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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대전121227b-마13장10절(허락)35강-이 근호목사자유게시판마태복음

대전121227b-마13장10절(허락)35강-이 근호목사

이름 : 공은주(IP:218.147.193.250)

대전121227b-마13장10절(허락)35강-이 근호목사

이번에는 마태복음 할 차례입니다. 마태복음13장, 제가 언젠가 그런이야기 했던가요. 마태복음 13장이 성경에서 제일 어려운 대목이라고요. 지난달 할 때, 정말 어렵지요. 굉장히 어려워요. 왜 어려운가 하면, 우리가 이리 있고, 예수님이 여기 계시다면 예수님이 우리보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서 어려워요. 예수님이 장차 우리 속에 남길 예수님의 자기 형상을 보고 이야기하기 때문에 어려운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뭐되면 돼요? 우리는 그냥 껍데기인 거예요. 그런데 껍데기를 이용해서 주께서는 자기를 남기는 거예요.

에스겔37장에 보면, 하나님이 에스겔을 해골더미에 가지요. 사실은 해골이에요. 항상 사람들은 유념할 것은 해골인데, 내가 나중에 하나님의 군대가 되지요. 성신을 받으니까. 나는 군대라, 이리 하면 안 돼요. 나는 해골이다. 해줘야 계속 군대예요. 그런 게 굉장히 어려워요. “너는 십자가로 말미암아 너는 의인되었어!” “그래, 나는 의인이야!” 이리 나오지 말고 “나는 죄인입니다.”할 때, 죄인 중에 괴수할 때, 그럴 때, 그걸 의인이라고 하는 거예요.

왜냐 하면, 껍데기는 안에 있는 내용의 효과로서 바깥이 형성되니까 효과 본 사람은 이 효과 본 효과를 내세우면 안 되고 안쪽을 정리해야 돼요. 우리는 나의 구원받은 증인되면 안 되고, 예수님의 증인돼야 되거든요. 이 효과라는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원인과 결과의 연결고리가 아니라는 뜻이에요. 효과라는 게. 그냥 뭔가 있음에 파급되는 그 아우라지, 파급되는 영광, 아우라로서의 우리가 되는 것이지, 나 되기 위해서 주께서 이렇게 했다고 그리해 버리면 원인과 결과의 논리적 관계이기 때문에 이건 성경적이 아닙니다.

요거하면 이리 됩니까? 하는 것은 불교식이지요. 내가 뭘 행하게 되면 그 행한 것을 내가 행했던 그걸 근거로 나는 된다, 말이지요. 중요한 것은 이것이 이게 왜 마귀의 함정인가 하면, 내일도 똑같이 그렇게 해야 돼요. 기도했는데 갑자기 암 낫다. 그러면 다음에 암 걸리면 또 그렇게 해서 똑같은 결과가 나와야 되는 겁니다. 그런 결과가 안 나와서 죽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닙니다. 후라이보이 곽규석이 암 나았다고 그렇게 간증하다가 그렇게 죽었잖아요. 그러니까 반드시 “여러분 나처럼 되시면 똑같은 결과가 나옵니다.” 하는 것은 약장사들이 하는 짓이에요. 간증집회, 약장사들이 하는 짓이에요.

하나님께서는 미래에서 우리를 끌어당기는 식으로 하기 때문에 인간은 과거에 행한 것 가지고 미래를 가지고 미래를 찾아가는 식으로 살아가는 반면에 하나님의 시간은 거꾸로 돼 있거든요. 우리를 잡아당기는 거예요. 이걸 제가 미래라고 하는데. 더 정확한 말로 묵시라고 하는 것이 옳아요. 미리 아신 자를 부르시고, 부르신 자를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라는 묵시적인 시나리오에 의해서 잡아당기는 겁니다.

에베소서 2장6절에 보면, 이미 죽었던 너희를 하늘에 앉히시니, 해서 이걸 과거 부정사로 만들어요. 전에 부정사 이야기했는데, 다시 한 번 하게 되면, 부정사라 하는 것은 시제가 과거완료나 현재완료나 완료된 상태를 나타내는 궁극적인 용어에요. 완료됐다, 이 말입니다. 이것은 시간에 변화 받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부정사가 의미하는 것이 뭐냐 하면, 영어에서는 to부정사라 해요. 동사가 붙어서 명사나 대명사 행세를 하는 겁니다. 정통종합영어에 보면 나오지요. 그런 이야기 들을 때, 명사나 대명사 숫자가 모자라니까 동사까지 동원해서 하는가 하는 생각까지 한 적이 있는데. 이것은 시간에 관한 겁니다.

인간은 날마다 변화되고 날마다 바뀝니다. 시간을 온 몸으로 느끼며 살아가고 시간이란 강물에 같이 휩쓸려 살아갑니다. 따라서 이런 인간에 있어서 뭔가 변화되지 않는 것을 언어로 표현할 때는 이렇게 완료 시제를 가지고 동원시키는 겁니다.

사실은 언어라 하는 것은 다 표현은 못하고 항상 은유적으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인간이 생각하는 모든 체계라든지, 세상 체계라든지, 원인과 결과 그 결과가 또 원인이 되어서 결과, 또 원인이 되어서 원인1,2,3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이 이렇게 연결돼 있는 상태거든요. 상태기 때문에 이건 그냥 보편적인 건 하지만, 뭐를 내세우는가 하면, 특수성을 내세울 수 있는 어떤 근거가 없어요. “나 대통령 됐다.” 하면 “아이고, 내가 표 찍어줘서 된 거야. 내가 밀어줘서 됐으니까 당신 대통령 안에 대통령 됐다는 그 성질 안에 나도 거기에 포함되어 있으니까 날 무시하지 마!” 이리 되어 있어요. 그러니 독자적으로 섞이지 않는 독자적으로 하나만 덜렁 나올 수는 없어요. 거미줄에 달라붙고 뜯어 먹는 게 한 둘이 아닙니다.

“출세했다!” “니 혼자 출세했나?” 달려들 수도 있고, 내가 기도해서 그렇다. 또 어떤 사람은 반대로 하는 사람이 있어요. “내가 이번 시험에 양보했기 때문에 내 자리를 니가 차지한 것이다.” 이럴 수도 있고, 이 모든 것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내가 나 되는 것에서는 타인의 존재 없이는 될 수가 없어요.

그렇게 되면 믿을 게 없거든요. 특징이 인간과 섞이지 않는 독특한 게 없다 말이지요. 그래서 인간 속에 원인과 결과 말고 뭔가 공터, 빈틈을 만들어요. 공백을 만들어내요. 구멍을 만들어 버리면 거기에는 그걸 가지고 ‘무’라고 하는데, 바다가 있는데 구멍이 있어서 모든 게 다 빠지는 블랙홀 같은 그런 존재입니다. 이게 있을 때, 비로소 이걸 중재로 해서 사람이 격상하는 발전할 수 있는 논리적인 근거를 제시해 주지요.

1,2,3,4,5,6,7,9, 그 다음에 10은 어떻게 표현 됩니까? 곤란한 거예요. 그래서 인도에서 발명한 게 뭐냐 하면, 0을 만들어 놨어요. 1에다가 0을 붙여 놓으면 이건 뭐냐 하면, 요 노선과의 격상되는 하나의 새로운 노선이라고 그렇게 간주하자는 겁니다. 0의 발견입니다. 공집합의 발견, 공집합이라 하는 것은 집합 속에 아무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집합으로 잡아줘야 그 다음에 논리가 격상된 논리가 가능한 겁니다. 이게 없으면 논리가 안 돼요. 그레테 사람은 거짓말 한다. 라고 하는 것은 거짓말일까요? 아닐까요? 이것은 백날해도 해명이 안 되거든요. 그 마을에 있는 사람은 그 이발소에서 다 깎았다. 그러면 이발사의 이발은 누가 깎았는데요? 다른 마을 이발사가 해야 되는 거예요. 그런 것들이 이렇게 뭔가 격상하는 우리의 원인 결과에 잡히지 않는 다른 걸 해줘야 과학이라는 게 발전할 여지가 있는 겁니다.

바로 서양이 동양을 이긴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겁니다. 동양은 그야말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고, 있는 것 안에 그냥 폐쇄되어 있어요. 세상 돌아가는 것은 다 그렇고 그런 거야, 잘되면 뭐하겠노? 좋다고 소고기 사먹겠지! 사먹으면 뭐하겠노? 전부 다 아무 의미 없는 거예요. 그런데 저것과 다른 나의 독창적인 나를 재료로 만들어 버려요. 내가 저 쪽을 판단하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저쪽은 하나의 분석의 대상이 되겠지요. 분석이 되면 그 쪽에서는 따지는 거예요. “태양 니는 뭔데? 태양 니는 헬륨가스 덩어리인데, 뭐.” “태양 다음에 뭐가 있을까?” 안드로메다. 그것 뒤에 또 뭐가 있을까? 또 우주 뒤에 뭐가 있을까? 자꾸 캐가면서 기술이 발달되면서 계속 우주선을 화성에다 착륙할 수 있잖아요. 그러니 과학이라 하는 것은 모든 것이 현재에 갇혀있지 말고 계속해서 흠집을 내고 구멍을 내서 파줘야 되는 겁니다. 그러다보면 결국 인간은 이래나 저래나 파내고 파도 해답이 없지요.

예수님께서는 특수성으로 오신 분이에요. 예수님은 특수한 분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요한복음 8장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너희는 땅에 속하고, 나는 하늘에 속했기 때문에 원래 말이 안 통하게 돼 있다 이리 보는 겁니다. 요한일서5장에서도 세상에 속한 자는 내 말을 못 알아듣고, 너희들은 내 말을 알아듣는 것을 보니까 세상에 속하지 아니했다. 특수자, 첫 시간에 한 새로움, 새로운 피조물이 되지요. 새로운 피조물은 어떤 구멍에서 나와야 돼요. 어느 구멍이냐, 바로 특수한 자의 구멍에서 나와야 돼요. 예수 안에 있어야 돼요. 내가 내 자리에 있으면서 예수 믿어서 특수한 게 아니고 내가 예수 믿는 것은 그것은 부정당해야 됩니다. 그건 믿음 아니라고, 그건 종교성이라고, 부정을 당해야 됩니다.

그래서 제가 전에 그랬잖아요. 우리가 예수 믿어서 구원 받는 게 아니고, 주께서 예수 믿게 하심으로 구원 받는다. 이리 이야기 했지요. 그러면 주께서 믿게 하셨다는 말은 나는 예수를 믿는다? 안 믿는다? 안 믿고 그 대신 누굴 믿어요? 우리는 나 자신을 믿지요. 나는 나 자신만을 믿는다는 고백을 하는 사람만이 구원받은 사람이에요. 이런 말은 굉장히 어려운 말이에요.

나는 예수를 믿어도 나 유리하라고 믿는 그 정도 밖에 안 된다는 인간이라고 고백한다는 말은 이미 한 꺼풀 더 있다는 거예요. 그런 고백을 기쁨으로 감격으로 한다는 것은 그 사람 홀로 있는 것이 아니고 외곽에 또 하나의 특수자의 성령이 둘러싸여 있으니까 나는 기껏 이것밖에 안 된다는 거예요. 누가복음 18장에 나오지요. 성전에 보니까 두 사람이 기도하지요. 바리새인은 기도하면서 뭐를 관상하고 있습니까? 구제하고 십일조하고, 성탄헌금내고, 자꾸 이런 생각을 하는 쪽이었었고, 세리는 감히 자기 얼굴을 못 들어요. 자기 자신을 볼 수가 없어요. 지가 보니 한심스럽거든요. 자기를 볼 수 없이 뭐만 봅니까? 거룩한 분을 생각하면서 “나는 거룩한 분 앞에 나는 할 말이 없습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할 때, 예수님이 판정을 내립니다. 장차 심판주 되시는 분이 미리 판정을 내립니다. 시범조로 보여줘요. 이 쪽 의인! 저 쪽 죄인! 이 쪽 지옥 가! 판정내리는 대목이에요. 누가복음 18장에서 그리 판정 내립니다. 이건 무서운 이야기지요. 특히 십일조 이야기 나오는 것도 십일조해서 지옥 가잖아요.

목회는 목회하면서 파멸하고, 신학자는 신학에 파멸되고, 예수는 예수하면서 파멸하고, 사람은 사람에 파멸되고, 바이올리니스트는 바이올린 하면서 파멸되고, 엄마는 자식 때문에 파멸하고, 그것을 고백하는 자는 이미 그 사람 말고 다른 누가 다른 덩치 큰 다른 분 안에 품 안에 캥거루 새끼처럼 그런 고백을 캥거루 자루 안에서 하라 말입니다. 그걸 사도바울은 성령 안, 다른 말로 예수 안, 또 다른 말로는 십자가 안이라고 표현한 겁니다.

구약 있고, 그 다음에 신약 있지요. 중간에 마태복음13장 있습니다. 시간이 구약에서 신약으로 마지막에 재림으로 이어지는데 여기에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이 있다 말이지요. 예수님의 행적이 있는 거예요. 그러면 예수님의 행적은 과도기적이지요. 이 쪽 것도 흡수돼 있고, 저쪽 것도 흡수돼 있어요. 예수님이 쓴 용어 속에 구약에서 밀려오는 그 용어나 단어를 구성하는 그 당시 사람들의 언어구조가 다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 한 예가 ‘상이 크다’ 이런 표현이요. 이번 대전 수련회에서 해요. 고 할 때, 구약의 중반기 말라기가 404년에 끝나고 그 다음 계시가 붕 띄워서 세례 요한 때 계시가 오거든요. 그 중간에 뭐냐 이 말이에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중간에 휴식했는가? 왜 계시를 안 줬느냐 이 말이에요. 정말 계시를 안 준 것도 하나님이 놀았다 할 수 있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계시가 없는 상태에서 활발했다고 할 수 있느냐 하는 그 문제를 다루는 겁니다. 어쨌든 간에 여기에서 내려오는 공백 기간에 말라기까지 있던 그 계시를 가지고 이것은 하나의 국가가 만들어 집니다. 짐승의 국가가 만들어 져요. 이름이 뭐냐 하면, 유대라는 나라가 만들어져요. 유대나라가 옹립해서 뽀루지처럼 튀어나온 게 밑에서 받치고 나오게 되면, 헤롯왕이 등장하게 됩니다. 헤롯 왕.

헤롯왕은 동방박사가 왔을 때, 잡아 죽이려 했습니다. 그리고 베들레헴에 메시아 태어났다는 소식 듣고 2살밑의 애들 다 죽였잖아요. 그러니까 이 기간은 무엇이 숙성되는 기간인가 하면, 복음을 방해하는 것이 뭘까, 하는 정체를 역사적 지표면으로 도드라지게 정립시키는 기간입니다.

복음이라 하는 것은 그냥 복음이라 하면 복음이 아니에요. 복음을 방해하는 어두움 속에서 복음이 로켓처럼 툭 튀어 나와요. 돌고래 쇼하듯이. 먼저 복음을 방해하는 세력이 합니다. 옛날 어릴 때, 장터에 가면 구경거리가 있잖아요. 어린애가 엄마랑 손잡고 가면 키 큰 많은 사람들이 포위해서 있으면 그 안에 뭔지는 모르는데 뭐가 있을 때는 어린애는 얼마나 궁금합니까? 다른 사람 헤집고 들어가서 치마 옆으로 비집고 들어가 보면 자,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닙니다. 그런 거 하는데 어쨌든 뭔가 웅성, 웅성 군중들의 회오리바람이 몰아치는데 그 안에 내용은 뭔가 보이지 않는 것. 블랙홀이죠. 모든 별들이 중력에 의해서 끌려가는데 막상 블랙홀은 천문대에 카메라에 포착되지 않습니다. 다만 주변에 이상기류를 보고 블랙홀이 있다는 것을 감지할 뿐이지요.

그러니까 주님께서 먼저 불의 기운을 자꾸 만드는 거예요. 예수님의 가는 길에 사람들의 인기도는 높지만, 뭐도 있다? 거기에 대한 강력한 반대세력, 아기 예수 탄생했다. 아기 예수는 아무것도 몰라요. 엄마도 몰라요. 하지만 아기 예수가 이동하는 그 지점, 지점이 애굽에서부터 내 아들을 불러내었다, 해서 애굽이 지명적인 애굽이 아니고 바로 예수님 태어난 그 과정이 바로 애굽에서 탈출한 이스라엘지점으로 구약을 재해석해 버리는 겁니다. 그러니 얼마나 어려운 이야기예요.

그리고 마귀라 하는 것은 어느 특정, 헤롯이 마귀가 아니라 예수님에 대해서 공격하는 모든 세력들은 앞으로 제2의 제3의 헤롯이 되어서 악마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겁니다. 나중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되겠지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서로 적이었습니다. 정치적 용어로 적대관계에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적이지요. 그런데 바리새인을 A라 하고, 사두개인을 B라고 한다면, 예수님은 뭐냐 하면, -A, -B라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이상스럽게 예수님을 공격하는 데는 둘 다 한 통속이 되고 말았지요. 섞일 수 없는 것이 제3의 없는 영역 이게 없다면, 수평선에 똑같이 수평적으로 나눠져 있는데, 제3의 없는 영역 새로운 특수성이 발생돼 버리면, 이제는 바리새인이냐, 사두개인이냐가 아니라 이쪽이냐 저쪽이냐, 예수님 쪽이냐 아닌 쪽이냐가 판결되지요.

집안에 부부사이가 싸워도 자식이 예수 믿어버리면 둘 다 한 통속이 돼 버려요. 그러면 그것으로 같이 친구가 되느냐, 이런 거.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러한 것을 고려한 거예요. 구약에서 나오는 그 흐름을 볼 때, 아까 제자들을 껍데기라고 했잖아요. 사실은 제자들은 본인들은 그렇게 생각 안 했어요. 자기는 메시아를 기다리는 유대나라 평범한 백성 중에 한 사람입니다. 메시아 다윗의 자손 오기를 우리는 기다렸습니다. 그 로마의 압제를 받았으면서도 우리는 종교만큼은 다른 것은 다 가지고 가라, 하지만 종교의 연속성, 제사의 연속성, 성전에서 제사 드리는 이것만큼은 기어이 로마로부터 따냈어요. 따내면서 헤롯이라는 게 정치적으로 얼마나 많은 기여를 했는지 몰라요. 그래서 사람들이 성품보고 인격 보면 인간 말종 이지만, 성전제사를 거기다가 성전건축까지 해줬으니까 다른 것은 다 용서가 되는 거예요.

그러면 성전만 있으면 된다는 겁니다. 아까 첫째시간에 뭐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은 사람이 생각하는 절대적인 공간속에 거룩한 공간을 구분하는 것은 거치지 않는다 했지요. 하지만 인간의 한계는 그거예요. 인간은 시간과 공간을 통해서 자기를 정립하기 때문에 자기 속에 있는 신이 있다는 것을 공간 속에 특수한 시간 속에서 다른 나라는 없지만, 안식일만큼은 주일만큼은 특수한 날이라고 그렇게 잡고 싶은 게 인간의 심리입니다.

모든 날이 다 주의 날이라 하면 교회 안 갑니다. 특수한 주의 날이라고 해줘야 하나님이여, 바쁜 가운데서도 나왔으니까 복 주세요. 라고 할 말이 있잖아요. 할 말이. 그러니까 인간은 자기가 납득이 되고 행동할 수 있는 최 한의 근거, 지 자존심을 챙길 수 있는 나는 전적으로 죄인이다, 이런 소리 절대로 하지 말고 죄인은 맞는데, 그래도 요것만큼은 니가 기특하구나! 하는 그런 게 하나 핵처럼 뭔가 있어야 사람이 살맛이 나는 겁니다.

사람들이 십자가마을을 싫어하는 이유가 전적으로 죄인이라는 것에 싫어하는 거예요. 일말의 여지도 안 남기니까. “도대체 우리를 어디까지 밀치려 하느냐” 그러면 내가 그렇게 하지요. “밀친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 자리에 가만있으면 돼요.”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면 먹물이 지나갈 건데, 먹물이 따라오니까 먹물 안 맞으려고 도망가는 게 문제라니까. 왜 도망가요? 그냥 있으면서 샤워하면 되지. 시원하다~ 하면서 사우나하면 되지.

개그콘서트에 보면 여배우들 보면, “요번 작품을 위해서 옷 좀 벗어야 되겠습니다.” 여배우가 “어디까지 합니까?” “요것만큼은 안 됩니다. 나도 이미지 있고, 나중에 또 자식도 보고, 다음 작품 할 때 이미지 안 좋으면 안 됩니다.”이리 되거든요. 그런데 여러분 어떻게 하면 됩니까? 그냥 벗고 다니는 거예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모든 법으로부터 해방, 왜냐 자꾸 양보를 하면 계속 나중까지 기어이 된다 이 말이지요.

그래서 남자들이 여자들을 함부로 범하고 이러면 안 돼요. 나중에는 내 보따리 내놔라, 나중에 세파트처럼 물으면 나중에 꽃뱀 아니다 싶은 게 꽃뱀 돼 버리는 수가 생겨버려요. 극한에 몰리면 사람이 도로 물어요. 그 도로 물은 사건이 뭐냐 하면, 십자가 사건입니다. 인간이 “에이, 씨~ 하나님 니를 물겠다.” 하나님을 잡아먹을 때, 주께서 기다렸다는 듯이 성령이 와서 죄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의에 대해서, 이 개념들이 뭐냐 하면, 유대나라에서의 최종 개념입니다.

최종개념이라는 것은 뭐냐 하면, 모든 가치들의 마지막 개념은 결국은 심판과 판단과 의냐, 죄냐로 구분되는 겁니다. 사실은 같은 이야기예요. 심판을 해야 너는 의롭고, 너는 죄라는 것이 드러날 것 아닙니까? 같은 이야기예요. 인간이 마지막으로 보고 싶은 것은 뭐냐, 하나님을 누가 재판하고 싶다? 내가 재판해서 하나님다우면 믿고 “에이, 영 아니야” 싶으면 안 믿고 하나님 믿는 것도 내가 알아서 믿을 때, 우리는 비로소 선악과 따 먹은 보람을 느끼잖아요. 하나님도 내가 알아서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혼자서 영광 받지 말고, 믿어 준 사람도 좀 배려해서 같이 영광받자, 하는 거예요. 그러면 이게 천국이 아니고 개판이 돼버리지요.

지금 마태복음 13장을 하는데, 어렵다는 게 뭐냐 하면, 지금 제자들이 불신자라는 사실이 어려워요. 제자들은 이미 안에 꽉 뭐가 들어있는가 하면, 유대인들이 다른 유대인들이 갖고 있던 그것이 그야말로 반투압 작용도 아니고 삼투압 작용을 해서 전부 다 이게 다 하나의 세포라면 옆에 있는 세포가 다 들어가 있어요. 그야말로 이것은 불신자요, 배신자요, 이것은 신앙도 없고 마귀의 앞잡이고 전부 다 그런 제자들이에요. 그런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한다는 것은 설득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3장 10절을 봅시다. 오늘 이것부터 할 차례인데,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다.” 이리 되어 있지요. 허락이라는 말, 이런 말을 할 이유가 꼭 있어야 됩니까? 우리가 말씀을 알면 얼마든지 알아챌 수 있는 능력이 우리한테 있는 게 아니겠어요? 우리가 알아챌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허락이라는 말을 할 이유가 없잖습니까?

예를 들어서 아버지가 오랜만에 미국 출장에서 돌아와서 “아빠!” 아버지가 “니가 날 알아보는 것은 내가 너를 아빠라고 부를 수 있도록 그동안 자물쇠 잠겨 놓은 것을 잠시 풀었기 때문에 너는 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하면 “아버지가 미국 갔다 오더니 돌았구나!”하지요. 완전히 이것은 지금 예수님이 하는 취지가 지금 안 맞아요. 맞지를 않는다니까요.

허락이라는 말을 했다는 이 말은 나의 허락이 없으면 너 제자라 할지라도 도통 못 알아듣게 되는 그 말을 내가 지금까지 내한테 퍼붓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제자들이 그 취지부터 알려면 무슨 자물쇠부터 먼저 풀어야 돼요? 왜 허락되어야 가능한가를 요것부터 풀어야 하지 않습니까? 이것 푸는데 3년 걸렸습니다. 이것 푸는데 성령이 와야 풀려요.

예수님께 제자들이 “예수님, 성전보세요. 46년동안 지었습니다. 멋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저거 다 헐면, 내가 사흘만에 짓겠다.”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어요. 이리 생각했겠지요. 46년간 지어도 다 못 짓고 70년 걸렸거든요. 70년 돼 봐야 아랍나라 성전 돼 버렸지요. 다 허물어 졌으면 벽돌이 있을 거 아닙니까? 그걸 천사들 2500만마리 동원시키는 거예요. 그러면 빠른 속도로 쫙 올라가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사흘만에 짓게 되지요. 다만 중요한 것은 46년간 지은 그 성전을 사흘 만에 지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이 아는 성전은 그 성전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면 46년간의 성전은 뭐냐, 저게 성전이라고 하는 것은 제자들 속에 저게 성전이야, 라고 있었던 기존의 분위기가 이미 제자들의 마음속에 꽉 들어있기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그래, 교회는 저래야 교회야, 예배당은 저래야 돼, 홀 빌려서 하는 것은 교회가 아니야, 저렇게 고딕체가 되어야 교회야, 그리고 안에 성가대, 파이프 오르간이 있으면 더 좋은 교회야, 라는 것이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꽉 들어있어요. 저게 절입니다. 하면 무슨 말인지 몰라요. “저건 절이라 안 쓰여 있는데. 절에는 부처상이 있는데“ 부처상이 있으나 마리아상이 있으나 다 절입니다. 하면 이게 무슨 말인지 몰라요. 이미 기존에 종교성이 삼투압처럼 꽉 들어있다 말이지요. 그래서 제가 하는 말이 이런 말이 있잖아요. 교회가 교회를 막는다. 이미 교회인식이 많아요.

제가 11년 전에 요한복음 설교했던 거 봤는데, 이런 설교가 있어요. 신학생이 처음 갈 때는 아골 골짜기 빈들에 복음 들고 가리이다. 이렇게 하다가 2학년 지나가면 컨닝 하고, 3학년 지나면 수업에 참석도 안 해요. 족구 한다고. 왜 그러냐 하면 가면 갈수록 뭘 배우는가 하면, 처음에는 주를 위하여 내 몸을 버리겠습니다. 하다가 2학년, 3학년 가면, 그런 것은 테레사 수녀나 하고 믿음 좋은 사람이나 하고, 주기철 목사나 하고, 나는 잽도 안 되니까 나는 교회 월급이나 탈랍니다. 요런 쪽으로 갑니다. 왜냐 하면, 자기 아내가 있고 자식이 있고 아이들 피아노 레슨도 가르쳐야 되고, 월급도 타야 되고 이런 쪽으로 하는 거예요.

처음에는 주님을 위해서 살다가 그 다음에는 교회를 위해서 사는 사람으로 교회운영 전문 직업인으로 양성되고 마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이 모인 게 노회입니다. 그러니 노회에서 예수 이야기 하면 옛날 자기 신학교 1학년, 2학년 때 하는 거기 때문에 자기는 부끄럽기 때문에 그런 것은 입 다물라, 그 입 다물라, 이리 나와요. “이게 어디 안중이라고 어딜, 그 입 다물라” 나와요. 꼭 해품달 이라니까. 나도 옛날에 다 안다는 거예요. 젊은 놈들 나도 한 때에는 주를 위해서 살았다. 하는 거예요.

지금은 교회 운영이 되어야 돈이 나오고 그 돈으로 지 생계유지 되는 겁니다. 백날 예수 하면 뭐합니까? 안 알아주는데. 굶주리고. 또 굶주리면 또 주께서 교회 크게 해줄까 생각하는데, 굶주리면 더욱 더 굶주리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에이, 씨~ 해서 씨자 붙이고, 에이씨 나 이제 교회 안 간다. 복음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기존교회가게 되면 기존교회 목사가 “진작에 오지, 무슨 고집으로 그렇게 버텨. 세상이 복음하면 니한테 돈 대주는 줄 아나, 그래, 아이고 바보야, 이제 철났구나!” 이리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제자들이 3년 동안 따라다녀 봐야 마지막은 뭐냐, 나는 당신을 모른다. 나는 3번씩 장담하는데 저 사람은 나와 상관없다. 분명히 그런 고백이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주님한테는 성공한 게 베드로가 그런 이야기할 때, 주님한테 그 전에는 뭐라고 했냐 하면, 내가 죽기까지 주님을 따르겠다고 했거든요.

자, 한 번 보세요. “내가 죽기까지 주님을 버리지 않겠나이다.” 라는 말은 누구 말인가 하면, 분명히 베드로의 말이다 말이지요. 이 베드로를 두고 예수님은 뭐라고 하시는가 하면, 지금 마귀가 베드로를 가지고 갈 것이냐, 아니면 내가 이 철딱서니 없는 베드로를 사용할 것이냐, 그 다툼에서 기어이 베드로 니는 나의 승리의 전리품으로 될 것이다. 요 드러난 지점이 뭐냐, 니가 3번 부인할 때, 2번도 아니고, 4번도 아니고, 3번 부인할 때, 닭이 꼬꼬댁 울거든, 괘종시계 맞춰놓으면 어떻습니까? 2시 반에 맞춰놓으면 시간 되면, 딱 울리지요. 요거는 시간되면 울리는 것이 아니고 베드로가 베드로 될 때 울리게 되는 거예요.

베드로 뜻이 뭔지 알아요? 반석이잖아요. 교회에 기초지요. 교회의 기초가 이 모양이니, 오늘날 우리들은 어떻겠습니까? 바로 아브라함의 약속, 없는데서 있게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는 그 능력은 절대로 구원받은 자에게는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 외부에서 주어지는 겁니다. 외부에서.

우리는 그냥 살아가는 거예요. 믿는 척하면서 그냥 살아가는 거예요.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믿는 척 하는데도 힘들지?” 라고 다정스럽게 말씀하시는 그 말씀에 우리는 그게 위로가 됩니다. “와, 힘듭니다.” “믿는 척 많이 해라.” “예, 알겠습니다.” “내일도 많이 해라.” “예, 알겠습니다.” 이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 줄 몰라요.

기도할 때, 이걸 그대로 기도하는 거예요. “하나님 아버지 믿는 척 하자니 힘들어 죽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이걸 공중기도 하라 말이지요. 이런 기도를 해야지 어른부터 어린아이까지 시키지도 않는 기도를 왜 하느냐 말이에요. 그런 기도 한 사람 끝나고 난 뒤에 잡고 물어보세요. “당신, 기도한 것에 당신 목숨 걸겠습니까?” “미쳤나? 목숨 걸게” 지가 목숨 걸지도 않는 것에 기도한 거예요. 목숨 거는 대신 기도 빡시게 한 걸로 대체해 달라는 거 아닙니까?

목사의 기도 발은 대단한 능력이 있다는 이 말은 나는 기도만 해 줄 테니까 그 대신 나를 먹여 살려 달라, 그런 말이에요. 흥정입니다. “목사님, 그렇게 기도 발대로 목숨 바치렵니까?” “미쳤나? 내가 목숨 바치게.” 기도해줬으니 기도 대가를 돈으로 환산해서 달라는 거예요. 그런 목사들에게 사람들이 모이는 이유가 본인들이 그렇게 하기 때문에 그래요. 서로 서로 쉬쉬할 수 있는 영역이잖아요. 가면무도회, 전부 다 가면무도회 쓰고 교회오기 때문에 거룩한 성스러운 주일만큼은 가면들 쓰는 겁니다.

그 가면 언제 벗느냐, 죽는 날, 혹은 돈 떨어져서 부도 직전의 날, 목사 쫓겨나서 돈 한 푼 없는 그날 그때 십자가 복음은 다 부도나고 생계수단 이었다는 것. 그건 하나의 자기의 상품이었고, 예수이름 팔아먹고 돈벌이한 하나의 상품이었습니다. 교회는 하나의 가게고 점포였습니다. 그 밑에 있는 부교역자들은 직원이었던 거예요. 그냥 살면 되는데, 그냥 살면 성령이 노시는 분이 아니거든요. 주께서 보냈다는 말은 놀자고 보낸 것이 아니고 본격적으로 나서는 거예요.

절대 시간, 절대 공간에 막혀 있는 우리를 이제는 주님의 묵시세계에서 천년은 하루같이 이것은 시간에서의 해방, 니가 바다 속에 있어도 내가 거기 있고 땅 끝 가도 거기 있고 공간에서의 해방, 시간과 공간으로부터의 해방, 법으로 부터의 해방, 그렇게 되도록 성령께서 우리를 그 숨은 찰라에 사건 사건화 시켜서 그걸 깨닫게 하는 겁니다.

어디든지 내 주 모신 곳이 하늘나라에요. 변화산에 가 보세요. 지금은 아무 것도 없고 기념교회만 있을 뿐이지 아무것도 없거든요. 그런데 그 변화산이 한 때는 뭐였습니까? 천국이었어요. 어떤 때? 주께서 사건을 유발시켜서. 어떤 사건? 베드로, 요한 너는 아무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님만 심지어 엘리야도 아무것도 아니요, 모세도 아무것도 아니요, 예수님의 죽으시는 이야기, 예수님이 별세하시는 이야기, 이 말씀만 중요하고, 모세나 엘리야나 베드로 야고보 요한도 12제자 임원진도 아무것도 아닌 그것을 깨닫는 사건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지금 대전에 있더라도 그게 천국입니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내가 아무것도 아니고 죄인의 괴수라는 것을 깨달을 때, 더 이상 우리가 우리 생각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 생각 안 나면요, 내 생각 안하면 내가 짊어져야 될 고민과 근심과 걱정과 내일의 업무도 생각 안나요. 잔소리하는 부장도 생각 안 나고, 상부도 생각 안 나고, 애먹이는 자식도 생각 안 나고, 그 순간만큼은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니까 근심 걱정도 순간 다 날아가죠. 돌아서면 다시 파도가 밀려와서 모든 게 덤으로 주어지지만, 그 순간 영원한 성령이 나를 보증금으로 있기 때문에 떠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걸 하나님께 Sign 사인, 입맞춤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사인하는 거예요. 계약서 마지막에 뭐합니까? 옛날에는 도장 찍었잖아요. 사인만 하면 되잖아요. 이미 우리는 내게 아니고 주님의 사인이 들어있어요.

그러면 제자들은 뭡니까? 예수님이 이미 사인한 제자들이잖아요. 제자들은 결국 어디에 속했다? 악마에 속해 있는 거예요. 악마라 하는 의미는 뭐냐 하면, 파우스트 영화에 보면, 악마의 꼬리에 앞에 나와 있는 것으로 묘사해 놨는데 진짜 악마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거부하는 것이 진짜 악마예요. 왜냐 하면, 성령이 아니고서는 하나님의 은밀한 것을 아무도 알 수가 없어요.

그런데 그 은밀한 것을 만약에 알았다면 뭐로 나타난다? 십자가 만이다. 라고만 나타나게 돼 있어요. 어제 수요일날 그런 설교했잖아요. 결혼반지 몇 개 필요합니까? 1개만 있으면 되지요. 하나님의 기적은 우리에게 몇 개 필요합니까? 100개, 1000개 몇 개 필요해요? 하나만 있으면 돼요. 이게 사랑의 맹세 반지입니다. 이게 십자가거든요. 하나님의 기적은 요나의 기적이에요. 요나의 기적은 뭘 이야기하는가? 이 세상이 얼마나 악하고 음란한가를 보여주는 기적이라니까요. 그리고 우리는 그 태생이고. 그 출신이고. 전라도, 경상도, 문재인, 박근혜 관계없어요. 우리는 다크 출신이라니까.

요나의 기적이라고 하는 것은 솔로몬의 지혜를 듣고자 시바의 여인이 온 것은 지가 아는 지혜로 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건화 마주쳐서 ET처럼 외계인과 손가락 마주쳐서 뭔가 마주쳐서 오는 그 외계인과 마주쳐서 오는 그 지혜를 듣고 싶은 거예요. 그 듣고 싶은 그 지혜가 바로 내가 품고 있다는 거예요. 그게 십자가로서 다 이루었다 되는 겁니다. 십자가로서.

십자가에서 보니까 우리는 우리의 행함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도 아니고 예수님의 선물로 주신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악마의 권세로부터 해방시켜서 자유케 해서 특히 법으로부터의 해방이라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해요. 왜냐 하면 계속 우리의 내부에서 법을 자체 제작하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시험 칠 때, 오늘 시험 날이다. 오늘 시험 볼 때, 저 전봇대를 치고 가면 내가 문제 하나 더 맞추고 그냥 지나가면 떨어진다. 저 할머니 앞에 따라가면 나는 오늘 좋은 점수 맞고 늧추어 가면 안 된다. 부리나케 따라가는 거예요. 일종의 징크스 같은 거. 축구시합 하는 사람이 절대로 머리 깍지 않는다든지 이런 징크스 같은 거. 자체적으로 품고 있는 법 체제. 그럴 때 자아주체성은 바로 그 법이 보장해 준다는 거, 법에서 이탈되면 나답지 않은 나가 되어서 이것은 뭔가 무질서하다고 보는 거예요.

그러니 사람들이 철야기도 할 때나 수요기도 할 때는 교회 올 때는 반드시 이미 법의 체제를 가지고 오고 이걸 하나님 앞에 결재 맞으러 오는 거예요. 이 정도 성의를 붰으면 한 번 양심 있으면 이것부터 성의를 보여야 하지 않겠느냐, 이리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진짜 복음 전하는 목사 입에서는 뭐라고 하는가 하면, 여러분 법에서부터 벗어났습니다. 저는 이것은 이렇게 해요. 칠판에다가 쇠막대기로 긁어보세요. 뭐가 튑니까? 불꽃이 튀지요. 그 불꽃이에요. 죄 많은 내가 죄 많은 나와 더불어 살 때 우리는 뭐가 튀지요? 세상한테 안 지려고 그리고 세상은 망해도 나는 살려고 하는 그 치열한 싸움, 이게 불꽃이지요. 사랑하는 사람 만나 보세요. 좋게 만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만나면 만날수록 불꽃이 튀기지요. 결혼하면 보자, 지금은 참는다. 나중에 보자, 이런 식으로. 결혼하면 이제 너는 끝이야, 통장 압수야. 이리 나오고. 이 불꽃이 튄다는 것. 그것을 이제는 고맙게도 세상과 세상의 불꽃을 예수님의 하나님의 숨어있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진짜 숨어있는 의도, 그 하나님의 심성으로 예수님을 품고 제자들 앞에 나타나서 불꽃을 튕기는 겁니다.

그러면 제자들은 예수님 말씀을 이해 못하면서도 뭐라고 하느냐 하면, 이해했습니다. 라는 이런 쪽으로 계속해서 나오는 겁니다. 그러면 그 이해한 것은 한 꺼풀씩 양파 껍질 벗기듯이 한 꺼풀씩 벗겨내요. 벗겨서 뚝 뚝 떨어져 던지는 것이 뭐냐 하면, 벗겨서 던져낸 그것이 바로 제자들을 둘러싼 그 당시의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메시아사상이고, 구약부터 내려오던 인간의 한계지요.

구약이란 언어를 인간의 언어를 해독하는 인간의 해독이 만나서 신약이 발달됐고 그 신약으로서 신약의 맞춤 메시아를 간곡히 기다리는 그런 식으로 메시아를 기다렸건만, 주님은 역으로 뒤로 와서 엉덩이 차버리는 거죠.

“우리는 모세의 법대로 사는 자들이 우리다.” 하니까 예수님께서 “모세가 너희들을 정죄할 것이다.” 정죄할 사람이 따로 있으니 모세가 너희를 정죄할 것이다. 요한복음 7장에 나오지요. 그러면 어떤 법을 지켜야 됩니까? 라고 제자들이 물을 게 아닙니까? 이 묻는 자체가 또 법으로 묻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이 할 수 없이 옛 술은 항상 옛 부대에 담듯이 내가 새 술이라면 새 술의 합당한 부대는 옛 부대를 가지고 새 술을 담으면 찢어진다. 그러니까 내가 담을 수 있는 부대마저 내가 제공해 줄게. 자꾸 어설프게 옛날에 알고 있던 내려오던 그러한 윤리 도덕에다가 청교도적인 사고방식에다가 법적인 체제, 착하면 복 받고, 악하면 벌 받는다는 체제에다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예수님의 복음을 담아낼 수가 없어요. 그거 담으면 안 됩니다. 지금 한국교회 세계가 다 그래요. 자꾸 어설픈 쪽으로 담아요.

요번에 성탄절날, 교황이 교시내린 것이 신을 기억하라, 세상 사는데 너무 몰두해서 신의 자리가 없잖아. 바보 같은 소리 하는 거예요. 그 사람은. 인간은 살면 살수록 점점 어느 신이던 더 빌고 의지하게 돼 있습니다. 신이 없는 인간은 없어요. 항상 신을 믿게 되어 있어요. 나 같으면 신을 바꿔라, 이렇게 이야기하지요. 나이키를 바꾸던지, 뭐를 바꾸던지. 신은 원래 바꿀 대상이 아닙니다. 왜냐 하면, 최종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신을 바꾸면 또 다른 신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되는데, 그럴 수 없잖아요.

예수님이 그랬습니다. 너희들이 믿는 신은 신이 아니고 내 아버지만이 진짜 신이다. 너희들이 자꾸 아버지를 찾는데 나를 본 자가 아버지를 보았는데, 자꾸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너희들은 나를 말고 다른 아버지께로 갈 길이 없다. 하거든요.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를 보이는 대신 뭐만 자꾸 들이댑니까? 예수님 자신을 자꾸 보이는 거예요. 그러면 제자들은 답답한 게 지금 예수님을 안 보고 있습니까? 보고 있잖아요. 보고 있는데 예수님은 못 보고 있다고 보는 거예요. 그건 뭐냐 하면, 예수님이 하는 일을 보고 아버지를 믿어라, 결국 예수님의 하는 마지막의 일은 뭡니까? 십자가. 제자들은 십자가보고 다 도망가 버렸습니다. 잘 갔어요. 그래서 이 세상에서는 신자는 예수님뿐이지 아무도 신자는 없다 이겁니다.

이제 성령이 오게 되면, 신자 아닌 자가 신자 되는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놀라운 일이 벌어지면서 사도바울 같은 경우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계획에 의해서 우리는 천국 가는 겁니다. 그래서 천국가게 되면, 내가 면류관 쓰는 것은 합당치 않고 이건 제가 쓸 게 아니고 자진해서 반납해서 면류관 드리는 그런 나라가 천국입니다. 천국생활 안 할 사람 같으면 아예 천국 들어가지 마세요. 지옥이 살기 좋아요.

교회 온 것으로 천국 온 걸로 대신 할 수 없습니다. 교회 오면 지 자랑하는 곳이에요. 이것은 천국과 정반대되는 지옥입니다. 천국은 그 교회에서 밉상 받아야 돼요. 예수님 이야기만 하다가 쫓겨나던지 밉상 받아야 돼요. 이상하다, 내 자랑 안 하니까 교회에서는 도대체 있을 자리가 없어요. 어느 모임에서 꼭 PR을 해줘야 성립이 되는데, 몇 년간 봉사해도 알아주지 않고 진급도 없고 그러니까 교회라는 것이 얼마나 못 갈 사람만 모집하는 쪽으로 교회를 많이 부흥시켜 주시는 겁니다. 많이 부흥시켜서 니가 무엇 때문에 그 곳에 왔는지 니 자신을 돌이켜 보라는 거예요.

법이 무서운 거예요. 목사의 법이 무섭고, 목사의 카리스마 무섭고, 장로의 저주의 기도가 무섭고, 목사의 저주에서 저주받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교회 다니면서 부흥회에서 수차례 계속해서 듣거든요. 이게 그냥 세례 받은 사람 같으면 죽어도 천국 못가는 사람은 천국 못 갑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대로 덮고 그것이 두렵다는 것은 니가 스스로 너를 구원하려고 시도하기 때문에 마귀가 그렇게 들끓는 거야, 라고 진짜 구원은 내가 나를 방해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은 그런 교회 있으면서 구원 받는 거예요. “아! 내가 얼마나 멍청한 놈이고 얼마나 내가 욕심 없다고 하지만 사실은 기복신앙 아니라고 하지만 사실은 기복신앙이 밑에서 샘솟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려고 이런 교회에 다니게 하시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허락이라는 말씀을 하셨지요. 허락이라는 내용의 말이 무슨 뜻인지를 모릅니다. 마태복음 13장 봅시다. 허락을 들추어내는 방법으로 비유가 제공됩니다. 첫 번째 나온 비유가 뭐냐 하면, 씨 뿌리는 비유, 첫 번째 시간에 했지요. 두 번째 비유는 알곡, 가라지 비유지요. 이것은 뭐냐 하면, 제자들 납득하라고 주신 비유가 아니고 납득도 안 되고, 이해도 안 되는 제자를 기어이 천국 백성 만드는데 예수님 본인이 바로 이 비유의 주인공으로서 하는 거예요.

말씀하는 본인이 감독하고 배우하고 작가하고 혼자서 다하는 거예요. 혼자서. 혼자서 다 해먹는 거예요. 그러니 제자들은 이것을 어떻게 이해한다? 주께서는 좋은 분이고 주께서는 좋은 진주고, 나는 그 진주를 산 착한 장사치가 돼서 주님은 주님역할하고, 착한 나는 착한 역할해서 우리 짝짜꿍해서 천국 간다. 이렇게 오해들을 하는 거예요. 이 비유를.

그런데 백날 그런 비유하면 뭐합니까? 예수님은 너희를 모른다 했는데. 그러니까 이 비유 말씀은 헛되이 되는 것이 아니고 비록 우리가 모른다 할지라도 기어이 성령을 통해서 예수의 일에 완성을 통해서 이 비유대로 지금도 하자 없이 지금도 충실하게 이 말씀대로 우리에게 적용되고 있습니다. 마지막 이 말씀하고 마치겠습니다.

14절,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러한 이사야 6장의 폭격기가 말씀의 폭탄을 가지고 예수님과 더불어서 전 인간에게 폭격을 해버리는 겁니다. 너희는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한다. 할 때, 우리는 어떻게 됩니까? 폭탄 맞아도 쌉니다. 우리는 마땅히 폭탄을 얻어맞아야 됩니다. 우리는 듣기는 들어도 내 맘대로 내 좋은 대로 해석했습니다. 라고 고백하면, 바로 그 사람 말고 그 바깥의 말씀성취가 하나님의 의라는 것, 하나님의 사랑이 완벽하게 안아주지요. 우리는 그 안에서 사인 받은 사람입니다.

니가 너를 사인한 그 값을 내가 너를 사랑함으로서 기어이 그 사인한 값을 너를 통해서 다 찾아내겠다는 겁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우리가 존재한다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만들어졌고 예수님을 위하여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우리가 자꾸 잊어버립니다. 잊을 때마다 모든 사태를 통해서 나를 위해서 내가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은혜를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옵나이다. 아멘.

첨부파일 : 대전121227b-마13장10절(허락)35강-이 근호목사.hwp (68.0K), Down: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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