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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목사

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

[12 대구강의 22] - [피 83] - 해골더미강의[피]

[12 대구강의 22] - [피 83] - 해골더미

이름 : 구득영(IP:203.223.97.152)

[12 대구강의 22] - [피 83] - 해골더미

12,11,19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오늘은 교재 253페이지부터 살펴보자.

** 성도는 세상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성도 안에 있는 주님의 피가 성도가 밖에서 움켜쥔 그 어떤 것보다 고귀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면 감사가 나오지 못한다.

성도는 이 세상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는데, 왜냐하면 성도 안에 있는 주님의 피가 밖에서 움켜쥔 그 어떤 것보다 고귀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다. 그것에 대한 적절한 예가 에스겔서 37장에 나오는데, 거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데리고 대화를 시작하신다는 것이다.

(겔 37:1)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하시고 그 신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겔 37:2)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겔 37:3)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겔 37:4)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겔 37:5)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겔 37:6)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두리니 너희가 살리라 또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
(겔 37:7) 이에 내가 명을 좇아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더니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서 뼈들이 서로 연락하더라
(겔 37:8)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겔 37:9)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하셨다 하라
(겔 37:10) 이에 내가 그 명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 일어나서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 인자와 해골더미 !!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고 하니, 그게 장소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 장소가 어디인고 하니까, '해골더미' 라는 것이다. 해골이 한 두 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수북히 쌓여져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죽은 지가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물기가 있는 축축한 해골이 아닌, 물기가 하나도 없는 바짝 마른 해골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왜 그러한 곳으로 데리고 가셨는가? 우리는 여기에서 먼저 에스겔의 이름이 '인자' 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데, 즉 에스겔의 이름은 '인자' 이고, 그런데 나중에 오실 예수님의 이름도 역시 '인자' 라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인자' 라고 부르면서, 그렇게 인자가 되는 사람과 이야기를 하는 환경이 어떠한가? 그 주변이 몽땅 다 해골더미가 된다는 말이다. 그러니 해골이 없는 곳에서는 주께서 일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이스라엘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말이다. 그래서 주께서는 해골더미 가운데서 일을 하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해골더미에서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먼저 묻는데, "인자야, 이 바짝 마른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라고 말이다. 주님의 질문은 그야말로 어처구니가 없는데, 하나님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숙제를 낸다든지, 열심히 기도를 하라고 하면, 그런 것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바짝 마른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라고 전혀 엉뚱한 이야기를 하신다면, 그 답변은 하나마나하다는 것이다. 이 뼈들이 자기가 알아서 스스로 기어서 나올 이유는 없고, 또한 에스겔이 뼈들을 살릴 수 있는 문제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도 바짝 마른 뼈를 말이다.

◈ 아니, 어찌 그럴 수가?

여기서 우리는 인자 됨을, 즉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인자로 부르시고 친히 일을 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시는 분이 아닌데, 즉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다 배제시켜버린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은 우리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일을 하시는데, 그래서 만약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하면, "어찌 그럴 수가? 도저히 있을 수가 없는 일이 벌어졌네" 라고 하면서, 찬양과 감사가 나올 수밖에 없는 일들을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일은 무엇인고 하니, 우리 사람들의 일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일단 바짝 마른 뼈로 보시는데, 즉 해골로 보신다는 말이다. 그것도 바짝 마른 해골로 말이다. 그러한 해골더미에서 하나님과 인자가 대화를 시작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인자가 등장했을 때는 그 주변환경이 어떻게 되는고 하니, 모든 것을 해골로 보시겠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안목이고, 그리고 인자가 된 에스겔은 그런 하나님의 안목에 같이 끌려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안목에 같이 말이다.

◈ 그러면 오늘날 성도들은?

인자는 성신을 받은 자인데, 그렇다면 오늘날 성도는 어떠한가? 성령을 받았는데, 즉 우리가 인자의 영을 받았는데, 그렇다고 하면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를 한다는 것은 주변의 모든 것을, 그렇게 까불고 뛰고 하는 인간들과 이 세상을 모두 해골더미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집에 있는 마누라도 해골이고, 자식도 역시 해골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바짝 마른 해골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바짝 마른 해골이란 의미가 무엇인고 하니, 도저히 스스로는 구원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번 대선에 나온 자들도 모두가 해골인데, 즉 박해골, 문해골, 그리고 허해골도 있고 말이다. (아니, 어찌 이번에도 허해골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통해서 안목을 주시게 되면, 이런 인간들도 다 해골로 보이는데, 그러니 우리가 부러워할 게 없어서 해골들을 부러워하고 부러워하느냐는 것이다. 그것도 바짝 마른 해골들을 말이다. 삼성의 이해골이 그렇게 부러우냐는 것이다. 또 현대의 정해골이 그렇게 부럽고 말이다. 바짝 마른 해골에 지나지 않는데 말이다.

◈ 해골들이 과연 부러움이 대상이 될 수 있는가?

물론 인자의 인식으로 주님과 교제하지 않을 때는 그런 해골들이 굉장히 부러운데, 그런데 오늘 성경말씀에서는 뭐라고 하는가? 하나님께서는 인자라고 부르면서 그 환경조차도 그만 바꾸어버리신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과 인자 사이에서, 하나님의 언약적인 관계로 소통을 할 때는 주변 환경은 졸지에 무엇으로 변하는가? 스스로는 도저히 구원될 수 없는 해골들이 가득한 해골더미의 세상으로 돌변하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니 성도가 항상 성령에 충만해서 살아야 될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이 세상을 도피적으로 산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안목에서 보게 되면 이렇게 걱정을 한다는 것이 어떠한가? 어제도 이야기했지만 막연한 불안감과 같은, 그런 것이 성령 안에서는 전혀 허용이 되고 용납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 인자야,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라고 물으셨는데, 답변은 뻔하다는 것이다. 도저히 살아날 수가 없는데,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인자에게 뭐라고 하시는가? "너는 이 모든 뼈들에게 나를 대신해서,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라고 하라"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도 참으로 이상한 것이, 어디 마른 뼈가 들을 귀가 있겠는가? 즉 귀만 살아있고 나머지만 뼈로 되어있느냐는 말이다. 전혀 그런 것이 아니고, 귀조차도 전혀 바짝 말라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뼈들에게 말을 하니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이다. 장작을 보고 이야기를 하면 알아듣는가? 그런 장작보다도 더 심한 것이 해골인데, 그들이 무슨 말을 들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에스겔이 그 말을 하니 놀랍게도 뼈들이 움직이는데,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먼저 그렇게 하기 전에 에스겔에게 계획을 말씀하시는데,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두리니 너희가 살리라" 라고 말이다.

그러니 이것은 뼈들이 알아서 기어 나온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께서 그것들에게 작업을 하셨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니 뼈들이 서로 자기 자리를 찾으면서 연락을 하게 된다는 말이다. 머리뼈는 머리뼈 자리에, 엉덩이뼈는 엉덩이뼈 자리에 말이다.

◈ 마른 뼈들이 하나님의 군대로 !!

그렇게 해서 각 뼈들이 자리를 잡게 되니, 그 다음에는 살이 붙고 가죽이 덮이게 되는데, 그것이 곧 피부인데 말이다. 그렇게 사람의 모양이 되니, 그 다음에는 생기를 불어넣게 되는데, 그렇게 되어서 심히 큰 하나님의 군대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해서 살아난 그들이 지금은 무슨 일을 한다는 말인가? 중국집에서 주방장을 하는가? 아니면 노가다를 하는가? 방금 하나님의 군대라고 했는데, 그러면 군대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 싸우는데, 그러면 무엇 때문에 싸우느냐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은 인간이 해내지 못한 것을 해내신다" 라고 하는, 그러한 편에서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서 신의 경지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하지만 그런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바짝 마른 뼈들이 하는 짓거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만 생각하면 되는데, 인간들이 제 아무리 고상함을 떨어도 '인자' 라는 새로운 환경이 마련되지 않으면, 그것은 결코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인자가 곧 예수님인데, 그러니 모든 성경말씀은 예수님과 관련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어제 오후시간에도 그런 설교를 했는데, 특별히 그 부분을 강조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고린도후서 10장의 말씀인데, 5절에 보면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라고 되어있다는 것이다.

(고후 10:4)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고후 10:5)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

이것을 그림으로 그려보면, 여기에 이렇게 예수님이 계시는데, 여기에서 정치, 경제, 외교, 사회, 문화, 가정, 종교, 역사 등등, 그 모든 것들이 예수님과 관련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경제를 예로 들어보면, 기업도 그렇지만, 조그마한 가게에 손님이 오고 오지 않고 하는 것도 역시 누구와 관련이 되어있다는 말인가? 예수님이라는 것이다.

일부 사람들이 자꾸만 "이근호 목사는 왜 철학을 공부하는가?" 라고 하는데, 하지만 고린도후서 10장 5절의 말씀에 의하면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다 예수님과 관련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농사를 짓든지, 고기를 잡든지, 택배 일을 하든지, 물론 목회도 그렇고 말이다.

그렇게 모든 것들이 예수님과 연결이 되어있는데, 목회자라고 하면 당연히 그 연결된 선을 찾아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철학뿐만 아니라 인문학, 법학 등등, 그 어느 것도 예수님과 관련이 되어있지 않은 것이 없다는 말이다. 여기에는 전혀 예외가 없다는 것이다.

만약에 자기가 가정주부라고 하면, "까르르, 깍꿍" 하면서 아이를 돌보는데, 그러한 것도 다 예수님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지심과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렇게 관련된 선은 생각하지를 않고, 가정에서 집안 일을 하고 아이를 돌보는 것과, 주일에 교회에 오는 것을 따로 따로 생각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는 도구인 파레트를 보면 어떻게 되어있는가? 각각의 물감을 짜서 넣도록 홈이 다 파여 있는데, 그래서 거기에 자기가 원하는 물감을 짜서 넣는다는 말이다. 제가 수요일에 그러한 설교를 했지 싶은데, 그와 같이 사람들은 각자각자 따로 놀려고 한다는 것이다.

◈ 당신들의 심야 데이트도 예수님과 관련이 있음을 아십니까?

하지만 사도바울의 복음은 결코 따로 노는 게 아닌데, 그 어느 곳 어느 구석이라고 해도, 심지어 젊은 남녀가 어두운 놀이터에서 데이트를 한다고 해도, 그것이 모두 예수님과 연관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때 그 젊은 청춘을 불러서 "너거들이 여기서 데이트를 하는데, 그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아는가?" 라고 한다면, 물론 그들을 모르겠지만 말이다.

요즘 젊은 아이들이 결혼을 하고 나서 부모를 따라서 교회에 나오기는 하지만, 유아실에서 아이들하고 논다고 바빠서 설교는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아파트 대출금도 갚아야 하고, 어디 신경을 써야할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 우리는, 태생이 바짝 마른 뼈 !!

그러니 문제가 무엇인고 하니, 이미 타고난 태생이 바짝 마른 뼈라는 것이다. 바짝 마른 뼈의 특징이 무엇인가? 아무리 자기 힘으로 살려고 몸부림을 쳐도, 여전히 바짝 마른 뼈다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하나님의 군대가 된다고 하는 것은, 여호와의 말씀이 뼛속까지 들어와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 보면 뭐라고 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어서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곧 들어오는 과정인데, 그래서 제가 누차 강조하기를, 말씀이 와서 우리를 찔러 쪼개고 발라내는 것 자체가 기적이고 축복임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꾸만 자기의 성과에 연연해하는데, 하지만 고린도후서 5장에도 나오듯이 성도는 자기를 위해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이 전혀 허용되지 않는데, 주께서 결코 용납해주지 않는다는 말이다. 성도라면 말이다. 그런 것이 곧 기적이라는 것이다.

(고후 5:15)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 에스겔님, 정말 당신의 공로가 아닌가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렇게 에스겔이 하나님과 대화를 하고 그 내용대로 했는데, 그렇다면 뼈다귀들이 살아서 군대가 된 것이 과연 에스겔의 공로인가? 아닌가? 물론 그게 에스겔의 공로가 아님을 우리는 분명히 아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에스겔에게 한번 물어보자는 것이다. 즉 "에스겔, 당신이 그렇게 수고를 해서 일이 잘 되었는데, 그런데 그게 당신의 공로임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하는데, 당신은 그게 기분이 나쁘지 않은가요? 인간적으로 솔직히 말해보세요" 라고 말이다. 물론 에스겔은 부인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성도로서 살아가면서, 우리 자신이 한 노동의 대가가 제대로 주어지지 않을 때, 우리가 얼마나 짜증을 내고 속이 상하느냐는 것이다. 그게 심하면 심지어 죽고 싶은 생각도 드는데, 마누라가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고, 자식도 마음대로 되지 않고, 그리고 교회도 그렇고 말이다. 그동안 자기가 그렇게 공을 들였는데, 차가운 새벽제단을 쌓으면서 말이다. 그렇게 몇 년 동안 공들여서 한 기도가 다 허사가 되고 말 때, 얼마나 기분이 더러우냐는 말이다.

◈ 성도는, 자기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기에 !!

성경에는 분명히 이렇게 "성도는 자기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이 나와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은연중에 "내가 한 노동의 대가가 남에게 가지 말고 나에게 돌아와야, 힘이 생기고 일할 맛이 난다" 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러니 우리는 그야말로 바짝 마른 뼈와 같이 행동하게 되는데, 그때 고린도후서 5장 15절의 말씀이 우리의 뼛속까지 들어와야만 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새롭게 살아난 자들은 다시는 자기를 위해서 살 수 없다" 라는 말씀이 말이다. "나도 그 말씀을 안다. 잘안다" 라고 하지 말고, 그 말씀이 매일같이 파고 들어와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매일같이 파고 들어와서 우리와 싸움을 하는데,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이 곧 하나님의 원수이니 말이다. 자기가 한 노동의 대가를 챙기면 기분이 좋아서 입이 째지고, 그래서 "주님을 찬양합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허탕을 치게 되면, "이런 짓거리를 언제까지 해야되지?" 라고 하게 된다는 것이다.

◈ 헛수고, 헛발질, 헛발질, 그 자체가 성도에게는 기적 !!

그래서 제가 오늘아침에 '해골더미' 라는 글을 하나 썼는데, 거기에 보면 뭐라고 했는고 하니, "헛수고, 헛수고, 헛발질, 헛발질을 계속해서 하는 것 자체가 성도에게는 기적이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누가 헛수고와 헛발질을 그렇게 계속해서 하겠는가? 성령이 없는 사람은 처음에 조금 하다가 안 되겠다 싶으면, 더 이상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쳤다고 내가 그런 대가도 없는 짓을 계속 한다는 말인가?" 라고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성도는 자기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닌데, 그러니 애초부터 자기를 위한다는 것이 용납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처음부터 허용되지 않는 것을 우리가 왜 자꾸만 넘보느냐는 것이다. 주제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말이다. 바짝 마른 해골을 주께서 다루고 있고 사용하신다는 것 자체로서 충분한데 말이다.

바로 그것이 오늘 교재에 나오는데, 교재 253페이지를 보자.

** 성도의 관심사는, 자신의 가능성이 아니라 자기 속에서 일하고 있는 그 불가능성을 발휘하는 솜씨들이다.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가능치 않고 불가능성으로 보이기에 그저 감격하고 감탄할 뿐이다.

◈ 하나님의 불가능성 !!

성도의 기쁨과 감사는 불가능성이 발휘하는 솜씨인데, 즉 "내가 이렇게 노력을 했더니만 예상된 대로 나왔구나" 라고 해서 기뻐하는 것이 성도가 아니라, 왜냐하면 그렇게 되어버리면, 예상된 대로 나오지 않으면 짜증을 내니 말이다.

그러니 불가능성이 발휘하는 솜씨인데, 즉 성령이 임하게 되면 우리는 인자라고 간주하시고, 그 인자 속에 이 세상전체를 해골더미로 보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것만 하나 기억하면 되는데, 사람들이 가면 바짝 마른 해골이 간다고 보면 된다는 것이다. 박근혜가 아무리 유세를 해도, 해골과 해골더미가 모여있다고 보면 되고 말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그 이유를 묻는다고 하면, "그 어느 인간도 스스로 구원될 수 없다" 라고 하면 된다는 것이다. 즉 우리 인간은 그 누구라도 스스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일을 못하니, 하는 것마다 지옥의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우리 자신에 대한 생각과 일치가 되는데, 그러니 우리 속에서 불가능성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보자는 것이다. 이것을 다르게 표현하면, 우리 속에서 어떤 기적들이 살아서 움직이고 있는지, 그러한 것을 살펴보자는 말이다.

그것을 제가 정리를 해드렸는데, 우리 속에 어떤 기적들이 살아있는가? 해도 전혀 소용이 없는 짓을 되풀이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불가능성, 우리 같으면 진작에 모두 끊어버릴 일을 주께서는 계속해서 하게 하시는 그 불가능성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은 추호도 우리 자신의 뜻이 아니라, 부득불 할 수밖에 없도록 해서 우리는 그러한 일을 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선지자 에스겔의 모습인데, 에스겔을 그런 일을 해서 일당을 얼마나 받았는가? 살림살이가 나아졌는가? 욕만 바가지로 얻어먹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수요예배 시간에 예레미야, 에스겔, 이사야 등을 계속해서 살펴보고 있는데, 그런데 이들이 외치는 것은 도저히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라는 말이다. 즉 "누가 믿었느뇨? 뉘게 나타났느뇨? 그는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사 53:1)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사 53: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사 53:3)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사람들이 기다리는, 즉 "이렇게 하시면 이런 효과를 얻습니다" 라는 이야기를 해주어야 하는데,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즉 예수님의 이야기를 해버리니, 그들은 불쾌한 표정으로 핍박을 가할 수밖에 없고, 이사야 선지자의 경우에는 톱에 잘려서 죽었다는 전설도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모든 것이 예수님과 관련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제가 대충은 이야기를 했는데, 왜냐하면 사람들이 이것을 너무 어려워하기 때문에 말이다. 아무튼 이 세상의 그 어떤 구석도 예수님과 관련이 되지 않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모든 인간은 이렇게 모든 것이 다 예수님과 연결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 종교 분야의 경우에 !!

특히 그 중에서 종교분야를 이야기해보면, 여기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먼저 하나는 '나'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있고, 그 다음에는 조금 전에 이야기한 것으로서, 즉 자기 자신을 바짝 마른 해골로 간주하고, 주의 성령이 임하니 주의 말씀이 우리 내부를 속속들이 마구 파헤치고 돌아다닌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예 박살을 내어버린다는 말이다.

그래서 저는 말씀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과연 성도인지, 가끔 의심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자체는 우리 인간을 바짝 마른 뼈로 보고, 거기에 말씀이 임해서 살아난다고 보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말씀이 임하지 않으니, 자기가 바짝 마른 뼈임을 전혀 인정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애를 쓰고 노력하면 되는데" 라고 하면서, 자꾸만 자기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 물질 → 정신 → 영 → 신의 세계

지금부터 이야기하는 것이 조금 복잡해도 이해를 해주시면 좋겠는데, 이렇게 종교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은, 지금부터 그리스도와 연결과정을 설명해드리겠는데 말이다. 먼저 종교가 '나'로부터 출발을 한다고 하면, 사실은 그리스도로부터 출발해야 하는데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나'로부터 출발하는 것은, 처음부터 종교로 시작하는 게 아니고, 물질로 출발해서, 그 물질에서 정신으로 가서, 그 정신을 밀어 부쳐서 영의 세계로 진입을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옛날에 전쟁을 할 때 보면 어떻게 하는고 하니, 이렇게 성이 있어서 점령하려고 하면 기다란 사닥다리를 놓고 뒤에서 밀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면 사닥다리가 점점 올라가서 성벽의 꼭대기에 다다르면 본격적으로 타고 올라간다는 것이다. 그렇게 성 안쪽으로 진입을 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정신은 윤리와 도덕인데, 그것으로 더 세밀하게 밀어 부치면 드디어 신의 세계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신의 세계를 넘어서면 무엇이 있겠는가? 물질세계에서 정신세계로, 정신세계에서 영의 세계로, 그리고 영의 세계에서 신의 세계로 가는데, 그러면 이 신의 세계를 넘어서면 무엇이 있겠느냐는 말이다. 비로소 '나' 라는 것이 보인다는 것이다. 힌두어로 '아트만' 이라고 하는데 말이다.

사람들이 예술을 공부하고 삼위일체를 공부한다는 것은, 결국 예수님보다 하나님보다 누가 더 똑똑해 보이기 위해서인가? 자기 자신이 그렇게 대단한 존재임을 확인하기 위해서 그러한 공부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결국은 '나' 라는 말이다. 이렇게 신을 밟아야 자기가 보이는데, 그래서 사람들은 종교를 가지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종교마저도 꺾는 재미가 있어야 하니 그렇다는 말이다.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물질이라는 것은, 즉 인간은 살과 뼈와, 그런 세포 덩어리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먹어야만 유지를 한다는 말이다. 이 물질에 대해서는, 광야에서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 바로 그 물질로부터 시작을 했다는 것이다. "돌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라고 하면서 말이다.

쉽게 말해서 "먹고 합시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즉 "당신은 물질로서 되어있으니, 그 물질에 필요한 것을 채워주어야, 그렇게 해서 그 물질이 안정을 찾아야 거기에서 고상한 정신세계가 나옵니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게 곧 물질이라는 말이다.

◈ '자이나교'의 경우에 !!

인도에 보면 '자이나교' 라는 것이 있는데, 이게 무엇인고 하니까, 불교 이전의 불교라고 보면 된다는 것이다. 석가모니 이전에 이미 불교와 같은 스타일의 종교가 있었는데, 즉 베다교(?), 자이나교, 불교, 그렇게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 자이나교의 교리를 생각해보면, 이 자이나교는 일단 물질세계에서 정신세계로 전환을 하는데 있어서 어떻게 하는고 하니, 물질은 매일같이 "배가 고프다. 보고 싶다. 알고 싶다" 라고 하면서, 신체 스스로가 요구하는 것이 곧 물질이 요구하는 조건이라는 것이다.

그런 것 때문에 남에게 피해를 주는데, 즉 도둑질을 하든지, 살인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충동인데, 그것을 자제하기가 쉬운 게 아니라는 말이다. 물질이 아픈데,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어제 저도 쥐가 나서 곤란을 겪었는데, 30초 이상은 가야 풀린다는 것이다.

그렇게 물질에서 정신으로 갈 때, 어떻게 해서든 정신세계에 도달하려고 하는데, 그런데 물질이 발목을 잡으니 어떻게 하는고 하니, 자기를 때린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학을 해서라도 자기가 자기를 길들이려고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하루에 세끼를 먹는 것을 점점 줄이는데, 두끼, 한끼, 그리고 나중에는 일주일에 한끼를 먹는다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해서라도 물질에 대해서 길을 들이게 되는데, 왜냐하면 물질은 길을 들이지 않으면, 정신세계에 가도 자꾸만 잡아당긴다는 것이다. 음욕이나 탐심과 같은 것들이 말이다. 그러면 제대로 도를 닦지를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물질에서 벗어나서 정신세계로 가게 되면, 타인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 이 자이나교는 무엇인고 하니, '공감' 이라는 것인데, 그것을 마치 마태복음 7장 12절의 말씀과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데,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라고 말이다.

(마 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고 하니, 이 세상 모든 만물은 모두가 한 형제이고 한 가족이란 것이다. 그러니 어떤 경우에도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고 하는, 그런 정신상태를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피해를 주면 안 되기 때문에, 길을 가도 조심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자기도 모르고 발로 벌레와 같은 것을 밟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수풀을 지나가던지 하면 말이다.

◈ 씨앗, 녹색식물, 이슬, 딱정벌레, 곰팡이 등등 !!

그렇게 이와 밟힌 것은 할 수가 없는데, 하지만 그 밟힌 무당벌레의 아픔을 자기가 공감을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일일이 다 헤아릴 수가 없기 때문에 하루에 두 번씩 회개기도를 하는데, 그 항목을 제가 이렇게 적어왔다는 것이다(ㅋㅋ).

먼저 씨앗의 경우인데, 씨앗을 밟아도 회개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녹색식물, 이슬, 딱정벌레, 곰팡이, 축축한 땅, 나무 등등이 있는데, 그러한 것을 밟게 되면 회개기도를 해야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동식물을 총망라하고 있다는 것이다.

◈ 사람의 경우에는?

그러니 사람의 경우에는 당연히 말도 못하는데, 어떤 경우에도 짜증을 내면 안 되고, 어떤 경우에도 친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십계명에 나오는 "도적질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라는 것과 같은 것은 이미 물질에서 나올 때 하는 이야기인데, 그런 1단계는 이미 벗어났고, 이제는 2단계로서 정신세계에서 영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곧 자이나교인데, 즉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는, 그렇게 공감을 한다는 말이다. 모든 만물에 대해서 살생을 금하면서 말이다.

그들이 그렇게 하면서 사는 목적이 무엇인고 하니, 그러한 것을 깨달아서 아직도 물질의 단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르치기 위해서, 그렇게 하려면 자기가 먼저 체험을 해야하는데, 그렇게 체험을 하고 난 다음에 이 세상에 다가가서 훈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 작은 개울 !!

그렇게 훈계하는 것을 그들은 '작은 개울' 이라고 하는데, 물질에서 정신으로, 또한 정신에서 영으로 넘어가는 도저히 건널 수 없어 보이는 커다란 강을 작은 개울로 만들어서, 쉽게 넘어가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그렇게 폴짝 뛰어넘을 수 있는 방법들을, 그러한 서비스를 제공해주기 위해서 자기들이 마치 동굴탐험을 하듯이 그렇게 먼저 경험을 한다는 것이다.

알다시피 동굴탐험은 초보자가 하면 안 되는데, 처음에는 얼마나 위험한지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위험을 무릎 쓰고 동굴의 끝 지점을 다 보고 나서 그 동굴지도를 작성한다는 것이다. 위험한 곳은 위험하다고 일일이 표시를 다하고, 난간도 다 설치하고, 전구도 다 설치하고, 그렇게 해서 관광객들이 와서는 안전하게 구경을 할 수 있도록 해놓는다는 말이다. 그것은 바로 파이오니어, 즉 개척자의 정신으로, 모험가의 정신으로, 그들은 영의 세계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 참으로 별난 취미생활 !!

여러분, 어떤가요? 취미생활이라고 하기에는 엄청 고생스러운 취미가 아닌가요? 비폭력, 세상에 대한 자비, 그리고 공감, 바로 그런 것을 주장하는 종교가 불교이전에 이미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깨달은 자'를 두고 부처라고 하는데, 그러니 석가모니 이전에 이미 깨달은 자들이 있었는데, 수 백년 전에 말이다. 그러니 석가모니는 많은 깨달은 자들 중의 한 사람인데, 석가모니가 깨달은 자의 시작이 아니고 말이다. 그런 깨달은 자들 중에서 하나의 분파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자이나교와 불교가 별반 차이가 없는데, 그런데 불교가 중국으로 건너가서 본격적으로 자기 자신을 신으로 등극시키는 작업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난 번 여름 수련회에서도 그런 강의를 했지만, 여기 그때의 교재가 있는데 말이다. 여기 2강에 보면 '면죄의 방식' 이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 불교와 기독교 !!

하지만 기독교의 시작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바짝 마른 뼈에 주의 말씀이 임해서, 그 말씀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군대가 되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인자 사이의 '상황 만들기' 라는 것이다. 그러니 기독교는 면죄의 방식이 없는데, 왜 그런가?

하나님께서는 "인자야, 바짝 마른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라고 하셨는데, 그 의미가 무엇인가? 우리 인간에게는 그 어떤 면죄방식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인간에는 물질로 출발해서, 그 물질에서 정신으로, 그 정신을 밀어 부쳐서 영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방식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없는데, 제가 왜 이런 자이나교 이야기를 하는고 하니, 지금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그러나 성령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설교를 하면 아무리 잘해서 다 이런 자이나교로 가게 되어있다는 말이다. 즉 "누가 누가 도를 닦았나? 누가 누가 완전함에 접근했는가?" 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주장을 하는 쪽에서는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알지 못한다" 라고 하는데, 하지만 사도바울에게 물어보라는 말이다. 그분이 얼마나 화를 내겠느냐는 것이다. "십자가가 눈앞에 보이거늘" 이라고 분명히 이야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쪽에서 뭐라고 하는고 하니, "당신이 신이 아닌데, 그런 주장도 틀릴 수 있음을 왜 모르는가?"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야말로 기가 찰 노릇인데, 쉽게 말해서 "비록 성경책이 있지만, 이 세상지식이 어떻게 성경책 안에 모두 다 담기겠는가?"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말씀은 백과사전이 아닌데, 백과사전은 그 범위 안에의 지식만을 이야기하면 되지만 말이다.

◈ 성경말씀은, 공부가 아닌 확인 !!

하지만 성경말씀은 그것이 아니라 누구를 증거하는데, 그분이 누구인가? 지금도 살아서 숨쉬고 움직이시는 예수님을 증거하는데, 즉 예수님은 오직 성경말씀대로만 움직이시는데, 그런데 그들은 뭐라고 하는가? "성경을 다 떼고 나면 무엇을 떼어야 합니까?" 라고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말씀은 공부하는 것이 아니고, "지금 이미 주님께서 이런 식으로 작업을 하십니다" 라는 것을 우리가 여기서 확인한다는 것이다. 에스겔서 37장의 말씀처럼, 우리는 바짝 마른 뼈였고, 그리고 주님은 인자가 되셔서 우리에게 성령을 집어넣으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골수는 그야말로 갈갈이 다 드러나서, 그 자체가 하나님의 군대로서 오직 그리스도만을 증거하는, 즉 "모든 것을 예수님의 십자가가 다 했습니다" 라는 것을 증거하는 싸움판에 놓여져 있다고 하는, 그렇게 현재 일어난 일들을 확인하고 있는 것이지, 새삼스럽게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이나 방식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만약에 그렇지 않다고 하면 기독교와 불교가 다를 게 무엇이 있느냐는 것이다. 그들은 정신세계에서 영의 세계로 진입하려고 하는데, 그 영의 세계를 그들은 '해탈' 이라고 하는데 말이다. 그러니 '영의 세계' 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고 하니, 조금 전에도 이야기를 했지만, 신이 있는 줄 알고 가보니 신이 있다는 것인가? 없다는 것인가? 신은 없다는 것이다.

◈ 내가 곧 신이다 !!

제가 이런 이야기를 수십 년을 왜 왔는데, 즉 신은 없는데, 신을 밟으니 비로소 누가 보이는고 하니, 그동안 신이 있다고 주눅이 들어서 살아왔던 자기 자신이 곧 신이었음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선악과를 따먹어도 제대로 단단히 따먹었는데, 그야말로 마약을 먹었다는 것이다. "니가 따먹으면 신이 된다" 라는 것인데, 그게 곧 개혁주의 신학이라는 것이다. 자이나교이고 말이다.

온갖 착한 것을 다 가지고 오는데, 그러면 시합을 한번 해보라는 것이다. 자이나교가 착한지 개혁주의 신학의 성화론이 착한지 말이다. 세상에 딱정벌레를 밟았다고 해서 하루에 두 번씩 회개하는 인간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그들은 아예 열매를 따먹지도 못하는데, 나무가 아파할까 봐서 말이다. 그래서 떨어진 열매를 조심해서 주워먹었는데, 왜냐하면 그것을 먹으려고 하다가 거미줄을 건드리면 안 되니 말이다(ㅋㅋ).

그러니 이것은 행동이 문제가 아니라 그 정신세계가 얼마나 우주와 교감을 하겠다고 하는 열린 마음이냐는 것이다. 열린 마음이라고 하니 요즘 유행하는 열린 교회가 생각나는데, 마음을 열라고 하면서 난리인데 말이다. 하지만 그런 열린 교회의 교인들과 이 자이나교 교인들이 서로 게임이 되겠는가?

그야말로 도사들 수준인데, 지금 그렇게 돌아다니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어느 영화배우도 티벳 불교에 빠져서 그렇게 한다고 하는데 말이다. 프랑스의 천주교 수도사들의 경우에도, 한적한 곳에 집을 지어놓고 농사도 직접 자기들이 지으면서 이런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동방교회에도 가보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마치 가족 사진을 찍는 것처럼 나란히 놓고서는 섬기고 있다는 것이다. 비잔틴의, 저기 그리스 쪽에 가면 그렇게 하는데, 웃기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란히 해놓고는, 자기들을 다 모신다고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말씀은 전혀 없고 그냥 폼만 잡고 있는데, 즉 자기가 생각하는 상징을 보고, 그 상징과 일치가 되면 정신세계에서 머무르겠다고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멈추지를 않는데, 어디까지 말인가? 인간은 자기가 신이라는 것을 확인할 때까지 말이다. 그때까지는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 언젠가는 열심히 잘 다니겠습니다 !!

예를 들어서, 젊은 사람들이 회사에 취직을 해서 살아갈 때, 그들은 정신세계를 바라본다는 것이다. "지금은 내가 밥 먹고살려고 직장에 얽매여서 돈만, 물질만 챙기고 있는데, 여행가방을 챙기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나도 교회에 다녀서 정신으로 깨끗하게 하겠습니다" 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무엇인가? 물질세계에서 벗어나서 정신세계로 가면, 즉 윤리 도덕적으로 완전해지면 하나님께서 기뻐하는가? 모든 것이 예수님과의 연관성인데, 그게 거미줄처럼 연결이 되어야 하는데, 즉 예수님과의 연관성이 눈에 들어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들어오지 않고, "지금은 바빠서 안 되고, 나중에 나중에 나이가 좀 들면 열심히 교회에 다닐게요. 엄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라고, 그렇게 해서 정신세계에서 영적세계로 들어가면 되는 것이냐는 말이다.

그렇게 까불다가 된 통으로 당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그 귀하고 소중한 것을, 마치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쳐라" 라고 하는 하나님의 지시처럼 말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자기 차로 후진을 하다가 자기 아이를 치여서 죽인다든지 하면, 남의 차에 친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게 곧 아브라함 사건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일을 당하게 되면 그야말로 가기 찰 노릇인데, 누구에게 하소연을 하겠느냐는 것이다. 더욱이 여자는 남편이 아닌 자식을 보고 사는데, 그 남편이 자식을 죽여놓았으니, 도저히 같이 살아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이혼하는 가정들도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몸이 지닌 자동적인 반응이니 어쩔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건 사랑과 전쟁도 아니고, 그냥 몸의 전쟁이라는 말이다.

◈ 아하, 나는 마른 뼈다귀구나 !!

그러니 사람들이 하는 이러한 모든 것들이 바짝 마른 해골이 하는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직장을 다니던 결혼을 하던 말이다. 그런데 이것이 인자와 연결이 되어야 하는데, 즉 예수님과 관련이 될 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는 것이 아니고, 우리 자신이 바짝 마른 뼈다귀임을 말씀에 근거해서 동의하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니가 알아서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려줄 테니, 그러니 말씀에 근거해서 너 자신이 바짝 마른 뼈임을 동의해라"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계속해서 강조해서 그런지 몰라도, 사람들이 성경말씀을 더 이상 보지 않으려고 한다는 말이다. 그게 아닌가요?

제가 지금까지 강의한 것이 구약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우리 인간에 대한 인간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신약에서는 우리 인간을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한번 살펴보자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 교재에 보면 나오는데 말이다.

먼저 교재 253페이지를 살펴보자.

** 성경에 나와있는 목자와 '양' 개념에서, 양은 참으로 귀한 존재다. 그래서 양이 되기를 원하고, 양이 되는 것을 마다하는 신자는 없다. 목자가 앞서서 보디가드 노릇을 해주신다는 데 싫어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시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 목자와 양 !!

여기에 목자와 양 개념이 나오는데, 언뜻 보면 이게 쉬워 보이지만 사실은 굉장히 어렵다는 것이다. 왜 그런고 하니, 양이 아니면서 양이라고 우기는 자들이 있었고, 또한 목자도 아니면서 목자라고 하는 자들이 있어서 그렇다는 말이다.

여기에 '목자1'과 '목자2'가 있고, 그리고 '양1'과 '양2'가 있는데, 그러면 '목자1'은 '양1'과 만나야 하고, '목자2'는 '양2'와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그만 서로 어긋나게 만나게 되면, 그런 질서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목자1'은 '진짜 목자(진목)'이고, '목자2'는 '가짜 목자(가목)'이고, 또한 '양1'은 '진짜 양(가양)'이고 '양2'는 '가짜 양(가양)' 이라고 하자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에서 가목과 진목의 관계를 '1' 이라고 하고, 가목과 가양의 관계를 '2' 라고 하고, 진목과 진양의 관계를 '3' 이라 하고, 가목과 진목의 관계를 '4' 라고 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진양과 가양의 관계를 '5' 라고 하자는 것이다.

이런 5가지 관계 외에 다른 관계는 없는데, 있습니까? 없지요? 그래서 이것을 일일이 다 따져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5가지 관계가 현상적으로 이 세상에 다 드러나게 되는데, 그래서 그런 하나 하나를 모두 다 추려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일이 다 말이다.

왜 옛날에 다방에 앉아서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5시간을 죽치면서 하는 게임이 있는데, 성냥을 곽 채로 왕창 다 쏟아놓고는 성냥개비를 하나씩 다 들어낸다는 것이다. 다들 그런 추억이 있지 싶은데, 아닌가요? 잘못 건드려서 성냥더미가 무너지면 안 되는데, 그러면 커피 값을 내고 다시 해야 한다는 것이다. (ㅋㅋ)

아무튼 그렇게 5가지 관계를 핀 세트를 가지고 일일이 다 찾아서 드러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도 않고 목사가 "여러분, 우리는 양입니다. 그리고 목자인 주님을 믿읍시다" 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 목자가 진짜 목자인지, 아니면 마귀인 줄 어떻게 구별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 진짜 목자와 진짜 양은 '죽음'으로서 !!

예수님은 그런 식으로 하지 않았는데, 예수님은 요한복음 10장에서 뭐라고 하시는고 하니, "양과 목자 사이는 죽음으로 연결이 된다" 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죽음'으로 말이다. 이 한 말씀으로 딱 떨어지는데, 양은 무엇으로 참 목자를 알아보는고 하니, 자기를 위해서 죽으신 분인데, 그러면 자기를 위해서 왜 죽어야 하는가? 기존의 '나' 라는 죽어 마땅하다는 것인데, 즉 "'나는 죽어야 되는 양입니다' 라는 것을 분명히 확인시켜주는 목자가 어디 계십니까?"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기는 죽어 마땅한 양임을 분명하게 언급해주고 확인시켜주는, 즉 자기는 죄인으로서 죄 값을 치러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해줄 목자를 찾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에 그런 양들이 오면 그야말로 '왔다' 인데, 그런 양들이 오게 되면 그야말로 교회라는 말이다.

그리고 목자의 경우에도, 진짜 양은 진짜 목자의 음성을 안다고 했는데, 그것도 요한복음 10장에 보면 나온다는 것이다. 즉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라고 말이다. 즉 목자는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데, 그것도 스스로 자기 목숨을 버린다는 것이다.

(요 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요 10:12) 삯꾼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요 10:13) 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나
(요 10:14)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요 10: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그러니 '죽음' 이라는 공통의 자리에서 진짜 양과 진짜 목자는 만나게 되는데, 즉 죽음이 불러낸다는 것이다. 여기서 죽음이 불러낸다는 말은, '십자가' 라고 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완성하려고 하는 그 완성이 목자도 불러내고 양도 불러내는데, 즉 '다 이루었다' 라고 하는 하나의 터전에서 해후를, 즉 그렇게 서로 다시 상봉을 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 진짜 목자와 진짜 양의 관계만이 !!

그렇다면 이 5가지 관계에서 하나만 해보면, 거기서 3번의 경우를 살펴보면, 그게 진짜 목자와 진짜 양의 사이인데 말이다. 그들 관계에는 무엇만 있는고 하니, 죽음만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실상 그 나머지인 1번, 2번, 4번, 5번은 전부가 다 가짜고 사기라는 것이다. 진짜 목자와 진짜 양의 관계를 빼고는 말이다.

조금 전에 이야기한 자이나교의 경우에, 그들의 문제점이 무엇인가? 살아있는 '나'를 무엇을 만든다는 것인가? 신으로 만든다는 것인데, 그러니 본인은 죽어서 마땅하다는 것인가? 그것이 아닌데, 그 어떤 경우에도 '나' 라는 인간은 죽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기어이 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신을 목표로 해서 출발한다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자기가 신이라는 이야기인데, 그래서 신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 여자친구를 왜 죽였어요?

오늘 아침뉴스를 보니, 29살을 먹은 남자가 있는데, 22살을 먹은 여자친구가 헤어지자고 하니까, 그만 흉기를 가지고 여러 차례를 찔러서 죽여서 자기 집의 창고 안에 숨겨놓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사체유기와 살인죄로 구속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왜 여자친구를 죽였느냐고 물으니까, 그 여자가 헤어지자고 하면서 그 이유를 설명해주지를 않았다는 것이다. 자꾸만 물어도 대답을 해주지 않아서 그래서 그만 죽였다는 말이다.

그러면 그 범인의 심리는 어떠한지 살펴보겠는데, 종교적으로 한번 보자는 것이다. 그 여자가 헤어지자고 하면 그냥 갈라서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그것이 용납이 되지 않는가? 그동안 그 남자는 '나'의 '나' 됨을 그 여자가 있음으로서 찾았는데, 즉 자기는 멋있는 존재이고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 그것이 그 여자와 헤어지지 않는다는 조건하에서만 성립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여자와 헤어지게 되면 자기는 연애에 있어서 성공이 아닌 실패자가 되고 마는데, 그러면 자기는 항상 실패자, 실패자, 실패자라고, 그렇게 되고 마는데, 연애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실패자로 말이다. 그러면 실패자가 되는 것이 왜 기분이 나쁜가? 하고 보니 질문자체가 그야말로 말이 안 되는데(ㅋㅋ), 아무튼 실패하는 것이 왜 짜증이 나느냐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와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것인데, 지금 예수님이 모든 것을 다 이루신 분인데, 그러니 예수님은 성공자이고, 우리는 마땅히 실패자가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완성하신 분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 성령 안에서 무시당하기 !!

조금 전에 새로 나온 책 이야기를 했는데, 원래 그 책제목을 제가 단 것이 아닌데, 처음에는 제목이 있었는데 중간에 그만 빠지고 해서 나중에 다시 제목을 달았는데, 그게 '9강, 성령 안에서 사랑하기' 라는 것이었는데, 그런데 제가 교정을 보면서 '성령 안에서 무시당하기'로 바꾸었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무시를 당하지 않으면 자이나교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백날 십자가와 복음을 이야기하다가, 마지막에 "나는 무시를 당하기 싫어" 라고 나온다면, 그게 도대체 누구를 위한 예수님이라는 말인가? 분명히 성도는 자기를 위해서 살지 않는다고 했는데, 즉 자기 자존심과 자기 체면을 위해서 살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아무리 예수님을 이야기하고 한국교회는 썩었다고 하면서도, 마지막에 "내가 이만큼 아니 나를 무시하지마" 라고 나온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니 성령은 우리를 연약하게 만드시는데, 예수님을 연약하게 만드셨듯이 오늘날 성도를 연약하게 만들어서 누가 오더라도 무시를 당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바로 그렇게 무시를 당하는 자를 예수님은 '어린아이' 라고 하신다는 것이다. 그런 어린아이가 아니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이다.

(마 18:3)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 나는 실패자가 아니야 !!

다시 살인사건 돌아와서, 그 여자친구가 떠나게 되면 자기는 실패자가 되는데, 그 남자는 여자를 만나면서 자기는 성공했다고 여겼는데, 그런데 여자가 떠나게 되면 그 자리가 덩그러니 남아있게 되는데, 즉 웅덩이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여자가 그냥 떠나면 자기는 실패자가 되니, 떠나도 곱게 떠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완전함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그래야 그것으로 그 웅덩이가 보상이 되고 메워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여자를 죽여 없애버림으로 말미암아서 자기를 실패자로 확인한 여자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있다는 말인가? 없다는 말인가? 없다는 것이다. 즉 그 여자를 만나기 이전의 그 옛날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자기가 실패자로 드러나기 이전으로 말이다. 그래서 자기는 다시 하나의 신으로서 온전하게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가 "인간의 최초의 행동은 살인이었다" 라고 설교를 한 적이 있는데, 바로 그렇다는 말이다. 신은 둘이 될 수가 없는데, 하늘에 태양이 두 개가 될 수 없듯이 말이다. 그러니 누구를 사랑한다는 말은 다 가짜이고, 온전히 우리는 우리 자신과 노는데, 즉 "나는 나하고만 논다" 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성령이 오게 되면 누구와 교제를 하게 되는가? '나'하고 놀던 그 '나'의 자리에 예수님이 들어가게 되면, 우리는 예수님과 교제를 하게 되는데, 바로 그 예수님과 교제하는 매개가 바로 "나는 너 때문에 죽었다" 라고 하는 것인데, 그것이 곧 성령에 의해서만 주어지는 기적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바짝 마른 뼈에 불과한데 성령님이 오게 되면 예수님의 죽음이 거기에 잠기게 되고, 그러면 우리는 죽음과 더불어서 죽음 안에서, 즉 십자가 안에서 예수님과의 사귐이 주어진다는 말이다. 그때 예수님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는 것이다.

"제발 부탁하노니(?), 너는 무엇을 해도 실패자로서 살아가다오. 니가 하는 모든 것을 내가 너의 자랑거리로 용납해줄 수가 없다. 니가 큰 성과를 이루어도 너의 자랑이 아니고, 또한 큰 실패를 해도 너의 실패가 아니고, 아무튼 너는 그리스도와 관련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 너 속에 있는 너 자신과 관련이 되면 안 된다. 너 속에 있는 너 자신은 악마가 만들어낸 날조된 것이고, 그것이 곧 악마의 모습이다. 그러니 니가 발현해내고 표방하는 악마는 너를 친구로 만들어주는, 지금도 멈추지 않는 악마의 계속적인 작업이다" 라고 말이다.

◈ 먼저, 가짜 목자와 진짜 양의 관계 !!

이것이 바로 참 양과 거짓 양과의 관계인데, 그러면 이제 다른 관계를 한번 따져보다는 것이다. 지금부터는 응용문제이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 않는데 말이다. 먼저 가짜 목자와 진짜 양이 만났다고 하면, 예를 들어서, 우리교회 교인들은 전부가 진짜 양이라고 하면, 말을 하고 나니 갑자기 제 얼굴이 화끈거리는데(ㅋㅋ), 그런데 거기에 복음에 관심도 없는, 자기가 신이라고 우기는 목자가 와서 설교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최 장로님이 일어나서 뭐라고 할 것이고, 다른 몇 사람은 또 밖으로 나갈 것이고, 또 남아있는 사람들은 수군수군거릴 것이고, 그리고 제 아내는 "그래도 목사님이 오셔서 설교하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라고 하면서 말릴 것이고, 그래도 자기는 사모이니 말이다(ㅋㅋ).

그렇게 뭔가 딱 하나를 꼬집어서 말하기는 곤란하지만, 미처 이런 종교에 대해서 배우지 않아서 그러한데, 아무튼 이상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그들을 물질에서 곧 바로 신으로 가는 것이 아니고, 즉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부자가 되었습니다" 라는 것은 수준이 낮은 것이고, 진짜로 수준이 높은 가짜 목자는 물질에서 어디로 이어지는고 하니, "윤리와 도덕이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입니다" 라고 하면서, 그렇게 윤리와 도덕을 영의 세계라고 하면서, 거기에 들어간다고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일반인들은 그게 맞다고 하겠지만, 하지만 복음을 아는 자들은 "참으로 이상해. 뭔가 이상해" 라고 하는데, 뭔가 딱 하나를 꼬집어내기는 어려워도 말이다. 그러면 광주에서 또 전화가 와서 "빨리 끄집어내리지 않고 뭐합니까?" 라고 하지 싶은데 말이다(ㅋㅋ).

◈ 과거는 더 이상 묻지 말고 !!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응용문제이니 부담을 가지지 말고 이야기해보라는 것이다. 진짜 목자는 죽음을 이야기하는데, 가짜 목자는 뭐라고 하는가? "여러분이 과거에는 한번 죽었지만, 지금은 예수님 때문에 살았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죽는 이야기는 하지 말고, 살아있는 내가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지, 그런 이야기를 합시다" 라고 나오니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그러면 "목사님, 십자가 이야기도 하면 안 됩니까?" 라고 하면, "십자가도 이미 과거에 지나간 것이니 더 이상 이야기할 필요가 없고, 이제는 부활의 새 생명 가운데서 어떻게 열매를 맺을 것인지, 거기에 중점을 두면 됩니다. 그렇게 해서 많이많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라고 한다는 것이다.

◈ 이슬이 너무 아파해요 !!

우리가 자이나교를 모른다고 하면 그게 기독교라고 여길지 몰라도, 하지만 그런 식으로 백 날을 해보라는 것이다. 자이나교나 불교를 이길 수 있는지 말이다. 우리가 땅덩어리를 보고 회개할 수 있는가? 자기를 인해서 피해를 본 것들에 대해서 회개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자기가 숲 속을 걸어가면 수풀에 떨어진 이슬이 아파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말이다.

우리가 과연 그 정도의 공감과 동정심을 가지고 있느냐는 말이다. 성령의 열매가 온유와 화평이라고 하는데, 그런 그들과 같은 그 정도의 마음을 가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 정도의 수준까지 내려갈 수 있느냐는 말이다. 올라가는지 내려가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그렇다는 말이다(ㅋㅋ).

인간들이 지키지도 못하는 이야기들을, "그것을 지켰으니 500원!" 이라고 하면(ㅋㅋ), 즉 그렇게 성경대로 멋지게 설교를 했으니 자기를 목사로 삼아서 돈을 내라고 한다는 것이다. 한 달에 얼마씩, 일년 예산을 측정해서 말이다. 물론 가짜 목자들이 그렇게 한다는 말이다.

아무튼 밥을 먹고 살아가는 방법도 여러 질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거기에 대해서 따지면, "내가 이야기한 것들 중에서 성경에서 어긋난 것이 뭔데? 사도바울의 권면과 명령을 이야기했는데, 그런데 뭔가 틀렸는데?"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면 "니 자체가 틀렸다" 라고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기부터 그리스도와 연결이 되지 않고 떨어져있는데, 그러니 목사라는 하나의 직업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즉 직업 사기꾼이 되고 말았는데, 좋은 말로 하면 경건한 사기꾼, 혹은 거룩한 사기꾼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 말이다. 그렇게 교인들에게 자기가 지금까지 공부한 값을 내놓으라고 윽박지른다는 말이다.

◈ 가짜 목자와 가짜 양의 관계 !!

방금 한 것이 3번이고, 그 다음에 2번을 해보면, 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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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예수 성경 OR :모세||요한 포함 :"나의 왕"