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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안양20121214b-벧후3장17절(질문하심)-이 근호목사자유게시판베드로후서

안양20121214b-벧후3장17절(질문하심)-이 근호목사

이름 : 공은주(IP:211.211.100.169)

안양20121214b-벧후3장17절(질문하심)-이 근호목사

두 번째 시간하겠습니다. 17,18절에 봅시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했지요. 이게 상당히 어려운 논리인데요. 왜 어렵냐 하면, 법이라 하는 것, 무법이라 하는 것은 법을 어긴 거잖아요. 그러면 게임 판에서 지금 예수님이 나타나기 전에는 유대나라나 이 모든 세상에는 뭐가 지배하고 있는가 하면, 모세의 율법의 게임이거든요.

마태복음9장에서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는가 하면, 옛 포도주는 어디에 담아라? 옛 부대에 담아라, 했어요. 이게 무슨 뜻일까? 부대는 뭐고? 포도주는 뭘까? 옛 포도주는 결국 율법을 의미하고. 옛 것을 율법이라 해요. 마태복음 13장에 보면 창고에서 옛것과 새것을 끄집어낸다 할 때, 옛것을 옛것이라고 할 때는 새것이 등장해야 옛것으로 보이게 마련입니다.

옛것도 없으면서 옛것이라 하면, 이게 있는 게 전부지요.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게 전부다. 그렇다면 구원이라는 것도 성립이 안 됩니다. 자리이동은 되지만 구원은 안 되는 거예요. 그러면 옛 세상 속에 천국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천국이라는 개념이 있을까? 없을까요? 당연히 있지요. 옛 세계에. 지옥 있을까요? 없을까요? 당연히 있지요. 부모효도 안하면 지옥가고, 효도하면 천국 간다. 회신곡에 나오잖아요. 종교에 다 나오지 않습니까? 인간이 착한 사람 되어야 천국 간다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나쁜 사람 되면 어디 간다? 지옥 간다. 이미 개념들이 다 마련돼 있다니까요.

단, 마련되어 있는데 그 자체 내에서 완결성 모자람이 없음, 이렇게 되는데 그 자체가 옛것이라면 그러면 그 자체가 옛것이 되려면 그 것에 속하지 않은 다른 규칙 다른 법칙이 새것이란 이름을 달고 여기 옛것 속에 출몰돼야 되지요.

세례 요한이 말하기를 위에서 주지 아니하면 아무도 받을 수 없다. 이 말을 따지고 보면 말 같지도 않은 말입니다. 위에서 주지 아니하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하잖아요. 그 사람이 “뭘 받아? 있는 것으로 충분한데, 뭘 받아?“ 이러면 그 말 자체가 의미가 없어요. ”위에서 안 오면 받을 수 없지!“ 이렇게 하면, 저 쪽에서 ”안 받으면 그만이지!“하면 이게 무슨 대화가 됩니까? ”나, 안 받을래, 안 받을래, 있는 것으로 충분해“ 모세의 율법이 있잖아요.

모세의 율법이 있는데 그대로 지키면 선한사람 되고, 안 지키면 악한 사람 되어 지옥 간다. 이미 그걸로 완결적이고 충분한데, 뭘 더 필요해? 교회에 등록했다. 등록해서 세례 받고 성만찬 떡 떼고 구원 받고 뭐가 더 부족합니까? 목사 있고, 장로 있고 뭐가 더 부족합니까? 이거 전체가 어디에 속한다? 옛 것에 속해 버리면 옛 것을 가지고 새것으로 연결될 것 같으면 새것이 올 이유가 없지요. 옛 것 속에서 새것을 생산해내면 되니까.

그런데 옛 술은 옛 부대에 담는다는 말은 거기서 새로운 술이 나올 수가 없고, 부대도 옛 부대에서 새 부대가 안 나오지요. 제가 아까 첫 째 시간에 이야기한 것이 바로 한계예요. 한계. 이게 한계가 되는 겁니다.

자, 이제부터 어려운 거 해 봅시다. 한계가 올 때 어떻게 오는가, 이걸 논리적으로 설명하면 골치 아프기 때문에 결론부터 이야기하겠습니다. 창세기3장에서 하나님께서 네가 선악과를 따먹게 되면 어떻게 된다? 선과 악을 알지요. 한 번 적어보겠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으면 이미 선과 악에 대해서 지식을 알고 있잖아요. 그러면 이 지식이라 하는 것은 이걸 정신세계고 마음세계잖아요. 지식이 돌멩이처럼 생긴 게 아니란 말이지요. 수술해서 이걸 머리 속에 집어넣는 게 아니잖아요. 그러면 지식이라 하는 것은 정신이고 마음이잖아요.

잘 한 번 보세요. 결론부터 내리기 때문에 어렵지만, 여러분들이 참아주시기 바랍니다. 일단 들어보세요. 납득이 됩니다. 이 정신과 마음이 이스라엘 속에 들어가니까 이 주변에 여리고성이 무너지더라 이 말이지요. 애굽 군사가 깊은 물에 빠져요. 이거는 정신세계 아닙니다. 물이 넘쳐서 애굽 군사가 푹 젖었다. 이게 정신입니까? 정신이 아니잖아요. 여리고성이 무너졌다. 돌멩이가 정신입니까? 아니잖아요. 실제로 무너졌잖아요. 분명히 처음 시작은 뭐 됐다? 정신이고 마음인데 하나님의 정신과 마음으로 이스라엘 속에 심지 되어서 역사 속을 통과하니까 그 주변에 무슨 일이 벌어졌어요?

난데없이 블레셋 산헤립이라는 앗수르 군대장관이 엄청난 군대를 몰고 하루아침에 쳐들어와서 다 죽었잖아요. 그게 정신이 아니고 실제로 잖아요. 그리고 그뿐만 아니고 나아만 장군이 요단강에 가니까 마음으로 아팠습니까? 정신이 아팠어요? 문둥병이라, 손톱이 빠지고 눈썹이 빠지고 실제로 빠졌잖아요. 요단강이란 물을 7번 왔다 갔다 하니까 실제로 병이 낫잖아요. 그렇다면 분명히 정신으로 출발한 것이 이게 하나의 현실로 구성하지요. 이게 어렵다 이 말입니다. 이게.

우리는 과학적 사고를 하기 때문에 물질은 물질이고 정신은 정신이에요. 마우스가 이렇게 있는데, “컴퓨터 마우스야, 니가 움직여라, 움직여라” 하면 마우스가 움직입니까? 이게 움직인다고 기대한 인간이 나쁜 놈이지요. 왜? 마우스는 물질이고, 언어는 인간의 마음에서 나온 거 아닙니까? 내 마음이 물질을 못 움직이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움직일 수 있을까요? 물이 든 컵이 깨어져라, 깨어져라, 해도 컵이 말을 안 듣지요. 그러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소프라노를 데려와요. 컵에 물을 담아놓고 소프라노가 하이에너지를 냅니다. 목소리로. 컵이 깨지라고. 그러면 컵이 깨질 거예요.

그런데 그 컵이 깨질 때, 너무 아름다워요. 깨졌으니까, 아니면 에너지파가 너무 세서 깨졌어요? 에너지가 세서 깨지지요. 결국은 아름다워 하는 것은 정신 용어는 빠져버리고 에너지로 번역해서 에너지와 에너지의 만남에서 더 큰 파장의 에너지가 작은 에너지를 삼킬 때, 컵은 깨져버리는 거예요. 컵을 유지하는 분자의 구조는 새로운 에너지가 와서 분자구조가 해체돼 버리면 이 깨어짐이라는 게 성립되는 겁니다.

여리고성을 할 때, 여리고성이 고함지르니까 무너졌습니까? 아니지요. 아무리 여리고성을 허름하게 지어도 사람의 고함소리, 파장 그걸 모은다고 에너지파장이 저 쪽의 구조,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에너지 한계를 넘어서서 그걸 와해시킬 에너지 물리적인 방법은 안 된다 말이지요. 그러니까 제가 어렵다고 하는 말은 뭐냐 하면, 인간이 아무리 정신적으로 정신 차려도 물질은 동요를 하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물질은 물질로 다루어야 되고, 정신은 정신으로 다루어야 된다고 하는 겁니다. 프란치스코 그 사람이 새들을 위해서 기도하니까 새들도 좋아한다 하지요. 그게 신기한 이유, 성모 마리아상에서 최근에도 눈물이 나올 때, 그게 신기한 이유가 그게 옛날 같으면 하나도 신기하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물질은 정신의 연장이기 때문에 물질과 구역이 없어요. 과학이 발달되다 보니까 성모 마리아는 석고로 만들었고 석고는 물질로 만들었고 눈물이라 하는 것은 세포에서 나온 거잖아요. 세포와 석고의 만남은 어울리지 않잖아요. 성립이 안 된다 이 말이지요.

그런 식으로 따지니까 우리가 지구에서 살다가 화성에서 산다. 이것은 납득이 되지만 지구 살다가 천국 간다. 이거는 납득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경의 많은 부분을 윤리적, 도덕적인 것은 잡고 요상한 소리하는 것은 다 제거해야 돼요. 그렇게 해놓고 “믿습니다!” 하는 거예요.

자기가 자기를 바라볼 때, 물질과 영은 서로 분리되어있다 생각하고 그 자기를 바라봄으로 연장시켜 놓고 게임 판에다가 하나님의 성경책까지 예수님까지 거기에 집어넣어서 해석을 해버리니까 결국은 뭡니까? 옛 부대에 옛 술을 담는 그 버릇을 못 버리는 거예요. 그걸.

제가 지금까지 하는 이야기는 아무리 성경을 연구해도 예수의 말씀을 집어넣어도 이미 내가 나를 바라보는 규칙이 그렇게 석고처럼 굳어져 버렸는데 예수님의 생각의 본래의 취지가 우리 속에서 우리 능력으로는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어야 돼요? 옛 포도주의 옛 부대는 찢어야 되고, 부대가 찢어지면 뭐가 쏟다집니까? 율법은 아무 쓸데없이 땅에 그냥 버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우리에게 일어나야 됩니다.

자, 처음에는 정신이지요. 이야기 이어갑니다. 이스라엘이 언약궤를 7번 도니까 여리고성이 무너지지요.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여호수아 장군이 전쟁할 때, “아이 씨~ 해만 안지면 마저 죽일 수 있는데.” 갑자기 해가 멈췄지요. 해가 멈춘 것은 물리학자는 뭐로 봅니까? 지구 공전이 잠시 스톱됐다, 이리 보는 거예요.

동방박사가 별 따라 왔을 때, 그 별은 그 당시의 천문학자는 기록을 살펴서 유성일까? 아니면 궤도 일탈일까? 이리 조사를 하는 거예요. 왜 그렇게 조사를 하는가 하면, 자기가 옛 술과 옛 부대의 원칙을 가지고 새 부대와 새 술을 해석해보겠다는 거예요. 그렇게 왜 하느냐? 납득을 해야 되니까. 납득을

왜 납득을 해야 되는가? 납득을 해야 기존의 해석법이 옳지 않다는 소리를 안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은 지 생각이 옳다는 것을 지옥가도 안 버려요. 주제파악도 못 해서 지옥 가서 누구보고 물심부름 시키는 게 어디 있습니까? 물 떠다 달라하니. 니가 뭔데 물을 왜 버려요. 아니 물을 버릴 것 같으면 처음부터 지옥은 안 뜨거웠어요. 안 뜨겁고 좀 뜨거울만하면 옆에 물탱크 만들어 놓고 해결했습니다. 지옥은 우리 마음대로 안 되는 나라예요. 지옥만 그런 게 아니에요. 천국도 그렇습니까? 천국도 내 위신 세우라고 있는 게 아닙니다. 주님 2시간 섬기고 “아이 씨~ 주님, 섬기느냐 어깨가 뻐근하네.” “아이~ 찬양하느냐고 목 다 쇠었다.” 조금 쉬고 교대했다가 찬양 드릴게요. 해서 지 컴퓨터 게임하고 바둑 두면서 했다가 시간 됐다, 해가지고 가서 또 주님이여! 찬양 받으시옵소서! 이런 짓 하는 게 천국 아니라니까요. 그러니 어떤 사람은 천국 안 가려하잖아요. 천국 재미없다고.

재미없다는 게 뭔 뜻입니까? 지금 뭘 호소한다? 옛 술을 옛 부대에 담는 율법이 우리는 좋은 거예요. 왜 좋으냐? 선악과 따먹은 티를 팍팍 낼 수 있기 때문에 좋은 거예요. 목사님이 우리에게 율법적으로 이야기해 달라는 거예요. 왜? 납득이 되니까. 납득이. 지키면 복 받고, 안 지키면 벌 받고, 이게 수월해요. 어떤 사람이 목사가 시키는 대로 했더니 복 받았다. 이게 솔솔 들어온다니까요. 반대로 니가 이 교회에 봉사 안하면 당신 아들 요번 시험 치는 거 떨어집니다. 이게 술술 들어온다니까요. 이게.

2012년 12월 12일날, 12숫자가 세 개로 겹쳤어요. 홍콩 상하이 중국계통에서는 난리 났어요. 결혼하려고. 작년도에도 그랬거든요. 어떤 특정한 날짜라든지, 이렇게 우연히 겹칠 때, 12월 12일에 예약한 것을 “아이고, 실수했네.” 하는 것은 12월 12일에 하고 싶은 거예요. 왜 하고 싶을까요? 12, 12, 12가 12, 12,10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하는 거, 그거 어디서 나왔습니까? 아, 이거 진짜 어렵다. 제가 진짜 설명하기 어려운데.

인간은 어디서 나온 겁니까? 엄마 뱃속에서. 그건 물질이고. 그거 말고. 그 질문은 아무 소용없는 거예요. 나를 낳게 한 엄마는 어디서 나왔습니까? 똑 같은 질문이 되풀이되기 때문에 그 질문은 답변이 될 수 없어요. 내가 왜 있느냐? 인간은 모릅니다. 그래서 인간은 뭐냐, 과정에서 나온 거예요. 모든 게 어울림에서 나온 거예요.

어떤 남자가 있었고, 어떤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 남자 안 만났으면 오늘날 내가 아기로 태어나지 않았다 이리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 많은 남자와 여자 중에서 우리 아버지와 우리 어머니가 만났는가, 그것은 태어난 입장에서 소급해서 설명이 됩니까? 안 됩니까? 설명이 될 수가 없어요. 그거는 아빠 엄마한테 물어보는데 아빠, 엄마도 마찬가지입니다. 왜냐 하면, 할아버지에게 또 미루기 때문에. 해답을 계속 미루는 거예요.

결국, 인간은 자기가 안 만큼 안에서만 해답을 내리는 버릇이 있어요. 특히 젊은 사람들이 그렇지요. 존재감이 없다는 것은 지가 아는 범위 내에서 존재감이 없지요.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요양병원에 봉사시켜 보세요. 존재감 생기지요. 항상 자기보다 펄펄 넘치는 재벌3세를 쳐다보고 사니까 이리 사는 것 보다 낫다고 하는 거예요.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아픈 사람을 지금도 몸 건강한 것만도 복이라고 느끼면 그런 존재감소리 안 나옵니다. 축복이라고 여기는 거지요.

지 보다 잘난 것만 쳐다보니까, 아까 첫 시간에 한 섬에서 밀리는 생각만 하니까 그러는데, 지가 살아온 그것이 자기의 중심이라 생각한다면 밀리고 자시고 하는 그러한 규칙자체가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내가 있는 곳이 바로 중심이다, 이 말이지요.

우리 십자가마을의 복음 아는 성도들의 모습 보면, 공통점이 그거예요. 기죽지 않고 말도 안 되는 자신감이 어디서 생겼습니까? 도대체. 내가 어디서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자신감 하나는 펄펄 넘치고 있어요. 전목사님처럼. 개뿔도 없으면서 머리 기르고 사는 그 자신감은 어디서 나왔는지 몰라. 납득이 안 돼요. 납득이.

지금 어렵다는 게 뭐냐 하면, 왜 정신이 됐는데, 주변에서 이렇게 여리고성이 무너지고 벽돌이 무너지고 하느냐 말이지요. 도대체 그걸 과학적으로 설명해보라, 설명이 안 돼요. 상자가 뭐 길래 들여다보면 왜 죽습니까? 상자가 뭔데? 언약궤가 뭔데? 만든 게 오동나무에다가 금박이 입힌 거거든요. 지금도 오동나무 금박 입힌 거 보세요. 들여다보면 죽습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지요. 어디 거기서 질문을 해요. 과학을 기계를 만든 사람에게 “교수님, 기계과 박사지요?” “네, 박사입니다.” “선생님, 질문하나 있는데, 유령은 어디서 나옵니까?” 물어보세요. 기계 들고 때리려 할 거예요. 왜 나한테 유령을 묻느냐 하는 거예요. 유령을

그러면 질문한 사람이 “유령도 모르면서 왠 박사입니까?” 하지요. 왜 당신은 박사라는 것을 하면서 유령은 없어도 됨을 그 범위를 잘라버리고 나머지만 박사라, 이거 반칙 아니에요? 반칙 아닙니까? 박사가 되려면 유령을 포함해서 해야 돼요. 왜 그들은 유령을 빼놓고 로봇만 만듭니까? 유령을 만들어 놓으면 지가 유령을 다룰 수 있다? 없다? 못 다루잖아요. 그런 반칙이 어디 있어요? 지가 다룰 수 있는 거만 해놓고 지는 박사고 천하에 진리를 아는 거고, 지가 다룰 수 없는 것은 발로 차 버리고.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율법을 안다 했지요. 그런데 예수님이 다른 해석을 내어 놨잖아요. 율법은 누구에 대해여 증거 한 것이다? 내게 대하여 증거 한 것이라, 하니까 사람들이 죽여 버렸잖아요. 죽여 놓고 저희들은 모세가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하니까 예수님께서 모세가 너희들을 단죄할 것이다. 자, 이제 나왔다. 정신세계에서 물질이 연결이 안 되지요. 납득이 안 되지요. 납득이 안 되는 것이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고 이게 무엇의 근거인가 하면, 단죄 받을, 정죄 받을 근거가 되는 겁니다. 아~ 무서운 이야기예요. 정말 무서운 이야기예요.

양의 피를 냈습니다. 조사해 보면 양의 피도 그냥 혈구로 되어 있고 과학적으로 봐서 그냥 혈소판이 있어요. 그런데 그 피가 어린양의 피가 그 주변에 있는 사람이 12월 10일날 어떤 죄를 지어도 용서받는다는 것은 어린양의 피는 물질이고 용서받는다는 것은 정신세계잖아요. 물질과 정신이 어떻게 연결됩니까? 다른 이방민족은 믿는다? 안 믿는다? 안 믿지요. 죽음의 사자가 올 때, 문설주와 문지방에 피를 발랐더니만 그냥 가더라, 이건 누구와 누구와의 약속입니까? 정신세계, 언약세계 속에 임한 약속인 거예요.

그런데 어린양의 피를 안 바르고 약간 염료를 섞어서 양의 피의 흉내를 내면 천사가 어떻게 합니까? “뭐, 이런 게 다 있어?” 대번 죽여 버리지요. 왜 안 되는 걸까요? 이런 어려운 질문이 성경에는 우리가 아는 질문보다 어려운 질문이 더 많아요. 우리가 성경을 안다하지만, 성경은 보면 볼수록 성경세계는 우주보다 깊어요. 말씀세계는 우주보다 더 깊다니까요. 이거는 한도 끝도 없어요. 우리는 그걸 잘라놓고 제쳐놓고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옛 부대에 옛 술을 담는 그런 방식 안에서만 갇혀 살면서 안다느니, 뭔가 이용했다느니, 삼성그룹의 주가가 180만 통과해서 우리는 이제 잘 먹고 잘사는 떵떵거리는 이 따위 소리를 하니 그게 축복이냐 말이지요. 밖으로 다 쫓아내놓고.

새 술과 새 부대를 모르는 입장에서 옛 술과 옛 부대의 입장에서 지가 선악과 따먹은 선과 악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지가 다룰 수 있는 거만 해놓고 하게 되면 되느냐 말이에요. 결국 그 정신은 뭐한테 밀리게 되어있어요. 물질한테 밀리게 돼 있어요. 하나님과 물질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그거 보다 더 무서운 말은 한 쪽을 사랑하면 반드시 한 쪽을 미워한다. 니 내 미워하지? 이렇게 돼요. 마지막에. 누가복음 16장에는 너희들이 날 미워하지!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미워함이라. 왜? 돈을 사랑한다고 단죄하기 때문에. 우리는 옛 술과 옛 부대를 갖고 있다는 그런 입장에서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우리는 원 없이 단죄와 정죄를 당합시다. 당하는 게 축복이라. 빼내줄려고 단죄하는 거예요. 빼내주려고.

니 죄인이야, 죄인이야 할 때, 나아만 장군이 물에 들어가려할 때, 의사는 오지도 않고 간호사가 와가지고 조수가 와가지고 오늘날 성령이 간호사거든요. 성령이 오신거와 똑 같아요. 요단강 7번 들어가라 했습니다. 이것은 엘리사 만나기 전에 상상도 못했습니다. 옛 술과 옛 부대 속에서 기껏 꺼낼 수 있는 상상 속에는 의사 안 만나고 요단강 들어갔다가 나오면 된다는 발상을 할 수가 없어요. 왜? 주님의 새 술과 시 부대의 적용 방법은 옛 술과 옛 부대에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것만 골라서 줍니다.

수능시험 준비했는데 EBS에서 나온다고 했는데 한 문제도 EBS와 관련된 문제가 안 나올 때, EBS준비한 사람들 빵점 맞지요. 주께서 주시는 문제는 문제도 생소할뿐더러 답변도 알아들을 수 없는 답변을 주십니다. 환장하는 거예요. 성만찬해서 구원받는다면 아마도 성만찬 상표등록해서 공장에서 만들어도 돼요.

어떤 물이 우리에게 생수 된다면 그 물을 양산하면 됩니다. 중요한 무기물 집어넣어서. 우리가 물질을 집어넣는 방식에 어떤 방식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구원하는 방식을 준적이 없습니다.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세례준적이 없다. 예수님도 이야기합니다. 예수님도 누구한테 세례준적이 없어요. 가로 열고 예수님이 준 것이 아니고 제자들이 준 것이라 하고 가로닫고, 요한복음4장에 나오거든요. 세례요한은 세례를 줬지만.

그러니까 도대체 이렇게 우리 쪽에서 다가서서 새 술과 새 부대를 가져올 수 있는, 배급부대를 우리에게 준적이 없어요. 배급을 주겠다하는데 그걸 받을 수 있는 부대가 우리한테 있다? 없다? 없는 거예요. 다만 무슨 말만 하는가, 없다는 말만 해요.

그런데 없다는 말만 계속 강조해야 받을 수 있는 부대까지도 저 쪽에서 일방적으로 주셔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세례요한의 말이 틀린 게 아니에요. 하늘에서 아버지께서 주시지 아니하면 아무도 받을 수 없다는 말은 받을 수 있는 능력까지 우리 내부에는 없다는 거예요. 하늘에서 줄 때, 우리는 그걸 넙죽 받을 수 있는 능력도 우리한테는 있다? 없다? 없고, 받을 수 있는 능력까지 그것조차도 하늘에서 줘야 된다. 그게 선물인데 선물 중에 뭐냐, ‘믿음’이란 말이지요.

믿음은 우리 행함에서 나오는 게 아니고 믿음도 하나님의 선물이라. 선물이기 때문에 선물 속에는 누가 관여합니까? 주님이 주도적으로 관여하지요. 그러니까 신앙생활은 우리가 하는 게 아니고 그 믿음 안에 깨보면 주님이 주도적으로 성령께서 말씀대로 하게 하십니다.

아직까지 이렇게 이야기해도 해결 안됐습니다. 계속해서 문제가 뭐였습니까? 어떻게 정신이 가는데 물질이 왜 변화하는가, 이 문제입니다. 진전 안 되면 나보고 화낼 거니까 겁나서 계속 가겠습니다. ㅎ 아직까지 해결 안 됐어요.

그런데 여기서 드디어 해결책이 하나의 낌새가 있습니다. 요 이스라엘이란 구체적인 물질이, 이스라엘은 구체적인 물질 맞잖아요. 성전 있고, 칼, 활, 그것가지고 다윗이 전쟁했잖아요. 돌맷질 했잖아요. 그거 다 물질 아닙니까? 성전 있고, 실제 양 아닙니까? 물컹물컹한 양, 피, 전부다 물질이죠. 어떻게 양의 피를 발랐더니만 애굽이 죽었다는 것은 해결 안 되지만, 하여튼 그들이 만지작거린 것은 물질 아닙니까? 돌 판도 돌로 만들었다면 성분분석해보세요. 어떻게 돌 판이 있는 법궤를 봤는데 왜 죽느냐, 이 문제 그것은 돌 판 자체에서 저주파가 나와서 죽인 게 아니잖아요. 에너지가 하는 게 아니란 말이지요. 그게 설명이 안 되잖아요.

그런데 이스라엘이 망합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그동안 “야, 우리의 물질 때문에 주변의 물질이 깨지더라, 야, 신기해. 신기하든 어쨌든 간에 고마워” 라고 까불다가 이스라엘과 그 외부적인 관계로 자기는 장담하다가 이게 어떻게 돼요? 이거는 외부적인 문제가 아니네요. 지금 중요한 것은. 지금 블레셋이 어떻게 해서 우리에게서 물러가고 다른 나라가 문제가 아니고. 실제로 문제가 야기되는 것은 율법이 없는 저 쪽은 망해라, 우리는 율법 있다, 이 정도가 아니라 율법 있는 자기 나라에 뭐가 생겼습니까? 문제가 생겼습니다.

율법대로 제사 드립니다. 그런데 적들이 쳐들어 왔어요. 한 번 봅시다. 율법대로 제사를 드렸더니만 적들이 쳐들어오지 않았다. 다른 나라는 납득이 안 되지만 이스라엘은 납득이 되지요. 왜? 언약궤를 메고 가니까 요단강이 스톱했으니까. 그리고 여리고성 들어갔잖아요. 그 정도 까지는 율법대로 제사를 드렸더니 적들이 쳐들어오지 않았다. 납득이 되거든요. “아! 이거였구나, 주께서 도와준 것은.” 그런데 그 다음은 율법대로 제사를 지냈는데 적들이 쳐들어와서 점령했다. 그러면 전에 있던 법칙가지고 해명이 됩니까? 안 됩니까? 안 되지요. 이거 미치는 겁니다.

그러면 해결점은 어떻게 하느냐, 해결점 없음이지요. 없으면 우리한테 주신대로 율법을 지키면 지키는 대로 너희들은 다른 나라로부터 보호를 받고 다른 나라가 나한테 패배할 것이다. 라고 주신 그 당사자의 원래의 취지가 뭐냐고 물을 수밖에 없지요. 이걸 성경에서는 부르짖는다고 되어 있어요. 사사기에 보면 그들이 부르짖을 때에 그런데 그들이 곱게 부르짖을 위인들이 아닙니다. 어려움 당했다고 교통사고 났다고 부르짖을 인간들이 아니에요. 밑바닥까지 내려가요. 밑바닥까지.

아직까지 인간들이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면 부르짖는 것도 건성이에요. 순순하지 못해요. 진실성이 없습니다. 그냥 한편으로는 부르짖고 한 편으로는 지 할 수 있는 거 다해요. 그런데 사사기에서 어떻게 됐습니까? 그런데 자기 식대로 해보는 게 기껏 뇌물 받치고 조공 받쳐서 형님, 봐주소! 이리하다가 그것마저도 점점 더 압력이 가할 때, 에이~ 이판사판,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고, 그 때는 자기는 죽는 수밖에 없지요.

모압 여인 룻이 남편 죽고 시아버지 죽고 남은 것은 여자들만 달랑 셋이 남았을 때, 기가 차고 코가 찹니다. 이 때 나오미도 마찬가지예요. 남편 죽고 기둥 같은 아들 다 죽고. 도대체 모압이란 이 동네가 문제인지, 아니면 나한테 문제 있는지, 나오미는 누구한테 문제 있다 했습니까? 이름을 바꿨어요. 나오미라는 것이 기쁨이라 했는데, 이름을 바꿨습니다. 슬픔이라,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로 하여금 기쁨의 여자가 되지 말고, 니는 슬픔의 여자가 되어야 하나님을 바로 안다 해서 이름을 바꾼 겁니다. 문제가 누구한테 있다? 문제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고 외부나라 이방나라 문제가 아니고 소위 하나님을 잘 믿는다는 나에게 문제가 있다.

드디어 이스라엘 멸망하면서 사사기에서 문제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뭘 잘 지켜봐라? 율법을 잘 지키라고 율법을 보여주는 사람이 아니고 율법과 전혀 상관이 없는 방앗간 주인을 보내 버린다고요. 방앗간 주인은 제사장이 아닙니다. 율법과 전혀 상관이 없는데 뭐가 오니까 성신이 와버리니까 성신이 와도 본인도 마찬가지예요. 똑같은 인간이에요.

그걸 못 믿어가지고 바알세블 우상 섬기는 것도 밤에 몰래가서 깼다가 나중에 그게 CCTV에 걸려서 기브스하고, 양털을 해서 하나님, 미안합니다. 세상에, 누구를 시험한다는, 누구를 질문할 때는 시험하는 거거든요. 질문할 때, 질문의 내용은 지가 아는 세계관을 묘사하는 거예요. 내가 알고 있는 세계에서 기껏 기적이라 하는 것은 아침에 이슬내릴 때, 이슬이 폭 젖는다는 그 사실은 그게 기껏 지가 아는 기적의 수준이에요. “하나님이여, 양털만 촉촉하고 나머지는 바짝 마르시게 하면 내가 하나님이 하신 줄을 믿겠습니다.” 뭔 뜻입니까? 인간은 어떤 수를 써도 이걸 못해낸다는 거예요.

하나의 예를 들게요. 이것도 중요한 문제인데, 번개가 치고 전염병 오는 것이 하나님의 진노의 표시라고 중세까지 동서양 관계없이 다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프랭클린이 피뢰침을 만들었지요. 파스퇴르가 시험관에서 우연히 모든 전염병은 세균에 의해서 간염 되기 때문에 항생제를 사용하게 되면 어떻게 돼요? 잡아먹으니까 하더라, 그게 발명되기 전까지 페스트 병은 흑사병은 하나님의 재앙이라고 본 거예요.

기껏 질문하는 것이 여기는 축축하고 저기는 바짝 마르게 하시면 계십니다. 이걸 오늘날 과학적으로 재현할 수 있습니다. 마술사들이 자다가도 다 해요. 그게 되니까 이번에는 바꿔보는 거예요. 혹시 어떻게 될지, 또 바꿔보는 거예요.

인간의 세계에서는 인간이 기껏 생각하는 우연도 인간세계에서는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그냥 필연에 불과한 거예요. 진짜 우연은 우리가 감도 못 잡고 체험도 해본 적이 없어요. 주님의 준비된 체험은 주님의 준비된 기적은 우리가 미처 예상도 못한 기적들입니다. 우리 인생사가 또 그래요. 우리가 예상 못한 것만 가가지고 기적의 하나님 인도 받고 있습니다. 그렇게 할 때, 기드온 본인은 죽어난 겁니다. 하여튼 그 정도로.

다시 한 번 정리해 봅시다. 우리가 지금 성령으로 성경을 보고 있지요. 잘못 풀면 우리는 멸망한다 했지요. 그러면 성령 받은 사람이 성경 풀 때, 특징이 뭡니까? “야~ 풀었다!”가 아니라 성령 받은 사람은 본인도 매일같이 죽어나는 겁니다. 새 술과 새 부대 속에 있는 사람은 본인도 신난다가 아닙니다. 아직도 옛 술과 옛 부대가 살아있기 때문에 본인은 매일같이 얻어터지고 있는 거예요. 얻어터지면 얻어터질수록 본인도 살고 주변에 예수 그리스도 복음이 전파되고.

우리는 똑똑한 게 아닙니다. 우리는 돌아서면 바보예요. 돌아서면 다시 옛 술과 옛 부대의 법칙으로 또 우리의 삶을 측정하고 평가하고 스스로 자기 인생을 잘 살았느니 못 살았느니 성공했느니 실패했느니 매일같이 자기 자신을 닦달하는 이 작업을 버릇을 멈추지를 못하는 겁니다.

그런데 고마운 것은 그런 것을 그냥 방치하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망해라, 니는 망했지만 말씀은 니 망함을 통해서 유력하게 살아 있다. 생생하게 살아 있다. 니 망한 게 슬프냐, 니 살아 있는 게 좋으냐, 그걸 묻는 겁니다. 제가 수요일날 말했잖아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멸망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하나님께서 자기를 구원하는 중심체로 사용하는 거예요.

다른 민족과는 달리 이스라엘을 망하게 함으로서 비로소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에 그 참여하는 체험을 느끼게 하는 거예요. “아! 주께서 이렇게 돌아가셨구나!” 바로 이런 느낌으로. 그렇게 동참케 하시는 축복은 아! 사랑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닙니다. 사랑은 돈보다 낫습니다. 태진아의 명언이 아니고 태진아는 그런 소리해서 돈 벌지마는. 주께서는 변함없는 원칙입니다.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지요. 그러면 새 술은 복음이고 다른 말로 주의 사랑입니다. 그러면 묻습니다. 사랑을 담을 부대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없으면 우리가 왜 부대냐, 사랑에 의해서 우리가 그동안 살아왔던 원리원칙이 욕을 얻어먹는 그 자체가 부대로 만들었어요.

단죄함에서 오는 우리의 화풀이, 우리 뜻대로 안 되는 속상함, 원망, 불평, 그 단죄함을 통해서 우리가 단죄 받을 만한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파악할 때 “그리스도 안에서 정죄함이 없나니” 가 성립되는 겁니다. 병 주고 약 주고, 병도 주님이 주시고 약도 주님이 주시고. 병 줌으로서 옛 부대가 새 부대가 되고, 약 줌으로서 옛 술이 새 술이 되고,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던 다른 바탕과 다른 게임의 법칙에 의해서 우리가 지금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강도 맞습니다. 맞는데, 구원으로 천국 갑니다. 죄인은 못 간다는 그 천국, 의인들만 간다는 그 천국에 강도라는 레벨을 달고 갑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놀리는 그 창녀, 돌로 때려 죽여도 괜찮은, 니 때문에 이혼한 가정이 한 두 가정이 아니었어! 그런 꽃뱀 같은 여인이 덜렁 어디를 간다? 천국에 가는 거예요. 기생이 어디에 참여 한다? 놀랍게도 하나님이 승리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물로 만천하에 동원되면서 직업도 빠뜨리지 않아요. 기생 라합. “아이고, 부끄러워라, 씨~” 바람피운 상대방 남자를 때려죽인 그것도 미필적 고의로 얍삽하게 죽인 그 사람이 천국에서 살고 있다는 것.

새 술과 새 부대가 적용되는 원칙인 나라에서는 얼마든지 그것이 충분하게 가치 있는 거예요. 아침 10시부터 일한사람들은 잘리고, 달랑 1시간 받아놓고 하루 종일 품삯 다 받아 챙긴 사람이 천국에서 산다. 납득이 안 돼요. 납득이. 어떡하지? 이럴 때는. 1시간 땡땡이치다가 제대한 사람과 3년 동안 빙빙 돌면서 제대한 사람과 둘 다 예비군이라, 납득이 안 돼! 납득이. 이걸 매일같이 어떻게 감당하지요? 매일같이.

이게 감당이 안 되니까 십자가마을보고 이렇게 욕을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마음껏 죄지을까요? 그러면 우리가 막 살아야 되겠네.” 이게 바로 옛 술과 옛 부대에 담아서 원칙 했던 사람이 성경말씀 보면서 어느 길로 갑니까? 멸망의 길로 가지요. 멸망되기로 작정한 사람을 노출하는데 성공한 거예요. 복음은 항상 성공입니다. 복음을 들고 가면 잘 풀리는 집이라, 아무 하자 없어요.

천국 안 갈 사람이 교회 안 나오는 것, 너무나 잘한 짓입니다. 천국 못 갈 사람이 계속 교회 나오는 것, 다 힘들어요. 분명히 이것은 장사 거래가 있었던 거예요. 종교적인 거래가 있었던 게 분명합니다. 그걸 너무 이용했어요. 그것 교회 컸다는 자긍심이 복음을 바꿔버린 거예요. 그냥 죄인 같은 우리가 용서받은 것을 가지고 우리는 그 귀한 복음을 사람이 천하를 얻고도 지 목숨 잃으면 무슨 소용없다 했잖아요. 우리는 천하 잃어버린 사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걸 얻어놓고도 세상 떠나가는 것을 그걸 못 붙잡아서 한 맺혀 있어요. 사랑이 저 만치 가네. 그걸 가지고 눈물 흘리고 있어요.

주의 십자가 생각하면서 울 눈물을 사랑하는 사람이 배반해 떠났다고 그것 때문에 사랑이 저만치 가네. 하고 울고 있다고요. 끊임없이 우리의 기존의 숨겨진 옛 술과 옛 부대를 율법에 갇혀서 율법으로 단죄 안 받는 축복받는 인생 되고자 노력하고 있는 교회에서 목사 말 들어서 우리의 저주대신 축복이 오기만을 바라는 그 분투노력이 그것이 바로 사실은 우리를 멸망으로 인도했다는 사실을 성령께서 계속해서 까집어 뒤집는데 성령 받은 우리는 환장할 지경이고, 주변사람은 복음이 뭔가를 아는 계기를 마련하는 겁니다.

이익은 말씀만 이익보고 힘든 것은 우리만 힘들고 그런데 힘든 가운데서도 우리 자신을 부인하는 순간 우리는 아! 우리의 영광이라고 살아온 것이 후회될 때, 우리는 말할 수 없이 우리는 돈으로 살 수 없는 희열과 기쁨이 잠시 반딧불처럼 불꽃놀이 하는 것처럼 잠시 화려했다가 다시 가버리고. 또 다시 밀물처럼 왔다가 또 다시 가버리고.

오는 것은 주께서 보내고 미는 것은 나의 욕심이 보내고 “이제 복음 알았으니 됐습니다. 오늘 저녁에 봅시다.” 밀어내고. 또 사건 터지면 화들짝 놀래다가 좀 살 것 같으면 이제는 내 힘으로 살겠다고 밀어내고.

18절 봅시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이게 뭐냐 하면, 정신에서 물질로 가다가 우리의 이스라엘 물질을 위해서 세상이 있다고 생각하다가 이 물질이 깨졌을 때에 원인을 찾아보니까 그 원인이 결국은 뭡니까? 물질은 물질이 아니었고 결국은 내 안에, 내 정신 안에 말씀을 주신 그 말씀이에요. 말씀이 우리로 하여금 물질과 정신을 나누어서 생각하게 했다가 결국은 그의 끝을 보여준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망한다는 것을 이스라엘을 통해서 미리 보여주고 그 망했던 그것을 이방인인 우리에게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심어주게 되면 우리는 이스라엘이 잘못했던 것을 또다시 되풀이 하면서 결국은 정신, 물질 두 개다 챙기려 하는 우리 자신이 자신 속에 나보다 힘이 더 센 깊이 있고 넓은 말씀이 이미 우리를 접수한 거예요. 우리를 정복하신 겁니다.

우리는 선지자 될 필요가 없는 이유가 예수님이 이미 우리에게 승리했기 때문에 이제는 남한테 굳이 승리할 골머리를 수고할 이유가 없어요. 마귀를 이겨도 주께서 이기는 것이지, 우리가 이기는 게 아니거든요. 우리가 마귀에게 복 받으려고 하지 마세요. 주께서 함께 있다는 그 자체가 축복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끝으로 이 말씀하고 마치겠습니다. 마태복음 산상설교 보면,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빛은 숨겨놓지 않고 들어낸다, 할 때에 어떻게 우리가 나선다고 드러나는 것이 아니고 우리는 숨는 게 주특기예요. 우리는 나서기 싫어하는데 자꾸 나서도록 이슈가 되도록 자꾸 등경위에다가 놓아요.

우리는 세상의 소금이라, 소금이 맛을 잃으면 이거는 흙이지 소금이겠습니까? 자꾸 독특한 맛, 소금다운 맛을 내도록 주께서 말씀이 너희는 빛이라는 말씀이 우리의 고집보다도 더 세고 너희는 소금이라는 그 언질이 그 말씀이 살아 생동해서 쪼개서 살아 운동하여서 기어이 소금되는 쪽으로 우리를 사용하는데, 우리는 환장할 지경이에요.

기생 라합이라는 이름으로 그 레벨을 떼어보니까 소금이 튀어나오고, 나는 강도다! 하고 강도는 분명히 물질적으로 맞아요. 강도라는 물질을 떼어보니까 세상의 빛이라고 사용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게 했습니다. 우리는 어느 대학 나왔고, 직분은 목사고, 장로고 붙이는데, 레벨을 떼어보니까 나는 목사이고 싶고, 죄인 아니고 싶고, 전과자 아니고 싶은데, 우리는 창기 아니고 싶은데, 그 레벨을 떼어보니까 너는 자유자다, 하면서 튀어나오는 겁니다. 말씀이 진짜고 바깥에 있는 것은 그냥 껍데기에 불과한 것을 우리를 이렇게 인도하시니 우리는 날마다 어떡하지? 이렇게 되는 겁니다.

“어떡하지?”의 답변이 뭐냐, “그리스도의 은혜로 자라가라.”그리스도 아는 은혜의 지식으로 자라가라, 니가 너를 그렇게 조저 놓은 그 분에게 고마워하면서 살아가라, “나는 내 능력으로 나를 이런 인간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를 고백하면서 분명히 우리에게 먼저 다가오셔서 질문하신 말씀하신, “맞지요? 당신이지요?”라고 하면서 자라가라.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마지막 18절에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찌어다” 나의 영광이 아니고, 주님의 영광이 영원한 날까지, 여기서 ~까지라는 말이 나오는데, 까지라 하는 것은 마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지속’을 의미한다. 이리 했지요.

지속은 브레이크가 없습니다. 밀어 붙이는 속력이 계속해서 연장되거든요. 그런데 흔히 쓰는 까지라는 말은 뭐냐 하면, 여기까지 와서는 그 다음에는 아예 없어지는 것처럼 하거든요. 니가 하늘나라 올 때까지 포도주에서 난 것은 다시는 마시지 않을 것이다 할 때는, 그 까지라는 의미는 진짜 포도주는 본격화된다, 그런 뜻이거든요. 성경에서.

‘천년이 차기까지‘는 천년 다음에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영원히 천년동안 왕 노릇 한다, 그런 뜻이에요. 우리는 지금 구원받은 사람은 영원히 구원받습니다. 왜? 내가 조절하는 것이 아니고 누가 조절하신다? 주께서 이미 영원히 박혀있으니까 우리는 빼도 박도 못하고 영원히 우리를 조절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영원히 찬양하고, 영원히 감사하고, 영원히 내 영광 조지고, 주의 영광 높이는 그 작업이 오늘도 쉬지 않았음을 저희들 새 술과 새 부대의 입장에서 고백하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첨부파일 : 안양20121214b-벧후3장17절(질문하심)-이 근호목사.hwp (110.5K), Down: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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