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강-나1장9-14(유혹)121223-이 근호 목사
3강-나1장9-14(유혹)121223-이 근호 목사
이름 : 이한례(IP:203.90.41.16)
3강-나1장9-14(유혹)121223-이 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 나훔 1장 9절에서 14절까지입니다. 구약성경1299페이지입니다.
나훔 1:9-14
“너희가 여호와를 대하여 무엇을 꾀하느냐 그가 온전히 멸하시리니 재난이 다시 일어나지 아니하리라 가시덤불 같이 엉크러졌고 술을 마신 것 같이 취한 그들이 마른 지푸라기 같이 다 탈 것이어늘 여호와께 악을 꾀하는 한 사람이 너희 중에서 나와서 사특한 것을 권하는도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비록 강장하고 중다할지라도 반드시 멸절을 당하리니 그가 없어지리라 내가 전에는 너를 괴롭게 하였으나 다시는 너를 괴롭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이제 네게 지운 그의 멍에를 내가 깨뜨리고 너의 결박을 끊으리라 나 여호와가 네게 대하여 명하였나니 네 이름이 다시는 전파되지 않을 것이라 내가 네 신들의 집에서 새긴 우상과 부은 우상을 멸절하며 네 무덤을 예비하리니 이는 네가 비루함이니라“
세상 모든 역사라 하는 것은 심지어 유대나라 뿐만 아니고 앗수르의 니느웨라는, 앗수르 나라까지 보이지 않는 분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지배하고 있는 하나님이 그렇게 지배를 한다면 그야말로 하나님이 인간한테 존중을 받으려면 사람들에게 잘해줘야 되지 않습니까? 이렇게 사람들이 살기에 힘들게 만들어놓고 존중은 존중대로 챙기려하고 사랑은 사랑대로 받으려하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 못 할 이유가 충분하죠.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어도 마음이 안 당기는데 어떡하란 말이죠? 당기지를 않는데. 사람이 사람에게 잘해줄 때 고마운 마음이 들어서 같이 보답하듯이 잘해주고 싶은데 살기가 이렇게 힘들어서 무슨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칭찬과 존경을 받을 만하다 말입니까? 그래서 이건 안 되는 거죠. 우리와 하나님 관계가 원활치 않는 거죠.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그 모든 것이 누가 꼬여서 그렇다는 거예요. 너희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대들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하나님과 너희 사이에 누가 하나 미친 개 같은 게 등장해서 하나님의 복음을 이렇게 가리니까 사람들이 거기에 유혹을 받은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보시면 돼요. 하나님의 일이라 하는 것은 먼저 우리가 충분히 유혹 받게 하고, 그 다음에 유혹자가 누군지를 알게 만들고, 그 다음에 유혹자가 하는 짓이 우리한테 좋은 소리해도 유혹이라는 것이 꼬시는 거예요. 좋다, 좋다 해도 결국 복음을 막는 그 일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하시고, 첫 번째는 유혹을 하고, 우리는 유혹받게 되고, 그 다음에 유혹하는 자가 우리로 하여금 복음을 가로막게 만들고, 세 번째가 뭐냐 그걸 통해서 우리를 다른 길로 이끄시는 겁니다.
그 다른 길이라 하는 것은 우리가 예상 못한 다른 길이죠. 전에 언젠가 우리 최 장로님께서 이사야 서론을 거론하시고 또 기도하시면서 그 말씀을 하셔서 얼마나 감사한지요. 복음의 요약을 말씀하셨어요. 피로 붓질한다. 하나님께서 피로 붓질한다는 것은 우리가 예상도 못한 거예요. 전혀 다른 길이예요. 그런데 피로 붓질한다는 것이 좋아지려면 우리는 세상의 유혹에 흠뻑 젖어들었고, 그리고 우리는 이 복음을 못 받게 하는 것에 같이 춤추고 말려들었는데, 거기에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전적으로 구원한다면, 우리가 믿을 것은 우리 몸에 붓질하시는 예수님의 피 밖에는 다른 게 있을 수 없죠.
그런데 그 붓질할 때 이런 유혹과 우리가 복음을 싫어하는 쪽이라는 것을 인정해줘야 되는데, 만약에 유혹도 안 받고 복음도 나는 좋아한다. 이렇게 나와 버리면 이건 마치 마네킹에 붓질하는 게 돼서 이건 아무 소용이 없어요. 마네킹은 금칠도 하고 은 칠도 하고 피 칠도 할 수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붓질하시는 피가 효과 있기 위해서는 우리의 겉면을 뜯어내십니다. 이걸 수요일 날 박피작업이라 했는데, 뜯어내는 작업을 하죠.
금요일에도 광주에서도 그런 강의 했습니다만 남자들이 다리에 파스 붙여놓으면 뜯어내는데 아파요. 그것도 많이 아파요. 털이 있어서. 파스 붙이고 이걸 뜯어내게 되면 우리가 평소에 유혹받았던 거, 그리고 우리가 복음을 가려도 우리는 아무 상관없다고 했던 그러한 껍데기도 같이 뜯기는, 그 막 뜯긴, 방금 뜯긴 곳에 피로 붓질해야 돼요. 이걸 뜯어서 한참 놔두면 또 딱지가 생겨서 꼭 마네킹과 똑같은 거니까, 늘 뜯어내는 작업과 동시에 하나님의 피가 붓질하게 되면 ‘아! 우리가 이런 죄인인데 주께서 용서했구나!‘ 라는 것이 우리에게 싹 보여 지게 됩니다.
그래서 이 시간 우리는 그 뜯어낼 때, 그 뜯어내는 것은 어떻게 조성돼 있고 뜯어내는 그 세계는 어떠한 세계인가 그걸 제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나훔이라 하는 것은 원래 앗수르 나라에 대해서 예언한 거거든요.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앗수르는 남의 나라입니다. 이 유다나라하고 관계없이 그렇게 보이는 거예요.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남의 나라의 운명에 대해서 이렇게 신경을 쓰느냐 이 말이죠. 자기 나라 백성만 건질 것이지.
앗수르 이 나라 전체가 못사는 나라가 아니에요.(잘 들으셔야 돼요.) 잘사는 나라예요. 잘살아도 너~무 잘 살아요. 영토가 터키, 시리아,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이라크, 요새 같으면 이스라엘, 애굽, 이쪽 중동지역 이 나라를 전부 다 점령했습니다. 그 점령했던 그 나라에 변방에다 무역을 하는 도시를 세워놓으면 그 큰 나라 들어오려는 입구들이 그냥 못 들어오고 세금을 가지고 들어오거든요. 그 세금은 그 당시 이 세상에서 최고로 값나가는 물건들이 결국 어디 모이느냐 하면 경제적인 수도 니느웨, 앗수르 나라 거기에 집결되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강원도 촌에 있다가 서울에 한번 가면 놀라잖아요? 제주도 있다가 서울 가면 놀라듯이. 촌에 있다가 서울 보면 휘황찬란하고 건물 높은 걸 보면, 촌사람 다 됐다. 촌사람 맞구나. 도시 사람 좋구나. 어쨌든 간에 그 서울이라는 그 도시 안에 한번 진입을 해보려고 그렇게 하잖아요. 제가 사정상 촌에도 돌아다니면 촌에는 지금 노인들밖에 없어요. 그런데 가끔 40대 아줌마들이 있으면 제가 한 것도 없는데 굉장히 고마워요. 세상에, 40대 젊은 아낙이 이런데서 사노, 빨리 도시로 안 떠나고. 내가 고마울 게 뭐 있어요? 되게 고마워요.
얼마 전에 강구 갔는데, 게 파는 아줌마도 내가 아무리 봐도 사십 다섯 밖에 안 보이는데 그렇게 기특해 보이더란 말이죠. 여기서 시어머니 모시고 사시는구나, 이런 식으로. 사정은 어떤지 모르지만. 2만 원짜리 만원에 팔고, 세상에 많이 왔다고 2마리씩 더 주고, 한 상에 12마리나 주고, 아유 고마워라. 이렇게 되는 거예요. 젊은 애들은 꿈이라는 게 있어요. 언젠가 내가 세상에 나가서 내 날개를 펼쳐 보리라. 임재범의 비상이란 노래가사에 보면 있어요. 이제 한번 태어났는데 돌아갈 길도 모르겠다. 이런 식으로 가사가 있는데 활짝 자기 날개를 펴고 싶은데 어디 강구에서 날개를 폅니까? 어디 촌에서 날개 펴면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야지. 그러니까 잘 되든 못 되든 서울로, 서울로 다 가는 거예요.
앗수르가 그런 세계니까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탐스럽기도 한, 경쟁적으로 누가 유혹해 주는 사람을 아예 기다리고 있어요. 경쟁적으로 거기에 다 몰리게 돼 있습니다. 소위 제일 똑똑한 것도 서울, 제일 돈 많은 사람들도 서울, 제일 멋있게 살아가는 것도 서울, 아무리 김해에서 잘 나가도 서울 가면 촌티 나는 촌놈에 불과한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앗수르를, 왜 하나님께서는 앗수르를 이렇게 갋겠습니까? 그것은 자기 백성을 미혹했던 바로 거대한 찬란한 최고의 제국이기 때문에 갋는 겁니다. 항상 뭔가 우리는 하나님, 하나님, 믿는다 하지만, 그 하나님보다 더 좋은 소식을 나한테 좀 잡아당겨주는 쪽이 있으면 좋겠다, 하는 그걸 지금도 간곡하게 은밀하게 기다리고 있어요.
금요일 날 광주 강의 마치고 택시타고 새벽에 오는데 손님 나 태워놓고 기사가 전화하면서 되게 시끄러워요. 야, 좋은 소식 알려줄까? 어떤 버스 기사한테. 이번에 연말 되면 택시도 대중교통으로 등재된단다. 말은 안하는데 지금 다 위에는 다 됐대, 선거 끝나면 다 해주게 돼 있대. 야~. 이러거든요. 택시가 대중 교통되면 구원받습니까? 돈은 좀 벌지는 모르겠는데 보조금 더 받을지는 모르겠는데 구원을 받느냐 이 말입니다. 안 받죠.
바로 이스라엘, 유대나라의 특징, 특히 오늘날 성도의 특징은 진짜로 기쁜 소식이라 하는 것은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이예요. 그게 복음이잖아요. 복음이 기쁜 소식 되기 위해서는 먼저 이 복음을 가리고 있는 은근히 우리가 복음 때려치우고, 예수님, 하나님 다 때려치우고 진짜 내가 은근히 좀 유혹해 줄 수 있는 뭔가가, 그 미지의 X를 그거부터 정체를 노출시키는 작업,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의 작업 이예요. 우리는 차마 말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너 이거 원했잖아.’라는 것을 등장해 놓고 사실은 너희를 천국 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훼방하는 이러한 세상적인 악마의 술책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런 것들을 먼저 깔아놓는 거예요.
나훔도 마찬가지인데 나훔에 들어가기 전에 예수님 당시에 유혹거리가 뭐냐 하면 예수님 당시 유대인 사회의 유혹거리는 놀랍게도 자신의 의였습니다. 자기의 의! 못 먹고 가난하고 이렇게 힘들고 외롭게 살아도 뭔가 나는 이것 때문에 산다는 보람이 있다고 하는 그게 뭐냐, 자기 의입니다. 내가 평생 주님 봉사했다는 자기 의로움! 자기 행함! 참 이거 많이 튕겨나갔습니다. 정말 이거 많이 튕겨나갔어요. 이 근호 목사님 말씀은 다 맞는데, 예수 믿고 난 뒤에는 예수 믿은 자가, 성령 안에 있는 자가, 하나님의 의를 아는 자가, 십자가를 제대로 아는 자가 행하는 행함이 따로 있잖아요? 왜 그걸 자꾸 그것마저 죄라고 합니까? 이렇게 나오더란 말이죠. 그런데 왜 화를 내시죠?
그것마저 죄라고 지적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매일같이 작용하시는 하나님의 구원 작전은 모든 것을 죽음 상태에서부터 매일같이 새로 시작하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직접 들은 이야기니까 나보고 한 소리니까. 이미 우리는 죽었다가 살아났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러면 사도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는다.’는 말은 뭔 뜻입니까? 날마다 죽는다는 말은 사는데 힘들다 그런 거예요? 그런 식으로 날마다 죽으면 시장에서 바지 장사하는 사람은 날마다 죽네요. 그런 날마다 죽음이 아니라니까요. 사람이라 하는 것은 사랑의 깊이와 높이와 넓이를 다 모르기 때문에 항상 코앞에 있는 것만 이야기해요. 하나 예를 들겠습니다. 어떤 건물이 있는데 항상 건물 들어갈 때 제일 먼저 마주치는 것은 당기시오, 미시오, 아니면 자동문, 이런 거거든요. 어떤 데는 자동문이라 해놓고 가보면 열리지를 안 해요. 누르세요, 이게 무슨 자동문 이예요? 항상 마주치는 것은 당기시오, 나는 항상 실수해요. 나는 성질이 급해서 문을 밀어서 열고 보니까 나중에 보니까 당기시오, 돼 있는데 미시오 돼 있고. 나중에 미시오, 해서 보면 당기시오, 돼 있고, 우리 동네 목욕탕이 그래요. 남탕은 당기시오, 로 돼 있어요. 내가 생각하기로는 밀고 들어가는 게 소비자에게 좋은데, 왜 당기시오, 하는지, 당기면 내가 받히는데, 언젠가 시정조치를 하도록 해야 되든지, 중요한 문제는 세상구원과 관계없는 이야기지만.
인간은 항상 코앞에 있는 것, 그 문에 요거 열면 뭐 되겠지, 요거 열면 희망이 보이겠지, 요거 하면 내 소망이 이루겠지. 맨날 연말 되면 말씀 뽑기 해서 돈 받고, 맨날 그거 하거든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 문에 당기시오, 미시오, 란 그것이 건물의 속성을 말해주느냐 이 말입니다. 그 건물이 호텔인지, 관공서인지, 교회인지, 목욕탕인지 그걸 말해주느냐 이 말이죠. 사람은 자기가 어느 자리에, 어느 공간에, 어느 영역에 있다는 걸 모르고, 그저 사람들이 필요한 것은 내가 뭐하면 됩니까? 밀까요? 당길까요? 자동문 누르면 됩니까? 맨날 코앞에 날마다 들이닥치는 그것만 챙기면 자동적으로 뭔가 일이 되는 줄로 알고 있다 이 말이죠.
주님께서는 너는 지금 당기든지, 밀든지 상관없어. 어떤 영역 속에 있는 거예요. 지난 주일에 설교하면서 내가 은혜 받은 게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사람이 사람을 죽여도 지옥 갈수가 없다고 이야기했어요. 어디 가고, 말고, 사람은 안 돼요. 그냥 그 자리에서 매일같이 죽어가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유혹자를 보내는 것은 유혹자 피하면 산다는 게 아니라, 이미 너는 이 유혹자와 결탁이 돼 있어서 네가 밀든지 당기든지 누르든지 이미 너는 매일같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는 겁니다.
그렇다면 다른 길은 뭐냐, 네가 할 수 없는 이 죽음이란 이것이 어떻게 영생과 생명으로 이어지느냐,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겁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상치도 못한 다른 길이죠.
제가 지난 금요일에 터미널 가기 전에 버스를 탔는데 여기서 직행 1번을 타고 가요. 가는데 이상하게 저는 가는 곳마다 예화가 덩어리로 굴러다녀요. 가는데 앞에 20대 아가씨가 둘이 이야기를 하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호주가서 놀러가는 이야기를 했어요. 속으로 ‘이 아가씨들아, 호주에 놀러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여기서 노나 호주 놀러가나 사실은 별 차이 없어요. 그런데 호주에서 죽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 호주가 같은 질의 호주가 될 수가 없죠. 싸이라는 가수가 LA에다 16층짜리 콘도미니엄을 돈 벌어서 샀다는 거예요. 그런데 싸이라는 가수가 LA가서 만약에 죽게 되면 그 LA라는 도시의 의미가 달라지잖아요.
우리는 그저 놀러가듯이 오늘은 대구에서 놀다가 강구에서 놀다가 서울 가서 놀고, 뭔가 멋있게 꿈을 펼치는 죽음이 없는 나의 꿈을 맘껏 펼치는 그런 놀이마당처럼 세상을 그렇게 보는 겁니다. 오늘도 이문 열고 회사에 들어가서 저문 열고 경유해서 이문 열고 저문 여는데 그 겹겹이 있는 문들이 어디에서 쏟아져 나온 문들이냐 하면 바로 죽음이라는 것, 죽음의 바닥에서 쏟아져 나온 앗수르입니다. 사람들이 문을 여는 것은 미혹받기 위해서 유혹을 못 이겨서 문을 여는 거예요. 집에서 가만히 놀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새로운 발전을 위해서 사람은 발전하는 재미로 사는데, 그 발전과 성장이라는 것은 나보다 더 나은 쪽을 향하여 방향을 돌려야 그게 내 목표가 생기는 거 아닙니까?
유대나라에 있어서 그 당시 앗수르라 하는 것은 이상 이예요. 모든 꿈을 다 실현시켜주는 곳 이예요. 사는 재미를 느끼고 사는 보람을 느끼고, 비록 나는 이 꼬라지지만 저 앗수르에 가서 출세하겠다는 그 희망을 흠뻑 제공하는 곳이 바로 앗수르였습니다. 그 앗수르에 대해서 하나님은 말합니다. 너희가 앗수르가 망하게 돼 있는데 그중에 너희로 하여금 이렇게 미혹하게 하는 것은 그 속에 그 앗수르가 그 미혹하는 자가 진짜 유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으로 만난 적을 너희들이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이 말이죠. 우리가 저 사람은 좋아, 저 사람은 좋겠어, 라고 했는데, 박 근혜는 좋겠다, 박 근혜는 시집 안가도 좋겠다. 얼마나 좋은데. 하고 있는데 그 박 근혜가 하나님 십자가 앞에서 어떤 박 근혜냐, 최 박근혜, 어떤 박근혜냐를 우리가 미리 아느냐 이 말입니다. 그걸 알고 부러워하느냐 이 말이죠. 같은 짱 나고 같은 꼴 나려고.
여기 본문 11절에 보면 “여호와께 악을 꾀하는 한 사람이 너희 중에서 나와서 사특한 것을 권하는도다” 이렇게 돼 있습니다. 여기에 악은 반드시 핵이 있어요. 한두 달 동안 제 발꿈치에 사마귀가 나서 애먹었는데 병원에 가서 메니큐어 같은 약을 사라 해서 난 일주일 바르면 날 줄 알았어요. 두달 걸려서 바르니까 나중에는 분화구처럼 쏙 빠져서 그때부터는 좀 덜 절뚝거리고 나았습니다. 뭐든지 핵이 있어요. 하나님께서는 지금 메니큐어 같은 약을 발라서 그 핵 부분에 우리를 데려갑니다. 고게 쏙 빠지는 거예요.
그렇다면 그 앗수르의 하나님 앞에 노골적으로 대드는, 하지만 다른 사람 보기에는 너무너무 부러운 사람, 증거 대면 하나님 앞에 욕하는 말도 자신감도 넘치는구나, 저렇게 잘살고 저렇게 큰 군사가 있으니까 마음 놓고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큰소리 칠 수 있잖아,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없이 사는 인간의 진정한 자유로움을 만끽해서 보여주는 그런 쪽을 우리가 은근히 원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게 누구냐, 산헤립이란 사람입니다. 산헤립!
이사야 36장, 37장, 38장에 보면 죽 나오는 이야기예요. 산헤립이란 사람은 그들은 이스라엘을, 유다 나라를 잡아먹기 위해서 어쩔 수없이 유다나라가 섬기고 있는 여호와를 건드릴 수밖에 없게 돼 있습니다.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걸 또 이용했죠. 여기서 어려운 거 하나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람들에게 제일 이해하기 힘든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 이 거룩한 말씀이 우리로 하여금 죄로 데려가는 유혹이 된다는 이야기를 로마서 7장에서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신학들이나 모든 교회나 이런 사람들이 어디서 자빠지고 코가 다 깨지느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룩합시다.’ 까지는 안 깨져요. 그런데 그 말씀이 우리로 하여금 더욱 더 죄짓게 만들고 위선자로 만듭니다. 하는 그 작용을 하기 위해서 말씀 주었습니다.
다시 하겠습니다. 말씀을 주게 되면 우리는 위선자 아니라도 그 다음부터 위선자 행세를 하면서 살아가고 싶은 충동이 우리를 완전히 포장하게 됩니다. 라는 그 진리를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로마서 7장에 나오는 말씀인데. 도둑질 하지 마라, 라는 것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로 하여금 도둑질 하게 만들어요. 탐내지 마라, 하는 것이 우리를 더욱 더 탐내게 만들었어요.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말씀을 어기고 싶은 충동이 이미 우리 안에 내장돼 있다는 것을 까발려주는 기능을 말씀이 하고 있는데, 우리는 말씀을 보면 볼수록 점점 착해진다는 그런 착각에 우리가 빠지게 되는 겁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항상 핵되는 것, 하나님의 핵되는 말씀과 할 때 산헤립이 핵과 마주칠 때 그들은 유다나라를 마주쳤는데 하나님은 유다나라 속에 누가 있었느냐 하면, 엘리사 선지자가 있었고, 거기에 히스기야 왕도 있었거든요. 그건 사람이고 사실 그 안에 누가 계신가, 하나님의 언약이 있고 하나님이 계셨던 거예요. 하나님의 이름이 계셨던 겁니다.
긴 소리 안하고 짧게 이야기하겠습니다. 이사야 37장 36절에 “여호와의 자가가 나가서 앗수르 진중에서 십팔만 오천 인을 쳤으므로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본즉 시체뿐이라” 앗수르 군대는 원래 시체였습니다. 마귀가 시체를 동원해서 유다나라를 약 올린 거예요. 그러니까 히스기야는 시체보고 겁을 내서 ‘우째노, 우째노.’ 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원래 그들은 시체야. 너도 시체지만 저것도 시체야” 하나님께서 시체와 시체를 붙여놓고 겁을 먹고 벌벌 떨고 있는 사람은 구원하시고, 까부는 사람은 지옥 보내시고, 그게 하나님의 작전이다, 라는 것을 앗수르를 통해서 보여주는 겁니다.
사람이 명품으로 치장을 하고 고급스럽게 금목걸이하고 얼굴에 사슬하고 멋있어 보이지만 죽을 때는 그게 무슨 소용 있습니까? 본인은 안 벗겠지만 죽을 때는 다 벗겨가요. 뉴스에 보니까 어떤 아저씨가 물건을 훔쳤는데 세상에 물건을 훔쳐도 더럽게 훔쳐요. 죽은 시체에서 금니를 훔친 사람이 있어요. 참 그 사람도 귀신도 무서워 안하는 해병대 출신인 것 같은데, 죽은 시체 손에 있는 금을 빼갔다니까요. 절도죄. 얼마나 세상을 제대로 보여주는 사람입니까? 시체가 바보 같아. 자기 금 목걸이 빼도 가만히 있어요. 우리 얼마 안 가서 전부 다 바보 다 됩니다. 관 속에 누워서.
그래서 핀란드나 어떤 여행코스 중에 하나가 관 속에 누워보는 여행코스가 있답니다. 다들 오셔서 관 속에 한번 누워보시고 누워보면 세상이 달리 보인다는 거예요. 관 속에 누워서 자식들한테 유언도 해보시면 이 금, 은 이런 게 아무 짝도 소용없습니다. 지난 수요일 날 이야기했거든요. 금이나 은이나 하는 것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한다. 이 말은 잘 먹고 잘살라고 하나님 계신 게 아니고, 잘 먹고 잘 사는 그런 유혹 자체를 너희가 벗어나지 못하는 너희들을 그래도 너희들을 그런 유혹도 벗어나지 못하는 너희를 천국에 보내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다.
그러나 금과 은 가지고는 하지 않을 거야. 오히려 너희는 지금 죽어가는 입장에서 죽는 이유는 그저 세상 것, 서울, 앗수르 잘사는 나라, 그런 것을 맨날 그리워하면서 살아가는 못난 우리, 거기에 같은 시체를 붙여서 같이 벌벌 떨게 만들면서 그 틈새에 ‘봐라, 너희들이 좋아하는 저것도 내 앞에서, 말씀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잖아.’라는 것을 깨우치게 해주십니다. 그 깨우치게 하게 되면 그 깨우침을 받는 대상이 누구냐, 구원받는 자예요. 구원받는다는 것이 금을 싫어한다는 말이 절대로 아닙니다. 언젠가 뷔페 별로 안 좋아한다 하다가 말실수 할 뻔했잖아요. 뷔페 한 번도 못 얻어먹을 뻔했어요.ㅎ 안 좋아한다는 말이 아니고 그런 것들이 세상 사람들이 다 원하는 것들이 구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자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구원받는 사람이다 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다나라는 믿지 않아요. 유다나라도 똑같고 마찬가지예요. 그것도 부러워라, 하고 인간들이고 똑같이 마찬가지인데, 그렇게 못난 유대나라지만 하지만 주께서는 버리지 아니하시고 계속해서 말씀을 주셔서 ‘너는 앗수르보다 더 좋은 나라 백성이야, 그 딴 앗수르 백성 되려고 부러워하지 말고 정말로 부러워할 것은 아무도 갈 수 없는 그 나라, 미시오, 당기시오, 누르시오, 그런 눈앞에 보이는 그런 성공, 실패 그것 가지고 울고불고 좋아하지 말고 현재 우리가 어느 소속이냐,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렇게 항상 받는 말씀의 실체를 우리가 온몸으로 받게 되는 그 영역 권 안에 우리가 놓여있는 우리가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세상을 너무 코앞에만 보고 그것으로 성공과 실패를 논하고, 그것으로 인생의 즐거움과 불행을 논했던 우리, 하지만 그런 것들이 유혹인 것을 깨닫게 해주시고, 진짜 구원의 핵은 십자가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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