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의미에 대해서..
법의 의미에 대해서..
이름 : 이영욱(IP:211.208.168.148)
질문 드릴 것이 있습니다.
1. 성경에 나타난 법의 의미는 "죄인임을 알게 하기위함"뿐인지요?
2. 그런데 법을 통해서 죄인임을 알게 하기 위해서는,
법이 규범으로 작용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렇다면 법의 본래적 기능은, 규범이고,
둘째가 그를 통해 죄인임을 알게하는 것 아닌지요?
3. 법이라는 그릇에는 예수님이 내용으로 담겨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제물로 죽임당한 어린양"이라는 표현을 볼때, 그 법안에는 예수님이 내용으로 들어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안식일, 십일조, 절기 모든것이 말이죠.
여기서 질문입니다. 율법이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라고 할때에는,
"정죄의 기능"으로 예수님께 인도하는 것인지
"3번 질문처럼, 율법에 담긴 내용으로서 예수님"을 통해 예수님께 인도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이근호(IP:119.♡.69.144)
13-01-01 18:03
갈라디아서 3:17-18에서 모세의 율법은 아브라함 약속을 구체화하기 위해 개입된 것입니다. 이로서 '아브라함 자손', 그리고 '죄' 이런 개념이 율법 안에 내장되어 있어서 십자가 사건까지 전달되는 겁니다. 그런데 이 개념은 인간이 파악될 수 있는 개념이 아닙니다. 일방적으로 율법이 쳐들어와서 이 세상에 터뜨려버리는 개념입니다. 그 예가 바로 '죄' 개념입니다. 인간들이 죄라고 여기는 것이 죄가 아니라 '사람을 갇혀있는 상태의 개념으로서의 '개념'입니다. 따라서 여타의 철학이나 윤리도 종교에서 언급하는 죄과는 관는 무관한 죄개념입니다. 인간의 파악력 너머에 있으며 중보자의 등장이 아니면 그 본질이 밝혀지지 않는 죄개념입니다. 따라서 '몽학선생'이란 이미 예수님에게 이끌림을 받은 성도에게만 적용할 수 있지, 그렇지 않고 율법 자리에서 예수님에게 나아가고자 해서 이해되는 개념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율법 자리에서 모든 것을 왜곡할 뿐입니다. 메시아나 율법 개념까지 다 왜곡시키게 됩니다. 죄 안에 갇힌 모양새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몽학선생'이란 예수님의 중보직의 일환으로서 파생된 율법 기능입니다. 율법을 통해서 일단 죄를 깨닫고 난 뒤에 추가적으로 예수님의 사죄하심을 덧붙인다면 누구나 구원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개념이 아니라 예수님만이 약속된 분임을 나타내는데 있어 율법 및, 율법을 받았던 이스라엘마저도 동원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개념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율법과 죄 안에 계속 갇혀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것을 열어주는 능력은 오직 예수님에게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말합니다.
이영욱(IP:211.♡.168.148)
13-01-01 19:48
그렇다면 "율법이 탐내지 말라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했으리라"는 위의 관점에서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이근호(IP:119.♡.69.144)
13-01-02 09:05
이미 탐심이 인간을 장악했고 율법은 인간을 건드려서 그 탐심을 구체화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십계명 뿐만 아니라 사도의 모든 권면과 훈계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선한 율법에 대항하는 세력 속에서 인간이 잠겨 있었던 겁니다. 따라서 개혁주의신학이란 인간을 속이는 악마의 술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개혁주의신학을 주장하는 사람은 그것이 곧 십자가 복음을 가리기 위한 죄의 또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신학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한국교회는 종교운동을 200년 가까이 이 땅에서 펼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나 성당이 곧 이단이라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