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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12 대구강의 24] - [피 85] - 양 창조강의[피]

[12 대구강의 24] - [피 85] - 양 창조

이름 : 구득영(IP:203.223.97.152)

[12 대구강의 24] - [피 85] - 양 창조

12,12,17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오늘은 교재 257페이지부터 살펴보자.

** 목자가 되시는 예수님께서는 창세 전에 아버지와 약속하신 대로 언약을 완수함으로서, 이 우주는 새 언약의 체제 안에 자리잡게 되었다. 모든 것이 예수님의 피와 공로를 증거하는 재료로서 총동원이 된 상황이라는 말이다.

◈ 창조인가? 방치인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방치한 것이 아닌데, 즉 "내가 너거들을 창조했으니, 이제부터는 너거들이 알아서 해라" 라고 하신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했을 때는 이미 우리 인간 안에 하나님의 요소가 담겨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인고 하니, 그 하나님의 요소가 우리 인간과 정상적으로 서로 같이 가면 참으로 좋겠는데, 그런데 우리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의도와, 범죄를 하고 난 다음의 우리 인간의 의도가 맞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단순히 맞지 않다는 차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과 악마의 전쟁이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으로 결정이 나버리는, 그러한 실체가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여자의 후손도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는 파악이 되지 않고, 그리고 악마도 우리가 의식하지 않는데, 그러니 그것도 역시 파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결국에는 어떻게 되는가? 하나님의 약속의 재료가 우리인데, 그런데 그 우리가 예수님도 파악하지 못하고 악마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는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어디로 가며, 무엇을 위해서 태어났으며, 왜 살아야 되는지 말이다. 그리고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 욥이 상상한 하나님은?

구약의 욥기의 경우에, 욥에게 고난의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사건은 결코 자기가 원해서 일어난 게 아닌데, 그렇다고 욥의 친구들이 고난을 준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러니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런 일들이 자기에게 일어났는지 욥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욥기에서 제일 난해한 것이 무엇인고 하니, 욥은 "하나님이 계시고, 그 하나님이 나에게 고난을 주었다" 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욥이 상상한 하나님이고, 진짜 하나님은 무엇인고 하니, 그런 고난을 통해서 이쪽 하나님과는 다른 쪽의 숨어있는 하나님으로, 즉 이렇게 점선으로 되어있는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욥의 경우에는, "이렇게 하나님이 계시고, 나는 하나님을 위해서 자식들이 죄를 짓지 않도록 기도했습니다" 라고 생각해서, 자꾸만 하나님에게 따진다는 말이다. 즉 "하나님, 우리 사이는 그러한 사이가 아닌데, 왜 자꾸만 이런 일이 생기게 하십니까?" 라고 한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욥에게 그러한 고난을 주신다고 하면, 굳이 자식을 그렇게 죽일 이유가 없는데, 아예 처음부터 자식을 주지 않으면 된다는 것이다. 욥을 부자로 만들지 않아야 하고 말이다. 그러니 처음에는 좋게 나갔다가 갑자가 그 사이가 돌변한 것으로, 욥은 그렇게 느낀다는 것이다.

◈ 우리 그만 헤어지자 ??

남녀간에 있어서 서로가 사랑하는 사이라고 한다면,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인가? "우리 헤어지자" 라는 것인데, 그것은 남자나 여자도 다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것도 그러한 낌새를 미리 보인다면 마음에 준비라도 할 수 있는데, 그것이 아니고 갑자기 그런 소리를 한다면, 즉 꽃게장 집에서 밥을 먹으려고 만나서 졸지에 헤어지자고 하면, 정말로 황당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선인장에 물을 주었는지 주지 않았는지, 그것 때문에 부부싸움을 하다가 그만 열을 받아서 불쑥 한다는 말이 "우리 이혼해" 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것이다. 지금 논지는 그것이 아닌데 말이다. 여러분은 이런 것이 실감이 나지 않을지 모르겠는데, 목사들의 경우에는 많이 느끼는데 말이다.

예를 들어서, 주일 낮에 점심을 먹다가 "오늘 식사당번이 누구인지 몰라도 조금 싱겁네요" 라고 하면, 그 사람이 뭐라고 하는가? "나는 이 교회에 안 나온다"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얼마나 황당한지 모르는데, 지금까지 자기가 교회에 나와서 들인 공이 얼마인데, 새벽기도도 그러고 말이다. 그런데 그런 것을 가지고 그만 헤어지자고 한다는 말이다.

◈ 욥이 만들어낸 하나님 안에 욥 본인이 !!

바로 이러한 것을 하나님께서 하셨는데, 그래서 욥의 경우에도 노골적으로 이야기하면, "욥이 만들어낸 하나님 안에 본인이 들어있다" 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욥은 하나님과 좋은 관계라고 여겼는데, 왜냐하면 자기가 그렇게 편하게 믿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런 까칠한 믿음이 아닌 편안한 믿음 안에 있는데 갑자기 고난이 오게 되니까, 그러니 결국 그 하나님은 미지의 점선으로 되는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러한 하나님은 무엇인가? 이러한 고난을 통해서 진짜 하나님을 새롭게 찾아가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 고난을 통해서 진짜 하나님을, 그게 곧 '목자와 양' !!

오늘날 모든 인간들이 이미 하나님을 알고 있는데,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욥에서 고난을 주신 것과 똑같은 것인데, 참으로 황당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요한복음 10장에 나오는 목자라는 말이다. 그게 오늘 교재 257페이지에도 나오는데 ,즉 '목자가 되시는 예수님께서는' 라고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목사는 단순히 양을 친다고 하는 개념을 가지고는 요한복음 10장의 죽으시는 목자의 개념이 나올 수가 없다는 것이다. 목자가 양을 친다고 하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인데, 그렇다면 목자가 양을 알고, 양은 목자를 알고, 그러면 무엇이 문제냐는 것이다. 여기에 논리적으로 무슨 특별한 하자가 있는가?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목자라고 하셨는데, 그러면 우리는 양이 되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방금 어려운 말을 했는데, 무슨 말인고 하니, 예수님이 목자라고 하면 우리는 양이 되면, 그러면 그 목자의 그 양이 될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점을 끊어버리는데, 즉 우리는 양이 될 수 없고, 예수님이 목자가 되어서 양이 되게 할 때만 양이 된다는 것이다.

◈ 다윗의 자손이 목자가 될 것이다 !!

바로 이것을 유대인들이 알아듣지 못하는데, 왜냐하면 에스겔서에 보면, "장차 다윗의 자손이 오는데, 그분은 우리의 목자가 된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즉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의 이름으로 오시는데, 그분이 목자가 되어서 오신다는 말이다. 에스겔서에 그게 나와 있으면, 유대인들은 무엇만 준비하면 되는가? 자기들은 이스라엘이란 사실만 유지하게 되면 자동적으로 양이 된다고 여겼다는 것이다.

(겔 34:23) 내가 한 목자를 그들의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
(겔 34:24) 나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내 종 다윗은 그들 중에 왕이 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무슨 말인고 하니, 이것 전체가 이스라엘인데, 이 이스라엘에는 다윗이 있었고, 에스겔서에서 약속한 다윗의 자손이 목자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에스겔 당시의 그 당시 이스라엘은 어떤 상태인고 하니,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서 나라가 완전히 다 해체가 되고, 백성들도 모두가 다 뿔뿔이 헤어져야 하는 상태이라는 것이다. 그때 단지 그들이 믿을 것은, 에스겔에게 주신 하나님의 계시인 예언의 말씀밖에 다른 것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주어진 계시의 말씀에 의하면 이스라엘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인데, 즉 완전히 깨어진 것이 아니라 새로운 언약이 오는데, 그것은 다윗의 자손이 오셔서 흩어진 자기 세력을 새롭게 다시 모은다는 것이다. 마치 조폭들의 세계에서, 동성동파와 장충동파가 서로 싸워서 완전히 박살이 나면, 나중에 5년 뒤에 감옥에서 나오게 되면 두목이 흩어진 자기 세력을 다시 규합하듯이 말이다.

◈ 왜 우리는 포로로 잡히고 심판을 받아야 하는가?

그렇게 이 목자와 양은, 그냥 양이 아니고,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같은 뜻인데 말이다. 그렇게 먼저 흩어진 양을 모으고, 혹은 신약의 예수님에 의하면 잃어버린 양을 모은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고 하니, 사람들은 포로로 잡혀가서 살아가는 것이 힘이 드니까, "빨리 목자가 와서 자기들을 원상복귀를 시켜주면 참 고맙겠습니다" 라고 여기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여기에 무엇이 빠지고 없단 말인가? 자기들이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하나님으로부터 포로로 잡히고 저주를 받고 심판을 받아야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사람들이 입을 다물고 새까맣게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 대해서 말이다.

◈ 그냥 천국에 보내주이소 !!

복음을 전하는 목사님들이 제일 답답한 것이 무엇인고 하니, 교인들이 교회에 와서 뭐라고 하는가? 자기들은 바쁜 시간을 내어서 교회에 와주었으니, 다른 소리는 하지 말고 그냥 천국에 보내달라고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무엇이 빠졌는가? 자기들이 왜 이런 저주를 받은 땅에서 살다가 지옥에 가야하는지, 그 이유를 본인에게서 찾아야 하는데, 하지만 자기에게 그런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권사님들이 하는 말이 있는데, 출발점을 아무리 복음에서 시작해도, 자기가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으니,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복음이 전혀 먹혀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먹혀들어도 별 소용이 없는데 말이다(ㅋㅋ). 즉 "이런 바쁜 시간에 교회에 나왔으니, 그 건전하고 대견한 나를 구원해주어야지 그게 봉사하는 교회의 모습이 아닌가?"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물론 바리새인들은 이것보다는 훨씬 더 나은데, 즉 "우리가 이렇게 고생한 것은 의미가 있는데, 그것도 다 메시야를 고대하고 기다리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고 스케줄이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교인들은 그런 수준도 전혀 아니라는 말이다. "이렇게 바쁜 시간을 쪼개서 나왔으니, 죽으면 천당에 넣어달라. 그게 당신의 주특기가 아닌가?"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죽는 것은 겁이 나는지 말이다.

◈ 성경말씀이 아니라면 !!

그러니 목사의 입장에서는 무엇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고 하니, "왜 우리는 이렇게 고생을 하는가?" 라는 점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그게 목사의 자기 경험이 되어서는 안 되고, 창세기 2장과 3장에 나오는 성경말씀을 언급해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자, 창세기 2장을 봅시다" 라고 하면서 이야기를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자기가 사랑을 받기 위해서 교회에 나온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그런 것은 옛날 이야기라는 것이다. 즉 아담이 있었다는 것도 과학의 진화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고, 7일만에 천지를 만들었다는 것도 역시 과학적으로 전혀 맞지 않고, 그리고 가인이 결혼했다는 것도, 그때는 사람이라고는 아담과 하와밖에 없다고 하는데, 그러면 가인이 어떤 여자와 결혼을 했는지,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노아의 홍수의 경우에도, 그때 쥬라기공원의 그 공룡이 죽었는지도 알 수가 없으니 믿을 수가 없고,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이 결혼을 했다고 하는데, 그것도 전혀 알 수가 없고 말이다. 그런 식으로 하나하나 따지게 되면 옛날 동화보다도 더 못한 이야기가 되어서, 그런 것을 일체 자기와 결부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저히 결부시킬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그래도 유대인들의 경우에는, 과거의 에덴동산 정도는 믿었지만, 현대인들은 그런 것도 전혀 믿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현대인들은 사도행전의 말씀처럼, 성령이 오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교양을 쌓기 위해서, 도를 닦으려고, 평생을 술만 먹고 나쁜 짓을 너무나 많이 해서 개과천선을 하기 위해서 교회에 나오고 성경을 연구하는데, 하지만 그런 짓을 아무리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 인간은 아담 한 사람으로서 충분해 !!

예수님이 목자라고 하는 의미는,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속에 무엇이 있음을 그대로 보여주는고 하니, 과거 아담이 하나님을 배신했던 그 속성이 노골적으로 이스라엘 속에 계속해서 눅눅히 흐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 흐름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계속해서 흐르고 있고 말이다.

인간은 아담 한 사람으로서 충분한데, 여자는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역시 아담에 속한 것이고 말이다. 수십 억의 인구를 하나로 모으는 이유는, 하나님의 약속이 개개인마다 다르게 적용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즉 "니는 공부를 못하니 이 원리로 구원을 받고, 또 니는 공부를 잘하니 저 원리로 구원을 받아라" 라는 것은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그런 것에 전혀 상관이 없이 모두가 동일한 방식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 말이다. 동일한 방식, 즉 예수님의 피로서 구원을 받는데 차고 넘친다는 것이다. 동일한 방식으로 말이다.

물론 꼬드기려고 하면 이런 방법, 저런 방법이 모두 다 동원이 되겠지만, 교회에 나오는 것을 꼬드겨도, 천국에 가는 것은 결코 우리의 소관이 아니라는 것이다. 교회에는 친구의 우정으로, 의리 때문에 나올 수 있는데, 하지만 그런 식으로 제 아무리 수 천명을 모아도, 구원은 이미 목회자의 소관을 떠난 문제라는 것이다. 사도바울이 오고, 12제자가 다 와도 안 되는 것은 안 된다는 말이다.

천주교에서는 혹시 그것이 될까 싶어서 중요한, 소위 성인(聖人)들의 리스트를 만들어서, 그래서 천주교의 명절은 전부가 다 성인들의 제삿날인데, 무슨 무슨 축제일이라고 하면, 심심하면 논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가 뭔가 잃어버린 탕자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확인해줄 수 있는 환경은 없다는 것이다.

◈ 목자이신 예수님께서 양을 만들 때는?

그래서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생각하면 되는데, 즉 예수님은 목자인데, 양을 만들 때는 무엇인고 하니, 과거 에덴동산에서 타락했던 것을 우리 인간들이 거부하는데, 즉 타락하고 난 다음에는 그것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나는 타락하지 않았습니다" 라고 말이다. 마치 나쁜 짓을 할 때는 심장이 두근두근했는데, 그런데 그것을 하고 난 다음에는 어쩔 수가 없다고 담대하게 말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시는고 하니까, 먼저 그 인간을 보고 독촉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갚아라" 라고 하면서 말이다. 환경을 그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의 본색을 드러내도록, 마치 먹구름이 슬그머니 오듯이 말이다. 그렇게 슬그머니 우리 주변의 모든 사항을 포섭한다는 것이다.

◈ 외삽과 내포 !!

그것을 어려운 말로는 '외삽' 이라고 하는데, 그 반대말은 '내포' 라고 할 수 있고 말이다. 그러니 이 외삽은 그 덩어리가 보이지 않도록 전체를 다 덮는 것이란 말이다. 일전에 김장을 할 때 권사님께서 먼지가 들어간다고 비닐로 덮었는데, 그게 곧 외삽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김장을 할 때 안에는 넣은 속은 내포이고 말이다.

우리는 창세기 3장의 그 타락한 인간임을 거부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강력한 악마가 우리의 외삽이 되고 내포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속에는 일곱 귀신이 들었고, 바깥에는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거리가 가득한데, 혹은 돌이 떡이 되게 하고 인기를 얻고 세상의 영광을 얻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그것이 곧 보람찬 인생인데 말이다.

그러니 우리를 안과 밖으로 뒤덮어 씌워서, 그것을 에베소서 2장에서는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라고 하면서, 곧 무엇의 자식이라고 하는가? 어둠의 자식이고 한다는 것이다. 법이 없어도 살아갈 착한 사람을 보고 어둠의 자식이라고 하면 얼마나 화가 나겠는가?

바로 그러한 불순종의 자녀들인 우리들을,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큰사랑으로 죽은 우리들을 살리시고 일으켜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늘에 앉히셨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수 백 시간을 이야기해야 하는 것을 사도바울이 압축에 압축을 해서, 그 짧은 몇 문장 안에 다 집어넣어 놓았다는 것이다.

(엡 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엡 2: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엡 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엡 2:4)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엡 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엡 2: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엡 2: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엡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로이스 존스 목사님은 이 에베소서 강의를 하면서 '영적승리' 라는 책에서, 이 짧은 문장을 가지고서 무려 600페이지에 이르는 책이 될 정도로 설명을 해놓았다는 것이다. 그것을 제가 신학교 1학년 때 보면서, "설교라는 것이 교인들에게 감동을 주려고 말로 때우는 것이 아니구나. 말씀 속에 들어있는 것을 다 끄집어내어야 하는구나" 라고 느꼈다는 것이다. 그렇게 끄집어내니 한 문장을 가지고 설교를 하는데 무려 6개월을 간다는 말이다.

◈ 교육도, 협박도 안 돼 !!

우리가 이제 외삽과 내포를 알았는데, 만약에 우리가 "똑바로 해. - 알겠습니다. 잘하겠습니다" 라고 하면, 그것은 악마가 없이 독자적으로 있을 때는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악마에 의해서 안과 밖이 모두 점령을 당한 상태에서는, 즉 이 세상 신이 복음을 가리고 있는 입장에서는, 우리에게 잔소리를 한다고 해서 우리가 정신을 차릴 입장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교육을 제대로 받아서 구원을 받는 법은 없다는 말이다. 협박을 해도 안 되고, 동정해서 돈을 줘도 안 된다는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전혀 우리 소관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아버지께서 내게 주지 않으면 아무도 올 수 없다" 라고 하셨는데, 그래서 예수님이 교육하고 제자들이 교육해도 그들을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즉 보기는 보아도 깨닫지 못한다는 말이다.

(요 6:65) 또 가라사대 이러하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다시 말씀을 드려서, 목자라고 하는 것은, 그냥 "양이 될 사람은 손을 들어봐" 라고 하는 게 아니라, 목자가 목자가 되는 것은, 양을 양이 되게 하시는 분만이 진짜 목자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고 "여러분은 양입니다" 라고 한다는 것은, 양의 가죽을 벗겨먹는 가짜 목자라는 것이다. 즉 사기꾼이고 도둑놈들이라는 것이다.

◈ 위험, 접근금지 !!

저는 오늘 아침에 뉴스를 보면서 참으로 가슴이 아팠는데, 우리교회를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게 무엇인고 하니, 충청북도 청원군의 어느 마을의 논에 큰 구멍이 하나 생겼다는 것이다. 원인을 알고 보니, 땅 속에 석회질의 광맥이 있어서 그것이 무너지면서 그렇게 되었다는 말이다.

일제시대에 팠던 것인데, 그 뒤에 그만 계속해서 땅속이 무너져서 그렇게 큰 구멍이 생기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거기에다가 "위험, 접근금지!" 라고 커다란 팻말을 붙여놓았는데, 그런데도 그 39미터의 구덩이에 빠진 것이 있었는데, 그게 과연 무엇이겠는가?

저는 그것을 보고 너무나 마음이 쓰렸는데, 아무리 위험하다고 표시를 하고 거물을 치고 해도 빠진 것들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야생동물인데, 왜냐하면 이 야생동물들은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위험하다고 글을 적어놓아도 전혀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 예수님인가? 예찬이인가?

이와 마찬가지로, 성경말씀으로 복음을 아무리 설명을 해도 교인들이 알아듣지를 못하는데, 즉 들어가서는 안 될 곳을 마구 간다는 것이다. 그렇게 그쪽으로 가버릴 때 목사는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 모르는데, 어떻게 성경말씀을 그렇게 알아보지 못하느냐는 말이다. 같은 글자인데 말이다. 그렇게 복음을 알아듣지를 못하니, 자꾸만 엉뚱한 곳으로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성경말씀은 예수님을 증거한다고 성경 자체가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성경말씀을 가지고 자기 집안이 잘되고 자식이 잘 되는 것으로, 즉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니 정성을 다하면 복을 받는다고 하는, 그런 엉뚱한 길로 접어든다는 것이다. 악마가 파놓은 구덩이로 말이다. 그러니 아무리 십자가를 가지고 "경고, 접근금지!" 라고 해도, "나도 그 복음을 안다" 라고 하면서 그 구렁에 다 빠지고 만다는 것이다.

(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것만 생각하면 그야말로 환장할 노릇인데, 무슨 야생동물도 아니고 말이다. 스트레스를 받아서 자기 인생만 무거운데, 자기가 자기를 구원하려고 하니, 그 수렁에서 빠져 나올 수가 없다는 것이다. 어제도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헬륨가스가 들어가야 하는데, 그런데 그게 없으니 자기 몸을 자기가 들어서 나오려고 하니, 지옥 구덩이에서 도저히 탈출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 거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나도 안 돼 !!

지옥에 간 부자도 그것을 아는데, 그래서 자기를 빼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물이나 몇 방울 찍어달라고 한다는 것이다. 자기도 이미 건너갈 수 없다는 것을 안다는 말이다. 그렇게 진작 알았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예수님은 그것을 두고 뭐라고 하시는가?

부자는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나서 이야기하면 동생들이 잘 알아들을 겁니다" 라고 하는데, 그러나 예수님은 "아서라, 말아라. 죽은 사람이 살아나도 안 된다"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성경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은, 나사로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서 이야기해도, 그것을 믿지 못하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죽었다가 살아난 그 기적보다도, 더 놀라운 기적이 여기 이 성경말씀에 함유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외삽과 내포, 즉 자기가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외부를 바라보는 그 안목 자체가 성령님에 의해서, 예수님에 의해서 새롭게 구성이 되고 조정이 된다는 사실을 눈치를 채고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술을 끊고 담배를 끊는 게 문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근원적으로 뭔가가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을 말이다.

◈ 우리 인생은, 죄가 발현해서 만든 종기 !!

다시 말해서, 자기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죄인이라는 것을, 그동안 살아온 모든 것도 죄의 뾰로지, 즉 죄가 발현해서 만든 종기에 지나지 않는, 그런 흔적들이라는 것이다. 그야말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거리가 온 세상을 완전히 도배를 했는데, 그러니 거기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튀기신 그 피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일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그러니 목사가 되어서 목회를 하겠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게 아니라, "같은 동기인 저 목사는 교회당을 고딕체의 빨간 벽돌로 저렇게 잘 세웠는데, 나는 지금 지하실에서 전세로 이게 무슨 꼴이고?" 라고 하면서, 그런 것을 바라본다는 말이다.

그러니 그 입에서, 전문용어로 '주디' 라고 하는데(ㅋㅋ), 거기에서 나오는 모든 소리가 사람들을 완전히 구덩이에 다같이 빠지게 만다는 것이다. 주의 일을 방해하면서 한 명이라도 더 더욱 지옥백성으로 만드는 짓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그래도 주의 종을 너무 부정적으로 말하면 안 되지요" 라고 하는데, 자기에게 하는 이야기인 줄 모르고 말이다.

◈ 목자는 죽었다 !!

그러면 목자가 되시는 분이 마치 창세기에서 선악과를 심어놓고 "이 선악과를 따먹을래? 말래?" 라고, 그렇게 시험하는 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요한복음 10장에 보면, "목자는 죽는다" 라는 것이다. 아주 간단한 공식인데, "예수님은 목자다" 라고 백 날을 해도 소용이 없고, "목자는 죽었다" 라는 것이다.

이사를 하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라는 시편 23편의 말씀을 현판으로 만들어서 집들이 선물을 하곤 하는데, 그런데 그것이 무슨 의미인가? 그것이 무엇에 근거한 것인고 하니까, "목자는 이 말씀을 위하여 죽었다. 따라서 니가 그 죽음 속에 들어와야만 한다" 라는 것이다. 즉 그 죽음 안에서 비로소 목자는 양을 알아보고, 양도 목자를 알아본다는 것이다.

(시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 23:2)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시 23: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시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 23: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시 23:6)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그렇게 "나는 죽어 마땅합니다" 라고 했을 때, 즉 성전에서 감히 얼굴을 들지도 못하고 "주여, 제가 죄인입니다" 라고 하면서 고개를 숙이고 기도하고, 반면에 바리새인들은 얼굴을 빳빳이 쳐들고 기도하고 말이다. 물론 일부러 얼굴을 숙이고 기도하면 안 되고 말이다(ㅋㅋ). 아무튼 그렇게 자기 얼굴을 죽은 자의 얼굴, 즉 저주받은 자의 얼굴이라고 간주할 때, 그럴 때 비로소 목자의 죽으심으로서 매치가 된다는 것이다.

◈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해주신 것의 반복 !!

요한복음 10장 14절과 15절의 말씀이 신학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구절인데, 즉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는 그 모든 것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해주신 모든 것의 반복이라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성령을 주셨다면, 성령을 주신 그것으로 목자가 양에게 성령을 주게 되어있다는 말이다.

(요 10:14)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요 10: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 오직 아버지께서 다룬 방식으로만 !!

그러니 성령은 그 용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어떻게 다루셨는지, 다룬 그 방식대로만 예수님께서 자기 양들을 다루신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다룬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주님, 주님!" 이라고 하는 것은 전부가 다 사기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면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어떻게 다루셨는가? 예수님 중심이 아닌 아버지의 뜻, 즉 말씀중심으로, 말씀을 말씀이 되게 하는 쪽으로만 예수님을 다루셨다는 것이다. 그러니 예수님의 입에서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게 하옵소서" 라고 하는 고백이 나오는 것은, 그것은 전부가 다 성령께서 역사한 결과라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동일한 성령이 우리에게 주어지게 되면, 즉 우리가 성령의 인(印)을 받았다고 하면, 어제 인두로 찌진 문신 이야기를 했는데, 그렇게 성령의 도장을 받게 되면 우리는 우리의 뜻이 있더라도,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게 하옵소서" 라고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도 입술에 발린 소리가 아니라, 예의상 하는 멘트가 아니고, 정말로 진정성이 있게 말이다.

그러한 것에 자기 목숨을 거는, 그래서 "아버지의 뜻이라면 죽어도 좋아" 라고 하는 것이 사도들이란 말이다. 그때 사도들은 성령에 충만했는데, 스데반 집사처럼 말이다. 스데반에 그렇게 성령에 충만해서 돌에 맞아 죽었는데, 그러니 그것은 자기의 뜻이 아닌데, 그래서 "아버지의 뜻만 나에게 이루어진다면, 나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라고 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니 목사가 교인들에게 그런 것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인데, 그것은 오직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지, 목사가 심방을 가고 기도를 해준다고 해서, 그렇게 공을 들인다고 해서 그런 것을 기대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즉 "내가 저 집사를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말이야" 라고 말이다. 그런데 만약에 그 집사님이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게 하옵소서" 라고 나온다면 그야말로 감동의 도가니가 되는데,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 것도 어쩔 수가 없다는 것이다.

◈ 사람의 능력이 아니무니다 !!

어제 오후시간에 집사님이 설교를 하는데, 얼마나 감동이 오던지, 다음에는 설교를 시켜야 되겠다고 여겼는데 말이다. 온 몸이 다 망가져서 곧 돌아가실 분인데, 그런데도 주님과 성령의 관계를 제대로 알아서 기도를 하신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 "나는 이미 죽은 몸이니, 체면이고 뭐고 다 버리고 있는 그대로 이야기할 거야. 기도를 잘하고 못하는 게 문제가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들었지 싶다는 것이다.

그래도 제가 그분을 공개적으로 칭찬할 수가 없었는데, 왜냐하면 광주에 있는 김을수 집사님이 하는 말이 있다는 것이다. "목사님은 칭찬만 하면 그 사람은 망합니다" 라고 한다는 말이다(ㅋㅋ). 그래서 할 수 없이 속으로만 되새겼는데, 그것은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는 것이다.

산을 옮기는 기적을 바다 속에 빠진 산의 숫자를 헤아려서 아는 것이 아니라, 그것보다 더 힘든 것이 사람이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인데, 그런데 그것을 죽기를 기다렸다가 확인하는 게 아니라, 지금 살아있을 때부터 자기가 이 세상을 보는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몸이 아프면 누군가가 와서 기도를 해주면 참 좋겠다고 여기는 것이 우리 보통 인간들의 상식이고 욕심인데,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 "죽어도 좋습니다" 라고 하는, 물론 그것이 위장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우리의 소관은 아니고 말이다. 아무튼 그런 것이 성령의 역사로서 천국의 모습을 눈으로 직접 목격하게 되니, 그런 감격이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다.

◈ 잡혀가는 것도 기적 !!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분명히 내 때문에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잡혀갈 것이다" 라고 하셨는데, 기적은 바로 그때부터라는 말이다. 그러니 잡혀가는 것도 이미 기적에 포함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잡혀가는 것도 말이다.

(마 10:22)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마 10:23)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가 살아보려고 아부하고 굽신굽신한다든지, 아니면 우리가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게 때, "그것은 너희들이 아니라, 너희 속에 있는 하나님의 영, 즉 성령께서 너희들을 통해서 말하게 될 것이다" 라는, 그러니 우리가 미움을 받고 잡혀가게 하는 상황도 누가 만든 것이란 말인가?

◈ 나를 마음대로 조정하는 분이, 도대체 누구야?

성령께서 우리를 질질 끌고 다니시면서 그렇게 하셨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속에 성령이 있음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비로소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되는데, 즉 "내가 누구인가?" 라는 것은 의미가 없고, "내 안에 누가 계시는가?" 라는 게 바로 우리 자신의 존재의미가 된다는 것이다.

다시 강조해서 말씀을 드리지만, 자기 안에 누군가가 계신다고 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러니 자기만 딱 따로 분리해서 "나는 어느 정도 입니까?" 라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자기가 어느 정도로 괜찮은 존재인지 묻는 것은 말이다. 그러니 "도대체 누구야? 내 안에서 나의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내 인생을 끌고 가시는 분이 누구야?" 라는 고백이야말로 그동안 자기가 몰랐던 자기 자신의 진면목이라는 것이다.

또한 그분이 우리 안에서만 역사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 안에 성령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바깥 상황도 역시 조정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한복음 10장을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양이 아닌 자는 절대로 나를 목자라고 고백할 수 없다" 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10장을 다시 보자.

(요 10:14)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요 10: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요 10: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요 10:17)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요 10: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예수님에게는 버릴 권세도 있고 취할 권세도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양이 양으로서 출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양의 구원을 위해서 목자가 있는 것이 아니고, 목자가 어떤 분인지를 이 세상에 펼치기 위해서 양이 되기 싫어도 양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 천국과 지옥은 !!

어제 오후설교를 하면서 잠시 은혜를 받은 것이 무엇인고 하니, 사람을 죽여도 지옥에 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지옥은 그런 곳이 아니라는 말이다. 지옥은 자기 마음대로 갈 수 있는 곳에 아닌데, 사람을 백 명을 죽였다고 해서, 그런 죄를 지었다고 해서 가는 곳이 지옥이 아니라는 말이다. 천국이든 지옥이든, 지옥이든 천국이든, 자기 마음대로 자기 집처럼 들락날락할 수 있는 데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옥과 천국은 우리가 죄를 짓는 것과는 상관이 없이, 목자가 지옥에 넣어주면 지옥에 가고, 천국에 넣어주면 천국에 간다는 것이다. 그런 목자의 목자가 되심을 증명하기 위해서 우리는 양으로서 각자 각자 이 땅에서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무엇을 걱정한다는 말인가?

성령을 받은 사람은 이것저것을 따지고 걱정할 이유가 없는데, 사도바울이 자기의 죽음을 걱정한다고 하면 사도의 역할을 감당할 수가 없는데, 1차, 2차, 3차 전도여행을 한다고 마케도니야를 비롯해서 온 사방을 다 돌아다녔는데, 그때 "제발 살려주세요!" 라는 소리를 했다고 하면 되겠는가? 오히려 자기는 날마다 죽는다고 했다는 말이다. 주님께서 일을 그렇게 시켰다는 것이다.

◈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은 !!

그래서 사도바울이 편지의 제일 앞부분에서 뭐라고 하는가? "그리스도 예수의 종 된 바울은!"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게 예의상 하는 멘트가 아니고, "니가 모르는 세계에 내가 속했다" 라는 의미인데, "니가 나의 사도됨의 의미를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심정으로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나에게 임한 은혜가 너에게도 임하기를 원하노라" 라고 하는데, 이것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다. 즉 동일한 은혜의 같은 질서 속에 있다는 말이다.

(고전 1:1)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과 및 형제 소스데네는 …
(고전 1: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계속해서 교재 258페이지를 보자.

** 십자가 복음에서는 거룩한 피가 나오고, 그 거룩한 피를 위한 존재가 될 피조물만 새로운 피조물답다. 이런 복음증거가 담겨있지 않은 피조물은 원래 하나님이 원했던 그 인간이 아니라는 판정을 받는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행하시는 심판이다.

(고후 5:9)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고후 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고후 5:11) 우리가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을 권하노니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워졌고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워졌기를 바라노라

그러므로 우리가 살고 죽는다는 것이 우리의 본질을 전혀 변경시킬 수가 없는데, 즉 우리의 자리를 전환시킬 수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던 죽던 간에,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면, 그것이 곧 우리의 목숨보다도 더 앞선 것이라는 말이다.

계속해서 교재를 보자.

** (마. 법과 피) - 십자가에서 눈을 돌리게 되면, 인간은 자기 내부에 자리를 잡고 있는 규칙을 붙잡게 되어있다. 법이란 경계짓기이다. 법은 경계선을 만든다. 나와 너의 경계를 법을 가지고 지정한다.

◈ 법과 피 !!

여기에 '법과 피'가 나오는데, 이것을 어제 주일 오전시간과 오후시간에 잠깐 언급을 했는데, 설교가 너무 길어지면 곤란하니 말이다. 여기서 이 '법'에 대해서 좀 이야기를 해보면, 우리가 편지를 보낼 때, "내가 저 사람에게 편지를 보냈다" 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은, 안과 밖으로 다 법이 있다는 것이다. 외부와 내부에 다 말이다.

아담의 경우에도 처음부터 법이 있었는데, 아담 외부에는 선악과를 따먹으면 절대로 안 된다고 하는 법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도 참 어려운데, 한번 적어보면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따먹어서는 안 된다" 라는 것인데, 그것이 곧 아담, 즉 인간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아담은 어떻게 했는가? 악마의 유혹을 받아서 위치를 그만 바꾸고 말았는데, 즉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따먹어서는 안 되는 게, 인간이다" 라는 것을 어떻게 바꾸어버렸는고 하니, 그것을 그만 "인간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따먹어서는 안 된다" 라고 보았다는 것이다. 종속되어있던 인간을 앞으로 내세우고 말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우선이 아니라 말씀이 우선인데, 이번 대통령 선거에 나온 문재인과의 차이점이 그것인데 말이다. 문재인은 "사람이 우선이다" 라고 했는데, 그게 아니라 말씀이 우선이고 거기에 사람은 종속이 되어야, 그게 곧 인간이라는 것이다.

◈ 사람이 우선이다 ??

그래서 고린도전서가 아닌 골로새서 1장 16절에 보면 뭐라고 하는가? 모든 피조물들은 누구를 위하여 만들어졌다는 것인가? "만물에 그에게서 창조되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말이다.

(골 1:16)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골 1: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렇다면 예수님이 인간을 만들 때 무엇으로 만들었는가? 그것은 바로 생명나무와 선악과를 가지고 인간 됨됨이를, 즉 인간의 하나님 형상 됨을 규정해놓았는데, 그런 규정성이 인간 속에 있는데, 그런데 뱀이 와서 육체를 그만 바꾸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따먹어서는 안 된다" 라고 하는, 그런 규정성이 없어도 "나는 인간이다" 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 인간은, 인간이 아니무니다 !!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길에서 만나는 인간들이 다 그러한데, 즉 "나는 이미 인간인데, 예수님을 믿을 수도 있고, 믿지 않을 수도 있어. 그래도 인간은 인간이야" 라고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이 아닌데, 안개라는 말이다. 성경에는 인간이 없는데, 죄인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제가 "아담 안에는 인간이 없고, 예수님 속에 진짜 아담이 들어있다" 라고 했는데 말이다.

아무튼 인간은 뭐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인간인데, 그 선악과를 따먹고 말고 하는 것은 내 소관이다. 자유의지가 있기에 말이다" 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오늘날 철학이나 신학이 다 그러한데, 그런데 뱀이 와서 아담을 보고 신으로 넘어가라고 했는데, 즉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따먹어서는 안 된다" 라고 하는 말씀을 거치지 않아도, 그것을 위반해도 신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경우에는 어떠한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따먹어서는 안 된다" 라고 하는 말씀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한 말씀이 있음으로 인해서 피조물과 창조주의 위치가 서로 뒤바뀌지 않도록 조치를 하셨다는 말이다.

아까 이야기한 욥의 경우에 "하나님이여, 왜 저에게 그러한 고난을 주십니까?" 라고 했는데, 하지만 하나님의 경우에는 "저 놈이 피조물이 맞아? 피조물이라면 고난을 주던지 무엇을 주던지 간에 입을 다물어야 맞는데"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겉으로 보면 하나님을 잘 믿는 것 같은데, 그런데 쑤셔보니 다른 소리가 나온다는 것이다.

지금 욥은 "우리가 사이는 좋은 사이가 아닙니까?" 라고 하는데, 하지만 하나님의 경우에 무엇인가? '우리 사이' 라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욥은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하나의 작품이지, 거기에서 따로 '나' 라는 것을 어떻게 규정해서 이야기할 수 없다는 말이다.

지금 법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율법을 하기에 앞서서 말이다. 법이라는 것은, 이렇게 층층이 짜여져 있는 그물, 즉 격자구조와도 같은데, 우리는 그러한 말씀 안에서 말씀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런 말씀의 구조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드러내기 위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것이 곧 천지창조라는 말이다.

◈ 인간은 처음부터 법에 규정을 받은 존재, 그런데 !!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처음부터 법에 의해서 규정을 받은 존재인데, 그런데 악마가 다가와서 어떻게 유혹을 했는가? 마치 그 법을 초월할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지금 오늘 강의에서 제일로 어려운 대목에 온 것 같은데 말이다.

다음과 같이 보면 되는데, 법, 말씀, 혹은 질서 안에 인간이 있는데, 그러니 인간은 말씀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악마에 의해서 어떻게 되었는가? 법은 따로 있고, 자기는 그 어떤 법에도 구애받지 않는 법 바깥의 독자적인 존재로서, 그래서 "내가 저 법을 지켜줘, 말어?" 라고 하는 식으로, 그렇게 독자적인 결정권이 자기에게 있는 것처럼 여기에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하나님의 대처는 무엇인가? "저런 못된 놈을 봤나?" 라고 하시면서, 우리 인간이 법안에 있음을 보다 확실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니가 법을 벗어나? 말씀을 벗어나? 웃기고 있네. 너에게 따먹지 말라고 한 죽음, 그 죽음이 얼마나 무서운지 앞으로 너를 계속 따라다닐 거야"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 죽음도, 그리스도의 저주까지 함께 계속해서 !!

그래서 "니가 따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라고 하는 그 법칙이 단순히 숨이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죽음이 점점 더 확장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확장이 무엇과 병행해서 이루어지는고 하니, 법을 만드신 예수 그리스도의 실체가 드러날 때까지 같이 나란히, 그 죽음이라는 의미도 그리스도의 저주까지 계속해서 이어져 간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힘이 떨어져서 죽는 것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그런데 나중에 보니, 자기가 고이고이 애정을 기울이고 정성을 다했던 것을 와장창 무너지게 하는 그 저주, 그러한 파괴라는 말이다. 자식이 없는 사람의 경우에는, 누구 자식이 죽었다고 해도 그냥 "참 안 되었다" 라고 하겠지만, 자식을 낳아서 키워본 사람의 경우에 그런 소리를 듣게 되면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혼도 하지 않고 혼자서 사는 사람이 "자식은 자식이고 부모는 부모지. 자식이 없으면 혼자 편안히 살면 되지. 무자식이 쌍팔자인데 왜 걱정하노?"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왜 그런고 하니, 자식을 낳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자기는 자식과는 따로 독자적으로 나와있다고 여긴다는 말이다.

하지만 한번 '있음' 이라는 것은 취소가 되지 않는데, 그 있음이 자기 존재의 구성 요소로서 삽입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쿠, 내 눈앞에 있던 자식이 왜 죽노?" 라고 하면서 그만 구멍이 뚫리고 만다는 것이다. 청원군의 논에 구멍이 나듯이 말이다.

◈ 슝,슝,슝 !!

그렇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마구 구멍을 내시는데, 그야말로 스펀지로 만들고 마신다는 것이다. 그동안 자기가 피 땀을 흘려서 만든 그 모든 것을 '숭,숭,숭' 구멍을 다 내어버리고, 결국은 우리 자신부터 저주를 받아서 합당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말이다.

그렇게 유발시킨 사건이 다윗에 먼저 일어나서, 그것이 시편 51편인데 말이다. 그렇게 다윗이 "나는 모친의 죄 중에 태어났습니다" 라고 하는 사건을, 그것을 성령을 통해서, 십자가를 가지고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그 사건을 그대로 우리에게 적용시킨다는 것이다.

(시 51:5)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그래서 우리는 "저는 처음부터 죄인이었습니다. 구멍이 뚫려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그런 구멍이 뚫린 너덜너덜한 것을 모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구멍을 뚫고 때리는 그 작업이 바로 저를 의인이 되게 하는 하나님의 의(義)입니다" 라고 하는, 그런 놀라운 고백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어디 논리로 성립이 가능하고 수용이 될 문제인가? 자기를 마구 조지는데, 그런데 그 조지는 것이 너무나 합당하다는 것이다.

부자청년의 경우에는, 예수님께서 "그런 구멍이 뚫린 상태에서 나를 따라오너라" 라고 하시니, 그것을 견디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자기의 모든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고, 그렇게 부자청년의 가슴에 구멍을 뚫으니 그가 뭐라고 하는가? "그건 아니지. 내 인생에 그렇게 구멍이 뚫리면 안 되지" 라고, 그렇게 근심을 하면서 돌아갔다는 것이다.

(마 19:2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마 19: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 예수님의 죽음의 의미를, 우리의 죄와 병행해서 !!

그러니 목회자가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데, 양이 아닌 자를 양이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양인 자를 양이 아니라고 해도 곤란하고 말이다. 오직 예수님의 죽음, 그 죽음에 담겨있는 의미를, 우리가 평생을 일군 그 죄의 의미와 병행해서 소개를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살아있다는 것도 죄고, 그리고 살고자하는 것도 죄인데, 자기를 부인하지 않는 것도 죄이고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과 더불어서 예수님의 죽으심을 이야기해야 하는데, 그런 이야기로 인해서 퉁겨서 나간다고 하면 그것은 처음부터 양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엉뚱한 소리를 하는데 양의 울음소리를 낸다고 하면, 그것은 천국에 가지도 못하면서 교회생활만 충실히 하는, 그런 하수인밖에 더 되겠느냐는 것이다. 목사의 따까리 말이다. 그러니 그런 것은 무서운 사기인데, 전혀 용납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 장로의 임무는?

지난 수요일에 수원에 살고있는 어떤 장로를 만났는데, 제 고등학교 동창생인데 말이다. 다음에 언제 만날지 몰라서 이왕 만난 김에 복음을 전해야 되겠다 싶어서, 중국집에 가서 탕수육을 한 그릇 시켜놓고는 시작을 했다는 것이다. 즉 "장로는 다른 것을 생각하지 말고, 목사가 전하는 것이 복음인지 아닌지, 그것만 따져라. 교회가 크고 하는 것은 생각하지 말고 말이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전하니 "나도 교회가 큰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라고 하는데, 물론 돈을 내기 싫어서 그렇다는 소리는 하지 않는데 말이다(ㅋㅋ). 제가 책을 무려 3권이나 주었는데, 그러자 그 중에서 '질문과 답변' 이라고 되어있는 책을 보고는 마음에 들어하던데, 물론 골치 아픈 것을 싫어하니 그렇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제가 "그래, 그것부터 읽고, 그리고 그 다음에는 이것을 읽고 해서, 목사가 전하는 것이 과연 복음인지 아닌지 살펴봐라. 그것이 장로로서 니가 해야될 일이다. 니가 달리 장로가 된 것이 아니라 바로 그것 때문이다" 라고 권면을 했는데, 돌아서고 나니 책이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는 들었는데 말이다(ㅋㅋ).

◈ 예수님의 죽으심만 증거하는 사도들 !!

아무튼 사도들은 예수님이 죽었기 때문에, 그 예수님의 죽으심만을 가지고 복음을 전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게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말이다. 좋게 지내고, 우정이 있게 지내고, 친하게 지내고 하는 것도 돈이 있을 경우에만 가능한데, 서로 서로 형편이 될 때만 말이다. 돈 문제가 불거지면 그야말로 서로가 원수지간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언젠가 그런 이야기도 했는데, 양심이라는 것도 돈이 있을 때 양심이라고 말이다. 돈은 사람의 눈알도 마구 돌아가게 하는데, 형제간에는 더더욱 그러하고 말이다. 죽일 수도 없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 그런 것이 어떻게 더 중요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 율법은 몽학선생으로서 !!

법의 실체는 미지의 'X' 라고 할 수 있는데, 아직 규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법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율법은 몽학선생으로 어떻게 하는가? "자, 내 손을 잡아야지. 니는 법에 의하면 죄인이야. 그러니 손을 놓지 말고 죄인인 채로 내 손을 잡고 가자" 라고, 그렇게 해서 어디로 인도하는가? 예수 그리스도에게도 데리고 간다는 것이다.

(갈 3: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물론 모든 사람에게 율법이 그런 것은 아닌데, 성령께서 작용해줘야 율법이 우리를 죄인임을 깨닫게 해준다는 것이다. 성령은 예수님의 영이니 말이다. 즉 예수님께서 율법을 다루어서, 그 다루심에 소속된 사람만이 양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버림을 받은 염소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것도 모르고 자꾸만 십자가 마을을 보고 욕을 하는데, '무율법주의자'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래도 좀 안다고 말이다. 과연 그러한가? 십자가 마을에서 언제 율법이 필요가 없다고 한 적이 있었는가? 성경의 모든 말씀이 율법적 기능을 가지고, 성령께서 그렇게 다루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 우리에게 날마다 그리스도께서 크게 보이기 때문에 말이다.

◈ 법으로 마구 조지고, 또 조지고 !!

어제 집사님이 그런 기도를 했는데, 그리스도만 크게 보이게 해달라고 말이다. 이제 마지막인데, 정말이지 그렇게 해야지 다른 것을 기대해서 무엇을 하겠느냐는 것이다. 새삼스럽게 다른 무엇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오직 그리스도만, 신랑이 되시는 예수님만 크게 보일 수 있도록, 바로 그렇게 성령께서 이끄신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이끄신다는 말인가? 법으로서 마구 조진다는 것이다. 정말로 이 말만은 하고 싶은데, 모든 것에 있어서 우리가 법적으로 하게 되면, 우리는 옳게 행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먹는 것 입는 것으로 족한 줄로 알라" 라고 하면, 우리는 뭐라고 하는가? "미쳤나? 내가 먹는 것 입는 것으로 족한 줄 알게" 라고 한다는 것이다.

◈ 우리 인간은 멈추지 못하는데, 그러나 !!

물론 그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아닌데, 그래서 우리는 "왜 남들이 살아가는 그런 욕망으로 살면 안 되는가? 그것마저도 왜 우리에게 허락이 되지 않는가?" 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성령께서는 "그래, 니 마음대로 해라. 그것을 강제로 막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게 곧 죄인 줄로 알아라"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어느 누구도 자기가 죄인임을 알고 자기가 걸어왔던 길을 멈추지는 않는데, 인간은 멈출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각자 계속해서 율법에 의해서 너희들이 얼마나 엉뚱한 것을 소망하면서 살아가는지, 그것을 알아라"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

한 가지 예만 들고 마치겠는데, 고린도전서 13장에 보면, 진짜 이것을 잊으면 안 되는데 말이다. 거기 3절에 보면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라고 되어있다는 것이다.

(고전 13: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고전 13:2)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고전 13: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이게 무슨 의미인가? 그동안 세상방면으로 나쁜 짓을 하다가, 이제 교회에 와서 "남들이 보기에 나는 이 정도로 착하고, 성화가 되었고, 성령에 충만하다" 라고 우길 때, 그게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자기가 죄인임을 알게 되면, 몸을 불사르게 구제를 하고 천사의 말을 하더라도, 아무리 설교를 멋지게 해도, 그것은 개뿔도 아무 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왜 테레사 수녀가 어떻고, 주기철 목사가 어떻고 하는데, 사람들이 왜 그런 속임수가 넘어가느냐는 것이다. 어제도 그런 설교를 했지만,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존재인데, 그런 존재인 우리를 주님께서 일방적으로 사랑하시는 방법은, 그것은 이미 우리가 죄인임을 주님께서 아신다는 것이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모든 것이 법이라는 욕조, 법이라는 구조 속에 젖어있는데, 그래서 우리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바라볼 수 있도록 환경이 조성되어있음을 잊고서 살아가지는 않습니까? 우리에게는 죄를 지을 능력밖에 없음을 깨닫게 해주시고, 날마다 용서하시는 그 용서하심이, 양을 버리지 않는 목자의 충성이고 성실이고 일관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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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 21,142건 중 361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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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