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강-YouTube강의(위를 보라)130103-이 근호 목사
17강-YouTube강의(위를 보라)130103-이 근호 목사
이름 : 이한례(IP:210.206.248.70)
17강-YouTube강의(위를 보라)130103-이 근호 목사
제 17강의 제목은 ‘위를 보고 살자’ 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현대인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가치라 하는 것은, 남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우리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내가 얼마나 가졌느냐, 은행 잔고가 얼마나 돼 있고 이 잔고 가지고 몇 년을 버틸 수 있느냐, 연금은 한 달에 얼마나 나오느냐, 얼마나 내가 이 땅에 안 죽고 버티는데 있어서 얼마나 많은 힘을 비축돼 있는가, 거기서 남들도 그걸 우리의 가치라 보고 우리 자신도 내가 살아온 보람이라 할까, 가치라 할까, 희망이라 할까, 사는 힘이 된다고 여기면서 그런 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이렇게 펼쳐서 사도를 통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이렇게 접수하게 되면, 현재 우리가 여기서 얼마나 가졌느냐는 것 가지고 우리의 가치를 결정짓지를 못한다는 겁니다. 도리어 결정짓지 못한 정도가 아니고 도리어 우리의 신앙을 방해하는, 그것도 결정적으로 방해하는 방해물로서 우리가 거기에 정신이 팔려있다고 하는 겁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이렇게 돼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말씀 하실 때 우리가 얼마나 사람은 재물을 신처럼 섬기면서 거기에 전적으로 의존하면서 살아가고 있는가를 우리사정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미리 보여주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 할 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좋아하는 자체가 우리 인생의 목적으로 종결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의 경과로서 그냥 수단으로써 사용되는데 어떻게 사용되느냐 하면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좋아하게 되면 진작 내가 정말로 원하는 돈과 여유 있는 삶을 혹시 더 풍족하게 제공하지 않겠느냐, 라는 그러한 심보를 가지고 은근히 그걸 감추면서 교회 나와서 하나님의 영광과 찬양하고 있지 않은지 다시 한 번 우리를 돌아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인간의 의미는 뭐냐, 골로새서 3장 1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이렇게 말씀 돼 있습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렇게 돼 있어요. 땅엣 것도 생각하고 위엣 것도 생각하면 참 좋겠는데, 예수님께서는 2절에서 “위엣 것을 생각하고” 그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했습니다.
흔히 교회에서 목사님들이 설교할 때 “위엣 것을 바라보자” 흔히들 많이 이야기해요. 그런데 두 번째 사항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고 설교단에서 외칠 때에 과연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면서 교회 나올 사람이 과연 교인들 중에 몇 명이나 있겠습니까? “위엣 것을 생각하자” 이거는 듣고 싶어 해요. 하지만 위엣 것을 생각하면 보너스로 땅엣 것도 주지 않겠느냐, 그런 심보가 작동하는 입장에서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은 아예 생각하지 말라 했을 때에 부담이 돼서 그 교회 계속 다닐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이 뭐냐, 현재 누가 얼마나 많이 소유하고 얼마나 갖고 있느냐가 아니라 너의 삶의 방향이 위쪽이냐? 아니면 위쪽의 방향이 아니고 아래쪽을 수평적으로 아래쪽만 쳐다보고 있는 수평적으로 저쪽의 저 미래의 산 너머에 뭔가 자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어떤 유토피아나 희망, 꿈, 그런 것을 내다보면서 그쪽 방향을 보면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묻고 있는 겁니다. 위엣 것을 바라보느냐, 아니면 땅엣 것을 바라보느냐를 우리에게 묻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 성도가 땅엣 것을 생각하지 않는 입장에서 위엣 것만 생각해 버리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느냐, 그것은 이 세상에서 위에 나라에 갈 수 없는, 천국에 갈 수 없는 사람과 대화가 안 됩니다. 가까운 부부뿐만 아니고 가족들, 자식 부모 간에 대화가 되지를 않습니다. 사람이 누구와 대화한다는 것은 누구하고 소통하는 목적도 있지만 소통 이전에 자기 속에 담아있는 것을 외부로 발산하는 그런 강도가 더 셉니다. ‘나 이렇게 살아간다.’ 하고 누굴 상대로 외치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이 두 사람이 대화를 해도 서로 의사소통 했다고 스스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각자 자기 이야기했을 뿐인데 서로 편리한 대로 타협안에서 각자 자기 얻을 것만 챙기고 다시 뒤돌아서게 돼 있죠.
그런데 위엣 것을 이야기해 버리면 어떤 사람만 대화가 되느냐 하면, 같이 위엣 것을 쳐다보는 그쪽 방향으로 삶의 방향을 정해놓은 사람에게만 이해가 되고, 일반 보통 사람한테는 대화가 안 됩니다. 대화가 안 된다면 본의 아니게 어떤 상태가 되느냐, 원수지간이 돼 버립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발생되는 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누누이 언급하셨던 십자가의 길, 좁은 길, 고난의 길입니다. 이건 세상 사람들과 대화가 안 된다 정도가 아니라 교회 안에서부터 심지어 위를 쳐다보는 교인이 목사님하고 이야기를 해도 이해가 안 돼요. ‘성도님, 다 옳은 이야기고 바른 이야긴데 교회가 되려면 크게 부흥되려면 그것만 이야기하면 안 됩니다. 성도님. 세상 것도 복 받는다 이렇게 이야기해줘야 그래야 교회가 부흥이 되고 유지가 되고 그래야 전기세라도 내고 가스비도 내듯이 그냥 위엣 것만 이야기하면 교회 문 닫아야 됩니다. 그런 것도 좀 신앙생활 처음 하니까 모르는데 오래 해보면 목사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실 겁니다.’라고 목사 쪽에서 다시 땅의 쪽에, 이 교회라는 땅의 일에 대해서 방향을 틀고 살아간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 일은 땅의 일입니다. 하늘의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순교하시고 십자가 지신 그 현장이 전혀 하나님을 모르는 집단한테 얻어맞아 죽은 게 아니고, 바로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열심히 섬긴다는 그 작자들에게 주님께서는 이단소리 들어가면서 십자가에 죽었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그 십자가를 너도 져야 이 천국에 올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십자가를 나무로 뚝딱, 뚝딱 만들어서 그 무거운 십자가 지고 다니면 그게 천국에 가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간단합니다. 성경 말씀대로 위엣 것만 생각하게 되면 땅엣 것만 생각하는 사람이 가만두지 않습니다. 공격하게 돼 있고 미워하게 돼 있고 그들에게 밉상 받게 돼 있고 그들이 누르고 있고 그들이 갖고 있는 모든데서 왕따 시키고 그들이 좋다는 거, 그들이 복이라는 데서 우리를 소외시킬 겁니다. 세상의 가장 좋은 것, 세상에서 누구나 탐내는 것, 거기서부터 성도를 배제시킬 겁니다.
그러면 영생의 길 가겠다고 본의 아니게 순교할 필요도 없고 본의 아니게 스스로 자책하듯이 고난스럽게 스스로 자기를 때릴 필요도 없습니다. 세상이 자연스럽게 그 성도로 하여금 그쪽 좁은 길로 가도록 그렇게 이끌게 하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전략입니다. 바로 이 전략에서 나온 원리가 뭐냐, 구원 불가능성입니다. 이 구원이라 하는 것은 우리가 구원 받겠다 해서 아무나 손들고 강대상 앞에 나온다고 구원시켜주는 게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하나님이 처음부터 시작도 하나님이요, 마지막도 하나님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아버지께서 오게 하지 아니하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작용하시는데 하나님께서 어떤 식으로 작용하느냐 하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서 다른 사람과 분리시키는 그 능력과 동일한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이죠. 그 십자가 지게 하신 그 동일한 능력으로 특정인간에게 주어지면, 그 인간은 본인이 거기서 발을 뺄 수가 없어요. 예수님을 구원시킨 그 능력에서 아무리 몸부림치고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계속해서 아무리 세상의 천박한 일에 종사해도 결국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위엣 것만 쳐다보게 하게 만드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주변의 땅엣 것만 쳐다보는 사람과 이별과 이별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게 만들 것입니다. 그럴 때 성도는 그 능력 주신 것에 대해서 축복이라고 여기고 오히려 감사해야 됩니다. 이렇게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주여, 제 능력 같으면 벌써 세상만 쳐다봤습니다. 환란, 곤고가 있을 때 우리는 다시 주님만 원망하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주의 능력이 임했기에 환란과 곤고와 핍박과 기근과 어려움과 가난과 어떤 수모를 당해도 오히려 그렇게 만들어 가면서도 기어이 천국에 넣어주시는 하나님께 뭐라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라는 고백을 쏟아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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