 왜 몰랐느냐 이 말입니다. 이쪽 사람들은 사는 게 사명 이예요. 그런데 이 산발랏이라는 인간이 이쪽에 성전을 지으니까 이 사람이 총독인데 합세해서 느헤미야를 유인해서 죽이려 했어요. 그리고 성전 못 짓게 방해를 했어요. 심지어 본국에 윗사람들에게 말해서 느헤미야가 왕이 되려 한다고 헛소문을 퍼뜨려서 실제로 성전을 중단한 적이 있어요. 처음에 성전 짓자마자 중단됐어요.
그건 뭐냐 하면 소위 텃세라는 게 있잖습니까? 만약에 여기서 성전을 지어버리면 같은 높은 사람들 보기에 자기는 너무 세속적으로 보이고 이쪽은 종교적이니까 혹시 위 사람이 관심사가 자기 쪽보다는 예루살렘 쪽에 더 신경을 써서 자신을 홀대하겠다는, 홀대하면 어떤 현상이 벌어지느냐 하면 사마리아 이쪽 재물이 어디로 들어올 수 있습니까? 재물이 이쪽 중심으로 만약에 요새 새로운 구호까지 하면 이쪽의 것을 다 빼앗길 수가 있다 이 말이죠. 그래서 결국은 텃새죠. ‘에이씨, 어디 기어온 게 어디서 잘난 체 해서.’ 방해했습니다.
그런데 성전 짓는 것은 그런 뜻이 아닌데 산발랏이 괜히 시샘을 한 거예요. 주변에서. 그래서 에스라, 느헤미야는 ‘그게 아니고 우리가 성전 짓는 것은 우리 뜻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이미 계산된 것이고 약속된 것이다.’ 그렇게 해서 후원받아서 힘을 합해서 결국은 다 지었습니다. 다 지었지만 바로 이러한데 느헤미야가 와서 이방 여자하고 결혼한 것, 강제 이혼시켰습니다.
십일조 이런 것을 강제로 징수하기 위해서 제사제도, 제사장을 엄격하게 당번제로 채택했습니다. 그래서 성전에서 끊임없이 제사를 함으로서 그 제사하는 비용을, 십일조를 그야말로 강제 징수한 거죠. 그리고 안식일 날 이런 사람을 과감하게 처단합니다. 이러한 문화를 이미 바사 나라 중앙 부처에서 인정을 받았어요. 왜 느헤미야는 총독이니까. 그런데 느헤미야 본인은 월급도 안 받았어요. 그게 뭐냐, 율법 공동체가 이상적으로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뭐냐 이렇게 세워졌으면 에스라, 느헤미야 시대 때 학개, 스가랴가 있었거든요. 말라기도 있었어요. 학개, 스가랴는 3개월 차이로 온 사람, 학개, 스가랴, 말라기 세 선지자가 함께 있다가 홀연히 다 사라져 버렸어요. 그리고 구약 성경에 더 이상 내용이 안 나옵니다. 무려 400년 동안.
그러면 아까 이야기했지만 역사라 하는 것은 끊어짐이 없죠? 그러면 이 공동체를 누가 인수인계 받을 게 아닙니까? 그 인수인계 받는 과정에 대해서 제가 그 뒤에는 어떻게 되는가? 그걸 지금부터 여러분한테 말씀드릴게요. 이야기 식으로 말씀드릴게요.
인수인계 받고 난 뒤에 희한하게도 딱 끝나고 난 뒤에 그렇게 후원해 준 바사 나라가 멸망하고 맙니다. 다리우스 3세가 알렉산더한테 대패해서 331년에 멸망해요. 멸망하고 난 뒤에 그 뒤에 그걸 다니엘 8장에서는 염소라 해요. 다니엘 8장 20절에 보면 “두 뿔 가진 수양은 곧 메대와 바사 왕들이요 털이 많은 수염소는 곧 헬라 왕이요” 수염소가 헬라 왕이거든요. 이 헬라 왕, 알렉산더가 나오는데 이 헬라 왕이 나중에 어떻게 되느냐 하면 22절에 네 뿔이 등장하는데 네 뿔이 리시마쿠스(Lysimachus) 카산더(Cassander) 셀류쿠스(Seleucus) 프톨미(Ptolmy), 프톨미는 이집트와 예루살렘, 셀류쿠스는 현재 내전 벌이고 있는 시리아와 그리고 이란, 그리고 터키는 리시마쿠스, 동쪽으로, 그리고 카산더는 현재 그리스 북쪽과 터키의 서쪽 부분을 먹었어요. 그렇게 정리됐어요.
그렇다면 우리는 이 예루살렘이 어떻게 되느냐 하는 건데, 다시 하면 인수인계 받은 이것은 자치 종교는 인정해줬잖아요. 예루살렘은 프톨미의 수하에 들어갔거든요. 역시 전에 있던 선임자와 정책이 같아요. 대통령 바뀌어도 외교정책은 그대로 가잖아요. 그런데 하나가 더 추가됐어요. 그게 뭐냐 하면 전부 다 헬라화가 됐어요. 헬라화라 하는 것은 헬라 나라의 풍속과 종교 문명을 그대로 이렇게 수용을 하기를 원했죠. 그런데 유대나라는 세금만 바치면 되는데 이제 와서 헬라화로 바뀌는 그런 것까지 강요받게 되었어요. 그런데 심하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느냐 하면 프톨미 시대에 헬라화를 반대하지 않겠습니까? 인수인계 받았으니까. 역사는 중단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거의 유대인들을 많이 이집트로 데려갔어요. 이집트로 간 유대인들이 잘 살아도 너~무 잘 사네, 하여튼 유대인은 어디 가도 잘 먹고 잘 살아요. 별로 능력도 없고 못 사는 것들이 계속 예루살렘에 남아있었어요. 그런데 처음에 이집트 갈 때는 ‘우리는 여호와를 믿어요.’ 하다가 가서는 신이 난 거죠. 한국 있다가 미국 가보세요. 신이 난 거예요. 역시 이런 좋은 게 있었구나. 취미도 헬라 취미로 바뀌고, 경기장에서 옷 벗고 하는 게 헬라거든요. 유대인인지 아닌지 간닥간닥해요. 신나니까. 세상에 이런 좋은 세상인데. 이집트 간 사람들은 이집트만 헬라가 아니고 전체가 헬라인데 지금은 이집트죠. 이집트 헬라 전체에 네 부분이 있었던 거예요. 이해하시죠?
북쪽에 있는 셀류쿠스가 자꾸 예루살렘을 탐을 내네요. 왜 그러느냐 하면 자기가 로마, 이탈리아가 일어나니까 옛날의 헬라 지역이 드디어 충돌이 일어나거든요. 그래서 전쟁 비용이 많이 필요했어요. 그런데 전쟁에 졌네, 전쟁에 지면 벌금을 내야 되잖아요. 배상금, 그 돈이 없으니까 어디를 넘보느냐 하면 예루살렘을 탐을 내네요. ‘형님, 예루살렘 주세요.’ 하니까 ‘미쳤나? 이 좋은 걸. 세금 많이 나오는데. 성전에 보물도 많고. 안 된다.’ 그래서 계속 전쟁한 거예요. 그게 프톨미 1세, 2세, 3세가 싸우고 저쪽은 셀류쿠스 1세, 2세, 3세가 붙어서 결국은 301년에 넷으로 갈라져서 198년에 드디어 프톨미 5세를 셀류쿠스 3세가 이깁니다. 이기고 예루살렘을 먹습니다. '형님, 이제는 할 말 없죠?‘ 먹죠. 싱가포르 나라가 잘 사는 이유가 싱가포르에 있는 중국의 화교들이 외국에서 많이 도와줬거든요. 그동안 유다나라 예루살렘이 버틴 것은 이집트의 유대인들이 잘 사니까 도와줬다 말이죠. 그래서 이집트의 유대인의 후원에 의해서 프톨미 시대 때 예루살렘에서 뭐를 했느냐 하면 헬라어로 된 성경을 70인경으로 만듭니다. 이건 히브리어가 아니고 헬라어예요. 언어는 요새는 영어로 통일 됐어요.
인간은 유대인인데 말하는 것은 천지가 헬라어니까, 돈 벌고 먹고 살려면 언어를 세계 통용어로 바꿔야 돼요. 그래서 후손들에게 여호와 하나님 잊어버릴까 싶어서 72명이 번역해서 성경을 만들어서 이제는 그 성경 보고, 이제는 나라는 찢어졌으나, 백성은 흩어졌으나 우리는 이제 하나가 되자. 그렇게 했어요.( B.C 282〜246 프톨미 2세 통치 기간 동안에) 그런데 198년에 망하고 난 뒤에는 셀류쿠스왕조에 속한 자가 등장합니다. 새로 주인이 바뀐 거예요. 전세 주인이 바뀐 거예요. 와서 ‘그동안 편했지? 욕 좀 봐라.’ 해서 할 때 예루살렘에서 ‘요한나’라는 제사장이 ‘우리도 적극적으로 할례 행하기를 원합니다’라는 아부쟁이가 등장합니다. 이 완용, 아부쟁이가 등장하니까 셀류쿠스에서는 가만히 보니까 이미 유대인의 내부에서 아부쟁이가 오니까 얼마나 통치하기 쉽습니까? ’그래, 그래 권한 너한테 다 줄게.‘ 이렇게 된 거예요.
이건 남아메리카의 나라들을 미국에 자본이 잠식해 들어갈 때 미국의 금융자본을 대환영하는 거기에 남미의 지도층과 결탁해 버리면 미국은 미국의 남미에 있는 광석, 광물의 자본의 잠식이 쉬운 거예요. 왜, 쌍수 들고 환영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라 말이죠. 그래서 지금 남미가 그렇게 계급이 쿠데타도 많고 공산주의가 되고 계급투쟁이 많은 것은 그때 미국하고 붙은 사람은 지금까지도 대대로 잘 살고 있어요. 그게 요새로 말하면 친일파 아닙니까? 항상 정권 바뀔 때 처신 잘해야 돼요. 잘 붙어야 됩니다. 외국으로부터 오는 그것을 쌍수를 들고 대 환영을 하는데 전에는 프톨미한테 붙었던 귀족들이 새로운 통치자에게 아부를 할 때 셀류쿠스 왕은 이렇게 나옵니다. “유대왕은 허락 못한다. 진짜 헬라를 적극적으로 나라를 헬라로 바꿀 수 있는 사람 같으면 내가 왕의 업무를 맡은 대제사장직을 유지해 줄게.” 왕은 없는데 왕의 역할을 이 셀류쿠스 왕조에서 직접 하는 것이 아니고 나라 자체에서 셀류쿠스 왕조의 성격과 딱 들어맞는 그 사람으로 하여금 친 헬라인 인사를 통해서 나라를 하는 거죠.
그러면서 셀류쿠스 왕조에 안티오쿠스 4세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안티오쿠스 3세는 괜찮았어요. 3세는 그냥 자립해주고 세금만 내도 됐는데 4세는 이거는 완전히 미친 거예요. 사실 이야기가 여기 성경에 나옵니다. 여기 8장 8절에 보면 “그 중 한 뿔에서 또 작은 뿔 하나가 나서” 이렇게 시작해서 11절에 보면 “또 스스로 높아져서 군대의 주재를 대적하며 그에게 매일 드리는 제사를 제하여 버렸고 그의 성소를 헐었으며 범죄함을 인하여 백성과 매일 드리는 제사가 그것에게 붙인바 되었고” 이거 완전히 성소를 짓밟아 버리거든요.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안티오쿠스 4세) 그랬는데.
이 인간이 뭘 요구했느냐 하면 여호와 성전에다 제우스 제단을 세웠어요. 그리고 모든 여호와의 절기를 없애 버리고 원래 돼지고기를 못 먹게 했거든요. 율법에 보면. 돼지고기 안 먹고 할례 행하고 안식일 지키는 인간들 사형시켰어요. 그냥 감옥 정도가 아니고 사형시켰어요. 그리고 강제로 이교종교행사에 요새 애들, 초등학교 애들을 강제로 동원시켰고, 어른들도 동원시켰고 디오니소스라 해서 술 축제를 벌여요. 또 거기에 강제 동원시켰어요. 여호와 종교를 말살 시키려는 거죠.
그런데 그러한 이건 아주 완전히 종교자체를 헬라 종교, 제우스 종교를 여호와와 동급으로 본 거예요. 그걸 바꿀 때 유다에서 저항이 심했다고 생각되죠? 그런데 사람이 종교가 우선입니까? 밥 먹고 사는 게 우선입니까? 소위 까라면 까는데 거기 있던 예루살렘의 귀족들은 이미 이집트에서 돈을 많이 벌었던 그런 귀족들이 돈 가지고 뭐하겠어요? 권력을 사야 될 게 아닙니까? 돈을 더 줘서 메렐라우스라는 그런 자기가 제사장을 사버려요. 그 전에 야손이란 인간도 돈을 주고 그렇게 했거든요. 그는 왕에게 돈을 주고 오니야 3세한테 대제사장을 뺏어 버렸습니다. 베팅에 베팅으로 나온 겁니다. 아부도 그런 아부가 없어요. 메렐라우스라는 이 제사장은 자기가 앞장서서 자기가 더 심하게 완전히 자기나라를 헬라 신으로 다 바꿔놨어요.
그리고 그 밑에 자치국에 권한이 대단합니다. 왜냐 세금을 징수하고 치안을 보장하기 때문에 자체 군대가 있어요. 그래서 밑에 세무공무원이 보내서 종교담당 공무원과 요새로 말하면 식양청과 비슷하게 ‘혹시 여기 참기름 중국 산 아닙니까? 여기 소고기가 한우가 아니고…, 조사하는 것처럼 그 정도로 그 사람 각자의 소위 5호, 집이 다섯 째, 여섯 째 담당 제라 해서 제사, 여호와의 예배를 못 드리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맛디아라는 집에 가서 이 사람이 제사장인데 예루살렘이 아니고 변두리에 있는 맛디아 집에 가서 그 식양 청 비슷한 인물을 잡아서 ’여기도 혹시 종교 청에서 와서 돼지고기 먹죠? 안식일 지키지 말고 할례 행하지 말고 반드시 제사하세요.‘ 하니까 성이 나서 관리인을 죽여 버렸어요.
그리고 맛디아의 아들이 있는데 그 아들이 뭐냐, 독수리 오형제예요. 다섯 명이 24년간 전쟁을 벌입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는 법이잖아요. ‘이게 어디 앞잡이가? ’일본 놈 앞잡이라 해서 죽여 버리고, 드디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 반란 일으킨 것을 하시딤이라 해서 누구와 싸우는가, 원래 예루살렘에 군대를 뒀었는데 안티오코스 3세가 아크라라는 요새를 여기다 만들었어요. 주둔군, 미 8군이죠. 여기를 공격해서 싸웠습니다. 이길 수가 없겠죠. 이길 수가 없어서 게릴라전을 해요. 이 동네 하지 말고 이 동네는 너무나 요새가 잘 돼 있고 훈련돼 있는 것이고, 농학혁명도 아니고 농민들이 안 되니까 밖으로 끌어내서 지형, 지물을 누가 압니까? 본토박이가 잘 알잖아요. 그랬는데 전쟁이 되지를 않죠. 안 되는데 하필이면 거기에 셀류쿠스 왕조에 반란이 일어나서 여기에 신경을 못 쓴 거예요. 그래서 우연히 승리해 버렸어요.
164년에 드디어 성전을 회복했습니다. 그걸 하누카 절기라 해서 지금도 지키고 있어요. 400년 만인가 드디어 독립을 이뤘어요. 그전에도 사실은 반란이 있었는데 그전에 반란 있을 때 이기지 못한 이유가 그전에는 반란 일으킬 때 유대인의 반란에서 하나님의 법대로 한다고 안식일에는 전쟁을 안 했거든요. 그러니까 좋다고 셀류쿠스 군대가 안식일만 공격해서 다 죽었습니다.
방법이 두 가지 방법인데 하나는 안식일 날 공격하면 그들은 가만히 앉아서 죽어요. 순교로서 대항하는 방법과 이 맛디아 가족은 어떻게 약속을 했느냐 하면 전쟁 중에는 안식일을 안 지켜도 된다는 법을 만들었어요. 이기고 난 뒤에 유다가 되고 난 뒤에 정책이 뭐냐 하면 두 파가 또 갈라져요. 일단 예루살렘을 먹었으니까 뭔가 먹고 나면 슬슬 개평이 어떠니 저떠니 누가 공로가 많다느니, 하잖아요. 이제 무장을 풀자. 이렇게 나왔어요. 이게 하스몬 가거든요. 하스몬 왕조가 80년 쯤 가요. 하스몬 가에서 이제는 우리는 하나님을 위한 전쟁을 했지, 싸움을 위한 싸움은 아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신다. 이번 성전에도 기적적인 전쟁이기 때문에 우리가 칼 좋아하고 이런 거 하지 말자. 무장을 풀다가 또 위협이 오면 하자 했는데 하시딤에 적극적으로 게릴라에 참여했던 다른 사람들이 지금 풀어버리면 치안이 또 들어온다. 풀지 말자. 파가 두 파가 생기고 말았어요.
그런데 이쪽의 하스몬 가가 이미 권력을 먹었으니까 자기는 배부른 거고, 또 지금 편한데 전쟁하려니까 또 안식일 못 지키게 되잖아요. 율법에 어긋나니까. 파가 두 파가 생겨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있어 보니까 하시딤 입장에서 이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이렇게 전쟁을 한다 해놓고 가만히 보니 저기 집구석 권력을 다 해먹었네. 원래 그래요. 저희끼리 돌아가면서 다 해먹는 거예요. 마넬라우스가 해임되고 온건한 헬라주의자인 알키무스가 대제사장으로 임명이 되자 여기에 불만을 품은 빨지산 출신들이(하시딤) 다시 시리아하고 전쟁벌려서 유다의 동생 시몬이 대제사장 되고 그 다음에는 그 아들 힐카누스가 또 대제사장이 됩니다. 이들 하스몬 가문이 권력을 다해 먹으니까 하시딤 계통에서 같이 고생했던 바리새인이 여기서 나와요. ‘저렇게 정식의 다윗 계통의 제사장들은 제사장 못한다. 너희들은 정치만 하고 제사장은 우리한테 인수인계하라.’하니까 ‘미쳤나?’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전에 싸웠던 하시딤이 누구한테 원조를 요청하느냐 하면 셀류쿠스한테 원조를 요청하는 거예요. 오늘날 정치판하고 똑같이 돌아가는 거예요.
이게 뭐냐 하면 에스라, 느헤미야의 인수인계 받은 그 계시 없는 침묵의 400년 동안에 그게 계속돼요. 처음에는 로마한테 요구하다가 나중에 하는데 힐카누스 1세가 이 사람이 싫으면 말아. 바리새인들은 ‘우리가 전쟁하는데’ ‘우리도 했다. 정권 우리가 쥐었다.’ 하고 여당이 행보를 하는 거예요. 하면서 이제는 율법이 문제가 아니고 슬슬 우리가 옛날 솔로몬과 다윗 시대에 있던 영토가 이제 그리워지는 거예요. 지금 해봐야 예루살렘 동네 몇 안 되지만 물론 성전에는 많은 보물이 있지만 요거밖에 안 되는 거예요.
독립한 것은 164년에 했죠. 최종적으로 마지막 승리한 것이 142년인가 그때 승리했어요. 그 다음부터는 죽 하스몬 가가 세습적으로 나가는 거예요. 힐카누스도 하스몬 가 요나단 아들인가 그쪽 계통 이예요. 하면서 은근히 뭐가 생각나느냐 하면 영토가 욕심이 나는 거예요. 그래서 게릴라 성 전쟁을 해서 영토를 확보하면서 유다 남쪽에 에돔이 있어요. 에돔의 사람들을 모으고 갈릴리 사마리아 다 잡아먹어서 강제로 뭐를 하느냐, 할례를 시켜버렸어요. 이렇게 나오니까 누가 구하느냐 하면 이방인들이 처음에 여기 등기부등본, 부동산을 몰래 쥐고 있던 이방인들이 있거든요. 예루살렘에 귀환해서 본적을 옮긴 처음부터 살던 사람들, 요새 같으면 팔레스타인 그런 사람들, 자기가 있는데 지들 땅이라 하니까 말이 됩니까? 안 되죠. 그래서 UN에 호소하고 하잖아요. 이방인들 입장에서 봐서 이건 유대인이 아니면 자살할 판 이예요. 완전히 이제는 할례 안 받으면 이건 살 수가 없게 됐어요. 강제로 할례를 받아야 돼요.
여기에 대해서 바리새인이 또 반발합니다. 바리새인들이 ‘이방인들에게 강제로 하는 그것은 혈통도 아닌데 정치적인 일이지, 율법에 어긋납니다.’ 하니까 ‘에씨, 바리새인들 까분다.’ 해서 그 밑에 얀네우스가 바리새인을 6000명을 십자가에 처형시켜 버렸어요. 그래서 바리새인들이 어디로 가느냐. 셀류쿠스 군대한테 원군을 요청해서 또 싸움 질 하다가 63년도에 드디어 로마 폼페이가 셀류쿠스를 멸망시키고 예루살렘에 진격하여 약 12000명이나 되는 유대인을 죽여 버렸습니다. 요거 반란 끼 있는 놈 손 봐야 한다고 다 죽여 버렸어요. 죽였을 때 여기에 대해서 유대인들이 어떻게 되겠어요? 또 여기에 친 로마인들이 ‘형님, 우리가 알아서 정치할게요.’라고 나온 사람이 있었어요.
안티파퍼는 로마의 폼페이가 쥴리우스 시이저에게 패배당할 때에 협조를 해서 유대 행정 장관으로 임명받습니다. 이 안티파터가 유명한 헤롯의 아버지입니다. 37년에 하스몬家(가)는부 막을 내리고 헤롯왕가의 시작이 됩니다. 쥴리어스 시이저가 로마에서 암살당하고 안토니우스가 권력을 쥐자 헤롯이 재빨리 뇌물을 바쳐서 계속 유다 지방의 왕이 됩니다. 이번에 그 안토니우스가 옥타비우스에게 패배하자 그의 편을 듭니다. 그래서 자기 아들을 전부 분봉왕으로 책봉받게 됩니다. 그때 본디오 빌라도는 유대의 총독이고, 헤롯 아켈라오는 예루살렘과 유대 지역의 분봉왕으로, 안디바는 갈릴리 지방의 분봉왕으로, 빌립이라는 아들은 골란 고원(이두메 지역)의 분봉왕이 됩니다. 그 다음 안디바의 아들인 아그립바 1세는 헤롯 아켈라오 이후의 유대 본봉왕이 됩니다. (눅3:1) 이런 식으로 줬어요. 줘놓고 내부적인 문화적 종교적인 지원은 성전을 세워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다 만족하도록, 사두개인은 뭐냐 로마가 올 때 쌍수를 들고 대 환영을 했어요. 사두개인은 모세오경만 인정하고 성전 제사에 대해서 나머지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은 역사와 전통을 존중한다 해서 오경 이후의 모든 성경도 성경으로 보는 사람들 이예요.
그래서 헤롯이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을 달래기 위해서 BC 19년에 성전을 세웁니다. 성전 완공되는 게 AD 62년이지요. 예수님 당시에도 46년 간 지었다 했습니다. 요한복음 2장 20절에 나오죠. 성전 지어서 유화책을 써요. 유화책을 쓰고 하지만 국가의 세금 거두는 것은 ‘나한테 건드리지 마, 건드리면 죽는다.’ 이렇게 했어요. 그런데 마태복음 2장에서 동방박사가 별 따라 왔을 때 예수님과 그 가족과 동방박사 죽이려고 누가 했습니까? 헤롯이 죽이려고 했죠.
그렇다면 헤롯은 어느 계통이었겠습니까? 성전까지 지어주었으니까 헤롯은 에스라, 느헤미야의 인수인계 받은 거죠. 에스라, 느헤미야에게 인수받았지만 세월이 400년 지나고 난 뒤에 아무 계시 없이 바로 예수님이 연결될 때 그 인수인계 받은 그 나라가 졸지에 무슨 나라였다? 막상 별 뜨고 아기예수 떠버리니까 베들레헴 두 살 밑의 애들을 다 죽였죠.
그럼 결국 이게 뭐예요? 그동안 계시가 없이 하나님께서 에스라, 느헤미야를 방치한 것은 그 역사가 사실 무의미한 역사가 아니고, 예수님이 왔을 때 가장 가까운 짐승, 다시 말해서 마귀죠. 진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될 그 검은 세력, 그 정체가 극히 율법적이고 종교적이고, 그런데 그것이 너희 아비는 뭐라 했습니까? ‘너희 아비는 마귀’
예수님께서 세례요한과 더불어서 세례를 받죠. 그때 하늘에서 뭐가 내려오죠? 성령이 내려오죠. 그러면 역사는 뭡니까? 역사는 예수님 오심으로서 자기의 마귀 성을 드러내는 순간 역사는 더 이상 진척될 의미가 없는 겁니다. 왜, 이제 수직적으로 성령이 오니까, 제가 아까 했잖아요. 지극히 높은 자의 성도는 어떻습니까? 요한복음 17장 14절 말씀처럼 너희들은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죠? 그러면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는 것은 우리가 속한 세상은 뭔 세상이다?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됨을 희석시키고 그걸 못 듣게 만들고 그것에서 관심 두지 않게 하고 그것을 무시하게 만드는 그런 적극적인 역할을 현재 우리가 속해있는 이 세상이 충실하게 해내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이렇게 방치하신 이유는 바로 이 세상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그 중에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다니엘 8장 같으면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 지극히 높으신 자로부터 바로 직선으로 뭐가 옵니까? 성령이 오죠. 사도행전에 이방인들이 어떻게 구원받습니까? 뭘 받아요? 성령 세례를 받죠. 뭐를 전할 때? 십자가 복음을 전할 때 성령 세례 받잖아요. 어디 정치적으로 제도 꾸미고 백성들이 어떻게 성도 투표했습니까? 그래서 지극히 높으신 나라 됐습니까? 절대로 아니죠. 오히려 그런 방법은 뭐냐, 하나님의 나라를 유사모방 하는 오늘날 교회들이 법을 만들어 그 짓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교회가 결국 무슨 집단이 됩니까? 너희 아비는 마귀다. 마귀 집단의 선봉장이 되는 거예요. 왜, 다른 어떤 집단보다 가장 가까이 복음을, 십자가(지붕에다 십자가 걸어놨잖아요.)를 가까이 하면서 십자가를 모독하게 하는 가장 가까운 그런 단체이기에 그렇습니다.
첨부파일 : 가락교회-다니엘 7장18(중간사)130117-12강a -이 근호 목사.hwp (64.0K), Down: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