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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4강-나1장15(절기의 의미)121230-이 근호 목사자유게시판나훔

4강-나1장15(절기의 의미)121230-이 근호 목사

이름 : 이한례(IP:203.90.45.137)

4강-나1장15(절기의 의미)121230-이 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 나훔 1장15절까지입니다. 구약성경1299페이지입니다.

나훔 1:15

“볼지어다 아름다운 소식을 보하고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 위에 있도다 유다야 네 절기를 지키고 네 서원을 갚을지어다 악인이 진멸되었으니 그가 다시는 네 가운데로 통행하지 아니하리로다”

성경에 보면 적그리스도, 또는 마귀의 자식, 또는 염소, 나쁜 고기, 가라지, 지옥에 가는 자들, 마귀에 속한 자들, 많이 나오죠. 우리는 그런 부정적인 것을 빼고 좋은 쪽만 이렇게 들여다보려고 이렇게 생각하는데 진실이라 하는 것은 양쪽 다 알아야 진실입니다. 한쪽 숨겨놓고 좋은 것만 내세우면 그 의미를 우리가 놓쳐 버립니다.

천국이 왜 좋은지를 지옥의 혹독한 경험을 해야 천국이 좋은 줄을 아는 겁니다. 거지 나사로는 이 땅에서 지옥이 얼마나 무섭고 참혹한지를 지옥 가는 사람들 곁에서 살았습니다. 멋진 장치 아닙니까? 지옥 가는 사람, 곧 부자죠. 부자 코앞에서 살므로써 지옥 경험을 있는 대로 받은 거예요. 마주보면서 사는 겁니다. 저 인간이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아니면 내가 이런 지경으로 사는 이것이 옳은 것인가, 그것은 천국 가봐야 알지, 지옥 가봐야 알지, 그런 소리 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맙게도 우리 곁에 지옥 가는 사람을 잘 배치를 해서 천국이라 하는 것이 어떻게 숨겨져 있으며, 천국이라 하는 것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가를, 얼마나 축복인 것을 지옥 경험 속에서 우리로 온전하게 깨닫게 하는 겁니다. 이건 지금 우리만 그런 게 아니고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앗수르라는 잘 사는 부자나라, 그 부자나라 속에 왜소하기 짝이 없는 이스라엘 유다, 얼마나 그들은 사는 것이 실망스럽고 그 실망은 하나님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졌을 겁니다. 살아있다는 하나님, 살아있기는 뭐가 살아 있느냐. 하나님 있다는 게 뭐 우리한테 무슨 도움이 되느냐, 이렇게 우리가 힘들게 살면서도 과연 하나님으로서 찬양과 영광을 받을 그런 잽이 되느냐, 우리는 따지고 싶었을 거예요.

거기에 세미한 음성처럼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 있습니다. 성경을 봐라. 그건 네가 생각하는 것은 상식인데 그 상식을 뒤엎는 내용이 성경에 포함돼 있다. 자꾸 상식으로, 상식으로, 상식으로 살려고 하니까 성경이 이렇게 안 보게 되는데 성경을 펼쳐봐라. 반전이 있을 것이다. 네가 생각하는 그것은 바로 주변 삶에서 밀려온 거예요. 옆의 사람한테 우리가 어느 정도 오염된 것이고 전염된 겁니다. 우리는 옳다고 여겼어요.

제가 성경공부 갈 때마다 묻는 것 때문에 제가 아주 곤욕을 치릅니다. ‘목사님, 문ㅇㅇ 찍었습니까? 박ㅇㅇ 찍었습니까?’ 이거는 가는 곳마다 예외가 없어요. 이건 빠짐도 없이 다 물어요. 기껏 대답한 게 ‘궁금해요? 궁금하면 5백 원.’ 기껏 대답할 게 이거밖에 없죠. 박ㅇㅇ, 문ㅇㅇ은 우리에게 이단이 뭔가를 알려주질 않습니다. 지옥이 뭔가를 알려주질 않아요.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용하시는 것은 우리는 다른 세계에 하나의 양파껍질처럼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을 보는 겁니다. 대전서 그런 이야기 했잖아요. 하늘의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확장 시킨다고, 죽음 그 이후까지 확장시켜서 관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그냥 죽으면 끝이고 그 앞까지만 전부라고 생각하는데 한번 늘여보자 말이죠. 죽음 그 이후의 세계에서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그것이 이 세상이 그 이후의 모습을 집중 집약해서 방향을 가지고 그쪽으로 몰아넣는 식으로 이 세상은 가는 겁니다. 일종의 고기잡이, 요리조리 몰아넣는 거예요. 너는 저쪽에 빠지지 말고 이쪽에 빠지라고. 그러면 우리는 자연적으로 이 세상에 대해서 실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인데요. 15절 초반부터 이 한절에도 많은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지금 앗수르라는 그러한 저주받은 나라 속에서 유다나라가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유다나라 살려줄게.’ 이런 식으로 했으면 좋겠는데 그게 아니고 “아름다운 소식을 보하고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 위에 있도다” 아름다운 소식인데 요걸 우리나라 말로 두 자로 고치면 복음이라는 겁니다. 복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자가 있다. 이것이 로마서에 보면 사도바울이 이 본문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뭐가 기쁜 소식이냐 하면 “유다야 네 절기를 지키고” 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단이 뭐냐, 절기가 없는 게 이단입니다. 요거 애매한 거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요거 깔끔하게 정리해 드립니다. 이단이 뭐냐, 절기가 없는 거예요. 절기라고 딱 생각하니까 제일 먼저 떠오른 단체가 있습니다. 안 산홍, 유월절 지켜야 구원받는다는 단체입니다. 그거는 절기를 잘 지키니까 그럼 이단 아니냐, 그렇게 나오죠.

여기서 반전이 있습니다. 내 몸이 살기 위해서 구원받기 위해서 절기를 지키는 이것이 바로 이단입니다. 절기가 있는데 그 절기를 위해서 우리 몸이 준비돼 있다는 식으로 생각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절기를 위해서, 하나님의 법을 위해서 우리가 있다. 말씀이 우선이고 우리는 나중이라는 겁니다.

이사야 40장에 보면 이런 말씀 있죠. 우리를 풀의 꽃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풀 지면 꽃 지죠. 풀도 지고 꽃도 지지만 안지는 게 있다는 거예요. 영원한 게 있다는 겁니다. 그건 뭐냐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있다. 그 정도가 아니고 말씀은 서리라. 이렇게 돼 있어요. 좀 죽어줘. 이 말씀이 말씀답게 우뚝 서게, 제발 좀 죽어줘. 이런 뜻이거든요.

영화감독이 엑스트라보고 ‘어이, 그 … 죽어줘. 좀 죽어줘.’ 그래야 영화가 사는 거야. 우리는 태어났다가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나타났다가 사라짐으로써 역시 인간은 믿을만한 존재가 못 된다는 그런 역할을 좀 보여주라는 거예요. TV 드라마 시작되고 끝나면 그동안 시청해줘서 감사합니다. 하고 끝나잖아요. 자꾸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미련이 있어요. ‘그때 참 그 아가씨 예뻤는데’ 하고 있는데 또 새로운 드라마가 시작되면 새로운 데 빠지거든요. 기존의 드라마가 좋았지만 또 새로운 드라마에 빠지면 기존의 것을 잊어버린다고요.

그처럼 인생이라 하는 것은 뭔가 자꾸 이음새, 바통을 이어주는 식으로 너 죽고 나 살고, 또 살던 내가 죽고 나면 나 때문에 살 사람 또 있고, 뭔가 이어주는 연결고리 속에 우리가 놓여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바로 모든 것은 쉽게 소멸되나 영원한 것은 하나님의 법은 영원히 살아있다.

그러면 절기를 살아있게 하는 것. 그럼 다시 이단이 뭐냐, 이단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위하여 인간이 있지, 인간을 위하여 하나님이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그게 이단 되겠죠. 이단은 그게 없으니까.

그렇다면 절기를 위해서 우리가 있다는 말이 이게 무슨 뜻이냐, 그건 절기라는 것은 아침에도 그런 이야기했지만 우리에게 생명이 공급되는 파이프입니다. 수원지 저수지에서 밑에 있는 마을까지 오염되지 않은 물을 보내려면 그냥 흘려보내면 안 되고, 수도파이프를 해서 직접 수도꼭지 틀면 그 계속의 아주 상큼한 물이 집 앞까지 들어와야 되잖아요. 그 파이프 역할을 하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이 절기라는 것을 이렇게 만들어놓은 거예요.

그러면 절기란 일종의 껍데기에 불과하고 절기 안에 뭔가 내통하는 통하는 그것이 뭐가 있어요. 그게 뭐냐, 바로 절기를 온전하게 지킬 장차 오실 예수님이십니다. 예를 들면 안식일이라는 그날을 지킨다고 봅시다. 안식일을 지킬 때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을 우리 쪽에서 지킨다고 생각한 겁니다. 왜 그 사람이 그렇게 오해한 것은 내가 안식일 지키면 내가 구원받는다. 이렇게 생각한 거예요.

제가 아까 주의를 드렸잖아요.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안식일이 있는 게 아니라고. 그런데 그 사람들은 그걸 모르고 우리가 안식일 지킨 사람은 구원받고 안식일 못 지킨 사람은 지옥 간다는 거예요. 그런데 안식일 안에 어떤 어르신네가 들어있어요. 어떤 분이 들어있어요. 안식일이라 하는 것은 너희들은 못 지키고 내가 지킨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 인간들을 못 지키는 역할을 하라고 안식이라는 걸로 우리를 초대한 겁니다. 막상 초대해서 안식일 지키는 마당에 와 보니까 아, 우리가 지킨 안식일은 안식일 축도 들지 않는 거예요.

고신 측에서는 주일 지키라고 난리 납니다. 주일 지켜야 된다. 주일 지키고 십일조 두 가지는 반드시 해야 된다. 그렇게 우깁니다. 그것은 완전히 이단이죠. 주객이 반대가 된 거예요. ‘왜 저는 안식일을 못 지킵니까?’ 라고 소멸하는 나를 보지 말고 소멸되지 않는 말씀, 우리를 살려주시는 그분을 봐야 되는데, 기껏 몇 년 살다가 없어질 나에 대해서 아직도 미련과 집착을 갖게 만들어 버려요. 그게 아침에 이야기한 역사와 전통이 손상되지 않는 한 나는 하나님을 믿을 용의가 돼 있습니다. 이거는 그런 믿음을 솎아내기 위해서 사도바울은 난해한 논쟁들을 로마서에다 깔아버렸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이걸 안 보잖아요. 결론만, 결론만, 이러면서 넘어가 버리지, 그 논쟁 속에 끼어들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어요.

마태복음 12장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안식일 이야기하면서 딴 이야기 하는 게 아니고 “너희가 율법을 읽지 못하였느냐,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참, 충격적인 말씀입니다. 제사 지내는 건 법이거든요. 너희들이 법을 지켰다. 그건 안식일 지킨 게 아니라는 거예요. 분명히 안식일 날 제사하라고 분명히 구약성경에 많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너희들은 말려든 거예요. 어떤 의미에서 초청받은 거예요. ‘한번 지켜봐, 지켜봐. 지켜봐.’ 안 되더라 말이죠. 되질 않는 거예요.

‘안식일은 무상으로 자비를 주는 날’로 시작해서 자비를 주시는 분이 누구신가를 그날에 일어나는 그러한 현상을 통해서 연결되도록 그렇게 조치하는 겁니다. 나를 통해서 어떤 분을 만나는 거예요. 나를 통해서! 그날은 어떤 날인가? 내가 나를 살릴 수 있는 어떤 것도 허락지 않는 날, 내가 살려내기 위해서 노동을 해야 되는 모든 것을 중지시킨 날, 강제로 중지시켜서 사는 게 내 힘으로 사는 아니라는 것을 도드라지게 드러내는 날, 그날을 바로 안식일이라고 한 거예요.

그런데 유대인부터 그 후의 사람들은 안식일을 어떻게 지켰느냐 하면 우리가 안식일을 지켰다는 그 노동으로 말미암아 내가 산다. 이렇게 생각한 거예요. 머리 나쁜 사람은 빨리 이야기해서 지금 무슨 이야긴지 못 알아듣습니다. ‘내가 주일을 제대로 지켰다는 내 노동으로 말미암아 내가 사는 거다.‘ 라고 우기는 것이 주일 지키는 것이고 안식일 지키는 거예요. 너는 안식일 못 지켰으니까 너는 저주받을 것이다. 벌 받을 것이다. 이렇게 보고, 상대적으로 안식일 잘 지킨 나는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한 거예요. 이것이 더 이어지면 너는 지옥가게 되고 나는 천국가게 되고, 이렇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주님은 ’네가 바로 지옥 간다. 그 따위 식으로 생각하는 네가 바로 지옥 간다.‘는 거예요.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5장에서 안식일 날 어떤 사람을 일부러 담요를 들고 나가게 만들었어요. 전에 안식일 날 유대인 지키는 거 죽 이야기했잖아요. 그러니까 천국 간다고 안심 푹 놓고 있는 사람이 집중적으로 그 사람을 향하여 공격을 합니다. ‘우리는 천국 가는데 너는 안식일을 어겼기 때문에 네가 지옥 가는 짓을 자청해서 한다.’ 하니까 그 사람이 ‘내가 어긴 게 아니고 어떤 분이 이걸 들고 가라고 하더라.’ ‘누구야? 모세가 정한 안식일을 의도적으로 범하라고 이렇게 부추기는 인간이 누구야?’ 하니까 ‘예수라는 분이 나보고 안식일 날 들고 가라고 했다.’ ‘그럼 그 예수라는 자는 그 사람은 저주받아 마땅하지.’ ‘그런데 그분이 안식일 날 아무 대가 없이 그냥 38년 된 내 병을 낫게 해줬다. 이건 어떻게 설명해야 돼?’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말을 못한 거예요.

저주받아야 되는데, 저주받은 사람이 우리가 하지 못하는 생명을 줬으니까 그러면 예수가 나쁜지, 아니면 우리 쪽이 나쁜지, 둘 중에 한쪽은 가짜가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 바리새인들이 그럼 뭘 지켜야 복 받는다는 것은 이건 예수님 빼놓고 모든 인간이 갖고 있었던 겁니다. 진짜 우리도 갖고 있었던 거예요. 우리 속에서 이단적인 나를 뽑아내는 작업 중에 하나가 바로 하나님의 절기 지키는 겁니다. 네가 한번 지켜봐야 네가 엉뚱한 이단적인 사고방식이 네 안에 가득 들어있다는 것을 아는 거예요.

이건 십일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돈 받고 구원해주는 법이 아니에요. 그런데 십일조를 내라 하는 것은 십일조 하면 할수록 우리는 거기에 대해서 어떤 집착 같은 거, 뭔가 십일조 함으로서 복을 따내는 근거가 될 수 있겠지 하는 이단적인 사고방식이 우리 속에 가득 들어있다는 겁니다. 아구, 우리교회는 그것도 못해, 그것도 할 줄 몰라. 초월했겠지, 초월! 못한 게 아니고 초월해버렸죠, 뭐. 그만큼 많이 했는데 해보고 아무 결과가 없다하면 본인이 아니까 초월한 거죠.

다시 이야기합니다. 절기라 하는 것은 우리들 인간들만 있는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어떤 분이 있는데, 그 어르신이 있는데, 사실은 그분이 우리를 초대하는 방식 하나가 절기 지키라고 함으로써 우리 안에 내장돼 있는 엉뚱한 오물 같은 것을 스스로 볼 수 있도록 그런 기회를 제공하는 겁니다.

출애굽기 23장 14절에 보면 이런 말씀 있습니다. “너는 매년 세 번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 손으로 내 앞에 나오지 말지니라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처음에 보면 유월절, 맥추절, 그 다음에 수장절, 이게 삼종세트예요. 이게 세트가 되는데 하나, 둘, 셋, 이 세트는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장차 예수님의 일대기를 단출하게 삼종세트로 표시한 겁니다. 없는데서 있게 하시고 그것을 완성시켜주고 그걸 저장하시는 요건 그 당시 사람들이나 요즘 사람들도 양식 없이는 못살아요. 양식이란 그 밀알, 보리알을 가지고 예수님이 일대기를 표현할 때 삼종세트 절기로서 표현하는 겁니다.

쉽게 하면 이렇습니다. 너희들과 함께 살지 않는 외부인이, 외곽에 있는 어떤 분이 너를 구원하러 찾아올 것이다. 첫 번째, 그게 예수님께서는 동방박사의 별 따라 왔으니까 외부인이 온 거예요. 거기에서 내부인은 강력하게 저항하죠. 베들레헴 두 살 아래 애들을 다 죽였잖아요. 어쨌든 간에 외부인이 별 따라 오듯이 별처럼 나타나듯이 홀연히 별 따라 어떤 분이 등장했습니다. 그분이 이 땅에서 뭔가 꾸역꾸역 작업을 개시했어요. 심지어 자기 엄마 아빠도 무슨 작업을 하는지 몰랐습니다.

뭐냐 하면 예수님이 어릴 때 성전에서 성전 지키는데 엄마 아빠 손 놓고 성전에 가서 어른들하고 논쟁을 했어요. 그때 사흘 동안 찾아도 못 찾았어요. 얼마나 애타겠습니까? 나중에 보니까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어른들과 논쟁하고 있을 때 ‘얘야 내가 너를 얼마나 찾았는지 아느냐?’라고 하니까 예수님이 ‘내가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것을 왜 어머니는 몰랐습니까? 내 아버지는 당신이 아니고 우리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내 아버지입니다.’라고 어릴 때부터 이야기한 거예요. 그러니 남들이 보면 얼마나 되바라졌겠습니까? 어떤 리틀 싸이 같아. 춤추는 게 어른 뺨치는 것 같아요. 어른들 춤을 지가 왜 춥니까? 미국까지 초청받고, 6살 먹은 애가. 그때 부모가 ‘얘가 커서 어이될라 하노.’ 했잖아요. 그러니 놀라죠.

어떤 부모로부터 결별, 다른 외부인, 이 현지 사람이 아닌 다른 세계 속한 사람, 요한복음 3장에 보면 나옵니다. “너희들은 땅에 속했기 때문에 땅의 말을 하지만 나는 하늘에 속했다. 그래서 나는 하늘의 말만 할 테니까 너희는 그렇게 알아들으면 된다.” 외부에서 오는 거예요. 그건 유월절입니다. 애굽에 없던 것, 애굽에서 맛보지 못한 것, 애굽에서 자라난 방식이 아닌 유월절, 거기 약속의 땅에서만 생산되는 어떤 영생의 양식, 그것을 절기에 담아서 우리는 이 양식을 먹었기에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사실, 새로운 민족이란 사실을 정체성을 일깨워주는 작업을 주께서는 절기를 통해서 하시는 거예요.

그 절기 의식을 뚫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건 바로 양을 잡는다는 겁니다. 피를 낸다는 것, 제사를 드린다는 겁니다. 뭔가 죽음이 죽음 안에서, 죽음 안에서 캡슐을 깨면 죽음이 나오듯이 뭔가 터져야 나온다는 거예요. 우리는 안 터지기 위해서 내 몸 간수하기 위해서 이렇게 보호하는데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 주께서는 터져버렸어요. 그 터져버린 그 캡슐 안에 있던 생명이 우리한테 흘러넘칠 때 우리가 구원받기 때문에 그 캡슐 안에 있는 게 들어오면 감싸 안고 있는 우리도 같이 터져줘야 됩니다. 이 터져주는 그 세미나가 바로 세 번이예요. 유월절, 맥추절, 수장절. 평생 너만 위해서 살다가 이제는 그 절기만큼은 깨져라. 박살나라. 그동안 네가 너 자신을 너무 감쌌다 이 말이죠.

온천에 가보세요. 옷을 입고 못 들어가잖아요. 스웨터 입고 외투 입고 하다가 온천에 가면 다 벗어야 되듯이 우리는 그동안 입어서 그런데 벗는데서 오는 행복감과 자유함, 이걸 우리는 너무 잊어버렸어요. 그걸 너무 놓쳐버렸습니다. 그래서 안식일 날 할 때는 안식일은 안식일 지키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누구십니까? 우리대신 죽어서 무상으로 안식일 지킨 축복을 우리가 했던 것처럼 여겨서 그냥 우리에게 주신 분이 누구십니까?’ 그걸 찾는 거죠.

안식일에 대해서 예를 들면 이러합니다. 마태복음 12:6-8에 보면,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안식일의 진정한 의미는, 사람의 행함으로 얻을 수 없는 자비를, 안식일의 주인으로부터 부여받는 날이라는 겁니다. 구약에서는 어린양의 희생을 통해서 그 면면이 나타납니다. 사람들이 안식일에 ‘제사 드리는’ 행사를 하는 것은 진정한 자비는 자신의 행함에 근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접하기 위함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유월절, 맥추절, 수장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절기를 관통하는 것은 예수님의 일대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외부에서 투입된 분입니다. 기존 세상에 사시던 분이 아닙니다. 이것은 유월절의 취지와 일치합니다. 애굽이 아닌 낯선 세계, 약속의 땅에서 처음으로 이삭이 폈던 것은 순전히 인간의 노동의 대가가 아닌 어린양의 희생 덕분이라는 겁니다.

예수님의 출현이 이런 취지를 품고 있습니다. 맥추절이란 보리의 실열매가 처음으로 실체를 드러내는 시기입니다. 이 날에는 예수님의 진정한 할 일의 내막이 보이는 면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을 개선하고 발전하려 오신 분이 아니라 도리어 이 세상의 진정한 실체, 곧 죽어야 세계라는 것을 드러내시려는 분입니다. 이 맥추절은 유월절 지난 후 50일만의 절기이므로 77절이며 오순절이라고 합니다.

세 번째 절기는 초막절입니다. 이 날은 7월 15일부터 시작해서 일주일간 계속되는 절기입니다. 1년 동안 수고한 모든 곡식을 거둔다고 해서 수장절이라고도 합니다. 이 날은 자신의 전부가 다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날입니다. 따라서 우리 자신의 모든 것이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위해서 존재해야 하는 몸인 것을 고백하는 절기입니다.

오순절은 바로 그 결과가 다 완료됐다는 것을 기념해서 성령님이 오시는 겁니다. 성령께서 더 이상 방향성을 가지고 우리를 질질 끌고 가는 거예요. 성령은 우리를 다른 길로 새지 못하게 하십니다. 항상 주님이 원하신 사람은 원하는 뜻대로 이끄시기 때문에 항상 내 뜻을 보여주면서 네 뜻이 너를 얼마나 망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방식으로 성령께서는 이끄십니다. 그래서 성령께서는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네가 생각하는 기준을 나한테 적용시키지 말라는 거예요. 오직 십자가에서 용서하는 기준만 남고 나머지 모든 법적인 기준은 너한테서 다 떨어져 버려라. 나쁜 짓해서 벌 받는다. 이런 사고방식은 우리의 문신처럼 따라다닙니다. 레이저 광선 쪼여도 이건 없어지지 않아요. 이게 평생 걱정과 고민거리를 낳게 만드는 거예요. 몸에 붙어있는 어떤 거머리 같은 거예요. 계속 우리의 피를 빨아먹어요. 이것 때문에 잠도 자지를 못하고 뜬 눈으로 지샐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에요. ‘바보 같이 내가 그런 말을 해서 아!…그걸 빼는 건데 왜 그걸 해서, 상처받을 텐데 다음 주에 교회 안 나오지 싶은데.’ 설교자는 그런 걸 느껴요.

구원은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찾아오셔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했거든요. 그럴 때 베드로가 ‘주께서 내가 주를 사랑하시는 줄 아십니다.’ 했거든요. 그럴 때 예수님께서 베드로보고 “내 양을 먹이라”고 했다고요. 그게 무슨 뜻이냐 하면 베드로가 ‘나는 예수님을 사랑해.’라는 식으로 양을 먹이게 되면 양을 버린다는 겁니다. 베드로 나는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했는데 그건 사랑 값도 아니고 사랑도 아니더라고 깨는 심정에서 주께서 양을 맡겨주게 되면 그 양은 베드로 양이 안 되고 예수님의 양이 돼요. 왜 자기의 오류와 자기의 잘못을 경험한 것을 양에게 언급하고 이야기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 오늘날 교회가 주님의 양을 하는 게 아니고 목사 자기 양을 하는 거예요. ‘나는 여러분들이 나한테 이런 교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무조건 나한테 잘해주고 나를 존경하고 내 말을 잘 듣는 그런 양을 원합니다.‘라고 그런 양을 생각한 내가 바로 여러분들을 망치게 하는 목자입니다.’ 라는 걸 보여주는 그런 목자, 그것이 바로 뭐냐 하면 베드로야 네가 원치 않는 길로 간다. 이 말이죠. 그 말은 베드로는 자기가 항상 원하는 길로 갈 수밖에 없어요. 우리하고 똑같아요. 아무리 백날 주님께서 설교해도 소용없어요. 돌아서면 내 원하는 길로 갑니다. 그런데 원치 않는 길로 가게 한 것은 외부인 이예요. 예수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우리가 원치 않는 길로 가는데 가보니까 주님이 원하는 길이라. 그 주님이 원하는 길로 그렇게 돼 보니까 우리는 내가 원하는 양이 아니라 주님이 원하는 양으로 어느새 변신돼 있는 겁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이게 바로 기쁜 소식 이예요. 절기 주고 절기 안에 숨어있는 분이 계시고 그 숨어있는 분과 우리 자신의 뜻과 대결시켜서 날마다 우리 뜻이 부정당하고 그 과정을 통해서 주님의 뜻만 오뚝이 서면서 바로 우리가 찾아갈 수도 없는 그 천국 길을 가도록 조치하는 것,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십자가만 바라보고 십자가만 즐거워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절기 지켜라. 그 안에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는 말씀이 함께 함유돼 있는 것을 놓쳤습니다. 절기 지키면 복 받습니까? 절기 지키면 구원받습니까? 내 몸 살리기 위해서 말씀을 이용했던 그 잘못, 여전히 살아있지만 감사하게도 주께서 그걸 꺾어주시고 다 이루었다. 십자가에서 다 이룬 것을 절기로 표현한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잊지 말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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