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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녹취]2013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 제3강자유게시판마태복음

[녹취]2013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 제3강

이름 : 한윤범(IP:14.39.134.60)

2013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 제3강

(강의:이근호 목사)

세 번째 시간 시작하겠습니다.

지난 시간 마지막에 시편2편 1절부터 봤는데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

이 문장에서 개인의 사정은 빠집니다. 성경에서 개인은 개인으로 인정치 않습니다. 어느 나라에 종속된 것으로 보기 때문에 개인적인 사정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관여하는 게 아니고 “너, 어느 나라 소속이야?” 이래 묻는 거예요. “우리 애가 아픈데 하나님 병 좀 낫게 해주세요?” 이렇게 기도하면 병 낫는 건 관심 없고, “너, 소속이 어디야? 어느 나라 소속이야?” 이렇게 묻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개인적인 사정을 묻는 것은, 그것은 종교생활이 되겠지요. 성경에 나와 있는 하나님의 일은 종교생활이 아니고 새 나라 만들기. 또는 마태복음 6장에 의하면, 그 나라와 그 의를 만드는 겁니다. 개인적인 종교생활은 반드시 기도의 사적인 요구상항이 있게 마련이에요. 그런데 새 나라 만들기는 개인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고 개인이 소속돼있던 나라 전체를 지목합니다. 그래서 이 개인이 현재 내가 속해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현실적인 나라, 한반도에 거주하고 있는 오천 년 역사를 자랑하는 그 나라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아니하면 성경도 내용을 모른다고 보면 돼요.

아까 아침식사 중에 어떤 분이 그런 이야기했잖아요. 강의가 어려워서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어서 참석 못했다고 하셨는데 성경 속에 들어오려면 먼저 무엇에 관심이 있어야 되느냐 하면, 개인 문제를 떠나서 이 나라가 어떻게 하면 좋은 나라 되어서 거기에 덧붙여서 내가 살 수 있는가? 나라 생각을 해야 되는데 사람이 나라에 대해서 관심이 없으면서 어찌 그 나라와 그 의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나 혼자 하는 주장인가요?

사람들이 개인 문제에 집약하게 된 이유, 그것은 그 전에 처음부터 인간이 그런 게 아니에요. 옛날에는 신분사회라 해서 전통이 그 사람의 존재를 지정해줍니다. 너는 상놈이다. 너는 양반이야. 내가 상놈이 될 때는 사적으로 어떻게 내 인생을 꾸리느냐 그건 관심 없고, 나를 상놈으로 지정해준 이 나라에 상놈으로써 기여해줘야 그나마도 밥 먹고 살 수 있습니다.

개그콘서트에 보면 [노애]라는 코너가 있어요. 노예라는 생각이 우리 같으면 노예들이 반란을 일으키면 될 텐데 노예는 철저하게 길들여져 있어요. 주인이 까라면 까야 돼요.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노예지, 만약에 주인에 대해서 반발해버리면 이것은 해방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고 죽음입니다. 전혀 자기가 자기 아닌 게 돼요. 개한테 사람 옷을 입힌 것과 마찬가지라고. 사람 보기에는 좋지만 개는 죽을 지경이잖아요. 노예는 노예답게 살 때 가장 행복해요.

노예가 사랑할 때는 주인이 지정을 해줍니다. 너는 이 여자와 결혼해야 돼. 만약에 서로 눈 맞아 사랑하게 되면 누가 화를 내느냐 하면, 옆에 있는 다른 노예가 신분을 망각했다고 분노를 일으킵니다. 너 때문에 나도 칠 수가 있다고 되는 겁니다.

시편2편에서는 하나님의 새로운 기름 부은 자의 나라, 그 당시는 이스라엘이죠. 기름 부은 자가 왕이 되어서 새 나라를 이루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리 날고기어도 어떤 나라의 백성으로만 한정돼있습니다. 내가 왕 되고, 내가 장관 되고 이런 것 없어요. 그 나라에서는 그냥 백성된 것으로 더 이상 진출할 능력은 없어요. 범주가 백성이다. 고마운 줄 알아라. 이것들아. 이러면 끝나는 거예요. 그런데 현대사회는 백성이 아니고 자기 생활은 자기가 알아서하면 되는 거예요.

경기도 부천에 오정경찰서에서 애들에게 교통질서를 가르쳐요. 이건 국가관이 아닙니다. 애들은 국가관이 없어요. 자아가 커가면서 국가관이 생겨요. 이걸 시민사회라 합니다. 헤겔이란 철학자는 시민사회와 국가를 구분했습니다. 구분한 이유가 있어요. 시민사회는 뭐로 지탱되느냐 하면, 나는 거기에 동의한다는 동의함으로 지탱합니다. 국가란 강제로 하는 겁니다. 애들에게 교통질서를 교육하는 것은 그 지역민들이 좋아서 하는 거예요. 우리 애를 지키고. 나라를 위해서. 네가 파란불, 빨간불 잘 지켜야 우리나라가 잘 되는 거야. 애들은 나라개념이 없지요. 사적 영역입니다. 경찰서는 그 지역과 교류하기 위해서 사적영역에 동의를 구하는 거예요. 그 경찰서는 좋은 일도 많이 해요. 간부들이 만두 만들어서 직원들에 주고. 종무식에서.

개인이 사적영역에서 벗어나서 국가라는 것은 없는 거예요. 오죽 이것이 안 됐으면 존 F. 케네디가 맨날 하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나라가 당신을 위해서 뭘 해줄까 기대하지 말고 당신이 나라를 위해서 뭘 할까를 생각하라. 성문종합영어에 나오잖아요. 오죽했으면 현대국가가 시민사회로 멈추고 국가라는 개념이 없어요. 못 살면 이민가면 되니까. 군에 가라 하면 탈출하면 되니까. 외국으로 유학 가서 안 들어오면 되니까.

현대종교생활이 자기밖에 모르는데 성경을 이해한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종교생활을 하기 위해서 성경을 펼친다면 목사가 할 일은 굉장히 쉽습니다. 성경구절 가운데서 행함으로 나와서 복 받는 경우만 뽑아서 정당화시키면 그만이어요. 제가 지난번에 이야기했지만 교회에서 간증의 연쇄 고리라 하는 것은, 간증집회라 하는 것은 이 간증이 아무나 되는 간증이 아니에요. 이렇게 행했더니만 복 받더라하는 경우의 수가 있어요. 나도 해볼까? 여러 명이 이런 행위를 하니까 복 받네. 그러면 그것은 그 교회에서 진리로 고착이 되는 겁니다. 그것만 증거하면 되는 거예요.

교육관을 짓는다. 십만 원 헌금했더니만 그 다음날 삼십만 원이 들어왔더라. 우연히. 되더라 이 말이죠. 그럼 나도 십만 원 헌금할게. 그러면 그 교회는 간증의 반석 위에 우뚝 서는 교회가 되는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이 그걸 좋아하는 것은 그게 국가와 상관없고 그 나라와 그 의와 상관없이 이 땅에 살면서 뭔가 했더니만 나한테 추가적인 반대급부가 돌아온다는 사적영역에서 통하는 원리가 교회에서도 통하니까 세상에 이렇게 편리한 하나님이 어디 있습니까. 나를 못 도와줘서 환장한 하나님이야.

그래서 국가가 소멸되니까 시민사회를 어려운 말로 심급이라 하는데 어떤 급이에요. 계급투쟁. 사람이 속해 있는 동의에 의해서 자기가 자발적으로 동의한다는, “나는 낚시회에 가입할래. 나는 골프회에 가입할래.” 자발적인 동의가 되면 그것은 시민단체가 되고 시민사회는 권력을 발휘하게 돼있어요. 인간은 자발적인 동의에 의해서 권력을 발휘하게 되면 내가 속해 있는 시민단체 말고 다른데 소속이 돼요. 또 걸치게 된다고.

걸치게 되니까 그 중간에 낀 나라는 인간은 결국 뭐냐? 나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동의하게끔 유혹한 또는 강요에 의해서나 관습에 의해서나 집안의 내력에 의해서나 어쨌든 소속돼요. 예를 들어서 아버지, 엄마가 교회에 간다. 그럼 자기도 절에 못 가고 교회 가는 거죠. 그 애한테는 교회가 뭐냐? 시민단체에요. 시민사회라니까요.

시민사회는 강제가 아니고 나의 동의를 필요로 하는데 이 동의는 시민사회에서 내가 이익을 얻을 수 있으면 그 시민사회를 탈퇴하지 않고 계속 버티고 있는 거예요. 만약에 그 시민사회가 계속 나한테 어떤 손해를 주면 얼마든지 탈퇴가 가능하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러한 시민사회들끼리 계급투쟁이 돼버리면 여기서 나라라 하는 것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거예요.

그렇다면 나는 흔들리는 내가 되어서 항상 불안정한데 그걸 알튀세르라는 학자는 인간의 주체란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주변에 있는 조직들이 나를 결정한다고 해서 내 의사를 넘어선다고 해서 초과결정 또는 과잉결정, 과잉선택이라고 해요. 이건 ‘강요된 자율’이에요. 니 마음대로 해. 이것 중에서 네 마음대로 해. 강요된 자율이에요.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은 결국 시민사회 전체 국가가 결국 그 나라와 그 의의 원리는 아니란 거죠.

사람들은 이런 나라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느냐? 이렇게 좋은 사회를 미쳤다고 벗어나요? 이렇게 정든 사회를. 그런데 이 사회를 벗어나지 못한다 하면 그 나라와 그 의라는 것은 꿈도 꾸지마세요. 인간사회에서 생각하는 천국은 이 사회의 연속이고 연장입니다. 이 사회 버리고 다른 사회 가는 게 아니에요.

제가 KTX 타고 밤에 오는데 어린애가 대전에서 탔는데 굉장히 시끄러워요. 여섯 살쯤 먹은 애한테 “조용히 해.” 하니까 젊은 엄마가 나를 흘겨보는 거예요. 자기도 평소에 안 나무라는 애를 왜 나무라느냐. 그래서 여자가 애가 생기면 악한 정도가 아니라 독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왜 여자가 지옥 가는지 이유를 알았어요. 이거는 시민사회도 없어. 자기 가정이 전부야. 자기 새끼가 전부에요. 자기 애 때문에 60명 되는 승객들이 잠도 못 자고 있는데. 자기 주체만 지키고 있단 말이죠.

그렇다면 여기서 성경 들어가기 전에 중요한 문제가 있어요. 인간들이 말하는 이 불안정한 주체, 오늘은 어디 칠지 모르고 어느 단체에서 나를 당겨갈지 모르고 또 어느 집에 갈지 모르는 이러한 입장에서 그런 사회들이 모여서 인간들이 생각하는 국가라는 이미지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그것을 성경 보기 전에 파악해야 이 국가관이 모조리 다 무너지고 에스라, 느헤미야가 꿈꾸고 있는 율법의 나라가 되는 거예요. 오해하지 마세요. 율법의 나라는 율법으로 도배한 나라를 말하는 게 아니고 율법에 의해서 얼마든지 노출 되어서 얼마든지 발각당할 수 있는 나라를 말하는 겁니다. 그 나라와 그 의라는 게.

엄마가 말할 때 애가 말을 해도 기분 나쁘게 하는 말이 있고, 기분 좋게 하는 말이 있거든요. 엄마가, “너, 컴퓨터 게임하고 있니?” 이렇게 물으면, “어머님, 어머니께서 작년에 내 생일에 사주신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사주신 취지에 부응하기 위해서 오늘도 열심히 밤새도록 게임을 했습니다.” 이러면 어머니가, “이 복 받을 자식아. 여호와의 복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같은 말이라도 “너 뭐하고 있니? 컴퓨터 게임하다가 나한테 들켰구나.” 같은 말을 해도 ‘들켰구나’라고 하면 자식은 본의 아니게 마치 엄마의 감시를 요청한 셈이 돼버렸단 말이죠. 내 컴퓨터로 게임하고 있는데 내가 엄마한테 들키면 안 되지. 내가 언제 조마조마하면서 컴퓨터 게임을 했느냐 말이죠. 그 이야기 듣고는 아무리 자식이지만 기분 되게 나쁜 거예요. “너, 나한테 들켰지?” 뭘 들켜? 언제 엄마를 의식해서 했는데. 부부사이에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내가 갑자기 들어오니까 놀랬지?” 뭘 놀래?

율법의 용도는 지키는 용도가 아니고 들키는 용도에요. 발각시키는 용도라니까요. 모든 사람의 입을 막고 율법 아래 저주 아래 있게 하심이라. 교회가 말씀대로 세워진 이유는, 교회는 그리스도 앞에 항상 발각되는 단체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좋은 구절 다 끌어 모아서 흠 없는 교회를 만들려고 해요. 도대체 그런 더러운 버릇이 어디서 나왔는가? 이게 바로 시민사회, 이 세상에서 살면서 나온 버릇입니다. 그걸 제가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다시 이야기합니다. 에스라, 느헤미야의 율법의 나라는 율법으로 도배를 하고 율법으로 치장한 나라가 아니고 항상 “하나님이여, 오셔서 저희들이 뭐가 문제인지 검사해주시기 바랍니다.” 하고 율법이 우선이고 우리는 그 앞에서 노출되기를 기다리는 나라, 그게 그 나라와 그 의입니다. 그게 바로 예수님 오시기 전, 신약성경 그 나라와 그 의 이전에 과도기 형식으로 온 겁니다.

이스라엘은 자체적으로 폐쇄적으로 했다가 들켜서 나중에 멸망했잖아요. 이미 들켰다고 생각하고 살라 이 말입니다. 그게 율법으로부터 자유에요. 그건 율법에서 너는 합격이라고 빠져나온 게 아니고 너는 율법에 의해서 죽었다고 빠져나온 거예요. 참 하나님의 전략도 재미있다고 봐야 하나, 아주 오묘하다고 봐야 하나. 너는 이제 율법에 저촉 없으니까 니 마음대로 살아라가 아니라 그게 진짜 막 사는 거고. “너는 어떻게 살아도 율법에 의해서 죽은 자야. 죽은 자기 때문에 내가 안 건드릴게.” 그래서 빠져나온 거예요.

그래서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 거예요. 계속해서 죽여 버리는 거예요. 우리는 매일같이 죽이시는 것에 대해서 고마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매일같이 우리를 율법에 의해서 죽은 자로 간주해서 이제 저주 할 것도 없어. 이미 값을 치렀으니까. 그래서 아직도 십일조, 안식일은 유효해요. 지금도 막 살아있다고요. 그런데 일반 교인들은 십일조를 이루려고, 세상에 이런 미친 짓이 어디 있습니까? 십일조를 어떻게 이룹니까?

사람들이 시민사회에서 살아가는 이 모습에서 그들은 국가라는 어떤 한계를 언급했습니다. 국가가 있다. 우리가 속한 나라는 이 세상이다. 그러면 국가관이 어떻게 성립되는지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우선 어려운 문장부터 하고요. [주체는 셈하면서 발생된다.] 하나, 둘, 셋, 넷, 주체는 셈하기부터 시작해요. 여기서 국가라는 게 어떻게 성립하는지 보세요.

여기 귤 세 개가 있어요. 이걸 숫자로 표현하면 누구나 3이라고 합니다. 이걸 3이라고 한다면 발명왕 에디슨한테 걸리게 돼있어요. 에디슨은 뭐라고 시비 거느냐 하면, 귤 세 개가 어떻게 3이냐고 시비 걸었어요. 어리지만. 어떻게 보면 싸가지가 없다고 할 수 있는데. 사과 한 개와 사과 한 개를 더하면 2가 된다(1+1=2). 이건 하나 더하기 하나지 어떻게 2가 됩니까? 아마 선생님한테 많이 맞았을 거예요. 그냥 외워. 시험에 나와. 그러면 끝나는 이야기에요.

에디슨의 어린 마음은 뭐냐 하면, 1+1이라고 하는 것이나 2라 하나 더 추가적인 의미가 없다고 본 거예요. 동어반복, 같은 말을 되풀이한 것뿐이란 말이죠. 이게 무슨 진리입니까? 추가적인 정보가 안 들어있는데. 그걸 설명해보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선생님이 무슨 수로 설명합니까? 선생님이 어디 수학만 가르칩니까? 자연도 가르치고 국어도 가르치고 온갖 것 다 가르치는데.

이게 이렇게 돼요. 귤 하나 있으면, 이걸 1로 표현하는 의미가 없어요. 귤한테 “귤아 너를 1로 표현하겠다.” 하면 “누구 마음대로 표현해요? 표현하지 마세요. 아저씨.” 귤을 셈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느냐 하면, 0부터 “귤이 없었는데 여기 하나 있다.”라고 누가 셈하느냐 하면, 내가 하나 있다고 셈할 때 귤이 있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걸 셈하는 내가 나답게 인식이 되는 거예요. 이걸 주체라고 하는 거예요. 셈하면서 주체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수학이 발달해서 과학이 된다면 결국 과학이란 하나님 영광과 아무 상관이 없고, “내가 여기 있네.”와 관계되는 거예요. 나에게 의미가 있는 거예요. 모든 과학이라는 게 나에게 의미가 있어요. 코끼리는 다리가 네 개다. 코끼리한테 물어보세요. “너, 다리 네 개네.” “그걸 물어보라고 내가 하던가요?” 인간 저희끼리 네 개네, 다섯 개네 왜 그걸 따지느냐 이 말이죠.

과학이란 것은 자기 편리하게 이용하기 위해서 어떤 효용성 때문에 그런 거예요. 효용성은 진리가 아닙니다. 편리함이지. 아파트에 있는 가스관이 원래는 가스를 전달하기 위해서 설치했지만 도둑들한테는 발판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서울의 어떤 구는 그 가스관에 가시를 달아서 멋진 아이디어라고 아파트 시민단체에서 호응을 했어요. 못 올라가라고. 이제는 도둑들도 장갑 끼든지 해야 돼.

0은 없는 거거든요. 없는데 하나 있다고 본 겁니다. 그러면 귤이 세 개라는 말은 0과 1, 0과 1, 0과 1, 그러니까 합하면 3이 되는데 이것은 세 개가 없는데 있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주체란 항상 무엇을 전제로 하느냐 하면, 없었는데 내 눈에 띠었다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 여기서 딜레마가 뭐냐 하면, 그렇게 셈하는 너는 어디서 나왔느냐고 누가 물으면, 그건 말하지 마. 나는 항상 있었다고 본 거예요. 그게 환상인데.

어린애가 엄마한테 물어요. “엄마,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난 어디 있었어?” 아주 난처한 질문해요. 그러면 엄마, 아빠가 이런 골치 아픈 질문에 대해서 애들 수준에 맞추기보다는 귀찮아서 그냥 흘러가는 말로, “그때 너는 하늘나라에 있었어.” 이렇게 이야기하죠. 그러면 애는 시작도 끝이 없는 여호와가 돼버려요.

애가 질문을 할 때는 그렇습니다. 나는 그 답변을 원했던 거예요. 내가 남을 헤아릴 수는 있는 자격은 있지만 누가 나를 헤아릴 수 있는 자격은 없어야 인간은 만족합니다. 마귀가 따로 없어요. 애가 사탄이라니까. 전부 사탄 낳았어. 천상천하유아독존이고 선악과 따먹은 티를 팍팍 냅니다. 지가 신이에요.

이 주체와 주체의 만남에서 현대사회에 들어가니까 이 주체가 주눅 들기 시작합니다. 어떻게 주눅 드느냐 하면, 이 사회 시민단체에서 애들이 벌써 빈 몸으로 사회에 나가지 않아요. 나는 나다. 지난 첫 번째 시간에 했지요. 나는 나를 믿는다는 이것이 가장 기본적인 모토가 된 상태에서 나는 예수를 믿는다, 나는 누구를 믿는다, 친구를 믿는다 하잖아요. 하지만 다 깨놓고 보면, 나는 나를 믿는다고 밑받침하고 난 뒤에 예수를 믿기 때문에 결국 나는 예수를 믿은 적은 없고 예수 믿고 있는 나를 믿는 거예요.

나라는 것은 내가 여기 있기 전부터 하늘나라에 있고 내가 죽고 난 뒤에도 하늘나라에 가는 거예요. 이건 환상이죠. 그 환상에 부합되도록 국가와 사회를 거기에 맞추어 나가는 겁니다. 자기가 소속돼있는 시민단체가 많은 이것을 내가 셈하면서 나는 골프 모임이 있고 나는 교 회에 다니며 나는 어느 회사에 다닌다. 나는 어느 가정에 부모는 누구고 경주 이씨 집안이다. 이걸 통할해서 국가라고 하는 겁니다.

대학이라는 게 없어요. 캠퍼스 있고 나무 있고 교수 있고 교직원 있고 학생 있고. 하지만 학생은 그런 것을 셈하는 거예요. 우리 학교는 테두리가 면적은 얼마고 납부금은 얼마인데 이걸로 대학교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내가 셈한 거예요. 내가 그렇게 헤아리면 그것은 바로 나에게 있어서 대학이 되고 나에게 있어서 국가가 되는 겁니다.

안중근은 결코 대한민국을 위해서 히로부미한테 권총 쏜 게 아니고 자기의 주체를 보장받기 위해서 유지하기 위해서 히로부미한테 총 쏜 거예요. 왜냐하면 이등박문을 건드린 것은 안중근에 있어서는 자신의 환상을 건드린 거예요. 점점 어려워진다. 할 수 없어요. 시편2편 하니까 할 수 없다니까.

자신의 환상을 건드렸으니까 본능적으로 공격을 하게 돼있고. 그 안중근의 희생을 후대 사람들은 아주 철저하게 이용해먹지요. 훌륭한 우리의 선배, 역시 안씨 집안은 훌륭해. 이런 거. 나 보고 총 쏘라 하면, 미쳤나 내가 총 쏘게. 일본에 앞장서라 하면, 이민 가지. 내가 왜 총 들고 싸워. 내가 알카에다도 아니고. 그런데 우리 안중근은 훌륭해. 그분이 그만큼 함으로써 우리가 잘 됐기 때문에. 자기는 자기 환상을 자기가 수고롭게 하는 게 아니고 누가 내 대신 내 주체를 환상을 지켜주면 고맙게 여기는 거죠. 참 무섭다. 세상 무섭지요. 그래서 했잖아요. 전부다 가면 쓰고 삐에로는 웃고 있지만.

그렇게 컸던 애가 취직을 했을 때 더 넓은 사회에 나갑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주체가 어떻게 발행되느냐 하면, 누가 뒤에서 호명을 해줘요. “어이, 거기.” 호명을 해주면 호명해준 단체에 거기서 강요당하는 자율을 발휘하게 됩니다. 우리 회사는 네 원대로 해줘서 네 능력을 발휘하는 거야. 그러면 이 말은 뭡니까? 누가 누구를 셈하는 거예요? 회사 오너가 직원에게 명령하는 거죠. 명령의 내용이 뭡니까?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이게 명령이에요. 그리고 그 사람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도 이게 강요받은 자율이에요.

비로소 주체라 하는 것은 주체의 중앙부에 하늘나라부터 있었던 자기가 있는 게 아니고 거기서 이미 자기는 물러가고 새로운 힘이 자기에게 들어왔을 때 그 인간은 새로운 주체를 유지하기 위해서 도피행각을 합니다. 내가 말해도 적당한 표현인데, “내가 이 세상 언제까지 붙어있는지 봐라.” 드디어 도피행각을 하는데 그걸 공백 만들기, 빈칸 만들기 시작해요. 어떤 무중력 상태, 어떠한 고난도 나한테 강요받지 않는 나만의 주체의 환상을 유지할 수 있는 그 빈 공간을 위해서 호시탐탐 노리죠.

그런데 내 마음은 갈 곳을 잃어. 갈 데가 없어요. 왜냐하면 불러줘야 가지. 꼭 결혼시기가 되었는데 그 아가씨는 자기는 결혼을 하고 싶어요. 누가 불러줘야 가지. 지 혼자 자취 생활합니까? 남자 마네킹 두고. 호명을 해줘야지요. 사람은 보세요. 얼만 얍삽합니까, 이중적입니까? 호명 받으면 지 주체 깨지고, 호명 안 해주면 외로워서 못 살고. 뭐 어쩌라고? 그런 사람은 기도하기도 헷갈려요. 하나님께서 “기도 똑바로 해. 불러줘, 말아?” 하나님도 헷갈려. “주여, 결혼하게 하옵소서.” “결혼하면 힘든데.” “그러면 결혼 안 하게 하옵소서.” 어쩌라고?

그래서 어떤 남자가 불러준다. “나와 결혼해주시겠습니까?” 그런데 튕기네. 왜 튕기느냐 하면, 자기는 화투에서 단풍을 쥐고 있는데 패가 들어왔는데 2월 달이라. 안 맞아. 단풍에 단풍이 들어와 격이 맞아야 되거든요. 그래야 장땡 아닙니까? 다시 패 돌려. 또 안 맞아. 이번엔 5월 달이라. 삼년 뒤에 패 돌리니까 단풍이 들어왔는데 저쪽에서 튕겨버리네. 늙었다고.

누가 호명을 하게 되면 그때부터 우리는 이데올로기에 점령을 당하면서 나에게 호명한 자에게 살아남으려고 고개를 숙여야 됩니다. 고개를 숙이면서 내부적으로 언젠가는 이 수모를 내가 갚아줄 날이 있을 것이라고 복수의 칼을 갈고 있습니다. 언젠가 굴복당한 수모를 갚고야 말리라. 내가 회사 때려치우고 빵집 하든지 단독으로 하든지 해야지 더러워서 못 하겠다. 슥삭슥삭 칼을 갈지요. 목사들도 마찬가지에요. 큰 교회에 취직해서 가보니 내가 단독목회 해야지 더러워서 못하겠다.

계속해서 도피행동을 할 때 나오는 게 빈칸입니다. 결국은 빈칸이기 때문에 주체가 아니고 주체 되고자하는 준비단계만 연속되는 거예요.

라캉이란 사람이 이런 이야기했어요. 프로이트란 사람이 우리 의식을 연구하는데 어떤 애가 엄마가 시장가고 혼자 남아서 심심해서 침대 밑에서 놀이를 하고 있어요. fort-da라는 놀이가 있어요. 이게 실패놀이인데요. 실패를 던지면 실패가 없어요. 없는데 실에 묶여져있어서 어느 정도 가다가 되돌아와요. “없다?” “있네.” 자기의 주체가 허해지고 비어지는 그 보상을 다시 나타나는 것으로 보상받고자하는 그런 어린아이의 실패놀이가 인간은 성인 되어서 여전히 매일같이 그 짓하고 있는 거예요. 끊임없이. 기워내고 다른 걸로 채우는데 똑같은 걸로 채워도 일단 비워내야 뭔가 새로운 느낌을 받게 돼요. 부부도 같이 어디 놀러 가봐야 다시 새롭게 되지요. 어, 아내가 없네? 아내가 집에 돌아왔네. 반갑다 친구야.

항상 현재 있는 그것은 그냥 개인이 있는 것이 아니고 내 소유로 있는 것이 아니고 그쪽 나름대로의 자기의 고난과 주장과 요구사항과 권력을 가지고 나한테 강요하는 식으로, 나한테 잔소리하는 식으로 쳐들어오니까 처음에 있을 때 좋았는데 버겁고 감당이 안 돼. 그런데 그게 없어버리면 또 빈자리를 나를 호명해줄 어떤 새로운 권력을 찾게 돼있어요. 이러한 것들이 결국 그런 것들의 세계를 전체를 합해서 그걸 하나로 이런 단체, 이런 단체를 셈하면 나라가 되고, 그 나라는 누구한테 의미가 있느냐 하면, 그걸 셈하는 나에게 의미가 있는 거예요.

국가라는 전체가 사실은 국가란 나라를 셈하는 나보다 작은 거예요. 그래서 국가라는 게 나를 위해서 있지 내가 미쳤다고 국가를 위해서 있습니까? 없는 거예요. 나의 주체를 위해서 있는 거예요.

그런데 알튀세르에 의해서 이러한 인간들의 환상은 어디서 깨어지느냐 하면, 근대자본주의에서 이것이 다 깨져요. 오늘날 우리가 자본주의에서 살기 때문에 자본주의에 대해서 알아야 돼요. 자본주의사회에서 주체가 뭐냐? 주체를 알 때 그 나라와 그 의가 얼마나 원리가 다른가를 제가 설명하기 위해서 자본주의 이야기하는 겁니다. 성경과 자본주의가 무슨 관계있느냐고 하지 마세요. 지금 시편2편에 보면, 싸운단 말이죠. 시편2편의 내용이 뭐냐 하면, 이상하게 국가는 그 나라와 그 의에 대해서 민감한 예민한 반응을 나타내는데 그 저의가 뭐냐를 우리가 보자는 겁니다.

자본주의시대 이전을 이걸 교환경제라 합니다. 자기 노동한 것을 시장에 갖고 나와서 저쪽의 노동한 것과 바꿔치기하는 것이 교환경제에요. 아무 이상 없고 아무 문제없는 거죠. 내가 채소 가꾸었다. 저쪽은 고기 잡았다. 채소와 고기를 바꾸는 것, 또는 돈을 매개로 바꾸는 것. 옛날에 돈을 조개로 하다가 나중에 16세기 이전부터 금화로 바꾸었단 말이죠. 이건 수단이니까 별 중요한 게 아니었어요.

그런데 16세기부터 영국에서 금을 맡길 때 금화세공업자들이 등장했어요. 금화를 예쁘게 동그랗게 만지기 좋게 다듬어야 되니까. 이제는 금화를 맡기고 보관증을 가져가요. 보관증 보고 달라면 줄 수 있도록. 세공업자가 보관을 하는데 세공업자가 머리를 쓴 거예요. 보관한 사람이 늘 찾아오지 않는 거예요. 남의 돈인데 이 돈을 빌리려온 사람에게 빌려주는 거예요. 보관증 가진 사람이 찾으려오는 게 아니니까. 분명히 자기 금고에 1000이 있다면 10000을 빌려주고, 5000을 빌려줘도 아무 문제가 없는 거예요. 전부가 한꺼번에 찾으러오지 않는 이상은. 이걸 뱅크런이라 합니다. 은행에 모든 고객이 갑자기 돈을 일시에 다 찾는 것이 뱅크런인데 그럼 모든 은행이 망해버려요.

금화도 금화가 아니고 보관증끼리 돌아다녀요. 시중에 보관증 다 모으니까 금화가 10000이에요. 실제로 있는 것은 1000이라. 금세공업자가 사기를 쳤어. 요새말로 금융자본가가 사기를 친 거예요. 그런데 사기를 쳐도 되는 이유가 뭐냐? 사람들이 보관한다고 다 찾아오는 것도 아니고, 두 번째, 빌려간 사람들이 안 갚는 것도 아니고 수시로 빌려가고 수시로 갚으니까 융통이 된단 말이에요. 융통이 된다는 말이 뭐냐 하면, 이 세상은 약속이, 신용이 결국 돈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빌려간 사람은 언젠가는 갚아야 되니까 빚이죠. 여기서 빚 보존의 법칙이 나옵니다. 돈이란 항상 빚으로 되는데 그 빚이 빚으로 안 느껴지는 것은 언젠가는 집값이 계속 오를 것이고 물가는 항상 오르게 돼있다는 겁니다. 물가가 내려가고 물건 팔은 돈을 제대로 못 챙기면 갚을 길이 없잖아요. 그런데 이상하게 이 자본주의 세상은 갈수록 물가가 계속 늘어나니까 사람들이 배포가 아주 대담해졌어요. 송도에 아파트 사는 것처럼. 언젠가는 오를 거니까. 은행대출 받아도 또 오를 거니까. 세상 물가 내려가는 것 봤습니까? 없지요. 계속 오른단 말이죠.

예를 들어서 어떤 무인도 있는데 세 사람이 산다고 합시다. 한 사람은 돈을 100을 찍어내고, 한 사람은 어부라서 100을 빌리고 이자 5를 더합니다. 그런데 은행은 분명히 100을 빌려줬는데 5는 없어요. 100원만 줬는데 5원짜리가 어디 있어요. 돈은 중앙은행에서 찍어내거든요. 없는데 이 사람이 5를 빌려서 갚으면 그만이고, 문제는 이 사람은 갚을 길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빚 보존의 법칙이 뭐냐 하면, 누가 빚을 갚으면 반드시 누가 파산한다. 이게 자본주의입니다. 빚 갚지도 못해. 갚으면 누가 내 대신 파산하니까.

현재 중앙은행에서 100을 찍어내면 이쪽에서 10을 남고 나머지 90을 융통하면 나중에 90이 900이 돼버려요. 계속 돈은 없고 신용과 신용으로 하니까. 그럴 때 이 10을 지불예치금. 지불준비금이라 해요. 이게 미국에서 10%, 한국에선 3.5%거든요. 그러면 돈 안 빌리면 되잖아요. 돈을 안 빌리면 물가가 오르는데 어쩌라고. 시장도 안 갈 거예요? 분명히 100으로 고등어 두 마리 샀는데 나중에 가보니까 나는 산에서 채소나 길러서 자급자족한다. 그럼 고기 살 때는 어떻게 합니까? 고기 사러 가니까 자기 채소 팔아서 그 돈이 안 되는데?

물가를 누가 올린 거예요? 이걸 갚기 위해서 중앙은해에서 통화량을 계속 늘리는 겁니다. 손에 쥐고 있으면 너무 파산이 많기 때문에 돈 찍어내. 그 찍어낸 돈이 일단 숨통을 트는 거예요. 그 숨통이 누적이 되면 거기서 빚으로 확대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선 물가가 올랐으니까 채소 팔아서 고기를 샀는데 다음에 또 오르는데? 도대체 이 벌을 누가 감당한단 말입니까? 이게 자본주의에요. 이것은 창세전에 애가 착하다, 안 착하다가 관계없습니다. 우리가 태어난 사회는 전부다 빚쟁이로 만든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과거로 돌아간다고요. 정글 스릴 찍을 일 있습니까? 벌레 먹을래요?

사람들이 성경을 어렵다고 하거든요. 성경을 쉽게 이야기하면 안 되느냐 하면, 인간은 항상 자기 것을 이미 욕망을 경험한 이상은 욕망의 요구대로 따라줘야 돼요. 왜냐하면 욕망이 새롭게 빈 공간을 메워 주체를 만들기 때문에 내가 촌에서 살 때는 이만해도 견딜 수 있지만 강남에서 살면 이제는 오천 원짜리 가방은 부끄러워서 들고 다니질 못해요. 촌에서는 가방 그냥 들고 다녀도 괜찮은데 강남에서 이미 명품 아니면 채울 수 없습니다.

내 빈 공간을 채웠던 주체는 내가 만든 게 아니고 내가 주변에서 권력으로 경험했던 내 욕망이 나로 하여금 인간을 버려놨어요. 그 버려놓은 인간을 쉽게 하기 위해서 성경을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욕망을 인플레이션을 이야기해야 돼요. 기도하면 더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게 오늘날 교회 아닙니까. 교회는 계속 부활의 인플레이션, 통화팽창이라 하는데 계속 거짓말로, 거짓말로 때우는 거예요.

거기에 여러분들의 같이 단짝이 되어서 박수를 쳐온 겁니다. 그래 희망과 소망을 주는 교회. 이게 교회지. 이게 좋으신 사랑의 하나님이지. 그런 식으로 거기에 묶이는 거예요. 은행에서 돈 한 푼 안 빌려도 물가 올라도 생돈 다 나가는 이 세상, 이 세계를 누가 뒤집어요? 강호동이가 뒤집기 합니까? 천하장사가 오면 뒤집을 수 있습니까? 북한 공산당도 전부다 이 짓하고 있는데. 결국 아이들 의자놀이, 누가 선점해서 생존경쟁에서 앉아버리면 빈 의자는 더 이상 없습니다. 누구 하나 죽어야 돼요. 그 다음에 자리 하나 또 빼버립니다. 그런데 그게 또 하나의 욕망으로서 우리를 자극하네요. 안 질라고.

빚 보존의 법칙, 이 사회에서 진리에요. 뭐가 진리냐 하면, 내가 주인공이 아니고 정작 주인공은 나에게 욕망을 키워내는 그 X, 뭔가 미지의 그것이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게 만들어요. 주변에서 그걸 유도했고 나도 거기에 맞장구치면서 마중을 나갔고. 결국 나라는 것은 액체, 흘러가는 것, 그릇에 담기면 그릇대로 되는. 내가 고체가 아니고 액체면 그때그때마다 흘러가는 거예요. 그러면서도 결국 나중에 소멸하는 겁니다.

이 논리에서 제일 중요한 건 바로 그겁니다. 없다, 있다 셈했잖아요. 그래서 주체라 했잖아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인간을 없는 인간, 죽음으로 몰아넣어요. 그러면 인간의 모든 욕망과 그런 욕망을 죽이시는 죽음과 결국 일대일 대결로 모든 게임은 게임오버, 게임 끝나요.

결국 제 말은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마귀를 시켜서 모든 인간을 끊임없이 죽게 만드는 시스템을 가동시킨 겁니다. 우리는 은행의 고객대기표 쥐고 있는 것처럼 자기 죽음의 번호표 쥐고 줄 서서 있는데 심심하니까 희희덕거리면서 잡담하면서 줄 서 있어요. “너, 가방 얼마짜리야?” “오백만 원짜리야.”

그런데 뭔가 잘못 되어서 먼저 뒷사람이 죽고, 앞 사람이 죽는 이런 경우가 있는데 결국 인간은 욕심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는 그 가동된 시스템이 그 나라와 그 의를 보여주기 위해서 직접 예수님께서는 이 땅의 시스템 속에 잠식해서 예수님도 죽여 버렸어요. 너도 죽고 나도 죽고 다 죽었어요. 이제 누가 사흘 만에 깨어나는가? 그것은 우리 하나님의 몫입니다. 약속의 몫이에요.

그 이야기는 10분 쉬고 합시다.

첨부파일 : 2013 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 제3강.hwp (52.0K), Down: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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